태종 이방원 VS 회안대군 이방간, 제2차 왕자의 난 (2부) : 300여 년간 왕족 취급 못받은 이방간의 후손들 (역사, 국사, 조선왕조실록, 수다몽더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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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іковано 22 вер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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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damong
정변을 치르기도 전에 모든 계획이 탄로났던 이방간.
2차 왕자의 난은 불 보듯 뻔하게 이방원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하지만 더이상 자신의 혈육을 제거할 수 없었던 이방원은
이 정변의 중요한 책임을
정변을 실행으로 옮긴 이방간이 아닌
이방간을 부추기기만 했던 박포에게 씌우는데...
2차 왕자의 난은 박포의 난으로도 불리지만
사실 박포는 정변에 발도 들어놓지 않았고,
오로지 그냥 이방간을 입으로 부추겼을 뿐인데요...
그가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이런 정변은 없었을 것이라며
모든 책임을 박포에게 넘긴 것인데...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구독자분들께서는
이 정변의 시발점이 누구로부터 이루어졌는지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어찌저찌 사건을 마무리 지으며
일단 형 이방간과 조카 이맹종의 목숨만은 살려주는 태종 이방원.
아지만 죽을 때 까지 이리저리 옮겨다녀야 했으며
왕족으로서의 모든 권위가 잘린 상황에서
이방간과 그의 가족들은 행복했을까요?
그리고 이방간 사후에 그의 아들 이맹종을 비롯
그들 가족들은 먹고 살수는 있었지만
약 300여 년간 왕족이지만 왕족이라 할 수 없는...
왕실의 핏줄을 이은 가문으로서는
매우 힘든 치욕을 고스란히 견뎌야 했는데...
(그래도 일반 백성들 보다는 잘 살았을듯?)
귀 얇은 선대의 잘못으로 대대손손 굴욕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이방간의 후손들.
이들은 어떻게 다시 복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생각보다 얽힌 사람도 많고 뒷 이야기도 길었던 제 2차 왕자의 난 이야기
2부 시작합니다~!
#태종이방원 #왕자의난 #조선왕조실록
※참고 드라마
- 용의 눈물
- 정도전
- 태종 이방원
- 대왕 세종
수다몽님 !
역사 이야기를 조근조근 말씀해
주셔서 귀에 속속 들어 옵니다
드라마 태종이방원을 시청하는데 수다몽님 덕분에
이해가 빠르고 인물의 혼돈이
안되고 이해가 되어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항상 감사드림니다
정종실록에 따르면 방간이 실패한 원인이
성계가 가지고 있던 옥쇄를 받으로 오라고 했으나 방간이 이를 의심 겁먹고 받으러가지를 않으니 가신 이강청 등이 주군은 왜이리도 용기가 없나이까 하고 울부짖었다
-정종실록 -
덕분에 즐겁게 배웠습니다~~
방간은 왕이 되고 싶은 욕심만 강했고 그것을 받쳐줄 능력도 없었을뿐만 아니라 왕이 된 이후 무엇을 해야할지도 정치계획도 없었음
반면 방원은 형에게 세자책봉이 된 이후에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으니 일찌감치 왕이 되면 무엇을 해야할지 다 준비가 되어있었죠
지금은 뭘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왕??? 나라 망조
@@withgo689 지금이 적기니까 어수선 할때 전과 없애고 나를 잡는 법안폐지 시켜 내가바로 왕이로소이다 국회잡고 푸른집 홈 컴 찢어지도록 웃어야지
이방원이 왕으로선최초로 과거도급제할만큼 공부도잘했고 그만큼 머리도 좋고 똑똑했죠 판단력 결단력은 최고입니다
오늘도 재밌게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영상 잘 보고 갑니다 😊
재미있네요 옜날 이야기라 잘들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부하였던 이억기가 이방간의 후손
2대왕 정종 후손임니다
정종의 서자 덕천군의 후손이죠
잘못 아신듯
무의공 이순신은 양녕대군 후손이고 이억기가 할아버지뻘이고 선조랑 14촌 형제
참… 살아도 산게 아닌게 이방간 부자군요. 왜냐하면 언제 본인들에게 사약 혹은 자결을 명할지 알수가 없으니. 결국의 그의 아들은 자결을 명 받군요.
이방원 만큼 판단력과 결단력이 뛰어난 왕은 없었다.조선의 기틀을 마련한 27명의왕 가운데 가장 위대한 왕이였다.
조선 27명중 이방원은 수양대군과 더불어 살인마임,
참으로 보면 볼 수록 민주주의가 얼마나 좋은가 생각하게 된다.
@Urchin Sea 너같은 댓글 꼭 달릴줄 알았다! 어디가서 방구석 정치질 댓글 좀 달지마라! 징글징글하다!
역사 정치 개념이 없으신듯.
현재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생각도 모르는 것이 진리인데
이방원의 생각을 이방원이 아닌 누가 알겠는가?...
수다몽님의 수다 지나가다 잘 듣고 갑니다.
콘텐츠에 대한 칭찬은 많네요. 저도 좋은 내용 만들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역사 이야기들에는 항상 옛날지명과 현대 지명이 섞여서 혼동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 점만 보완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조선에선 이방원이 젤 똑똑한 군주였다 17세에 과거에 붙고. 임금의 자리를 그토록 열망했으니.....한반도에선 이런 인물이 없었다
정조대왕은?
이방원보다 학문수준이 높은 후손 임금들은 많았습니다. 바보라 생각하는 강화도령 철종도 이방원보다 학문 수준은 높습니다. 철종은 과거시험의 일 등 이등 합격자의 답안을 보고 자기 스스로 채점을 매겨 1. 2등을 가려고, 스스로 급제자들에게 매우 높은 수준의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이방원은 세상을 읽을 줄 아는 지혜가 깊어서 명군이기 합니다. 다만 이방원의 과거 합격은 인맥을 통한 합격이지 진정한 실력으로 붙은게 아닙니다. 당시 고려 말의 과거는 스승이 누구냐 따라 합격해주었죠. 정도전과 정몽주, 이색이 이성계와 친하기 때문에 그 인맥으로 합격했습니다. 당시 고려말의 과거는 조선의 과거와 전혀 달랐습니다. 조선의 과거는 철저한 실력 위주로 뽑았지만, 고려말의 과거는말로는 실력 위주이지만, 사실상 그 누구의 문하에 따라 뽑아 주는 게 관행이었습니다.족벌 과거 라고 도 하죠.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그게 인성에 문제가 많은 상태에서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표출된다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고통으로 자리매김할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과거에 붙는것은 신뢰가 안되는것 같은데. 박정희 아들 지만 육사합겨콰 같은데...
일단 아들이 세종이라 업적면에서는 넘사
유익한 얘기 감사합니다
담부턴 목소리만 나오면 좋겠어요.집중이 안되요
이방원은 무력보다는 지력과 정치력이 MAX인 인물이라 그의 행동 대부분은 정치쇼에 가까움.
세종 아빠다운행동
이방원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
그놈의 권럭이 뭔지 애초에 어리석은 이성계 둘째부인 잘못으로 꼬였다 지 자식 임금 만들려다 방원이 칼에 다 죽게 만들고 처음부터 능력하곤 상관없이 순리대로 이성계 제일 큰 아들을 올렸다면 이런 왕자의 난이 있었겠는가
웃긴건 개판이 터지고 태종-세종-문종 3연타석 홈런이 터지면서 조선은 전성기를 건국 초기에 누리게되저
어렵게 창업했는데 무조건 장남에게 다음 승계자리를 주는게 옳을까, 역량을 키워 이상적인 후계자로 만들어낼 시간이 있는 어린 나이이자 구 고려와의 관계가 전혀 없는 자식을 내세워 한번 제대로 키워보고 싶은 계획이 옳을까.. 그리고 큰아들 방우는 이성계에 반대하여 시골로 내려갔다가 사망했음
@@jykim2203
그래서 그 후계자가 둘째부인 자식?그러면 본처 자식이 넵 하고 넘어간다고 생각한게 에바지
@@jykim2203 그러니까 그게 이성계의 오판이라는거...
죽도록 싸운건 큰부인 아들들인데 정작 세자 자리는 둘째부인 소생의 머리에 피도 안마른 어린 왕자에게 준다고 하니 아버지를 도왔던 장성한 아들들 입장에선 죽 쒀서 개 준 꼴이죠
그렇게 꼬였으니
세종대왕님의 한글창제가
있지요.
각도를 바꾸어 보면 300년간 참 지독하군요
충성을 빙자한 신하들의 잔인함도 극치네요
원래대로라면 진작에 죽었어야 했으니깐요.. 반란의 씨앗인데 ..
@@김수인-b3o 자기들이 오리지날 반란의 세력들이 면서 말입니다
@@dong-t2h 그렇게따지면 이성계도 정도전 정몽주 등등 다 거슬러 올라가야쥬?
이성계가 자식들을저렇게 만들었다.장남에게 세자책봉을해야지 어떻게 막내에게 세자책봉을해서 저런분란을 일으켜 이성계의 자업자덕이네
몽골계인 이성계는 몽골의 전통대로 막내세습제도를 따른겁니다
한족의 풍습을 따르는 유학자들이 이를 왜곡하는거죠
장남인 이방우가 건국과정에서의 불화로 지방으로 가출한 상태라 현실적으로 세자로 책봉하기가 불가능할수밖에 없어서 결국 이성계와 신덕왕후의 자의에 따라 막내 아우가 세자로 책봉된 것이지요
@@가불-w1k정도전의 술책이었죠. 신권정치를 위해 만만한 막내를 책봉했으니 비극은 이미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조선개국의 토대를 닦은 그의 욕심이 빚어낸 치영적 실수이고 욕심이었습니다.
저라도 절대로 용납 못했을 싶습니다. ㅎ
@@gentlemen4070 ; 정도전의 입김이 작용하였기 보다는 당시 복잡한 태조대 정치 세력들간의 이해관계가 빚어낸 것이었죠 원래 이성계와 신덕왕후는 방석대신 방번을 내세우려고 했지만 개국 공신들의 반대가 심하여 방번 반대로 인한 이성계 부부와 개국 공신들간의 대립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방석 책봉이라는 타협안을 내서 개국된지 얼마 안된 신왕조를 안정시켜야 했던게 정도전의 입장이었죠 왕위계승문제가지고 국왕 부부와 개국 공신들간의 갈등이 심해지면 성립된지 얼마 안된 새왕조에게 치명적일수밖에 없기 때문에 게다가 고려 유신들을 청소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새왕조 내부 화합을 중시할 필요가 있는 법이죠
@@gentlemen4070 ; 정도전의 꿈이 조선 건국을 이끌어 온건 부정할수 없고 그리고 건국 당시에 장자 상속제가 그렇게 절대적으로 확립된 것도 아니어서 막내를 책봉하든 누굴 책봉하든 유교적 장자상속문화가 자리잡지 못한 여말선초의 기준에서는 이상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이성계의 조부 이춘이나 부친 지이자춘도 장자 출신도 아니었던 터라 방석 책봉은 이성계 집안의 이런 자유로운 상속 문화에 기인한 것이죠
과연 이성계가 첨부터 이방과한테 세자자리를 줬으면 왕자의 난이 벌어졌을까?
이방원의 인간성으로 봤을 때, 무슨 일이라도 일으켰을 것 같음,,,,수양도, 문종, 단종으로 이러졌는 걸, 억지로 왕권을 찬탈 한 걸 보면,,,,,,,,,,,,이성계 집안의 역적의 피는 그대로 일 것임
강아지 귀여움. ㅋㅋ
장자 우선 순위(1순위 이방과)로 따져도 살아남은 4형제중 3째에 불과하고
개국 공 우선 순위(1순위 이방원)로 따져도 살아남은 4형제중 3~4번째에 불과했던 이방간
어떤 식으로도 절대로 왕 자리가 돌아올 수 없었지만, 욕심만 과했던 미련한 인물이죠.
이방간 순위 2위 순위 3위.이방원
이방간 순위.2위
대군은 4대까지만 왕족 대우인데 그 이후 후손둘은 그냥 일반 양인인데 뭐
반역은 3족을 멸하는게 기본인데 후손안끊긴것만해도 감사할일 아닌가?
후대의 연산,광해,단종만 보더라도 본인죽이는건 기본인데
권력이 무정 및 비정 한것보면 후하죠
당시는 정종때이고 반역은 아니었기에 가능합니다
정종이 왕위에 올랐을 때 한양에서 개성으로 다시 수도를 이전 했나요.
네 제가알기론 그러다 태종때 다시 한양으로 돌아 온걸로 기억해요 확실히기억은 안나네요
맞아요. 정종이 개경으로 환도 했어요. 1차왕자의난이 일어났던 한양에 계속 있기 찝찝 해서 개경 환도 했다가 태종 때 다시 한양으로 환도 합니다.
네 맞습니다.
이건 나름대로 잘 한겁니다
걍 대군으로 놀고 먹고 편하게 살면되지 왕이 뭐라고
3대까지만 왕족 대우 받지만, 4대부터는 왕족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이방간이 반란을 안 일으켰어도, 이방간의 증 손자들은 왕족 신분이 아니라서 어차피 군역을 질 운명이었습니다. 이방간의 후손들이 숙종때 복권에 성공하지만, 그건 선조들의 왕족 신분을 회복일뿐, 후손들의 왕족 신분이 되는게 아니죠. 사실 왕족의 후손으로 복권되는게 맞는 말이지만, 왕족은 당연히 아니죠. 이미 숙종때 되면, 왕족이 아닌 세종의 후손들도 군역지고 있습니다. 본디 고종도 대원군의 아들이지만 , 왕족이 아닌 상황이었죠. 그러다가 조대비의 양자로 들어감에 따라 일반인 신분에서 바로 왕위를 올랐죠. 대원군도 둘째 아들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자신의 맏아들이 왕족의 신분이 안 되기 때문에 먹고 살 방편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 벼슬 자리를 알아보기까지 했죠.
3대까지는 왕족 신분이라 나라에서 주어지는 과거시험에(문과,무과,잡과등) 응시할수없지만 4대부터는 왕족이 아니므로 과거시험에 응시할수 있게되죠. 선조~인조때 영의정이던 오리 이원익 정승이 태종의 어덟번째 서자 익녕군의 4대손이었습니다. 본인은 왕족 대우를 받지못했지만 아버지대까지가 왕족 대우를 받았죠
군역 안가는 왕족라서 병신
역알못 댓글 적자 대군의 후손은 4대 서자 군의 후손이 3대까지 왕족 대우 방간은 대군이라 4대까지 왕조대우
3대가 아닌. 4대까지. 종친 왕족이고. 5대부터는. 자신의 노력으로. 사는데. 대신 과거를 볼수있게 되지요.
@@mangentle6946 과거는 양인들에 속한 농민들도 볼 자격이 있는데 뭐가 특혜인마냥 대신이라는 표현을 ㅎ
아버지가 첩에 정신이흐려 교통정리를 똑바로 안해주니 형제들이 파탄나네!
아니죠 첩이 아닌 어엿한 후처 인데 말입니다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 생각이 어찌 그토록 짧은 것인지 친형을 역적으로 처벌해야 하니 착하고 어진 이방원 가슴이 얼마나 아팠을까,
이기붕이 아들?
착하고 어진 이방원이 조선에서 손꼽히는 살인마 였음 ㅋㅋ
입장바꿔서 동복형제가 부모님 제산 가로체도 눈돌아가는데 부모님 뜻이건 뭐건 첩의 자식들이 재산 싹 받아가면 살인나지
에이~첩은 아닌데 정실부인인데 2번째 부인이긴 하지만
회안대군22대 후손으로써 아타깝습니다.
아x안o
부디 훌륭히 되세요^^
후대라도
"노"자 나 "중"자 항렬 이겠네요
고려의 역적집안 출신=우리집안의 역적
너노비
아들 많이 나아봐야 권력 다툼이나 하지 …. 수컷들의 본능이라 어쩔수가 없다
빙고!!수컷들이 많으면 싸움만 일어나는듯..ㅋ
감사합니다.
갓세종의 아버지인것으로 영원히 까방권..
세종이 그냥 왕이었다면 한글은 없었음.
킬방원이 외척을 안쳐냈다면 지금 자판을 쭝꿔로 쓰고 있을 듯,,,,
그건 아무도 모름..한글창제의 업적을 아버지에게 돌리는건 좀 무리수. 아버지가 그렇게 안해도 세종은 한글창제 했을듯.
동감입니다
세종이 아니였어도, 이성계가 역적질을 하지 않고, 고려가 유지되거나, 새로운 나라가 생겼어도, 한글이 아닌 우리 문자는 만들어졌을 것임,,,,,,,,,물론 지금과는 많이 다르겠지만,,,,,,,,,,,,조선 500년간 성리학에 빠져 고립되어서 그렇지, 많은 인제들이 새로운 우리 문자를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됨
근래도 방원이는 동보ㄱ형제를 죽이지않음
왕좌의 난이 역적으로 보는지요
세종이 성군이 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준 이는 바로 태종입니다. 태종은 후에 위협이 될 만한 인물들을 모조리 제거하죠. 그러니 세종이 왕에 오른 후 반대 세력 없이 마음 것 정치를 합니다. 어찌 보면 태종은 정말 훌륭한 임금입니다. 태종은 기득권층에게는 살벌 했지만 백성들에게는 어버이같은 인물이었죠. 백성을 위하여 수많은 개혁을 이룬 왕입니다.
세종이 성군이냐?? ㅋㅋㅋ
노비종모법을 만들어서 노비수를 늘리려했고
한글창제는 우매한 국민들을 손쉽게 통제하기 위한 수단임
태종을 너무 미화하는거 아닌가요? 아비가 그렇게까지 안해도 성군이 될 사람은 성군이 됩니다. 태종은 아버지,아내, 자식까지 다 이겨먹고 자신이 원하는 권력을 피로 물들인 어쩔수 없는 독재자입니다. 한마디로 권력이라면 피도 눈물도 없는 싸이코패스입니다.
@@illlliilili 철종은 상당히 능력있는 총명한 군주였습니다. 그러나 철종에게는 힘이 없어 결국 이룬게 없었죠 인종또헌 성군 자질을 지녔음에도 계모애게 독설당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군주의 능력은 첫번째지만 배경또한 있어야한다는 것이죠. 태종은 세종을 견제할세력을 모두 없애쥰겁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의 욕심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살육한것은 용서가 되지 않죠..모든 군주들이 다 그렇게 한건 아니지요. 왕권강화를 위해서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여도 된다는것은 어패가 있습니다. 그사람이 한 죄까지 미화시키면 안된다는 겁니다. 왕권강화를 위해서 어쩔수없이 그랬다는건 그를 미화시키는 발언밖에 되지 않습니다.
@@illlliilili 당시의 시대상 충분시 세종울 등에 업고 흔들 인물들만 골라 죽인거죠. 또한 수많은 탐관오리를 잡아죽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 삶의질이 또한 높아잔거죠. 그러나 세종은 황희 정승의 온갖 비리를 봐줘 욕을 먹습니다
악어의눈물이지머ㅋㅋ
이성계 자업자득
악어의 눈물!
조선시대 장자우선이라 했지만 실제 장자가 물려받아서 성공한 사례가 없슴
이성계의 못난 결정이 불러온 비극. 이성계는 아들이 무섭지 않았을까? 세종도 마찬가지, 수양 안평을 왜 그리 믿었을까??
이억기장군은 이방간의 후손이 아니라 정종의 후손임
지성미가 압권이군요ᆢ 다음에 기회가되면 곡차 한잔ᆢㅎ ㅎ
이방원이 그래도 친형들은 안죽이지않았나요? 배다른 형제야 나같아도 죽이고 처남들고 깝치지못하게 죽이는게 맞는거고
동복형제는 끝까지 감싸주었죠. 이미 이복형제들을 둘이나 죽인 시점이라 동복에까지 손을 대는 건 부담이 컸고...그래도 필요하다면 죽일 수 있는 사람인데 나름 동복형제라서 끝까지 손을 써준 듯 합니다.
왕권다툼한 친형제는 살려주고 어려울때 도와줬던 처가는 싹 죽이고ㅋㅋ토사구팽 역겨움
이복동생죽겨다
해석이 많이 모자란 사람이네요
아무리 그래도 함께 눈물을 흘린건 구라가 확실한듯 ㅎㅎ;;;
혼자 흘리면 뻘쭘하니 같이 눈물을 흘렸다 라고 적은듯 ㅋㅋ
이방원이 세자가 아니라 세제 겠지요ㆍ
세제가되는게 맞지만 세자로 책봉됐어요 적장자 정통성을 주기위해 정종이 강력하게 주장했다고하네요 아우를 내아들삼겠다 했지만 ..태조에서 태종으로 건너뛴다는 이런뜻도 있다더라구요
ㅎㅎ혈욱의난이니 한쪽만의 잘못은 아닌듯?
도친개친😊
훗날한국사교수하셰요!
세자가 아니고 세제
세자가 맞습니다
정종 이방과의 양자로 들어갑니다 웃기지요
정종과 태종은 10살 차이가 납니다 당시 29세 39세 입니다
@@양진수-j7y 1400년엔 34 44살이에요
@@러브허니-v8d 아~그렇네요
1367년생
이방원은 동복 형제는 절대 죽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엄명을 내렸죠. 태종은 필요하다 생각하면 철저히 말살했지만 의외로 관용도 많이 베풀었습니다. 태종 이방원이 없었다면 세종대왕의 르네상스는 없었겠죠.
이성계 그릇이 크다. 이방과 그릇이 크다. 3째는 그릇이 중간크기고 4째는 그릇이 작다.이방원은 그릇이 많다.
모든게다 방원이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때문 개수작질 기록이다
애 초 부 터 나 이 도 제 일 어 린 첩 에
자 식 을 세 자 로 정 한 이 성 게 에 잘 못 으 로 죽 음 으 로 몰 고 감
첩은 아니었습니다. 그건 후에 붙여진 개념이고, 이성계가 장가간 고려말까지만 해도 향처와 경처를 갖는 일이 드물지 않았어요. 신덕왕후도 왕후로 추존은 되었으니 정식 왕비가 맞습니다. 그 꼴이 너무 보기 싫었던 태종이 처첩을 엄격하게 구분을 지어 신덕왕후를 많이 끌어내리려 애썼고요. 지금봐도 입지가 참 애매하긴 하지요.
이성계의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점은 동의하고요.
잘못된 선택 이었지만 실제로는 어엿한 후처 였다고 봅니다 당당한 후처 자식 이지요
노비...100을 반납했다니...
역시 대결을 해봐야 모든 논쟁이 끝이 나는 법이지 ~그래서 전쟁이 이어지나보다~다 지가 잘났고 우기니 맞장을 한번 떠 보자~아~더워
몸맥갸 보고십네요:::::::
결과론적으로 이방원이 왕이되었기에 세종대왕이 나왔지
ㄷ
세종의 노비 종모법으로 국민의 90%노비화
ㅋ
조선의 조조
세종도 뮨제아 이구만
충주는 츙북이다
세제입니다
세자
흘러간 역사가 무슨 의미가 있고 진실이 있나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승자의 기억인 것을
인생사에 참고하는거 아닐까요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는 성경말씀이 그리도 맞는지를
뒷통수의 시초는 위화도회군.
방원이 부부가 욕심이 과했구나.
ㅈ같은 과거사 배울게 뭐가 있다고
참고: 드라마ㅋㅋㅋ 역사를 드라마로 배웠습니다
이방원은 세자가 아니라 세제 입니다
정종의 양자가 되어 세자 책봉이 되었습니다.
눈알이 이상해요.
세자는 아들이 하는거고
이방원은 정종의 아우이며 세제입니다
적통성 등으로 왕세자로 책봉 된걸로 아는데요
양자로 입적해서 세자로 책봉입니더
윤석열은 공신들을 쳐내고 인재들을 등용하여 한다. 세조가 아닌 태종이 되어야하는데 쩝! 본인이 세조만도 못한 모지리라 걱정 😟
그 시대에 안살아 보고 말하는건 들은 애기나. 기록으로 전해진것이기에 100프로 정답은 아닐 듯요~~. 역사는 주관적인 의견들이 많이 들어감... 그래서 누구의 시점에서 역사를 분석하느냐에 따라 너무 달라짐
이 드라마 보지마라..
한 씬을 위해 말 한마리를 죽게했다..
그거보고 그 뒤로 이 드라마 안봄..
정통사극 겁나 좋아하는데..
유동근나온 드라마 용의눈물은아니고 작년에 나온 주상욱이나온드라마 이방원때 그랬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