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시] 금산교회, 100년 교회 성지순례(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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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іковано 10 лют 2025
- 전북 김제시 금산면 모악로 407
■ 김제 금산교회는 1904년에 설립된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두 가지 자랑거리가 있습니다.
[한옥 예배당]
■ 첫 번째 자랑은 1908년에 지은 기역자 모양의 한옥예배당입니다. 남자들은 왼쪽 출입문을, 여자들은 오른쪽 출입문을 사용했습니다. 남자쪽 예배당을 1칸 더 크게 지었습니다.
■ 남자쪽 대들보에는 고린도전서 3장 16절 말씀이 한자로 적혀있습니다. 여자쪽에는 한글로 적혀있습니다. 1908년 4월 3일(음 3월 3일)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예배당은 1997년에 전북문화재자료 제13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제2호(예장 합동)로도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자익 목사와 조덕삼 장로]
■ 두 번째 자랑은 이자익 목사와 조덕삼 장로의 이야기입니다. 부자인 조덕삼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머슴인 이자익을 자식처럼 사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들과 함께 한문을 배우도록 했습니다.
■ 두 사람은 교회 설립 2년 뒤인 1906년 함께 집사로 임명을 받았고, 1907년에는 영수로 임명을 받아 교회를 돌보며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 금산교회에서 시행된 첫 번째 장로 투표에서 마부 출신 이자익은 장로로 선출되고, 조덕삼 영수는 떨어졌습니다. 투표 결과에 대해 조덕삼 영수는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결정은 하나님이 내리신 결정입니다. 나는 교회의 결정에 순종하고 이자익 장로를 받들어 열심히 교회를 섬기겠습니다.”
■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이자익이 목사 안수를 받자 조덕삼 장로는 이자익 목사를 금산교회 담임 목사로 청빙했습니다.
■ 이자익 목사는 1922년 소위 ‘중강진 사건’에 연루되어 8명의 목사들과 함께 평북 중강진 감옥에 수감되어 50일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는 일제의 끈질긴 신사참배와 창씨개명 요구를 거절하였습니다.
■ 이자익 목사는 호주선교부의 요청을 받아 1925년부터 1936년까지 11년 동안 경남지역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이자익 목사는 3회(1924, 1947, 1948)에 걸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을 지냈습니다. 이것은 장로교단에서 처음인 동시에 마지막입니다.
■ 이자익 목사는 금산교회를 섬길 때 타 지역 대형교회의 청빙을 거절하였고, 심지어 이승만 정권의 장관직 요청을 거절하고 평생을 목회에 전념하였습니다.
■ 그는 은퇴를 몇 년 앞둔 1954년에 선교부의 요청에 따라 대전신학대학교를 설립하고 제1대 교장에 취임했습니다.
*음원출처 : 크리스찬 BGM
( / @christian-bg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