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좋은 자료 소개해 주셨슴을 감사드립니다. 나의 본관인 청송심씨는 1200년경에 홍자 부자 어른께서 지금의 경북 청송을 관향으로 삼으셨습니다. 이 이전의 역사는 야사로만 전해오고 있는데, 안동의 풍산을 본향으로 하고 있는 풍산심씨 시조어른이 중원의 절강성에서 건너오셨음을 분명히 하고 있고, 여기에 문사님이 제공해주신 자료를 얹혀놓고보면 청송심씨의 창성시기 또한 상당히 위로 끌어올릴수 있는 단초가 될수 있을것 같습니다.
한반도 신라는 5세기이후에 정착. 1980년대까지 중국의 역사관은 중국 동부지역과 만주, 한반도를 동이문화권. 중국 서쪽지역을 한족문화권 중국 남부지역을 남만문화권. 이렇게 3개의 문화권으로 나뉘서 역사를 인식하고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면서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백제, 발해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해서 가르치고 있고, 전 세계의 주요도서관에 책을 배포해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 사학계는 알고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주활동 무대는 중국 동부지역이고, 한반도는 고구려와 왕망의 신라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고구려는 중국 황하이북, 산서성, 요동지역(황하 이북지역)의 지배자였습니다. 역사기록을 보도록하겠습니다. , 의 기록에 고구려는 사방 2천리이며 국토 가운데 요산(遼山)이 있어 요수가 그곳에서 흘러나오며 도읍지는 환도산의 꼬리부분에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요산은 산서성 지역입니다. 에 "고구려 모본왕때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점령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중국 태행산맥 즉 산서성 전체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 .............................................. 또한 2개의 신라 기록이 삼국유사등 몇몇 기록이 등장합니다. 는 후한시대 왕망이 세운 신나라가 망하고, 이 세력이 고구려에 투항하여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여 신라가 세워졌고,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왕의 호칭을 마립간이라 했으며, 는 진나라 유민이 동쪽으로 이주하여 마한(황하이북, 이남, 산동지역)에 세워진 대륙신라.(왕 칭호) 이 두개의 신라가 있었는데, 김부식이 삼국사를 짜집기하면서 2개의 신라기록을 하나로 합치면서 엉망이 된것입니다. ""부여중 졸본부여는 대동시(북경 서북쪽)인근에, 고구려는 하북지역,산서성까지 백제는 산동과 요서지역 신라는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즉 대륙에는 대동시(북경 서북쪽) 인근에 있었던 졸본부여. 졸본부여에서 남하하여 산서성, 황하이북 지역을 주 활동무대로 삼고, 만주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다스렸던 고구려. 졸존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하여 황하인근의 하북지역, 하남지역으로 이주한 소서노 세력의 백제(졸본,홀본,일본) 신라는 진나라 유민이 백제땅으로 이주하여, 백제의 동쪽땅. 즉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양자강 이남지역에 있었던 대륙가라와 왜국. (신당서,구당서,남제서,송서 기록 참고) ............................................................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 왕들의 묘지석이 단 한개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충남 공주가 웅진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부여가 사비였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금강이 백마강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번이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조선 초기, 일제강점기때 붙여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소정방은 서해를 타고 부여에 오지 않았습니다. 중국 서안에서 황하를 군수물자 땟목을 타고 황하 하류, 덕물도(가탐도리기 참고)라는 섬에 집결하여, 다시 아래 사하(사비성)와 백마강으로 진입 한것입니다. 그당시 사서기록을 보면 황하를 海라 기록했으며, 폭이넓고, 수심이 깊은 서안 인근을 대해라 했습니다. 중국 산동지역에는 황하 지류에 지금도 백마강, 황산(벌), 웅진성, 사하(사비), 탄현, 제녕, 제남 그리고 양자강 안휘성 인근에 경주, 팔공산, 함산, 낭산, 계림, 9층목탑, 박혁거세 묘와 후손들이 사는 마을 등등 고구려,백제,신라의 지명과 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신라무덤은 왕이 누구인지도 몰라 전부 "총"입니다. 공주의 무령왕릉은 기회되면 직접가서 보세요. 사마왕의 지석은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것처럼 지석에 구멍이 나있고, 글씨체도 부인 지석과 다르게 조잡하게 씌여있으며, 왕릉의 위치는 옆의 고분들 사이에 끼여있는 형세로서 왕의 무덤이라 할수 없습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도굴되어 되메어진것을 1971년 다시 발굴했던 것이며, 발굴당시 이미 내부는 어지럽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부인의 관 밑에서 발견된 반지에는 왕비가 아니고 다리작 부인이라는 글씨가 씌여있으며, 다리작은 고구려계 대부인이 쓰는 호칭이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에 부여와 정림사는 등장하지 않으며, 사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림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소정방이 썼다는 석탑의 대당평백제비는 사서 기록과 다르며,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당서 기록에는 탑이 아니고 비석에 승전내용을 기록한것으로 되어 있으며, 위치 또한 다릅니다. ......................................................... 은(상)나라 시대에 동이족의 거주지는 산서성(태행산맥 지역), 하북지역(황하 이북), 산동지역, 절강성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동이족이라 하였으며, 고조선, 은나라, 고죽국도 동이족 국가였습니다. 후대에 당나라때 "구당서 기록"과 많은 중국의 정사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왜국,일본은 동이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주활동 무대는 하북지역, 산동지역 있었습니다. 중국측 사서기록에 산동에 "구이"(아홉개의 동이국가)가 있어 단군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라고 기록 산동의 구이가 조선이다. 공자가 살고 싶어했던 조상의 나라, 동이. 그곳이 바로 산동지역을 주무대로 했던 고조선이다. 동이 9족이 곧 "우이"이고, 우이가 곧 "조선"이다. 구이는 현토, 낙랑, 구려를 말한다. 당나라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때, 김춘추를 "우이도" 행군총관 으로 임명합니다. 그 "우이도"가 바로 백제가 있었던지역이고, 과거 산동지역 우이의 땅입니다. 또한 발해는 북경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산동지역의 백제와 하북지역의 고구려가 망한후, 북경유역에 자리잡은 발해는 통일신라와 당의 공습으로 북경 유역을 빼앗기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거란에 망하게 됩니다. 참고로 거란은 지금의 중국 산서성지역에 있던 나라입니다. 북경 서쪽 태행산맥에 자리잡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거란이 고구려가 차지했었던 산서성 지역에서 일어났기때문에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예라고 자칭했던 것입니다.(서희 담판) 발해가 망한이후 북경유역은 고려의 땅이 되었고,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가 바로 하북성과 산서성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전투지역: 안문관, 흥화진, 통주 등등 전부 하북성, 산서성 지역임) 참고로 사서기록을 보면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할때도 그랬고, 발해를 공격할때도 태행산맥 동쪽 석문(석가장)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바로 북경 서쪽, 즉 황하이북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후 중국 동부지역은 후삼국 시기가 도래하고, 절강성, 양자강 유역에서 왕건이 견훤을 수군으로 대파한 이후, 안휘성 인근 경주에 있던 신라는 왕건에 복속하게 되고, 중국 동부지역은 왕건의 고려가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고, 서경(하북성 서화현), 그 오른쪽 개경(북경), 태행산맥 인근의 흥화진, 안문관, 석문(석가장), 통주(북경 바로 아래)에서 치러진 전투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고지도에 그 지명들이 하북지역(황하이북)을 중심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나오죠! 이후 신라인 김함보가 건국했던 김(금)나라는 중원에 진출했다가 원나라에 패배하고, 원나라의 중원 침략, 원이 고려에게 중국 중부지역의 황건적 토벌요청, 산동지역의 제주 삼별초 전쟁, 산동반도 아래 강화도 천도, 원의 북송점령, 다시 원나라의 퇴각, 농민반란으로 고려의 남경(양가강 유역)에서 일어선 명나라의 북경유역 점령 등으로 고려 후기에 중국동부를 지배했던 고려는 심양, 만주,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것이고, 동북면(만주,한반도)에 기반을 두고 관할했던 이성계에게 쿠데타로 나라가 망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초기 고대 역사서 마저 불태우고, 삼국사마저 편집되어 원본이 소실된것입니다. 진짜역사는 많은 중국측 사서와 고려사, 삼국사 원문을 해석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현재 삼국사 해석은 오류 투성이 입니다.
다 좋은데 한가지가 빠졌군요! 신라가 양자강 유역에서 한반도로 왔을때 왜 큰 강이 있고 평지가 많은, 비교적 살기좋은 서쪽 지역이 아닌 두메산골 경주 쪽으로 왔을까요! 그것은 살기 좋은 곳에는 이미 다른 세력들이 터를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살기 좋은 터는 서쪽 지역 일 것인데, 충청 이북쪽은 말씀하신대로 고구려나 동예 옥저 같은 세력이 자리 했을 것이고 남쪽은 옹관묘 세력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산강 유역에 옹관묘의 장고형 무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아실 것입니다. 이들이 왜 집단이겠지요! 우리도 민족 사관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반도 남부에는 조문국이 있었어요. 기원전 2세기부터 대략 5백년을 지속한 국가로 추정됩니다. 삼국사기에 간단한 내용만이 존재해서 구체적인건 모르죠. 다만, 문화가 스키타이 문화이고 여인왕국이었다는 겁니다. 가야로 추정되는 한반도 남부, 경주, 의성, 안동까지 모두 스키타이 문물이 발견되었고 같은 문화권으로 추정되는데, 우리 역사는 어거지로 신라와 가야로 분리해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에 제사를 관장한 여왕이 존재했고, 여왕을 보호하는 여전사들이 존재했는데 그 세력을 아마존이라고 불렸던거 같습니다. 예측이지만, 이 아마존 세력이 초원의 길을 따라 한반도로 유입되어 나라를 세운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라의 석탈해가 조문국 왕자였지만, 여왕만이 왕위를 계승하는 나라라서 자신만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떠나서 신라에 정착한게 아닐까 예측합니다. 이걸 계기로 신라가 한반도 남부로 유입되어 조문국과 대립하다가 합병한게 아닐까 싶네요. 자료가 워낙 없어서 소설로 여길수도 있지만, 정황상 끼워 맞추다보면 이런 시나리오가 나옵니다. 조문국이 왜 여인왕국이냐 하면 안동에서 여인왕국에 대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고, 조문국 기록에 여왕이 언급되는 걸로 압니다. 그리고, 경주 왕릉에 가장 큰 무덤에 묻힌 사람이 여자라고 합니다. 이후에 신라에만 유일하게 여왕이 등장합니다.
오늘날의 ‘한족(漢族)’과, 원·명대의 ‘한인(漢人)’의 차이부터 살펴야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원장은 분명 원·명대의 ‘한인’ 출신이 맞다. 문제는 이 ‘한인’이 오늘날 중국인들이 말하는 ‘한족’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족’이라는 말은 반청 혁명인사인 양계초(梁啓超, 1873~1929)가 청나라를 몰아내기 위해 ‘만주’족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만들어낸 말일 뿐이다. 반면 원나라 말기 주원장이 살던 시대의 ‘한인’은 원말 도종의(陶宗儀)가 에서 말한 ‘한인8종(漢人八種)’의 한인을 이르는 말이다. 도종의는 “한인은 여덟 가지(漢人八種)인데, 거란(契丹)·고려(高麗)·조션(女真)·주인타이(竹因歹)·솔고타이(術裏闊歹, 조선씨)·조콘(竹溫)·주이타이(竹亦歹, 대대로씨)·발해(渤海) 등으로, 발해는 조션(女真)과 같다”면서 이들을 한데 모아 ‘한인8종’이라고 지칭한 것이다. 주원장은 바로 이 ‘한인8종’의 한 부류인 ‘조션인’, 즉 여진족(女真族) 출신이다. 한편 이 시대 가장 미천한 4등급 종족이었던 양자강 이남의 ‘지나인’은 ‘거란의 남쪽 백성’이라는 뜻의 ‘낭기아드’, 한어로는 ‘남인(南人)’이라고 불렀다. 이와 같은 당시의 호칭에 따르면 고려(高麗)·조션(女真)인들이야말로 진정한 ‘한인’이고, 정작 오늘날 지나인들이 말하는 ‘한족’은 ‘남인’들로, 월남-라오스-타이계와 같은 종족인 ‘다수민족’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제 주원장의 종족적 기원을 따져보자. 에 따르면 주원장의 선조 가문(先世家)은 패(沛)에 있었으나, 구용(句容)을 거쳐 사주(泗州)로 옮겼다. 주원장의 아버지 세진(世珍)은 다시 호주(濠州)의 종리(鐘離)로 이사했고, 이곳에서 주원장이 태어났다. 오늘날의 안휘(安徽)성 종리(鐘離)다. 다만 그가 어느 종족인지에 관해서는 적지 않았다.
고리는(고구려=맥고리+몽고리=몽골)백제+신라 이들은 뿌리 근본이 같은 한민족!! 이라했다! 즉! 우리의 직계 선조다~ (예맥.숙신.부여.선비.말갈.여진)말과.풍습.의복.예절.그 근본과 조상이 같은! 우리민족! 우리역사! 직계! 선조가! 이룬 거대한 동방 문명의 고대사!!진실!!☆☆
고려가요 청산별곡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는 [아랍어 얄라] 어서 빨리 hurry up lets go에서 왔다고 봅니다. 청산별곡의 내용도 복잡한 곳을 떠나 자연인처럼 쉬고 싶다인데 빨리 가자는게 문맥상 맞죠. 얄라의 변주 또한 아리랑에 아리 처럼 아리아리 아리랑 아라리요 와 같습니다. 아랍어 [얄라]가 맞다고 봅니다. 영어랩처럼 고려에 들어왔겠죠. 무역에서 흥정하면서요.
쿠르다드비의 기록에는 '지나의 맨 끝 칸수의 맞은편에 산이 많고 왕들이 많은 나라가 있는데 그것이 신라국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칸수가 무조건 도시 또는 지역명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강 이름인 간수 (중국과 고구려의 국경선)로 해석하면 신라가 옛 고구려 국경선까지 가지고 있었다는 말인데, 저는 강도나 양주 같은 도시, 주 이름이었다기 보다는 강 이름으로 생각하는게 더 신빙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BkYu-qg7wb 남아 있는 고려의 고지도 하나도 없는데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고려 지도는 누가 그렸을까? 조선사편수회 쓰다 소키치와 그 제자 이병도등등이 그린것!!! 고려사 지명 한반도에는 거의 없습니다 찾을수가 없는 걸 어찌 설명 하시려구요? 그런데 말입니다 고려사 지명을 현 구글이나 바이두로 찾아 검색하면 산서성 하북성 산동성 내몽고 절강 하남 강소 호북 호남 광서 광동등등 전부 중국에 표시 할 수 있네요 한반도 지명은 지방관으로 개성윤 파견한 개성, 그외 몇 군데 빼곤 없어요! 일식 월식 기록도 하북 당산 산동 심양이구요 송 사신이 고려황제를 배알하러 가는 보고서로 기록한 고려도경의 여정의 지명이 송에서 장강을 내려와 해안선 따라 북상해서 천진 텐진에서 북경까지 지명들이구요 고려황성의 둘레길이 4대문이름 황성의 각 건물 이름 모두 적어놨는데 현재 자금성의 각 건물 4대문 아니 3대문 이름과 위치가 99%일치 하더군요 다른 문 이름은 후대에 바꿨다는 기록이 존재하구요
추가로 제가 가장 처음 의심했던 몽고군이 포로를 개경에서 끌고 가는데 일주일 만에 북경까지 끌고가서 술마시러 갔다는 기록응 본 이후 입니다 개성응 개경이라 주장하는 현 사학계 말대로면 물리적으로 절대 불가능하지요 한 달은 거리니까요 둘째 황건적이 개경까지 처들어 왔다는 기록!!! 말이 안되죠! 남경에서부터 발해만을 거처 개성까지 수천km를 걸어서 처들어 간다구요? 농민들이??? 그 많은 산과 강을 건너 기마족 야인들이 있는 만주 간도를 지나 산과강을 건너서요??? 말이 안되는게 너무 많아요
쿠시나메에 나오는 바실라는 대륙의 신라방 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랍어는 반대로 쓰는 특징입니다. 그래서 신라방-방신라-바실라 라고 기록된거라고 생각합니다. 충무로를 st.choongmu 이러듯이요. 나오는 타이후르왕 파라랑 공주 가람 왕자는 한국식 이름의 음차같습니다. 태훈. 파라랑. 가람은 강의 옛말. 이렇게요. 방 은 신라에서 입방설도라고 하여 조선8도 처럼 행정구역 단위라고 생각합니다. 신기한건 나중에 타이후르 왕과 가람 왕자가 중원의 수도까지 가서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건데 나당전쟁에서 김유신을 빼고 말이 안됩니다. 신라방 만의 개별적인 역사가 아닌가 합니다.
무슨 자료에 근거해서 그런 얘기를 하시나요. 신라방이 최초로 등장하는 문헌이 입당구법순례행기인데 신라의 공식적인 행정구역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는데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이 아닐까합니다. 페르시아어에서 “바” 는 우리말로 “더 좋은” “더 아름다운” 이라는 뜻입니다. 신라방과 아무 관련없는 페르시아어이고 시대에 따라 쓰이는 어법이 달라질 수 있으나 근본적 의미는 아름답다는 의미입니다.
@@패미박멸 신라의 주 생산물이 쌀, 물소, 물소뿔로 만드는 각궁, 낙타, 원숭이임. 한반도에 물소, 원숭이 낙타가 있나요? 경상도에서 농사지어서 당나라 수십만 원군을 3년 먹여살릴수 있나요? ps. 수나라 당나라는 스스로 조선의 후예라 칭했습니다. 현재 지나족과는 다릅니다.
그때는 외국과의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아랍인 처용이 울산에 와서 살았고 고려말 조선초 귀화인 ㅡ 조선 개국공신 설장수등 ㅡ들도 제법 많았는데 폐쇄국가 조선이 개국하고는 하멜 같은 고급인력을 유배지에 감금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니 외국과의 교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고 급기야 쇄국정책을 실시하며 개화기를 맞지 못하고 남의 속방까지 된것 아니겠습니까.
페르시아(이란)은 아랍이 아님. 민족과 언어가 다름. 한족과 한국인이 다르듯이.... 대륙에는 백제와 신라가 지배하고 있었음. 주산군도는 백제의 해상 전초기지 임. 등소평이 동남아시아 화교들에게 본토 투자를 요구했을때, 화교(백제 & 신라의 후손들)들이 주산군도에 백제사 신사를 지어 달라 요구 했다함.
@ 동일한 이름이 있다고 하여 그곳이 신라의 영토였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죠. 해당 이름이 삼국시대때 지어졌다는 근거도 없고요. 이름 하나에 꿰어맞추기엔 너무나 많은 일들을 바꿔야 합니다. 무엇보다 동신라 서신라가 실재했다면 백제의 위치는 어떻게 설명할건가요? 서해와 백제를 사이에 두고 동신라 서신라가 된건가요? 그런 비효율적인 국가가 유지가 될거라고 봅니까?
신라와 고려는 해양국가였다. 불교국가였고 반면 죄선은 바다의 문을 닫고, 섬도 비우는 공도정책질을 500년간 했다. 그래서 신라때 우산국이란 왕국까지 있었던 울릉도에도 사람이 살지못하게 했다. 그래서 그옆 독도문제를 우리한테 만들고 대마도도 일본땅으로 만들었다. 영도에 관광 온 일본사람들이 크게 보이는 대마도를 보고 깜짝놀란다. 자기들은 보이지도 않는데
너무 좋은 자료 소개해 주셨슴을 감사드립니다. 나의 본관인 청송심씨는 1200년경에 홍자 부자 어른께서 지금의 경북 청송을 관향으로 삼으셨습니다. 이 이전의 역사는 야사로만 전해오고 있는데, 안동의 풍산을 본향으로 하고 있는 풍산심씨 시조어른이 중원의 절강성에서 건너오셨음을 분명히 하고 있고, 여기에 문사님이 제공해주신 자료를 얹혀놓고보면 청송심씨의 창성시기 또한 상당히 위로 끌어올릴수 있는 단초가 될수 있을것 같습니다.
훌륭한 지적이시네요, 사실 중국기록이나 우리나라 기록은 이해당사자여서 국익이라는 핑계로 왜곡이나 과장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높지만 이슬람 문화권은 동양하고 전혀~이해관계과 없어서 사실과 가장 근접한 기록일 가능성이 높죠.
꼭 그러지만도 않은게 지팡구나 엘도라도등 조금의 과장이섞이는경우도 많아요
@sengju118 그 경우는 이해당사자 케이스죠, 탐험하는 군인들이 예산을 국왕한테 지원받아야하니 과장을 했겠죠.
인물돋보기 채널에, 거기도 신라와 왕건 고려 지도가 어설프게나마 페르시아인에 의해 위치가 그려져 있더군요..
절강 말고도 오늘날 대만 맞은 편 천주 일대에 “신라촌” “신라구” “신라산” 지명이 지금도 남아있죠. 중국 동부 해안선 지역을 따라 확인되는 것만 신라촌이 7개 정도나 지금도 현존합니다.
바다 테두리 동쪽으오 전부 동이 신라,왕건 고려땅
@@패미박멸 차이나타운은 전부 중국인거네요???
명나라 주원장이 대륙 동쪽 고려땅을 차지할때 고려에게 통보했다는 말도 있음
아직 구독자 수가 적긴 하지만 의미 있는 활동을 하시는군요. 영상 자주 안올려도 괜찮으니 포기하지는 말아 주세요.
바실라에서 6일간 와구와구를 지나면 앗실라가 나온다는데 앗실라가 서라벌 신라 같습니다.
아랍어로 동쪽 앗솨르크 북쪽 앗솨마르 인데 동북쪽을 앗실라로 말한듯 합니다. 와구와구는 왜국 이겠죠.
딱맞네 책보고님이 두개라고했는데 신라까지 두개라니
고구리.맥제.신라는 중국동쪽에 있었네요. 신라는2개..동신라.서신라.
고대역사 다시 조사해야해. 참 중국이 과장된 역사가 많아서 ---
ㄹㅇ 아주 많은게 자기자리 신격화 하려 소설쓰거나 과장해서 만든 동상 등등 판타지 수준 그게 그대로 내려온게 무협지나 중국영화 등등이라고 봄.
차이나는. 신라을 부르는 말이다. 고려영토는. 홍콩싱가폴 발해만. 산서성 중국 절반이 고려 신라 땅이다. 백제을. 당나라두고 싸워 신라가 이기고. 1000년역사 지킨거다
국뽕 판타지 소설 봄? ㄷㄷ
@@Thebattleofsalsu 사회부적응자냐? 한국사 추켜세우면 누구 뒤짐?
@@Thebattleofsalsu공부좀 해라
@@정재문-l2e 뽕2
@buhaegong6928 뽕들 좀 그만 빼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한반도 신라는 5세기이후에 정착.
1980년대까지 중국의 역사관은
중국 동부지역과 만주, 한반도를 동이문화권.
중국 서쪽지역을 한족문화권
중국 남부지역을 남만문화권.
이렇게 3개의 문화권으로 나뉘서 역사를 인식하고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면서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백제, 발해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해서 가르치고 있고,
전 세계의 주요도서관에 책을 배포해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 사학계는 알고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주활동 무대는 중국 동부지역이고,
한반도는 고구려와 왕망의 신라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고구려는 중국 황하이북, 산서성, 요동지역(황하 이북지역)의 지배자였습니다.
역사기록을 보도록하겠습니다.
, 의 기록에 고구려는 사방 2천리이며 국토 가운데 요산(遼山)이 있어 요수가 그곳에서 흘러나오며 도읍지는 환도산의 꼬리부분에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요산은 산서성 지역입니다.
에 "고구려 모본왕때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점령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중국 태행산맥 즉 산서성 전체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
..............................................
또한 2개의 신라 기록이 삼국유사등 몇몇 기록이 등장합니다.
는 후한시대 왕망이 세운 신나라가 망하고, 이 세력이 고구려에 투항하여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여 신라가 세워졌고,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왕의 호칭을 마립간이라 했으며,
는 진나라 유민이 동쪽으로 이주하여 마한(황하이북, 이남, 산동지역)에 세워진 대륙신라.(왕 칭호)
이 두개의 신라가 있었는데, 김부식이 삼국사를 짜집기하면서 2개의 신라기록을 하나로 합치면서 엉망이 된것입니다.
""부여중 졸본부여는 대동시(북경 서북쪽)인근에,
고구려는 하북지역,산서성까지
백제는 산동과 요서지역
신라는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즉 대륙에는 대동시(북경 서북쪽) 인근에 있었던 졸본부여.
졸본부여에서 남하하여 산서성, 황하이북 지역을 주 활동무대로 삼고, 만주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다스렸던 고구려.
졸존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하여 황하인근의 하북지역, 하남지역으로 이주한 소서노 세력의 백제(졸본,홀본,일본)
신라는 진나라 유민이 백제땅으로 이주하여, 백제의 동쪽땅. 즉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양자강 이남지역에 있었던 대륙가라와 왜국.
(신당서,구당서,남제서,송서 기록 참고)
............................................................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 왕들의 묘지석이 단 한개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충남 공주가 웅진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부여가 사비였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금강이 백마강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번이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조선 초기, 일제강점기때 붙여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소정방은 서해를 타고 부여에 오지 않았습니다.
중국 서안에서 황하를 군수물자 땟목을 타고 황하 하류, 덕물도(가탐도리기 참고)라는 섬에 집결하여,
다시 아래 사하(사비성)와 백마강으로 진입 한것입니다.
그당시 사서기록을 보면 황하를 海라 기록했으며, 폭이넓고, 수심이 깊은 서안 인근을 대해라 했습니다.
중국 산동지역에는 황하 지류에 지금도 백마강, 황산(벌), 웅진성, 사하(사비), 탄현, 제녕, 제남
그리고 양자강 안휘성 인근에 경주, 팔공산, 함산, 낭산, 계림, 9층목탑, 박혁거세 묘와 후손들이 사는 마을 등등
고구려,백제,신라의 지명과 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신라무덤은 왕이 누구인지도 몰라 전부 "총"입니다.
공주의 무령왕릉은 기회되면 직접가서 보세요.
사마왕의 지석은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것처럼 지석에 구멍이 나있고, 글씨체도 부인 지석과 다르게 조잡하게 씌여있으며, 왕릉의 위치는 옆의 고분들 사이에 끼여있는 형세로서
왕의 무덤이라 할수 없습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도굴되어 되메어진것을 1971년 다시 발굴했던 것이며, 발굴당시 이미 내부는 어지럽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부인의 관 밑에서 발견된 반지에는 왕비가 아니고 다리작 부인이라는 글씨가 씌여있으며,
다리작은 고구려계 대부인이 쓰는 호칭이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에 부여와 정림사는 등장하지 않으며, 사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림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소정방이 썼다는 석탑의 대당평백제비는 사서 기록과 다르며,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당서 기록에는 탑이 아니고 비석에 승전내용을 기록한것으로 되어 있으며, 위치 또한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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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나라 시대에 동이족의 거주지는 산서성(태행산맥 지역), 하북지역(황하 이북), 산동지역, 절강성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동이족이라 하였으며,
고조선, 은나라, 고죽국도 동이족 국가였습니다.
후대에 당나라때 "구당서 기록"과 많은 중국의 정사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왜국,일본은 동이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주활동 무대는 하북지역, 산동지역 있었습니다.
중국측 사서기록에 산동에 "구이"(아홉개의 동이국가)가 있어 단군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라고 기록
산동의 구이가 조선이다. 공자가 살고 싶어했던 조상의 나라, 동이.
그곳이 바로 산동지역을 주무대로 했던 고조선이다.
동이 9족이 곧 "우이"이고, 우이가 곧 "조선"이다.
구이는 현토, 낙랑, 구려를 말한다.
당나라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때, 김춘추를
"우이도" 행군총관 으로 임명합니다.
그 "우이도"가 바로 백제가 있었던지역이고, 과거 산동지역 우이의 땅입니다.
또한 발해는 북경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산동지역의 백제와 하북지역의 고구려가 망한후,
북경유역에 자리잡은 발해는
통일신라와 당의 공습으로 북경 유역을 빼앗기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거란에 망하게 됩니다.
참고로 거란은 지금의 중국 산서성지역에 있던 나라입니다. 북경 서쪽 태행산맥에 자리잡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거란이 고구려가 차지했었던 산서성 지역에서 일어났기때문에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예라고 자칭했던 것입니다.(서희 담판)
발해가 망한이후 북경유역은 고려의 땅이 되었고,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가 바로 하북성과 산서성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전투지역: 안문관, 흥화진, 통주 등등 전부 하북성, 산서성 지역임)
참고로 사서기록을 보면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할때도 그랬고, 발해를 공격할때도 태행산맥 동쪽 석문(석가장)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바로 북경 서쪽, 즉 황하이북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후 중국 동부지역은 후삼국 시기가 도래하고,
절강성, 양자강 유역에서 왕건이 견훤을 수군으로 대파한 이후, 안휘성 인근 경주에 있던 신라는 왕건에 복속하게 되고,
중국 동부지역은 왕건의 고려가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고,
서경(하북성 서화현), 그 오른쪽 개경(북경), 태행산맥 인근의 흥화진, 안문관, 석문(석가장), 통주(북경 바로 아래)에서 치러진 전투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고지도에 그 지명들이 하북지역(황하이북)을 중심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나오죠!
이후 신라인 김함보가 건국했던 김(금)나라는 중원에 진출했다가 원나라에 패배하고,
원나라의 중원 침략, 원이 고려에게 중국 중부지역의 황건적 토벌요청, 산동지역의 제주 삼별초 전쟁, 산동반도 아래 강화도 천도, 원의 북송점령, 다시 원나라의 퇴각, 농민반란으로 고려의 남경(양가강 유역)에서 일어선 명나라의 북경유역 점령 등으로
고려 후기에 중국동부를 지배했던 고려는 심양, 만주,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것이고,
동북면(만주,한반도)에 기반을 두고 관할했던 이성계에게 쿠데타로 나라가 망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초기 고대 역사서 마저 불태우고, 삼국사마저 편집되어 원본이 소실된것입니다.
진짜역사는 많은 중국측 사서와 고려사, 삼국사 원문을 해석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현재 삼국사 해석은 오류 투성이 입니다.
정말로 올바른 역사를 제대로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다 좋은데 한가지가 빠졌군요! 신라가 양자강 유역에서 한반도로 왔을때 왜 큰 강이 있고 평지가 많은, 비교적 살기좋은 서쪽 지역이 아닌 두메산골 경주 쪽으로 왔을까요! 그것은 살기 좋은 곳에는 이미 다른 세력들이 터를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살기 좋은 터는 서쪽 지역 일 것인데, 충청 이북쪽은 말씀하신대로 고구려나 동예 옥저 같은 세력이 자리 했을 것이고 남쪽은 옹관묘 세력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산강 유역에 옹관묘의 장고형 무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아실 것입니다. 이들이 왜 집단이겠지요!
우리도 민족 사관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반도 남부에는 조문국이 있었어요. 기원전 2세기부터 대략 5백년을 지속한 국가로 추정됩니다. 삼국사기에 간단한 내용만이 존재해서 구체적인건 모르죠. 다만, 문화가 스키타이 문화이고 여인왕국이었다는 겁니다. 가야로 추정되는 한반도 남부, 경주, 의성, 안동까지 모두 스키타이 문물이 발견되었고 같은 문화권으로 추정되는데, 우리 역사는 어거지로 신라와 가야로 분리해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에 제사를 관장한 여왕이 존재했고, 여왕을 보호하는 여전사들이 존재했는데 그 세력을 아마존이라고 불렸던거 같습니다. 예측이지만, 이 아마존 세력이 초원의 길을 따라 한반도로 유입되어 나라를 세운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라의 석탈해가 조문국 왕자였지만, 여왕만이 왕위를 계승하는 나라라서 자신만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떠나서 신라에 정착한게 아닐까 예측합니다. 이걸 계기로 신라가 한반도 남부로 유입되어 조문국과 대립하다가 합병한게 아닐까 싶네요. 자료가 워낙 없어서 소설로 여길수도 있지만, 정황상 끼워 맞추다보면 이런 시나리오가 나옵니다. 조문국이 왜 여인왕국이냐 하면 안동에서 여인왕국에 대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고, 조문국 기록에 여왕이 언급되는 걸로 압니다. 그리고, 경주 왕릉에 가장 큰 무덤에 묻힌 사람이 여자라고 합니다. 이후에 신라에만 유일하게 여왕이 등장합니다.
오늘날의 ‘한족(漢族)’과, 원·명대의 ‘한인(漢人)’의 차이부터 살펴야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원장은 분명 원·명대의 ‘한인’ 출신이 맞다. 문제는 이 ‘한인’이 오늘날 중국인들이 말하는 ‘한족’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족’이라는 말은 반청 혁명인사인 양계초(梁啓超, 1873~1929)가 청나라를 몰아내기 위해 ‘만주’족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만들어낸 말일 뿐이다. 반면 원나라 말기 주원장이 살던 시대의 ‘한인’은 원말 도종의(陶宗儀)가 에서 말한 ‘한인8종(漢人八種)’의 한인을 이르는 말이다. 도종의는 “한인은 여덟 가지(漢人八種)인데, 거란(契丹)·고려(高麗)·조션(女真)·주인타이(竹因歹)·솔고타이(術裏闊歹, 조선씨)·조콘(竹溫)·주이타이(竹亦歹, 대대로씨)·발해(渤海) 등으로, 발해는 조션(女真)과 같다”면서 이들을 한데 모아 ‘한인8종’이라고 지칭한 것이다. 주원장은 바로 이 ‘한인8종’의 한 부류인 ‘조션인’, 즉 여진족(女真族) 출신이다.
한편 이 시대 가장 미천한 4등급 종족이었던 양자강 이남의 ‘지나인’은 ‘거란의 남쪽 백성’이라는 뜻의 ‘낭기아드’, 한어로는 ‘남인(南人)’이라고 불렀다. 이와 같은 당시의 호칭에 따르면 고려(高麗)·조션(女真)인들이야말로 진정한 ‘한인’이고, 정작 오늘날 지나인들이 말하는 ‘한족’은 ‘남인’들로, 월남-라오스-타이계와 같은 종족인 ‘다수민족’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제 주원장의 종족적 기원을 따져보자. 에 따르면 주원장의 선조 가문(先世家)은 패(沛)에 있었으나, 구용(句容)을 거쳐 사주(泗州)로 옮겼다. 주원장의 아버지 세진(世珍)은 다시 호주(濠州)의 종리(鐘離)로 이사했고, 이곳에서 주원장이 태어났다. 오늘날의 안휘(安徽)성 종리(鐘離)다. 다만 그가 어느 종족인지에 관해서는 적지 않았다.
최곱니다!!!
역사의 진실을 탐구하는 문사님!!! ❤ 👍
추정도 탐구인가요?
@silvertuscani 추정은 강당사학, 여기는 기록에 의한 여러 사료의 교차검증
각종 문헌 자료들을 보여주는데도 교차검증 1도 없이 무작정 환빠라고 우기니 역사가 복원될 리가 있나.
절강성 지역이 신라 영역이 맞다면 그 절강성 지역은 언제 상실하였을까요?
신라 청해진-고려 벽란도로 이어지는 해양제국의 전통이 조선 때 단절된 것이 안타까움.
선덕여왕님이 비록 향기는 없다는 조롱은 받으셨을지는 몰라도 꽃들의 왕이라는 모란에 비유되실 만치그 미모 만큼은 확실하심이 한번 더 증명된 셈이네용. 타국서 조차 신라가 가장 아름다운 민족이라 기록으로 남길 정도니요💖
지나의 동쪽에 있어 동이라 표현한 것은 옳은 표현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지나 전체에 우리 선조들의 흔적이 있는데, 굳이 동쪽이란 사족을 붙일 이유는 없습니다. 이(夷)라는 말 자체가 중원의 서토인들이 부른 것이니까요. 그들은 그냥 우리 역사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고리는(고구려=맥고리+몽고리=몽골)백제+신라 이들은 뿌리
근본이 같은 한민족!! 이라했다! 즉! 우리의 직계 선조다~ (예맥.숙신.부여.선비.말갈.여진)말과.풍습.의복.예절.그 근본과 조상이 같은! 우리민족! 우리역사! 직계! 선조가! 이룬 거대한 동방 문명의 고대사!!진실!!☆☆
이란 지도에 신라 2개 있음. 중국이랑 우리나라
신라와 바신라
대륙신라네요
고려가요 청산별곡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는 [아랍어 얄라] 어서 빨리 hurry up lets go에서 왔다고 봅니다. 청산별곡의 내용도 복잡한 곳을 떠나 자연인처럼 쉬고 싶다인데 빨리 가자는게 문맥상 맞죠. 얄라의 변주 또한 아리랑에 아리 처럼 아리아리 아리랑 아라리요 와 같습니다. 아랍어 [얄라]가 맞다고 봅니다. 영어랩처럼 고려에 들어왔겠죠. 무역에서 흥정하면서요.
무역하러온 아랍인이 코란암송 하는 모습을 보고 차용 했겠죠..
쿠르다드비의 기록에는 '지나의 맨 끝 칸수의 맞은편에 산이 많고 왕들이 많은 나라가 있는데 그것이 신라국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칸수가 무조건 도시 또는 지역명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강 이름인 간수 (중국과 고구려의 국경선)로 해석하면 신라가 옛 고구려 국경선까지 가지고 있었다는 말인데, 저는 강도나 양주 같은 도시, 주 이름이었다기 보다는 강 이름으로 생각하는게 더 신빙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낙수와 낙양이 하남에 도착. (대명여지도 중중기본,중중초본) 중부지역의 상실 ( 원의 과거사가 중부에 도착 )
회수의 도착 (중중초본)
황하가 大河에 도착 (중초본)
장강이 大江에 도착. (대명여지도 중중기본) 남방지역의 상실 (원사와 명초기 20년사가 고려의 남방에 도착)
출발지의 삭제는 중중초본
요서,요주,태원,大同이 산서에 도착. 요서와 요동이, 산서와 산동에 도착하였음에도
(대명여지도 초중본,중초본) 출발지는 중초본에서 삭제. 산해위 주변으로 한번더 이동.
역시 문사님!
장보고의 왕성한 해상무역 활동으로 생긴 많은 상단들의 거점을 오해해서 비롯된 기록? 실제 신라땅을 밟은 이들도 있지만! 🐫
등주,래주,빈주,제주가
산동에 도착 (대명여지도 초기본,초중본).
학교에서 일본이 만들어준 역사를 배우고 있으니 나 참 이제까지 속아온거 개빡침
잘못 알고 계세요.. 일본이 만들어준 역사를 배우고 있었다면 상식적으로, 독도를 한국땅이라고 교과서에 해놨을까요? 현재 한국 역사는 북한, 중국발 거짓 역사를 주입당한지 오래입니다.
@@BkYu-qg7wb님 뉴라이트가 뭔진 앎?
@@BkYu-qg7wb 남아 있는 고려의 고지도 하나도 없는데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고려 지도는 누가 그렸을까?
조선사편수회 쓰다 소키치와 그 제자 이병도등등이 그린것!!!
고려사 지명 한반도에는 거의 없습니다
찾을수가 없는 걸 어찌 설명 하시려구요?
그런데 말입니다
고려사 지명을 현 구글이나 바이두로 찾아 검색하면 산서성 하북성 산동성 내몽고 절강 하남 강소 호북 호남 광서 광동등등 전부 중국에 표시 할 수 있네요
한반도 지명은 지방관으로 개성윤 파견한 개성, 그외 몇 군데 빼곤 없어요!
일식 월식 기록도 하북 당산 산동 심양이구요
송 사신이 고려황제를 배알하러 가는 보고서로 기록한 고려도경의
여정의 지명이
송에서 장강을 내려와 해안선 따라 북상해서 천진 텐진에서 북경까지 지명들이구요
고려황성의 둘레길이 4대문이름 황성의 각 건물 이름 모두 적어놨는데
현재 자금성의 각 건물 4대문 아니 3대문 이름과 위치가 99%일치 하더군요 다른 문 이름은 후대에 바꿨다는 기록이 존재하구요
추가로 제가 가장 처음 의심했던
몽고군이 포로를 개경에서 끌고 가는데
일주일 만에 북경까지 끌고가서
술마시러 갔다는 기록응 본 이후 입니다
개성응 개경이라 주장하는 현 사학계 말대로면 물리적으로 절대 불가능하지요 한 달은 거리니까요
둘째 황건적이 개경까지 처들어 왔다는 기록!!! 말이 안되죠!
남경에서부터 발해만을 거처 개성까지 수천km를 걸어서 처들어 간다구요?
농민들이???
그 많은 산과 강을 건너 기마족 야인들이 있는 만주 간도를 지나 산과강을 건너서요???
말이 안되는게 너무 많아요
일본이아니라 김대중과 김영삼이 자기들입맛대로 역사왜곡시킨 교과서를 우리가 배우고있는게문제지 언젠가 정상화해야할텐데
아랍과 페르시아는 근본이 다르지 않나요?
북평(大都)의 도착.
(대명여지도 초기본,초중본,중초본) 북방지역의 상실.
上都의 도착 (초중본) (흉노,거란,금,여진,원나라의 과거사가 북방에 도착하는 토대가 됨)
칸수는 깐수 아닌가요? 깐수의 우리 발음이 감숙이고
쿠시나메에 나오는 바실라는 대륙의 신라방 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랍어는 반대로 쓰는 특징입니다. 그래서 신라방-방신라-바실라 라고 기록된거라고 생각합니다. 충무로를 st.choongmu 이러듯이요. 나오는 타이후르왕 파라랑 공주 가람 왕자는 한국식 이름의 음차같습니다. 태훈. 파라랑. 가람은 강의 옛말. 이렇게요. 방 은 신라에서 입방설도라고 하여 조선8도 처럼 행정구역 단위라고 생각합니다. 신기한건 나중에 타이후르 왕과 가람 왕자가 중원의 수도까지 가서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건데 나당전쟁에서 김유신을 빼고 말이 안됩니다. 신라방 만의 개별적인 역사가 아닌가 합니다.
무슨 자료에 근거해서 그런 얘기를 하시나요. 신라방이 최초로 등장하는 문헌이 입당구법순례행기인데 신라의 공식적인 행정구역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는데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이 아닐까합니다. 페르시아어에서 “바” 는 우리말로 “더 좋은” “더 아름다운” 이라는 뜻입니다. 신라방과 아무 관련없는 페르시아어이고 시대에 따라 쓰이는 어법이 달라질 수 있으나 근본적 의미는 아름답다는 의미입니다.
신라의 라가 비단라인데 경상도지역에서 비단이 나긴하냐??
@@패미박멸 신라의 주 생산물이 쌀, 물소, 물소뿔로 만드는 각궁, 낙타, 원숭이임.
한반도에 물소, 원숭이 낙타가 있나요?
경상도에서 농사지어서 당나라 수십만 원군을 3년 먹여살릴수 있나요?
ps. 수나라 당나라는 스스로 조선의 후예라 칭했습니다. 현재 지나족과는 다릅니다.
ㅋㅋㅋ
병자들이 많네요
통일신라는 당나라 멸망 시키면서 중원을 통일 하고 한반도를 수도로 불상만 봐도 갓을 쓴 불상이 우리나라에만 있음. 갓을 쓰지 않은 불상은 어린 부처이고 득도를 하면 한반도에서 갓을 쓰면서 신이 사는 나라가 된거임.
가 아니라 로 발음해야 한다.
3개의 바다가 삭제됨. 皇都의 영지에 다달았음을 삭제.
(대명여지도 초중본)
신라 고려관련 지명들이
여기 신라인이 모여 살았었음 그래서 신라*이라고 부름 이라고 기록들이 나오는데 뭔 신라땅이라는 소리를 아직도 하는 건지
그때는 외국과의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아랍인 처용이 울산에 와서 살았고
고려말 조선초 귀화인 ㅡ 조선 개국공신 설장수등 ㅡ들도
제법 많았는데 폐쇄국가 조선이 개국하고는 하멜 같은
고급인력을 유배지에 감금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니
외국과의 교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고
급기야 쇄국정책을 실시하며 개화기를 맞지 못하고
남의 속방까지 된것 아니겠습니까.
페르시아(이란)은 아랍이 아님. 민족과 언어가 다름. 한족과 한국인이 다르듯이....
대륙에는 백제와 신라가 지배하고 있었음. 주산군도는 백제의 해상 전초기지 임.
등소평이 동남아시아 화교들에게 본토 투자를 요구했을때, 화교(백제 & 신라의 후손들)들이 주산군도에 백제사 신사를 지어 달라 요구 했다함.
민족과 언어가 다름 --> 종족과 언어가 다름.
민족 = 서로 말이 통하는 사람들의 집단, 한 배를 탄 사람들 (공동운명체). 민족이 다르면 언어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면 민족이 아님. 언어는 민족을 구분하는 제 1 순위 기준!
추정된다의 연속
책보고 유트브 영상 추천드려요 동영상 한두개만 보셔도 많은게이해가 가실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 우리 동네에 파리 바게트 있으니 우리 동네가 사실은 프랑스 수도였다는 논리의 유튜브 채널
테헤란로는 우리가 이란 속국이란 뜻?
에휴
문사님 초기엔 상당히 그럴듯한 해석이 많아서 재밌었는데 요즘은 비약이 너무 심함
아랍지도에 나오는 sin이라는 나라는 당시 중국에 실존했던 신나라로 추정되는데 유튜브 찌라시들 보면 참 어이가 없습니다.
신나라는 중국인들의 자기들의 역사로 치지 않죠.
신라인들의 먼 자신들의 조상이야기로 기억하지,,, 그래서 나라이름도 신라로..
니가 그렇게빠는 중국 사서에도 신나라 왕망이 신라의 왕족 출신으로 되어있는데 뭔씹 ㅋㅋㅋ
차라리 백제를 동백제 서백제로 나눴다면 좀더 그럴듯한 이야기가 되었을텐데.
가야와 주변 강대국에 치여 통일신라 직전까지 왜국에도 시달리던 신라를 두고 동신라 서신라라니... 참 기가차는 이야기네요...
중국 동남부지역에 왜 한반도의 경북지역과 동일한 지역명이 있겠음???
@ 동일한 이름이 있다고 하여 그곳이 신라의 영토였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죠. 해당 이름이 삼국시대때 지어졌다는 근거도 없고요.
이름 하나에 꿰어맞추기엔 너무나 많은 일들을 바꿔야 합니다.
무엇보다 동신라 서신라가 실재했다면 백제의 위치는 어떻게 설명할건가요?
서해와 백제를 사이에 두고 동신라 서신라가 된건가요? 그런 비효율적인 국가가 유지가 될거라고 봅니까?
고려서경이 지금의 요양시라는 복기대, 이덕일, 이매림 박사의 주장은 옳습니다.
그러나 고려서경이 장수왕평양성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게다가 낙랑군이 하북성 진황도시에 위치했다는 주장도 옳지 않습니다.
동북아고대사정립 2가 출판되었습니다.
나는 신라라는 단어만 나와도 스트레스받음 예네들은 역사에 안낀데가없음
ㅋㅋㅋㅋㅋ 중국인이세요? 우리나라 사람이 통일신라를 싫어하는 경우가 없지 않아 있으나 그건 오로지 중국에 영토를 다 뺏기어 국토가 작아져서라는 이유 딱 하나여용.
천안문, 사라진 목소리. 당신도 그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조상나라인데요?
인천에 차이나타운이 있지
먼 훗날 중국인들이 열광하겄네
반도는 중국땅이었다
모르면 겸손하게 경청해라
?근데 중국에 한족만 있는 건 아닌데요
그러고도 남을 인간들이 중국인들임
인천에만 있잖아??
중국땅 수십군데 아직도 지명이 남아있고 김유심거리도 있는데???
ㅎㅎㅎ 떠 왜곡하는구만 주산군도가 신라라고? 그냥 역사룰 왜곡하면서 고대에 땅이컷다고 안위받으세요 按你说三国江东吴国内有新罗呀 我就服你
지금 니들땅이면 과거도 니들땅인거야? 매번 남의나라한테 빼았기고 줘터지고 살았고 지금의 영토도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아니었으면 30%도 안돼! 뭔가 말하고 싶으면 역사공부를 좀하던가!
무슨근거로 망발임???? 모르면 듣는거나 잘들어야 안됨????
천안문, 사라진 목소리 당신도 그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
중국 그렇게 혐오하면서
대륙에 있어야만 강한나라였다는 프레임에 갇혀 우리가 대륙에 있었다고 거의 반쯤 정신 나가있는 애들 요즘 많네ㅋㅋㅋ
신라, 고려는 반도에 있었지만 당당하고 강한 나라였다. 역사 왜곡좀 그만해라.
근데 사료같은거 보면 한반도+@ 인게 거의 확실함. 중국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이상 유물발굴을 못해서 그렇지 ㅋㅋ. 송나라가 거란을 치기 위해서 고려에게 길을 비켜 달라고 하는데 지금 지도로는 해석이 불가능함. 심증은 확실한데 물증이 없음
네네 가셔
@@MiReukGungYe 누가 누구보고 왜곡을 한대? 사회부적응자도 아니고 뭐가그리 불만이 많냐?
식민사관이 만들어 놓은 교과서 속에서만 역사를 배웠으니 이런 생각을 갖지요. 일제가 심어놓은 노예근성이 무섭긴 합니다.
해석하기나름 길이아니라 힘@@범희이-b1k
백제가 점령한 중국영토 및 일부섬은 백제의 영토이나 백제가 멸망하니 불안전한 통일한 신라가 승계했다.😢
그레서 왕건 고려시대 이성개 성리학 유교 조선 시대에 차이점 문화 다양성 상업 개방적인 고려 신라
신라와 고려는 해양국가였다. 불교국가였고
반면 죄선은 바다의 문을 닫고, 섬도 비우는 공도정책질을 500년간 했다. 그래서 신라때 우산국이란
왕국까지 있었던 울릉도에도 사람이 살지못하게 했다. 그래서 그옆 독도문제를 우리한테 만들고
대마도도 일본땅으로 만들었다. 영도에 관광 온 일본사람들이 크게 보이는 대마도를 보고 깜짝놀란다.
자기들은 보이지도 않는데
우산국은 산동반도 제주 남동쪽 지역에 있었습니다
신라 북서쪽 지역이구요
구글에 한자로 우산 찾으면 나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