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형.. 어렸을때 역사배웠을때는 재미도없고 무슨내용인지도 모르고 그냥 시키니까 외우기만했는데.. 형이 진짜 잘 설명해주시고 그리고 역사에 색다른면을 보여주고 일께워주는거같아요. 저같은 사람들도 역사를 재밌게 설명해주시고 경각심을 심어주셔서 감사해요. 누군가에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세요
당시 여진의 원군을 받지 않은 것은 타국의 병력이 원병이랍시고 아국의 영토로 들어왔다가 그 땅을 점령하는 경우도 역사에 많았기에 왜국만큼 적국이나 마찬가지인 여진의 군대를 받아들이는것에 반대를 하는 것이 당연했다고 봅니다 물론 명나라는 당연히 그렇지 않을거라는 정치적 결론이 있었기에 원병요청을 했던거구요
누르하치가 파병 의사를 밝힌 것은 1592년 (임진왜란 초기), 1598년 (정유재란 초기)임. 게다가 누르하치의 여진은 조선과 원래부터 치고받는 적대적인 관계 였어서 안정적인 외교적 루트가 없었기에, 두 차례 모두 조공관계로 이어진 명나라를 통해서 건너 물어본거임. 또한 임진왜란 초기에 선조가 의주까지 빤스런했을때, 가토 기요마사는 함경도 두만강까지 진출했음. 그 곳에서 실제로 여진족 vs 일본군 전투가 벌어지기도 함. 함경도 접경지역은 이미 박살난 조선군의 방어는 물론, 누르하치의 통제력 또한 제대로 미치기 어려운 곳이었어서 여진에서의 침범도 빈번히 일어났음. 그나마 사정이 나았던 것은 의주가 위치한 평안도 접경지역은 그래도 대화를 하고자 하는 누르하치가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여진의 남침 방어를 위해서 소규모의 조선군을 상시 배치할 여력은 되었던 지역임. 그래서 나는 누르하치의 파병 의사는 다음 같이 생각할 수 있다고 봄. 1. 믿기지 않는 일본군의 진격속도를 보면, 조선이 곧 망할거 같고, 심지어 이미 함경도 북쪽에서는 일본군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어차피 곧 일본군과 싸울거, 조선군이 남아있을때 압록강 아래에서 미리 최대한 막아보자. 2. 혹시라도 조선이 붕괴하고 동시에 일본군도 붕괴된다면, 그 빈 자리는 우리가 명나라 공인받아서 은근 슬쩍 먹어버리자. 3. 조선이 방어에 성공한다고 쳐도, 재정비해서 다시 북방에 전력을 집중하기 전에, 남쪽 지형지물 및 조선군의 현황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습득하자. 4. 굳이 조선에 대한 적대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이번 기회에 조선, 명나라 등의 국제정치계에서 정당한 세력으로 인정받으면 여진족을 더 체계화되도록 통합하고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or 명나라가 출병하는 와중에, 조공세력으로서 약간의 협조성을 보여서, 명나라의 여진족에 대한 간섭을 줄여볼까? 5. 그냥 예의상 해본 소리야. 너네 어차피 거절할거잖아? 물론 조선 입장에서도 일본만 해도 머리 아픈데, 본인들이 보기엔 어벤져스 같이 느껴질 명군이 오는데 굳이 평소에 치고받고 싸우던 오랑캐를 데려오긴 싫었을듯
늦은댓글이지만 저당시 반대하던 장군들많긴햇음 일본에서 솔직히 통일한지 2년밖에 안됏는대 2년 아직 준비할게 한참남앗고 내부상황도씹창이엇음 2년동안 내부통합하고 전쟁준비할 시간이안돼있엇죠 무엇보다 오래됀전쟁으로 인해 전쟁에 질린사람도있고 무엇보다 준비가 덜돼다보니 반대한사람도많앗고 사야가 같은 친조파들도 많앗음 그냥 도요토미 히데요시 개억지부른 전쟁이라고 생각하시면돼요 무슨준비를 2년동안 합니까 내부부터 안정화가 안됏는대 너무 급하다보니 이거 승산이 있나라는 생각을 해본 장군이없엇죠 뻔한결과니깐 근대 까라면 까야죠 어쩔수있겟습니다 전쟁끝나면 노숙자돼는거고 공에 불키고 난리치는 것들도 있는대 그래서 결국엔 도쿠가와가 제이득이죠 전쟁보단 내부안정화를 우선으로 삼던양반이라 전쟁끝나고 조선이랑 쇼부좀봤던 사람이긴함
그런데 수비에 성공한 전쟁은 맞았아요. 이순신이 활약함으로써 수륙병진이 막히면서 왜군이 평양이상으로 밀고가기 어려운 상태였죠. 군량도 군량이지만 군수품도 다수 물길로 날라올려야 되는데 그걸 막은게 컸어요. 이걸 국뽕역사라고 하시는데 냉정하게 보면 이긴 전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바닷길을 막아서 완전히 조선이 멸망하는 걸 막은 전쟁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본디 전쟁이란게 다른 나라 도움받고 그런게 우리나라만 있었던게 아닙니다. 2차대전때 소련도 독일의 침공에 산업시설이 제대로 돌리지 못했는데 미국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영국은 거의 미국아니면 무너졌을 판이였죠. 동맹의 도움을 받는건 부끄러운게 아니라 외교의 승리입니다.
사실 가정 하나 더 하자면 조선의 상태만 괜찮았어도 청은 없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명나라가 북원과 씨게 대치하느라 여진에 신경을 못쓸 때 여진 두들겨 패서 억제하던 게 조선인데 임진왜란에 경신대기근,을병대기근으로 나라가 아작이 나는 바람에 그럴 역량이 없었죠. 당시 명후금 전쟁에서 후금이 명나라의 경제봉쇄로 파산 직전까지 갔는데 이괄의 난으로 최전방부터 중부까지 국방이 뚫려있던 조선에 직통으로 들어가서 물자 수급해서 버틸 수가 있었죠.
명나라가 조선에 물자를 약탈했던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또 그럴만한게 당시 명나라는 은본위제가 활성화 되었어서 병참이 민간 상인이나 농민에게 은을 내고 그만큼 물자를 사면 되는데, 조선은 그런 화폐수단이 발전되어 있지 않아서(조선에 화폐가 활성화된건 양 호란이후 대동법이 완전히 보급화된 조선 후기쯔음에 일입니다.) 입니다. 당시 명군은 조선 현지에서 물자보급을 위해 은을 챙겨갔었는데 조선은 그 은을 받아 쌀 같은 물자를 줄 수 없었죠. 왜냐? 조선에서 은같은 건 화폐를 잘 사용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당시 명군은 조선군의 묵인하에 민간에서 현지조달합니다. 물론 은 화폐를 조선군이나 조정에 주긴 했지만요 다만 당시 조선 민중들은 명군이 귀하디 귀한 쌀을 맘대로 가져간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 부녀자 겁탈 문제 같은건 호란시기 가도에서 진을 치고 있던 모문룡의 이야기가 와전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명나라는 당시 중국은 동북아의 가장 큰형님이 이었고 그 큰 국가의 정규군이었으니까요. 명나라도 유교 국가답게 큰 나라는 큰 나라 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의식이 충분히 있었기에 정규군은 상당히 군기가 잘 잡혀있었습니다.
11:36 만력제가 진짜로 아팠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 만력제의 무덤을 발굴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중국 현지에 있는 그것) 그래서 실제 만력제로 추정되는 시신과 껴묻거리들이 나와서, 그가 한쪽 다리가 짧다는 사실과 키가 164cm 정도였고 아편 중독자였다는 것까지는 알아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에 의해 이 모든 사료들이 모조리 불타 없어지는 바람에, 그 이상의 연구를 못 한다고 합니다. (물론 비슷한 시기에 발굴됐던 무령왕릉의 보존상태가 어땠는지를 생각하면, 홍위병이 아니었어도...) 보존처리를 위해 포르말린을 뿌렸다던가 여러 이유로 연구원들이 반동으로 몰리는 바람에 조사보고서도 나오지 않았다고... 썰에 따르면, 이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중국사학계에서 왕릉 발굴은 금기시되어 현재까지 뚜껑조차 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서안의 피라미드 또한 비슷한 이유로 개봉을 안 하고 있는데, 이게... 또... 음모론이랑 엮이는 바람에...)
임진왜란이 안 일어 났으면 명나라 무리해서 군대를 조선으로 안 보냈을 거고 그랬으면 청 태조 누르와치가 그렇게 크지 못했을 겁니다. 후금을 견제할 병력을 조선으로 파병보내 효과적으로 누르지 못한 게 나비효과를 불러 명나라 멸망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연이은 4대 암군의 재위도 영향을 미치지만요 ㅠㅠ 병자호란도 마찬가지 입니다. 인조가 정치를 잘해서 이괄의난을 방지 했다면 그 병력으로 홍타이지가 조선의 내정을 알고 쉽게 공격하지 못했을 겁니다. ㅠㅠ
이건 제가 알기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에야스를 원래 봉지 지역에서 호조 가문이 지배했던 곳으로 100만석 영지를 증가시켜 보내 버렸기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4대 동안 호조 가문의 지배를 받았던 영지를 안정화 시키는데 병력이 필요하며, 경제적으로도 근거를 다시 닦아야 한다....라는 굉장히 현실적인 핑계 꺼리가 있었음...그로 인해 병력 파견도 적게 그리고 굉장히 후반기에 느리게 했음....도요토미 입장에서는 자신 근처 봉지를 측근들에게 주기 위해서 그리고 이에야스를 최대한 멀리 보내기 위해서 한 것이라 조금 불만이 있어도 어쩔수 없었음..
이에야스가 에도전봉 핑계로 뺑끼쓴것도 있지만 당시 5대로가 우키타를 제외하곤 전부 예비군으로 편성된거 보면 그냥 장로들은 히데요시랑 같이 예비군화 되어있었다는게 정론이라고봄. 임진왜란당시 조선으로 진입한 선봉군들은 거의 2군에 가까웠음. 1군은 사실 조선점령하고 명나라 치러갈때 쓸려고 뒀다는 얘기도 있을정도니깐.
그당시때 상황을봐도 당연히 안정화와 경제적으로도 근거를 닦아야하는것은 중요하죠 상식적으로 2년동안 전쟁을 준비하는게 말이안됍니다 그것도 전국시대로 인해서 내부상황이 폐폐하고 경제도 암담한상황이죠 오히려 안정화와 경제가아닌 전쟁을 한다면 좋을게없죠 이에야스가 안정화와 경제를 위해서 병력이 필요할수도있죠 핑계라기보단 그당시 일본한테 필수적인 요소죠 오히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삽질거하게 한게 임진왜란임 2년동안 준비해봣자 승산이없죠
유교가 어떤 사람에 의해 변질 됐다고 하더라고요 능력 있는 간신이었는데 하튼 자기의 부패에 대해서 변명하느라 공자가 말했던 유교에 대해서 자신같은 부패한 권력가에게 유리하게 다시 해석했다고 하더라고요 능력은 뛰어났다고 하니 ㅋㅋ 분서갱유로 유학이 한번 망한 이후인데 하튼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유학이 진짜 공자가 말한게 아닐 수도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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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결과를 보면 세력의 판도는 순간의 판단과 운이 많이 작용 하는거 같아요. 이런걸 나중에 황제와 왕은 하늘이 내렸다는 말을 하는거겠죠.
간다형.. 어렸을때 역사배웠을때는 재미도없고 무슨내용인지도 모르고 그냥 시키니까 외우기만했는데.. 형이 진짜 잘 설명해주시고 그리고 역사에 색다른면을 보여주고 일께워주는거같아요. 저같은 사람들도 역사를 재밌게 설명해주시고 경각심을 심어주셔서 감사해요. 누군가에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세요
님 학교 쌤도 이렇게 수 있음 대신 역사 시간을 주 32회로 하거나 시험범위를 1/8로 해야함
어릴때는 사회역학을 잘 모르기 때문에 더 지겹지요
간다효님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는 이유는 어릴적 그 지겨운 역사수업이 기초가 됐기 때문이죠
@@watermellon3 국뽕이든 뭐든 들은게 있으니 소화가 되는거겠지요
생짜로 처음들으면 단어부터 생소해서 잠만오지 않을까요?
어릴때 어떻게 배웠든간에 들어놓은게 있으니 배우고자 하는 이는 나름의 정의를 찾는것일겁니다
@@watermellon3 그냥 발닦고 잠이나 자라 너같은 사람은 그게 답이다
이거 레알 ㅋㅋ 진심
옛날 전쟁사에서 외부세력 잘못 들여왔다가 나라 개판나는 사례가 많으니 여진 세력 거부한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에요.
과연 누르하치가 순수하게 조선을 지켜주고 싶지는 않았겠죠.
왜란 직전까지도 북방을 위협하던 게 여진인데 여진의 도움을 받으면 여진 병사들이 조선 내 도로, 도시 위치, 기타 사정들 다 알게 될테니 거절하는게 맞긴 함.
저거 순수한 의미로 도울려고 햇다는 이야기를 들음 , 이유 중 하나가 우리가 너네를 도움으로서 우리의 정통성을 니들이 뒤에서 밀어줘라 이런개념이었음 그래서 당시 파병할려는 지원병의 수가 5만명이었다고 함
병자호란때 쳐들어와서 절받고 돌아간건 도대체 뭐임?
@@sowhat5743조선이 숭명이라 후금을 인정안하니, 뒤털릴까봐 조선을 치긴 쳐야하긴 했음. 근데 병력도 없고, 돈도 없으니 빨리쳐서 항복시켜놓고, 조선에서 군자금 챙겨서 명나라 쳐들어가려고요.
당시 여진의 원군을 받지 않은 것은
타국의 병력이 원병이랍시고 아국의 영토로 들어왔다가 그 땅을 점령하는 경우도 역사에 많았기에
왜국만큼 적국이나 마찬가지인 여진의 군대를 받아들이는것에 반대를 하는 것이 당연했다고 봅니다
물론 명나라는 당연히 그렇지 않을거라는 정치적 결론이 있었기에 원병요청을 했던거구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랑 전쟁이 났는데 북한이 ‘ㅎㅇ? 우리가 니네 땅 가서 좀 도와줄까? ㅎㅎ ‘요런 느낌인가
누르하치가 파병 의사를 밝힌 것은 1592년 (임진왜란 초기), 1598년 (정유재란 초기)임. 게다가 누르하치의 여진은 조선과 원래부터 치고받는 적대적인 관계 였어서 안정적인 외교적 루트가 없었기에, 두 차례 모두 조공관계로 이어진 명나라를 통해서 건너 물어본거임.
또한 임진왜란 초기에 선조가 의주까지 빤스런했을때, 가토 기요마사는 함경도 두만강까지 진출했음. 그 곳에서 실제로 여진족 vs 일본군 전투가 벌어지기도 함. 함경도 접경지역은 이미 박살난 조선군의 방어는 물론, 누르하치의 통제력 또한 제대로 미치기 어려운 곳이었어서 여진에서의 침범도 빈번히 일어났음.
그나마 사정이 나았던 것은 의주가 위치한 평안도 접경지역은 그래도 대화를 하고자 하는 누르하치가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여진의 남침 방어를 위해서 소규모의 조선군을 상시 배치할 여력은 되었던 지역임.
그래서 나는 누르하치의 파병 의사는 다음 같이 생각할 수 있다고 봄.
1. 믿기지 않는 일본군의 진격속도를 보면, 조선이 곧 망할거 같고, 심지어 이미 함경도 북쪽에서는 일본군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어차피 곧 일본군과 싸울거, 조선군이 남아있을때 압록강 아래에서 미리 최대한 막아보자.
2. 혹시라도 조선이 붕괴하고 동시에 일본군도 붕괴된다면, 그 빈 자리는 우리가 명나라 공인받아서 은근 슬쩍 먹어버리자.
3. 조선이 방어에 성공한다고 쳐도, 재정비해서 다시 북방에 전력을 집중하기 전에, 남쪽 지형지물 및 조선군의 현황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습득하자.
4. 굳이 조선에 대한 적대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이번 기회에 조선, 명나라 등의 국제정치계에서 정당한 세력으로 인정받으면 여진족을 더 체계화되도록 통합하고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or 명나라가 출병하는 와중에, 조공세력으로서 약간의 협조성을 보여서, 명나라의 여진족에 대한 간섭을 줄여볼까?
5. 그냥 예의상 해본 소리야. 너네 어차피 거절할거잖아?
물론 조선 입장에서도 일본만 해도 머리 아픈데, 본인들이 보기엔 어벤져스 같이 느껴질 명군이 오는데 굳이 평소에 치고받고 싸우던 오랑캐를 데려오긴 싫었을듯
@@vecyl 글 잘쓰셨네요
@@vecyl 키엨 엉아 사학과야?
@@brackbran 정답.... 삼국지에 유비가 촉나라 돕는답시고 들어가서는 드리앉은거 생각하시면 됨...
30년간 일하지 않은 만력제도 기가 차지만 이 양반 시절에 명나라가 안 망한게 더 기막힘;; 오늘도 잘 봤습니다. 명절에도 수고 많으십니다. ^^
장...거정...?
시스템이 잡힌 무리는 한명으로 망하기 쉽지 않죠 이건 주변에 예시가 많죠 ㅋㅋㅋ 역사적으로 국가 망조는 보통 한명의 병크보단 병크가 계속되어서 들었어요
초반 기틀은 잘 마련했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굴러간 상태라...
ㄹㅇ 30년동안 쿠데타로 국가 전복 안된게 신기함 ㅋㅋ
당시 만력제가 놀고 있어도 밑에 대신들이 일처리 다 했죠 ㅎ 명나라가 작은 나라도 아니고 당시 엄청난 대국이었으니 황제 한명 논다고 망하진 않았죠 다만 임진왜란 때문에 국력이 심각하게 약해졌죠..
15:54 간다효 말대로 건주여진이 약해지거나 없어지고 이자성의 난이 명나라 군에 의해 짓밟혔으면 이후 역사 모를듯 ㅋㅋ
결국 임진왜란은 안 참전한 놈들이 제일 이득이었던 전쟁이었지
전쟁은 모두 패자다 이게 생각나네요
임진왜란 참전 안한 다이묘
도쿠가와,마에다
누르하치는 그 사이 후금 건국.
늦은댓글이지만 저당시 반대하던 장군들많긴햇음 일본에서 솔직히 통일한지 2년밖에 안됏는대 2년 아직 준비할게 한참남앗고 내부상황도씹창이엇음 2년동안 내부통합하고 전쟁준비할 시간이안돼있엇죠 무엇보다 오래됀전쟁으로 인해 전쟁에 질린사람도있고 무엇보다 준비가 덜돼다보니 반대한사람도많앗고 사야가 같은 친조파들도 많앗음 그냥 도요토미 히데요시 개억지부른 전쟁이라고 생각하시면돼요 무슨준비를 2년동안 합니까 내부부터 안정화가 안됏는대 너무 급하다보니 이거 승산이 있나라는 생각을 해본 장군이없엇죠 뻔한결과니깐 근대 까라면 까야죠 어쩔수있겟습니다 전쟁끝나면 노숙자돼는거고 공에 불키고 난리치는 것들도 있는대 그래서 결국엔 도쿠가와가 제이득이죠 전쟁보단 내부안정화를 우선으로 삼던양반이라 전쟁끝나고 조선이랑 쇼부좀봤던 사람이긴함
도쿠가와진영까지 같이 참전했다면 어우 쉣 진짜 명나라까지 갔을듯
1년전 꺼 갑자기 알고리즘 뜨느데 메기 체급차이 뭐임? ㅋㅋㅋ
이분 목소리가 ㄹㅇ 신기하네 ㅋㅋㅋ 쏙쏙들어오네요 귀에
만력제가 거의 조정에도 안나갔는데 희한하게 조선을 잘 도와줘서(심지어 왜란후 조선백성들 굶주린다고 식량도 제공) 고려천자로 불리고 있음
여기에 감동해서 병자호란때 명나라를 아버지로 섬기다가 나라 먹혔지
@@djfhdkfh 근데 이괄의난으로 북방군이 박살나서그런거 인조병신짓이긴한데 당시조선조정도 여진이 전쟁걸어올거느끼긴함 하지만 정치병신같이해서 이괄이 난일으킴
만력제 모시는 사당 문화대혁명때 다 부숴짐
하지만 한국에서 매년 제사지내주는곳이 있다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djfhdkfh지금 미국하고 똑같네 ㅋㅋ
@@djfhdkfh 사실 조선입장에선 그럴만했음
독보적인 사운드 .. 당신은 이미 빠져들고있다
2년전간다효는 무슨일이 있었길래 지금의 간다효가 나왔을까
명쾌 상쾌 통쾌한 명강의....
이런영상을 원했음. 최고임
각 강의 마다 재밌게
잘 듣고 있어요.
누루하치가 병력을 파병하면 조선을 그냥 쉽게 먹는 겁니다, 조선도 간절했었지만 원군지원을 거절한건 잘한 것임
일본에서 임진왜란은 "분록쿠노란" 이라고 합니다. 조선전쟁 쵸센센소 라는건 6.25전쟁을 말합니다.
분로쿠 케이쵸노 에키 라고 하죠
정유재란까지
6.25전에는 뭐라 불렀냐고
응 알써 친일파야 ~
2:00 왼팔(아케치 미츠히데)
3일이란 시간동안 각지의 유력 다이묘들에게 서신을 보내며 원군요청을
하는데 하필 그 서신을 히데요시 진영에... 모리랑 급하게 화의를 맺고
말머릴 돌림ㅋㅋ
왼팔이라 하시지만
오다의 오른팔은 시바타 카츠이에
왼팔이 도요토미 히데요시
아케치 미츠히데는 굴러들어온 애
1:31 지도에 오다 노부나가가 2개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수비에 성공한 전쟁은 맞았아요. 이순신이 활약함으로써 수륙병진이 막히면서 왜군이 평양이상으로 밀고가기 어려운 상태였죠. 군량도 군량이지만 군수품도 다수 물길로 날라올려야 되는데 그걸 막은게 컸어요. 이걸 국뽕역사라고 하시는데 냉정하게 보면 이긴 전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바닷길을 막아서 완전히 조선이 멸망하는 걸 막은 전쟁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본디 전쟁이란게 다른 나라 도움받고 그런게 우리나라만 있었던게 아닙니다. 2차대전때 소련도 독일의 침공에 산업시설이 제대로 돌리지 못했는데 미국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영국은 거의 미국아니면 무너졌을 판이였죠. 동맹의 도움을 받는건 부끄러운게 아니라 외교의 승리입니다.
정신승리 ㅋㅋ
네 다음 정신승리
메기 마른 거 보소 ㅋㅋ
간다효님이 저렇게 슬림했었다고요? ㄷㄷ 2년동안 무슨 일이?
오다 노부나가는 자기 부하를 '대머리'라고 놀려서 죽었다는게 정설.
왠만한 국사쌤보다 국사를 존나 재밌게 가르치네 ㅋㅋㅋㅋ
이거 학교에서 틀어줌 ㄷㄷㄷㄷㄷㄷㄷ
학부모한테 연락오겠네 ㅋㅋㅋㅋ
반에서 씨부레 누구누구뒈지고~ 재생될꺼 생각하니깐 개웃기네ㅋㅋ
그래도 그선생이 훌륭한네 나는 역사를 간다효랑 토전사에서 다배웠다
선생님 최고시네
@@레오카피토전사가 뭔가요? 유트버? 추천좀
사실 몽골은 명나라에의해 북으로 쫓겨간뒤 우리역사에선 존재감이 없는데 여전히 강력한 세력이네요. 거기다 왜군까지 막아야하는 명나라조정의 고민이 지도에서도 느켜집니다.
아주 재미있었어요..
재미있는 가정이에요 원군을 받았다면 어쩌면 청나라가 더 늦게 힘을 가졌거나 다른나라가 중국을 통일했을지도 모르지만, 여진이 조선에게 당당하게 요구하는게 많아졌을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가정 하나 더 하자면 조선의 상태만 괜찮았어도 청은 없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명나라가 북원과 씨게 대치하느라 여진에 신경을 못쓸 때 여진 두들겨 패서 억제하던 게 조선인데
임진왜란에 경신대기근,을병대기근으로 나라가 아작이 나는 바람에 그럴 역량이 없었죠.
당시 명후금 전쟁에서 후금이 명나라의 경제봉쇄로 파산 직전까지 갔는데
이괄의 난으로 최전방부터 중부까지 국방이 뚫려있던 조선에 직통으로 들어가서 물자 수급해서 버틸 수가 있었죠.
정말 개 재미있네 이 영상!!! ㅋㅋ
조선전쟁은 6.25
임진왜란의 일본 공식 명칭은 문록, 경장의 역
文慶之役분케이노에키
후금이 도와주고 죽으면
조선 위쪽 땅 달라고 했을 수도 있겠네요
ㅎㅎ 저는 얼마전에 太行山다녀왔어요. 한국에선 볼수 없는 웅장함이 있었습니다.
발해 멸망이유도 올려주시면안되나여 ㅜ
여진한테 도움 청했다면 도와준답시고 내려와서는 일본이랑 짬짜미해서 반반 나눠먹었을 듯.
나라도 그랬을테니까
간다효님은 수염 밀었을때가 깔끔하고 잘생겼어요~
수염 있으면 무슨 산적 같은 느낌이에요 ㅋㅋㅋ
우리 효두목님
이때만해도 말랐네요 ㅎㅎ
벌쳐 컨트롤 못참지 ㅋㅋㅋㅋ
간다효 실시간방송은 어디서 보는건가요?
기타노 다케시가 목 이라는 영화로 곧 일본에서 개봉… 내년엔 한국에서 볼수있을듯
전쟁에 패배했거나 이긴 후에 죽임을 당했거나 말이죠... 재미있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죠. 정말 하찮은 인간들은 뭐죠? 그건 평생 다툼 조차 없이 성장한 남자 입니다. 아주 우울한 모습이죠.
누르하치도 거절할거 대충예상하고 호의적으로 보여서 적개심없앨라고 찔러본 말이겠지
그런게 있었군요. 그동안 연구가 많이 되었나봐요.
근데 궁금한게 있는데요. 누르하치가 도와준다고 와서 조선을 먹을수도 있는거 아닌가요?
그것 때문에 아마 조선쪽에서 누르하치의 도움 거절 했을 듯. 세종 때 부터 싸워 왔는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거절한게 잘한거에요 여진족은 명나라보다 더 ㅜㅜㅜ
내일이 설날인데 올려주시는 센스와 재밌어지려하는데 여기까지 ㅋㅋㅋㅋ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ㅎㅎ
통일하고 나서 이제 쓸모없어진 병력을 소진해야 하다보니 명나라까진 힘들어도 조선정도는 먹어도 되겠구나 했었는데 이순신한테 개털릴줄은 몰랐던거지. 이때 본토까지 탈탈 털렸어야 진주만 털 생각을 못했을텐데.....
명나라 침공하려는건 팩트임 조선은 덤정도로 생각하고...
당시 조선은 왜란에 의해 완전히 국토가 황폐화되고 인구가 급감한 상황인지라 그 국력으로는 역공은 커녕, 일본의 정치상황을 알지못하는 한동안, 또다시 일본이 재침할까봐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명나라 또한 조선에 파병을 오면서 수 많은 부녀자를 겁탈하고 물자를 약탈 하고 하지 않았나.. 이런점을 보면.. 국방력 오지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
남성 복무기간 7년으로 늘려야죠.
@@carbidecarbide7126 현재 일년에 13만명의 남자가 태어나고있는데, 그들을 전부 군대보내도 모자랍니다. 여자도 군대 가던가 다른 방법이 있어야합니다.
명나라가 조선에 물자를 약탈했던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또 그럴만한게 당시 명나라는 은본위제가 활성화 되었어서 병참이 민간 상인이나 농민에게 은을 내고 그만큼 물자를 사면 되는데, 조선은 그런 화폐수단이 발전되어 있지 않아서(조선에 화폐가 활성화된건 양 호란이후 대동법이 완전히 보급화된 조선 후기쯔음에 일입니다.) 입니다. 당시 명군은 조선 현지에서 물자보급을 위해 은을 챙겨갔었는데 조선은 그 은을 받아 쌀 같은 물자를 줄 수 없었죠. 왜냐? 조선에서 은같은 건 화폐를 잘 사용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당시 명군은 조선군의 묵인하에 민간에서 현지조달합니다. 물론 은 화폐를 조선군이나 조정에 주긴 했지만요 다만 당시 조선 민중들은 명군이 귀하디 귀한 쌀을 맘대로 가져간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 부녀자 겁탈 문제 같은건 호란시기 가도에서 진을 치고 있던 모문룡의 이야기가 와전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명나라는 당시 중국은 동북아의 가장 큰형님이 이었고 그 큰 국가의 정규군이었으니까요. 명나라도 유교 국가답게 큰 나라는 큰 나라 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의식이 충분히 있었기에 정규군은 상당히 군기가 잘 잡혀있었습니다.
625 전쟁 때 들어온 미군들도 부녀자 겁탈 많이 했죠
@@김토티-p2m 북괴가 겁탈했지 미군들은 일본가서 사먹음
도요토미가 타이밍 잘잡기도했네요
예전에 일본 역사 뱅송 했던거 플레이리스트 ㄱ삭제 됐나요? 아무리 찾아봐도 없네요. 다시 보기 정주행 할라구 트찾아봤는디ㅠ
진짜 이때까지만 해도 잘생겼었는데 어쩌다가 돼지메기가ㅋㅋㅋㅋ
ㄹㅇㅋㅋ
숭명으로 받들어어야지..논공행상을 덮을수 있고.. 덮어야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견고히 할 수 있죠.. 양반들의 신분유지의 목적이 숨어있습니다
11:36 만력제가 진짜로 아팠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 만력제의 무덤을 발굴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중국 현지에 있는 그것)
그래서 실제 만력제로 추정되는 시신과 껴묻거리들이 나와서, 그가 한쪽 다리가 짧다는 사실과 키가 164cm 정도였고 아편 중독자였다는 것까지는 알아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에 의해 이 모든 사료들이 모조리 불타 없어지는 바람에, 그 이상의 연구를 못 한다고 합니다.
(물론 비슷한 시기에 발굴됐던 무령왕릉의 보존상태가 어땠는지를 생각하면, 홍위병이 아니었어도...)
보존처리를 위해 포르말린을 뿌렸다던가 여러 이유로 연구원들이 반동으로 몰리는 바람에 조사보고서도 나오지 않았다고...
썰에 따르면, 이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중국사학계에서 왕릉 발굴은 금기시되어 현재까지 뚜껑조차 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서안의 피라미드 또한 비슷한 이유로 개봉을 안 하고 있는데, 이게... 또... 음모론이랑 엮이는 바람에...)
꿀잼! 효만세!
지금도 비슷한듯
6:10 ㄹㅇ...
그나마 누르하치랑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자라 해야하나 ㅋㅋ
이에야스에겐 첩실이 많았고
그 사이에 태어난 사내,여자아이들을
각 다이묘들에게 시집,장가 보내고
오죽하면 "결혼동맹"하지 말라고
경고 했으나 이미 거미줄처럼 촘촘하게ㄷㄷ
이에야스는 남의 가문에 인질로 시작해서 천하통일까지 했죠. 인내심의 상징
메기형 존잘이네 지금은 왜 진짜 메기가 되어버린거지..
얼굴 처음보네요. 성우나 변사신가요. 목소리 낭랑하면서도 감칠맛있어요.
면도하니까 시원하다
여진을 받아들이고 청 건국이 없었다면...요거 시나리오 좋네요
임진왜란이 안 일어 났으면 명나라 무리해서 군대를 조선으로 안 보냈을 거고 그랬으면 청 태조 누르와치가 그렇게 크지 못했을 겁니다. 후금을 견제할 병력을 조선으로 파병보내 효과적으로 누르지 못한 게 나비효과를 불러 명나라 멸망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연이은 4대 암군의 재위도 영향을 미치지만요 ㅠㅠ
병자호란도 마찬가지 입니다. 인조가 정치를 잘해서 이괄의난을 방지 했다면 그 병력으로 홍타이지가 조선의 내정을 알고 쉽게 공격하지 못했을 겁니다. ㅠㅠ
우에스키 겐신은... 영화로나와도 꽤 잘나옴 ㅋㅋㅋ
간다효님 이것 저것 간보다 결국 역시 역사 콘텐츠로 다시 돌아간 느낌 ? 간다효님이 역사와 현재 돌아가는 세계 흐름만 잘 섞으면 굳이 역사에만 멈춰있지 않아도 됨:)
역사를 참 잼나게 보네요^^~
이건 제가 알기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에야스를 원래 봉지 지역에서 호조 가문이 지배했던 곳으로 100만석 영지를 증가시켜 보내 버렸기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4대 동안 호조 가문의 지배를 받았던 영지를 안정화 시키는데 병력이 필요하며, 경제적으로도 근거를 다시 닦아야 한다....라는 굉장히 현실적인 핑계 꺼리가 있었음...그로 인해 병력 파견도 적게 그리고 굉장히 후반기에 느리게 했음....도요토미 입장에서는 자신 근처 봉지를 측근들에게 주기 위해서 그리고 이에야스를 최대한 멀리 보내기 위해서 한 것이라 조금 불만이 있어도 어쩔수 없었음..
ㅇㅇ
간다효가 생각보다 디테일하게 알고있지는 않음.
특히 일본사는 백치에 가까운듯.
이에야스가 에도전봉 핑계로 뺑끼쓴것도 있지만 당시 5대로가 우키타를 제외하곤 전부 예비군으로 편성된거 보면 그냥 장로들은 히데요시랑 같이 예비군화 되어있었다는게 정론이라고봄. 임진왜란당시 조선으로 진입한 선봉군들은 거의 2군에 가까웠음. 1군은 사실 조선점령하고 명나라 치러갈때 쓸려고 뒀다는 얘기도 있을정도니깐.
그당시때 상황을봐도 당연히 안정화와 경제적으로도 근거를 닦아야하는것은 중요하죠 상식적으로 2년동안 전쟁을 준비하는게 말이안됍니다 그것도 전국시대로 인해서 내부상황이 폐폐하고 경제도 암담한상황이죠 오히려 안정화와 경제가아닌 전쟁을 한다면 좋을게없죠 이에야스가 안정화와 경제를 위해서 병력이 필요할수도있죠 핑계라기보단 그당시 일본한테 필수적인 요소죠 오히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삽질거하게 한게 임진왜란임 2년동안 준비해봣자 승산이없죠
동북아 지도를 보면 과거 고구려인들은 여진 지역에 흡수됐을까, 명 지역에 흡수됐을까
콘텐츠가 부족하다 느낄정도로 너무 재밌게 보고있어요 감사합니다
이 아저씨 효기심 아저씨네 ㅋㅋ
목소리 졸라 특이함
와씨 우리메기 2년전 보니 왜케 핸썸하냐
1:35 오다 노부나가 열도 전국지도에 두군데 명기되었네요 부채표 오다 와 무궁화표 오다 저건 같은이름 다른 조직인건가요 단순 표기 실수인가요?
누르아치가 조선을 도와주겠다고 북쪽을 열어달라한건 북쪽 지역을 먹을 생각이 더 컷을것이고 전쟁 후 지원해준다해놓고 나라를 통채로 먹었을지도 몰랐음 아무래도 그 이유로 받아주진 않았을거임
2024년 왜 얼굴이 그렇게 바뀐겨??
임진왜란 직전이 누르하치가 크기전에 명&조선 합작으로 눌러놓을수있는 마지막기회였는데 저 타이밍에 일본이 기가막히게 축을 흔들고들어와서 누르하치를 막을수 없는몸이 되어버렷..♡♡♡
ㅋㅋㅋㅋㅋ 누루하치가 정말 도와줄마음에 했을까요
임진왜란 참전하는 다이묘들중 대부분은 중소 다이묘였고 100만석 이상의 다이묘들은 전쟁반대를 외쳤죠
우에스기 카게카츠,마에다 토시이에,도쿠가와 이에야스 셋이서
전쟁중단을 외쳤으나 쌩깐ㄷㄷ
내부가 혼란스러우니 외부로 적을 돌릴 수 밖에
@@whisperer1705 내부가 혼란스럽진 않았고
중소 다이묘들에게 떼어줄 땅이 없어서ㅋㅋ
임진왜란 선두에 섰던 다이묘들 100만석 이하ㄷㄷ
@@德川家康-p7o 막 전쟁이 끝났는데 아직 전쟁기계가(직업 사무라이들) 할일 없이 전국에 널렸는데 이럴때 평화시대를 유지하려해도 할줄아는건 쌈박질밖에 없는 애들이라 개빡셈. 그래서 애들도 줄이고 외부로 시선돌리려고 전쟁건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반도 정벌을 계획한건 통일시대에 남아도는 군사력을 외부로 돌리려고 했다는게 가장 유력한 설이죠.
최고다 굿
권력으로 읽는 세계사.....투!!!!!! 이건 재밌을지도 몰라!!!!
5:59 수정 건의 드립니다. 일본에서는 조선전쟁이라기 보다는 "분로쿠의 역(文禄の役)"이라고 하면서 조선을 정벌한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유교가 어떤 사람에 의해 변질 됐다고 하더라고요 능력 있는 간신이었는데 하튼 자기의 부패에 대해서 변명하느라 공자가 말했던 유교에 대해서 자신같은 부패한 권력가에게 유리하게 다시 해석했다고 하더라고요 능력은 뛰어났다고 하니 ㅋㅋ 분서갱유로 유학이 한번 망한 이후인데 하튼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유학이 진짜 공자가 말한게 아닐 수도 있다고 하네요
보통 사람들 머리에 박혀있는 유교의 이미지하고는 매우 다르죠. 그래서 배울 때 시기별로 나눠서 배웁니다. 교수님께서 동중서를 욕하던게 생각이 나네요
@@연비-w7l 아하
공자 유학 맹자 유학 동중서 유학 성리학(주자 유학) 양명학(왕명석 유학) 다 다른걸로 알고있습니다. 명나라때의 양명학은 조선 성리학에서 배척 당했고요.
@@heesongkoh 도구는 문제가 아니다
결국 필요에따라 정치적 도구로 쓰였다고 볼수있죠. 시대정치적 상황에 따라 포인트가 달랐던 거죠. 임금은 임금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이상적인 행위를 다함으로써조화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데
마타자에몬이 더 살아있었더라면
도쿠가와도 힘을 못썼을수도 있지
와 메기 반쪽이었네
개인적으로 히데요시가 전쟁 잘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햄버거 아들이야머야.이빨잘터네.
후금 되는게 꿀잼이고
후금 되서 명나라 먹는건 간단한데
임진왜란 승자는 도쿠가와임
히데요시가 대단하긴 한게
가신이라고 하지만 진짜 그냥 하인이였습니다.
장수도 관리도 아니였지요 처음에는
그냥 말 관리하고 잔심부름 하던ㅜ.ㅜ
머리는 좋았지요
잘생겼내요' 해박하고 오랜세월 같이해 주시면 됩니다.
너무 짧았네요 ㅠㅠ 다음편 기다립니다 🙏
1초 일본 전국시대 지도 우측에 호조 우지마사랑 아시나 모리우지 사이에 오다 노부나가로 되어있는데 당시 히타치국(지금의 미토)은 사타케 가문 영지였습니다. 저 때면 영주는 아마도 사타케 요시노부거나 그의 부친이지 싶네요.
이 형 1년전에는 젊었네?
여진에서 도와주려했다는건 좀 참신한 정보네요 근데 사이가 안좋았는데 진짜 도와주려 한건지 이 기세를 몰아서 한반도 일부라도 먹을계획을 했던건 아닌지 궁금하네요 아마 후자가 맞을것같지만요
해당 시기 광해군의 중립외교도 한번 다뤄주세요!
조선이 사농공상에서 상업과 공업을 최고의 가치로 두었으면 역사는 바뀌었을까...
도쿠가와가 참전을 안했는데도 20만을 원정 ㄷㄷㄷㄷ
호조 정벌하는데 20만 넘게 동원...
조선전쟁은 일본에서 6 25전쟁을 칭하는 말이고, 분로쿠의 역/게이초의 역으로 부릅니다-
판례요약: 일반사면에 의하여 형의 선고의 효력이 상실된 때에는 그 범죄는 누범의 전과가 될 수없기 때문에 누범가중을 할수 없습니다. (65도
910)
임진왜란 때는 북원이 이미 없어지고도
남지 않았나요
참 안타까운게 저 위 지도 보면 저렇게 원나가가 큰데 요동을 왜 못 빼었나?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는 국력이잇지 안앗나 ??
이때는 마른 메기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