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가 나 국딩 2학년 때인데, 아빠하고 TV권투중계 보고 있었는데 경기가 중단 되더니 관중들이 우루루 나가는게 아닌가??? 갑자기 동네에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고... 그러자 동네 5학년 형아는 전쟁 났다면서, 이제 학교 안간다면서 교과서 공책 등등 전부 찢어발겨 버렸으나 그 형아가 그토록 염원하던 전쟁은 당연히 안나고... 그 형아는 나중에 학교가서 선생님 한테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았음... 리웅평 상위 미그기 귀순으로 인한 남조선 비공식 인명피해: 부상 1명 (선생님 에게 맞아 치명상)
저 당시 비상착륙 현장에 아버지가 계셨음. 수원 10전투비행단에 복무하고 계셔서. 이웅평이 타고 있던 미그기가 똑바로 날지 않고, 기체가 좌우로 뒤뚱뒤뚱 거리면서 날아왔다고 함. 전투기가 기체를 흔들면서 비행한다는 건, 적에게 항복한다는 신호임. 당시 활주로에 있던 사병들이 처음에는 일반 비행기로 착각했다고 함. 그러다 바로 비상경보 울렸고 비상 착륙 인도한 거임.
@@한국인직장인95병신모남은 가족을 두고 탈북을 한다고 했을 때 북에 있는 가족들이 잘못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진 않았을 테고 꼭 남한에 와야 할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요? 두고 온 가족 생각에 힘들어했던 사람 얘기에 그렇게 비아냥 거리며 얘기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hyeon8046 다른나라에서보면 우리나라랑 북한도 서로 다른나라임. 그리고 중국과 대만은 각각 타이완섬과 중국본토가 자기나라 영토라고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고있음. 최근들어서 많이 바뀌긴 했지만 법에도 있는만큼 그 근본은 변하지 않음. 하나의 중국 원칙을 기본으로 깔고보면 대만입장에서는 귀순이 맞음.
초등학교 때 친구 아빠가 이분이셨어요. 남동생도 같은 학교에 다녔고 꽤 친하게 지냈던터라 이목구비 큼직하시던 어머니 얼굴도 기억이 나네요. 당시 여자아이들끼리는 교환일기, 다이어리 꾸며주기, 쪽지쓰기 등 각종 편지로 소소한 일상 얘기 주고받는 일이 참 많았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이제 편지를 못 쓰게 되었다고 단절하더군요. 전학을 가는 것도 아닌데 왜일까 의아했었어요. 졸업 전에 갑자기 개명을 하기도 했었고. 커서 이런 배경을 알게 되니 그 때 친구의 낯설었던 행보가 조금은 짐작이 됩니다. 어머니도 귀티나는 분이셨고 집도 잘 살았고. 방배동 삼호아파트 살았던 것 같은데. 음악, 미술에 고르게 재능이 많고 “코발트블루”를 좋아한다고 했던 세련된 친구로 기억해요. 다큐에서 아버님 투병하시는 걸 보고도 마음 아팠는데. 지금은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네요. ㄴㅇ아 행복해라^^
라디오로 방위 맞춘건 현재는 퇴출 되고 있는 ADF를 이용한 방법입니다. ADF에 주파수를 맞추면 주파수가 나오는 방향을 계기가 가리켜요. 2차대전 당시 일본애들도 미국 라디오 전파잡고 간적도 있고 ADF로 라디오를 듣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FM방송이 아니라 AM 방송입니다. 현재는 잘 안쓰이는 항법 방법이며 VOR/DME, GPS로 대체 됐습니다.
당시 남한 공군은 꿈도 못꾸던 최고급 가죽 자켓에 기골이 장대한 훤칠한 멋쟁이가 항복의사 두손 들고 내린것도 아니고 비행기에서 성큼성큼 내려와 먼저 한국군 장교에게 악수 청하고..한국군 장교 하마터면 관등성명 댈뻔한 분위기.저사건이 83년 2월이고 난 7월달에 입대해서 83년 10월달에 버마 아웅산 테러 터지고 하마터면 재수없이 군대에서 실제상황 싸이렌 2번 들을뻔 했음. 진돗개발령 상황과 학교 시험때 답안지 못썼는데 시험지 가져가는 꿈은 정말 졸업후 제대후에도 수없이 많이 꿨는데 군대 가있는 꿈은 특히 최악.
고위급 이나 똑똑한 탈북자는 대한민국의 안보상 더 위험하고 ,멍청한 척 하는 탈북자도 다 받아 주지 말아야 돼.앞으로 몇년 계획을 세워서 김정은이 일부러 풀어서 탈북자로 보내는것 일수도 있지...남한과 북한의 경계 초소가 동네 야산이나 개울건널 정도로 허술하진 않을텐데 어떻게 그리 쉽게 잘도 넘어들 오나?
아닙니다. 조금만 관심갖고 찾아보시면 나오는데. 최초는 1950년 4월에 ll-10을 타고 넘어온 이건순 공군 중위로 1974년에 공군 대령으로 예편. 그 후 1955년에 Yak-18 훈련기로 함께 탈북한 북한 공군 이운용 상위와 이인선 소위(역시 대령까지 진급함). 1960년에 MiG-15를 타고 귀순했던 정낙현 소위(역시 공군 대령까지 감). 1970년에 MiG-15를 타고 넘어온 박순국 소좌(1976년 한국에서 사망 당시 중령이었으나 사후 대령으로 추서됨). 그다음이 이웅평 대령님이고. 마지막으로 1996년 MiG-19기를 타고 귀순한 이철수 대령님까지 계십니다. 공군쪽만 이렇게 되며 육군이나 해군쪽도 있고요.
국민학교 4학년이었구나. 전쟁나는 줄 알고 꼬맹이 시절에 급 비장해졌던 느낌 아직도 생생.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싸워서 이겨야지 생각했다. 야구 중계하다 갑자기 사이렌 울리고 경기 급중단, 동네 아저씨들은 북괴 공군기가 아군 전방 공군기지 공습한 모양이다, 웅성웅성.
86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군대를 가기 바로 전날 싸이렌이 울려서 동네 사람들에게 말해도 믿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라서 전혀 동요를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나네요. 언제가 중요하지 않고 우리가 준비되지 않으면 언제든 나라의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미그기 귀순 이웅평소령 요즘은 좋은 B형간염 치료제가 많아 B형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는 병이랄것도 없이 하찮은 정도여서 일찍 치료약 복용하면 간경화나 간암으로의 진행을 막는 치료가 잘 되므로 정기적인 검진과 함께 금주 과로를 조심하면 완전 정상인으로 천수를 다할수 있는 좋은 세상인데 간경화에서 진행된 간암으로 생체간 이식까지 받고도 일찍 유명을 달리한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밑에 댓글에 아재들 많던데 ..... 동사무소에서 훈련 상황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고 반복해서 방송을 하는 바람에 할머니는 또 전쟁이 터진거라며 염병헐 놈들이 조용히 좀 살지 않고 또 지랄한다고 ㅋㅋㅋ 나도 쫄아서 아무 말도 못하고 엄청 무서웠던 기억이... 이대령이 남조선에서 살았던 삶은 또 인생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고 허더군요 늘 간첩으로 부터의 테러와 남조선 당국의 감시로 부터 불안한 삶을 살아야만 했고 간경화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많이 불행했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은 잘 컸는지 모르겠네요 .
83년도 2월이 아니라.반팔 입었던 여름, 일요일 오후2시경 이다...가까운 유원지에 운동삼아 걸어 갔다와서 .늦은 점심 (칼국수) 먹으려던 중...실제 상황 이라며 싸이렌 울리며 뉴스 나오는 소리 듣고.휴일이라 쉬던 주변의 군인들이 전투복 챙겨 입고 각자의 부대로 복귀했던날 이다. 39년전 일이다....
@@나채상-t6n 중국 민항기는 83년 5월5일에 납치되서 대만으로 가려다 춘천에 착륙했구요 내가 이등병때인 83년 8월 7일 일요일날 활동화 빨아 옥상에서 쉬면서 말리고 있는데 실제 인천이 폭격 당하고 있다고 완전군장하고 대기하는데 나중에 방송에서 손천근씨가 미그 21 몰고 귀순했다 하더이다
아 그런데... 가족이 있으셨구나... 전투기까지 타고 남으로 날아버렸으니 신원 파악이랄것도 없이 누군지 알것이고 그 가족들은... ㅜㅜ 가족들에게 말하고 나올 시간도 없었으니 가족들은 아무 대비 못한채 정부에게 당했겠네요... 이런것때문에 이분도 오셔서 그렇게 술을...
아닌데...?? 83년8월 정도로 기억나는데... 그당시 일병 막 달려고 하던 때. 토요일인가...일요일인가.. 점심먹고 좀 지난 시간이었죠.. 중공민항기 때문에 실제 공습경보 울려서 비상났고 완전무장 대기, 휴가 외출병들 막 귀대하고 있었고... 이웅평 올 때는 안났던 거로 기억 함.. 벌써 39년이 지난 일이지만 당시 베낭끈 만지작거리면서 ' 아 일병도 못달아보고 죽는구나...'하는 생각 했던 적 있어서 기억은 생생함.
병장 말년에 쉬고 있는데,갑자기 대장님 짚이 급하게 들어 오시더니" * 병장 탄약고의 탄약을 불출 하게 품의서 작성 하고 우리 대대 인원에게 실탄과 수류탄 지급 하라"고 하셔서 사인 받고 일부 지급 한 후 해제 하여 회수 한 기억이 진짜 전쟁 난 줄 알았는데,방금 입대 한 신병들은 얼굴도 하야 지고,우왕 좌왕 하여내가 정렬 하였던 경험이...
이때가 나 국딩 2학년 때인데, 아빠하고 TV권투중계 보고 있었는데 경기가 중단 되더니 관중들이 우루루 나가는게 아닌가??? 갑자기 동네에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고... 그러자 동네 5학년 형아는 전쟁 났다면서, 이제 학교 안간다면서 교과서 공책 등등 전부 찢어발겨 버렸으나 그 형아가 그토록 염원하던 전쟁은 당연히 안나고... 그 형아는 나중에 학교가서 선생님 한테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았음... 리웅평 상위 미그기 귀순으로 인한 남조선 비공식 인명피해: 부상 1명 (선생님 에게 맞아 치명상)
ㅋㅋㅋㅋㅋ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ㄲ
ㅋㅋㅋㅋㅋ
동네 5학년 형아 한명만 있었겠소?
ㅋㅋ
나는 구덕야구장에서 야구보든중이었습니다 심지어 제대한지 일년정도 지난시기라 심장이 쫄깃쫄깃 했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분 마지막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다...
이왕 남한에 잘왔으니 그대로 편하고 행복하게만 살다 가셨으면 좋았을텐데...
북에 남은 가족들 버린거라고 비난하는경우를 봤는데
당장 탈출하지않으면 죽을지도 모르는상황에서 다급하게 탈북한걸 비난할순없다고 생각해요
북한의 폭정에 의한 피해자였으니 모든걸 감안하고 명복을 빌어줍시다
비난하는 애들은 주사파 애들이죠 운동권놈들
정말 똑똑한 사람임
저당시 비행기에 gps도 없을 시기 인뎅 900km넘는 속도로 100미터 이하 저 고도 비행으로 레이더를 회피하고 kbs주파수를 잡아 위치를 파악하고 남쪽으로
내려왓다는게 보통 머리가
아님 👍👏👏👏
샤프하게
생기심 눈빛이 예사롭지 않으심..
나라9님 아덴만 영상에서 봤는데 여기서도 보네욬ㅋㅋ
몸값 비싼 북한군 귀순
태양을 오른쪽에 두고 서해 해안선 띠라 내려가면 남한에 도착함...
@@쓰호천사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그런 방법을 생각하고
행동을 한다는게 대단해용
그런 방법도 잇군요
이런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ㅈㄴ멋있어요
전투기 몰고 탈출이라니
50대 이상은 리웅평 모르는 사람이 없을듯,,,저때 어렸을적 서울살았는데 너무 놀랐다는 실제 공습경보 울려서,,,
ㄷ ㄷ
저도 초등학교2학년이었는데 기억이 생생합니다.
40대 후반도 알아요
이웅평 대령은 부모님 그리며 술 많이 드시다 간경변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간이식도 성공적으로 받으셨는데 재발하셨지요. 통일되는 그날, 영혼이나마 자유의 날개를 타고 고향으로 훨훨 날아가시기 바랍니다. 명복을 빕니다.
@@김계남-l5m국군 대령까지 가심
언제
돌아가셨나요
@@zisuz9322 2002년에 돌아가신걸로 알고있습니다..
여의도에서 환영식을 대대적으로 할 때,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이웅평대위께서 만세를 외치실때 가슴이 뭉클하고 벅차고 또 비맞는 모습이 너무나 가슴아팠어요. 42년이지난지금생각해도
왜그리 눈물이 쏟아졌는지 알수가없네요.
이웅펀씨는우리대한민국에넘어오실때얼마나고민했을까생각듬니다북쪽에도가족이계실것입니다김일성때문인것같습니다
와 진짜 훤칠하고 멋있으셨네. 근데 가족들 다 놔두고 혼자만 귀순할수 밖에 없었으니 평생 마음이 편칠 않았겠네요....
그래서 술로 지내우다 간경화로..
참.. 탈북자들의 가장 큰 고통..
북에 남겨진 가족들..ㅠㅠ
저 당시 비상착륙 현장에 아버지가 계셨음. 수원 10전투비행단에 복무하고 계셔서. 이웅평이 타고 있던 미그기가 똑바로 날지 않고, 기체가 좌우로 뒤뚱뒤뚱 거리면서 날아왔다고 함. 전투기가 기체를 흔들면서 비행한다는 건, 적에게 항복한다는 신호임. 당시 활주로에 있던 사병들이 처음에는 일반 비행기로 착각했다고 함. 그러다 바로 비상경보 울렸고 비상 착륙 인도한 거임.
오! 기체를 흔들면서 비행하는게 항복한다는 신호군요. 처음알았어요 ㅎㅎ
진작에 격추되지않겠나? 생각했는데 이런 사실이
뱅크기동이라고 불리죠
지식+1 증가 감사합니다
아부지60년생?
뻥치지마. 니 지금 고등학생인데 니 아버지가 어떻게 저기 있냐? ㅋ
진짜 귀순병사중에 최고로 스펙타클하게 오셨네
스펙타클은 판문점귀순 아니냐?? 총알 맞고 피하고 우리군이 구출
@@yijim1551 그리고 음주운전 구속 ㅋㅋㅋ
기생충 이빠이 나왔다던데
@@No_war_let_me_peace
진짜래요? ㅋㅋㅋㅋㅋㅋ
@@Jason2001.놀랍게도 실화임 탈북자들 적응 못하고 북한에서 하던것처럼 막가파 많고 범죄 저지르고 도망온사람도 있음
참으로 멋있는 사람이고 남자이며 가장이네요.
부모형제의 생사는 어찌되었을지 모르지만 우리남한에는 지금도 고맙고 고마운 사람이네요.
탈북자한테 이웅평씨 가족들 다 몰살시켰다는 소식 듣고 매일 술로
괴로움 다래다 간암으로 사망...
엄청 괴로워 했다지요.
쟤땜에 가족 몰살 ㅋㅋ
@@한국인직장인95병신모 니땜에 이미 너희 부모님 억장 몰살 ㅋㅋ
@@한국인직장인95병신모남은 가족을 두고 탈북을 한다고 했을 때 북에 있는 가족들이 잘못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진 않았을 테고 꼭 남한에 와야 할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요? 두고 온 가족 생각에 힘들어했던 사람 얘기에 그렇게 비아냥 거리며 얘기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인직장인95병신모 북한 정부 때문이지 뭔 ㅋㅋ
대한민국 공군대령까지 올라간 것도 대단...
일찍가신게 너무 맘아프네ㅠ 부디 극락왕생하시옵기를🙏🙏🙏
북한 입장에서보면 너무너무 심한 역적이라 혹 그 가족들이 3대가 아닌 5대이상 고통받고 있는건 아닌지 너무 걱정스럽네요.
와.. 돈을 진짜 많이 받으셨네 근데도 사업하거나 놀지 않고 군에서 일하신게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랬으면, 사기당하거나 다 까먹었겠죠. 똑똑한거죠. 대령으로 예편했으니, 연금까지 제대로 받았을꺼고, 확실히 챙겨드셨네. 그쪽 부모님과 형제들은 아오지행이었겠네.
@@이창현-x6r 당시 북 최신 무기가 도둑맞은건데 ㅋㅋㅋ 농담아니고 아오지 절대 아니고 저분 3대 모두 사형입니다. ...
@@Battlee 더이상 잃을게 없었기 때문에 저런 돌발행동을 하지 않았을까요?
@@wifjfwhrhd 영상보면 북에 가족있다 나오네요
@@Battlee 부모는 처형 당하고 아들,누이들은 완전 통제 구역인가에 있다고 하네요...
애절하네. 고인이신데. 존경합니다
저 시절 15억이면 작살나네.... 북한 공군한테 15억 홍보했으면 줄줄이 올지도 모르는데 ㅋㅋㅋㅋ
이웅평씨를 제가 직접보았는데 신기했어요 형사분이 꼭 같이 있더라구요 신기했어요
애초에 북한에서 전투기조정사라는것자체가 엘리트중의 엘리트임. 똑똑한거죠
대만도 중국전투기가 상당히 많이 귀순했는데, 빵터진 귀순이유도 있는게 왜 중국에서 대만으로 귀순했냐 물으니까 등려군 보고싶어서 귀순했다고 함 그래서 공군참모총장이 빵터져서 등려군을 이사람 귀순환영식에 초청했다고함
대만으로 귀순이요? 귀순이 아니라 망명이겠죠. 님은 대만을 중국과 같은 나라로 보고 있네요. 귀순은 같은 나라에서 쓰는거고, 다른 나라로 가는게 망명이죠.
@@hyeon8046 다른나라에서보면 우리나라랑 북한도 서로 다른나라임. 그리고 중국과 대만은 각각 타이완섬과 중국본토가 자기나라 영토라고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고있음. 최근들어서 많이 바뀌긴 했지만 법에도 있는만큼 그 근본은 변하지 않음. 하나의 중국 원칙을 기본으로 깔고보면 대만입장에서는 귀순이 맞음.
@@hyeon8046 장체스 마오쩌뚱 즉 민주 와 공상 두 사상이 싸우다 장체스가 져서 튄땅이 대만임... 한마디로 두민족은 같으나 사상이다른거면 귀순이 맞음..
우리도 625때 낙동강밀렷으면 대만마냥 제주도만 한국이였을꺼임 섬이라고 귀순이 망명이됨?
역시 월량대표아적심의 나라 대만, 낭만있네
등려군은 못참지 ㅋㅋㅋㅋㅋㅋ
초등학교 때 친구 아빠가 이분이셨어요. 남동생도 같은 학교에 다녔고 꽤 친하게 지냈던터라 이목구비 큼직하시던 어머니 얼굴도 기억이 나네요. 당시 여자아이들끼리는 교환일기, 다이어리 꾸며주기, 쪽지쓰기 등 각종 편지로 소소한 일상 얘기 주고받는 일이 참 많았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이제 편지를 못 쓰게 되었다고 단절하더군요. 전학을 가는 것도 아닌데 왜일까 의아했었어요. 졸업 전에 갑자기 개명을 하기도 했었고. 커서 이런 배경을 알게 되니 그 때 친구의 낯설었던 행보가 조금은 짐작이 됩니다. 어머니도 귀티나는 분이셨고 집도 잘 살았고. 방배동 삼호아파트 살았던 것 같은데. 음악, 미술에 고르게 재능이 많고 “코발트블루”를 좋아한다고 했던 세련된 친구로 기억해요. 다큐에서 아버님 투병하시는 걸 보고도 마음 아팠는데. 지금은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네요. ㄴㅇ아 행복해라^^
북한사람인데 피지컬이 장난아니네ㄷㄷ
저때는 북한이 우리나라 보다 잘살아서 잘먹고 잘컷거든
@@stevennbafan6611 저때는 우리보다 못 살때거덩 ..뭘 알고 씨부리자 ㅡ.ㅡ
@@sebastiancho9219 이웅평 성장기라면 북한이 더 잘 살 때 맞는데
180 ~182라던데 ㄷㄷ
듣기론 북쪽지방이 덩치가크고
키가 큰유전인데 못먹어서 그런것같은데 그래도 군인신분으로
일반인민들보단 잘먹었을듯요.
아는동생도 새터민인데 집이 중산층
정도는 되어서 밥은 굶지않았다네요
그래서 그런지 현북한사람들 치고
키170대는 넘드라구요.
라디오로 방위 맞춘건 현재는 퇴출 되고 있는 ADF를 이용한 방법입니다. ADF에 주파수를 맞추면 주파수가 나오는 방향을 계기가 가리켜요.
2차대전 당시 일본애들도 미국 라디오 전파잡고 간적도 있고 ADF로 라디오를 듣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FM방송이 아니라 AM 방송입니다.
현재는 잘 안쓰이는 항법 방법이며 VOR/DME, GPS로 대체 됐습니다.
에구 난 이세상에서 태여나지도 않을때네. 이런일도 있었구나. 근데 전투기에서 내리는 모습 넘 멋있다
이웅평 대위가 남한에서 대한민국 시민권자와 단란한 가정과 권위 능력 직위 계급에도 늘 술과 말 못할 심적 고통과 압박으로 적응못하고 현실감각에서 깨어나지 못한것이 북측에 남겨진 가족들의 생사와 죄책감때문에 간암으로 모든것을 스스로 내려놓음 결국 ~ 남겨진자와 살아남은자의 풀지못할 속쇄인것
ㅜㅜ 행복하게 발 사셨으면 좋겠어요.. 아 돌아가셨구나.. 남은 가족들도 행복하시길
당시 남한 공군은 꿈도 못꾸던 최고급 가죽 자켓에 기골이 장대한 훤칠한 멋쟁이가 항복의사 두손 들고 내린것도 아니고 비행기에서 성큼성큼 내려와 먼저 한국군 장교에게 악수 청하고..한국군 장교 하마터면 관등성명 댈뻔한 분위기.저사건이 83년 2월이고 난 7월달에 입대해서 83년 10월달에 버마 아웅산 테러 터지고 하마터면 재수없이 군대에서 실제상황 싸이렌 2번 들을뻔 했음. 진돗개발령 상황과 학교 시험때 답안지 못썼는데 시험지 가져가는 꿈은 정말 졸업후 제대후에도 수없이 많이 꿨는데 군대 가있는 꿈은 특히 최악.
아녀요
이월은 아니고 프로야구 하다가 싸이렌 났으니 사월 오월쯤 인것 같아요
야구 라디오로 듣다가 화장실에서 났던 사건임 확실합니다
@@SUN-wo2ez 5~6월 일요일 이었지
저때 남한 공군은 f4 팬텀을 운용중이었고 조종사는 g슈트를 착용했음. 가죽쟈켓 따위보다 훨씬 발전된 우월한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음.
그거 그냥 재연 영상이라는데
뭘 꿈도 못꿔요 83년이면 우리가 이미 북한보다 훨씬 잘살때인데 우리가 북한보다 못살던 시절이 있긴했지만 그조차 꿈도 못꾼다는 표현할 정도의 차이가 난적은 없어요 83년에 꿈도 못꿀정도의 차이라는 말을 굳이 하자면 그건 북한이겠죠
고위급이나 똑똑한 탈북자들이 많이 와야 한다......
위험하지 어떤맘으로 탈북했는지.,
고위급 이나 똑똑한 탈북자는 대한민국의 안보상 더 위험하고 ,멍청한 척 하는 탈북자도 다 받아 주지 말아야 돼.앞으로 몇년 계획을 세워서 김정은이 일부러 풀어서 탈북자로 보내는것 일수도 있지...남한과 북한의 경계 초소가 동네 야산이나 개울건널 정도로 허술하진 않을텐데 어떻게 그리 쉽게 잘도 넘어들 오나?
가족들이랑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 물론 불가능한 상황인 건 알지만
돈을 저만큼 받고.. 가정을 꾸리셨어도 북에 남겨진 가족 생각에 얼마나 슬프고 괴로우셨을 까 싶네요..
그러게요
이미 북에서 결혼해서 자식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귀순 용사네요 멋집니다
크 멋있네요 자유를 향한 날개..
이웅평 대위가 말한 북에서는 북침 교육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자막은 북침을 남침으로 바꿔서 적었네요..
남한이 먼저 공격했으면 북침 북한이 먼저 공격했으면 남침이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83년도 대학입학을 앞둔 어느 날 싸이렌소리가 생각나네요.국민여러분 실제상황입니다! 라고 반복해서 외치던 다급했던 경계경보
인생역전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 가족들 생각에 힘들었겠다. 키 180ㄷㄷ 추운지방 사람들이 더 키 큰 유전자이긴할텐데.. 북한사람들 잘 못 먹어서.. 남자평균키 165정도아닌가 어딜가든 눈에띄게 컸겠다
와.... 아 근데 다시 봐도 진짜 훤칠하다
전투기에서 내려 인사할때 표정이 꼭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반가워하는 표정이네요
마치 차량 자가용타고 친구와의 약속장소에 도착한듯
ㅋㅋㅋ
저때 쓰던 F-5를 아직도 쓴다는 것도 놀라움
자유에 오신걸 환영 합니다 대단 합니다
키크고 잘생겨서 인기짱이었는데 ㅎ
최초이자 최후였죠,, 대단한 일입니다
아닙니다. 조금만 관심갖고 찾아보시면 나오는데.
최초는 1950년 4월에 ll-10을 타고 넘어온 이건순 공군 중위로 1974년에 공군 대령으로 예편. 그 후 1955년에 Yak-18 훈련기로 함께 탈북한 북한 공군 이운용 상위와 이인선 소위(역시 대령까지 진급함).
1960년에 MiG-15를 타고 귀순했던 정낙현 소위(역시 공군 대령까지 감).
1970년에 MiG-15를 타고 넘어온 박순국 소좌(1976년 한국에서 사망 당시 중령이었으나 사후 대령으로 추서됨).
그다음이 이웅평 대령님이고.
마지막으로 1996년 MiG-19기를 타고 귀순한 이철수 대령님까지 계십니다. 공군쪽만 이렇게 되며 육군이나 해군쪽도 있고요.
@@traveler07 좋은 소식 소식 알렬 주어서 감사합니다
잘못된 정보를 아셨으면 정정하시거나 지우심이,,,
원래 남방계보다 북방계가 타고난 피지컬이 좋음. 요즘은 영양부족으로 다까먹는중...
도대체 같은 민족에 남북한 다해도 남북방 갈라봐야 의미가 없는데 무슨 피지컬 ㅋㅋ.. 영양공급 질좋고 본인이 운동하면 피지컬은 얼마든지 키우는거지 북방계 얘기하려면 무슨 몽골계 정도는 보고 얘기해야지
남방계북방계는 그런걸 따질때
쓰는게 아님.북한주민이라고 전부 북방계가아님.남한주민이라고
전부남방계가 아님.
국민학교 4학년이었구나. 전쟁나는 줄 알고 꼬맹이 시절에 급 비장해졌던 느낌 아직도 생생.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싸워서 이겨야지 생각했다. 야구 중계하다 갑자기 사이렌 울리고 경기 급중단, 동네 아저씨들은 북괴 공군기가 아군 전방 공군기지 공습한 모양이다, 웅성웅성.
젊은시절이생각납니다.그때가9사단29연대에서근무할때입니다.심학산자락에서텐트치고훈련중에이웅평때문에비상걸리고혼쭈났든기억이있습니다.그땐비상시간이라뭐가뭔지몰랐지만그후이사건을알게되었습니다.참으로대단합니다.이웅평님자유의땅에서잘지내시기바랍니다.
친척 아저씨..
1.21 김신조사건으로
군복무 6개월 더 하셨다고 하심..
이웅평씨는 암살의 공포, 북에 남긴 가족걱정으로 폭음하다가 간경화가 왔고 간이식 받아서 살아나나 싶었으나 결국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1996년 초등학교때 수원 살았었는데
오전에 학교에 있을때 공습경보가 울렸었는데
그 때도 미그기타고 북한군이 수원에 귀순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저도 기억나네요. 이철수 님이었나.
83학번인데 그 때 당시 서울의 사립공대 등록금이 50만원이었습니다
지금 사립공대 입학금이 420만원 정도이니까 ...
지금껏 본 탈북한 사람들 중에 키가 젤 큰 느낌. 걷는것도 엄청 당당하고.
전투기운용할 정도면 잘먹고 자라셨을듯 싶네요
저 당시 북한 사람 신장으로 180. 대단한 집안이였나보네
방금 이철수 대령님 사연 보고 왔는데 결국 두 사람이 거지같은 북한 체제라는 똑같은 이유 때문에 떠났네요...ㅋㅋㅋㅋ 전투기 뺏기고 전투기 시스템, 노하우까지 다 우리 나라로 넘어갔는데 그쪽에서도 손해 아니에요?ㅋㅋㅋ 그러니 당장 그 말도 안 되는 체제부터 바꾸시죠.
86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군대를 가기 바로 전날 싸이렌이 울려서 동네 사람들에게 말해도 믿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라서 전혀 동요를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나네요. 언제가 중요하지 않고 우리가 준비되지 않으면 언제든 나라의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
83년이맞습니다
내가전역이83년인데 이웅평대위월남후 제대했습니다
83년이 맞는듯요 이웅평대위 월남했을땐 성북구에 살았고 86년엔 목동에 살았는데.. 성북구에서 TV로 본기억이 확실히 남. 싸이렌까지는 기억이 안나도 하루종일 TV 특보로 틀어대서 그건 확실히 기억남.
구라..
85년에 전역함. 확실히 83년 논산훈련중 청소년축구 4강소식도 들었다
83년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다시는 국민학교죠, 이웅평 귀순은 정말 엄청난 사건이었죠
이웅평씨는 귀순전에 이북에서 우리가 보내준 라면봉지의 반품에 관한 글자를 보고 처음 탈북마음을 갖게된것이라고 당시 말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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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오래 사셧으면 좋았을텐데 두 고온 가족들 생각에 술 때문에 일찍 가셔서 안됏어요 ㅋㅋ
@Note_Allen 그냥 그러러니 합시다. 저분들이 배울 땐 저게 바른 맞춤법이었습니다.
@Note_Allen 따지기는.. 뭣이 중요한디ㅋㅋ
그거 말한적 없다고 하던데요
이런 현실 슬프다..
이웅평 대위
모든걸 걸고 오신 분
부모 형제를 두고 이 위험한 길을 올떄 얼마나 많은 생각과 용기가 필요했을까..
그 용기에 무한 박수와 존경을 표합니다
내나이 29살때 내천에서 낚시하고 있을때 일어났던 날 이네요
그당시 머리끝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곤두섰었는데 조금 지난후 해제 됐지만 ㅎㅎㅎ
수원서 시내뻐스타고 가다가 격은 일이네요. 그때 깜짝 놀랐지요...
미그기 귀순 이웅평소령 요즘은 좋은 B형간염 치료제가 많아 B형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는 병이랄것도 없이 하찮은 정도여서 일찍 치료약 복용하면 간경화나 간암으로의 진행을 막는 치료가 잘 되므로 정기적인 검진과 함께 금주 과로를 조심하면 완전 정상인으로 천수를 다할수 있는 좋은 세상인데 간경화에서 진행된 간암으로 생체간 이식까지 받고도 일찍 유명을 달리한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밑에 댓글에 아재들 많던데 .....
동사무소에서 훈련 상황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고 반복해서 방송을 하는 바람에 할머니는 또 전쟁이 터진거라며 염병헐 놈들이 조용히 좀 살지 않고 또 지랄한다고 ㅋㅋㅋ
나도 쫄아서 아무 말도 못하고 엄청 무서웠던 기억이...
이대령이 남조선에서 살았던 삶은 또 인생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고 허더군요
늘 간첩으로 부터의 테러와 남조선 당국의 감시로 부터 불안한 삶을 살아야만 했고 간경화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많이 불행했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은 잘 컸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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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스카이웨이 경계근무중 진돗개하나 발령되고 전 부대 개인호 투입하고 실탄 수류탄 지급되는등 백프로 전쟁난 줄 알았죠.엊그제 같네요ㅎㅎ
전투기를 몰고왓기에 포상금으로 현재금액으로 160억 정도를 받앗다고 합니다. ak소총 가져온 병사는 1600만원정도 받았다고 하지요.
1600만원…. ㄷㄷ
저당시면 각그렌저 살돈아닌가요??
총알값도 주죠 ㅋㅋㅋ
이철수님도 멋있음 ㅜㅜ
우리나라 공군 멋지네요
그전휴전직후에노금석소령이귀순했지요.피아간귀순할때 총가지고오면저들은 몇백원비행기몰고오면몇천원했어요.우리도 대북방송시에 마찬가지로 얼마얼마를포상금을준다고해습니다.
우리 엄마 공습경보 울리자마자 쌀 사러 나가심.
미친거 아냐?
피난갈 생각 했으면 이해가 가는데
먹을 생각부터 하는게? ㅋㅋㅋ
딱하네 ㅋㅋ
당시 마트에 라면등 동났었죠.
@@한국인직장인95병신모실제로 비상상황 나면 식량같은 물자가 제일 중요함
미친거보단 현실직시하고 빠른 행동 하신 현명한 분인거같은데???
그냥 피난 가봐야 배만 곪지
83년도 2월이 아니라.반팔 입었던 여름, 일요일 오후2시경 이다...가까운 유원지에 운동삼아 걸어 갔다와서 .늦은 점심 (칼국수) 먹으려던 중...실제 상황 이라며 싸이렌 울리며 뉴스 나오는 소리 듣고.휴일이라 쉬던 주변의 군인들이 전투복 챙겨 입고 각자의 부대로 복귀했던날 이다. 39년전 일이다....
@@나채상-t6n
중국 민항기는 83년 5월5일에 납치되서 대만으로 가려다 춘천에 착륙했구요
내가 이등병때인 83년 8월 7일 일요일날 활동화 빨아 옥상에서 쉬면서 말리고 있는데 실제 인천이 폭격 당하고 있다고 완전군장하고 대기하는데
나중에 방송에서 손천근씨가 미그 21 몰고 귀순했다 하더이다
대성리유원지에서 공습경보 발령
여름맞아요~
원글자님 모르는소리마셈
검색해보셈
정말통일되서
배부르게잘먹고
살게통일합시다북에있는어린이보면마음이아파요
잠시 공습경보기 울리고 울 나라 비행기 뜨고 군인들 총들고 하는데
가숨이 뭉쿨 하고 눈물이나네요
너무 멋지고 너무 신감나고
이응평님 지금도 건강하시고 행복 하시길
참 똑똑하신분이엿네요 ~
이웅평공군대령~
아 그 때 북한인이냐고 놀렸던 리현진 누나가 리웅평 가족 일수도 있겠네. 잘사는 집이던데
3:00 하늘이 도왔네...
이때 내가 중학생이었는대 수원 완전날리났음
이후 북한은 공군들에게 기름을 조마조마하게 주입을했다고하지 또다시 귀순하는것을막기위해
군복무 일병때 이웅평이가 넘어 왔는데, 군장차고 사단 전군 전쟁태세 돌입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어느듯 40년이 되었네요
당시에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살때인데 갑자기 공습경보 울려서 진짜 시껍했던 기억이...
부모님 보고싶겠다
와~대박 소름
계속해서 북한에 삐라를 뿌려야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으로 귀순한다
이웅평님 기자회견 자막 오류났네요. 북에서 남침교웍한다고한거..
박수박수
용감한장군님
반가와요
잘오셨읍니다❤
공습경보 당시 대통령배인지, 청룡기인지 고교야구대회가 열리던 중이었음. 옷 챙겨입고 누나하고 엄마 일하시는 데로 갔던 기억이......
2월25일에 무슨야구를
손천근중공공군과 헷갈리심?
와 83년에 15억6천만원을 한방에 땡기다니
귀순해서 제대로 성공하셨네
이웅평씨 잘 하셨습니다. 북한 주민에게 남한의 생활을 알려주세요.
이미 2002년도에 돌아 가셨습니다.
당시 중고기체 가격 신품 50% 120만 달러, 달러당 795.5원이면 대충 10억 나오는데 15억 6000만원이면 진짜 풀로 준거네요. 전투기 신품일때 20억 정도하는데...
기계값만 받는게 아니고 군사비밀도 인계받았잖아요
@@뚱바좋아 보로금 얼마전 개정전 최대액수가 1억이었어요. 저때는 더 낮았을거에요.
적국에게서 10억 뺏고
우리나라에서 10억 이득이니
두배입니다
기총, 탄 등 장비 값도 줘야하죠. 정보 제공비도. 총들고 귀순하던 병사들 철책 부근에서 총버리고 온 경우 많은데 이 사실알고 농담삼아 후회했다하죠 ㅋㅋ
@@xenic1331 제일 후회하는게 북한 신분증으로 알고있어요. 생각보다 많이 준다고 들었어요.
아 그런데... 가족이 있으셨구나... 전투기까지 타고 남으로 날아버렸으니 신원 파악이랄것도 없이 누군지 알것이고 그 가족들은... ㅜㅜ 가족들에게 말하고 나올 시간도 없었으니 가족들은 아무 대비 못한채 정부에게 당했겠네요... 이런것때문에 이분도 오셔서 그렇게 술을...
저시절만 해도 북한 사람들은 거의 우리 한국인들의 외형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요즘 북한인들은 고난의 행군을 거친 구십년대 부터 영양실조로 체형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것이다.
저 국민학교 2학년때 일입니다.
mig-19는 1960년대 초반 개발된 기체임. 공산권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로 1983년 당시에도 구형에 속하는 기체였음.
저 전투기를 60년전에 만들었다는게 신기
@@티치앨쥬스피앙 저게 아직도 주력이라는 것도 신기
개발된지 20년 밖에 안된 기체가 구형되는게 맞음????
@@깡쓰맨ii님 20년 전에 나온 핸드폰 차 이런 거 아직도 그대로 쓰는 사람 봤음? 극소수말곤 없잖아 그거랑 같은 거임
@@앤토-m8u 예시가 잘못됐음 전투기 20년이면 현역이어야 정상이야 f22언제나온건지 알음?
참시간잘가네요
잘오셨습니다 환영합니다❤😂🎉😅😊
88년도에도 자장면 한그릇이 천원도 안했는데 83년도에 15억이면 지금으로 따지면 100억정도 받은거네 ㄷㄷㄷㄷ
현재가치로 대략 55억 정도랍니다 ㅋㅋ
8:40 진실이 아닌 사상을 스스로 깨부수고 자유를 찾아 떠난 역사를 남긴 게 의롭다고 한 것 같아요!
아닌데...?? 83년8월 정도로 기억나는데... 그당시 일병 막 달려고 하던 때. 토요일인가...일요일인가.. 점심먹고 좀 지난 시간이었죠.. 중공민항기 때문에 실제 공습경보 울려서 비상났고 완전무장 대기, 휴가 외출병들 막 귀대하고 있었고... 이웅평 올 때는 안났던 거로 기억 함.. 벌써 39년이 지난 일이지만 당시 베낭끈 만지작거리면서 ' 아 일병도 못달아보고 죽는구나...'하는 생각 했던 적 있어서 기억은 생생함.
맞어요83년8월1사단에서 말연에
제대몆칠앞두고 실탄장전해서 진지로투입했던기역이생생하네요
맞아요 8월 일요일 2시경
맛간인간들많네
검색좀해봐
8월은 손천근.
이웅평은 2월25일
저85년생입니다 초등학생,시절 선생님으로부터이 때의 이야기를 들었던적 있습니다. 전투기 조종사의 귀순!!! 실제 이사건이었었군요!!
몇화인가요
진실을 알리세요
82년 군입대
수방사 33단 근무
인왕산 ,근무 오침 끝나고 이웅평 서울시내로 너머
왔어요 서해로 조작 내눈으로
직접 봤어요 그당시에는
서울 상공에 비행기 뜨기전에
부대로 연락 와요 방송 하는사람들이 모르고
하는건지 군사정권에 속은건지 답답 하네요
서울시내로 넘어와(지나처) 수원비행장으로 착륙을 했지요ㅋㅋㅋ
그 당시 저도 33단 근무했습니다.그날 op에 근무중이었는데 정확히 기억하시네요.반갑습니다.전 83년 4월입대 ㅎㅎ
수원비행단이 어디있는진 알죠?
이날 민통선내에서 평온한휴일 점심시간지난직후
대대영내에 한명의 주번사관도없어서
일개 주번하사인 내가
방송으로 대대비상을걸고 완전군장에 침상대기를 명령했다
지금도 로또1등 15억 안될때도 많은데... 대단했네..
대단!!
영상에는 F5편대가 아닌 F4편대 입니다
병장 말년에 쉬고 있는데,갑자기 대장님 짚이 급하게 들어 오시더니" * 병장 탄약고의 탄약을 불출 하게 품의서 작성 하고 우리 대대 인원에게 실탄과 수류탄 지급 하라"고 하셔서 사인 받고 일부 지급 한 후 해제 하여 회수 한 기억이 진짜 전쟁 난 줄 알았는데,방금 입대 한 신병들은 얼굴도 하야 지고,우왕 좌왕 하여내가 정렬 하였던 경험이...
그렇게 이웅평씨는
고독한 미식가가 되었다고한다 ㄷㄷㄷ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힘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