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뉴스 제 1135호-제 11회 대통령배 전국 고교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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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11 лис 2024

КОМЕНТАРІ • 9

  • @summit8848-l1f
    @summit8848-l1f 4 роки тому +3

    결승전 희미하게 기억나는군요
    오영세 김경문배터리에 신경식 이근식 그리고 78년 청소년대표가된 김광림

  • @이정헌-e5o
    @이정헌-e5o 5 років тому +6

    공주고가 팀창단 3년만에 첫우승
    당시 공주읍내 막걸리집이 바닥날 정도 였으닌까요
    포수 김경문. 유격수 송석창 투수 오영세 등
    저는 인천고 재학생 으로서
    인천고는 포수 조범현과 당시 1천만원의 스카웃트비용으로 화재에 올랐던 김성근 감독이 있는 충암고와 개막전에서 11:5 로 승리 8강에 진출
    8강에서 공주고와 격돌...승리가 예상되었으나
    초반 공주고에 일격을 당해 7:2 로 패배했죠
    공주고는 신일고와 4강에서 3:3 동점으로 일몰서스팬드께임으로 다음날 신일고와 연장전을 계속할예정이었으나 신일고의 부정 선수 사태로 신일고의 몰수패
    사상첫 결승에 올라간 공주고는 초고교급 양상문이 버틴 부산고에 승리하여 우승했죠
    77년5월10일부터 5월16일까지 7일간
    서울운동장(83년부터 동대문운동장으로 개칭)에서 거행되었습니다.
    당시 고교야구는. 프로야구가 없던시절로서 국내 최고의 인기스포츠였죠
    그때가 그립습니다.
    하나만..더
    77년도는 화랑기와 전국체전포함 전국대회6개 대회에 결승에 진출한 팀이 모두 달라 평준화를 이룬 한해였습니다
    대통령배. 공주고. 부산고
    청용기 대구상고. 동산고
    황금사자기. 광주상고. 인천고
    화랑기. 세광고. ?
    봉황기. 충암고. 진흥고
    전국체전. ? ?
    암튼 결승진출팀이 모두 다른것은 확실합니다
    당시는 과열된 고교야구전국대회 3회 출전제한이 처음시행되었던 해였는데 79년도에 방학에 개최되는 것은 전국대회에 출전기록으로 인정하지 않은다 로 규정되어 사실 모든대회에 출전가능성이 이루어진거죠
    79년 전국대회개최
    대통렁배. 4월
    청용기. 6월
    화랑기 대붕기 7월(같은날 동시 부산과 대구에서 개최)
    봉황기. 8월
    황금사자기. 10월
    전국체천. 10월
    오늘은 여기까지...

    • @summit8848-l1f
      @summit8848-l1f 4 роки тому +3

      77년 화랑기결승전은 세광고와 부산상고가
      붙어서 세광고 2년 김영식투수의 호투로 지방대회이긴 하지만 세광야구부사상처음 우승이죠

    • @이정헌-e5o
      @이정헌-e5o Рік тому

      @@summit8848-l1f 아..
      결승전 상대가 부산상고 였네요
      화랑기가 부산개최이지만 당시 전국대회로
      인정했습니다.

    • @마로니에잎새
      @마로니에잎새 Рік тому

      @@이정헌-e5o 대붕기가 새로 동시에 화랑대기와 열리는 바람에 화랑대기 권위가 지방대회로 떨어졌죠 대붕기는 5공 신군부세력의 작품이죠 대구지역에 지방대회 하나 만드는거 나중에는 광주에 무등기야구대회를 하나 만들어서 대붕기와 동시에 개최하기도 했됴 화랑기는 본래대로 따로 개최하구요

  • @박태억-y5d
    @박태억-y5d 4 роки тому +2

    77년도 이군요 ᆢ전국대회 우승팀이 모두 달랐던 ㅡ

  • @최창락-d3e
    @최창락-d3e 4 роки тому

    그리고 36년뒤 또 우승ㅠㅠ

  • @산천와인
    @산천와인 4 роки тому +1

    빠따 줜나 때리던 시기

    • @당무우홍
      @당무우홍 5 місяців тому

      선후배관계가 워낙살벌하고 경기에지는날엔 여차없이 빠다 존나 맞았던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