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고려는.. 조선은... 오늘날 같은 민주사회가 아니고선.. 어느 시대를 대입해서 같음.. 조선까지만 보더라도 사람은 물건취급하는 노비제가 있었다는거. 유럽은 물론 중국보다 늦게 노비제가 없어진 게 조선이라는거... 다만 신라의 신분제는 그 구조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기에 우리가 그나마 잘 파악하고 있는 차이만 있을뿐.. 어느 시대의 신분제던 어떤 신분제던 신분제는 신분제 틀에서 벗어날수 없다는거.
@@유진이-o3x / 뭐가 부르던 노예던,노비던,농노던 저런 신분제는 사람의 인신을 억제하죠. 노예가 유럽에서 사라졌지만.. 미국에선 아주 오랫동안 유지되었죠. 그들의 노동력으로 경제가 돌아가기에 미국에서도 조선에서도 이제도가 나쁜걸 알지만 유지가된.. 물론 미국의 흑인노예제도랑 조선의 노비제는 다르긴 하지만.. 신분제란 관점에서 벗어 날 수 없죠..
신라가 지금의 대구,경북 세력 같음. 따지고 보면 신라가 그 쪽 지역이긴 함. 부산, 경남쪽은 가야계임. 박정희 시대에는 대구,경북 출신들이 좋은 자리를 꽉 잡고 있었음. TK출신이 아니면 좋은 자리 얻기 힘들정도. PK출신들은 TK출신들에 굽신거림. 가야출신이 그랬던것처럼. 마지막으로 진성여왕과 비슷한 인물이 박근혜인데, 진성여왕으로 인해 신라가 몰락의 길을 걷는 시기였음. 지금의 자유한국당이 박근혜 때문에 망해가는 것도 그렇고.
경상도상대 노이즈 마켓팅 선동은 중단해야.. 객관적 통계를 보면 박정희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호남인사 우대했다는 사실을 알 수있습니다. 피해의식에 찌들은 일부인자들의 거짓선동에 속지마시기 바랍니다. 이시원·민병익의 〈우리나라 역대 정부 장관의 재임 기간 및 배경 분석〉(《한국행정학연구》 제11권 3호, 2002년)을 보자. 이승만(李承晩) 정권 시절에 영남 출신은 23명으로 20.9%를 차지한 반면, 호남 출신은 7명으로 6.4%에 불과했다. 이 시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것은 서울 출신(44명, 37.3%)이었다. 황해도 출신으로 서울에서 자랐고, 성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했던 이승만 대통령이 영·호남에 대한 지역감정이 있었을 리는 없다. 위의 연구에 의하면 단명했던 장면 정권에서도 영남 출신 비율이 호남 출신보다 두 배가 높았다. 영남 출신은 15명으로 33.3%에 달했지만, 호남 출신은 6명으로 13.3%에 그쳤던 것이다. 논란이 되는 박정희 정권 시절을 보자. 18년 내내 영남 출신이 다수(多數)를 차지했던 것은 사실이다. 영남 출신은 48명으로 33.8%, 호남 출신은 18명으로 18.3%를 차지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영·호남 지역 비율이 유신 전(제3공화국)과 유신 후(제4공화국)에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유신 전에는 영남 출신 비율이 31.9%(29명)였는데, 유신 후에는 37.3%(19명)로 올라갔다. 반면에 호남 출신 비율은 13.2%(12명)에서 11.8%(6명)로 내려갔다. 이는 1971년 제7대 대선 당시 호남 출신 김대중의 도전, 유신 이후 친정(親政)체제의 강화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세는 이후로도 계속된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영남 출신 비율이 39.8%(41명)까지 올라갔다가 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30.3%(30명)로 내려간다. 이 시기 호남 출신 비율은 각각 10.7%(17명)와 17.2%(17명)였다. 지역차별 문제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는 영·호남 출신 충원 비율이 차이가 나는 원인을 정통성이 부족했던 군사정권이 그 지지기반을 출신 지역에서 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말끝마다 ‘문민(文民)정부’라는 정통성을 자랑하던 김영삼(金泳三) 정권 시절, 영남 지역 편중 인사는 노태우 정권 시절보다 더 심해졌다. 영남 출신은 37%(37명)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호남 출신은 18%(18명)였다. 이런 상황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급변했다. 호남 출신과 영남 출신이 각각 25.8%(23명)로 동률(同率)을 점하게 된 것이다.
DJ 시절 호남 편중도, 박정희 때 영남 편중도보다 높아 김대중 정권 시절 중앙인사위원회는 ‘지역편중도(=지역별 인구-누적 재임기간의 비율 절댓값)’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는 기준연도(이승만~박정희 1925년, 최규하~전두환 1930년, 노태우 1935년, 김영삼~김대중 1940년)의 지역별 인구 비율과 재임기간 등을 반영한 것이다. 이에 따라 서원석 한국행정연구원 인적자원센터 소장이 분석해 2003년 발표한 바에 의하면, 지역편중지수는 이승만 정권 시절에 가장 높았고, 김대중 정권 시절에 가장 낮았던 것으로 나타났다(〈표〉 참조). 인구 비례 등을 감안할 때 장면~김영삼 정권 기간 중 영남이 과다(過多) 대표됐고, 호남이 과소(過少) 대표된 것은 사실이다. 이런 문제들이 누적되면서 지역감정이 악화되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박정희 정권 시절 영남이 과다 대표된 정도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는 점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영남이 과다 대표된 비율은 3공 시절 +6, 4공 시절 +2였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17, 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20, 김영삼 정권 시절에는 +16에 달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영남이 과다 대표된 비율은 김대중 정권 시절 호남이 과다 대표된 비율(+12)에 비해서도 현저하게 낮다. 원문 월간조선 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A&nNewsNumb=201910100055
세계사를 공부 못한 한국사 전문가들의 한계를 보여주는 조금 씁슬한 면이 있어 안타깝다. 이른바 한반도 역사 전문가들의 인식이 반도 역사 수준을 거의 넘어 서지 못하는 것이 문제요, 세계적으로 보면 고대, 중대에는 왕권 유지를 위해 근친혼, 엄격한 신분 제도 유지, 신분간 이동 불가능은 상식이나 다름 없다. 역사 입문자들이 보면 마치 신라의 독특한 제도로만 착각하겠다.
@@herokim9501 한국인이 신라인이니까 김씨 박씨가 신라 왕족이자 한민족 한국인이고 전라도 사람들 백제인이라고 여기잖아요? 전라도에도 김씨 박씨가 가장 많이 살고 있고 경상도가 본관인 신라계 성씨를 다들 쓰고 있어요 한국인의 시조는 박혁거세 님 머리 속의 신라는 경상도의 뜻이 잖아요? 신라의 본래 뜻은 한국 우리나라의 뜻이에요 고려시대 이전이 천년 신라시대 통일신라 표현은 일제시대에 만든 표현이에요 통일후에도 여전히 신라 통일후 신라 고려전이 신라시대에요 신라의 삼국통일은 대동강 이남이 아니라 만주까지 흡수통일 했고 중국 정복설도 있어요 그리고 신라는 유럽부터 중앙아시아 만주 한반도까지 대제국을 건설한 스키타이 훈족 흉노 제국 연방의 일원이었고 몽골이 고구려 흉노에요 일본이 백제
궁예는 아예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네;;; 그리고 견훤이 경애왕을 죽인 후 자신(견훤)의 동생을 경순왕으로 앉혔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러면 경순왕은 김부가 아니라 견부라는 말인가? 경애왕을 죽인 후 김씨 진골인 김부를 경순왕으로 앉혔다 라고 말해야 이치에 맞지.... 이거 무슨 견훤이 신라 왕족 말단에서 나온 사람인 줄 착각이 들 정도네. 견훤이 김씨인지 경순왕이 견씨인지..... 이건 다큐 제작자가 국어가 딸린다는 증거!
《팩트 정리》 1) 현대 한국인은 신라인과 백제 치하 마한인의 직계후손이다. 2) 부여계 고구려인과 백제인(지배층)은 삼한계 피지배층 및 신라인과 서로 언어가 달랐다. 3) 고구려인은 대다수 당으로 압송되거나 말갈 등지로 흩어졌고 이에 현대 한국인과 크게 혈연적 관계가 없다. 4) 백제인(지배층) 역시 당으로 압송되거나 일본으로 망명했기에 현대 한국인과 크게 혈연적 관계가 없다. 5) 신라의 삼국통일은 삼한인에 의한 부여계 이민족 정권의 한반도 축출이라 볼 수 있다. 6) 그러므로 사실상 오직 신라만이 한국사의 원류이며 고구려와 백제는 한반도를 잠시 장악했던 이민족의 역사다.
신라의 마지막 수도는 한반도 경주가 아니라 지금의 중원, 낙양이 동경이다. 서경은 한반도 평양이 아니라 지금의 서안(장안)이다. 통일신라의 범위는 지금의 중공 대륙에서 부터, 실크로드를 거쳐 광대한 영역을 경영했다. 당은 신라의 제후국 역사이다. 신라와 당은 같은 나라다. 페르시아의 쿠시나메에서 신라는 바신라로 불리는데, 당신라로 볼 수 있다. 아직도 우리 궁중 음악을 당악이라고 한다. 신라는 shilla
생각해 보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새로운 골품제에 갇혀있지 않나?
돌대가리인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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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3:18초 쯤 나오는 마을은 신라시대 마을을 재현 한 곳인가요? 맞다면 어디인가요? 방문하고 싶어서요
ㅋㅋㅋ 리플들이 더 재밌네요, 잘보고 갑니다.
골품제도는 흰뼈제도라는 이름으로 파미르 고원에서부터 유목민들의 고유제도입니다. 돌궐, 흉족들의 전통제도이지요.
허준은 서자가 아닌 유명한 사대부집안의 적자이고 동복형은 정삼품직계에 올랐고, 유성룡과는 절친이었다.
통일 신라 말의 충신, 고운 최치원 선생
믿거최
그럼 고려는.. 조선은...
오늘날 같은 민주사회가 아니고선.. 어느 시대를 대입해서 같음.. 조선까지만 보더라도 사람은 물건취급하는 노비제가 있었다는거.
유럽은 물론 중국보다 늦게 노비제가 없어진 게 조선이라는거...
다만 신라의 신분제는 그 구조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기에 우리가 그나마 잘 파악하고 있는 차이만 있을뿐..
어느 시대의 신분제던 어떤 신분제던 신분제는 신분제 틀에서 벗어날수 없다는거.
노비는 노예보단 농노에 가깝습니다 농노가 사라지게된 배경에는 근대화가 있는데 러시아만봐도 농노가 노동자 되어봤자 ....
@@유진이-o3x / 전 노예라고 하지 않았디요.. 노비라고 했을 뿐인디.
따지고 들면 조선의 노비는 유럽의 농노와도 다르죠...
노예.노비.농노.소작인 등 각기 부르는 게 다르듯이 각기 다 다르죠.
유럽에서 쓰이는 형태가 우리와는 다르기에 부르는 것 또한 다르죠..
@@유진이-o3x / 뭐가 부르던 노예던,노비던,농노던 저런 신분제는 사람의 인신을 억제하죠.
노예가 유럽에서 사라졌지만.. 미국에선 아주 오랫동안 유지되었죠.
그들의 노동력으로 경제가 돌아가기에 미국에서도 조선에서도 이제도가 나쁜걸 알지만 유지가된..
물론 미국의 흑인노예제도랑 조선의 노비제는 다르긴 하지만.. 신분제란 관점에서 벗어 날 수 없죠..
선덕여왕릉은 찾는 사람이 많은데 비해서 진덕여왕릉은 찾는 사람이 많이 없더군요
골품제도를 폐지하고자했던 왕은 없었나요? 안타깝네요.
있었어요. 통일 신라 진성여왕이 골품제 폐지하려다가 중앙귀족의 반발로 기각되었다고 했습니다.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제도는 폐지해야한다.
낡은 칼은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함.
...
신라가 지금의 대구,경북 세력 같음. 따지고 보면 신라가 그 쪽 지역이긴 함. 부산, 경남쪽은 가야계임.
박정희 시대에는 대구,경북 출신들이 좋은 자리를 꽉 잡고 있었음. TK출신이 아니면 좋은 자리 얻기 힘들정도. PK출신들은 TK출신들에 굽신거림. 가야출신이 그랬던것처럼.
마지막으로 진성여왕과 비슷한 인물이 박근혜인데, 진성여왕으로 인해 신라가 몰락의 길을 걷는 시기였음. 지금의 자유한국당이 박근혜 때문에 망해가는 것도 그렇고.
경상도상대 노이즈 마켓팅 선동은 중단해야..
객관적 통계를 보면 박정희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호남인사 우대했다는 사실을 알 수있습니다. 피해의식에 찌들은 일부인자들의 거짓선동에 속지마시기 바랍니다.
이시원·민병익의 〈우리나라 역대 정부 장관의 재임 기간 및 배경 분석〉(《한국행정학연구》 제11권 3호, 2002년)을 보자.
이승만(李承晩) 정권 시절에 영남 출신은 23명으로 20.9%를 차지한 반면, 호남 출신은 7명으로 6.4%에 불과했다. 이 시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것은 서울 출신(44명, 37.3%)이었다. 황해도 출신으로 서울에서 자랐고, 성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했던 이승만 대통령이 영·호남에 대한 지역감정이 있었을 리는 없다.
위의 연구에 의하면 단명했던 장면 정권에서도 영남 출신 비율이 호남 출신보다 두 배가 높았다. 영남 출신은 15명으로 33.3%에 달했지만, 호남 출신은 6명으로 13.3%에 그쳤던 것이다.
논란이 되는 박정희 정권 시절을 보자. 18년 내내 영남 출신이 다수(多數)를 차지했던 것은 사실이다. 영남 출신은 48명으로 33.8%, 호남 출신은 18명으로 18.3%를 차지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영·호남 지역 비율이 유신 전(제3공화국)과 유신 후(제4공화국)에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유신 전에는 영남 출신 비율이 31.9%(29명)였는데, 유신 후에는 37.3%(19명)로 올라갔다. 반면에 호남 출신 비율은 13.2%(12명)에서 11.8%(6명)로 내려갔다. 이는 1971년 제7대 대선 당시 호남 출신 김대중의 도전, 유신 이후 친정(親政)체제의 강화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세는 이후로도 계속된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영남 출신 비율이 39.8%(41명)까지 올라갔다가 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30.3%(30명)로 내려간다. 이 시기 호남 출신 비율은 각각 10.7%(17명)와 17.2%(17명)였다.
지역차별 문제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는 영·호남 출신 충원 비율이 차이가 나는 원인을 정통성이 부족했던 군사정권이 그 지지기반을 출신 지역에서 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말끝마다 ‘문민(文民)정부’라는 정통성을 자랑하던 김영삼(金泳三) 정권 시절, 영남 지역 편중 인사는 노태우 정권 시절보다 더 심해졌다. 영남 출신은 37%(37명)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호남 출신은 18%(18명)였다.
이런 상황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급변했다. 호남 출신과 영남 출신이 각각 25.8%(23명)로 동률(同率)을 점하게 된 것이다.
DJ 시절 호남 편중도, 박정희 때 영남 편중도보다 높아
김대중 정권 시절 중앙인사위원회는 ‘지역편중도(=지역별 인구-누적 재임기간의 비율 절댓값)’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는 기준연도(이승만~박정희 1925년, 최규하~전두환 1930년, 노태우 1935년, 김영삼~김대중 1940년)의 지역별 인구 비율과 재임기간 등을 반영한 것이다. 이에 따라 서원석 한국행정연구원 인적자원센터 소장이 분석해 2003년 발표한 바에 의하면, 지역편중지수는 이승만 정권 시절에 가장 높았고, 김대중 정권 시절에 가장 낮았던 것으로 나타났다(〈표〉 참조).
인구 비례 등을 감안할 때 장면~김영삼 정권 기간 중 영남이 과다(過多) 대표됐고, 호남이 과소(過少) 대표된 것은 사실이다. 이런 문제들이 누적되면서 지역감정이 악화되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박정희 정권 시절 영남이 과다 대표된 정도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는 점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영남이 과다 대표된 비율은 3공 시절 +6, 4공 시절 +2였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17, 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20, 김영삼 정권 시절에는 +16에 달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영남이 과다 대표된 비율은 김대중 정권 시절 호남이 과다 대표된 비율(+12)에 비해서도 현저하게 낮다.
원문 월간조선
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A&nNewsNumb=201910100055
한반도라 압록넘어 요하로 두만강 건너 송화로~~
19:47 30:32
신라 골품제는 인도의 불교등 교류를 통해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받아 들인게 아닌가 생각이드네요
너무 좋게 평가 하는거 아닌가.. 김춘추 하고 김유신이 저떄 실권 잡고 선덕여왕, 진덕여왕은 힘이 없었을텐데.. ;; 너무 우리나라 역사라고 미화해주는거 아니가?!
다 좋은데 너무 배경 설명 없이 좋게만 설명 해주는게 아쉽네요 이런내용 만들어줘서 좋긴 좋아요! ㅎ
삼국을 통일한 위대한 국가 신라
저당시 다른나라 대부분이 신분의 차이가 엄격했다.
땅의 역사
통일 신라 김유신은 장군 대단하다,원술
骨品이라? 뼈에도 품격이 있는 모양.
화백제도
다 필요 없고 전세계 역사에 1000 년을 이어온 나라가 몇개 인지
알아보면 된다.
신라 지방의 유민의 계속적인 유입으로 봐야 한다. 고대의 1차 한반도 유입 인구와 이후 몇번의 인구 이동을 통한 역사로 다시 분석하고 써나가야지 지금 처럼 그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문화나 체제를 발전 시켰다고 보면 설명이 매우 힘들다.
뼈대 있는집안 이라는말이 신라에서 나온것같으네요.
고구려가 없었다면
신라는 백제나 왜에게
망했을것이다.
세계사를 공부 못한 한국사 전문가들의 한계를 보여주는 조금 씁슬한 면이 있어 안타깝다. 이른바 한반도 역사 전문가들의 인식이 반도 역사 수준을 거의 넘어 서지 못하는 것이 문제요, 세계적으로 보면 고대, 중대에는 왕권 유지를 위해 근친혼, 엄격한 신분 제도 유지, 신분간 이동 불가능은 상식이나 다름 없다. 역사 입문자들이 보면 마치 신라의 독특한 제도로만 착각하겠다.
고대사를 마치 현대사로 착각하면서 만든 프로그램이란 생각이 듭니다.
당신의 역사관
부끄러운 역사 신라 치욕의 나라 신라 ...
태조왕건 중
철원성 성주의 대사
"말을 삼가라 내 비록 패장이 되어 내 발밑에 끌려왔다만 나는 신라의 진골이니라"
이어 궁예의 대사
"진골이라.. 네놈이 그것을 따지는 것으로 하여 신라가 이지경이 되었느니라"
ㅇㅋ?
신라 황성망세
신라 6두품 최치원
신라말 최치원 말씀만 잘듣었어도 망하진 않았을거다
ㅈㄹ 한다
요주음 남보다 경찰에게 매너 지키라 지금 시대가 싸우니.
신라여 사랑합니다.
신라가 한민족이여 전라도 1위 성씨 김해 김씨 전라도 사람들도 대부분 신라성씨에요 신라가 삼국통일하여 코리아의 어원이 신라 왕건이 바로 신라인입니다 왕조만 바뀐거에요 경순왕에서 왕건으로 왕조만 바뀜 고려시대 이전이 천년왕조 대륙 신라 일본이 가야 백제 몽골이 고구려
김해김씨가 왜나와 전국1등 성씨인데
@@herokim9501 전라도 1위 성씨도 김해김씨라고 전라도도 느그 민족 이라고 물론 전라도가 친북인건 사실이지만
@@신라의비밀 머라는걸까 대체
@@herokim9501 한국어를 이해 못하시는 중국인이신가? 전라도 1위 성씨 전라도에서 가장 흔한 성씨가 김해 김씨라고 이 말의 뜻이 이해가 안돼요?
@@herokim9501 한국인이 신라인이니까 김씨 박씨가 신라 왕족이자 한민족 한국인이고 전라도 사람들 백제인이라고 여기잖아요? 전라도에도 김씨 박씨가 가장 많이 살고 있고 경상도가 본관인 신라계 성씨를 다들 쓰고 있어요 한국인의 시조는 박혁거세 님 머리 속의 신라는 경상도의 뜻이 잖아요? 신라의 본래 뜻은 한국 우리나라의 뜻이에요 고려시대 이전이 천년 신라시대 통일신라 표현은 일제시대에 만든 표현이에요 통일후에도 여전히 신라 통일후 신라 고려전이 신라시대에요 신라의 삼국통일은 대동강 이남이 아니라 만주까지 흡수통일 했고 중국 정복설도 있어요 그리고 신라는 유럽부터 중앙아시아 만주 한반도까지 대제국을 건설한 스키타이 훈족 흉노 제국 연방의 일원이었고 몽골이 고구려 흉노에요 일본이 백제
그래도 조선보다 신라가 좀더 낫지
통수 신라만아니였어도
9:20
아죠씨 ㅡ.ㅡ
신라에만 있다뇨..
인도엔 카스트제도가 있는데..에휴
선골이아니고 성골이였구나
고대사를 말할 때 사료를 보고 말해야 한다. 소설은 쓰지 않아야 한다.
어떤 사료를 이용했는지 알수가 없다. 그냥 소설을 쓰고 그걸 사실처럼 말하는 한국역사 학자들...
대륙에서 온 신라 왕족 ua-cam.com/video/S7VgRkn_-ps/v-deo.html
궁예는 아예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네;;; 그리고 견훤이 경애왕을 죽인 후 자신(견훤)의 동생을 경순왕으로 앉혔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러면 경순왕은 김부가 아니라 견부라는 말인가? 경애왕을 죽인 후 김씨 진골인 김부를 경순왕으로 앉혔다 라고 말해야 이치에 맞지.... 이거 무슨 견훤이 신라 왕족 말단에서 나온 사람인 줄 착각이 들 정도네. 견훤이 김씨인지 경순왕이 견씨인지..... 이건 다큐 제작자가 국어가 딸린다는 증거!
견훤은 원래 이씨입니다 자라며서 성을 견 씨로 바꾸었죠
궁예 그런거 하지 마요 우리는 역사도 진실 역사 배우는 거 아니고 우리 조상의 땅이 너무 많은데 지금 우리 땅이 아닌겁니다. 전쟁에서 진거고, 그 사실을 우리가 아는 거랑 다른 거고 01042134009 내 번호고 역사 학자 아니고 음모론자요
자단비녹. 자색 단색 비색 녹색 이다 ㅋㅋ 국사 문제 잘 맞추세요...
신라에 중심자가 한번도에 경주라고? 식민사학 척결
신라는 부여계 왕조와 흉노계 왕조 2중 구조
석씨는 아닌데
공감함다
고대사의지문 #25 신라전기시대(삼국통일이전)의 실체
(신라와 사산조 페르시아)
ua-cam.com/video/yQDFzdrPNXM/v-deo.html
노예 에게 가짜 성씨 가짜 족보 를 만들어 주웠다 면서요
백두혈통. 지금 북한은 ?
간괴.근친상간....신라가 통일을 하면 안됐었다...
의미없다
부평지역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가계를차리는건지 그냥할일없어서 가계문 여는것인지 알수 없다 사람들이불친절하고안경도 몇십만워주고맞추었는데 이상해서선그라스 같은것쓰고다닌다 ㅡ 부평사람들은 누가점령한땅인지 인심이 고약하다 물건사러다니기가싫다 ㅡ상인들 상대하는것이 제일싫다 돈좀안쓰고살았으면좋겠다 ㅡ 그리고 식당앞에 음식물쓰레기통을 거리에다 내놓는다 음식 자기들이 만들고 나머지 음식들을 왜기다는사람들에게 피해를주냐 식당안에 놓았다가 저녁에 수거하는시간에 내다놓지 더러운음식쓰레기통이 음식점앞에 있으면 누가 먹으러 가나ㅡ 거기에 ㅡ 식당하는사람들이위생관념이 없다 ㅡㅡㅡㅡ 왜 그렇게 부평 ㅡ 작정동시장도 더러워 비위생적이다 ㅡㅡㅡㅡ
통일신라입니다.
헌재 인도 카스트제도는 더한데ㅋ
삼국을 통일한 위대한 신라를 까려는 방송같음
아무리 골품제가 쓰레기라 해도 조선 보다는 훨났지... 적어도 전인구 70퍼가 노예는 아니였으니
또 상층부랑 하층민의 인종이 달라서... 상층부는 파미르고원에서 온 민족이고 하층민은 남부계 인물들이었으니...
노노...고구려 사람 백제인은 동시대에 패잔국이었는데 어떻게 살았을까? 방송이 추측 해서 없는 역사를 만드는 잘못을 하지 마라
천성계 민족융합정책
천성계
몽고계 흉노족/ 몽고계 다루가치 울루스부카 원족이 1300년/600년 동안
권력층을 유지해온 몽고계/부여계 2중적
민족 구조
《팩트 정리》
1) 현대 한국인은 신라인과 백제 치하 마한인의 직계후손이다.
2) 부여계 고구려인과 백제인(지배층)은 삼한계 피지배층 및 신라인과 서로 언어가 달랐다.
3) 고구려인은 대다수 당으로 압송되거나 말갈 등지로 흩어졌고 이에 현대 한국인과 크게 혈연적 관계가 없다.
4) 백제인(지배층) 역시 당으로 압송되거나 일본으로 망명했기에 현대 한국인과 크게 혈연적 관계가 없다.
5) 신라의 삼국통일은 삼한인에 의한 부여계 이민족 정권의 한반도 축출이라 볼 수 있다.
6) 그러므로 사실상 오직 신라만이 한국사의 원류이며 고구려와 백제는 한반도를 잠시 장악했던 이민족의 역사다.
신라 최초 왕족은 토착민이 아니라 유목민족 훈족들이다. 왕명 부터, 관직호칭까지 완전히 상이한 명칭이데 굳이 만들어진 틀안에 넣어려고 하니 뭐가 제데로 돼나.
신라의 마지막 수도는 한반도 경주가 아니라 지금의 중원, 낙양이 동경이다. 서경은 한반도 평양이 아니라 지금의 서안(장안)이다. 통일신라의 범위는 지금의 중공 대륙에서 부터, 실크로드를 거쳐 광대한 영역을 경영했다. 당은 신라의 제후국 역사이다. 신라와 당은 같은 나라다. 페르시아의 쿠시나메에서 신라는 바신라로 불리는데, 당신라로 볼 수 있다. 아직도 우리 궁중 음악을 당악이라고 한다. 신라는 shilla
사회통제의 수단으로는 최상급이네. 헐
ㅏㅓㅏㅓ
노예 천년
개신라 ㄱ거져
신라왕족의 족보는 개(犬) 족보네 ㅎㅎ
역성혁명 민며느리제가 아니라 데릴 사위제
중세 유럽 왕조들도 대부분 근친상간으로 왕조를 이었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