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일본을 이렇게나 몰랐나... (일본판 탄금대 전투가 먼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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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1 лют 2025

КОМЕНТАРІ • 242

  • @박용택-z9j
    @박용택-z9j 9 місяців тому +118

    대마도주는 전쟁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기때문에 전쟁을 막고자 일부러 국가기밀인 조총을 알려주었는데도 조정은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

    • @교관이아빠
      @교관이아빠 9 місяців тому

      조정이 철저히 무시한이유
      1.권력욕 때문이지
      조선시대나 지금은 북한핵문제로 비교할수 있는데 다 정치적으로 해석하면서 자기 국회의원이나 장관한번 더 해먹을려고 하지
      전쟁에는 관심없다
      2.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은 다 사기꾼이다
      3.피해보는건 백성이나 국민들이다

    • @maple4801
      @maple4801 8 місяців тому +29

      다 이유가 있었다. 당시 조선이 보기엔 총은 대포에 비해 아무리 봐도 나을게 없었다. 한발 장전하는데는 숙련된 사수가 쏴도 5분이지 그렇게 해서 고작 한명 죽이지 명중률이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지. 서양에서도 머스킷 명중률이 개판이라 일렬로 서로 마주보고 쏘던게 1800년대까지 있었으니 틀린말도 아니었다. 그리고 총을 도입한다 해도 그 많은 화약을 어디서 도입하는가? 대포에 쏠 화약도 아껴갔는데. 그래서 도태한거였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조총 사법을 받아들이고 일본인들이 조총제작방법을 알려주면서 조선 중기만 해도 모든 병력 심지어 포졸 조차도 조총으로 무장한다

    • @chriskim2958
      @chriskim2958 8 місяців тому +5

      ​@@maple4801동의합니다. 당시 상황이라면 솔직히 조총보단 대포 개량이 더 시급했다고 봅니다. 서양 홍이포가 마카오를 중심으로 중국에 유입되었는데 갠적으로는 조총보다 홍이포를 빨리 알게되어 전장에서 사용 되었다면 더 좋았을거라 생각합니다.

    • @라이언쇼
      @라이언쇼 8 місяців тому +23

      결과론적으로 선조들의 판단을 무시하고 깔보면 안됩니다. 우리야 결과를 알고 있으니 조선이 조총 무시했다고 비아냥 거리지 저 시대엔 나름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어요.
      님은 님 아들이 불과 5년전에 왜 엔비디아 주식 안사고 있었냐고 비난하면 뭐라하실거에요?

    • @samc9725
      @samc9725 8 місяців тому +11

      연사 가능하고 곡사도 가능한 활이 머스킷의 초기형인 조총보다도 딸리는 이유가 결정적으로 살상력에 있다봄.

  • @청솔향-g9u
    @청솔향-g9u 9 місяців тому +53

    사람은 따악 자기수준대로 남을 평가한다.......

    • @sonhuengmin1
      @sonhuengmin1 8 місяців тому +5

      조선도 대비는 했지만 그 관점을 상대방이 아닌 자신에 맞췄던 것이 패착

    • @centurionkwk
      @centurionkwk 8 місяців тому

      ​@@sonhuengmin1 망하는 자들의 공통된 습성임.

    • @sonhuengmin1
      @sonhuengmin1 8 місяців тому

      @@centurionkwk 네. 반복되는 성질이죠

    • @시바이누-d6l
      @시바이누-d6l 3 місяці тому

      +)자기만 맨날 힘들고 자기만 노력하는줄 알음ㅋㅋ 상대는 뭐 가만히 있겠냐고ㅋㅋㅋ

  • @jhs4652
    @jhs4652 8 місяців тому +69

    지금도 일본을 모릅니다

    • @sonhuengmin1
      @sonhuengmin1 8 місяців тому +15

      ㅇㅇ모르죠. 대부분 감정이 먼저 앞서죠

    • @파우스트-t6i
      @파우스트-t6i 8 місяців тому

      ​@@sonhuengmin1진짜 병신들이 보면 특히 국뽕채널들.. 뭐만하면 우리가 일본을 뛰어 넘었다느니 뭐라느니 하면서 정신승리 합니다 상대를 얕보는것도 모자라 냉정하게 판단해야할 상황에서도 감정적으로 대응하는거 보면 그냥 민족 DNA인듯

    • @alphago2000
      @alphago2000 8 місяців тому

      일본이 한국을 모르지 뒤쳐지는건 일본 한국은 미국과 유럽상대로 장사하려고 정신없음

    • @서리아-t5z
      @서리아-t5z 8 місяців тому

      ​@@sonhuengmin1알죠 우리가 생존하기위해 전부 죽여야한단건

  • @오소리-t8t
    @오소리-t8t 8 місяців тому +22

    조총도 조총이지만 전국시대 때 실전으로 다져진 전쟁실력의 일본과 북방의 여진족만 방비했던 조선은 전투경험에서 차이가 컸을듯. 조선군은 급하게 끌어모아 오합지졸

    • @freakinchicken
      @freakinchicken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정확히는
      북방에서 지지고볶은 군민들 -> 당연하게도 정예군임
      하삼도에서 농사지으며 평화롭게 살던 군민들 -> 당연하게도 못싸움
      물론 남도 군민들도 한가할때 활쏘며 놀던 이력이 있어서인지 의병으로 조직되니까 꽤나 잘싸우지않았나

    • @75grosso
      @75grosso 8 місяців тому

      @@freakinchicken 북방을 지키던 군사들이 상대적으로 정예는 맞는데 조정이 왜군을 얕보고 있었고 국경 수비 병력 뺀다는게 쉽지 않은 일이라 일단 전선 투입이 너무 늦었고
      왜군 장수부터 병사까지 숙련도가 높아서 백병전에서도 조선군이 크게 밀린건 맞음
      왜군 주력이 계획보다 너무 빨리 밀고 올라가서 보급로 길어지고 조선 의병들은 주로 후방 보급로를 끊은 건데 이게 효과적으로 먹혔지

    • @dndnpdp20
      @dndnpdp20 8 місяців тому

      @@freakinchicken 딱히 하삼도도 마냥 평화로운건 아니었음 판옥선이 언제생긴건줄 암?? 명종시대임 ㅋㅋㅋㅋ 도요토미가 전국통일하기전까지 왜구들이 산발적으로 하삼도 들어와서 약탈하고 그래서 당시 하삼도에도 갑사와 병력이 상시 주둔하고 있었음 ㅋㅋㅋㅋ 임란초기에 미친듯이 밀린 까닭은 경상 전라도 병력 죄다 모아서 상주 대구쪽에서 지휘관 기다리고 있다가 왜군이 먼져와서 싸워보지도 못하고 와해된게 컷음 ㅋㅋㅋ 그때 지휘권자가 빨리와서 방어선 형성하고 지연전 펼첬으면 한성까지 파죽지세로 밀리지는 않았을것임

  • @요정맥주
    @요정맥주 9 місяців тому +19

    상대를 우습게아는순간 패배.

    • @sonhuengmin1
      @sonhuengmin1 8 місяців тому +1

      당시 을묘왜변후 조선조정도 대비는 했지만 많아봐야 5만명을 잡고 준비. 문제는 동북아의 병력 동원 상식을 뒤엎는 20만명이 침략. 결국 상대를 얕보고 기준을 상대가 아닌 내 자신에게 맞추면 ..

  • @북쪽동네
    @북쪽동네 8 місяців тому +15

    아주 멍청했쥬~~ 우물안에 개구리들이 지들끼리 싸우기 바빠 나라밖 상황에 관심 없었쥬~~

    • @victorygreat4763
      @victorygreat4763 8 місяців тому +2

      현재진행형이쥬~!!

    • @asas-oo8ik
      @asas-oo8ik 8 місяців тому +2

      ㅋㅋㅋ지금도 전쟁끝난지 몇십년만에, 심지어 얼마전에도 국군이 전사했는데, 한국 인간들 머릿속에서 전쟁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지~ 임진왜란 전에 대규모 전쟁이 몇백년 전에 있었는걸로 아는데 과연 저 당시 사람들에게 전쟁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있었을까?

    • @sjeoendiowksbsjsel
      @sjeoendiowksbsjsel 8 місяців тому

      우리 민족은 그런 쪽으로 DNA가 있어..
      안으로 지지고 볶고 싸우는데 열중하고 그러다가 스스로 망하는 유전자.
      연개소문 사후 고구려꼴이고 나당 연합군 앞의 임존성 백제부흥군 꼴이지... 적이 눈앞에 있는데도 자기들끼리 싸우고 죽이다 스스로 멸망함. 일본 분위기 파악히라고 보냈는데 당파가 입장이 달라. 서인은 일본이 쳐들어온다 하니 동인은 그럼 우린 반대로 하자며 치고박고 싸움.
      지금 민주주의도 우리와 안 맞아.. 이건 아예 공식적으로 내분 일어나라고 판을 깔아놓는 상황임.

  • @japanese_4
    @japanese_4 8 місяців тому +4

    근데 조총운용하기도 힘들었었음
    조총을 운영하려면 일단 질산칼륨이 필요한데
    그 질산칼륨을 만들기가 굉장히 어려움
    한반도에 질산칼륨 생산이 기록된게 정조실록부터임
    상비군부터 예비군 징집병까지 조총으로 다 무장시켜야되는데 당시 염초 생산력으로는 불가능했지
    그리고 자연초석이 나오는 중국한테 수입할라쳐도 굉장히 비쌈
    상공업은 경시당하고 조선 전역을 잇는 교통망조차 부족했던시기에 전군의 기본을 조총으로 바꾸기에는 돈도없고 체계도 안잡혀있었음
    그래서 그런걸수도있음
    현실적으로 조총으로 바꾸기엔 힘이들었는데
    시연해보니 나무판을 가볍게 뚫어버리고
    고민중이던때 옆에서 입발린말 해주니까 그쪽으로 기운거지

  • @최해송-n2p
    @최해송-n2p 8 місяців тому +6

    소중국은 항상 아무런 근거도 없이 주변의 힘 센 형님들을 깔보고 조롱하며 대비도 안 하다가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쥐어터지는 역사를 반복해왔다.

    • @갸떼
      @갸떼 8 місяців тому +1

      그렇긴 하네
      광해군 빼면

    • @아연-c2g
      @아연-c2g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중국도 지 몸집 크다고 깝치다가 몽골 일본 영국 프랑스 미국한테 골고루 줘터지기만 했지 ㅋㅋ 조선보고 비웃을 뭐가 못된다

    • @최해송-n2p
      @최해송-n2p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아연-c2g 그런 중국을 주인님으로 모시던 곳이 소중국 아닙니까?

    • @이영준-o9d
      @이영준-o9d 8 місяців тому

      ​@@최해송-n2p 원래 인간사가 그렇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면 우쭐대다가 당하곤 하죠.

    • @ganzylee812
      @ganzylee812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최해송-n2p 지금도 쒜쒜하고, 큰 산봉우리라면서 모시고 있는중임

  • @simonlee7536
    @simonlee7536 8 місяців тому +16

    통상 서양사학계에서 활의 도태 이유는
    다음에 기인한다 보는데요
    통상 활은 강궁이어도 사수의 힘이 받쳐줘야 그 위력이 나옵니다 즉 사수 역량에 따라 활의 위력이 천차 만별인데 이걸 정예화하려면 훈련이 엄청 필요합니다
    그치만 총은 일정 훈련만 시키면 강한 놈이 쏘나 약한놈이 쏘나 치명적 살상력이 나옵니다 이게 거시적 측면에선 엄청난 전투력 차이를 불러오죠
    게다가 활은 갑옷 같은 방어장구가 가미되면
    화살 관통력은 급감합니다

    • @pan_c9972
      @pan_c9972 8 місяців тому +3

      이게 맞죠. 임진왜란까지만 해도 활의 고점이 뛰어났지만, 빠른 인력 양성에 있어선 총을 따라올 수가 없었죠. 괜히 전후 포수의 수가 늘어난 게 아니죠.

    • @azxsa1123
      @azxsa1123 8 місяців тому

      석궁과 장궁병의 차이이기도 하죠

    • @aikawa1
      @aikawa1 8 місяців тому

      활이랑 조총이랑 살상력 자체가 너무 차이가 남.

    • @pan_c9972
      @pan_c9972 8 місяців тому

      @@aikawa1 살상력이 의미있게 증대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겁니다. 살상력보다도 갑옷의 관통력을 비교해봐야 하는데, 초기 총은 생각보다 그리 강력하지만은 않았다고 합니다. 왜란 이후 발발한 일본 내전 기록만 봐도 총탄 여러 발 맞고도 계속 싸웠던 사무라이들 기록이 있습니다. 물론 그만큼의 용기와 기백을 강조하는 문구라고도 봐야겠지만요.

    • @LOONAyyxyOEC
      @LOONAyyxyOEC 8 місяців тому

      뭔 개나소나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수있는걸
      거창하게 말하고있노 ㅋㅋㅋ대단한 발견인것마냥

  • @후니즈-q8u
    @후니즈-q8u 8 місяців тому +3

    활은 숙련자와 비숙련자의 명중률 유효사거리 차이가 극심한 물건입니다
    또한 전투용 품질좋은 활을 제작할때 필수로 수입해야하는 물건들이 끼어있어서
    소모전을 할때 사수가 전장에서 사망할경우 원활한 무기와 병력 보급에 어려움을 겪죠
    그에비해 조총은 명중률이 형편없긴해도 재료를 수입없이도 국내에서 제작이 가능했고
    소모전이 일어나도 사수확보에 활보단덜 어려웠고 장전과 화약보급과 기상에 따라
    큰영향을 받는 문제가 있었으나
    장전만 되면 쓸만한 살상력과 관통력을 가진 물건이라
    관리와 통제가 잘되는 제한적인 상황에서 큰위력을 발휘햇던것 같습니다
    또한 적절한병력 구성과 전법으로 약점을 커버할수있습니다

  • @정재성-c1l
    @정재성-c1l 9 місяців тому +11

    그렇게 보는 이유로 조선은 이미 화약무기기술이 상당수준에 있서서 포병전력에 있서서는 일본보다 월등히 우위였습니다. 일본은 조총만 대량생산했지 포병전력은 제대로 존재하지 못했습니다.
    유럽에서 조총을 도입했다라고 하지만 불랑기 홍이포등은 도입하지 않았죠.

    • @김병순-r3d1p
      @김병순-r3d1p 8 місяців тому

      담시 포병은 산탄도 아니고 있어봐야 성벽깨는 용도로 밖에 못쓰는데

    • @정재성-c1l
      @정재성-c1l 8 місяців тому +1

      @@김병순-r3d1p 그래도 포병이 있는것과 없는것은 차이는 상당합니다. 공성용까지는 아니더라도 살상력에서 그냥 조총보병과는 차원이 다르죠.

    • @김병순-r3d1p
      @김병순-r3d1p 8 місяців тому

      @@정재성-c1l ?? 조총은 직사화기고 포는 곡사화기인데 산탄도 안되는걸 누가 맞아요 운좋게 맞춰도 두세명 죽지

    • @정재성-c1l
      @정재성-c1l 8 місяців тому +2

      @@김병순-r3d1p 정밀타격살상이 목적이 아니죠. 그냥 폭팔반경을 크게 하는것이 목적이죠.

    • @pan_c9972
      @pan_c9972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조란탄이라고 해서 산탄으로 쏠 수 있는 사양도 있었습니다. 포병이 대인전 및 방어전에서 큰 힘을 발휘한 전투도 많구요.(대표적으로 행주대첩)

  • @정재성-c1l
    @정재성-c1l 9 місяців тому +10

    문경세재방어를 안한것을 아쉬워하지만 문제는 문경세제가 아니더라도 소백산맥을 넘어올 길이 더러 있다는 것입니다. 죽령과 조령은 험준하지만 그 아래 추풍령등은 비교적 순탄한 편입니다. 만일 문경세재를 틀어막았다면 왜군은 추풍령으로 우회했슬것이 분명합니다.

  • @goodday-w9s
    @goodday-w9s 8 місяців тому +18

    비 오면 쏘지도 못해 장전 느려..사치품에 가까운 엄청 비싼 화약..국가가 아닌 수백년간 해적 했던 놈들인데 설마 했던거죠..그런데 히데요시가 통일하고 상황이 역전..동북아 최강병력에 국력은 조선이 넘볼 수준이 아니었죠..임진왜란은 정말 조상님들이 동북아 최강을 상대로 엄청 잘 싸우고 잘 막은거임..

    • @song0105
      @song0105 8 місяців тому +2

      전 국토가 초토화되었지만..

    • @onlyROK
      @onlyROK 8 місяців тому +2

      대신 희생이 너무 컷던... 이러나 저러나 결국 우리땅에서 피를 너무나 많이 흘린 전쟁이죠. 그덕에 경각심을 갖게되긴 했지만

    • @sjeoendiowksbsjsel
      @sjeoendiowksbsjsel 8 місяців тому +1

      당시 일본군이 그 시절 세계최강 군대였다던디... 실전경험 가진 정예병력 20만을 다른 나라에 원정 보내서 깽판 칠 수 있는 나라는 그 당시 유럽과 아시아 통틀어 일본 밖에 없었다고...

    • @twosometime2692
      @twosometime2692 7 місяців тому

      ​@@sjeoendiowksbsjsel 메이지 직후때는 세계최강 맞지만 왜란때는 아님 ㅋ 일단 화포 없는거 부터가 ㅋ

  • @batuu2601
    @batuu2601 8 місяців тому +4

    최종병기 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조총을 무시함
    그러나 총소리에 말이 놀람
    신립의 기병.....

  • @헤헤-p1t3o
    @헤헤-p1t3o 8 місяців тому +4

    저 선조역할은 볼때마다 레전드네 ㅋㅋ

  • @SON-rn8ug
    @SON-rn8ug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징비록이전 사극에서는 조총이마치 연발사격을 가능한마냥 다루었습니다 조총은 조선군같은 화포개념이라 보면될듯요 즉 공성전이나 매복공격할때 쓰는것이지 근접전에서는 목숨이 왔다갔다하는상황이라 쓸수가없죠

  • @Kkoko-g8c
    @Kkoko-g8c 7 місяців тому

    무슨영화인가요 아니면 드라마인가요? 아니면 여러가지군데서 뽑아온건가요

  • @또똘치
    @또똘치 9 місяців тому +4

    왕이 무지해서 힘들게사는 백성들은 더욱 힘들어지고 나라까지 뺐겼으니 한심할 뿐이네 나라를 뺐껴서 지금까지 남북으로 갈라져 살고 있으니 누굴 탓하냐 무지한 왕 때문인걸.

  • @다롱이삼춘-i6q8x
    @다롱이삼춘-i6q8x 8 місяців тому +19

    시대가 변하는 줄도 모르고
    구습에 젖어서 허우적대던 나라
    그러면서 수차 하나도 없어서
    (문종때 수차를 일본에서 도입하려다 신하들의 반대로 무산)
    관개농업은 꿈도 못꾸고
    천수답으로 농사짓던 위대한 나라 조선

    • @갸떼
      @갸떼 8 місяців тому +3

      웃긴건 지금도 그럼
      발전한게 1도 없음

    • @철이-s2v
      @철이-s2v 8 місяців тому

      뭔 개소리

    • @alphago2000
      @alphago2000 8 місяців тому

      @@갸떼뭐가 발전한게 없다는거냐

    • @갸떼
      @갸떼 8 місяців тому

      @@alphago2000 두고보셈
      중국과 북한이 과연 인식대로 못살지
      곧 깜짝 서프라이즈 이벤트 있음

  • @Iooxocc
    @Iooxocc 8 місяців тому +3

    신립의 신포도질

  • @sangkim7504
    @sangkim7504 8 місяців тому +3

    검술 창술도 한참 일본 아래였죠

    • @Kesap541
      @Kesap541 7 місяців тому

      그쵸
      그 유명한 이순신이 단병접전만큼은 피했죠

  • @송정훈-x9x
    @송정훈-x9x 8 місяців тому +1

    보통 조총의 서양은 2열로 했는데 일본은 3열로 개량 그란데 조총이란게 따로 쏘는게 아니라 일제히 쏘기때문에 커다란소리 그리고 조준이 필요없다 소리도 엄첨크고 이걸 몰랐지

  • @하이젠버그-b3b
    @하이젠버그-b3b 8 місяців тому

    수정 선조 실록 말고 이전 실록에서는 조총이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는 예상보다 많은 왜군, 그리고 숙련된 아시카루 장창 부대였습니다. 그리고 전쟁 수행 경험이 남쪽 지방은 부족했었던 등 상대의 전력을 잘못 파악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조선군은 이시애의 난을 통해서 이미 화력전을 충분히 경험을 했었습니다. 조총 운영법과 비슷하게 승자총통을 3단방식으로 운영했었습니다. 행주대첩이 가능했던 것이 이런 화력전 수행 경험이 있었던 거죠. 방영 당시에는 몰랐지만, 고증으로 들어 갈 수 록 사극의 오류는 많다고 생각듭니다.
    다시 말하지만, 임진왜란에서 우리 조상들이 애먹었던 것은 조총보다 아시카루의 장창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수성전과 유격전 위주로 전투를 했었고요. 그래서 전쟁 후반으로 갈 수 록 조선군이 익숙하게 일본군을 대응하는 전투가 늘어납니다.

  • @아저씨-r6c
    @아저씨-r6c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왜군의 정규병력과 실전경험이 없으니 상대의 전략을 몰랐고 자신의 뇌피셜에만 의존한게 패배의 원인.
    하지만 이순신은 마찬가지로 왜수군과 실전경험이 없었지만 상대의 전략을 분석하고 전술을 고안해 싸운게
    승리의 원인이였다.

  • @leonardlee5176
    @leonardlee5176 7 місяців тому

    화살은 관통력이 약해서 방패 뒤에 서면 막을 수 있다. 조총은 방패로 막을 수 없다.

  • @조희만-f9f
    @조희만-f9f 8 місяців тому

    저 때 고니시는 조선과의 무역업이 주업이라 조선과의 전쟁을 피하려고 무척 노력을 했어요.

  • @_REBORN_OF_GANG_GAM_CHAN
    @_REBORN_OF_GANG_GAM_CHAN 8 місяців тому

    지금으로 치면 저격잘하는 세계최고의 저격수출신 국방부측 지도자가 기존의 "레이저 살상무기"의 단점만 보고 개개인이 레이저무기 사용하는 외계문명의 고도로 선진화된 병력앞에서 무력화되는거랑 똑같음.

  • @월정교-m5z
    @월정교-m5z 8 місяців тому

    지금도 정치인들보면 조선시대 정쟁하던 놈들과 상당히 닮아 있소이다
    이걸 어찌할까요

  • @정병창-y8w
    @정병창-y8w 9 місяців тому +18

    3열사격이 단점을 개선한 것은 아니라고 하네요.
    실제로 단가가 높아서 많은 병사가 조총을 사용할 수도 없었고, 3열 사격이라면 전 병력의 1/3만 사격할 수 있는거고, 조총은 직사화기라 방패같은 것으로 앞을 막으면 효과가 없는데, 활은 곡사화기로 사용할 수 있죠. 특히 편전 같은 경우는 사거리는 일반 화살보다 더 길고, 속도는 더 빠르고 보이지도 않는다고 하죠. 물론 우리나라 활이 조총보다 사거리가 길었습니다.
    임진왜란 초기에 우리가 졌던 것은 평화에 젖어있던 것이 제일 큰 이유라고 할 수있겠네뇨.

    • @onlyROK
      @onlyROK 8 місяців тому +4

      3열 사격은 오히려 뒤쳐진 방식이였던게, 당시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는 중남미 공략할때 12열 사격까지 고안해서 써먹었음. 물론 이건 인력+장비+기술이 밑바탕으로 깔린 열강들이니 가능한거였고
      영상에서 나오듯 조총의 최대장점은 갑옷, 나무판자, 판금등 모든걸 뚫어버리는 파괴력이라서 다른 모든면에서 뒤떨어졌는데 일본이 이걸 적재적소에 잘 써먹었음 뭣보다 임진왜란에서 강력했던건 심리적인 부분이 컷음
      일부 귀족들과 장성들만 조총의 존재를 알았지 일반백성들에게 조총은 여전히 신무기라 소리만 들어도 그 위압감에 도주하는 경우가 많았음

    • @11_Gaius_Julius_Caesar
      @11_Gaius_Julius_Caesar 8 місяців тому

      그게 아닙니다. 탄금대 전투를 보면 싸운장소가 논지 인데다가 자기 논밭을 발고 다니지 말라는 명령 때문에 조총병과 싸우려면 좁은 도랑을 지나 반드시 조총 사거리의 절반 안에 들어선 후에나 활을 쏠 수가 있었습니다. 즉 만약 조총 사거리가 100M라고 한다면 이런 지형은 반드시 50M나 40M 가까이 가야 겨우 사격이 가능한 그런 지형이라는 거죠.
      이런 지형에서 싸운다면 사거리 밖에서 활 쏘고 퇴각한다는 전투를 할 수 없고 또 넘어선 안되는 논 밭이라는 명령 때문에 논을 피해서 가자니 병목현상이 일어나 제대로 퇴각도 못하는 등 .... 그냥 이론만 알고 실전 경험이 없다는 지휘관이 왕 초보라는 것이 저 탐금대 전투에서 드러난 거죠. 지휘관이 저 따위면 절대로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저 전술은 자기 논밭을 모두 스스로 파괴한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는 이민목식 전투법입니다. 농경민이 할 수 있는 전법이 아니라는 거죠. 저런 황당한 명령을 할 거면 농성하는 게 더 낫고요.

    • @11_Gaius_Julius_Caesar
      @11_Gaius_Julius_Caesar 8 місяців тому

      그게 아닙니다. 탄금대 전투를 보면 싸운장소가 논지 인데다가 자기 논밭을 발고 다니지 말라는 명령 때문에 조총병과 싸우려면 좁은 도랑을 지나 반드시 조총 사거리의 절반 안에 들어선 후에나 활을 쏠 수가 있었습니다. 즉 만약 조총 사거리가 100M라고 한다면 이런 지형은 반드시 50M나 40M 가까이 가야 겨우 사격이 가능한 그런 지형이라는 거죠.
      이런 지형에서 싸운다면 사거리 밖에서 활 쏘고 퇴각한다는 전투를 할 수 없고 또 넘어선 안되는 논 밭이라는 명령 때문에 논을 피해서 가자니 병목현상이 일어나 제대로 퇴각도 못하는 등 .... 그냥 이론만 알고 실전 경험이 없다는 지휘관이 왕 초보라는 것이 저 탐금대 전투에서 드러난 거죠. 지휘관이 저 따위면 절대로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저 전술은 자기 논밭을 모두 스스로 파괴한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는 이민목식 전투법입니다. 농경민이 할 수 있는 전법이 아니라는 거죠. 저런 황당한 명령을 할 거면 농성하는 게 더 낫고요.

    • @1원-j5p
      @1원-j5p 8 місяців тому +7

      총은 일주일 가르치면 농민도 쏘는데 전쟁용 활은 당기는 힘이 50kg이 넘어서 아무나 못쏨 제대로된 궁수 만드려면 1년넘게 훈련시켜야됨

    • @sonhuengmin1
      @sonhuengmin1 8 місяців тому +1

      ​@@1원-j5p 매장 포스 다루는 것처럼 금방 하죠

  • @samz188
    @samz188 8 місяців тому

    소유 하였다고 제대로 성능을 안다고 할수도 마음껏 활용 할수 있다고도 할수 없다!!

  • @jsj870
    @jsj870 7 місяців тому

    저렇게도 정답은 다알려주는데 안듣는 조선
    이순신장군 아니었음 구한말까지 안갔을

  • @kailee29th57
    @kailee29th57 8 місяців тому

    오늘날도 비슷하다고 봄.

  • @논스톱논스톱
    @논스톱논스톱 7 місяців тому

    조선 대체적으로 우물안 개구리로 자초했음. 아편전쟁도 청나라가 황궁까지 털린 전쟁인데 청나라가 이긴 것으로 착각하고 개항 후에는 국가재정,군사력,사회인프라가 개판이고 구시대적인데도 정신력만으로 싸울 수 있다고 착각하고

  • @김재원-q5f
    @김재원-q5f 7 місяців тому

    신립이 지형지물 파악이랑
    조금만 더 전술적인 준비를 잘했다면
    충분히 이겼을지도 모름

  • @강아지고양이-g3o
    @강아지고양이-g3o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조총은 당해보기 전에는 얼마나 강한지 모르지. 제대로 운용하는 적에게 당해봐야 생각보다 훨씬 강하단 거 깨달음.

  • @송송-s3e
    @송송-s3e 8 місяців тому

    논외로 식량의 자급이 힘들고 조선보다 본토가 더 먼 대마도는 일본과 조선 사이에서 참 험난한 외교노선과 삶을 살았지..조선의 입장에서는 막상 정벌해도 유지하기엔 막대한 비용이 드는 계륵인곳..

    • @jhs4652
      @jhs4652 8 місяців тому

      계륵도 아니고 쓰레기땅이에요 자급자족이 안되니 세금만 들어가고 자원도 없고 그냥 대마도주를 통해 통제만 유지하는 편이 조선 입장에선 합리적인 선택

    • @송송-s3e
      @송송-s3e 8 місяців тому

      @@jhs4652 몇번 가봤는데 그 시대 기준으로는 쓰레기땅이 맞긴함...농지가 거의없는 100킬로미터 가까이 온통 산으로 이루어진 길다란 섬에 정복해본들 딱히 조선에 대한 왜의 침략용 병참기지를 막는정도(근데 왜의 침략에 대한 조선내 평가도 당쟁으로 갈렸으니 의미없고)나 왜구의 근거지를 토벌해서 위험을 제거하는 정도로 보기엔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지역임..뭐 지금도 어자원 풍부한것보면 그때도 어자원만큼은 풍족했을듯

  • @jowoohada
    @jowoohada 8 місяців тому

    상식적으로 딜레이는 교차사격으로 커버한다는걸 모를리가 없는데…궁수들도 화살쏘고 화살 보급겸 후방으로 빠지지않나??

  • @ju7126
    @ju7126 8 місяців тому

    활도 좋긴한데 활써보신분은 알지만 파괴력이 총보다 매우 약합니다
    그리고 활은 체력소모가 매우큰편이죠 활에서 총으로 갈아탄거는 어쩔수 없는 운명입니다
    리치또한 힘에 비례하고 장비도 좋아야 하는데
    총은 바람을 활보다 적게 탈만큼 로우리스크 하이리턴이죠

  • @우마이우마이-l4t
    @우마이우마이-l4t 8 місяців тому

    조총편제 비중 높지 않았고 그냥 전반적인 병사,병기,전술,편제 의 미흡함으로 초반에 많은 패배를 야기한 것 왜군의 원거리 무기역시 활의 비중이 높았음

  • @rainbowsea9679
    @rainbowsea9679 8 місяців тому

    유럽이나 미국과 같이 평지에서는 3열종대,횡대종대,횡대로 총을 쏠 수 있다 .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70 %가 산악지역에다 언덕이 많고 . . .
    2열종대,횡대도 어럽다.
    거기다 화약을 이용하기에 비가 오면 사용불가 . . .
    조총의 한계임 .
    거기다 한 번 발사를 위해 최소 30초 준비에 오발탄에,정확히 조준이 안됨.
    유효사거리가 요즘 소총과 달리 짧음 .
    요즘같은 소총으로 생각하면 안 됨 .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멈.

  • @마산아저씨-d9u
    @마산아저씨-d9u 8 місяців тому +3

    적을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다.
    이순신은 매번 싸울때마다 적의 상태와 위치를 알고
    적의 무기의 장단점과 아군 수군의 장단점을 알고 싸웠으니
    그 많은 전투에서도 한번도 패하지 않았던거지.

  • @청천고운
    @청천고운 8 місяців тому +1

    활이 사거리가 더 길면 궁기병이 조총 사거리 밖에서 활을 쏘면 될 거 같은데...

  • @유툽-t1z
    @유툽-t1z 7 місяців тому

    10년전만 해도 인터넷에서 조선 활이 우월하고 조총은 열등한 무기라고 알고있던 사람 많았음

  • @yangmichael1521
    @yangmichael1521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안일한게 이것뿐인가
    나라가 분질러져도 반성은 고사하고 모른척하던 선비들임

  • @ILoveBigMac-n5d
    @ILoveBigMac-n5d 8 місяців тому +1

    활도 명중률 좋은거 아님. 국궁 숙련자들은 145미터 5발 1순 쏘면 다 맞추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 초보들은 한발도 못맞추고 근처에만 감. 총처럼 자세 좀만 바뀌어도 방향이 달라짐.

  • @퀸비틀즈
    @퀸비틀즈 8 місяців тому

    조총의 가장 무서운점은 갑옷을 뚫을 수 있다는 점...

  • @金官整泰
    @金官整泰 9 місяців тому +4

    3열교대야 활 쏠때도 쓰던 방법이고.... 저 때 총이 확실히 원시적인 물건이었으니...

  • @seo845
    @seo845 8 місяців тому

    조선침공때 일본는 투입된 인원과 자원낭비가 어마어마해 다시 전국시대로 회귀할뻔 했다지.

  • @j8663
    @j8663 8 місяців тому +2

    저때 활이 아닌 승자총통이랑 비교를 했었어야 했었슴
    조선에 화승총이 들어오기전 까지만 해도 조선군의 개인소화기는 승자총통이었는데
    이건 현대의 샷건 같은거라 사거리는 짧고 화승총 보다 화약도 많이 들고 심지가 다 타들어가야 쏠수있다는 단점이 있는데 반해 화승총은 사거리도 길고 화약도 적게 들고 명중률도 좋아서
    정유제란이 끝나고 조선에서도 본격적으로 화승총개발및 양산에 들어가게 됨
    그리고 신립은 북방여진족들이랑 드잡이질을 했었던지라 궁기병들이
    효과적이었을것이라고 판단을 했었던거 같음
    여진족들도 궁기병 위주로 운영을 했을것이고 그때문에 여진족을 잡을려면 활 보다는 세총통이나 사전총통 같은 화약무기가 필수였었다고 함
    총통의 명중률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지만 소리에 놀래서 말들이 겁을
    먹게 되니 이점을 노린것
    헌데 소리에 놀래는건 조선군측 말들도 마찬가지 였을건데 이소리에 적응이 되어서 총소리에 놀라지는 않을것이고 화승총 장전시간이 오래 걸리니 말의 기동성을 살려서 치고 빠지는식으로 싸우면 된다는것이
    신립의 생각이었던거 같음
    헌데 탄금대전투의 주 전장이 탄금대가 아니라 충주달천평야 였었다고 함
    달천평야는 지금도 논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임진왜란당시에도
    논밭이었을것임
    탄금대전투가 6월달에 벌어진 전투인데 이때는 비도 자주 오는데다가 논에 모를 심는 시기 이기도 함
    이말은 즉 논밭이 진흙탕 뻘밭으로
    바뀌어 있는 상황
    이런상황에 논에 들어가게 되면 발이 푹푹 빠지게 되고 움직이기 조차 힘들게 되어버림
    이러면 말의 기동력은 없어진것이나 다름없는셈이고
    이때문에 김여물이 그렇게나 기병전술은 안된다고 조령에서 진을 쳐야 한다면서 말렸는데도
    신립은 끝까지 기병전술만을 고집함
    헌데 훗날 조선총병들이 사르후전투에서 후금팔기군에게
    개처발린걸 보면 신립이 기병전술을 고집한것도 이해는 감
    단지 장소에 맞지않은 전술을 고집
    한것이 문제 였을뿐

  • @닷짜
    @닷짜 8 місяців тому

    명성황후 흥성대왕군 쇄국적책

  • @kbzkbz2000
    @kbzkbz2000 8 місяців тому

    일본의 조종부대도 첫 전투가 당연히 아닐 테죠. 일본 기병이나 일본 궁병이나 이런 병과와 일본 전국시대에 조총으로 수 많은 전투를 치루웠고 그에대한 경험과 대책도 많았을 것을 조선군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죠. 결국 임진왜란 이후 조선도 많은 수의 조총병을 양성했던 것을 보면... 현실에 대한 정보부족 자체가 일본의 조총을 상대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임진왜란 전부터 일본과 무역교류를 이유로 일본에 몇병의 첩자라도 보내고 일본의 정보를 꾸준히 수집했더라면... 조총의 위협과 일본의 전투력에 대해서 철저하게 대비할 현실적 감각을 가지게 되었을 텐데... 우물안 개구리처럼 눈과 귀를 막고 쇄국으로 일본에 대한 정보조차도 젼혀 없었으니... 갑작스런 일본의 침략에 완전히 무방비가 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 @catthestupid2686
    @catthestupid2686 8 місяців тому

    일본이 교묘하게 무기는 보여주되 어떤식으로 운영하는지의 전술은 드러내지 않았지... 조총이 일본에 처음 갔을때도 재장전 시간이 길다고 무기 취급을 안했음

  • @김재원-q5f
    @김재원-q5f 7 місяців тому

    근데 조총 쏘는 절차랑 사정거리 생각해보면
    충분히 무시할만하기는 함

  • @이신-d4i
    @이신-d4i 8 місяців тому

    깊게 생각할것도 없이 조선의 장군들이 쓰는 활은 각궁이잖아.
    저건 엄청나게 비싼활이야. 일반 조선군들은 아마 죽궁을 쓰겠지?
    총과활이 다른점은 총은 수십발이라도 쏠수 있지만 활은 불가능하다는 점
    총이 활에 비해서 떨어진다는 가장 큰 증거는, 조선 스스로가 활을 버리고 조총병을 양성한다는거지
    나선정벌때는 청나라도 놀란다고, 조선군이 워낙 총을 잘쏘니싸.

  • @유툽-t1z
    @유툽-t1z 7 місяців тому

    근데 정작 저 뒤로 400여년이 흐른 뒤에 일본군은 닥돌 전술 위주로 퇴화함

  • @herochoi-m1q
    @herochoi-m1q 8 місяців тому

    신립: 조총? 장전할때 시간 오래걸림. 그때 썰어버리면 됨.
    일본: 응 3교대^^

  • @sfk1031
    @sfk1031 9 місяців тому +4

    신립이 산으로 들어갔으면 마속이 될뻔 했지. 그랬으면 고니시는 신립을 상대하기보다 그대로 한양으로 고고싱 했겠지.
    그랬으면 고니시에 선조는 잡혀서 항복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랬으면 신립은 명나라 정벌의 선봉대가 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지.
    기마병력 몇백명과 전투경험이 없는 농민들을 다 합쳐도 1만조차 안되고 그걸 막을 성도 없고 일본이 후회하는게 선조를 잡지 못한건데

  • @제발좀잘생각해봐
    @제발좀잘생각해봐 9 місяців тому +2

    ..
    예전부터 우리나라는 뭐랄까
    우물안 개구리였나.. 일본은 서구 근대를
    빨리 받아들였는데.. 왜 우리조상은

    • @easyhistorystory
      @easyhistorystory  9 місяців тому +1

      일본처럼 처음부터 서구에게 뚫렸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버티다 결국엔 서구가 아닌 일본에게 당했으니까요.
      물론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지만요.
      댓글 감사합니다.

    • @전병철-u8b
      @전병철-u8b 9 місяців тому +1

      성리학 유교문화 때문이죠

    • @lescho1000
      @lescho1000 9 місяців тому

      지금도 똑같음... 민주당 머저리들은 더욱

    • @교관이아빠
      @교관이아빠 9 місяців тому +3

      우리조상님들은 자기 권력유지해야 되는데 나라발전시킬 생각 절대 안하죠
      그 시대에 없었고 역사도 잘 모르지만 정치인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 @제발좀잘생각해봐
      @제발좀잘생각해봐 8 місяців тому +2

      @@교관이아빠 어케보면 우리나라도
      몇천년 역사인데 .. 안타까운거 같아용..

  • @EDD-uf9ru
    @EDD-uf9ru 8 місяців тому

    조선군에게 차라리 쇠뇌를 더 보급했으면 하는 아쉬움..

  • @タワーマン入城
    @タワーマン入城 8 місяців тому

    전체 역사를 통틀어 봤을때 사람들이 단순화하고 간과하는게 전술이나 무기는 실제 세계 전사에서 그렇게 큰 효과를 내는 경우보다 부수적인 것이었음.
    지금같이 정신력이나 이런게 별 영향이 없는 간접적인 살상무기와는 달리(지금도 물론 훈련도는 매우 중요함) 달리 근대까지만 해도 군대의 훈련도, 실전경험, 사기가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함, 그 다음이 전략전술, 그 아래가 무기체계라고 생각. 전투와 전쟁에 이골이 난 군대가 일본 전국시대 놈들이었는데 너무 안일하고 평화에 젖어 방만한 조선과 싸움에 이골이 난 전쟁병기들이 가득했던 일본이 만나 나온 병크라고 생각함. 실제로 피지컬에서는 조선인이 항상 우위였겠지만 그 피지컬도 물렁살이 되고 유약한 농부로 살면 의미가 없죠. 농부가 힘은 세더라도 병기를 다루는 실력이나 전투에 대한 경험부재에서 오는 유리멘탈 등..실전경험이야 훈련에서 끌어올려도 한계가 있긴 하겠지만 지원이나 교육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많이 가진 지휘부의 혜안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죠. 현대사에도 해당되는 얘기..

  • @유상규-w4z
    @유상규-w4z 8 місяців тому

    이때 일본은 50발 조총 있었음
    따발총은 아니고 지금의 크레어모어 같은거
    휴대용 조란탄이라 보면 됨

  • @sfk1031
    @sfk1031 9 місяців тому

    화약총은 일단 비용이 너무 비쌈. 임진왜란이 아니였으면 비싼 화약으로 전쟁하는건 상상조차 못함.
    1차대전때 이탈리아에서 트랙터 수준의 전차를 개발했을때와 비슷하지. 경험하지 못한 무기를 평가하는건 당시에는 불가능하지.
    실지로 조총은 그렇게 많지않고 대부분 검이나 창으로 전쟁했지. 개전 초반에 겁주는 목적으로 쓰고 결국 창과 검이 주력이였지.
    몇백명의 병력으로 10만의 병력을 대응하는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데 성에서 존버했으면 선조는 확실히 일본에 잡혔음.

  • @pan_c9972
    @pan_c9972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조총은 당시 화포 강국이었던 조선이 무시할 만 했고, 조선이 밀린 이유도 조총 때문이라기 보다 대규모 원정군 예측이 실패했고 당시 군제로는 쾌진격하는 큰 군세를 막을 수 없어서였음.
    그나마도 신립이 막을 기회가 있었지만 배수진이라는 희대의 트롤이 있었고...
    조총 때문에 초반에 패전했다는 건 이젠 조금 오래 된 의견임.

  • @레발랑도르
    @레발랑도르 8 місяців тому

    조총은 농민도 징집해서 원거리 투사 무기를 숙련시킬수있는 장점이 젤크다
    활쏘기 연습이랑 조총사격 뭐가 더 빠르겠냐

  • @tjt89765
    @tjt89765 8 місяців тому +1

    ㅈㄴ열받는건 병자호란엔 조총으로 기병한테 개털림 걍 무기탓이 아님

    • @갸떼
      @갸떼 8 місяців тому

      왜 전쟁땐 뒤에 있으면서
      평상시엔 앞에서 깝치고 다니는지 모르겠음
      더 병sin같은건
      다른 나라는 활이 남자답지 못해서
      안쓰였는데 이나라는 활의 민족이라면서
      좋아함 역사를 진짜 개ㅈ으로 배워서

    • @강아지고양이-g3o
      @강아지고양이-g3o 8 місяців тому

      ​@@갸떼 ? 활이 안 쓰였다는 건 대체 뭔 헛소리냐? 어느 나라 전쟁이든 전사자의 70퍼센트 이상은 활에 의해 났는데?

    • @갸떼
      @갸떼 8 місяців тому

      @@강아지고양이-g3o 주 선호도가 높지 않았다는거지

    • @ldk059
      @ldk059 8 місяців тому

      ​@@갸떼그냥 총이라는 신무기가 나왔으니까 비율이 줄어든거지 뭔 남자답지 않아서임? 말같지도 않은 소리하네

  • @hyunseokyoo8434
    @hyunseokyoo8434 8 місяців тому +2

    반만년 역사라 떠드는 민족이 바로 옆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아직도 모른다..

  • @춤추는로
    @춤추는로 9 місяців тому +13

    신립이 아니라도 졌어요
    신립이 배수진 을 한 이유는
    병사들이 도망 못치게 한거죠 그만큼 조선군의 전투력이 낮고 훈련이 안됬죠 신립군이 전멸했지만 덕분에 고니시군도 사상자가 많이 나서 병력이 1만초반대로 줄어들었죠
    신립입장에서는 도망치려는 군사를 잡아놓으려면 배수진을 치는 방법 밖에 없었죠

    • @easyhistorystory
      @easyhistorystory  9 місяців тому +4

      목숨 걸고 싸운 신립 장군을 무조건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결과가 아쉽기는 합니다.
      긴 댓글 감사합니다.

    • @김기백-z9t
      @김기백-z9t 8 місяців тому +3

      ? 탄금대 전투에서 일본군 피해는 150명 정도 였어요 조선군은 전멸했고

    • @lgr6562
      @lgr6562 8 місяців тому +1

      ​@@김기백-z9t ㅋㅋ무슨 150드립임 그때 타격이 커서 고니시부대의 북진이 정체되었도 그래서 한양에 2번째로 들어온거임

    • @김기백-z9t
      @김기백-z9t 8 місяців тому +6

      @@lgr6562 하. 고니시가 한양을 함락시킨 시간이 탄금대 전투 이후 4일만이였습니다. 어떤 사료를 보고 일본군이 크게 당했다고 애기하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만약에 탄금대 전투에서 고니시군이 크게 당했다면 한양함락이 이렇게 빨리 되지 않았게죠

    • @pan_c9972
      @pan_c9972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신립이 북방의 명장이었기 때문에 과거나 지금 많이 변호하는 의견이 많은데, 못 싸운 건 맞아요. 신립이 데려간 8천은 수는 적을지 몰라도 왕이 배치해준 정예군이었고, 병력의 훈련도 및 사기가 낮다고 해도 문경에서 틀어막고 수비하지 않을 이유는 못 됩니다. 그냥 전략 전술을 잘못 짜고 진 거예요.

  • @loo1700
    @loo1700 7 місяців тому

    조총 총알속도 초속200미터정도 하고 활은 초속40미터~80미터 숙련자의 능력치에 따라서 다름 조총이 활 보다 최대 비거리나 관통력이 더 좋습니다 누가 활이 조총보다 비거리가 길다고 헛소리 하시나요?

  • @Kesap541
    @Kesap541 7 місяців тому

    학교다닐때 맞고 다니던애를 무시하면 생기는일

  • @tjt89765
    @tjt89765 8 місяців тому +1

    개한심하다 열받네

  • @제네럴젠소그라노
    @제네럴젠소그라노 8 місяців тому

    일본창병상대로 기마대는 힘못씀 칼보다 창이 먼저닿음

  • @reconnaissance12xx
    @reconnaissance12xx 8 місяців тому

    총을 1명이 쏘냐?
    3열 교대로 장전 대기 발사 ~ 무한반복인데 ㅂ ㅅ ㄷ

  • @월정교-m5z
    @월정교-m5z 8 місяців тому

    신립 이놈들 자손들까지 모조리

  • @그람어
    @그람어 9 місяців тому +3

    신립이 문제였네 절때 상대를 우습게 봐서는 안된다 싸움에는?

    • @easyhistorystory
      @easyhistorystory  9 місяців тому +1

      맹수도 사냥할 때는 최선을 다한다고 하는데, 당대 최고의 명장이라고하니 너무 자만한 것 같기도 합니다.

  • @kdwni03
    @kdwni03 9 місяців тому

    솔직히 조총을 우습게볼만한데 만약 임진왜란 전에 우리도 조총이있었다면 어땠을까요?

  • @572sem3
    @572sem3 9 місяців тому

    .. 문제는 저 조총의 소리를 너무우습게본게아닌가싶은 ... 활보다 소리는분명 컷을것인데 으음 ...

    • @easyhistorystory
      @easyhistorystory  9 місяців тому +1

      무관급은 조총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조총을 처음 본 일반 병사들은 엄청 무서웠을 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hnh8371
    @hnh8371 9 місяців тому +4

    조총부대 스고이 이러는 거부터가 역사적 오류아님?
    기본적으로 냉병기시대에 백병전 자체에서 전국시대를 거친 일본이 기본 디폴트값이 냉병기 실전경험으로 어나더 레벨인데 당시 값비싼 조총을 무슨 현대 소총사격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자체가 모순이고 망상아닌가요???
    그냥 아 우리 조선 약하진 않았다. 그냥 적이 더 강했을뿐. 무슨 졌잘싸 같은 정신승리도 아니고 ㅋㅋㅋ

  • @Kjy-c6f
    @Kjy-c6f 8 місяців тому

    원균이나 신립이나 그노무 똥고집,,,,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고 겸손할줄 알아야 리더 인데~
    하긴 왕 자체가 무능한데
    뭘 바래

  • @abc1a
    @abc1a 8 місяців тому

    조총때문에 털리지 않음?

  • @hojinlee3967
    @hojinlee3967 8 місяців тому

    오다 노부나가 > 신립

  • @Meoseum
    @Meoseum 8 місяців тому

    당연히 일 본놈인데 별 볼일 없었겠지 하지만 이제 조 선는데 ㅋㅋ

  • @mangwonfish
    @mangwonfish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왜선 수백척이 부산앞바다에 이미 당도했는데 윤석렬 정부는 아직도 일본이 라인을 먹지 않을 거라고 무능하고 무지하고 무기력한 상상만 하고있다 진짜 망할 정부다

  • @namuliky
    @namuliky 8 місяців тому +1

    탄금대를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조총을 깔 본 신립의 치명적인 안목이 안스럽지만 그가 나라와 백성을 생각한 충정만큼은 높게 사고 싶다. 탄금대를 보면 그는 질 경우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기가 보인다. 난 탄금대를 보고 존경심이 생겼다.

    • @tthwang3169
      @tthwang3169 8 місяців тому +1

      그 충정이 자신의 부하와 조선 최고의 정예병을 사지로 몸,
      능력은 부족하고 오만함은 관우보다 더 함

    • @doublejoker5019
      @doublejoker5019 8 місяців тому +1

      탄금대도 그렇지만 더 뭤같은건 배수진을 친게 ㅉㅉ

    • @ldk059
      @ldk059 8 місяців тому +1

      명장이라는 놈이 지형도 모르고 병사들을 사지로 보내는 전장을 선택한게 뭐가 안쓰러움? 숫자도 더 적은데 정면승부 했다는게 어이없지

    • @namuliky
      @namuliky 8 місяців тому

      신립 장군을 다시 보자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는 여진족을 상대하던 군인이고 조총을 가진 왜는 생애 처음 상대하는 군이였으며 문경에서 적을 상대했어야 했다는 전술은 당시 군사들이 도망할 염려도 있어 그래다는 썰이 있고. 그가 가진 군의 종류가 요즘으로 치면 기갑병으로 산에서 하는 게릴식 전투는 곤란하다. 또 그가 임란에 투입될 땐 급박한 때라 지형지물을 살필겨를 없었음이 짐작 된다.
      단지 그가 가진 최강의 전력으로 죽어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우국충정을 다시 보자는 거다. (이순신 장군은 오천년 역사에 휘귀한 사례다. 이런 신 급인 분을 내세워 자꾸 비교하면 우리같이 보통의 인간은 서 있을 공간이 없어진다. 난 그 분이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 @231-o6y
    @231-o6y 8 місяців тому

    ㅅㅂ다 저렇게 화살쏘는게 쉽냐ㅋㅋ

  • @Hwan__hee
    @Hwan__hee 8 місяців тому

    사거리가 짧아서 얍본거아님?

  • @user-rr6iw7ov4g
    @user-rr6iw7ov4g 8 місяців тому

    자기땅에서 방어하는대도 기마병을 논밭에서 굴리노ㅋ

  • @김건욱-h6h
    @김건욱-h6h 8 місяців тому

    3열교대 개구라임 유럽도나폴레옹시대되서생긴거임

  • @swwoo1955
    @swwoo1955 9 місяців тому +1

    조총이 그렇게 위력있는 무기가 아녀... 뭘 알고 영상을 올려야지

  • @BIG_TRAIN
    @BIG_TRAIN 9 місяців тому

    신립이 머저리내

  • @wallolo
    @wallolo 8 місяців тому

    애초에 백병전에서 밀려서 무너진 것이지 조총은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 @동호한-k3p
    @동호한-k3p 9 місяців тому

    주몽이 저 시대 인물이였으면 공중부양 하다가 조총에 맞아 뒤졌겠네 ㅋㅋㅋ

  • @장만석-d5d
    @장만석-d5d 9 місяців тому

    일본음 조총이 있지만 조선에겜 화약무기가 있죠. 이걸 모르는 조선까들은 역사를 모르네요.

    • @김병순-r3d1p
      @김병순-r3d1p 8 місяців тому

      대포 있어봐야 성벽깨고 해전메서 말고 쓸모가 없다

    • @maple4801
      @maple4801 8 місяців тому

      ​@@김병순-r3d1p 육상에서도 대포 잘만 썼다. 그리고 대포가 아니어도 한국에는 신기전과 비격진천뢰라는 무기가 있었다. 왜군들이 이걸 벌벌 떨었다고 하지

    • @DK-xz5yt
      @DK-xz5yt 8 місяців тому

      깔만하니 까지 ㅋㅋㅋ

    • @강아지고양이-g3o
      @강아지고양이-g3o 8 місяців тому

      동양은 수학과 기계공학이 발달하지 않아 제대로 된 포가가 없어 야전에서는 포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음

    • @maple4801
      @maple4801 8 місяців тому

      @@강아지고양이-g3o 뭔 헛소리인가? 피타고라스의 정리나 이차방정식 같은 건 이미 동양에도 있었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불랑기포라는 신무기가 들어와서 잘만 써먹었다

  • @MRSONBS1
    @MRSONBS1 8 місяців тому

    일본 속담...개는 지 덩치에 맞춰 굴을 판다...딱 자신의 수준만큼 타인을 평가한다

  • @godblessme618
    @godblessme618 8 місяців тому +2

    조총땜에 피터진게 아님........병력이 너무 차이가 났어......숫자도 질도......

  • @뮤-y3h
    @뮤-y3h 9 місяців тому +2

    선조가아니고 전라디언 방계출신 이연임..
    왕시호가 아까운놈

  • @ginrjok
    @ginrjok 9 місяців тому

    근데 ㅆㅂ 우리나라 활 쏘는 실력 생각하면 그랬을 수도..... 있었겠다....싶음.....적당히 잘쏴야지.......

    • @easyhistorystory
      @easyhistorystory  9 місяців тому

      무관들이나 일부 정예병들은 잘 쐈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훈련 부족이었을 겁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ginrjok
      @ginrjok 9 місяців тому +1

      @@easyhistorystory 지금 군대도 미련한 장성들 우리는 강하고 다 잘 싸운다. 생각하는 것처럼 저 당시 무관 ㅁ머리들도 그렇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드네용 ㅎㅎ

    • @easyhistorystory
      @easyhistorystory  9 місяців тому

      설마 쳐들어오겠어 라는 생각으로 일단 큰소리 뻥뻥 치는 심리도 있을 듯 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