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단고기 저자 신광철 작가와 환단고기를 읽다 태백일사 14부 | 신시본기-세종대왕이 밝힌 옛글자의 진실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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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12 лис 2024

КОМЕНТАРІ • 34

  • @drchoclinic4974
    @drchoclinic4974 5 місяців тому +1

    우리나라 👍

  • @syjeong4627
    @syjeong4627 Рік тому +7

    긁다 --> 파다 새기다 글은 칼로 긁어 새긴거네요...ㅎㅎ

  • @이태윤-w1f
    @이태윤-w1f Рік тому

    좋아요🎉

  • @소나무-f1y
    @소나무-f1y 6 місяців тому +1

    환단고기와 가림토문자.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 @bin2ggo
    @bin2ggo Рік тому +1

    굿

  • @김정은-x2j
    @김정은-x2j Рік тому +13

    세종실록원본에 가림토 자방고전 공부합시다
    세종대왕님이 후손들에게남긴 기록입니다
    가림토 문자로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님 감사합니다

    • @j3459
      @j3459 Рік тому +2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한적이 없어요
      한글은 수천년전부터 있었어요
      세종대왕은 한글을 편집해서 훈민정음을 창제했어요.
      한글이 아니라 훈민정음을 창제한것

    • @zzz1936
      @zzz1936 Рік тому

      ​​​​@@j3459 중국에서 못된 사고방식만 배워가지고,
      이젠 학자 교수행세까지하는 조선족들.
      이 영상 짤에 파스파 상형문자 같은걸 올려놓고
      마치 한글 유사성처럼 말하는게 참 억지인게 그럼 모음 ㅐ는 알파벳 H를 본뜬것이고 자음 ㅇ는 알파벳 o를 본뜬건가. 저 파스파문자는 초성 중성 종성 자모음으로 구분되는 음소단위와도 전혀상관없는 한획으로 작성된 상형문자이고 오히려 훈민정음 자모음 시각 이후로 그렇게 보이는것일뿐이지 고대문자중 표음문자로 초성 중성 종성으로 구분된 표음체계가 있었다면
      세종대왕께서 고심하며 최소 음의 단위로 구분해 구강구조를 봐가며 문자창제과정의
      수고로움을 겪을리없지. 저것들도 설명이라고.
      조선족이란 :
      조선시대 한반도에서 간도로 정착해간
      한반도의 조상을 둔 후손들이며,
      일제 시대에 중국공산당의 조선의용군으로 가담 .6.25때는 중공군으로 한국인들에
      피해를 끼쳤으며, 92년 한중수교후 대한민국에 숟가락얹고 좌파친중 행태를 하며 반성없는 행동으로
      삼국,고려의 창업 왜곡.
      세종대왕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역사왜곡하는 중국과 일본의 혐한 왜곡
      못된것만 배운 가짜동포.
      탈북동포,고려동포,재일동포,몽골인들도 못한 얼치기 사기꾼들.
      북한에 연안파로 기어들어가 친중대남강경파로 득세해 북한주민 북한정권 말아먹고 6.25중공군 앞잡이와
      박정희대통령을 친일파로 조작하고
      좌익행태로 한국에와선 대깨문짓이나하며
      좌파 현대사로 대한민국을 주객전도시키고 민족사를 내륙사륙사로 조작하려는 연변지역주의 심뽀가 가득한
      어찌보면 중국인 그이상으로 못된 본국공정이나 하는 몰상식한 조선족.
      핵심적인 기초상식조차 망각하고
      삼국,고려 도읍 수도가 내륙에 있었다고 핵심은 망각한 그럴싸한 궤변을 하더니만
      조선수도가 내륙에 있었다고 헛소리하다
      안되니까 스리슬쩍 조선시대는 빼고
      고대 구석기~고려 /조선시대로 구분해버는
      갈라치기 역사왜곡으로
      이성계 조상을 화교라느니, 몽골이라느니.
      훈민정음에 한글 창제과정이 그대로 기록되있고,
      그 무슨 모방이라면 사람의 구강구조를 모방해 천지인,초성중성종성의 합으로 만들어진 한글 디자인을
      세종대왕께서 완벽히 창제하셨다는것이
      훈민정음 창제과정에 그대로 기록되있고
      이게 핵심이고 진실이며 상식임에도
      이걸 비틀고 꼬아서
      (설령 모방이라한들 영감이 떠오른 정도
      작용)자방고전이라는 단 4글자를
      의미확대해
      마치 고대에 지금과같은 한글모양 표음문자 체개가 있었다는식의 넌센스를 보여줌.
      그렇다면 그 당시의 완벽한 문자이기에 그때부터 다른 문자란 사용할 필료도없는 문자적 진화를 할 필요가 거의 없는 역사적 흐름이 이어왔어야함. 이 조선족들 한국에서 온갖걸 누리고 아주 패악질의
      사고방식, 패악질만 골라하네.
      북한은 5.18로 전라도 탈취 이후 십수년만에 망조
      더불당은 세월호,이태원사고 등으로 정권탈취후 5년지나 현재 망조든 집단행태를 보이면서
      조선족도 좌파선동 역사본질 왜곡 망조가 든 망나니 짓을 하는구나.삼일천하.

    • @zzz1936
      @zzz1936 Рік тому

      (역경)단군은 천부삼인을 좌수(왼손)에 들고
      (경전)삼일신고를 우수(오른손)에 들고
      묘향산 단목하에 하강하였다.
      이에 [ (남한)삼신산에 은거한 신인 신지(혁덕)씨 일행]
      (9명)구명이 호위하여 천부인으로 이루어진 천하명승지
      평양으로 행차하여 만백성의 환호를 받으며 왕위에 올라 태평성세를 이루었느니라.
      천년후에 (황해도)구월산 삼선동으로 행차하여 신지씨 일행과 함께 승천하시니
      단군은 신인세계인 수성정으로 다시(돌아온)왕생한 천제이니라.
      묘향산 단군봉에는 단군 하강비가 있는데 그곳에는 눈처럼 흰 참박달나무가 있다.
      이는지구상에 유일한 존재다. 또 묘향산 칠성봉에 올라가면 평양(平壤)이 보이는데 대동강
      능라도, 모란봉, 을밀대가 있는 평양은 천하명승지이고 만고의 왕성터다. 단군이 천하절경
      평양을 버리고 백성을 이끌고 만주까지 가서 도읍을 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단군의 천부경은 우주의 이치를 담았다.
      천상에서 온 환인(桓因)은 히말라야에서 곤륜산을 거쳐 백두산에 이르렀는데 대륙에 웅거하는 백두산 위에 올라가면 만주벌판이 훤히 보인다.
      환인 이후 환웅(桓雄)이 있고 이를 단군이 계승한다.
      단군은 상고시대 신인(神人)인데 당시에는
      (제대로 된)글이 없었고 아는 것만으로 통했다.
      단군께서 세상사람들을 위해 전한 가르침은 묘향산 석벽에 점 같은 흔적으로 전해져오다가
      신라말 고운 최치원 선생에 의해 오늘날까지 유통되는 한문 천부경으로 정리되었다.
      이를 묘향산 석벽본이라 한다.
      ※삼신산 :금강산,지리산,한라산
      신지혁덕
      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76066
      태고 문자를 창시한 신지 혁덕
      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nowjsd1221&logNo=222398645823&proxyReferer=https:%2F%2Fm.search.daum.net%2Fsearch%3Fw%3Dtot%26q%3D%25EC%258B%25A0%25EC%25A7%2580%2520%25ED%2598%2581%25EB%258D%2595%26nil_profile%3Dbtn%26f%3Dandroidapp%26DN%3DADDA%26nil_app%3Ddaumapp%26enc_all%3Dutf8%26DA%3DYZR
      내륙 조선족사학이나 만들려나본데
      신지혁덕도 니들 조선족하고는 아무 연관이없다.니들이 그렇게 연변 내륙주의로
      조선족의 정치기득권탈취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슬그머니 왜곡하는한 말이다.
      영토 축소된건 복원하더라도 본질은 왜곡하지 말아야지.

  • @antibody_algorithm
    @antibody_algorithm 4 місяці тому +2

    늘 궁금했다. 최초로 글을 만든 사람이 있을 텐데, 어떤 숙고의 시간과 어디에서 힌트를 얻어 글을 만들었을까?하고 마음 한 구석에 늘 호기심을 담고 살아왔다. 역시나 진짜는 명쾌하고 직관적이면 단순하다. 환단고기를 가짜라고 말하고 믿는 사람들이 가엽게 느껴진다. 이 앎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다니.....도파민이 폭포수 처럼 터지는 이 즐거움을 모르다니.....마고시대, 환국, 배달, 원조선, 북부여.....이런 역사를 알고 세계여행을 다니면 더 많이 와닿지 않을까 싶다.
    기독교 성경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생겼다.!"로 시작하는 번잡한 스토리 보다는 천부경(81자)에 나와 있는 양자역학의 심플함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더 즐겁고 간지나지 않을까??? 아이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 형이 얘기했다. 심플한 것이 최고다.

  • @맹탕-j5g
    @맹탕-j5g 10 місяців тому +1

    환국은 12연방이고 배달국은 구환이라 이는 구려(구리) ㅡ 9개의 부족국가이며 그후 고구려(고구리)도 구환에서 시작되고 이어지는 명칭이다.
    고시례는 고씨에 제사를 올린다고 하는 뜻으로 음식을 하늘에 던지는 행위로 한자로는 고신위로 쓰고 발음은 고시례라고 한다.

  • @super-JEI
    @super-JEI Рік тому +3

    흑피옥 이라는 중국 고대 유물에도 각각 글자가 양각되어 있는데 흑피옥 문자를 해독할수 있다면 엄청난 문명의 발견이 될 것입니다.

  • @맹탕-j5g
    @맹탕-j5g 10 місяців тому

    서글이라는 한자는 쓸 서와 그림 글 이라는 뜻으로 "그림을 그린다" 는 뜻이죠. 따라서 "쓴 그림" 즉 "칼로 썰어 새긴 그린 그림" 요즘 발음으로 "썰어 그린 그림"

  •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Рік тому +4

    만약 고조선에서 가림토 문자를 사용 했다면, 지금 고조선 영토라고 여겨지는 지역에서, 가림토 문자가 새겨진 유물들이 쏟아져 나와야 정상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 @jipark_2373
      @jipark_2373 Рік тому +3

      고조선 영토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는 고대 화폐인 명도전에 새겨진 것은 상형문자와 가림토가 섞여진 것입니다.. 명도전은 연나라 화폐가 아니라 고조선 화폐라는 증거는 출토되는 범위가 만주, 한반도 북부, 요서지역에서 대량 출토되기 때문이고 일부 북경지역에서도 출토되고 있죠..

    • @소나무-f1y
      @소나무-f1y 6 місяців тому

      고려시대 한요부 타삼 오해라는 책에 가림토 문자가 쓰엿지요.

    •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6 місяців тому

      @@소나무-f1y 책이름이 뭐라고라?

    • @소나무-f1y
      @소나무-f1y 6 місяців тому

      @@davidjacobs8558 한요부의 타삼오해

  • @맹탕-j5g
    @맹탕-j5g 10 місяців тому

    삼랑을보륵의 표음문자 ㅡ 가림토문자 ... 칼로 파서 새긴 문자로 가린다. 즉 새겨서 구별한다 는 뜻

  • @jukjang
    @jukjang 3 місяці тому

    일본(日本)의 신대문자(神代文字) 중 아비루문자(阿比留文字)는
    히라타아츠타네(平田篤胤, 1776년-1843년)가 최세진(崔世珍)의 훈몽자회 범례(訓蒙字會 凡例)를 인용하여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위작(僞作)하고 아비루문자(阿比留文字) 진서체(真書體) 가로쓰기(横組)와 세로쓰기(縦組) 문자를 만들어 1819년 칸나히후미덴(神字日文傳, かんなひふみでん) 3巻(上巻, 下巻, 疑字篇(附録)을 저술하게 됩니다.
    귀하는 히라타아츠타네(平田篤胤)의 칸나히후미덴(神字日文傳, かんなひふみでん)을 읽어본적이 없군요. 에도시대(江戸時代) 일본어를 귀하가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환단고기와 태백일사, 가림토를 논하는 귀하가 시고쿠(四国) 도쿠시마현(徳島県) 아와시(阿波市) 아와초 오쓰이와츠(阿波町乙岩津)에 있는 이와쿠모하나카(岩雲花香)의 '메기의 노래비(鯰の歌碑)'를 인용한다는 것은 단적으로 귀하의 내공은 아직 부족하다고 보여집니다.
    더이상 '환단고기(桓檀古記)'를 폄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 @맹탕-j5g
    @맹탕-j5g 10 місяців тому

    고시례의 고시 ㅡ 부시 라는 설도 있음. 불을 피울때 쓰는 부싯돌을 처음 발견해서쓴 사람.

  • @하닷사-s2q
    @하닷사-s2q 4 місяці тому

    가림토가 무슨 뜻인지도 알아야죠

  • @점점-t4g
    @점점-t4g Рік тому +1

    배달국은 말 그대로 환국에서 분리되어 떠나 온 배달 온 나라
    아디로 밝은 땅 박달로 어느 쪽으로 해가 뜨는 땅 아사달로
    그래서 자리 잡은 곳이 신단수 아래 신시 배달국

  • @user-gihm_lp9fm
    @user-gihm_lp9fm Рік тому +2

    한 가지 의문점이 있는데, 세종대왕이 인도 타림어 등 기존의 여러 옛 문자를 참고했다면, 훈민정음 햬례본에 나와 있는 한글 장음의 성대 부분을 본딴 것이라든지,
    모음의 천지인에서 따왔다는 원리가 어떻게 그렇게 딱 들어 맞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아무리 억지로 맞추려고 해도 힘들텐데. 이유 좀 알려 주세요.
    그리고 기원전부터 신대문자가 있다는데 누가 그런 말을 했나요? 일본 사람입니까? 일본 사람을 믿어요?
    또,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했다는데 어디에 그런 말이 써 있나요?

    • @jipark_2373
      @jipark_2373 Рік тому

      모양은 기존에 있던 고대 문자를 차용하면서 그 문자의 쓰임새를 연구하다가 자음은 발음 모양을 본뜬 것이란걸 발견하였고 모음은 천지인을 조합한 것이란걸 깨닫게 되었다고 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아쉬운 점은 구체적으로 누가 정음의 형태, 모양을 만들었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죠... 실록에 왕이 친히 창제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니 모든걸 세종대왕이 원리에 입각하여 만들었다고 보는것이 맞을지도 모르나 여러 의문점들이 있습니다.. 고전 문자를 모방하였다는 실록의 또다른 기록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세종대왕이 창안한 것이라고 보기에도 의문이 들죠

  • @user-rurallife
    @user-rurallife Рік тому +1

    신대문자는 19세기에 사기친 것

  • @맹탕-j5g
    @맹탕-j5g 10 місяців тому

    식민사관의 역사야말로 진짜로 가짜이다.

  • @박명휘-q6e
    @박명휘-q6e 5 місяців тому

    DNA가 일본인인가요? 거짓말도 천번을 하면 소설이 되고, 만 번을 하면 역사가 된다죠. 일본나라에서는!

  • @친중반민족무리이씨조

    친중반민족자 이도 란 쓰레기한테 대왕이란 호칭 지웁시다
    이도 저너마가 한민족말살을 위해 저지른 범죄 알게되면 욕으로 불러도 모자람

    • @zzz1936
      @zzz1936 Рік тому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던
      대표적인 반중. 세종대왕.정조
      세종대왕의 국조에 관한 역사적 인식은 단군조선이며,
      '세종대왕은 단군을 역사적 사실로 기록한 첫 임금이다.
      훈민정음(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에 대한 잘 알려지지 않은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단군(檀君)에 대한 기록이다.
      세종대왕은 단군을 역사적 사실로 기록한 첫 임금이기도 하다.
      단군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을 모아 그 사실 유무를 정하였으면 사당을 별도로 세워 제례를 지내도록 했다.
      단군의 역사는 분명하게 세종실록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더 나아가 단군에 관련된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 등도 모았던 것 같다.
      세종은 단군을 바로 세움으로써 민족의 정통 역사를 세우려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글을 만들어 반포함으로써 민족과 언어를 통일하여 한반도의 세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했을 것으로 본다.
      세종대왕은 단군(檀君)으로 민족의 기원을 세우고 한글을 창제함으로써 언어를 통일한 유일한 지도자이다.
      그 동안 한글에 묻혀 민족의 기원을 정립한 세종대왕의 역사적 업적이 조명받지 못한 것은 아마도 단군을 신화적 요소로 폄하하려는 의도가 많이 작용한 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세종대왕을 한글을 창제한 임금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성을 세운
      첫 임금으로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 태조 이성계의 조상
      1대조 이한 (본관 제주 이씨)
      jeju.grandculture.net/Contents?local=jeju&dataType=01&contents_id=GC00710816
      .
      .
      .
      6세 이긍휴
      7세 이염순
      8세 이승삭
      .
      .
      12대 이화
      13대 이진유
      14대 이궁진
      15대 이용부
      16대 이린
      17대 이양무
      18대 이안사(목조)
      19대 이행(익조)
      20대 이춘(도조)
      21대 이자춘(환조)
      22대 이성계(태조)
      (이성계 전주 이씨?
      제주 이씨라 해야 되는거 아닐까?)
      태조 이성계가 찾는 조상은 통상 17대조 이양무
      이양무의 묘(준경묘)의 본관은 평창
      강원도 삼척의 노동과 동산에 있는 고총(古冢)이 (이산사의 아버지)이양무와 평창이씨의 무덤이라는 주장은 조선 초기부터 있었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삼척군(三陟郡)을 이안사의 (옛)구 거유지가 있고,
      조상묘가 안치된 곳이라 하여 삼척부(三陟府)로 승격시키고 홍서대(紅犀帶)를 하사했다.
      그러나 이안사가 (강원도 평창에서)함경도로 이주하고 오랜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이양무의)무덤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였다.
      태조때부터 조선의 역대 왕들은 전국의 모든 지관을 동원하여 이양무(준경묘)와 평창이씨의 무덤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조선 왕실에서는 확실한 증거가 없어 조상묘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두 무덤은 나라의 보호를 받았다.
      1231년(고려 고종 18) 제1차 몽골군의 침입이 있던 해 이양무가 죽었다.
      1232년(고종 19) 제2차 몽골군의 침입 때 이안사는 삼화사에 열심히 (조상 제례에)참례했으며,
      또 일족 일부는 묵호만(墨湖灣)으로 이동해서 15척의 배를 만들었다.
      1235년(고종 22) 제3차 몽골군 침입 때 이안사는 일족을 이끌고 험준한 두타산성(頭陀山城)으로 피난했다.
      1239년(고종 26)에 몽골군이 고려에서 철병(撤兵)한 뒤 1254년(고종 41) 제4차 몽골군 침입 때까지 약 15년 동안 평화가 찾아왔을 때
      이안사는 덕원에서 삼척을 자주 왕래하면서 (이양무의 묘)준경묘와 (이양무의 부인 묘)영경묘를 보살피고, 삼화사에도 참례하였다.
      당시 이안사의 자취는 이색(李穡)의 '환조구비문(桓祖舊碑文)'에서 찾을 수 있다. 이때 그는 삼화사에 '금은수사경(金銀手寫經)'을
      남겼다.
      개원로의 산길대왕(散吉大王)은 쌍성에 주둔하면서
      철령(鐵嶺) 이북 지방을 빼앗기 위해 두 차례나 사신을 보내 이안사에게 항복을 요구했다.
      (참고: 철령은 만주 일대
      m.cafe.daum.net/121315/BVCR/7655?searchView=Y
      이에 이안사는 김보노(金甫奴) 등 1천여 호를 거느리고 원나라에 항복했다.
      산길대왕은 이안사에게 옥배(玉杯)를 선물했고, 이안사도 혈족의 딸을 산길대왕의 아내로 보냈다.
      이후 산길대왕과 이안사는 돈독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원나라로 들어가 지방 관청의 장관직인 남경 오천호의 다루가치에 올랐던 이안사는 1274년(고려 원종 15) 3월 10일 죽었다.
      이안사는 함북 경흥(慶興, 孔州)의 성남(城南)에 묻혔다.
      이안사는 6남을 두었다. 장남은 안천대군(安川大君) 어선(於仙), 차남은 안원대군(安原大君) 진(珍), 3남은 안풍군(安豊大君) 정(精),
      4남은 익조(翼祖) 이행리(李行里, ?~?), 5남은 안창대군 (安昌大君) 매불(梅拂), 6남은 안흥대군(安興大君) 구수(球壽)이다.
      이안사의 세계는 익조 이행리에서 도조(度祖) 이춘(李椿)-환조(桓祖) 이자춘(李子春)으로 이어진다.
      이들의 능은 모두 북한의 함흥에 있다고 전한다.
      1410년(태종 10) 이안사의 무덤을 함경남도 함흥(咸興) 서북쪽 가평사(加平社, 現 咸南 新興郡 加平面 陵里)로 옮겨
      표석(表石)을 세우고 덕릉(德陵)이라 했다.
      태조 이성계,그리고 세종대왕께서 인식하는 국조와, 시조, 역사인식관.

    • @jipark_2373
      @jipark_2373 Рік тому

      헛소리 하지 말거라

  • @태극기-t8s
    @태극기-t8s 11 місяців тому

    그런식으로 따지면 영어 E 하고 한글 E 하고 같은거? 저거랑 비슷한 한문 山 이것슨 어떻게 설명하실련지요?ㅎ 글은 한뿌리네요.ㅎㅋㅋㅋㅋ 아라비아 숫자 3 도 그렇고..ㅎ 추가로 H와 ㅐ도 같은거?ㅎㅎㅎ 그래서 EH 와 태 은 같은 글자..ㅎㅎㅎㅎ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