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해할수 없는 답글들이 생각보다 많네요. 신라와 발해의 남북조시대에 경교가 들어왔었음을 사학계에서는 정설인데 굳이 이걸 부정하려고 하는 저 무식한 답글들은 무었인지...반기독교 적인 생각으로 사실을 인지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에써 외면하고 부정하려는 저 억지스러운 발언이 참 한심 스럽네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셈족들과 집중적으로는 에벨의 후손 즉 히브리민족을 통하여 전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우리가 다 밝히지 못하는 수많은 히브리인들이 전세계 곳곳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전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탑 언어 혼돈 이전과 이후에 경건한 종들과 그 가족들 혹은 친척들과 함께 미대륙으로 남미로 이베리아반도로 인도하셨습니다. 스페인 이베리안 반도의 이름은 히브리인의 땅이란 뜻이죠 다시스로 명명된 성경의 그곳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히브리족들이 정착했습니다. 우리도 에벨의 차자 욕단의 후손인고로 히브리민족입니다. 히브리민족의 특징은 장차오실 예수님을 맞을 준비하는 사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히브리적 영성을 가진 영적인 히브리민족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예수믿는 이방인들까지도 참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했지요~! 참고로 인도의 아유타국은 히브리어 하유다의 인도식 발음입니다. 유대사람들의 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허황옥이 여기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김해로 김수로왕을 찾아왔지요 김수로왕의 선조는 김일제이고 김일제 북방 흉노족 왕의 태자였는데 한무제가 인질로 잡혀와서 우여곡절끝에 산동성 태수가 되고 그 후에 전한과 후한시대 중간에 신 나라라고는 나라가 세워졌는데 김일제 후손들과 직결됩니다. 후한을 이어간 광무제가 김씨성을 가진 모든 김일제 후손들을 죽이기시작해서 김수로왕도 김해로 피난을 왔고 수 많은 신나라 귀족들이 한반도로 이주했습니다. 나주김씨 김해김씨 경주김씨는 김일제후손들이 정착한 지역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고 같은 집안 사람들이죠~! 김일제는 금신상을 놓고 하늘신을 섬기던 사람이었기에 한무제가 성을 쇠금자로 김씨성을 준 것입니다. 김해라는 이름은 철기문명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고 김수로왕의 김씨 성을 따라 붙여진 것이지요 오늘날로 말하면 김일제 후손들은 경교를 믿은 사람들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님같은 기독교인들이지요. 땅속에서 유인원 화석이 쏟아져 나와도 아담과 이브가 지네 조상이라고 우기고 공룡 존재까지 싸그리 무시하고 한떄는 지구를 중심으로 해가 움직인다는 천동설까지 주장하다가 나중에 잽싸게 말을 바꾸고 이집트 호루스교를 그대로 베껴서 성경을 만든 증거가 나와도 애써 외면하고
저도 역사책 읽다가, 사학과 가겠다고 그냥 생각없이 말 뱉었다가 온집안 불려 다니면서 꾸중??? 너는 영문과 가야해 ~ !!! 사학과도 영문과도 못 갔습니다. ㅎㅎㅎ 근데... 요즘... 사학과 안 간게 잘 된거 같다는 생각... 또 근데... 대학 때 교양수업 해 주신 교수님은 정말 훌륭하셨어요 ~ 지금도 잊지 못하는 그렇다고 그 교수님을 가까이 다가갔던건 아니고요 ~
대진경교유행중국비를 보면 당에서 회창폐불 전까지 수십년 동안 유행 했다. 심지어 황제가 직접 사교가 아니라고 공인했고 많은 신도들이 생겨 장안에 사찰도 짓고 예배 했음. 당과 깊이 교류하고 영토를 맞대고 있던 신라와 발해에도 당연히 전파됨. 심지어 우리나라에 예수의 12제자 중 하나인 도마가 왔었다는 전설까지 있음. 종교라는 건 정말 빠르게 퍼져나간다.
네스토리우스 기독교 = 경교 당 태종(598~649) 때인 7세기에는 중국 대륙에도 전래되었다. 페르시아인 경교 사제인 「아라본」(阿羅本) 등에 의해 전래된 네스토리우스교는 경교(景敎)라 불렸고, 경교 교회를 페르시아 교회라는 뜻인 파사사(波斯寺)라고도 불렀다. 경교라는 이름은 중국어로 빛의 신앙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당 현종(玄宗) 때에는 경교 교회인 파사사는 대진사(大秦寺)라 개칭하고, 각지에 교회를 건립하여 교세를 제법 떨쳤다고 전해진다. -위키백과- 관련 물품 또는 기념품이 되어 신라,발해 에 전파되었을것
@@hararnoh2555 네~ 이단이라고 단정 하는 자체가 모순 입니다. 지금의 교리 개념으로 그때 그들의 개념 과 주장을 판정하는 오류 를 범하는 것 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법으로 고려시대 ,조선시대 의 여러 사회 제도 와 법율을 불법이라고 단정 하는것 과 같은 것 이지요 네스토리우스파 는 성모 지위에 관한 이견으로 갈라져 나간 파벌입니다. 그들의 성모에 대한 개념은 지금의 개신교와 더 가깝습니다.
@@hararnoh2555 그 당시 신학이 정립되지 않았을 때라서 이단이라고 하기도 좀 애매합니다. 어거스틴 나오고 초기 신학자들이 고생하며 정립한게 대충 경교 활동하던 시기입니다. 이단이라 해도 경전(성경)을 가지고 다녔기에 그걸 보고 진리를 깨우친 사람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네요
앞부분 보고 경교 이야기인가 했는데 맞네요 ㅋㅋ 경교 사찰이 당나라 때 꽤 들어섰다고 알고 있거든요. 당나라에서 유학하는게 최고 엘리트의 길이었으니 지식인들 모를 리 없었을 테죠. 무역도 활발했으니 상인들도 많이 알았을 테고..불교 힘이 거세지면서 경교 사찰들도 자연히 흡수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당나라때 경교가 그렇게 융성했는데 한반도에 경교가 안들어 왔을리가 없습니다. 경교는 박해 받으면서 한반도에서 유물이 많이 사라지지 않았나 싶어요 경교 이후에도 조선에 꽤 빨리 로마서-당시 라마서 라고 부름 들어와서 선비들이 새로운 道라고 많이 칭송 했다고 합니다 로마서의 이신칭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이런 사상이 기존 어는 종교나 사상에도 없는 전혀 새로운 가르침이니 학구열이 유달리 강했던 조선 선비들이 많이 좋아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남북국시대와 고려시대는 동서교류가 활발했던 시절이었음. 서역 상인들이 한반도까지 와서 무역하고 거주하기도 했음. 고려시대에 천주교가 있었단 증거는 없지만, 옆나라 원나라에는 천주교가 있었고, 그건 천주교를 믿는 유럽인들이 원나라를 넘어 고려까지 와서 무역했을 가능성도 있음. 그래서 발해인, 신라인 경교신자나 고려인 천주교 신자는 없었더라도 한반도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위한 종교시설이 있었을 가능성은 다분함.
도마가 김수로왕과 인도의 허왕후를 증매했고 허왕후 내외가 똑같은 꿈을 꾸고 딸을 시집보낼때 많은 종들과 물품을 가지고 왔다고 함. 그때 녹차 씨앗도 가져와서 재배하기 시작 했다고함, 허왕후는 김수로왕에게서 9아들을 낳았는데 그중 2아들은 허씨성으로 줘서 지금도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는 같은 집안이라 결혼하지 않음.!! 도마와 김수로왕를 전도했고 허왕후와 결혼시키라는 꿈을 꾸고 사람을 인도로 보내서 신부흘 데려왔다고함. "손길문화원"에 성경의 등잔, 히브리어가 바위에 새겨진 사진들 찍은 자료가 많던데요!!!
@@byungyoon8550 요한복음 빛이 어두움을 비취되 라고 말씀하셨고 요일서 4-5장에도 범죄하는자는 어두움에 속하지않고 빛에 속했다고 빛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도 그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는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죠 창세기는 마13장에도 창세로부터 감추인 비밀을 드러낸다고 나옵니다 즉 빛이 빛을 말하는게 아니라는거죠 초림때 예수님이 자기를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당시 예수님이 유대인에게 회개하라 하여도 그들이 듣지않았으니 빛이 어두움을 비취되 깨닫지 못했다고 하는것도 맞습니다 시편 119:130절에도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자에게 비추어 깨닫게 했다고 나옵니다. 그 우두한 심령 마음을 비춘것이죠 구약에도 사람의 심령은 여호와의 등불이라고 하죠 살피신다구요
그 만(卍)자는 스와스티카(Swastika.स्वस्तिक)라고 하는데요 여러 대륙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요 출현 시기는 7000여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문자의 출현 이전 불교의 출현 이전인거죠 십자가도 홍산문화에서 발견되는데 4방향 대칭형(➕)이죠 아래가 긴 기독교풍의 십자가( ✝)와는 달리 생겼죠 탱그리신(단군신화 관련)을 상징하는 표식이었다고 합니다 그게 서쪽으로 전파되고 4세기에 로마카톨릭이 채택을 합니다 그 이전에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십자가는 혐오의 대상이었죠 불교도 기독교도 원래 있던 그런 표식들을 차용한거로 봅니다 .
이야. 이분 마음에 드네. 어떤 고고학자는 본인리 배운 이집트만 강조하던데, 고고학자이면 성경을 볼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 했는데, 역시 큰 그림을 보시는 군요. 성경도 고고학이고, 예수님도 역사인물이자 신. 십자가, 궤, 돌판에 새긴 십계명, 사우디아라비아의 시내산, 노아의 방주.
@@생각의주체는항상나 그르게요. 선사시대 토기... 이런것을 성경에서 찾으면 아마 예수님 탄생 시점이 AD, BC 니까, 한국 선사시대는 예수님 부활 이후라고 알고 있어요. 성경에 시대 나와요. 석기시대에 나오는 창, 칼, 돌칼 등 한국초기 역사에 나온 토기 형태는 이미 성경에서 선사시대 이전부터 나와 있어요. 그래서 성경은 역사라고 하고, 예레미야가 성전지을 때 건축물 재는 단위가 "규빗"이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이것은 하나님이 이미 노아의 방주때 노아에게 알려주신 거에요. 성경은 과학이에요.
당나라때 경교가 그렇게 융성했는데 한반도에 경교가 안들어 왔을리가 없습니다. 경교는 박해 받으면서 한반도에서 유물이 많이 사라지지 않았나 싶어요 경교 이후에도 조선에 꽤 빨리 로마서-당시 라마서 라고 부름 들어와서 선비들이 새로운 道라고 많이 칭송 했다고 합니다 로마서의 이신칭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이런 사상이 기존 어는 종교나 사상에도 없는 전혀 새로운 가르침이니 학구열이 유달리 강했던 조선 선비들이 많이 좋아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신라는 초기 기독교의 한 분파인 네스토리우스파(=경교)를 믿었다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발해(진단震旦Cinitana)도 당나라를 통해 들어온 네스토리우스파(=경교)를 믿었으리라 봅니다. 당시에 일본에도 전해졌으나, 구한말에 전해진 천주교처럼 일본에서 기독교계열의 유일신 신앙은 힘을 못 썼던듯 싶네요.
한자의 어원을 살펴보면 성경의 창세기에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 표시는 신약성경 시대의 처형도구 였고, 엄밀히 살펴보면 기독교의 상징은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형틀)에 못밖혀서 돌아가셨으므로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신 상징으로 표시를 하기 시작하였음. 성경 어디에도 교회에 십자가 표시를 하라는 구절은 없습니다
@@user-pl5pu6it5x 그 당시 신학이 정립되지 않았을 때라서 이단이라고 하기도 좀 애매합니다. 어거스틴 나오고 초기 신학자들이 고생하며 정립한게 대충 경교 활동하던 시기입니다. 이단이라 해도 경전(성경)을 가지고 다녔기에 그걸 보고 진리를 깨우친 사람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네요
불국사에서 십자가라고 말하는 석재는 십자가라고 보기 보다는 구조물의 변형으로 생각함 그 이유는 십자가라 하기는 너무 둔탁하고 둘째는 돌 재질이 화강암이 아닌 사암 같음 다만 7세기 무렵 당나라에 경교라는 변형된 기독교가 유행했고 또 그 무렵 신라에서 승려들이 당나라로 유학을 많이 가서 신라가 기독교를 알았을것이고 문화로서 유입되었으리라 생각함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
shorturl.at/jEFus
도대체 이해할수 없는 답글들이 생각보다 많네요. 신라와 발해의 남북조시대에 경교가 들어왔었음을 사학계에서는 정설인데 굳이 이걸 부정하려고 하는 저 무식한 답글들은 무었인지...반기독교 적인 생각으로 사실을 인지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에써 외면하고 부정하려는 저 억지스러운 발언이 참 한심 스럽네요.
You are not different.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셈족들과 집중적으로는 에벨의 후손 즉 히브리민족을 통하여 전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우리가 다 밝히지 못하는 수많은 히브리인들이 전세계 곳곳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전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탑 언어 혼돈 이전과 이후에 경건한 종들과 그 가족들 혹은 친척들과 함께 미대륙으로 남미로 이베리아반도로 인도하셨습니다. 스페인 이베리안 반도의 이름은 히브리인의 땅이란 뜻이죠 다시스로 명명된 성경의 그곳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히브리족들이 정착했습니다. 우리도 에벨의 차자 욕단의 후손인고로 히브리민족입니다. 히브리민족의 특징은 장차오실 예수님을 맞을 준비하는 사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히브리적 영성을 가진 영적인 히브리민족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예수믿는 이방인들까지도 참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했지요~! 참고로 인도의 아유타국은 히브리어 하유다의 인도식 발음입니다. 유대사람들의 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허황옥이 여기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김해로 김수로왕을 찾아왔지요 김수로왕의 선조는 김일제이고 김일제 북방 흉노족 왕의 태자였는데 한무제가 인질로 잡혀와서
우여곡절끝에 산동성 태수가 되고 그 후에 전한과 후한시대 중간에 신 나라라고는 나라가 세워졌는데 김일제 후손들과 직결됩니다. 후한을 이어간 광무제가 김씨성을 가진 모든 김일제 후손들을 죽이기시작해서 김수로왕도 김해로 피난을 왔고 수 많은 신나라 귀족들이 한반도로 이주했습니다. 나주김씨 김해김씨 경주김씨는 김일제후손들이 정착한 지역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고 같은 집안 사람들이죠~! 김일제는 금신상을 놓고 하늘신을 섬기던 사람이었기에 한무제가 성을 쇠금자로 김씨성을 준 것입니다. 김해라는 이름은 철기문명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고 김수로왕의 김씨 성을 따라 붙여진 것이지요 오늘날로 말하면 김일제 후손들은 경교를 믿은 사람들입니다.
@@seabird-yd7mw경교는 옆나라에 사원도 있었으니까 가능하지ㄹㅇ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님같은 기독교인들이지요.
땅속에서 유인원 화석이 쏟아져 나와도 아담과 이브가 지네 조상이라고 우기고
공룡 존재까지 싸그리 무시하고
한떄는 지구를 중심으로 해가 움직인다는 천동설까지 주장하다가 나중에 잽싸게 말을 바꾸고
이집트 호루스교를 그대로 베껴서 성경을 만든 증거가 나와도 애써 외면하고
뭐 종교쪽은 어쩔수 없죠.
천주교도 임진왜란때 천주교 신자인 일본 장수에게 강제 포교되어 우리나라에 최초 전파되었다는설이 큰데 천주교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죠.
현직 역사교사입니다. 교과서에도 발해에 경교 스타일이 혼합된 불상 사진이 수록돼 있습니다. 당시 인접한 국가 당나라도 경교 사원을 짓고 믿었던 것으로 보아 페르시아 지역과의 교류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죠.
현직 역사교사입니다. 그냥 반가워서 댓글 달아봤습니다. 저랑 생각이 같으시네요.
현직 역사교사입니다.
다@@강태진-w8c
대동강 히브리어 기와장이 발견된것은 이전부터 유태인 기독교과 교류됐다는것.
그거 해석오류라는 주장도 있어요@@cki5584
안녕하세요
역사교사를 꿈꾸고 역사교육과에 편입한 학생입니다.
그냥 반가워서 댓글 달아요 ㅎ
ㅎㅎ 경주에서 고고학 전공 후 문화재연구원으로 일하고있습니다! 맨날 주변에 고고학 한다고 하면 유물 얼마냐고 물어보는데.. 정말 가치를 매길수 없다는 말 공감합니다. 학문적 가치만 있을뿐이죠 ㅎㅎ
경주라 진짜경주는 대륙에있음다 유튜브 책보고님이나 우리역사님 채널한번보시고 제대로연구하시길 부디깨어나시길바랍니다 참고로지금우리역사교수라는분들고리사한개도안본분들 입니다
경교교회가 당나라 때 900개였다는 .... 몽고 황제의 와이프가 기독교인이어서 그 황제가 종교간의 대 회의를 주제하기도 했다는 여러 이야기들이 실제로 기록돼 있습니다.
원사에 보면 몽고 황제의 와이프가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했다는 실제 기록에 나와요.
진짜 이런 주제는 너무 참신하네요... 너무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당나라에서 경교가상당히 번성을 했었기 때문에 경교가 한반도와 만주에도 전래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그리고 당나라에서는 경교를 불교의 한 분파정도로 간주하기도 했었기 때문에 불교와 함께 경교 승려가 들어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거라고 생각됩니다.
불교가 아니고 도교입니다. 중국기독교사에 보면 도교라고 했는데 문제는 기독교 목사급 직명들을 도교식으로 불러서 도교와 기독교가 구분이 안 된 것입니다.
후에 도교와 기독교가 차별화 됩니다. 로마시대에 유대교와 기독교가 차별화 된 것처럼말입니다.
당나라 때라면 600~700 년 사이 어디 쯤이겠네요? 역시 실크로드가 있는데 한국에 전해지지 않았을리가.
고고학 전공하고 싶었는데 밥벌이가 안된다고 포기했는데 비슷한 연배 교수님을 뵈니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참고로 전망좋다는 전공했으나 적성이 안맞아 그만두고 전업주부입니다. 젊은 친구들 하고싶은일, 가슴이 뛰는일 하세요. 우리나라 선진국되서 뭘해도 생계 걱정은 이제 없습니다.
저도 역사책 읽다가, 사학과 가겠다고 그냥 생각없이 말 뱉었다가 온집안 불려 다니면서 꾸중??? 너는 영문과 가야해 ~ !!!
사학과도 영문과도 못 갔습니다. ㅎㅎㅎ
근데... 요즘... 사학과 안 간게 잘 된거 같다는 생각...
또 근데... 대학 때 교양수업 해 주신 교수님은 정말 훌륭하셨어요 ~ 지금도 잊지 못하는 그렇다고 그 교수님을 가까이 다가갔던건 아니고요 ~
가슴 뛰는 일... 25년 전에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어요...
마지막말씀에 공감합니다. 귀한 시대입니다. 모두 감사하는 마음으로 활용합시다.
지금이라도 가슴뛰는일 하면 됩니다
@@danielpark2765 그러기에는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구려 이전인 우리나라 뿌리국가인 부여도 연구해주세요
저도너무궁금한데 위치가북한쪽이라...통일되연 활발해지지않을까요?
거기는 대놓고 중국인데요...?
고구려도 잘 모르는데 부여까지 가능할가요?
부여는 진짜 연구는 커녕 소설을 써야됩니다.
대진경교유행중국비를 보면 당에서 회창폐불 전까지 수십년 동안 유행 했다. 심지어 황제가 직접 사교가 아니라고 공인했고 많은 신도들이 생겨 장안에 사찰도 짓고 예배 했음. 당과 깊이 교류하고 영토를 맞대고 있던 신라와 발해에도 당연히 전파됨.
심지어 우리나라에 예수의 12제자 중 하나인 도마가 왔었다는 전설까지 있음. 종교라는 건 정말 빠르게 퍼져나간다.
도마가 왔다는건
조xx 이라는 분이 퍼트린 괴설입니다
황제가 인정했다
.. 예 인정했겠죠.
당나라는 당시 세계의 나라였기에 거의 대부분을 인정했죠.
세계 모든 종교가 다 들어왔고 다 인정했습니다
.
도마는 경교랑 상관없음
도마는 인도로 갔다고 알려져 있죠
그저 카더라로 가능성을 논하네 ㅋㅋㅋㅋ
동방박사 얘기도 나오잖아요. 충분히 가능
오랫동안 동양에서도 경교가 들어와서 신자가 일정하게 유지가 되었는데
송 진종과 명 가정제가 대대적으로 박해했다는 자료를 본적이 있지만
한번 보고 잊었기 때문에 다시 찾아야 합니다.
경교가 당나라 때 유행... 발해와 신라에 전파됨...
지금 내 형편이 넉넉하면 내 막내아들 고고학 연구에 물심양면 빡세게 밀어 주고픈 애비의 맴~
지구상 이보다 더 가치있는 학문이 있을까요?^^
중국 한자에는 창세기의 이야기들로밖에 설명 안되는 한자들 많음. 우리는 전부 노아의 후손들임.
단군신화도 하나님 이들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연관될 수도
그건 예수회 선교사들이 먼저 시도한 것인데 갑골문이 나오면서 유사 학문으로 추락했습니다
그냥 현재의 한자와 창세기를 가지고 끼워 맞춘 겁니다
이런거 따질 시간에 어떻게 가르침대로 살지 고민하고 행동하는게 유익한 시간이 아닐지
@@이도형-x9x역사의 증거를 부인하고 성경의 진리를 안믿기로 본인이 결정해도 진리는 불변합니다
@@joh5918 그거 기독교인 중문학자들이 반대했습니다
끼워맞추기라성ᆢㄷ
제가젊었을때 30대에 부목사님께서 성경공부때 가야와신라때 경교라고해서 기독교가 존재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제자도마가 경주에왔다갔다고 전 요근래 여러고증을거쳐 확신합니다
도마석상도 있었나 했어요 경남쪽에
영주에 바위에 히브리어로 도마라고 새긴것이 있다 합니다
김필재 기자가 기사를 써서 알게 됬는데 찾아서 보세요..
예수가 부처님 제자 였다는것도 알려나?
가야역사흔적에도 기독교흔적 많아요 근데 이걸 불교가 다 우리 불교의 흔적이다라고 해서...아쉽죠
스페인 바스크족은 한국의 윷판이 민족의 상징인데 그들이 한국에서 윷놀이 하는 걸 보면 어떤 생각할까요?날조한 댓글 때려치우고 당신의 현명한 답 바랍니다..
좋은정보...기대가 되네요 🎉
교수님~ 정말 멋진 주제 강의였습니다~ 많이 알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발해와 신라(삼국사기,삼국유사)의 강역을 제대로 파악하고 고려(고러사)의 강역을 잘 점검한다면 더 많은 엄청난 사실을 알게될겝니다.
동북공정의 앞잽이 출현.
@@ExRioNS당신이 앞잡이인듯
네스토리우스 기독교 = 경교
당 태종(598~649) 때인 7세기에는 중국 대륙에도 전래되었다. 페르시아인 경교 사제인 「아라본」(阿羅本) 등에 의해 전래된 네스토리우스교는 경교(景敎)라 불렸고,
경교 교회를 페르시아 교회라는 뜻인 파사사(波斯寺)라고도 불렀다. 경교라는 이름은 중국어로 빛의 신앙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당 현종(玄宗) 때에는 경교 교회인
파사사는 대진사(大秦寺)라 개칭하고, 각지에 교회를 건립하여 교세를 제법 떨쳤다고 전해진다. -위키백과- 관련 물품 또는 기념품이 되어 신라,발해 에 전파되었을것
정통은 아니고 초기기독교에 있었던 대표적 6대이단중 하나입니다..
@@hararnoh2555 네~ 이단이라고 단정 하는 자체가 모순 입니다. 지금의 교리 개념으로 그때 그들의 개념 과 주장을 판정하는 오류 를 범하는 것 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법으로 고려시대 ,조선시대 의 여러 사회 제도 와 법율을 불법이라고 단정 하는것 과 같은 것 이지요
네스토리우스파 는 성모 지위에 관한 이견으로 갈라져 나간 파벌입니다. 그들의 성모에 대한 개념은 지금의 개신교와 더 가깝습니다.
@@hararnoh2555 그 당시 신학이 정립되지 않았을 때라서 이단이라고 하기도 좀 애매합니다.
어거스틴 나오고 초기 신학자들이 고생하며 정립한게 대충 경교 활동하던 시기입니다.
이단이라 해도 경전(성경)을 가지고 다녔기에 그걸 보고 진리를 깨우친 사람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네요
예수아버지가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기독교는 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고
예수가 티베트 나와바리에서 오랜시간 공부했어요..
페르시아는 신라 시조 토르와 깊은 관련이 있고 예수는 토르와 깊은 관련
@@j3459 유머 ..... 개그 인가요? 그쪽으론 센스가 없는 편이라서 ㅎㅎㅎㅎ
고고학은 참 재미있는 분야임. 조금씩 우리의 과거를 더듬어서 진실을 알아갈 수 있으니...
교수님 영주 분처바위에 대하여서도 다루어 주세요 감사합니다
경교. 네스트리우스파가 몽골에도 널리퍼졌고 신라, 일본에도 퍼졌다. 그러나 영향력은 미비했다. 오히려 조로아스터교 배화교의 영향이 더 컸다.
앞부분 보고 경교 이야기인가 했는데 맞네요 ㅋㅋ 경교 사찰이 당나라 때 꽤 들어섰다고 알고 있거든요. 당나라에서 유학하는게 최고 엘리트의 길이었으니 지식인들 모를 리 없었을 테죠. 무역도 활발했으니 상인들도 많이 알았을 테고..불교 힘이 거세지면서 경교 사찰들도 자연히 흡수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당나라때 경교가 그렇게 융성했는데 한반도에 경교가 안들어 왔을리가 없습니다.
경교는 박해 받으면서 한반도에서 유물이 많이 사라지지 않았나 싶어요
경교 이후에도 조선에 꽤 빨리 로마서-당시 라마서 라고 부름 들어와서 선비들이 새로운 道라고 많이 칭송 했다고 합니다
로마서의 이신칭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이런 사상이 기존 어는 종교나 사상에도 없는 전혀 새로운 가르침이니 학구열이 유달리 강했던 조선 선비들이 많이 좋아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rico5740사실 성경가르침이 유교와 들이맞는게 많아요. 😊
불국사 앞마당에서 목사가 발견했다는 십자가는 사기극입니다. 당시에 전문가들에 의한 감정 결과는 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명되어 숭실대박물관에서 전시하다가 치워졌는데 나중에 슬며시 다시 공개하고 있죠.
@@rico5740 그게 200년전. 경교와 전혀 다른 케이스. 경교는 중국에 와서 교리의 현지화 하여 특색을 읽고 사라짐. 물론 중국에서 박해도 있었지만 진짜 사라진 이유는 유불노사상과 습합되어 조용히 사라지게 된다.
@@이상호-l5c1z 이신칭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사상은 타종교에서 찾을 수 없는 독보적인 사상이죠
십자가는 인간이 만들수있는 가장 단순한 목공임. 어디서 발견되든 이상할것이 없음.
유익하고 재밌는 강의 감사합니다❤
잔잔하게 설명 잘하십니다.
재밌고 유익해요~~
우리나라 고고학, 사학과 관련해서 지원도 좀 해주고 유적지 관련법도 바뀌어야한다고봄..
사람이 아는만큼 보인다.
우리 남북국시대와 고려시대는 동서교류가 활발했던 시절이었음. 서역 상인들이 한반도까지 와서 무역하고 거주하기도 했음. 고려시대에 천주교가 있었단 증거는 없지만, 옆나라 원나라에는 천주교가 있었고, 그건 천주교를 믿는 유럽인들이 원나라를 넘어 고려까지 와서 무역했을 가능성도 있음. 그래서 발해인, 신라인 경교신자나 고려인 천주교 신자는 없었더라도 한반도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위한 종교시설이 있었을 가능성은 다분함.
로마에서 서아시아로 다시 중국으로 이어서 한반도로 얼마든지 전해졌을 가능성은 있죠. 꼭 전도 혹은 포교에 성공했단 뜻은 아니구요.
도마가 김수로왕과 인도의 허왕후를 증매했고 허왕후 내외가 똑같은 꿈을 꾸고 딸을 시집보낼때 많은 종들과 물품을 가지고 왔다고 함. 그때 녹차 씨앗도 가져와서 재배하기 시작 했다고함, 허왕후는 김수로왕에게서 9아들을 낳았는데 그중 2아들은 허씨성으로 줘서 지금도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는 같은 집안이라 결혼하지 않음.!! 도마와 김수로왕를 전도했고 허왕후와 결혼시키라는 꿈을 꾸고 사람을 인도로 보내서 신부흘 데려왔다고함. "손길문화원"에 성경의 등잔, 히브리어가 바위에 새겨진 사진들 찍은 자료가 많던데요!!!
십자가는 기독교의 전유물이 아니고 고대 및 현재 누구나 사용하는게 십자가다.
좀 내 틀 안에 어거지로 넣는 느낌이 강하네요.
안동군 임하면 임하1리 백운정 주위에 옛 고분군이 있는데 거기에는 十자 형태로 돌이 박혀 있었는데 거기도 옛 기독교 무덤이 아니었을까요?
기독교, 천주교가 언제 한국에 유입되었는지를 알면 알수 있을것같어요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도 고고학과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아 멘
천지할때 스카이 아님 해븐임 즉 골로새서 내용처럼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영계와 육계 창조라고 봐야함 아담당시는 영계가 육계를 덫입어서 사람이 신의 형체대로 산거고.. 이데아의 영역에서 모든 물체가 변함이 없으니깐 모든 만물도 그랬을거고
성경은 이집트 호루스교를 그대로 베껴 만든 표절 소설임
아멘....
가, 아닙니까 ?
@@H.O.L.Y777
기독교 성경은 이집트 호루스교 베껴 만든 표절 소설
@@byungyoon8550 요한복음 빛이 어두움을 비취되 라고 말씀하셨고 요일서 4-5장에도 범죄하는자는 어두움에 속하지않고 빛에 속했다고 빛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도 그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는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죠 창세기는 마13장에도 창세로부터 감추인 비밀을 드러낸다고 나옵니다 즉 빛이 빛을 말하는게 아니라는거죠 초림때 예수님이 자기를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당시 예수님이 유대인에게 회개하라 하여도 그들이 듣지않았으니 빛이 어두움을 비취되 깨닫지 못했다고 하는것도 맞습니다 시편 119:130절에도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자에게 비추어 깨닫게 했다고 나옵니다. 그 우두한 심령 마음을 비춘것이죠 구약에도 사람의 심령은 여호와의 등불이라고 하죠 살피신다구요
신라 김수로왕 와이프 유태인이죠 허씨
아유타공주
수로형 이제 드라마에 안나오네
허황옥을 유태인사람으로 바꿔버리네...
이건또 무슨?
홍산문화속에서 제사장의 몸(배부분이나 가부좌한 아래에 절 만자 새겨져있고 십자가는 머리위에 새겨져있습니다 여기서 절만자는 북두칠성의 회전하는 장면이고 십자가는 북두칠성이 한바귀 돌아온 형태라고 합니다?
그 만(卍)자는 스와스티카(Swastika.स्वस्तिक)라고 하는데요
여러 대륙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요
출현 시기는 7000여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문자의 출현 이전
불교의 출현 이전인거죠
십자가도 홍산문화에서 발견되는데 4방향 대칭형(➕)이죠
아래가 긴 기독교풍의 십자가( ✝)와는 달리 생겼죠
탱그리신(단군신화 관련)을 상징하는 표식이었다고 합니다
그게 서쪽으로 전파되고
4세기에 로마카톨릭이 채택을 합니다
그 이전에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십자가는 혐오의 대상이었죠
불교도
기독교도
원래 있던 그런 표식들을 차용한거로 봅니다
.
기독교 알라신 불교 역경등 내용읽어보면 환웅 시대부터 생긴거
@@buhaegong6928네 그런 시대없어요
없다고 하는데,
당신이 봤나요?
단정은 하지 마시길...@@두목리즘
스와스티카는 만신숭배사상입니다.. 고대글자 하나님을 뜻하는 巫가 卍이 된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을 숭배하다가 천지신명 즉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절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징이 스와스티카이며 이를 히틀러가 차용해 나찌문양을 만들었죠.
이야. 이분 마음에 드네. 어떤 고고학자는 본인리 배운 이집트만 강조하던데, 고고학자이면 성경을 볼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 했는데, 역시 큰 그림을 보시는 군요. 성경도 고고학이고, 예수님도 역사인물이자 신.
십자가, 궤, 돌판에 새긴 십계명, 사우디아라비아의 시내산, 노아의 방주.
곤장치는 형트로 십자모양이예요. ㅋㅋㅋ
흔함에 의미를 입힌게 십자가 인듯요.
우리나라 조상. 고조선의 초기 유물에 십자가가 있더라구요.
예수의 아버지가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j3459 이단이시군요 예수님은 창조주가 사람옷을
입고 인류의 죄악을 해결해주려고 오신분을
@@riversofjoy228 공부하세요
예수도 공부해서 성인이 되었어요
동북공정 역사를 새로 쓰기위해 많은 인력이 필요한 중국..문화혁명을 찬양하는 것과 일관된 중국..아직도 625는 남한과 미제침략 전쟁이라는, 당시 한반도에는 침략용 탱크가 중국이 준 북한탱크밖에 없었다.
고대 삼국시대 부터 실크로드가 존재 하면 .....
발해 건국 전 부터 시작한 무역길이니.... 다양한 종교, 문화, 음식 등 전파 되겠죠....
심자가는 서양 기독교가 예수를 잘못 우상화 한겁니다. 불교 만자를 철십자로 보는것과 다름없음. 십자가나 만자는 다 별자리 천문을 상징하는거로 봐야합니다
도마가 인도 공주랑 왕이랑결혼 시킴 인도공주 무덤 에. 물고기 문양. 도마 글자로 새김 슬리퍼도 새김 도마
저도 고등학교때 지학을 엄청 재밌어
하고 점수도 유독 좋아서 고고학 전공하고 싶었었네요 😂 인류의 지나간 발자취 찾다보면 너무도 많은 학설의 근거까지도 찾아내지는 멋진 학문같아요^^~
교수님 좋은강의 기다리겠습니다
고대에 십자가는 형벌을 가하는 도구 였습니다. 예수님 사후 상징적으로 변화했지만, 중세까지도 십자가는 형벌의 하나였습니다.
그건 2024년 전이지요. 지금 영성에서 말씀하시는 내용은 ad 400년 이후 입니다. 즉 국내 발션 십자가는 형벌의 도구가 아닌 부활의 예수 님을 상징하죠.
성경이 새겨진 돌비석도 기대합니다
신라때 아랍인과의 교역 그땐 이슬람이 있기전 신빙성 있다고 봅니다
원래 십자가는 기독교 전유물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진 않겠지만 어떤 세력에 영향을 받아서 십자가를 흡수하고 자신들의 것으로 만든겁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것이 아니고, 선사시대 토기에도 많이 그려져있고, 2~3만년전 유물에도 발견되는데. 예수가 타임머신 타고 새기고 왔다고 할라나. 방구석 학자가 뭘 아겠니.
한글도 제대로 못적는 니가 뭘 안다고 대학교 교수를 함부로 지적하는거야?ㅋㅋ
@@생각의주체는항상나 그르게요. 선사시대 토기... 이런것을 성경에서 찾으면 아마 예수님 탄생 시점이 AD, BC 니까, 한국 선사시대는 예수님 부활 이후라고 알고 있어요. 성경에 시대 나와요. 석기시대에 나오는 창, 칼, 돌칼 등 한국초기 역사에 나온 토기 형태는 이미 성경에서 선사시대 이전부터 나와 있어요. 그래서 성경은 역사라고 하고, 예레미야가 성전지을 때 건축물 재는 단위가 "규빗"이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이것은 하나님이 이미 노아의 방주때 노아에게 알려주신 거에요. 성경은 과학이에요.
십자가가 논쟁의 핵심이 아니고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가 경교라는 이름으로 주후 7세기부터 200년간 당나라때 활약했다는 것은 팩트라는 것입니다
순간 입질의 추억님이 십다가 이야기 하는줄...
중국어로 10을 뜻하는 "십"이 십자가 모양인 것이 저는 늘 신기했어요. 또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획을 위 아래로 그으면 "왕"이라는 한문이 된다는 것도 늘 신기하더라구요. 하늘과 땅을 연결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곧 그는 온 천하에 왕이시다.
진짜관심있던 분야였는데 재밌네요
십자가는 하늘을 나는 까마귀에서 그 모양이 나왔어요.
뭔 근거로?
✞景教가 改新敎보다 正統이었습니다✞
景教 → 景福(景教祝福)
≈ 改新敎
≈ 天主敎 - 天主敎像 - 第二經典
≈ 大乘佛敎 - 佛像
경교를 대표하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에 동방박사 이야기(파사도요이래공)가 나옵니다.
경기도 안성과 화성에 모조비가 있습니다.
16세기 이전 이니까 현제 개신교 보다는 카톨릭에 가까운건가
경교가 들어온것 참 신기하네요
교단이 발굴을 못한다.? 어떤 대학 출신들이 잡고 있는 것.
지속되지는않았어도 경교가 들어왔다는건 인정되는 사실이죠.
입질의추억인줄 알고 들어왔다는......
아멘
한국 교인들은 교단주의자들이 많아서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시초가 아니면 불편해하는 분들 많습니다. 하나님을 한정시키려는...
나는 이와 관련한 내용을 35년 전에 학부에서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90년대 그당시에 발굴됐습니다
석유환국 제발 반도사관에서 빠져 나옵시다. 그 지명 다 동이족 지역에 다 있다.
신기하네요 삼국 시대부터 기독교가 있었군요
고조선 최초 국가가 산에서 신께 제사를 지내는 형태도 있었고 최초의 제사장이 고조선 한민족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강단사학자들이 경멸하고 무시하는 홍산문화! 홍산문화속 절만자와 십자가를 모르고는 발해만 출토 십자가를 논하기는 ?
경교가 당나라 때 전해진 것 상식 아닌가요 그런데 몇 천년전 홍산문화는 왜? 정말 환빠들의 무지는 끝이 없네요
강인욱 교수님은 러시아에서 고고학을 공부하신 분입니다
우리민족 케레이트 심볼마크가 십자마크인데 기독교와 연결하다니 역사학자 맞냐?
케레이트(트가 복수s)...가 겨레라는 의미라고 방언통변때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하늘의 옥쇄를(천부인-말씀,물,피-십자가의 피) 가진 민족 맞습니다.이것이 구원의 상징입니다.
홍혜걸님 많이비슷ㅎ
십자가야 뭐 있었어도 큰 의미부여가 안될듯…굳이…비단길로 동양문물이 90프로 서양으로 넘어가고 서양문물 10프로 가량 동양에 전파됐다고 하더만…그중 하나
강인욱 교수님 저도 경교에 대해 관심이 많은 한 사람입니다
강인욱 교수님 유투브 모든영상 재미있게 보고있어요
이미 자료가 나왔구 책으로도 나왔는데
한문에 十자가 있다고 기독교냐
열십자도 십자가 형.
기독교 아니라도 인류의 가장 흔한 형태 .
한민족 고조선/고구려,백제,신라,발해/고려까지 대륙 동남북부를 지배했다는 것을 알면 역사의 퍼즐이 끼워 맞춰짐.
인류가 곳곳으로 흩어진 성경속이야기~~ 찐 진실된 하나님말씀
십자가는 다 기독교 상징인가요?
아닐수도 있지 않나..그냥 상형 문자나. 부족의 상징 일수도 있지요
죄를 회개 해라
당나라 경교가 전파된 결과 아닐까요?
여러분 우리 조상님들
다민족 다종교 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안퍼졌을리 없지
당나라때 경교가 그렇게 융성했는데 한반도에 경교가 안들어 왔을리가 없습니다.
경교는 박해 받으면서 한반도에서 유물이 많이 사라지지 않았나 싶어요
경교 이후에도 조선에 꽤 빨리 로마서-당시 라마서 라고 부름 들어와서 선비들이 새로운 道라고 많이 칭송 했다고 합니다
로마서의 이신칭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이런 사상이 기존 어는 종교나 사상에도 없는 전혀 새로운 가르침이니 학구열이 유달리 강했던 조선 선비들이 많이 좋아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신라는 초기 기독교의 한 분파인 네스토리우스파(=경교)를 믿었다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발해(진단震旦Cinitana)도 당나라를 통해 들어온 네스토리우스파(=경교)를 믿었으리라 봅니다. 당시에 일본에도 전해졌으나, 구한말에 전해진 천주교처럼 일본에서 기독교계열의 유일신 신앙은 힘을 못 썼던듯 싶네요.
한자의 어원을 살펴보면 성경의 창세기에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 표시는 신약성경 시대의 처형도구 였고, 엄밀히 살펴보면 기독교의 상징은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형틀)에 못밖혀서 돌아가셨으므로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신 상징으로 표시를 하기 시작하였음.
성경 어디에도 교회에 십자가 표시를 하라는 구절은 없습니다
간판 같은 거지
유대인들, 이스라엘 모두 기독교에요. 예수님 고향. 그리고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이 선조이고 거슬러 올라가면 아담과 이브 . 인간 첫 창조에요.
십자가는 기독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불교의 "만자"와 똑같이 우주의 회전하는 모습을 그린 원형의 모습입니다
십자가와 함께 동제십자가, 마리아상도 같이 출토됐으니깐 기독교(경교) 상징이라고 유추한거지 십자가만 보고 기독교라고 단정 지을만큼 고고학자들이 만만한 사람들이 아님
중국에 기독교가 전래된것은 당나라때이고 , 이때는 기독교가 아니라 경교(景敎)라고 했어요 이 때 들어온 기독교는 소멸된 것으로 알고있어요 , 비공식 루트로는 한반도 까지 우입되었을수도 있겠지요
참고로 경교는 가톨릭에서 이단으로 선언한거라 기독교라고 하기도 어려움
@@user-pl5pu6it5x 그 당시 신학이 정립되지 않았을 때라서 이단이라고 하기도 좀 애매합니다.
어거스틴 나오고 초기 신학자들이 고생하며 정립한게 대충 경교 활동하던 시기입니다.
이단이라 해도 경전(성경)을 가지고 다녔기에 그걸 보고 진리를 깨우친 사람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네요
@@rico5740 이단 맞습니다, 파문당했구요, 네스토리우스는 어거스틴 보다 뒤에 활동, 경교는 파문으로 동지중해 떠나면서 더 훗날이야깁니다.
@@user-pl5pu6it5x그렇게치면 개신교도 이단이지.. 아 하긴맞나?
@@모짜렐라-x5t ㅋㅋㅋㅋ그쵸 아브라함계는 서로 이단이라고 하니.. ㅋㅋㅋㅋ
십자가는 하늘과 땅을 잊는 것이다 그것이 까마귀다 중요한 한자 보면 답나온다
사형틀이에요
@@Jk-fh3ek예수님 상징.
불국사에서 십자가라고 말하는 석재는 십자가라고 보기 보다는 구조물의 변형으로 생각함
그 이유는 십자가라 하기는 너무 둔탁하고 둘째는 돌 재질이 화강암이 아닌 사암 같음
다만 7세기 무렵 당나라에 경교라는 변형된 기독교가 유행했고 또 그 무렵 신라에서 승려들이 당나라로 유학을 많이 가서 신라가 기독교를 알았을것이고 문화로서 유입되었으리라 생각함
중국에 고려인 무슬림 묘비가 있는걸 보고 고려는 이슬람국가였다고 주장하는 급의 헛소리
십자가 뭔뜻인줄 알면 십자가를 무족건 기독교랑 연결할수없지 십자가는 태양 즉 태양을업고날라다니는 새를 말하는것이다
한국 기독교사의 기본 지식..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경교 기독교와 불교가 결합된 그리고 일본의 신사와의 흐름을 보면 불상안이나 뒷면에 십자가가 세겨져 있는 것을 많이 볼수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기독교만의 상징이 아닙니다. 경교는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선언했으니 기독교도 아니구요
온갖 잡신을 숭배하는 일본 신토신사…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가증한 종교시설 중 하나일겁니다.
@@이상호-l5c1z 애초에 야훼도 중동 조상신에서 출발하긴 했습니다 ㅋㅋ
애초에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 아닌 것을...
근원을 따라가 보면 십자가 = 불교卍 = 하켄크로이츠임. 십자문양이 나왔다고 해서 기독교가 들어왔다는 말은 아님. 그 지역의 토속신앙에서 사용된 기호일 가능성이 훨씬 높지
경교가 당시 한반도에 들어왔다는건 사실상 학계서도 인정하는 사실이긴 합니다
@@이상호-l5c1z 그쵸
내말은 십자가 문양이 나왔다고 해서 아니 이 시기에 십자가가? 라고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언제적 이야기로 낚시질을?
음 호구같은 채널에서도 고고학의 어떤 흐름을 공부할수있어서 감사드립니다
호구아닌 정상의 모습에서만 그 흐름이 전부가 아니니 배움의 자세도 하나가
아니군요
당나라에 경고 네스토리우스학파가 들어 왔었고 경고사원이 있는데...
신라가 당시 당나라와 교류가 빈번했는데 십자가가 있는 것은 절대 이상한 것이 아님
동양의 사서오경이 모세오경의 한문표기라는 집단의 아류인가?
십자가가 교회를 상징하는 물건이 된건 성조지이후죠 그전의 십자가는 까마귀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활이라고 하던데 십자가가 있으면 무조건 기독교라고 발상자체가 웃기는 현상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