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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니의 주마간산
Приєднався 30 жов 2012
녀니의 주마간산
정읍 내장산 내장사
정읍 내장산에 위치한 내장사(內藏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이다. 내장사는 636년(백제 무왕 37) 영은조사가 백제인의 신앙적 원찰로서 지금의 절 입구 부도전 일대로 추정되는 자리에 대웅전 등 약 50여 동의 전각을 세우고 영은사로 창건하였다. 1098년(고려 숙종 3) 행안선사가 전각과 당우를 지으며 중창하였고, 1557년(조선 명종 12) 희묵대사가 영은사 자리에 법당과 당우를 새로 건립하여 중창하고, 산 안에 무궁무진한 보물이 숨어있다고 하여 절 이름을 내장사라 하였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내장산 용굴암과 은봉암, 비래암에 이안된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을 내장사 주지였던 승병장 희묵대사와 승군들이 함께 수호하는데 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 전소된 것을 1639년(인조17년) 부용대사가 중창하고 불상을 개금하였으며, 1779년(정조3) 영담대사가 대웅전과 시왕전을 중수하고 요사채를 개축하였다. 1923년 학명선사가 사세를 크게 중흥시킨 뒤 1938년 매곡선사가 대웅전과 명부전, 요사채 등을 신•개축하여 내장사의 면모를 일신시켰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1951년 소실되었다. 1957년 주지 야은스님이 해운당을, 1958년 다천스님이 대웅전을 건립하였다. 1965년에 대웅전에 불상과 탱화를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그 후 1974년 내장사 복원계획에 따라 대규모의 중건을 통해 대가람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2012년 불의의 화재로 대웅전이 전소돼 2015년 복원됐으나, 2021년 방화로 대웅전이 또다시 전소되어 복원불사가 이루어 지고 있다.
정유재란 때 전소된 것을 1639년(인조17년) 부용대사가 중창하고 불상을 개금하였으며, 1779년(정조3) 영담대사가 대웅전과 시왕전을 중수하고 요사채를 개축하였다. 1923년 학명선사가 사세를 크게 중흥시킨 뒤 1938년 매곡선사가 대웅전과 명부전, 요사채 등을 신•개축하여 내장사의 면모를 일신시켰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1951년 소실되었다. 1957년 주지 야은스님이 해운당을, 1958년 다천스님이 대웅전을 건립하였다. 1965년에 대웅전에 불상과 탱화를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그 후 1974년 내장사 복원계획에 따라 대규모의 중건을 통해 대가람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2012년 불의의 화재로 대웅전이 전소돼 2015년 복원됐으나, 2021년 방화로 대웅전이 또다시 전소되어 복원불사가 이루어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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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가섭산 가섭사
Переглядів 1,3 тис.14 днів тому
충북 음성의 진산인 가섭산(迦葉山, 710m) 정상 바로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가섭사(迦葉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 두타 제일 가섭존자의 이름을 딴 사찰이다. 가섭사는 창건사실을 기록한 문헌기록과 관련유물이 현존하지 않으며, 다만 조선시대의 기록이 남아 있어 그 실상을 추정할 뿐이다. 가섭사는 고려 후기 1365년(공민왕 14)에서 1376년(우왕 2) 사이에 나옹화상 혜근이 창건하였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을 1624년(인조 2)에 벽암이 중수하였고, 이후 기록을 통하여 18세기까지 법등이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응진암이라 불렸고, 1938년경 화재로 전소되었다. 이후 주지 윤원근이 터를 옮겨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덕 운서산 장육사
Переглядів 2,3 тис.21 день тому
영덕 창수면 갈천리에 위치한 장육사(裝陸寺)는 운서산(518m)에 둘러싸인 천년 고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1355년(공민왕 4년)에 창수면 출신의 나옹이 창건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 뒤에도 이곳에서 수도를 하면 도승이 된다고 하여 많은 승려들이 운집하였으며, 수도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러나 세종 때에 산불로 인하여 대웅전을 비롯한 모든 당우가 전소되었으며, 그 뒤 중창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된 채 명맥만을 이어오던 것을 1900년에 운서 이현규가 중수하였으며, 최근에는 주지 권성기가 폐찰이 된 평해 광암사의 유물을 옮겨와서 산령각과 금당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장육사는 주변의 산세가 발이 여섯 개인 거북을 ...
함양 지리산 서암정사
Переглядів 1,1 тис.Місяць тому
함양 마천면의 서암정사(瑞庵精舍)는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꼽히는 칠선계곡 인근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은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이다. 서암정사는 원래 천년고찰 벽송사 서쪽으로 약 600m 거리에 있는 ‘미타굴’이라는 벽송사의 작은 부속암자였으나 중창하여 2018년에 독립된 사찰이 되었다. 서암정사는 6.25 전쟁으로 황폐해진 벽송사를 재건한 원응스님이 창건주로, 1960년대부터 6•25전쟁 때 지리산에서 죽어간 원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불사를 하였으며, 1988년에 암자까지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도로가 개설되자 1989년부터 원응스님이 원력을 세우고 그 일을 받들어 석공 홍덕희 등이 석굴 불사를 시작하였다. 지리산의 장엄한 산세를 배경으로 수려한 자연환경과 조화롭게 자연 암반...
함양 지리산 벽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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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마천면 지리산 천왕봉 북서쪽 칠선계곡 초입에 있는 벽송사(碧松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절 뒤편 옛 절터의 삼층석탑을 통하여 고려 말 또는 조선 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며, 1520년(중종 15) 벽송 지엄선사가 중창하여 벽송사라 하였다. 1704년(숙종 30) 환성 지안이 중수하면서 부속 암자가 10여 곳이 될 정도로 번성하였다. 그 후로도 1850년(철종 1) 부터 서룡 상민이 불사를 계승하면서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 속에서도 선불교의 명맥을 유지하였다. 그런데 6•25전쟁 때 빨치산이 벽송사를 야전병원으로 사용하면서 국군에 의해 소실되었는데, 1960년 원응 구한이 절의 위치를 50m쯤 내려 현재 위치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포항 내연산 보경사
Переглядів 414Місяць тому
포항 송라면 내연산(內延山)에 있는 보경사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지명이 창건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602년(진평왕 24)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신라 지명법사가 진평왕에게 '동해안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자신이 진나라의 도인에게 받은 팔면보경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입을 막고, 이웃 나라의 침략도 받지 않으며 삼국을 통일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진평왕이 지명법사와 함께 내연산 아래에 있는 큰 못에 팔면보경을 묻고 못을 메워 금당을 건립하고 보경사라고 하였다. 그 뒤 고려 고종 때 원진국사를 비롯하여 오암대사 등 많은 호국 승장과 고승들이 중창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적광전, 대웅전, 영산전, 팔상전, 명부전, 산...
포항 운제산 오어사
Переглядів 309Місяць тому
포항 운제산 오어사(吾魚寺)는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579~632) 때 창건하여 "항사사(恒沙寺)"라 하였으며, 이후 신라 4대 성인으로 추앙 받고 있는 자장, 혜공, 원효, 의상 등의 고승이 수행하던 유서 깊은 고찰이다. 오어사는 신라의 고승 원효와 혜공이 이곳의 계곡에서 물고기를 살려 내고자 하는 시합을 통해 서로의 법력을 시험하였는데 그 중 한 마리는 살지 못하고, 다른 한 마리는 살아서 힘차게 헤엄치는 것을 보고 서로 자기가 살린 물고기, 즉 오어(吾魚)라 한데서 유래한 절 이름이다. 오어사는 영조 12년(1736)에 화재로 전 당우가 소실되었으나, 1741년 치철스님 등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당우로는 대웅전•관음전•설선당•응진전•삼성각...
당진 상왕산 영탑사
Переглядів 1652 місяці тому
당진 영탑사(靈塔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이다.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이 대방 앞에 5층석탑을 세운 뒤 영탑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무학대사가 유리보전 자리에 있던 천연암석에 불상을 조각하고 절을 중건하였으며, 5층석탑을 유리보전 뒤쪽 암벽 위로 이전하였다. 1760년(영조36)에 편찬된 『여지도서』에 영탑사가 기록되어 있으며, 1798년(정조2) 지윤이 유리광전을 중수하였다. 일제감점기인 1911년에 신도들이 중수하였으며, 1928년에 이민동이 노전을 중건하였다. 1990년에 대웅전을 건립하였으며, 1992년에 화재로 노전이 소실되어 최근에 복원하였고, 2010년 승려 초운이 산신각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
상주 백원산 도림사
Переглядів 5872 місяці тому
상주 도림사(道林寺)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상주시 서곡동의 능선이 6개여서 육산으로 불리는 백원산 국사봉 산자락에 있다.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지만 모두 훼손되어 변변한 법당조차 없는 절을 2013년 자용, 탄공, 법연 세 비구니 스님이 재건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도림사는 전통장류로 이름난 사찰답게 고유의 사찰비법으로 빗는 고추장, 된장 등의 각종 장이 유명한데, 특히 매년 정월에 3,000장의 메주로 장을 담근 수익금으로 대웅전을 비롯하여 여러 불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2009년 도림사 절터에서 출토된 고려후기 불교의식에 사용되었던 청동유물들이 경북유형문화재 제437호로 지정되어 도림사 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상주 도림사는 경내에서 맞은 편 멀리 서쪽을 바라보면 마치 부처님이 누...
상주 속리산 성불사
Переглядів 1,1 тис.2 місяці тому
상주 속리산 성불사(成佛寺)는 속리산 동편 자락 복기골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속리산 법주사의 말사이다. 법등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성불사는 1970년 이귀남 여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성불사는 산속에 위치한 사찰이지만 좁은 터에 전각들이 대부분 큰 편인데, 거의 1990년 이후에 지어진 전각들이다. 상주 성불사는 속리산 문장대로 오르는 들머리 역할도 하며, 속리산국립공원 화북분소가 있는 주차장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화북오송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기암괴석이 즐비한 깊숙한 골짜기로 들어서면 이내 오송교를 만나고, 반야교 삼거리 문장대로 오르는 입구 갈레길에서 왼쪽 성불사 방향으로 오르면, 바로 높이15m에 5단으로 층을 이룬것이 특징인 오송폭포를 지나 성불사 입구...
남양주 백월산 금선사
Переглядів 2,2 тис.3 місяці тому
남양주 화도읍 금남리 문안산(백월산)에 있는 금선사는 대한불교 일붕종 사찰로 알려졌으며, 30여 년 전에 현 지주인 홍산스님에 의해 창건되어 현재도 불사가 진행중인 신흥사찰이다. 금선사는 중국 구화산에서 지장보살 좌상을 모셔와 봉안하고 있는 지장기도도량인데, 그런 연유로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모신 대원본전이 중심 전각이 되고 있으며, 또한 불보살이 아닌 신라 왕족출신으로 24세에 당나라에서 출가하여 교각이라는 법호를 받고, 안후이성 구화산에서 화엄경을 설파하며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평가 받았던 김교각스님을 본존으로 모신 교각전도 있는 등 도량 곳곳이 지장신앙으로 가득 차 있다. 금선사는 문안산 동쪽 자락을 다 차지하고 있는 6만평이나 되는 넓은 사찰부지에 마치 골프장을 연상시키듯 온통 잔디...
예산 용굴산 탈해사
Переглядів 4334 місяці тому
탈해사(脫解寺)는 충남 예산 수철리에 있는 용굴산의 8부 능선에 있는 사찰로, 백제 의자왕 때에 승려 의각이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창건 시기의 근거가 문헌으로 뒷받침되는 것은 아니다. 탈해사는 원래 예산읍에 있는 향천사 소속으로 퇴락하여 돌보지 않던 암자인 것을 1975년에 이종학이 주지를 맡으며 불사를 일으킨 것이 실질적인 시작이고, 이후에 계속해서 불사가 이어졌다. 1980년 극락전을 본전으로 세우고 그 후에 서서히 다른 법당과 승려들의 생활 공간인 요사를 갖추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2016년 예산 수덕사를 본사로 정하여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가 되었다. 탈해사의 탈해는 속박이나 번뇌의 굴레에서 벗어나 편안한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해탈의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탈의사(...
괴산 연화산 무량약수사
Переглядів 1,1 тис.4 місяці тому
충북 괴산군 불정면 하문리 연화산(풍류산) 중턱에 있는 무량약수사는 원래 수백 년 전부터 순흥안씨 종중 땅 안에 망선암으로 불리우며, 여러 스님들이 기거하며 작은 토굴로 명맥을 유지하였었다. 그러다 20여 년 전 지금의 주지인 비구니 대안스님이 이곳과 인연이 되어 사찰로의 발돋움을 하게 되었다. 무량약수사는 신흥사찰로 제대로 된 전각들은 조성되어 있지 않고 대웅전을 비롯하여 삼성각, 용신각 등 방편적으로 지은 건물들이 법당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사찰 입구를 비롯하여 사찰을 둘러싸고 주지 대안스님이 20여 년 동안 수행으로 혼자 쌓아올린 무수히 많은 오묘한 돌탑들이 불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부여 계향산 미암사
Переглядів 3634 місяці тому
부여 내산면 저동리에 있는 미암사(米岩寺)는 백제시대의 작은 사찰로 602년(백제 무왕4)에 스님 관륵이 창건하였으며 이후 여러 차례 불에 타 소실되었다가 1990년대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미암사는 저동리 미암마을에서 운치리고개로 넘어가는 계향산 중턱에 있는데, 천애의 절벽을 이루고 있는 암벽에서 쌀이 나온다는 전설을 가진 경내의 ‘쌀바위’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미암사로 가는 길 초입에는 196개의 금불상이 세워져 있으며, 2005년에 조성된 길이 27m, 높이 6m, 폭6m 크기의 부처님 열반상과 근래에 만들어진 대지장전 등이 있다.
금산 영신산 신안사
Переглядів 2734 місяці тому
신안사(身安寺)는 금산군 제원면 동북쪽 신음산 국사봉 아래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651년(진덕여왕 5)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충북 영동에 있는 영국사에서 수학할 때 이 절에도 가끔 들러 머물렀는데 주변 경관과 어울려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하여 신안사라고 했다. 그 뒤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전성기에는 대웅전과 극락전•진향각•요묵당 등 호화롭고 장엄한 건물이 즐비했고, 불상 또한 10여 위가 있었으며 3,000여 명의 승려들이 수행하는 큰 절이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퇴락했으며 6•25전쟁 때 전각이 다수 불타고, 불경•불기 등의 여러 비품들이 소실되어 행방을 알 수 없다. 지금은 극락전과 대광전만 남아서 그 명맥을...
부처님 내가 바라는일. 다해결해주세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원주시. 지정면 판대리땅. 하루빨리 해결할수있게 기도해주세요 해결해주실것을 믿습니다
자연경관에 너무 잘 어울리는 사찰이고요!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그런데! 전통 사찰을 촬영함에있어 왠 봉고차가 보입니까? 영상 잘보고갑니다!
부저님 부처님부처님제발 금전길좀 열리게 해주세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너무너무 좋아요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새소리 종소리 너무 감사합니다
와불전이 독특합니다. 도림사 정성껏 담으셨네요. 감사합니다.🙏🙏🙏 543번 째 친구로 받아주세요^^
나무석가모니불
우리가 흔히 속리산으로 부르는데.본래이름은.관음산이 정답아니겠어요?왜?관세음 보살 전생이름이 속리이고,형제분 대세지 보살님이.조리입니다.산은작아도 조리산이 전국에 어디에 있을거라 믿습니다.그리고 법주사위.900미터 올라가면 복천암 이란 암자가 나옵니다.조선조 초기 숭유억불정책에 홀로 수행정진 하시다,우주만물의근본을 깨닳으신 신수대사님 께서 한글 창제를 하셨는데.스님을 천대하던 시절이라.그공과는.집현전6인이 다차지 했지요.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명예)은 여우가 챙기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사람 한분의 그늘이 강동80리를 간다는 옛날 어른들 말씀.대한 민국,국운융창 하길 축원드립니다.
언제보아도 경이롭고 신비스러운 아름다운 사찰입니다 스님의 정성으로 이루어진 사찰 오래오래 함께 할수있기를 기원 드립니다
오~! 괴산에 아주 특이한 , 똘로 쌓아올린 무량약수사가 있군요. 신흥사찰로 특벽한 전각이나 문화재는 없지만, 돌을 쌓아올려 온갖 다양한 모습으로 조성해 낸 공덕이 정말 대단합니다. 꼭 한번 들러보고 싶은 특이한 사찰이군요.
좋습니다 👍🏼 ❤
탈해사 아주멋짐 사찰👍🏼♥️
지장보살 도량 공유감사합니다 ❤ 9독좋아 👭🎁💐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내가 5학년때 소풍가서 일박을 여학생들은 작은법당에서 자고 남학생들은 작은방에서 잤다.돌아오는날은 깻잎 장아찡ㅘ 밥을 싸주셔서 화산면 승티국민학교까지 산을 두개를 넘어서 돌아왔다. 큰스님 돌아가시기직전에 마침 마당에서 휠체어에 앉아계셔서 삼배를 올리고 왔다. 그후 얼마안지나서 열반에 드셨다는 소식을 들었다.그후로 가지 못했는데,영상으로나마 보니 감회가 새롭다. 감사합니다.
금산면 태고사... 참 멋진 장소에 자리잡은 좋은 사찰입니다. 대략 7~8년 전에 동호인들과 함께 갔던 사찰인데, 그 놀라운 풍광에 반했었지요. 특히 바위를 깎고 세운 범종각의 풍경이 기막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도로변 금색의 부처님상이 인상적이네요. 🎉🎉🎉 잘 보고 구독 꾹 누르고 갑니다 😅
산청 수선사는 절이라기 보다는 리조트 같은 느낌을 주는 작은 사찰입니다. 30여년에 걸쳐 호자 힘으로 수선사를 예쁘게 가꾸어온 여경 스님의 작품이지요. 지난 5월 초에 다녀 왔는데, 연꽃이 피는 계절에 다시 가보고 싶은 절입니다.
소원성취도량
🙏🙏🙏
옥산서원은 1573년이 아닌 1572년 8월에 지어진 서원입니다.
강천사기도도량으로는최고입니다 풍경과한눈에내려다보이이는제천시내운무정말좋아요 한번오세요
부처님...!감사합니다...언제나 내 마음이 머무는그곳...()...
항상잘배우고있읍니다정답은3번이겠네요
묘법연화경실천하시는.보살님들 성불하세쇼
삼척 천은사... 참 멋진 사찰이지요. 쉬음산과 두타산 베틀바위와 함께 이번 5월 중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랍니다. 지난 2022년 부터 가보려고 벼르던 곳이거든요. 어쩐 일인지 4개월 사이에 조회수도 많았는데, 제가 첫 댓글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모든분들소윈성취꼭되도록하여주십시오.😊😊😊
칠장사✨소개 감사히 잘 보고 잘 듣고 갑니다..☺☺
아!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택 반대쪽 산에 있는 작은 사찰이군요. 이 절에 추사의 글씨로 된 현판과 편액이 걸려 있지요.
불자로서 잘 보았습니다. 중후하고 깊은 음악도 좋지만 이왕이면 자세한 설명이 곁들여지면 더 좋을것 같습니다. 구독 눌리고 갑니다.
고즈넉한 칠갑산 장곡사~~ 대웅전이 두 개인 것이 특이하네요.. 소개 감사합니다..☺☺
푸른파도와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는곳이네요 멋진영상에 머물다 갑니다
🙏🙏🙏
추사 선생과 관련이 많은 사찰이네요.. 암각문이 눈에 띕니다.. 소개 감사합니다..☺☺
🙏🙏🙏
🙏🙏🙏
시댁이 그동네인데 못봤는데 어디에 있지요?
옥천 장령산 용암사는 저도 몇 년 전 잠시 다녀온 적이 있는 사찰입니다. 높은 곳에 있어서 전망이 참 아름다운 곳이었지요. 언제든 다시 가서 CNN이 감탄한 용암사 운해도 한번 보고 싶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용연사는 적멸보궁이 유명하죠.. 정성스런 소개 감사합니다..👍
녀니님.. 사찰을 소개하는 좋은 채널이군요.. 앞으로 많은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인연 맺고 자주 방문해서 도움 받겠습니다..😊
아 영동 제 고향 소개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논산에 개태사가 제가 알던 것보다 아주 깊고 의미 있는 역사를 지닌 사찰 이군요. 고려가 개국 된 이후 왕건 태조에 의해서 크게 지어지고 용성하게 된 사찰이라 하니 그 의미가 매우 큰 것 같습니다. 큰 법당에 있는 석조 삼불입상을 꼭 한번 보고 싶네요.
부처님의 큰 희망(希望)을 상징하는 대양문이 1990년쯤에 세워진 문이고 금강역사 그림이 이 문 안에 있는 문에 그려져 있어. 두 개의 금강역사 석상이 있던 금강문(金剛門) 안에는 두 개의 금강역사 탱화와 두 개의 작은 금강역사(金剛力士) 동상이 배치되어 있고 천왕문 안에 소조 사천왕상(塑造四天王像)도 배치되어 있구나.
우리고향 봉화군 명호면
이제는 아니다고 전라도에 보여줘야, 동족상잔을 막는다. 민주당 전라도가 북 학살 왕조 독재자를 비난하면은 북 주민 벌써 해방되었다고 본다. 대구지하철 참사 때 생방송하는 날 전가족 모여 보면서 다 몸이 굳어서 말을 못 하는데, TV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흥분하며 하는 말이, 경상도 사람은 더 죽어야 한다고 하면서 춤출 뜻이 하는 전라도에서 시집 온 동생 재수였다. 어이가 없어서 모두 빠히 쳐다보니 큰소리로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여으니 벌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춤출뜻이 앞뒤로 왔다 갔다 하여서 다 몸이 굿어서 말을 못 했다. 이후는 지역적 이슈는 금하고 살아왔는데 근래에는 실권자 전두환 장세동이가 전라도 다고 밣혀저서 오해를 거두어야 하는데, 더 확장하여 이용하는 특정 정당과 언론이 선동을 하고 있다. 경상도 군인은 광주 사테와 실권을 가진 자가 아무도 없다고 밣혀지고 있는데도, 왜곡 선동하는 집단이 아직도 대우받고 있으니 사람이 동물보다 더 못하고 있다. 당시 현실은 전투병이 전혀 없는 전두환이 쿠데타를 결심하고 최우선 찾아간 곳이, 최첨단 최정예 전투병을 보유 한 청와대 수비 병력을 가진, 30 경비단장 장세동을 찾아가 군에서는 군복 입고는 절되로 안 쓰는 사적 용어를 쓰며, 형 아우로 의기투합하고, 유사시 우군을 쓸 수 있는 지휘관을 다 긴급사항이다고 군 지휘령을 일방 통보하여 경비단 지하뻥크로 오게 하여, 협조를 강요하니까 인질이 되어서 개별 행동을 못하게 봉쇄하여 쿠테타군을 급조하여, 엄청난 군의 유혈 희생이 났다. 이후는 장세동이가 5 공의 2인자로 실권을 가지게 되었는데, 광주 학살 여론에 밀린 장세동이가 낙마를 하고, 군의 주류인 경북고와 경상도의 군의 핵심들이 노태우를 밀어서 전두환이 힘을 잃고 노태우를 쳐다만 보고 아쉬워하면서 백담사로가 손 본다고 칼을 갈았지만 김영상 대통령이 나와서 하나회는 소멸시켰다. 이런 상테 였는데 민주당 좌파는 다 사실을 알면서 전두환 장세동이가 전라도 사람인데도 한마디 언급없이, 광주사건를 경상도 군인들이 저지를 거다고 덤터기를 씌우는 정치적 이용을 끝없이 올라타고 이용을 해 먹는다. 당시는, 어린애들이 무기고에서 총기를 탈취해 시민들이 죽어나가니까 구출하려고 들어간 것 아닐까 한다. 어른이 되니까 세상을 알고, 또한 그때는 노태우 등 경상도는 지하벙커에서 힘없이 하명만 기다리는 인질 상태였는데, 왜 오해를 받는지 지금도 의문이 난다. 경찰 출신 친구가 그 좋은 기회를 북괴는 가만히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말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후방 선동 위해서 나를 엄청난 금액으로 김일성 면담과 충성 맹세를 끊임없이 요구하지 않았을까 판단된다.
바라만봐도 가슴이 뻥뚫리는듯 시원합니다 너무좋습니다 덕분에 눈호강하고 힐링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