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 정확힌 안중생도 본인의 딱한 사정에 있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나라 그리고 아버지의 결의 희생을 짓밟고 그런행동을 한것으로 전 안중생님이 억울 하시긴 하겠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변명거리?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에 이름에 막칠한것이죠 그리고 이미 독립 운동사분들 유관순 열사 그런분들도 목숨을 연장 할수 있었지만 자신의 먼 후손들이 이 나라에서 떳떳하고 자신있게 살수있게 그 어린 나이에도 저의를 위해 희생하기도 하였죠 그리 많은 독립운동가가 희생 했습니다 하지만 안중생은 그걸 짓밟았죠 그리고 과연 안중근의 어머니는 과연 안중생이 저러는 것을 바랬을까요? 당연히 자신이 자식이 죽는걸 아무도 원치 않치만 자신의 아들 안중근도 떳떳하게 이미 넌 나라를 지키고 책무를 다했으니 맘 편하게 죽으라 라고 하신거처럼 안중근의 아들 안중생이 저런짓을 하는걸 원치 않으셨을겁니다 그러므로 저는 안중생은 아버지 안중근의 의무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의 의무를 짓밟은 희대에 친일파라고 전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안중생은 실제로는 되게 착하고 소심했었다고 알려져 있죠 안중근은 나라의 영웅임이 틀림 없지만 그 당시 그의 아들로 살아가기란 매우 힘들었을겁니다 그래서 안중생이 나중에 이런 글을 썼었습니다 ”아버지는 나의 조국에는 영웅이었지만 가족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조국에는 배신자일지 몰라도 내 가족에게는 영웅이었다“ 그 누구도 솔직히 안중생입장이 되었더라면 돌을 던지긴 힘들겁니다..
안준생 욕하지마라~!!! 안중근 의사님의 공로만 앞세우고 이용한 야비한 놈들. 그 가족들은 돌보지도 않은 것들이....ㅠㅠ 한반도 침략의 원흉 이토우히로부미를 살해하고 33세에 사형 당하셨던 안중근 의사님. 일본인 간수가 사과하고 평생 집안에서 재를 올려드렸다 할 정도로 인격이 높으셨던 분.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 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 一賤則賤 )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조선왕조는 동족을 노예로 부린 유례를 찾기힘든 국가였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과 백성들이 오히려 왜군을 환영하니 근심이다라는 기록이있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400년을 더 노예로 고통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천하에 어찌 이처럼 가난한 나라[조선]가 있겠는가. 흡사 여염의 궁핍한 집과 같아 하나의 진보(鎭堡)를 경영하기도 이처럼 쉽지 않다. 내가 보건대 전조[고려]에는 매우 부유하였는데 우리 나라는 어째서 이처럼 가난한 지 알 수가 없다." 『선조실록 38년 9월 28일 기해 』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 BC100년경 ~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던 일본에 한국인들이 철기 무기를 들고 상륙하면서 일본에 고대문명이 시작됐다. 일본역사는 곧 가야백제의 역사고 한민족의 역사이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조선에 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니이가타산 쌀을 조선으로 수탈해가기도해서 이에대해 당시 일본인들의 불만이 많았다. 조선600년간 인구증가없이 천만명 수준을 유지하던 인구가 일제시대때 2배로 증가할정도로 조선인들의 삶은 풍족해졌다. "식민지 기간 동안 조선의 인구는 1,260만 여명이 증가하였는데 그 중 약 69%인 870 만여 명이 한반도 안에 있고 31%가 만주와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조선인 탄광 노동자 임금은 일본 순사보다 3.7배 많았다”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만주지역에 살던 조선인들은 이들을 마적단이라고 부름)은 중국공산당 산하의 빨치산 세력인 동북항일연군이었다. 한국 독립군과 중국 호로군의 연합체로서 이들중 상당수 한국인은 중국 국적을 취득한 공산주의자들이었으며 이들 중국공산당과 연합한 광복군은 339명 이었다. 반면에 2차대전 말기 조선인 일본군 지원자는 80만 명이 넘었고, 입대 경쟁률이 62:1을 넘었다.당시 조선인들의 일본에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 알수있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은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매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것이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것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부정하는 이유는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이렇게 과정이 되기까지 김구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 습니다 김구는 국내에서 일본에 쫒기면서 안중근아버님에게 찾아가 도움을 요청 한적이 있습니다 안중근 아버님은 김구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서로 그런 인연으로 중국 상해로 가게됀 계기였습니다 그런데 김구는 상해임시정부을 옮기면서 자기 식솔들은 다챙기면서 안중근 식솔들은 그냥 상해에 내팽게치고 떠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김구는 그런소리 하면 안돼죠
원래 상해에서 안중근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는데 일제 감시가 심해지고 도피생활을 이어가느라 더 이상 신경 쓸 수가 없었음. 참고로 안중근의 가족들이 유독 심한 감시를 받았기 때문에 비밀을 최대한 지켜야 하는 임시정부 입장에서는 신경 안쓰는 듯 써야 하는 입장이였는데 일제 타겟이 임시정부가 되니까 도움을 더 이상 줄 수가 없었던 거임. 물론 안중근 같은 국가영웅과 그의 가족을 대우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김구와 임시정부 코가 석자였음. 목숨 내놓고 지켜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말씀 (내부에도 밀정이 그렇게 많았는데 외부요인으로 더 위험에 빠질 수 없는 처지임) 안중근 아들의 인생을 비난할 수 없고 임시정부도 비난할 수 없음. 폭풍 앞에서 자신들을 지킬 힘도 없이 제국주의에 심취해 있는 일제의 피해자들임. 칼에 찔리는 사람을 봤는데 도와줄 수도 있지만 도와주다가 자신이 찔리면 내 가족들은 굶어죽는 다고 생각한다면 도망갈 수도 있는 것임. 그걸 보고 욕하는 것은 좀...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 잘못된 해석인듯.
@@호연-j9s 김구는 가족들도 돌보지 못했습니다. 김구의 가족들은 일찍히 감시를 받았고 부인은 감시 때문에 병원도 못가고 1924년 일찍 죽습니다. 딸들도 일찍히 옥중에 죽고 아들 두명도 한 명은 독립운동 하다가 광복 전에 죽고 작은 아들이 그나마 목숨을 부지해서 살아남았습니다. 안준생이 변절한 시기는 일제 막바지인 1939년 쯤인데 김구 가족들은 그 전에 이미 찢어졌습니다. 홍커우 의건 전까지 즉 1932까지 안준생과 가족들을 챙겨줬습니다. 김구가 자기 식솔만 챙겼다? 겨우 챙긴 사람은 작은 아들입니다. 옥살이 할때 어머니가 뒷바라지 하고 그때 딸들도 죽고 아내도 못챙겨 떠나보내고 아들들이랑은 단란한 시기가 거의 없고 큰아들은 먼저 세상을 떠나고. 김구 본인보다 오래 산 작은 아들을 챙겼다고 한다면 챙긴 것인데 안준생을 챙기지 못하는데 괘씸하게 자기 가족들만? 그건 좀 잘못된 정보인듯 합니다. 김구가 안준생을 비판한 이유는 자기 자신은 가족과 생이별을 해도 끝까지 변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 안중근이라는 훌륭한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정신을 잇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4살짜리 아이가 목숨의 위협을 받고 쫒겨 도망가는데, 아버지는 없고, 도망치고 먹고 사는데 정신없는데, 어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을 것이며, 아무리 주변에서 아버지가 대단했다 부르짖어도 와닿지 않고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 조국에 대한 마음도 썩 좋지 않았을 것 같네요...
@좁불 진짜 우리랑 사고방식이 다른가..? 아니 당신이었으면 4살때 아버지 돌아가시고 안그래도 가난했던 시기에 독립운동가 가족 + 어머니 혼자 일하셔서 가정을 부양했던건데 얼마나 힘들었을지 예상이 안감? 나도 저상황이었다면 그랬을거같고 백에 구십은 그럴것같은데우리가 저 분을 비난하진 못할것같은데..?
제일 욕먹어야 하는건 김구 아닌가요? 안준생은 안중근의 아들입니다. 안중근은 독립운동을 했지요 그런데 안중근이 돌아가고 그의 아들 안준생에게 손을 내밀었나요? 지원을 해줬나요?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럴때에 안준생은 어떻게든 살아남을려고 자기 가족 지키겠다고 일본에 붙은겁니다. 뭐라도 지원을 했다면 적어도 일본에 붙어서 사과하는 일은 없었을겁니다. 그럼에도 자기 잘못은 단 하나도 모르면서 히로부미 아들한테 사과했다고 안준생을 죽일려고 한다? 저는 절대 안준생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일 큰 잘못을 저지른건 다름아닌 김구 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 죽음의 두려움에 빠진 안중생의 행동을 평화롭게 사는 우리가 친일파라고 손가락질하지만, 지금 우리가 저 상황에서 친일파라고 안불릴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진짜 손에 꼽을 만큼 적을 듯. 그만큼 안중근은 용기와 집념이 굉장히 강했던 사람이었다는거. 안중생은 그냥 우리같은 평범한 사고방식을 가진 한낱 소시민이지 않았을까.
@@참치마요-l8v 과측이 아닌 이유 이토암살은 실제 안중근의 업적이자 잘못된 암살이였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암살인물 또한 오히려 암살을 진행하면 반도의 민족들이 힘들 것이라는 것도 알고 했어야 했지만 그는 몰라고 심지어 암살 후 일본은 조선을 병합을 해야되 말아야되에서 무조건 해야해로 바뀌었습니다.
@@정희원-j7i @정희원 경슬국치는 시간문제였지 이토 히로부미가 있었다고 해서 아예 병합이 되지 않았을 거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다들 병합을 말하는 과정에서 이토 히로부미만 반대한건 맞지만... 결국 2차세계대전이 시작했을때쯤엔 급해진 일본이 병합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Susu_usuS 저는 다릅니다. 애초에 그당시 한일병합을 강경파가 강하게 주장하고 그걸 실핼하기 위해서 이토를 만두쪽으로 좌천을 시킨상황이였고 그게 하얼빈에서 암살당하게 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더 정확히는 이전부터 강하게 주장하던 강경파들도 이토의 의견과 이토가 온건파로 존재했기에 강경파들 조차 온건파로 이토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토의 신념을 따라갔다는 것만 보더라도 이토만 살아있어도 최소 5년은 합병될 일은 없어습니다. 조선에서의 입김은 줄어들지언정 일본에서의 그의 위치는 우리나라 기준 세종대왕이기 때문에 그의 의견에 반대라지 않았을 겁니다.
실제로 안중근이 돌아가시고 나서 남은 가족들은 엄청난 불안과 괴롭힘과 쫒김과 하루하루 고통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나라를 살리셨고.. 아들은 가족을 살릴려고..어떻게든 살려고 했던 겁니다.. 그 누구도 아들은 비판하고 욕할 자격이 없어요.. 이글을 쓰면서도 눈물이마도 먹먹 합니다..
@@Im_sensei_in_kivotos 其ノ一 첫 번째 一イチ、私ワタクシ共ドモハ大ダイ日ニツ本ポン帝テイ國コクノ臣シン民ミンデアリマス。 하나, 우리는 대일본 제국의 신민입니다. 二ニ、私ワタクシ共ドモハ心コヽロヲ合アハセテ天テン皇ヌワウ陛ヘイ下カニ忠チユウ義ギヲ盡ツクシマス。 둘, 우리는 마음을 합하여 천황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 三サム、私ワタクシ共ドモハ忍ニン苦ク鍛タン鍊レンシテ立リツ派パナ强ツヨイ國コク民ミントナリマス。 셋, 우리는 인고 단련하여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其ノ二 두 번째 一イチ、我ワレ等ラハ皇クワウ國コク臣シン民ミンナリ忠チユウ誠セイ以モツテ君クン國コクニ報ホウゼム。 하나, 우리는 황국신민이니 충성으로써 군국에 보답하리라. 二ニ、我ワレ等ラ皇クワウ國コク臣シン民ミンハ互タガヒニ信シン愛アイ協ケフ力リヨクシ以モツテ團ダン結ケツヲ固カタクセム。 둘, 우리 황국신민은 서로 신애협력함으로써 단결을 굳게 하리라. 三サム、我ワレ等ラ皇クワウ國コク臣シン民ミンハ忍ニン苦ク鍛タン鍊レン、力チカラヲ養ヤシナヒ以モツテ皇クワウ道ダウヲ揚ヤウセム。 셋, 우리 황국신민은 인고단련 힘을 기름으로써 황도를 선양하리라.
@@user-zty6_s01_ 其ノ一 첫 번째 一イチ、私ワタクシ共ドモハ大ダイ日ニツ本ポン帝テイ國コクノ臣シン民ミンデアリマス。 하나, 우리는 대일본 제국의 신민입니다. 二ニ、私ワタクシ共ドモハ心コヽロヲ合アハセテ天テン皇ヌワウ陛ヘイ下カニ忠チユウ義ギヲ盡ツクシマス。 둘, 우리는 마음을 합하여 천황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 三サム、私ワタクシ共ドモハ忍ニン苦ク鍛タン鍊レンシテ立リツ派パナ强ツヨイ國コク民ミントナリマス。 셋, 우리는 인고 단련하여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其ノ二 두 번째 一イチ、我ワレ等ラハ皇クワウ國コク臣シン民ミンナリ忠チユウ誠セイ以モツテ君クン國コクニ報ホウゼム。 하나, 우리는 황국신민이니 충성으로써 군국에 보답하리라. 二ニ、我ワレ等ラ皇クワウ國コク臣シン民ミンハ互タガヒニ信シン愛アイ協ケフ力リヨクシ以モツテ團ダン結ケツヲ固カタクセム。 둘, 우리 황국신민은 서로 신애협력함으로써 단결을 굳게 하리라. 三サム、我ワレ等ラ皇クワウ國コク臣シン民ミンハ忍ニン苦ク鍛タン鍊レン、力チカラヲ養ヤシナヒ以モツテ皇クワウ道ダウヲ揚ヤウセム。 셋, 우리 황국신민은 인고단련 힘을 기름으로써 황도를 선양하리라.
나의 아버지는 국가의 영웅이였지만,
가족에겐 아니였다.
그런 아버지와 달리
나는 가족들에게 영웅이 되고 싶었다.
안중생도 좀 불쌍하다...
그 어느누구도 그에게 돌을던질수는 없다.....
아으 오글거려
@안지성 그래서 맞아죽은듯요
@@munk0988 직접 한말임
안준생이 처했던 저 상황에서 일본의 제안을 거절할수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긴 아비없이 자랐는데 배신감에 그럴만도 하겠다
ㅅㅂ 김구가 지켜주던가 뭔 죽일사람이야
킬구 성님..
그렇게 힘들게 살게 만들었고 음흉하게 정치조작을 해서 제안을 거절할수 없게끔 만들었던 일본 개새끼들이 나쁜거죠.
시대상황이 그러니 그런 제안을 거부 할 수 없던게 아니라..
성인이될때까지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리고 큰 돈은 아니지만 행사참여 할때마다 약간의 돈은 주었다.
취직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 돈이 절박했다.
김구는 멀쩡한 일본상인 죽이고 돈뺏고 그러니 자신이 총맞고 갔지
안준생은 친일파가
아니라 조여오는 생존의
위협에서 가족을 구해야
햇기에 사과를 한겁니다
우리는 그에게 돌을
던질수 없습니다
모든 친일파가 그렇지
그건 변명이 안됨 모든 친일파가 다 그런이유 때문이었음 그 어떤 친일 매국노도 가족을 위해서 였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사기 당한 것입니다
아니요 정확힌 안중생도 본인의 딱한 사정에 있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나라 그리고 아버지의 결의 희생을 짓밟고 그런행동을 한것으로 전 안중생님이 억울 하시긴 하겠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변명거리?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에 이름에 막칠한것이죠 그리고 이미 독립 운동사분들 유관순 열사 그런분들도 목숨을 연장 할수 있었지만 자신의 먼 후손들이 이 나라에서 떳떳하고 자신있게 살수있게 그 어린 나이에도 저의를 위해 희생하기도 하였죠 그리 많은 독립운동가가 희생 했습니다 하지만 안중생은 그걸 짓밟았죠 그리고 과연 안중근의 어머니는 과연 안중생이 저러는 것을 바랬을까요? 당연히 자신이 자식이 죽는걸 아무도 원치 않치만 자신의 아들 안중근도 떳떳하게 이미 넌 나라를 지키고 책무를 다했으니 맘 편하게 죽으라 라고 하신거처럼 안중근의 아들 안중생이 저런짓을 하는걸 원치 않으셨을겁니다 그러므로 저는 안중생은 아버지 안중근의 의무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의 의무를 짓밟은 희대에 친일파라고 전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김도영-f2w ㅋㅋㅋㅋ이런애들 상대가 권력자면 뭘 하든 찍소리도 못할놈인데 입은 그냥 전사의 심장에 역사에 남을 개상남자여 ㅋㅋㅋㅋ
저시대에 안중근의 아들로 산다는것..
상상도 안가네요..
뭔 미화를... 지 아버지 얼굴에 똥을 칠한 쓰래기지요
공감입니다, 더구나
친일파는 아니죠
슬프게도 국가는
그위대한 안중근의
가족을 보호하지
못햇습니다
하루하루가 지옥 그 자체
지금도 국가유공자를 돌보지 못하는데 저때는 오죽했을까? 안준생을 욕하는 사람들은 떳떳할수있을까?
@@bigbrother6184 그리고 어디선가 계속 생겨나고 있음
@@신창섭-u4w 100년 지나도 전라도 카르텔이 존재하는 한 계속 생길걸요? 그 자랑스런 518 민주투사들 명단 까라 그러면 발악하는걸요ㅎ
@@bigbrother6184 혜택이 어마어마한건 아닌데.. 5.18 유공자들에 대하면 과분한거지
@@jjs781012지들이 먼저 폭동을 일으킴
@@bigbrother6184보훈처에서 민주유공자만 비공개하나요? 법원에서도 “이 사건 각 정보 중 5·18 민주 유공자 명단 부분은 개인의 성명이 포함돼 개인식별정보에 해당함이 명백하다”며 정보공개를 주장한 측에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안중생은 실제로는 되게 착하고 소심했었다고 알려져 있죠 안중근은 나라의 영웅임이 틀림 없지만 그 당시 그의 아들로 살아가기란 매우 힘들었을겁니다 그래서 안중생이 나중에 이런 글을 썼었습니다
”아버지는 나의 조국에는 영웅이었지만 가족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조국에는 배신자일지 몰라도 내 가족에게는 영웅이었다“
그 누구도 솔직히 안중생입장이 되었더라면 돌을 던지긴 힘들겁니다..
등따시게 눕고 핸드폰으로 이런 영상을 평화롭게 들여다보는 우리는 저 사람의 삶을 비난할 자격이 없음
계란을 낳지 않아도 그 맛을 평할순 있다
-윈스턴 레너드 처칠
@@erizynn2660 니애미😅
@@erizynn2660 계란은 직접 먹어봐서 그맛을 알고 평하는 거고... 이걸 비유라고 갖다붙이는 건지 의문이 들 수준이네
@@조하진-g1x ㄹㅇ... 저게비유가맞음?
@@erizynn2660에휴
욕하기 보다는 안타깝다...얼마나 힘들었을까 정말
안준생 욕하지마라~!!! 안중근 의사님의 공로만 앞세우고 이용한 야비한 놈들. 그 가족들은 돌보지도 않은 것들이....ㅠㅠ 한반도 침략의 원흉 이토우히로부미를 살해하고 33세에 사형 당하셨던 안중근 의사님. 일본인 간수가 사과하고 평생 집안에서 재를 올려드렸다 할 정도로 인격이 높으셨던 분.
그니까요ㅠㅠ
좀안됐네요. 나라에서 대우를 해줬어야하지않았나.. 그당시도 나라가 힘든시기라 그런가봅니다 ㅠ
너무 안타깝습니다.
안중근의사님과 가족들이 천국에서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안중근은 대동아공영권 지지하던 사람임
@@gambit_magical아....니는 나가라
독립운동가의 가족들이 얼마나 어렵게 살았는지 슬픕니다.
원래 세상은 바르고 착한 사람은 힘들게 사는 거고 나쁜 사람들이 편하게 사는 겁니다. 세상의 이치이지요.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
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 一賤則賤 )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조선왕조는 동족을 노예로 부린 유례를 찾기힘든 국가였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과 백성들이 오히려 왜군을 환영하니 근심이다라는 기록이있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400년을 더 노예로 고통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천하에 어찌 이처럼 가난한 나라[조선]가 있겠는가. 흡사 여염의 궁핍한 집과 같아 하나의 진보(鎭堡)를 경영하기도 이처럼 쉽지 않다. 내가 보건대 전조[고려]에는 매우 부유하였는데 우리 나라는 어째서 이처럼 가난한 지 알 수가 없다."
『선조실록 38년 9월 28일 기해 』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
BC100년경 ~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던 일본에 한국인들이 철기 무기를 들고 상륙하면서 일본에 고대문명이 시작됐다. 일본역사는 곧 가야백제의 역사고 한민족의 역사이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조선에 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니이가타산 쌀을 조선으로 수탈해가기도해서 이에대해 당시 일본인들의 불만이 많았다.
조선600년간 인구증가없이 천만명 수준을 유지하던 인구가 일제시대때 2배로 증가할정도로 조선인들의 삶은 풍족해졌다.
"식민지 기간 동안 조선의 인구는 1,260만 여명이 증가하였는데 그 중 약 69%인 870 만여 명이 한반도 안에 있고 31%가 만주와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조선인 탄광 노동자 임금은 일본 순사보다 3.7배 많았다”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만주지역에 살던 조선인들은 이들을 마적단이라고 부름)은 중국공산당 산하의 빨치산 세력인 동북항일연군이었다.
한국 독립군과 중국 호로군의 연합체로서 이들중 상당수 한국인은 중국 국적을 취득한 공산주의자들이었으며 이들 중국공산당과 연합한 광복군은 339명 이었다.
반면에 2차대전 말기 조선인 일본군 지원자는 80만 명이 넘었고, 입대 경쟁률이 62:1을 넘었다.당시 조선인들의 일본에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 알수있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은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매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것이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것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부정하는 이유는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김구 가족은 그렇지않았습니다
친일은 아니고 너무나 고생했어요 독립운동가 후손 고독한 삶이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지금도 독립운동가 후손들 극빈의 삶을 살죠!
이건 배신보단 살기위해서 발버둥쳤던 삶아닌가..
그런논리면 일제시대 친일파는 모두 참작되겠네요?
가족이 죽게 생겼는데 뭔들 못하겠냐??! 그리고 저걸 배신이라고 죽일려고 하지말고 지켜줬어야지!!
김구가 뭐하는 작자인데 당연하지 ㅋㅋㅋ 아직도 김구 빠는 애들 보면 어질어질함
@@oundery3542 김구 선생님도 나쁜사람임 ㅋㅋ
@@oundery3542 앙 킬구 선생님 좆같이 안사랑해요♥
@@포고하는사람-r1t네 다음 친일파. 김구 선생님이 만주군 장교하면서 독립군 때려잡는 놈보단 훨씬 나음.
분단의 원흉 김빨갱구
안준생의 삶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ㅠㅠㅠ
이분에게 누가 돌을 던질까요 ㅠㅠㅠ
부모 잘못 만난 것도 죄고 운명임
@@핸들-x7s 그럼 너도 죄네
@@핸들-x7s안중근의사님 비난?
나라가 힘이 없으니 자손들을 나라가 지켜주지도 못하는구나
안중근 아들은 인정해줘야해. 니들이었으면 더했어.
ㄹㅇ
직접 그상황이되었을때
당신들은 진심으로
어떤 행동을 할까요
직접 당해봐야 알수있음😂😢
안준생... 개인적으론 안된 일이지만 한 순간의 오판으로 평생의 오점이된 사례이자
일본의 양아치 근성을 제대로 알수있는 사건이지 않나 싶다
그런 일본을 믿고따르는 윤석열정부 신 친일파라 할 수 있겠다 탄핵만이 답이다
@@천굥거니 닉값 보소? 민주당애들이 여태 뭐 잘했다고 ㅉㅉ 위한부 할머니 고혈짜서 정치자금 쓴놈들이 퍽이나 ㅋㅋ 윤미향이나 짤라라
@@천굥거니문재앙은 부친이 일제관료 집안이고 자녀들도 일본유학 보넸죠
이렇게 과정이 되기까지 김구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 습니다 김구는 국내에서 일본에 쫒기면서 안중근아버님에게 찾아가 도움을 요청 한적이 있습니다 안중근 아버님은 김구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서로 그런 인연으로 중국 상해로 가게됀
계기였습니다 그런데 김구는 상해임시정부을 옮기면서 자기 식솔들은 다챙기면서 안중근 식솔들은 그냥 상해에 내팽게치고 떠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김구는 그런소리 하면 안돼죠
제가 알기론 안명근이 안중근의 아버지의 형님의 아들 즉 사촌동생인데 김구가 본인 식솔들하고 안중근 가족들을 데리고 오라고 했으나 무슨이유에서였는지 김구 가족들밖에 못데리고 왔는데 그걸로 김구가 크게 질책한후 서로 갈라지게 된걸로 알고 있거든요?
원래 상해에서 안중근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는데 일제 감시가 심해지고 도피생활을 이어가느라 더 이상 신경 쓸 수가 없었음. 참고로 안중근의 가족들이 유독 심한 감시를 받았기 때문에 비밀을 최대한 지켜야 하는 임시정부 입장에서는 신경 안쓰는 듯 써야 하는 입장이였는데 일제 타겟이 임시정부가 되니까 도움을 더 이상 줄 수가 없었던 거임.
물론 안중근 같은 국가영웅과 그의 가족을 대우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김구와 임시정부 코가 석자였음. 목숨 내놓고 지켜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말씀 (내부에도 밀정이 그렇게 많았는데 외부요인으로 더 위험에 빠질 수 없는 처지임)
안중근 아들의 인생을 비난할 수 없고 임시정부도 비난할 수 없음. 폭풍 앞에서 자신들을 지킬 힘도 없이 제국주의에 심취해 있는 일제의 피해자들임. 칼에 찔리는 사람을 봤는데 도와줄 수도 있지만 도와주다가 자신이 찔리면 내 가족들은 굶어죽는 다고 생각한다면 도망갈 수도 있는 것임. 그걸 보고 욕하는 것은 좀...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 잘못된 해석인듯.
@@lilknight4431 글세요 그런 사항에서 어떻게
자기 식솔들은 챙기고 갔다는게 더 어의가 없음
@@호연-j9s 김구는 가족들도 돌보지 못했습니다. 김구의 가족들은 일찍히 감시를 받았고 부인은 감시 때문에 병원도 못가고 1924년 일찍 죽습니다. 딸들도 일찍히 옥중에 죽고 아들 두명도 한 명은 독립운동 하다가 광복 전에 죽고 작은 아들이 그나마 목숨을 부지해서 살아남았습니다. 안준생이 변절한 시기는 일제 막바지인 1939년 쯤인데 김구 가족들은 그 전에 이미 찢어졌습니다. 홍커우 의건 전까지 즉 1932까지 안준생과 가족들을 챙겨줬습니다. 김구가 자기 식솔만 챙겼다? 겨우 챙긴 사람은 작은 아들입니다. 옥살이 할때 어머니가 뒷바라지 하고 그때 딸들도 죽고 아내도 못챙겨 떠나보내고 아들들이랑은 단란한 시기가 거의 없고 큰아들은 먼저 세상을 떠나고. 김구 본인보다 오래 산 작은 아들을 챙겼다고 한다면 챙긴 것인데 안준생을 챙기지 못하는데 괘씸하게 자기 가족들만? 그건 좀 잘못된 정보인듯 합니다.
김구가 안준생을 비판한 이유는 자기 자신은 가족과 생이별을 해도 끝까지 변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 안중근이라는 훌륭한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정신을 잇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김구가 실제 성격은 ㅈ같다 했지
가족들이 넘 불쌍하네요 아버지처럼사는건 너무 어려운길이죠 아드님도 잘못한거 없지요
4살짜리 아이가 목숨의 위협을 받고 쫒겨 도망가는데, 아버지는 없고, 도망치고 먹고 사는데 정신없는데, 어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을 것이며, 아무리 주변에서 아버지가 대단했다 부르짖어도 와닿지 않고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 조국에 대한 마음도 썩 좋지 않았을 것 같네요...
저 당시에 그 아이는 4살이 아니고 성인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그의 할머니는 훌륭한 독립가 입니다!
@@at0m76 그래서?
@@Someone111ify뭘 그래서야
@@Someone111ify 니미는 너를 왜 그 모양으로 키웠다냐ㅉㅉ
김구가 내팽개쳤잖아
안준생은 아버지가 가족 대신 나라를 택하여 그 가족들이 받아야 했던 고통을 알았기 때문에 어머니와 부인,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던 것이라고 봄. 그 누구를 욕할 수 없는 집안이다..
잼민이들이 많단 말야
독립투사분들은 가족들이 받을 고통을 모르고 맘편히 활동했남? ㅋㅋ
국가보다 가족이 더 소중하단 가치관을 욕하는게 아니라 이미 벌어진 매국 행위에
걑잖은 네 가치관을 더해서
옹호하는게 웃기단 말
아 배고파 내년 아침에 뭐 먹지
@@주주-y6i독립투사들이 대단한건맞는데 가족들한테는 못할짓이 맞음ㅋㅋㅋㅋ
@@주주-y6i 독립운동에 바친 목숨은 본인뿐만 알이라 가족의 목숨도 있었음. 남편 잘못만나, 아버지 잘못만나 희생된 목숨이 몇인데.
적극적으로 이득을 취한 친일파들이랑 살기 위한 선택을 한 사람들은 구분이 되어야할듯...사실 끝까지 신념을 지킨 독립운동가들이 말도 안되게 대단한거임
안준생을 욕하기 보단, 그런 안준생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버린 일본이 욕을 쳐먹어야 마땅함.. 진짜 절벽에 매달린 사람 손 밟는 행위지 뭐냐 저게.. 끝까지 악독한 새끼들..
일본은 할일을 한거고 ㅂ.ㅅ같은 조선은 그걸 끌어안지 못하고 그냥 방치한거고 어떤게 잘못일까??
죽어가고 있는데 입에다가 사약 들이부음.
전쟁 포로들을 신체실험하고 죽이고 위안부 할머니 괴롭히고 그런놈들은 죽어도 마당함
망해라...기혼진
친일파들이 듣고 싶어하는 후일담.
안준생은 자처해서 한게 아니라 중일전쟁때 상해가 일본에 넘어갈때 피난하지못하고 붙잡혀서 할수없이 그렇게된겁니다
임정에서 제대로 보호해주지못한 탓을 개인한테 떠넘긴겁니다
@@fanmofanmo1041 이승만은 이미 초기에 탄핵된 상태이고 끝까지 남은건 김구죠
@@fanmofanmo1041
윤정: 사람이 아닌 조직에 충성한다는 검찰총장 출신 두창이가 수장인 검폭 중심의 검언재정 연대 이익집단.
김구선생께서 안중근의 동생 공근에게 가족의 일을 맡기었는데 그 가족이 중일전쟁 중 포로가 됨 이일로 김구선생이 분노 공근에게 실망함
윤정: 서로의 약점을 쥐고 있는 구킴 언론 재벌과 이들의 약점을 쥐고 있는 검폭이 이들과 카르텔을 형성하고 검폭 출신 정치 초보이자 3무 두창이를 대선 후보로 내세워
이들 카르텔의 돈과 권력에 의해 움직이는 수많은 극우단체들과 종교를 가장한 수십만 사익추구 이익집단들의 강력한 네거티브 여론선동과 흑색선전 그리고
일본이
안중근의 훌륭함에 먹칠을 한것봐라
영웅 역사에 오점을 남기려고 끝까지 악랄한 짓을 한것을 우리가 알아야한다.
그냥 배신이 아니라 자기만 살려고 한 배신이 아니라 가족들 살리려고 한 거잖아 ,, 그걸 설명하셨어야죠 .. 이렇게만 보면 진짜 나쁜놈인데 그게 아니잖아 ..
친일파들이 듣고 싶어하는 후일담.
지금 평화롭게 핸드폰으로 이 영상에 댓글이나 달고 있는 나는 저 사람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김구도 잘한 것 없다고 합니다. 안중근의 자식들이 찾아가도 돌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욕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입만 열면 멸공 빨갱이만 외치며 친일파를 감싸고 일본을 비호하는 사람들보다야 낫죠.
저역시. .ㅠ.ㅠ
우리민족의 수난앞에 네살배기 아기가 일어설 힘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가족에게 김구는 잘한게 없습니다
비난이나 할줄알지 나라위해 피흘린 분들의 가족들은 빈곤하게 사는게 현실이다. 수탈의 선봉에 섰던 국짐 정진석 조부는 지역유지로 지금 현재까지 떵떵거리고 살지 않는가! 이게 슬픈 현실이다
@@아우라-v2b 시시비비로 과거에 얽매여 산다면 서로 상처만 할켜질 뿐이지요
더나은 미래로 가려면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합니다. .잘되고 못된 조상탓
남탓 니탓, 이젠 잠재워야합니다. .서로 보듬어줘야 밝고 희망찬미래로 나갈수 있습니다
슬픈이야기네요. 아버지 보고싶었을텐데.. 삶이 너무 고달파 그랬나봅니다. 불쌍한 사람 이용만하고 버린 일본놈들은 정말 나쁜놈들입니다.
친일파들이 듣고 싶어하는 후일담.
난 잘못없는데..도망다니고 거지 처럼살게한...그런아버지 필요없을듯.죽여버리고 싶을듯
@@조해진-y5r 한심한 인간아.
냉정하게 안중근 아들을 책임지지않은 김구도 똑같지않을까요?
안준생의 나라를 가져간건 일본이지만 가족들을 데려간건 독립운동가들입니다 심지어 살해협박까지 했으니..
이걸 어떻게 비난하나....하
@좁불 닌 지킬 가족도 없으니 그런말이 나오지
@좁불 쫍뿔이 또보네
@좁불 애미애비는 있노?
@좁불 니였으면 바로 나라팔고 도박하면서 살았을거같은데?
@좁불 진짜 우리랑 사고방식이 다른가..? 아니 당신이었으면 4살때 아버지 돌아가시고 안그래도 가난했던 시기에 독립운동가 가족 + 어머니 혼자 일하셔서 가정을 부양했던건데 얼마나 힘들었을지 예상이 안감? 나도 저상황이었다면 그랬을거같고 백에 구십은 그럴것같은데우리가 저 분을 비난하진 못할것같은데..?
위대한 안중근 의사... 그분의 자손들은 나라와 국민들이 지켜 드려야 합니다.
안중근님의 후손은 대한민국에 없습니다
위대한 테러리스트
딥스
누구도 아버지에 이어 아들에게까지 애국을 강요 할 순없다..
저 당시 김구나 다른 독립투사들도 안중근 의사의 죽음 이후 남아있는 가족들을 전혀 보살피지 않았음. 남아있는 가족, 구걸하다가 독으로 죽은 형을 생각하면 욕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까 싶음...
내가 언제죽을지 모르는상황에서 사과만 하면 편안하게 살수있다는제안은 확실히 일반적인 사람에게는 거부할수없다..
친일파들이 듣고 싶어하는 후일담.
안준생을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들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최악의 선택이 되는 안준생에게 누가 당당하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안중근가족의 희생에 대해 미안하고 존경스러울뿐입니다 그의아들의 배신을 진짜배신이라 손가락질할수있을까요 가슴아프네요
그런 순간에 거절할수 있는것도 인간이상이다. 충분히 이해할수 있다 . 그렇게 가신게 안타까울뿐, 안중근님은 어려운 시절의 영웅 이셨지만 모두가 그런 영웅이 될수는 없다.
진짜 영웅은 평범한 우리로서는 할 수없다~~ 우리 대부분은 안준생이고 안중근처럼 되는것은 소수라는것이지~~
친일파들이 듣고 싶어하는 후일담.
맞습니다
제일 욕먹어야 하는건 김구 아닌가요?
안준생은 안중근의 아들입니다.
안중근은 독립운동을 했지요 그런데 안중근이 돌아가고
그의 아들 안준생에게 손을 내밀었나요? 지원을 해줬나요?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럴때에 안준생은 어떻게든 살아남을려고 자기 가족 지키겠다고
일본에 붙은겁니다.
뭐라도 지원을 했다면 적어도 일본에 붙어서 사과하는 일은 없었을겁니다.
그럼에도 자기 잘못은 단 하나도 모르면서 히로부미 아들한테 사과했다고
안준생을 죽일려고 한다?
저는 절대 안준생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일 큰 잘못을 저지른건 다름아닌 김구 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 죽음의 두려움에 빠진 안중생의 행동을 평화롭게 사는 우리가 친일파라고 손가락질하지만, 지금 우리가 저 상황에서 친일파라고 안불릴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진짜 손에 꼽을 만큼 적을 듯. 그만큼 안중근은 용기와 집념이 굉장히 강했던 사람이었다는거. 안중생은 그냥 우리같은 평범한 사고방식을 가진 한낱 소시민이지 않았을까.
우리는 알고 있다
미래에는 안중근과 같은 영웅은 다시 나오지 않는다는것을
안준생을 보고 배운다
안중근이 영웅인 이유 좀요...
@Gaon 2찍
@Gaon 한국말하는 일본놈인가? 너는 니집이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니부모 형제를 돈많은 놈들이 끌고가서 노예삼아도 밥먹여준다면 좋아할 놈인가봐용
한심한 일본 앞잡이들이 둘이나?
학교다닐때 공부 안하고 뭐했는지 모르겠다
글쎄요 ㅎㅎ
친일파가 아니고 그 당시 가족을 보호하지 못한 우리 국민들이 아무것도 허지 않는 것에 통탄해야지
아니 근데 저건 안중근 아들 입장도 이해됨
무작정 욕할수없음
친일파들이 듣고 싶어하는 후일담.
이건 솔직히 그누구도 그를 욕할수없다
친일파들이 듣고 싶어하는 후일담.
국가가 독립유공자 후손들을보호해주지안한 국가가잘못한거다
아버지는 나라를 지켰고, 아들은 가족을 지켰다
이게 맞는듯...
제대로 못 챙긴. 나머지 사람들도. 나쁘지요. ㅠ.ㅠ. 남겨진 가족들이. 빌어 먹게는 하지 않아야지요.
맞습니다~ 더욱이 김구는 그런말 하면 더더욱 안돼죠
김구는 일본에 쫒기면서 안중근님 아버님에 찾아가
몸을 숨기고 보살핍을 받은 사람입니다
상해 임시 정부가 있는곳을 찾아간겄도 이런 내용이 있기에 그런데 김구는 지식솔들은 임시정부 옳기면서
지식솔 들은 챙기면서 안중근 의사 식솔들은
그래로 상해에 내 핑계치고 간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김구는 그런소리 하면 안돼죠
아니 진짜 저걸 어떻게 거절함;;;;
계속 저렇게 살 수는 없을텐데
아빠는 일본의 그 당시 우두머리인 이토
히로부미를 죽여서 아들도 살기 쉽지는 않았을텐데
그 와중에 형도 죽고....
이건 좀...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을 듯
그냥 저 상황이 안타깝다.. 두 분 다 얼마나 지키고 싶었을 지ㅜ
위대한 아버지 밑에서 삶 전체를 빼앗기다시피 희생당했고 같은 입장에서 저 위협을 과연 견딜 수 있었을까 싶다
우리는 모두 안준생을 비방 할 수 없다. 그들의 가족이 짊어진 짐을 생각한다면...
안중근은 아들한테 이리 말했을거 같다. " 너는 너가 해야되는일을 했다. 그리고 나도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했다"
과추측 ㄴㄴ 니가 안중근이냐? 선은 넘지 마라
@@참치마요-l8v 과측이 아닌 이유
이토암살은 실제 안중근의 업적이자 잘못된 암살이였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암살인물 또한 오히려 암살을 진행하면 반도의 민족들이 힘들 것이라는 것도 알고 했어야 했지만 그는 몰라고 심지어 암살 후 일본은 조선을 병합을 해야되 말아야되에서 무조건 해야해로 바뀌었습니다.
@@정희원-j7i @정희원 경슬국치는 시간문제였지 이토 히로부미가 있었다고 해서 아예 병합이 되지 않았을 거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다들 병합을 말하는 과정에서 이토 히로부미만 반대한건 맞지만... 결국 2차세계대전이 시작했을때쯤엔 급해진 일본이 병합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Susu_usuS 저는 다릅니다.
애초에 그당시 한일병합을 강경파가 강하게 주장하고 그걸 실핼하기 위해서 이토를 만두쪽으로 좌천을 시킨상황이였고 그게 하얼빈에서 암살당하게 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더 정확히는 이전부터 강하게 주장하던 강경파들도 이토의 의견과 이토가 온건파로 존재했기에 강경파들 조차 온건파로 이토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토의 신념을 따라갔다는 것만 보더라도 이토만 살아있어도 최소 5년은 합병될 일은 없어습니다. 조선에서의 입김은 줄어들지언정 일본에서의 그의 위치는 우리나라 기준 세종대왕이기 때문에 그의 의견에 반대라지 않았을 겁니다.
@@정희원-j7i 병합을 '당장' 해야되 '철저하게' 해야되의 차이였지 뭔 헛소리임?
가난한데다가 죽음의 두려움의 이랑 목을 조여오고있는데...아기때 가셔서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무게를 느끼며 살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나였으면 이 선택 했을듯. 가족을 지키고자하는 마음과 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을듯
이런 내용은 교과서에 꼭 들어가게 한 후 시험도 자주봐야 한다. 수능에 꼭나오는 필수 문제로 활용하고~~
왜, 옳은 일을 했는데 아무도 그의 가족을 지켜주지 않았을까.
@와 정말 대다내 안중근 선생님께선 옳은 일을 하신거 같은데 옳은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이유 알 수 있을까요?
@@happyday6516원댓글의 '그'는 안중근, 대댓글의 '그'는 안준생으로 해석한데서 오는 오해인 듯 합니다.
@@하루살이-r6b 말씀하신게 맞네요
지금도 독립운동, 민주화운동 국가 유공자한테 와 세금 많이쓰냐고 지랄하눈 댓글 달리는대요. 국민수준이 이모양이니 그렇죠. ㅠ
테러가 옳은일?
실제로 안중근이 돌아가시고 나서 남은 가족들은 엄청난 불안과 괴롭힘과 쫒김과 하루하루 고통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나라를 살리셨고..
아들은 가족을 살릴려고..어떻게든 살려고 했던 겁니다.. 그 누구도 아들은 비판하고 욕할 자격이 없어요.. 이글을 쓰면서도 눈물이마도 먹먹 합니다..
나는 저분의 마음이 이해가 감. 그래서 차마 비판도 비난도 못함. 만약 내가 저와같은 상황이라면? ..
안중생이 마지막 생전마지막 한말이 나는 아버지를 배신했지만 남겨진가족이라도 지켜야했다라고요
ㅎㅎㅎ...이러네
ㅇㅈㄹ
@@Im_sensei_in_kivotos 其ノ一
첫 번째
一イチ、私ワタクシ共ドモハ大ダイ日ニツ本ポン帝テイ國コクノ臣シン民ミンデアリマス。
하나, 우리는 대일본 제국의 신민입니다.
二ニ、私ワタクシ共ドモハ心コヽロヲ合アハセテ天テン皇ヌワウ陛ヘイ下カニ忠チユウ義ギヲ盡ツクシマス。
둘, 우리는 마음을 합하여 천황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
三サム、私ワタクシ共ドモハ忍ニン苦ク鍛タン鍊レンシテ立リツ派パナ强ツヨイ國コク民ミントナリマス。
셋, 우리는 인고 단련하여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其ノ二
두 번째
一イチ、我ワレ等ラハ皇クワウ國コク臣シン民ミンナリ忠チユウ誠セイ以モツテ君クン國コクニ報ホウゼム。
하나, 우리는 황국신민이니 충성으로써 군국에 보답하리라.
二ニ、我ワレ等ラ皇クワウ國コク臣シン民ミンハ互タガヒニ信シン愛アイ協ケフ力リヨクシ以モツテ團ダン結ケツヲ固カタクセム。
둘, 우리 황국신민은 서로 신애협력함으로써 단결을 굳게 하리라.
三サム、我ワレ等ラ皇クワウ國コク臣シン民ミンハ忍ニン苦ク鍛タン鍊レン、力チカラヲ養ヤシナヒ以モツテ皇クワウ道ダウヲ揚ヤウセム。
셋, 우리 황국신민은 인고단련 힘을 기름으로써 황도를 선양하리라.
@@user-zty6_s01_ 其ノ一
첫 번째
一イチ、私ワタクシ共ドモハ大ダイ日ニツ本ポン帝テイ國コクノ臣シン民ミンデアリマス。
하나, 우리는 대일본 제국의 신민입니다.
二ニ、私ワタクシ共ドモハ心コヽロヲ合アハセテ天テン皇ヌワウ陛ヘイ下カニ忠チユウ義ギヲ盡ツクシマス。
둘, 우리는 마음을 합하여 천황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
三サム、私ワタクシ共ドモハ忍ニン苦ク鍛タン鍊レンシテ立リツ派パナ强ツヨイ國コク民ミントナリマス。
셋, 우리는 인고 단련하여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其ノ二
두 번째
一イチ、我ワレ等ラハ皇クワウ國コク臣シン民ミンナリ忠チユウ誠セイ以モツテ君クン國コクニ報ホウゼム。
하나, 우리는 황국신민이니 충성으로써 군국에 보답하리라.
二ニ、我ワレ等ラ皇クワウ國コク臣シン民ミンハ互タガヒニ信シン愛アイ協ケフ力リヨクシ以モツテ團ダン結ケツヲ固カタクセム。
둘, 우리 황국신민은 서로 신애협력함으로써 단결을 굳게 하리라.
三サム、我ワレ等ラ皇クワウ國コク臣シン民ミンハ忍ニン苦ク鍛タン鍊レン、力チカラヲ養ヤシナヒ以モツテ皇クワウ道ダウヲ揚ヤウセム。
셋, 우리 황국신민은 인고단련 힘을 기름으로써 황도를 선양하리라.
그리고 아버지가 가족의 일원인데 가족을 지킨다고? 지능 보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중근 아부지에게 은혜를 입고도,안중근의사의 가족을 챙기지 못한 김구.자기 가족은?
가슴아픈 일이다.가족을 지키려는 아빠.
ㅇㅇㅇ매국노
김구도 재평가받아야함
김구도 깡패야
김구선생이 저런말 했다는 근거도 없어요 일개유튜버의 말한마디에 김구선생을 욕하는건 옳지않은듯
킬구
가족을 돌보지않고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했지만 그의가족들은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고 비참한 현실을
살수밖에 없었을때
다른 선택을 할수있는
방법이 있었을까요
그런사람들을 욕하고
손가락질 할수는 없습니다
가엾고 안됐네요
후손으로서 미안한 마음입니다
김구 선생님도 저런 소리할게 아니라 안중근 의사 남겨진 자손들을 챙겨줬어야지 ㅋㅋ
이게맞지ㅠㅠ 4살때 아빠 사형에 형은 졸지에 독든과자먹고 가버리고 홀어머니 밑에서 얼마나 힘들엇을까
당시 임정도 재정상태가 그리 넉넉하지 않아서 쪼들리는 상태였음
@@유원석-h8y 임시정부가 돈이 많으면 그것부터가 이상해지는거겟죠 나라망해서 중국에다 살림차렷는데요 문제는 그만큼 케어도 못해줫으면서 욕하는게 문제다 하는거 아닙니까
@@유원석-h8y 그래도 최소한에 생계는 유지할수 있게 해줬어야 한다고 생각함
@@subin_0 옳습니다!!^^
어린나이에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런 선택을 한게
너무 마음에 아프네요
진짜 이런 것도 학교에서 같이 가르쳐야됨
안중생은 나의 아버지는 국가의 영웅이지만
가족들에겐 아니었다 했죠
이것도 실체는 모르는 거다. 예를들면 가족목숨과 사죄 둘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협박했다면 쉽지않다. 그역시 일제의 피해자일수있다.
거부했으면 안준생 여동생이 ㄱㄱ에 고문 당하고 죽었겠지
저 상황에 거절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ㅠㅠㅠ…
욕할수없다. 개인에게 나라까지 떠넘기지마라. 그래야될의무없다
나니/ 그러면 나라팔아먹어도 되겠구나
비난 해야 하지만 이런 경우는 뭐라 할말이 없다...안창호 선생도 가족은 헐리웃 배우인 큰아들에게 맡기고 독립운동에만 매진했지...
그 누구도 그 에게 돌을 던지지는 못한다.
와 인생이 어떻게 저리 기구하냐....
오늘의 교훈:내 자신 빼고 아무도 믿지 말자
가난이 죄악이라고 하는 사람의 말이 공감되는 이유임.
그런 차원이 아니잖소
@@소크라칸-x3t 그럼 뭔 문제입니까?
그게 무슨 정당화되는 발언인가
@@a01022997074 정당화가 아니라 현실임. 가난은 사람을 죄를 짓게 만듦.
김구는 도대체 일순위로 죽일사람이 몇명이나 있는건지 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나 저기나 다 일순위래…
누가 그를 욕할수있겠나..
친일파끼리는 욕 못할듯
@@주주-y6i 항상 국가를위해 헌신하시길 바랍니다 공부열심히하고
@@주주-y6i 같은 불이익을 받으며 산 사람이 아니면 비판할 수 없음 비단 친일파 뿐만 아니라
친일파 말고는 전부 매국을 욕하는건 당연한거다
물론 우리 모두가 저딴짓을 안할거라는 말은 못하겠지만
적어도 넌 매국하며 잘살고 싶어하긴할거같다
@@maus4033 역사에 만약은 없다란 말 들어보셨음....?
결과는 정해진것이고 ~면 ~가 아니면의
주관을 일기면 몰라도 남들한테 말할땐 넣어선 안됩니다
김구선생님이나 안준근아들이나 그때 상황은 나라를지켜야하는 절박한 상황이니 두분다 욕할필요는 없는것 같다
이분들을 통해서 대한이라는 나라가 섭리되었다
감사합니다
안중근은 재판에서 대동아공영을 위해 이토를 제거했다고, 천황을 위해서 였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께서 사내가 나라를 위해 큰일을 했으니 목숨을 보전하려하지 말라는 편지를 보냈다 합니다. 안중근의 어머님이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독립운동하다 죽으면 그 가족은 아무도 안 돌봐준다는 역사적 교훈
위대한 업적을 이룬 안중근 장군의 가족도 지키지 못하는 조선.
안중근 의사입니다.
@@잼민안전부총사령관리장군도 맞습니다. 잠깐만 서칭해 보셔도 장군이라고 불리는게 틀리지 않다는걸 알수 있습니다.
@@시바견-s8x 아 죄송합니다.
@@잼민안전부총사령관리 의사 보다는 장군 칭호가 멋져서요.
@@동현황-q7x넵
그는 아버지 같은 영웅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지키고 싶었던 한 청년이 아닐까
그걸 매국노라고 합니다만?!
지금이야 착하게 살면 약지 못하면 바보소리 듣는시대지만
저시절에는 저딴짓거리안하면서 목숨걸고 싸우던분들이
있었습니다
@@rackrack2 자기 가족도 지키지 못하는데
나라를 어떻게 지킵니까
@@rackrack2 그럼 그 시절 살아남으려고 창씨개명한 분들 다 욕해야 공평하겠지? 네 친족부터 찾아볼까?
지금에서야 이리 말하는거지.. 그당시.그상황에서 저분의 판단은 누가 뭐라못해... 우린 결과인 역사를 배우고 있으니까
저 당시 시대 상황에 남은 가족의 삶이 평탄 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협박과 위협이 있었을지.
어쩔수없는 선택이었을거라 봅니다.
나라를 위한 아버지의 삶도
남겨진 가족들의 삶도
저건 지켜줬어야 하는게 맞지
친일이 아니었던것으로 알고있어요 .. 정말 어쩔수 없는 선택이였던갈로 책에서 읽었어요
직장위취업하면 안중근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짤리고 계속 이사다니고… 무튼 그랫다고
그들에 가족조차 보호하지 못한 사람들이
비난할건 아니라 본다 ㅡㅡ
어려운건 착하고 용감한 사람들이 다했음 독립운동가들 사실.......................
누가 안준생에게 돌을 던지랴..
난 이해가 간다..
그런 논리면 이완용한테도 돌 못 던지것네요.
@@bigbrother6184 이완용은 자발적으로 한거자나
@@trolllee3614안준생도 자발적으로 한겁니다
@@bigbrother6184 생각 좀 합시다~^^
@@user74346 자발적이든 자발적이지 않던 저 상황에 목숨이라도 구하고 싶으면 저러겠지. 예들어서 니도 사채 빚몇억 지고 도망치면서 살다가 사채업자가 빚없애주고 편하게 살게 해주는대신 뭐라도 시키면 뭐든 할거아님?
솔직히 저분한테 그 누구도 뭐라할 자격이 없을것같은데
저분은 가족을 지킬려고 한 선택이고
주변에서는 하나의 도움도 없었으니
저 같은 일이 한번 더 벌어지면 누구보다 신나게 나라 팔아버릴 자신 있다
찍어진 입이라고 아무말이나 씨부렁거리지마라.
그때 그 사람 입장에 서봤나?
아버지의 개뿔도 아닌 독립운동 죽음보다 아들의 죽음이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인정한다 ㅋㅋ 솔직히 독립운동덕에 해방된것도아니고 미국이 열받아서 쏜 핵 두발에 해방된건데. 물론 저항정신은 인정해주고 기억해야하는건 맞지만 ..
너무나 가슴아픈 사연입니다 도리어 슬프고 닐본에 더 열받네요
나라도 저 제안은 받아들였을것 같은데 저 상황에서 저 제안을 누가 거절할까
존버... 당신이 한번 안중근 아들로
살아보지
욕할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싶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이 아니면 안준생을 비난 할 권리가 없죠.
독살 사건도 있지만, 하는 일 마다 일본에서 테클 걸고, 취직도 안되고, 그래서 거지처럼 살고 있었는데, 그 때 일본에서 이토 아들에게 사죄하면 잘 살게 해 주겠다는 달콤한 거짓말로 꿰었던 거죠.
안중근집은 원래 부자입니다. 형이 독살당하고 동생은 어쩔수 없지만 저건 우리가 감싸줘야할 아픔인듯
내용 거의다 틀렸네
안중생이 사죄후 잘 살다가 45년 일본이 패망후 홍콩으로 이주해서 잘 살다가 51년 한국으로 와서 폐결핵으로 사망한거임.
그리고 안중생 자녀들은 잘 살고
어디서 본거임? 나무위키?
@@링링-l7e 이거맞음
한줄요약: 일본의 말을 믿지 말라
김구가 살인 교사에 거침 없었네 ㅋㅋㅋ 맘에 안들거나 친일하는 모습 살짝 보이면 순번 적어놓고 담궜을뜻
이래서 국방력이 중요합니다
와 민족영웅의 아들을 저렇게 방치해??
안준생이라는 분을 욕하기보단 이마음을 이용한 일본의잘못이 더 큰것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안준생의 목숨까지 강요할순 없죠
저 상황에서 협상안할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