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부자_ 노블레스 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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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26 сер 2024
  • 경주 최부자는 12대 300년 동안 만석의 재산을 지켰고
    9대 진사를 배출하며 가난한 이웃을 도우면서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바른 부자이다.
    경주 교동에 있는 최부자 고택은 조선 중기 최씨 집안이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에서 교동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1779년 경에 건립 되었다.
    원래는 99칸 이었으며 문간채, 사랑채, 안채, 사당,
    곳간으로 구성 되었다.
    경주시 현곡면 하구리에서 태어난 최진립은
    3살때부터 외가인 내남면 이조리에서 살았다.
    이조리에는 최진립이 어려서부터 성장하며 생활하던
    집인 충의당과 굶주린 사람들을 구휼하던 활인당,
    최진립을 기리기 위한 동상 등이 있다.
    1대 최진립(1568~1636)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나라를 지켰다.
    3대 최국선(1631~1682) 때는 벼농사에 이앙법을
    도입하여 부자가 되었다.
    12대 최준(1884~1970)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해방 후에는 교육사업에 전재산을 사용해서
    마지막까지 종가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였다.
    ♣ 6훈 (여섯가지 행동지침)
    1.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하지 마라
    2. 재산을 만석 이상 모으지 마라
    3.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4.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5. 사방 백리 안에 굶는 사람 없게 하라
    6. 시집 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
    ♣ 6연 (여섯가지 마음자세)
    1. 혼자 있을 때는 평온하게 (자처초연: 自處超然)
    2. 사람을 대할 때는 따뜻하게 (대인애연: 對人靄然)
    3. 일이 없을면 마음을 깨끗하게 (무사징연: 無事澄然)
    4. 일이 생기면 과감하게 (유사감연: 有事敢然)
    5. 뜻을 이뤄도 담담하게 (득의담연: 得意淡然)
    6. 실패해도 태연하게 (실의태연: 失意泰然)
    ♣ 노블레스 오블리주
    프랑스어로 귀족의 의무 란 뜻.
    가진자(부,권력) 및 지도층의 사회적 책임이나 의무.
    ♣ 최부자집은 다음과 같이 선조의 호를 편액에 적용하여
    부자이지만 겸손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1. 용암고택(龍庵古宅) : 용의 정기가 스며드는 집
    2. 대우헌(大愚軒) : 크게 어리석다 는 뜻
    사리사욕을 따지지 않는 공적인 헌신을 강조한 말.
    스스로 어리석음을 자처함으로써 상대방의 경계심을 없애라.
    3. 둔차(鈍次) : 둔한 2등.
    1등만 강조하는 현대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문구다.
    어리석은듯 버금감. 남보다 잘났다고 나서기 보다는
    중용지도(中庸之道) 를 실천해야 함을 강조한다.
    ♣ 최부잣집 쌀통 이야기
    경주 최부잣집은 가훈에도 있듯이 과객을 후하게
    대접 했다.
    그러다보니 최부잣집 사랑채는 항상 손님들이 너무
    많아서 집근처 하인집에 머물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때 최부잣집의 작은 쌀통에서 쌀을 한 줌 집어 들고
    하인집으로 가면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했다.
    쌀통은 나무상자로 위쪽에 둥근 구멍이 뚫려 있는데
    손님들이 욕심을 부려 두 손을 넣어 쌀을 많이 움켜쥐면
    손이 빠지지 않아 적당량을 집을 수 밖에 없다.
    쌀을 쥐어 빼내는 것은 한 번만 허용되었다.
    ♣ 최부자집의 현재 소유는 영남대학교 이다.
    마지막 최부자인 최준이 1947년 대구대학을 설립하였고,
    1967년 청구대학과 합병하여
    지금의 영남대학교가 되었다.
    ♣ 충의당
    내남면 이조리에 있으며 최진립이 어려서부터 살던 집의
    사랑채 명칭.
    ♣ 용산서원
    내남면 이조리에 있으며 졍무공 최진립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지낸다.
    서원 입구에 최진립 신도비가 있는데 귀부(거북받침돌)와
    이수(머릿돌)의 조각형상이 화려하다.
    서원은 전학후묘 구조로 누각인 청풍루, 강학공간인
    민고당, 내삼문을 지나 제향공간인 숭렬사우가 있다.
    외삼문과 동재, 서재는 복원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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