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방송 재미있게 보셨나요? 한국인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을 알고 싶은 분들에게 함재봉 원장의 저서 『한국 사람 만들기(1~4권)』를 추천합니다. ▶ 『한국 사람 만들기』 구매하기 교보: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83818 알라딘: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9909050 예스24: www.yes24.com/Product/Goods/91613040 영풍문고: www.ypbooks.co.kr/book.yp?bookcd=101143775
부모님 돌아가시고 제사 다 없앴 네요. 대신 부처님 오신날 즈음 시간내서 절에 조용히 다녀옵니다. 무슨 이유가 있는건 아니고 제 생각에 제사는 시간 돈 음식 등 낭비 라는 생각이라서요. 처음엔 가족이나 친지 들이 싸가지 찾고 욕하고 머라 하더니 지금은 다 따라 합니다. 살아 계실때 잘해 드리면 돌아가셔도 후회 아쉬움 없습니다.
이왕이면 본인 생일이니 뭐니 하는 기념일도 그냥 조용히 보내길 바랍니다. 처음엔 나를 뭘로 보고 하면서 노발대발 하겠지만, 뭐 생각해보면 당신같은 하찮은 사람을 위해 돈 쓰는 게 무슨 의미겠어요. 죽은 뒤에도 그냥 쓰레기 봉투에 담아서 버려달라고 하세요. 하찮은 인간을 기억하는 것도 무슨 의미겠어요. 라고 하려다가, 마지막 가려진 멘트 "살아계실 때 잘 하세요."라고 하는 것 보고 동의함.
실제로는 내 몸 하나에 내 맘(영) 하나와 수많은 맘들이 같이 있다가, 분리되면서 다시 자기와 인연있는(좋아하는) 사람이나 물건, 장소에 가는데, 주로 자식들, 친구들, 이성들, 동물, 가고 싶던 곳으로 분산,,, 그리고 이런 상황은 고정적 아닌 계속 변동적,, 제사때 모이고, 제사로 한도 풀리면 머물던 사람은 무의식 부정적 요소들이 감소됨
이젠 차례상 차리고 제사라기 보다는 부모기일에 자녀들이 화합하는 장이 마련돼야 한다. 제사음식 차리면서 먹지도 않고 그냥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차례음식은 차리지 말고 납골당이나 묘에 가서 부모의 얼을 기리고 음식은 현재 자녀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사먹는게 훨씬 좋은 방법이다.
저희는. 부모님 기일즈음에 다들 모여서 식당에서 ㅁㅏㅅ있는거 먹고 커피쇼ㅂ에서 차 한잔 마시고 헤어집니다. 집안에 종손이 그리하니, 차손들도 지내기 싫은 제사를 안 지내도 된다는 핑계와 본보기가 되어서 지금은 다들 안 지냅니다. 대신... 하나님을 믿고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의외로 조상 대대로 집안 등쳐먹던 조상귀신(절대 조상 아님, 귀신임)이 힘이 쎕니다😊😊😊
조선시대 이전에도 평민들은 제사를 지냈습니다. 고대와 삼국시대부터 시작해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조상 숭배와 제사 의식은 일반적인 민속 문화로 자리잡았고,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영향을 받아 제사의 형식이 더욱 확립되었습니다. 평민들도 가정에서 조상에게 존경을 표하며 제사를 지내는 풍습을 이어갔습니다. (AI답변인데 뭐가 맞는거지)
@@레오-l3k 아마 '유교적 형식의 제사'를 말씀하신 것 같은데요. 제사는 고대부터 해왔던 게 맞아요. 제사는 한자와도 관련있는게, 원래 노예(民 : 사람 눈을 창으로 찌른 모양)들을 하늘의 지배자(태워서)와 조상들(묻어서)에게 드리는 행위입니다. 赤: 사람을 불에 태워 죽이는 모습, 沈: 사람을 물에 던져 죽여 수신에게 인신공양하는 모습, 陷: 사람을 땅에 생매장하여 땅의 신에게 인신공양하는 모습, 伐: 창으로 사람의 목을 찔러 죽이는 희생제사. 서양에서는 성경 때문에 몰렉과 바알이 유명하죠. 이게 점차 사람 -> 짐승 -> 음식으로 대체되어간게 제사 의식입니다. 따라서 매우 고대스러운 행위구요. 고대 어디서나 인신 제사 행위는 존재했습니다. 이게 욕구를 억제하고 이거하지마라, 저거하지마라 설파하는 불교나 기독교 같은 종교들에 의해 억제된게 중세 이후의 역사에요. 이게 적용 안된게 남미고, 그래서 인신제사 풍습이 남아있었던거죠.
충,효 논리 역시 기득권 세력들이 만들어놓은 것으로 깨어나지 않으면 오랜기간 동안 세습된 세뇌교육을 타파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임금이 백성을 위해 자애를 먼저 베풀고, 부모가 자식을 잘 보살피는 것이 먼저인데... 꺼꾸로 되었지요. 물은 거슬러 올라가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것인데...
이씨왕조가 체제유지를 위해 주자 성리학을 마치 주체사상처럼 포악하고 거칠게 유통시켰다 봅니다. 사실 성리학 그 자체는 크게 문제삼을 게 없는 사상이라 보네요. 유통의 방법에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합리적인 마인드가 부족한 시대니 이해는 하지만 분노가 치미는 건 어찌할 수 없습니다.
@@51irustamo 님의 식격에 박수^^ 한반도 작은 지역의 이기적 특징이 반영된 문화죠ㆍ유교적 현상은ㆍ 하필 고려시대부터 이어진 풍수사상에 의한 불교 접목된 사상이 조선시대 사대부들속에 스며들어서 ᆢ 자신의 가문만 ᆢ 반면 일본은 반대ᆢ 자신의 가문은 자신을 따르는 백성을 챙겨주어야하는 그들의 사고ㆍ 조선의 양반은 내가 우리 가문만 위한 삶이 오늘날에 도시 아파트 성을 여전히 만들고 있지요ㆍ 한국인의 폐단입니다ㆍ 조상위한 제사는 잘 지내면서 대도시 아파트 군들은 주변과 서양처럼 동화가 아닌 단절하면서 신 양반문화가 이어지고 있답니다ㆍ 한국사회가 더이상 발전못하는 정신세계는 유교의 장점을 사회적 활용안하고 자신들 이기심의 구석으로만 ᆢ
@아목동아 그것들이 동양이 서양을 못 이기는 근본ㆍ 동양은 부모 자식이 살인죄 저질러도 혈육이니까ᆢ 반면 일본 미국 유럽은 같은 죄를 저지르면 단절함ㆍ 오늘 날 한국이 더이상 서진시민과 서양서 선진국 대접아해주는 근본적 이유ㆍ 서양은옳고 그름에대한 결과가 분명ㆍ동양은 특히 유교 불교 전래 국가는 모든게 다 섭리라는 것ㆍ 이것이 향후 수만년 가도서양인들이 우월이유ㆍ
제사가 무슨 민족의 고유하고 대단한 전통인 줄 아는 분들 많은데 제사는 중국에서 넘어온 외래 문화입니다. 살아계실 때 잘하고 제사보다는 기일에 모여 추모하고 오붓하게 가족끼리 식사 할 수 있는 가정환경이면 최고고 그런 분위기에서의 제사라면 좋죠. 근데 제사가 목적이면 싸움과 분란이 납니다
조선초기 이전에 아직 족보가 안만들어진 상태라고 해서 자신의 선대 조상에 대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슬까요? 그렇다면 족보가 16세기 이후 확산되었다고 해도 다수문중의 시조는 고려초기 인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려초기에서 족보가 확산되는 16세기까지 기준해도 수백년이 지났는데 만을 조상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면 어떻게 고려초기인물을 자신들의 시조로 설정할수 있슬까요? 물론 시조에서 부터 자신이 기억할수 있는 가까운 조상을 벋어나서 시조에 이르는 그 중간에 기록이 부실할수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짓말이니까요. 족보에 기록된 삼국시대-고려시대 혈통 기록 대다수는 근거가 없는 허구입니다. 단적인 예로 경주 김씨 시조는 삼국유사에 김씨 시조로 등장하는 김알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무왕비에는 김씨 시조가 김일제로 되어 있지요. 김일제는 전한시대 사람으로 김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한술 더떠서 삼국사기에는 김씨들이 그들의 시조를 소호금천씨라고 믿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삼국시대부터 혈통 기록이 존재했고 그것에 의해 족보가 만들어졌다면 이런 혼란이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심지어 왕족인데도 제대로 된 혈통 기록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던 것이 고려 말 중국으로부터 보학이 도입되면서 가문마다 혈통에 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던거죠. 그래서 족보의 시작은 거짓말이였습니다. 족보를 처음만드는 이들은 자신의 가문을 드높히기 위해 아무 근거도 없이 혈통을 마음대로 지어냈습니다. 멋대로 고대 인물을 시조로 정하고 그로부터 자신들 세대까지 맘대로 혈통을 만들어낸겁니다. 이걸 '승조' 라고 하죠. 왕족이나 귀족들이 자신의 조상을 조작하여 거짓된 혈통을 만들어내는 걸 "승조사업"이라고 하며 역사적으로 매우 흔한 일입니다. 우리나라 성씨의 시조 상당수가 중국인인 것도 이런 이유이며, 멸망한 백제 귀족 성씨가 거의 남아았지 않은 것도 이것 때문입니다. 망한 나라의 귀족이나 왕족의 후손을 자처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moonnam1778 그런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뭐가 특별하냐고 물으면 분위기 타령합니다. 그냥 종묘가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거기 끼워맞추는거죠. 한국을 방문한 어떤 유명 외국인이 립 서비스 한거 들고 와서 무슨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삽질도 빠지지 않구요. 외국인의 무의미한 립서비스에 부화뇌동하는건 이제 그만둘 때도 되었죠. 종묘는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고 특별한 건축 기술이 들어있지도 않습니다. 성리학적 건물 답게 일체의 미적 요소를 거부하고 지극히 단순하고 건조하게 건물을 만들었어요.
토템이즘, 샤머니즘, 기복신앙 같은 것은 있었습니다. 이게 불교가 도입되고 한번 대통합되었지요. 고려시대 말기가 되면, 불교도 타락해서 절에 많이 가져다 바치게 되었습니다. 유교가 처음 나온 춘추전국시대도 난세라서 사찰과 같은 종교단체에 돈도 주고 마음에 안녕도 얻었습니다. 이런 것보다 가족관계로 엮어야 난세에 질서가 잡힌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상 속 부처님이 아니라, 차라리 돌아가신 조상님에 제를 올리라고 한 것이 아닐까요?
제사의 기원은 청동기 시절 제천의식입니다. 하늘의 신에게 올리던 의식에서, 천손강림설-왕은 신의 혈통이라는 믿음이 자리잡으면서 왕의 조상들을 신으로 여기고 하늘의 신을 왕의 조상으로 치환해서 의식을 올렸는데 이게 제사의 기원입니다. 즉 제사는 왕족들에 한해서 하는 의식이였던거죠. 그러다가 작은 나라들이 보다 큰 나라에 복속되어 연맹왕국 - 봉건국가로 변해가면서 작은 나라의 왕족들이 큰 나라의 귀족으로 흡수되서도 조상 신에 대한 제사 전통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조선말까지 '제사'는 진짜 고대 왕족, 귀족들의 후손들-명문 사대부 가문들이나 하던 것이였는데 신분제 질서가 동요하면서 저마다 양반 후손을 참칭하하기 위해 저마다 제사를 지내게 된거죠. 모두가 제사를 지내는 지금의 모습은 근대에 만들어진 전통입니다.
@@davidjacobs8558 '동방예의지국'이란 표현은 1449년 명나라 정통제가 오이라트족을 정벌하러 나섰다가 참패하고 포로가되어버린 '토목보의 변' 이 일어나 명나라 위신이 땅으로 떨어졌을때, 조선만이 변함없이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치고 제후국으로서 예의를 다하니 여기에 명나라 관료들이 감동하며 '너희는 다른 오랑캐들과는 달리 예의를 아는구나' 라고 칭찬하면서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한겁니다. 현대의 가치관으론 전혀 좋은 의미도 아니고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도 힘든 표현입니다. 부디 그 본래 뜻을 헤아려 여기에 포함된 굴욕의 역사를 이해하시고 이런 표현은 다시 쓰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기준이라는게 만들어지면 전통이 되고, 그 기준과 전통은 백성을 다스리는 수단을 만들어내고, 그 속에서 권력이 생겨나게 된다. 충과 효는 이미 인간의 깊은 심성에서 나온 듯하여 쉽게 반할 수가 없기에, 이를 좋은 뜻과 함께 가정과 적은 단위 집단의 화합과 더불어 위로는 백성을 관리하는데, 정치에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본격적으로 사람구실을 하고 제대로된 나라의 구실을 갖추게 된게 빨라야 17세기부터 19세기 후반입니다. 사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19세기 초중반부터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거나 나라 구실을 하게 된 겁니다. 프랑스를 예로들면 나폴레옹 이전까지는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20%에 불과했고 독일 이탈리아는 19세기 후반에야 하나의 국가로 통일 된 것이고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전통과 관습이 생긴게 18세기 19세기 들어서 입니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제대로된 나라라고 보기 어려웠을 겁니다.
저희 집 족보를 보면 고려 때 중국에서 황제의 사신으로 왔다고 하는데 왠지 왕건에게 성을 하사 받은 집안은 아니니 중국 성씨 중에서 하나 고르고 중국에서 왔다고 하자 해서 갖다 붙인거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흔한 김이박은 아니기에 주인집 성 따른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모르겠습니다. 요즘 트렌드는 조선시대 중국 종법 도입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족보를 믿는 분이 있다니.... 하하하. 그리고 그 당시 중국이란 나라 개념은 없었습니다.우리 나라 사람은 자신의 족보를 보면서 간혹 '우리 조상은 중국에서 건너 왔다~' 뭐 이런 식으로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우리 조상들이 중국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거기에 살다 점차 한반도로 온 것이다 라고 해야 맞습니다.
@@LaniakeaSuperclustet 손문이 중국이란 나라를 국호로 정하기 전에는 중국이란 나라가 없었으므로 과거에 중국사람이란 것은 없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한국인 중에는 자신의 족보를 보면서 종종 "우리 조상은 중국에서 건너 왔다~" 뭐 이런 식으로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우리 조상들이 중국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거기에서 살다가 점차 한반도로 이주해 온 것이다' 라고 해야 맞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내용입니다. 오늘 조선 이태조 묘가 뉴욕 부근에 있다는 사진과 자료를 보았네요. 조상제사의 시작은 단군 초기부터 입니다. 강화 참성단이 한님의 제사를 위해 건축 한거지요. 그당시 바이칼 부근의 빙하가 녹아 중동쪽에 계시던 한님이 귀천사셔서 중남미에 계시던 환웅을 불러 함께 제사를 올린 역사가 견우와 직녀 전설 입니다. 환웅이 도착하신곳이 강릉으로 오셔서 파주 감악산에 대기하시고 단군은 원주 감악산을 출발해 양주 감악산에 오르셨다가 양주 백련사터에서 참모들이 제사형식을 상의하고 강화로 가셔서 참성단에 오르신겁니다. 기후가 안정되면서부터는 적도 무역풍을 이용해 오셨기억 포항으로 오셨지요. 이는 연오랑과 세오녀 전설이 말해주고 경주에 불사가 크게 일어난 원인이죠. 한국 역사가 착각하는게 있는데 천자는 하늘의 아들인데 환웅단군은 호천이십니다. 환웅은 구월산에계시다 볼리비아로 기셔서 오행의 수기점을 잡으신겁니다. 하여 남북미주는 양이고 1입니다. 단군은 여인이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2대륙을 관리한거죠.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으로 주자가례가 정해져 조선이 차용한것은 맞지만 명 청에 예속된 곳이 아닙니다. 살아남기위해 역사 왜곡들을 해놓은겁니다. 제국을 무너뜨리기위해 유럽 인간들이 미처 날뛰기에 약소국으로 위장한거죠. 그동안 그믐밤을 겪었으니 이제 달빛이 보이잖아요. 역사 다시 찾아야 해요. 중원은 천자국도 아닙니다. 한때 배달국자리가 있어 천자국이었죠. 한국은 토적도 기점이 있는 지구의 하늘 입니다. 12지의 진방이 아시아입니다. 원주 감악산에는 백련사가 있는데 성벽 흔적이 있어요. 단군이 계셨었다는 의미죠. 태양신 달신의 후손들이라 천손이 되는데 중원의 종속된것 같은 역사는 이제 버리 자고요. 후천이 끝나고 선천으로 진입 했어요. 수적도에서 목적도로 이동하기에 상생상극 현상으로 이상기후가 나타납니다. 함께 고민할 사람이 없으니 난감하기만 하군요.
마땅히 해야 할 것은 지키지 않고 권위나 챙기려는 얄팍한 심성 또한 이씨왕조가 남겨준 더러운 유산 가운데 하나라봅니다. 사회 기득권들이 대부분 그런 마인드에 사로잡혀 지냅니다. 우리사회는 황족이나 왕족은 커녕 그 흔해빠진 귀족도 없는 사회입니다. 천민으로 평준화가 된 사회라 보면 이해가 빠르다 봅니다.
법률방송에서 함재봉 원장과 함께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을 통한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알아볼 수 있기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함 그 자체입니다 시청하면 할수록 그 가치가 무궁무진하니 다가오는 2025 을사년 한 해도 나날히 번창하는 유튜브 채널이 되기를 간절히 응원드립니다
1909년, 민적법을 시행합니다. 전국민 주민등록이죠. 이 때 확인된 양반 인구가 3%, 나머지 97%는 상민. 이 때 성(姓)을 갖고 있는 비율이 30% 정도였어요. 그래서 자기가 맘에 드는 성姓을 붙인 겁니다. 그래서 김씨와 이씨가 많아지게 된 거였어요. 성을 갖게 되자, 족보가 있어야겠죠. 그래서 쌀 몇 가마니 주고 족보를 사고, 남의 족보에 들어가고, 위조를 하고 등등. 어쨌든 그렇게해서 "나도 양반 후손"이 됩니다. 성씨도 생겼고 족보도 있겠다 양반 후손이 되었으니까. 양반들만 하던 관습을 해야 진짜 양반 후손이 되는 거잖아요. 그게 바로 제사입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와 한국 전쟁 이후에 제사가 전국적으로 퍼지게 된 겁니다. 백 수십 년 전 우리네 조상님들 대부분은 제사 안 지냈어요. 대부분 양반도 아니고 성姓도 없었고, 제사 지내는 방법조차 몰랐거든요. 조상 제사는 일정 기간의 시대에 유행하다 사라지는 풍습이지, 조상 전통이 아닙니다. 형제간 우애를 위한 것이라면 생일 등에 함께 모이면 되는 겁니다.
선생님 막연하게 느끼고있던 제사의식을 확인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여자이며 둘째아들로써 시집을 왔더니 시아버지와 큰아들이 되지않게 종손 놀이하면서 무시하고 억누르려는 의식을 이제야 확신을 갖게되어서 여러 모임과 교회에 퍼트렸읍니다 앞으로도 문화의 잘못된 부분을 고쳐 확인 시켜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909년, 민적법을 시행합니다. 전국민 주민등록이죠. 이 때 확인된 양반 인구가 3%, 나머지 97%는 상민. 이 때 성(姓)을 갖고 있는 비율이 30% 정도였어요. 그래서 자기가 맘에 드는 성姓을 붙인 겁니다. 그래서 김씨와 이씨가 많아지게 된 거였어요. 성을 갖게 되자, 족보가 있어야겠죠. 그래서 쌀 몇 가마니 주고 족보를 사고, 남의 족보에 들어가고, 위조를 하고 등등. 어쨌든 그렇게해서 "나도 양반 후손"이 됩니다. 성씨도 생겼고 족보도 있겠다 양반 후손이 되었으니까. 양반들만 하던 관습을 해야 진짜 양반 후손이 되는 거잖아요. 그게 바로 제사입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와 한국 전쟁 이후에 제사가 전국적으로 퍼지게 된 겁니다. 백 수십 년 전 우리네 조상님들 대부분은 제사 안 지냈어요. 대부분 양반도 아니고 성姓도 없었고, 제사 지내는 방법조차 몰랐거든요.
법률방송 재미있게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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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당첨자입니다. 출판사에서 언제쯤 연락이 오나요?
@@lawtv_kr 뉴라이트적 사관을 갖고 있는 사람의 책을 사서 보라고? 정신 차리쇼
@@lawtv_kr 오늘 책 배송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살아계실때 최선을 다하고 제사 정말 쓸대없는 일입니다 부모 형제 자매 재미나게 살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상열-o4k 살아 있을 때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꼭 이런 말을 하지..
@@concon996제사의 기원을 곡해하시네요
@@a_footpath_on_a_hill 그래요? 내가 제사의 기원을 곡해했어요? 헉
감사합니다 많은 것을 배워습니다
조선과 한국에 대한 역사, 문명, 제도, 관습등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설명을 해주셔서 흥미롭게 경청하고 있읍니다. 수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제사 다 없앴 네요.
대신 부처님 오신날 즈음 시간내서 절에 조용히 다녀옵니다.
무슨 이유가 있는건 아니고 제 생각에 제사는 시간 돈 음식 등 낭비 라는 생각이라서요.
처음엔 가족이나 친지 들이 싸가지 찾고 욕하고 머라 하더니 지금은 다 따라 합니다.
살아 계실때 잘해 드리면 돌아가셔도 후회 아쉬움 없습니다.
이왕이면 본인 생일이니 뭐니 하는 기념일도 그냥 조용히 보내길 바랍니다. 처음엔 나를 뭘로 보고 하면서 노발대발 하겠지만, 뭐 생각해보면 당신같은 하찮은 사람을 위해 돈 쓰는 게 무슨 의미겠어요. 죽은 뒤에도 그냥 쓰레기 봉투에 담아서 버려달라고 하세요. 하찮은 인간을 기억하는 것도 무슨 의미겠어요. 라고 하려다가, 마지막 가려진 멘트 "살아계실 때 잘 하세요."라고 하는 것 보고 동의함.
현명하십니다, 돌아가신 다음에 상다리 부러지게 음식차려 놓고 제사지내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정말 부모님은 살아계실때 잘해드리는것이 진정한 효도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실제로는 내 몸 하나에 내 맘(영) 하나와 수많은 맘들이 같이 있다가, 분리되면서 다시 자기와 인연있는(좋아하는) 사람이나 물건, 장소에 가는데, 주로 자식들, 친구들, 이성들, 동물, 가고 싶던 곳으로 분산,,, 그리고 이런 상황은 고정적 아닌 계속 변동적,, 제사때 모이고, 제사로 한도 풀리면 머물던 사람은 무의식 부정적 요소들이 감소됨
살아계실때 잘하는 자식이 몇이나 될까요ㅎㅎ
그냥 다 하기싫은 거겠지요ㅋㅋ
@@진석이-o1b 빙고!!!
누굴 위한 제사인지, 참..조선시대 부터 제사를 한거고 상당히 최근에 하기 시작했는데 제사 안지내면 큰일 이라도 나는줄 아는 사람들이 꼭 봤으면 하는 영상이네요!
제사는 중국풍습에서 나온겁니다, 조선에서 모든중국풍습을 들여서 이어나갔읍니다, 국어도그렇고 중국한문을...
@@동그라미-c4z 누글위해? 조상이원수인가?
@@남순우-d8s다까끼 마사오도 못 막은 허례허식이지요..쓸데없는데 돈낭비 말란 말입니다..ㅉㅉ
@@남순우-d8s 조상은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인데요? 그럼 누굴 위한건가요?
여자들만 죽어나는제사 제발좀 없애라
주자 성리학을 받아들인 조선이 유교의 전통 제도라 할 수 있는
제사와 족보을 어떻게 들여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갔는지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니 정말 최고네요 ❤
100만 달성하는 그날까지 항상 화이팅입니다 !!!
모든 사람들이 보면 좋을거 같습니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
교수님 강의 기다리다 기린됐다는.😅 함재봉교수님! 파이팅!👍
이렇케 고급진 강의를 집에서 들을수 있다니 행복 합니다.
새로운 역사를 알게되어 감사합니다 ㆍ
매번 많이 배웁니다. 역시 자신을 정확히 보는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탁월한 식견!
함재봉 박사님 강의~
잘 들었습니다.😅
무지하며 어리석은 자야 본질을 외곡하고 사상적 이념주입과 플로레타리아 관념을
무지한 인간들에게 주입화 하려는 함재봉 너의 무뇌함이 과연 올바른 지식이라 생각하나?
이젠 차례상 차리고 제사라기 보다는 부모기일에 자녀들이 화합하는 장이 마련돼야 한다. 제사음식 차리면서 먹지도 않고 그냥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차례음식은 차리지 말고 납골당이나 묘에 가서 부모의 얼을 기리고 음식은 현재 자녀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사먹는게 훨씬 좋은 방법이다.
기도나 하면 좋것냐?
쌍늠아
👍
저희는. 부모님 기일즈음에
다들 모여서 식당에서 ㅁㅏㅅ있는거 먹고 커피쇼ㅂ에서 차 한잔 마시고 헤어집니다.
집안에 종손이 그리하니, 차손들도 지내기 싫은 제사를
안 지내도 된다는 핑계와 본보기가 되어서 지금은 다들
안 지냅니다.
대신... 하나님을 믿고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의외로 조상 대대로 집안 등쳐먹던 조상귀신(절대 조상 아님, 귀신임)이 힘이 쎕니다😊😊😊
무지하며 어리석은 자야 본질을 외곡하고 사상적 이념주입과 플로레타리아 관념을
무지한 인간들에게 주입화 하려는 함재봉 너의 무뇌함이 과연 올바른 지식이라 생각하나?
@@samarian007
안밑어도 제사 안지내요
일요일 쉬어야지 청소 해야지
교회 하루종일 봉사 해야하고
돈내야 하고 그냥편하게 살자
말씀을 듣는 것 만으로도 숨통이 막히네요.북한이 따로없네요. 사람 먹을 음식도 부족한 판국에 신주단지에 정성을 다하라니..이 무슨 날벼락인가요 ? 이런 사회에서 조상들이 어떻게 500년을 견뎌냈는지..아이고...아이고..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지금의 북한을 보면 이씨조선 500년이 훤히 보이지 않습니까? 전 대한민국 수도가 한양인것도 마음에 안듭니다.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등등 백성들 피빨아먹은 테러집단의 소굴들입니다
무지하며 어리석은 자야 본질을 외곡하고 사상적 이념주입과 플로레타리아 관념을
무지한 인간들에게 주입화 하려는 함재봉 너의 무뇌함이 과연 올바른 지식이라 생각하나?
좋은강의 항상감사합니다.
그래서 ?
조선이 조센징 같어 ?
조상을 모시는 문화가 ?
조심히들 살어라!!x
개념정리가 됩니다. 감샤합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이리 오래간게 참 아쉽고,절대다수의 전백성이 가스라이팅을 당하니
그 안에서 새로운게 나오지 쉽지않았을 수 밖에 없었겠단 생각이 드니 우리 조상들이 참 딱하면서도 답답하단 생각을 지울수가없다.
좋은강의 감사합니다.
함재봉교수님 유익한말씀
재밌게잘들었습니다^^
널리 널리 알려 주세요
매우 필요하고 유익한 강의 입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역사를 왜 배우냐!!
장점을 왜곡이던 해바 너가 왜 공부를 했는지!
무지하며 어리석은 자야 본질을 외곡하고 사상적 이념주입과 플로레타리아 관념을
무지한 인간들에게 주입화 하려는 함재봉 너의 무뇌함이 과연 올바른 지식이라 생각하나?
유익한 정보 공부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아요
목소리도 좋으시고 차분히 말씀하시는게 막힘없이 부드럽게 아주 귀에 쏙쏙잘들어와서 아주 잘들었습니다
개혁이 이렇게 힘든 거군요. 그게 쉬울 리 없다는 걸 알지만 다시 한번 실감하네요. 감사합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선생님의 역사이야기.
너무 재밌게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재밌고 유익한 강의였습니다. 우리 아들들한테 꼭 보여주겠습니다~~
세종이 한글창제로 선물을 주었는데, 힘든 제사도 (정착)만들었구나 !
효 지요 .
책을 통한다면 최소 3박 4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부분을 불과 50몇분짜리 영상으로 만들어주신 채널과 함박사님께 마음으로부터 깊은 감사의 말씀 올려드립니다.
조상제사는 고려말 사대부들이 성리학 배우면서 가져온거라 그 역사가 짧아서 3박 4일 걸릴것도 없습니다.
1시간이나 30분만 설명해줘도 조상제사가 우리나라 고유의 미풍양속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게됩니다.
무지하며 어리석은 자야 본질을 외곡하고 사상적 이념주입과 플로레타리아 관념을
무지한 인간들에게 주입화 하려는 함재봉 너의 무뇌함이 과연 올바른 지식이라 생각하나?
감사하게 알게 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기제사는 가까운 친인척 단합
명절은 고향 찾으라는것으로 이해 했지요
건강에 도움되지않는 음식과 비린내나는생선
후라이팬 사용음식
없애고
시간도 저녁 시간대에 하고 있습니다
좋은 강의 잘 들었습니다
왕들만 제사를 지내다가 점점 일반인들도 지내게 되었다죠
조선시대 이전에도 평민들은 제사를 지냈습니다. 고대와 삼국시대부터 시작해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조상 숭배와 제사 의식은 일반적인 민속 문화로 자리잡았고,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영향을 받아 제사의 형식이 더욱 확립되었습니다. 평민들도 가정에서 조상에게 존경을 표하며 제사를 지내는 풍습을 이어갔습니다. (AI답변인데 뭐가 맞는거지)
@@레오-l3k 아마 '유교적 형식의 제사'를 말씀하신 것 같은데요. 제사는 고대부터 해왔던 게 맞아요. 제사는 한자와도 관련있는게, 원래
노예(民 : 사람 눈을 창으로 찌른 모양)들을 하늘의 지배자(태워서)와 조상들(묻어서)에게 드리는 행위입니다.
赤: 사람을 불에 태워 죽이는 모습, 沈: 사람을 물에 던져 죽여 수신에게 인신공양하는 모습, 陷: 사람을 땅에 생매장하여 땅의 신에게 인신공양하는 모습, 伐: 창으로 사람의 목을 찔러 죽이는 희생제사.
서양에서는 성경 때문에 몰렉과 바알이 유명하죠.
이게 점차 사람 -> 짐승 -> 음식으로 대체되어간게 제사 의식입니다. 따라서 매우 고대스러운 행위구요. 고대 어디서나 인신 제사 행위는 존재했습니다. 이게 욕구를 억제하고 이거하지마라, 저거하지마라 설파하는 불교나 기독교 같은 종교들에 의해 억제된게 중세 이후의 역사에요. 이게 적용 안된게 남미고, 그래서 인신제사 풍습이 남아있었던거죠.
종족주의의 뿌리가 성리학에서 출발하네요ㅡ!감사드립니다
뉴라이또?
@@concon996 조선시대로 돌아가라.
함재봉 교수님 우리 나라 역사
강녕 감사합니다.
오늘도공부
제사는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죽은 사람은 밥을 못 먹는다.
자기을. 태어나게 한분을 기리는것 그것이 잘못되었는가
@@남순우-d8s 중국식 종교의식이니까 문제가 되는것
@@남순우-d8s시대가 바꾸었소..제사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댓글마다 대댓글을 달고 계시네.양반도 아닌것들이 양반 티 내는것도 아니고 ㅉㅉ
충,효 논리 역시 기득권 세력들이 만들어놓은 것으로 깨어나지 않으면 오랜기간 동안 세습된 세뇌교육을 타파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임금이 백성을 위해 자애를 먼저 베풀고, 부모가 자식을 잘 보살피는 것이 먼저인데... 꺼꾸로 되었지요. 물은 거슬러 올라가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것인데...
제사 그만 지내라 제발. 결국 제사 음식 산 사랑들 다 처먹음 ㅠ
언급된 궤는 궤짝이 아니라 상청의 다른 이름인 궤연(几筵)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옛날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책상 처럼 다리가 달린 탁자, 궤연,을 흰 무명으로 둘러 친 다음 하루 세끼 상식을 드렸지요.
학창시절 그러니까 초.중.고 시절에 이런 역사를 배웠다면 좀 더 바르게 세상과 어울릴 수 있지 않을까싶네요
이씨왕조가 체제유지를 위해 주자 성리학을 마치 주체사상처럼 포악하고 거칠게 유통시켰다 봅니다. 사실 성리학 그 자체는 크게 문제삼을 게 없는 사상이라 보네요. 유통의 방법에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합리적인 마인드가 부족한 시대니 이해는 하지만 분노가 치미는 건 어찌할 수 없습니다.
@@51irustamo 님의 식격에 박수^^
한반도 작은 지역의 이기적 특징이 반영된 문화죠ㆍ유교적 현상은ㆍ
하필 고려시대부터 이어진 풍수사상에 의한 불교 접목된 사상이 조선시대 사대부들속에 스며들어서 ᆢ
자신의 가문만 ᆢ
반면 일본은 반대ᆢ
자신의 가문은 자신을 따르는
백성을 챙겨주어야하는 그들의 사고ㆍ
조선의 양반은 내가 우리 가문만 위한 삶이 오늘날에 도시 아파트 성을 여전히 만들고 있지요ㆍ
한국인의 폐단입니다ㆍ
조상위한 제사는 잘 지내면서 대도시 아파트 군들은 주변과 서양처럼 동화가 아닌 단절하면서 신 양반문화가 이어지고 있답니다ㆍ
한국사회가 더이상 발전못하는 정신세계는 유교의 장점을 사회적 활용안하고 자신들 이기심의 구석으로만 ᆢ
어디서 약을 파냐 이놈? 이스라엘 똥꼬나 빠는 놈
사회주의를 자기들 권력카르텔로 이용한 운동권들 비슷
유교 성리학의 기본은 충忠 효孝입니다 둘다 맹목적인 복종이지요
@아목동아 그것들이 동양이 서양을 못 이기는 근본ㆍ
동양은 부모 자식이 살인죄 저질러도 혈육이니까ᆢ
반면 일본 미국 유럽은 같은 죄를 저지르면 단절함ㆍ
오늘 날 한국이 더이상 서진시민과 서양서 선진국 대접아해주는 근본적 이유ㆍ
서양은옳고 그름에대한 결과가 분명ㆍ동양은 특히 유교 불교 전래 국가는 모든게 다 섭리라는 것ㆍ
이것이 향후 수만년 가도서양인들이 우월이유ㆍ
감사합니다
교수님 강의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80년대 초등학교때 학교에서 자기 성씨와 유명 조상이름 써오라는 숙제가 있었는데 전부다 조선시대 유명한 사람들 후손이라고 말하던데..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웃긴이야기 인가
그러니깐.. 그냥 다같이 배불리먹고 살면 된거지. 양반이니 노비따지는거 멍청한거지..
예전에는 암기만 시키고, 이것이 왜 나왔는 지를 깊이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냐냐-b7q양반 노비가 중요한게 아니라
대부분 가짜성이라 자기진짜조상을 모른다는게 큰일인거지
가짜양반이 핵심이 아니라 가짜성으로 살면서 가짜조상을 섬긴다는게 문제의 핵심임
무지하며 어리석은 자야 본질을 외곡하고 사상적 이념주입과 플로레타리아 관념을
무지한 인간들에게 주입화 하려는 함재봉 너의 무뇌함이 과연 올바른 지식이라 생각하나?
좋은 강의내용
어디서도 듣지못했던
강의내용 알차고 보랑되요
돼요
무지하며 어리석은 자야 본질을 외곡하고 사상적 이념주입과 플로레타리아 관념을
무지한 인간들에게 주입화 하려는 함재봉 너의 무뇌함이 과연 올바른 지식이라 생각하나?
주제로 삼은 "제사"라는 말이 "기제사(忌祭祀)"를 말할 때는 맞지만, 천신과 지기 등에 지내는 제사는 신라와 고려에도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도 사람이 죽은 날에 지내는 기제사는 송나라 때부터 시작합니다.
그것도 잘못된 풍습임. 제사는 죽은 자에게 지내는 것인데 천신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살아 있는 존재이니 제사를 올리는게 잘못이라는 옛문헌을 봤음
@@nolboo_korea 기독교? 보지 못한 예수 믿는것보다는 자기를 나아준. 조상을 경배하는것이 좋은것같음
@남순우-d8s 죄많은 니조상 ㅅㄲ들 천국에 보낼지 지옥에 보낼지 결정할 수 있는 천신을 믿는게 나쁜가? 기독교라고 특정하지 않았는데 남에게 시비 걸치고 들어오는거 보니 니조상도 알만하다
지금 말하는건 당연히 유교식 제사아닌가?
넓은 의미의 제사는 모든 종교의식을 뜻하는말이라 여기서 말하는 제사랑은 다르지
아마 함재봉 씨는 우리 민족에게 '제사'가 일반화 대중화된 것을 말하는 것 같군요.
이사람 뉴라이트 맞는거 같습니다
뉴라이트면 안되냐?
뉴라이트가 레프트 보다 더 낫다
제사가 무슨 민족의 고유하고 대단한 전통인 줄 아는 분들 많은데 제사는 중국에서 넘어온 외래 문화입니다. 살아계실 때 잘하고 제사보다는 기일에 모여 추모하고 오붓하게 가족끼리 식사 할 수 있는 가정환경이면 최고고 그런 분위기에서의 제사라면 좋죠. 근데 제사가 목적이면 싸움과 분란이 납니다
조상제사는 주나라때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일월성신에 대한 재사는 배달국 치우천황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씨조선은 제사를 상당히 늦게 받아 들였나 봅니다.
우리 나라 정치인들이 꼭 들어야 할것 같습니다
조선초기 이전에 아직 족보가 안만들어진 상태라고 해서 자신의 선대 조상에 대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슬까요? 그렇다면 족보가 16세기 이후 확산되었다고 해도 다수문중의 시조는 고려초기 인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려초기에서 족보가 확산되는 16세기까지 기준해도 수백년이 지났는데 만을 조상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면 어떻게 고려초기인물을 자신들의 시조로 설정할수 있슬까요?
물론 시조에서 부터 자신이 기억할수 있는 가까운 조상을 벋어나서 시조에 이르는 그 중간에 기록이 부실할수는 있습니다.
삼국시대부터 선대조상의 이름이 나와있는 족보도 있
어요 그때도 전해져 왔다는 거죠
@@sirenk3126 신라왕실 경주김씨족보가 대표적인 경우죠
왜냐하면 거짓말이니까요. 족보에 기록된 삼국시대-고려시대 혈통 기록 대다수는 근거가 없는 허구입니다.
단적인 예로 경주 김씨 시조는 삼국유사에 김씨 시조로 등장하는 김알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무왕비에는 김씨 시조가 김일제로 되어 있지요. 김일제는 전한시대 사람으로 김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한술 더떠서 삼국사기에는 김씨들이 그들의 시조를 소호금천씨라고 믿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삼국시대부터 혈통 기록이 존재했고 그것에 의해 족보가 만들어졌다면 이런 혼란이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심지어 왕족인데도 제대로 된 혈통 기록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던 것이 고려 말 중국으로부터 보학이 도입되면서 가문마다 혈통에 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던거죠.
그래서 족보의 시작은 거짓말이였습니다. 족보를 처음만드는 이들은 자신의 가문을 드높히기 위해 아무 근거도 없이 혈통을 마음대로 지어냈습니다. 멋대로 고대 인물을 시조로 정하고 그로부터 자신들 세대까지 맘대로 혈통을 만들어낸겁니다. 이걸 '승조' 라고 하죠. 왕족이나 귀족들이 자신의 조상을 조작하여 거짓된 혈통을 만들어내는 걸 "승조사업"이라고 하며 역사적으로 매우 흔한 일입니다. 우리나라 성씨의 시조 상당수가 중국인인 것도 이런 이유이며, 멸망한 백제 귀족 성씨가 거의 남아았지 않은 것도 이것 때문입니다. 망한 나라의 귀족이나 왕족의 후손을 자처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sirenk3126 그것도 100% 믿을 수 있는 게 아님.
대부분 위조.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종묘는 해인사 대장경판 보관소와 함께 세계 건축가들이 경탄을 금치 못하는 훌륭한 건축물이라는 게 신기하네요.
종묘가 건축적으로 그렇게 해 의미 있는 것은 아니에요. 유교주의로서 선친 왕을 모셨다는 정신적 이유로 의미 있는 곳이죠
어느 다큐에선 그러던데요.. 그냥 쉽게 지어올린 건축물이 아니고, 종묘가 가진 특별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데 대단한 원리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moonnam1778 그런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뭐가 특별하냐고 물으면 분위기 타령합니다. 그냥 종묘가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거기 끼워맞추는거죠.
한국을 방문한 어떤 유명 외국인이 립 서비스 한거 들고 와서 무슨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삽질도 빠지지 않구요. 외국인의 무의미한 립서비스에 부화뇌동하는건 이제 그만둘 때도 되었죠.
종묘는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고 특별한 건축 기술이 들어있지도 않습니다. 성리학적 건물 답게 일체의 미적 요소를 거부하고 지극히 단순하고 건조하게 건물을 만들었어요.
제사는 원시시대부터 있었다고 봅니다. 중국에서 온 것도 아니고요. 단지 제사형식을 중국 도교식으로 받아들인거죠.
동방예의지국 이라고 할때, 여기서 예의 가 예절 이라고 착각들 하는데, 그소리가 아니고 제례 를 말함.
다시말해 동이족이 제사를 잘 지냈다는 소리임.
토템이즘, 샤머니즘, 기복신앙 같은 것은 있었습니다.
이게 불교가 도입되고 한번 대통합되었지요.
고려시대 말기가 되면, 불교도 타락해서 절에 많이 가져다 바치게 되었습니다.
유교가 처음 나온 춘추전국시대도 난세라서 사찰과 같은 종교단체에 돈도 주고 마음에 안녕도 얻었습니다.
이런 것보다 가족관계로 엮어야 난세에 질서가 잡힌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상 속 부처님이 아니라, 차라리 돌아가신 조상님에 제를 올리라고 한 것이 아닐까요?
제사의 기원은 청동기 시절 제천의식입니다.
하늘의 신에게 올리던 의식에서, 천손강림설-왕은 신의 혈통이라는 믿음이 자리잡으면서 왕의 조상들을 신으로 여기고 하늘의 신을 왕의 조상으로 치환해서 의식을 올렸는데 이게 제사의 기원입니다.
즉 제사는 왕족들에 한해서 하는 의식이였던거죠.
그러다가 작은 나라들이 보다 큰 나라에 복속되어 연맹왕국 - 봉건국가로 변해가면서 작은 나라의 왕족들이 큰 나라의 귀족으로 흡수되서도 조상 신에 대한 제사 전통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조선말까지 '제사'는 진짜 고대 왕족, 귀족들의 후손들-명문 사대부 가문들이나 하던 것이였는데 신분제 질서가 동요하면서 저마다 양반 후손을 참칭하하기 위해 저마다 제사를 지내게 된거죠.
모두가 제사를 지내는 지금의 모습은 근대에 만들어진 전통입니다.
@@davidjacobs8558
'동방예의지국'이란 표현은 1449년 명나라 정통제가 오이라트족을 정벌하러 나섰다가 참패하고 포로가되어버린 '토목보의 변' 이 일어나 명나라 위신이 땅으로 떨어졌을때, 조선만이 변함없이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치고 제후국으로서 예의를 다하니 여기에 명나라 관료들이 감동하며 '너희는 다른 오랑캐들과는 달리 예의를 아는구나' 라고 칭찬하면서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한겁니다.
현대의 가치관으론 전혀 좋은 의미도 아니고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도 힘든 표현입니다.
부디 그 본래 뜻을 헤아려 여기에 포함된 굴욕의 역사를 이해하시고 이런 표현은 다시 쓰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뉴라이트 맞네요 그게 우리나라 정이에요 외국에서도 부러워해요
단군때부터있던제사를 ᆢ
제사를 안지내니까 형제자매백부숙부사촌조카 모두 남남이되고 얼굴도 모르게됩니다....
훌륭한 집안이로세!
뉴라이트.
좋은강의 감사합니다..😊
관혼 상제 지역마다 다르고 원례 없었지요~
기준이라는게 만들어지면 전통이 되고, 그 기준과 전통은 백성을 다스리는 수단을 만들어내고, 그 속에서 권력이 생겨나게 된다. 충과 효는 이미 인간의 깊은 심성에서 나온 듯하여 쉽게 반할 수가 없기에, 이를 좋은 뜻과 함께 가정과 적은 단위 집단의 화합과 더불어 위로는 백성을 관리하는데, 정치에 활용하는 것이다,
박사님! 강의 잘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본격적으로 사람구실을 하고 제대로된 나라의 구실을 갖추게 된게 빨라야 17세기부터 19세기 후반입니다. 사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19세기 초중반부터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거나 나라 구실을 하게 된 겁니다. 프랑스를 예로들면 나폴레옹 이전까지는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20%에 불과했고 독일 이탈리아는 19세기 후반에야 하나의 국가로 통일 된 것이고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전통과 관습이 생긴게 18세기 19세기 들어서 입니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제대로된 나라라고 보기 어려웠을 겁니다.
제사 거부합니다
제사는 양반들만 지내는 것이었는데, 1909년 민적법 시행 이후 성씨와 족보가 생기고, 양반 후손이 되자,
양반 후손되었음을 외부로 자랑해야 하고 체면을 세워야 했기에
제사가 전국적으로 퍼지게 된 것입니다.
한국인의 정을 외국에서 해석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정이란 간단히 정의하자면 "남을 내 가족처럼 여기는 마음"이다.
교수님 설명을 듣다 보면 다 수긍이 되는데 타인을 형 동생 이러는 것을 비근대적이라고 말하는게 좀 우습네요. 언어의 형식과 내용의 관계를 더 깊게 생각해 봐야 하실듯
@@liberty-korea11ㅣㅣㅣ1ㅣ4ㅣ111ㅣㅣ1ㅣㅣㅣㅣㅣㅣ1ㅣㅣㅣ1ㅣㅣㅣㅣ1ㅣㅣ1ㅣㅣㅣㆍ노ㅡ😮😮ㅇㄹㄴㆍ😢6ㅈ😮❤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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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웃기고 있네
한국의 정은 오지랖임
항상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오늘도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조선은 초기에는 좀 덜했는데 점점 중기로 갈수록 남성우월주의, 성을 죄악시하는 금욕주의가 엄청나게 심해지는데 그 이유를 자세히 알수있어서 유익한 영상이었습니다.
오오
육육
대한민국이 새로운 현대시대 흐름을 만들어 체계로 잡기위해서 , 앞을 내다보는 성찰이 담긴 강의였다고 생각됩니다
함재봉님, 최고의 명강이었습니다.👍
족보 만드는 보학이 수입된 것이 아무리 빨리 잡아도 고려 중기 이후이며 이것이 보편화되는건 조선초임.
15세기 이전의 족보 기록은 대부분 후대에 작성된 것으로 근거가 부족한 것들입니다.
정확합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족보 95%는 위 변조 된... 즉 가짜가 대부분이라는 것.
함박사님의 말씀은 지극히 학자적 입장에서의 설명이라 봅니다. 가감이 없는 개관적 설명이라 저는 특별히 위화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제가 가진 초보적인 지식과 상식만으로도 별다른 거부감없이 학습할 수 있는 역사지식이라 생각합니다.
저희 집 족보를 보면 고려 때 중국에서 황제의 사신으로 왔다고 하는데 왠지 왕건에게 성을 하사 받은 집안은 아니니 중국 성씨 중에서 하나 고르고 중국에서 왔다고 하자 해서 갖다 붙인거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흔한 김이박은 아니기에 주인집 성 따른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모르겠습니다. 요즘 트렌드는 조선시대 중국 종법 도입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족보를 믿는 분이 있다니.... 하하하. 그리고 그 당시 중국이란 나라 개념은 없었습니다.우리 나라 사람은 자신의 족보를 보면서 간혹 '우리 조상은 중국에서 건너 왔다~' 뭐 이런 식으로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우리 조상들이 중국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거기에 살다 점차 한반도로 온 것이다 라고 해야 맞습니다.
@@LaniakeaSuperclustet 손문이 중국이란 나라를 국호로 정하기 전에는 중국이란 나라가 없었으므로 과거에 중국사람이란 것은 없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한국인 중에는 자신의 족보를 보면서 종종 "우리 조상은 중국에서 건너 왔다~" 뭐 이런 식으로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우리 조상들이 중국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거기에서 살다가 점차 한반도로 이주해 온 것이다' 라고 해야 맞습니다.
사대주의를 따른 것으로 보이네요. 중국이 우리보다 더 큰 나라였으니까 조상이 중국 출신이면 더 위대하게 보여서 그랬을 겁니다.
제사 풍습은 제발 사라저야 합니다 아무 의미 없습니다/자식에게 물려주기 싫어 저는 몆십년 지내오던 제사를 시부모님 모두 돌아가신후에 몰매 맞을 각오를 하고 총대를 메고 기어코 끊어냈습니다.속이 다 시원하고 삶이 깃털 처럼 가벼워 젔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내용입니다.
오늘 조선 이태조 묘가 뉴욕 부근에 있다는 사진과 자료를 보았네요.
조상제사의 시작은 단군 초기부터 입니다.
강화 참성단이 한님의 제사를 위해 건축 한거지요.
그당시 바이칼 부근의 빙하가 녹아 중동쪽에 계시던 한님이 귀천사셔서 중남미에 계시던 환웅을 불러 함께 제사를 올린 역사가 견우와 직녀 전설 입니다.
환웅이 도착하신곳이 강릉으로 오셔서 파주 감악산에 대기하시고 단군은 원주 감악산을 출발해 양주 감악산에 오르셨다가 양주 백련사터에서 참모들이 제사형식을 상의하고 강화로 가셔서 참성단에 오르신겁니다.
기후가 안정되면서부터는 적도 무역풍을 이용해 오셨기억 포항으로 오셨지요.
이는 연오랑과 세오녀 전설이 말해주고 경주에 불사가 크게 일어난 원인이죠.
한국 역사가 착각하는게 있는데 천자는 하늘의 아들인데 환웅단군은 호천이십니다.
환웅은 구월산에계시다 볼리비아로 기셔서 오행의 수기점을 잡으신겁니다.
하여 남북미주는 양이고 1입니다.
단군은 여인이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2대륙을 관리한거죠.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으로 주자가례가 정해져 조선이 차용한것은 맞지만 명 청에 예속된 곳이 아닙니다.
살아남기위해 역사 왜곡들을 해놓은겁니다.
제국을 무너뜨리기위해 유럽 인간들이 미처 날뛰기에 약소국으로 위장한거죠.
그동안 그믐밤을 겪었으니 이제 달빛이 보이잖아요.
역사 다시 찾아야 해요.
중원은 천자국도 아닙니다.
한때 배달국자리가 있어 천자국이었죠.
한국은 토적도 기점이 있는 지구의 하늘 입니다.
12지의 진방이 아시아입니다.
원주 감악산에는 백련사가 있는데 성벽 흔적이 있어요.
단군이 계셨었다는 의미죠.
태양신 달신의 후손들이라 천손이 되는데 중원의 종속된것 같은 역사는 이제 버리 자고요.
후천이 끝나고 선천으로 진입 했어요.
수적도에서 목적도로 이동하기에 상생상극 현상으로 이상기후가 나타납니다.
함께 고민할 사람이 없으니 난감하기만 하군요.
전국민이 숙질관계 즉 아저씨아줌마가된것은 6.25때문입니다.
또 제사는 나름대로 상고시대 때도 있었습니다. 족보도 나름 그이전에 있었기때문에 지책으로 편찬할수 있었던것이지 조상의 대를 몰랐던것은 아닙니다. 또한 적장자는 장가가지 않았습니다.
살아 계실때 최선을 다해서 효도해야지 죽고나서 제사 지내는 문화는 어리석고 비합리적입니다.
당신이 뭔데 제사를 불합리적이라고 단정하는가 ?
아직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 조선이 망했죠 중공인일 수도 있겠으나...
맞는 말입니다.
제사는 없애는 게 맞습니다.
@강욱원-k5b 조선이 망한 것은 변화해야할 때 변하지 않아서 만동묘에서 명나라 황제한테 제사나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제국주의시대에 망한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국제사회는 힘의 원리로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timothycheon 제사 지내야 한다는 분께 드린 말씀입니다 오해하셨다면 죄송
이상해서 검색해보니 뉴라이트라고 뜨는데..뉴라이트 맞으세요?
안녕하세요? 지난 12회 강의 이벤트에 당첨이 되었는데 아직 책을 받지 못했습니다. 운영자님의 확인 부탁드립니다.
함박사님의 말씀 , 개인 감정이 배제된 담백한 설명이 인상적입니다. 무지몽매한 저와 같은 인간에게도 잔잔한 전율과 감동을 느끼게 해 주십니다. 박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삼국사기에도 사직의 중요성에 대해서 여러곳에 기록하고 있는데왜 조선부터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나.
제를 올린것이지 제사 즉 절은 안함ㆍ
무슨말이나하면 음식차리고 예만 올림ㆍ즉 머리숙여 예
제사는 절하는 것 의미
제사유례 정보 감사합니다 ~^^
🎉🎉
함교수님 감사합니다. 많이 깨우쳤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것은 지키지 않고 권위나 챙기려는 얄팍한 심성 또한 이씨왕조가 남겨준 더러운 유산 가운데 하나라봅니다. 사회 기득권들이 대부분 그런 마인드에 사로잡혀 지냅니다. 우리사회는 황족이나 왕족은 커녕 그 흔해빠진 귀족도 없는 사회입니다. 천민으로 평준화가 된 사회라 보면 이해가 빠르다 봅니다.
성종 때 관청에서 민적을 기록 했다 잘못된 역사를 얘기한다
법률방송에서 함재봉 원장과 함께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을 통한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알아볼 수 있기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함 그 자체입니다
시청하면 할수록 그 가치가 무궁무진하니 다가오는 2025 을사년 한 해도
나날히 번창하는 유튜브 채널이 되기를
간절히 응원드립니다
고려시대 삼년상을지냈다는 기록이있는데ㅣ😊
제사에관한 기록을 소개 해 주시기 바랍니다
1909년, 민적법을 시행합니다. 전국민 주민등록이죠. 이 때 확인된 양반 인구가 3%, 나머지 97%는 상민.
이 때 성(姓)을 갖고 있는 비율이 30% 정도였어요.
그래서 자기가 맘에 드는 성姓을 붙인 겁니다. 그래서 김씨와 이씨가 많아지게 된 거였어요.
성을 갖게 되자, 족보가 있어야겠죠. 그래서 쌀 몇 가마니 주고 족보를 사고, 남의 족보에 들어가고, 위조를 하고 등등.
어쨌든 그렇게해서
"나도 양반 후손"이 됩니다.
성씨도 생겼고 족보도 있겠다
양반 후손이 되었으니까.
양반들만 하던 관습을 해야 진짜 양반 후손이 되는 거잖아요.
그게 바로 제사입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와 한국 전쟁 이후에
제사가 전국적으로 퍼지게 된 겁니다.
백 수십 년 전 우리네 조상님들 대부분은
제사 안 지냈어요.
대부분 양반도 아니고 성姓도 없었고,
제사 지내는 방법조차 몰랐거든요.
조상 제사는 일정 기간의 시대에 유행하다 사라지는 풍습이지, 조상 전통이 아닙니다.
형제간 우애를 위한 것이라면 생일 등에 함께 모이면 되는 겁니다.
불교가 고려신라시대때 아무리 국교지위를 가졌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종교신앙에 그친것이지 유교가 국가통치이념인것은 조선시대나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최고 👍
하늘에 제를 지낸건 단군시대때도 있었구요.. 우리나라 족보를 보면 삼국시대에도 이어집니다. 그 족보대로 다 제사를 지냈어요 조상들에게
고맙습니다,,, 이제야 알게되었으니
선생님 막연하게 느끼고있던 제사의식을 확인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여자이며 둘째아들로써 시집을 왔더니 시아버지와 큰아들이 되지않게 종손 놀이하면서 무시하고 억누르려는 의식을 이제야 확신을 갖게되어서 여러 모임과 교회에 퍼트렸읍니다 앞으로도 문화의 잘못된 부분을 고쳐 확인 시켜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909년, 민적법을 시행합니다. 전국민 주민등록이죠. 이 때 확인된 양반 인구가 3%, 나머지 97%는 상민.
이 때 성(姓)을 갖고 있는 비율이 30% 정도였어요.
그래서 자기가 맘에 드는 성姓을 붙인 겁니다. 그래서 김씨와 이씨가 많아지게 된 거였어요.
성을 갖게 되자, 족보가 있어야겠죠. 그래서 쌀 몇 가마니 주고 족보를 사고, 남의 족보에 들어가고, 위조를 하고 등등.
어쨌든 그렇게해서
"나도 양반 후손"이 됩니다.
성씨도 생겼고 족보도 있겠다
양반 후손이 되었으니까.
양반들만 하던 관습을 해야 진짜 양반 후손이 되는 거잖아요.
그게 바로 제사입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와 한국 전쟁 이후에
제사가 전국적으로 퍼지게 된 겁니다.
백 수십 년 전 우리네 조상님들 대부분은
제사 안 지냈어요.
대부분 양반도 아니고 성姓도 없었고,
제사 지내는 방법조차 몰랐거든요.
혹 제사 때문에 갈등이 있거나 무시를 당하면, 제가 드린 설명을 그대로 설명을 해드리세요.
조상 제사는 일정 기간의 시대에 유행하다 사라지는 풍습이지, 조상 전통이 아닙니다.
형제간 우애를 위한 것이라면 생일 등에 함께 모이면 되는 겁니다.
❤❤❤❤❤❤❤❤❤❤❤
고조선 시대부터 천제를 지내온 우리 민족입니다. 시작이 잘못되셨습니다. 함선생님!!!
삼국 고려시대에 지내지 않았다면 민족의 전통이 아닌 외래풍속임
이건이분의사견같다 우리나라환인과환웅때그리고고조선이때의 문화가중국으로넘어가서다시들어온것으로보는데
매우 존경합니다.
500백년전
현 시대와 그 현장.
상황을 실제적으로
정확하게 사실근거를
따져서 팩트(Fact)를
전해주시는
역사학자 프로페서님께
귀중한 사료분석
강의 매우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제사는 그만.. 살아있는 조상 요양원에 데려다 놓았다가 죽으면 상차리고 끝? 살아있을때는 멀리하고 죽으면 정성을 다해?
개혁은 솔선수범 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