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는 형주쟁탈전이다 - 삼국지 지리와 역사 7

Поділитися
Вставка
  • Опубліковано 25 гру 2024

КОМЕНТАРІ • 79

  • @sangjinkim567
    @sangjinkim567 Рік тому +27

    관우는 당시 조조도 인정하는 명장입니다. 삼국지 연의와는 다르게 실제로 조인은 상당히 명장입니다. 위나라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그걸 제압하러간 조인이 비웠을때가 유일한 기회라고 볼 수 있어서 관우도 번성 공격을 감행한거죠!

    • @seungwoonchoi7373
      @seungwoonchoi7373 Рік тому +1

      우금까지만 격파하고 1절만 했다면 ... ㅋㅋㅋ

  • @김석박-d1d
    @김석박-d1d Рік тому +7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좋은 자료 감사해요 ㅎㅎ!!!

  • @임병혁-i1p
    @임병혁-i1p Рік тому +4

    넓게 표시 했다고 개발안된게 아니라 그냥 후세에 덮어 놓은걸로 보아야 하겠죠 ㅎㅎ
    저 당시는 경계가 지금 처럼 선으로 구분하지 않으니까요
    위에서 설명해주시는 것처럼 저당시 사람들이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지역만을 놓고 분쟁하는걸 보면 그 외 지역은 저들에 영역이 아니라는걸 역으로 증명해주네요

  • @울프사일런스-g6v
    @울프사일런스-g6v 7 місяців тому

    진순신 중국사 3권 245면 읽고 있는중...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 @고대경-b6d
    @고대경-b6d Рік тому +7

    아무리 북거조조 동화손권을 잘 해도 형주가 갖는 전략적 중요성을 보면 조조와 손권의 협공을 받는 것을 피하기는 어렵죠. 관우가 아닌 촉의 다른 장수가 형주를 맡아도 조조의 위나라와 손권의 오나라의 협공으로 형주상실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조조도 형주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고 손권도 형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고 보면 형주는 유비의 촉한 장수들 입장에서는 독이 든 성배를 마시는 거죠.

    • @seungwoonchoi7373
      @seungwoonchoi7373 Рік тому +2

      사실상 움직이지 않으면 지킬 수는 있는 땅이었음.
      위 입장에서는 형주를 공격하면 적벽2탄을 생각해야하고, 오 입장에서도 촉과 우호적 외교 유지가 안되면 조조를 막을 수 없는 상황.
      실제로도 오가 형주를 다 먹고 더 좋은 여건을 차지했지만 결국 독자적 국력으로 양번을 공략하지 못했음.

  • @starlightt20
    @starlightt20 Рік тому +3

    2대1로 싸우면 당연히 털릴 수 밖에. 게다가 뒤치기인데. 조조도 서주침공 때 여포가 뒤치기하니까 연주뺏길뻔했었죠. 그나마 순욱이나 되는 인재가 버텨줘서 다행이지, 미방 부사인같은 애들 후방에 두고갔으면 조조도 게임 셋이였을듯

    • @seungwoonchoi7373
      @seungwoonchoi7373 Рік тому

      조조가 사기캐인게 진짜 사방이 적이었음. 남쪽으로는 유표&장수, 북으로는 원소, 서쪽으로는 마등, 동쪽으로는 서주 (유비,여포) + 원술
      가장 신의 한 수 였던건 아무래도 헌제 옹립임. 사방이 적인 상태에서 한나라 황제를 본거지에 둠으로 다른 제후들의 침입을 1차적으로 거리끼게 하고, 침략시 황명을 가장한 구실마련, 마찬가지로 황명을 가장해서 제후들끼리의 분쟁을 유발시킬 수 있었음.

  • @정승호-d4t
    @정승호-d4t Рік тому +2

    형주중에 가장 핵심인 남양+양양군에 상용까지 반이상을 위나라가 가져갔으니..나머지 먹어도 별 효과가 없죠. 양양까지만이라도 먹었다면 달랐을듯

  • @noob9103
    @noob9103 Рік тому +1

    관우가 수비를 담당할 장수를 우습게 생각한게 신의 한수고 적을 우습게 생각한게 신의 두수. 공명이 파촉으로 기어 들어간게 신의 세수.

    • @스파클링윈드
      @스파클링윈드 Місяць тому

      우습게 생각안했음 연의에 허구로 그렇게 묘사된거고
      이중 삼중 봉화로 오나라에 대한 방비를 하고 출정한건데
      여몽이 그걸 다뚫고 기습한거
      그리고 수비담당 미방도 미축 동생으로 유비 친인척이었음
      여몽과 육손이 대단한거

  • @김백준-b7y
    @김백준-b7y Рік тому +37

    지나의 고대지도는 1/4로 축소하여야 맞습니다.
    양자강 이남지역은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였고
    황하 북쪽 지방도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다만, 양자강 이남지역 및 황하 이북지역에 소재
    하는 종족 및 읍국과 부족국에 대하여 형식적인
    지배형태를 띄웠을 뿐 입니다.
    황하이북이나 양자강 이남지역에 대한 실효지배
    는 송나라 시기에 이르러 확정 내지는 확보되는 것
    으로 사료되며, 특히 황하이북 지역은 금나라에
    의해 영향력이 확장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촉.오 삼국시대는 황하와 회수사이의
    고대 중원이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다투었을 뿐 입
    니다. 지나인들이 워낙 거짓말과 뻥이 심하다 보니
    더하여 삼국지연의라는 소설까지 가미하여 고무
    줄 마냥 늘리다 보니, 모두들 속고 있는 듯 합니다.
    제시하시는 지도에서도 위나라가 차지하고 있는
    여러개의 주를 합해도 익주보다 작다니?
    이런 엉터리가 어디에 있을까요?
    삼국지 당시 익주는 없어도 되는 땅이라고 까지
    합니다.
    고대의 영토개념은 현대의 영토개념과는 달리
    합니다.
    즉 첨예하게 다투는 지역이외에는 반란의 우려로
    군대를 배치하지 않습니다.
    다만 삼국지 시대 당시에는 군웅할거의 시대 시점
    에서만 변방에 개별적으로 군웅들이 할거하면서
    존재하기는 하였으나, 점차 위촉오 삼국이 정립되
    기 시작하면서 변방 보다는 수도를 중심으로 병력
    을 집결하거나 주요 방어시설인 성을 중심으로 군
    사를 배치하였기 때문에 오늘날의 영토개념과는
    매우 큰 차이를 보입니다.
    결론은 지도상 14개 주들의 크기를 모두 1/4로 줄
    여야만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는 듯 하고요, 특히
    형주 양주 익주는 1/10로 축소, 교주는 처음부터
    삭제하여야만 삼국지 당시 지나지역의 형국을 나
    타낸 지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나 깨나 중공(지나)을 경계합시다.
    그들의 주장은 반드시 다시 돌아다 보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삼국지 연의(소설) 때문에 한국인의 90%
    는 중공(지나)이 제시하는 지도 등의 역사물에
    꼼짝없이 속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 @PrettyT-rex
      @PrettyT-rex Рік тому

      이런말 하는 사람들 특징: 고구려, 백제, 신라가 대륙에 있었다는거 믿음

    • @다비드비야-s7e
      @다비드비야-s7e 10 місяців тому

      아무리 중국이 구라를 많이 친다고는 하지만 아닌거 아니에요...

    • @요놈-y6s
      @요놈-y6s 3 місяці тому

      황화이북에 대한 행정력이 없었다고? ㅋㅋㅋㅋ뭔 개소리?

    • @Han_Sushi_2022
      @Han_Sushi_2022 Місяць тому

      @@PrettyT-rex 명나라 이후 감춰 졌지만 역사적으로 정사적으로 고 백 신 있었습니다

    • @쭌-e4w
      @쭌-e4w Місяць тому

      @@PrettyT-rex특징으로 퉁치지말고 없었다는 증거를 제시하는게 더 효율적일텐데 있었다는증거가 더많아서요

  • @김자운
    @김자운 6 місяців тому +1

    삼국타 지리와 역사

  • @jasonjung395
    @jasonjung395 4 місяці тому +2

    상상의 지도들...

  • @쭌-e4w
    @쭌-e4w Місяць тому

    우리의 삼국은 대륙 동부에있었고 오월을 다스렸으며 그들은 그부근옆에 붙어있었다 우린 한반도가영역이아니다

  • @hks8512
    @hks8512 Рік тому +4

    삼국시대때 하북지방이 더 중요해요.

  • @wk8496
    @wk8496 Рік тому +1

    삼국지2, 2번 시나리오로 초반에 여포 등용하고 19번땅 들어가면 끝.

  • @treepark1783
    @treepark1783 Рік тому +29

    촉나라는 형주를 오나라에게서 빼앗긴게 가장큰 타격이었음.. ㅇㅇ
    만약 촉나라가 형주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더라면 위나라를 공격하기가 몇배는 쉬웠을 거임..
    병력과 전쟁 물자를 더 많이 확보할수 있을거고 익주에서 장안을 공략하는 루트가 매우 험난한 산지를 넘어야 하는 루트라서 익주를 나와서 산지를 넘고 넘어서
    위나라와 싸워 볼만하면 식량이 거의 남아 있질 않아서 매번 위나라를 상대로 많은 성과를 거두고도 군량이 부족해서 퇴각 해야만 했었음..
    그래서 나중에는 원정을 나와서 둔전을 일궈서 농사를 지으면서 싸웠다고 하니.. 상당히 고달픈 싸움이었던걸로 추정됨..
    형주를 통해서 가면 그냥 번성을 점령하면 가뿐히 위나라 수도까지 밀고 들어올수도 있었을 건데... 참 애석한 일임..
    형주까지 잃은것도 서러운데 이릉전투에서 오나라에서 대패하면서 장래가 촉망받던 촉나라의 젊은 유망주들 상당수가 이때 대부분 전사함..
    거기에 촉나라 주력 병력도 대부분 상실해버림... ㅇㅇ 이는 향후 이정도 수준을 여전히 회복하지 못함.. 항상 인재 부족에 시달림..

    • @hsh6036
      @hsh6036 Рік тому +9

      사실 촉이 뺀질대면서 오나라에게서 받아간 형주를 차일피일 안주다가 갈등이 폭발한 것이였기 때문에 온전한 형주+익주를 다 먹는 계획 자체가 상당한 무리수이긴 했음.
      오나라가 형주를 돌려달라 할 때 형주를 동서로 나눠서 먹었다면 촉-오 동맹이 오래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고, 촉 입장에서도 북벌 루트가 추가되니 좋았을거임.

    • @user-gy2vn6vu2m
      @user-gy2vn6vu2m Рік тому

      ​@@hsh6036동서까진 아니지만 익양대치 이후 나눠먹었어요. 일방적으로 유비가 떼먹었다라는 분석은 아예 틀린 분석이고 현대와서는 적벽대전 당시에도 유의미한 병력은 유비쪽이 많았고 실제로 형주를 정벌한것도 유비, 형주 집권에 정당성 있던것도 유비라 보는게 맞습니다. 여몽,육손을 위시한 손오의 반유비일파가 억지 부린거 맞아요. 그리고 이 오나라의 반유비파는 촉오동맹의 상당한 암덩어리들이였고 촉한멸망전 당시 오나라 지원병력이 늦는데 일조합니다.

    • @user-gy2vn6vu2m
      @user-gy2vn6vu2m Рік тому

      ​@@hsh6036 그리고 촉오의 가장 큰 분쟁원인인 형주분할은 익양대치 이후 한중공방전이 벌어져서 유비가 양보하면서 끝납니다. 오나라는 유비에 대해 시작부터 관우의 북벌 실패까지 오만하기만 했을뿐 실제로는 성과도 없었고 대의도 없었고 이는 결국에 허구헌날 강동지방에서 반란나는 위나라나 파촉에 갇혀버린 촉나라보다도 민심을 못 얻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실제로도 손가는 강동 호족들을 제어하는데도 벅차했고 형주를 얻은 후에는 더한 줄타기를 해야했습니다. 이를 제어하던 유능한 군주인 손권이 미쳐버린 후에는 오나라는 결국 내분으로 망국 고속도로를 타버리죠.

    • @user-gy2vn6vu2m
      @user-gy2vn6vu2m Рік тому

      ​@@hsh6036 오나라는 호족사회였던지라 적벽대전에 참가한 호족들한테 보상을 줘야했고 형주를 온전히 얻지 못한 이상 강경파 호족들은 반발할 수 밖에 없었고 이들은 전부 아니면 전무를 외쳤습니다. 관우 성격과 주어진 임무상 형주 전체를 내주는건 불가능했고 결국 관우와 오나라의 전쟁은 필연적이였고 이를 방지하려면 유비의 본대가 형주로 와 다시금 익양대치 수준의 군사적 긴장감을 형성해야했습니다. 하지만 유비의 본대는 한중이랑 사천분지, 남만. 즉 본진을 지키고 유지하는데에도 급급했죠. 실제로 반란도 많이 나고 유비 자신도 제어하기 힘들어 했음. 결국 관우가 위기에 빠지고 지원을 가야했던 상용, 파서, 강릉, 형주 4군이 여러 이유로 지원을 가지 못합니다. 강릉과 4군은 오에게 점령됐다쳐도 상용,파서는 유봉(이랑 신씨 형제들)과 그 장비가 주둔한 곳인데 지원을 가지 못했습니다. 이는 촉은 토착관료들과 유비를 따라서 파촉에 들어온 이들의 대립이 심각했고 유비는 이를 제어하는데만도 어마어마한 행정적 시간을 보내야했음을 증거합니다. 형주에 신경 쓸 시간조차 없었다는 거죠. 이를 잘 파고든 오나라는 관우를 파멸시키고 형주 남부를 차지하는데 성공합니다. 근데 이때 차지한 영토로는 북벌하는데 유효한 진격로라곤 관우가 했던 강릉-양양 루트나 또 그 지겨운 무창-합비 루트... 오나라의 군사적 역량으로는 불가능한 루트들이였고 오나라는 삼국시대내내 공격은 다 실패하는 미친 전적을 자랑하게 됩니다. 촉은 성공 직전이라도 갔었지 얘네는 방어는 디립다 잘하면서 공격은 비오는 날 먼지나듯 맞아서... 실제로도 오나라는 촉이 멸망하지 않았으면 그 정치적 혼란속에서도 멸망하지 않았을겁니다.

    • @hks8512
      @hks8512 Рік тому +2

      촉한과 오가 두국가가 힘합하지 않으면 멸망 당하죠. 하북이 위나라땅이라서요. 촉한이 장안만 먹어도 잘한거죠.

  • @hrcustom
    @hrcustom Рік тому +1

    지정학적으로 형주가 중요한게 중국 대륙 판도가 서쪽으로는 험준한 친링산맥이 대륙을 가르고 있고, 동쪽으로는 화이허 유역 우주방어선이 구축되어 위나 오나 모두 삽질파는 동네라 북중국에서 남중국, 혹은 그 반대 방향으로 천하통일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오늘날의 후베이성인 북형주였음. 유표가 실 세력 규모에 비해 중요 군벌 취급받은 이유도 저길 차지해서 길막하고 있었기 때문. 관우가 우금 방덕 뚝배기 깨고 양양을 함락했을때 조조가 괜히 천도까지 생각하며 두려워한게 아님. 그 지역이 더 절실했던 손권의 뒷치기로 없던일이 되어버렸다만. 손권은 양양 얻는덴 실패했다만 대신 강릉-이릉일대를 얻어서 남중국 최후방어선을 구축하는덴 성공함.

  • @사마충
    @사마충 7 місяців тому +1

    고초의 초가 저 한자였네 새로운 거 알고 갑니다

  • @일차원-r4f
    @일차원-r4f Рік тому

    촉이 형주를 가지고 있었기에 양동작전이 가능한 것 같아요 그래서 한중도 얻었으니 오나라는 형주 있으면서도 양동도 못 하니... 왜 뺏어갔을까 하는 의구심이..

  • @realpeace788
    @realpeace788 Рік тому +1

    형주를 잃은 촉이 약해진 거는 사실이지만,
    촉으로부터 형주를 차지한 오나라도 위나라 앞에 별 볼일 없었음. 따라서 형주가 핵심이라 할 수 없음. 식량생산량도 형주는 위나라 한중이나 장안에 비하면 적은 편임

    • @seungwoonchoi7373
      @seungwoonchoi7373 Рік тому

      결국 하북, 중원 다 먹은 위가 사실상 제패했다고 봐도 무방한 그림.
      관우가 독단으로 양번정벌을 감행하다가 협공당해서 패망. 오나라가 강릉을 점령한 후에도 관우보다 더 유리한 전력을 확보했지만 (형남4군 + 양주에서 지원) 역시 위의 양번 방어선을 뚫지 못함. 즉 촉이나 오 한쪽 국력만으로는 양번정벌이 불가능했음. 유일한 가능성은 촉,오 합공으로 형주북부를 공략하는 방법인데 강릉이 촉,오에게 너무 큰 가치의 땅이라 타협이 안됨.
      그냥 만약에를 가정해서 베스트 시나리오는 (형남 3군을 넘겨준 영토를 가정) 합공으로 형주북부를 점령해서 촉은 양번, 상용, 한중으로 통하는 보급로를 확보하고 오에 남은 형남 1군 + 강릉, 강하를 넘겨줘서 갈라먹는 것임. 일어나지 않았지만 제갈량 / 노숙의 외교력으로 양쪽 최선의 결과가 아닐가 생각해봄.

  • @newdasbuja
    @newdasbuja 2 роки тому +2

    잘 보았습니다

  • @jindol1635
    @jindol1635 Рік тому +1

    스타 헌터맵에서 중앙 먹는 거랑 비슷한 개념인가

  • @오나의여신님
    @오나의여신님 Рік тому +1

    형주가 중요한 지역은 맞지만 유비,손권이 차지한 형주는 남형주뿐이라 실질적 이득은 위나라가 다 차지하고 있었음

  • @이길우-x5j
    @이길우-x5j 3 місяці тому +1

    장비 케릭터가 왜인입니다.

  • @이석주-c3t
    @이석주-c3t Рік тому +22

    관우는 지략부족 남 인정 안하고 무대포적 성격 통치자로서는 많이 부족하죠

    • @박준영-b4g
      @박준영-b4g Рік тому

      아니 관우는 잘 싸웠지 쓰레기는 동맹인데도 불구하고 뒤통수 친 5시 소인배들이지 걔네들은 그렇게 통수쳐사 형주먹고 잘 쓰지도 못함 상식적으로 동맹군이 잘 싸워고 있으면 반대편(합비)때려서 지원해줘야 하는 가 아니냐 ㅋㅋ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타이밍에 통수쳐서 끝까지 못 먹음 심지어 형주는 먹기만 하고 활용도 잘 못함 아 ㅋㅋ 형주에서 직통으로 허창 찌르는 이득 하나도 못살린 통수친 소인배들=5시 그 나라

    • @박병규-c9u
      @박병규-c9u 11 місяців тому

      지략부족한 평범한 인물을 조조가 탐냄 ㅋㅋㅋㅋ

    • @권용현-e8l
      @권용현-e8l 7 місяців тому +2

      지략이 부족한건 아니죠... 지략이 부족한 인물이 어떻게 7만명을 한 순간에 수몰시키고 최고 요충지를 함락직전까지 몰아갑니까. 다만 너무 잘나서 오는 오만함에 정확한 상황판단을 스스로 무너진것뿐.

    • @Nou23780
      @Nou23780 11 годин тому

      지략 부족 맞지 제일 최악인 사령관이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사령관인데
      여몽이 형주 접수하자마자 민심돌리고 한거보면 정치력 수준이 미달은 아니더라도 뛰어나진 않은걸로 보이고
      장군으로서 무력뛰어난건 부정안하는데 관우뢰때도 그렇고 우금이긴거 걍 자연재해빨이지 결국 홍수 끝나자마자 못이겼는데 지략을 활약한 순간이 있긴한가?

  • @sl8hf_may
    @sl8hf_may 16 днів тому

    지금도 남아 있는 형주고성은 "치"형식을 가진 전형적인 고구려 백제 성곽양식인데 그곳이 꼴랑 50년밖에 유지 못한 조무랴기 나라들 위촉오삼국애들 쟁탈지로 둔갑됬네..

  • @이쥬인시게오의뢰인
    @이쥬인시게오의뢰인 24 дні тому

    형주 전략적 요충지 헬게이트

  • @배그죽지말자제발
    @배그죽지말자제발 Місяць тому

    화타: 관우 장군 고집세고 자존심 강해

  • @집중자
    @집중자 8 місяців тому +2

    뭔 근소리여 하북 점령에서 끝냈고 나머지는 유비 부풀리는 서사구만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Рік тому +6

    아주 좋은 말씀입니다.
    초한지의 원저는 서한연의 임으로 위'촉'오'는 서쪽에 있어야 합니다.
    명나라 작가와 지도가 기준임으로 형주는 중앙이거나 동쪽에 잘못 표시되어 있습니다. 서쪽에서 형주가 될만한 곳을 다시 물색해 봐야 합니다.

  • @meaculpa1094
    @meaculpa1094 Рік тому

    코로나 (우한 폐렴) 발생이 우연이 아니라 저 지역은 전염병 상습지역 이었네요..이제 코로나가 잠잠한데 저 지역에서 또 뭐가 터질지..

  • @립필-m3u
    @립필-m3u Місяць тому

    명나라 이전에 중꿔는 북경을 밟아본적도 없음

  • @likephoenix659
    @likephoenix659 Рік тому

    저 당시 익주 형주 양주는 말그대로 한나라 세력이다 주장만 했지 실제
    크기로 보면 행정력이 미치는 지역의 크기를 합쳐봤자 한주정도 되는 수준의
    작은 지역만 한나라라고 보는게 맞음. 즉 크기는 비슷했음.
    단 3개의 지역이 가진 중요성은 의외로 인구였음. 영상에서 조조가 가진 지역의
    인구에 절반밖에 안된다고 하는데 원래는 절반은 커녕 3주 합쳐서 조조의 근거지
    연주와 도겸의 서주 2개면 3주 쌈싸먹을 정도의 인구임. 그런데 동탁의 시절부터
    전란을 피해서 사람들이 많이 피난을 가버리니 인구가 오히려 늘어난 거임.
    실제 유비가 형주에서 얻은 명사들 중 상당수가 서주 출신이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임.

    • @haga6762
      @haga6762 Рік тому

      유비가 형주에서 얻은 인재 중에 서주 출신은 '제갈량' 딱 하난데? 애초에 미축, 미방은 서주에 있을 때 진작에 얻었던 초창기 멤버고

    • @호니-k2b
      @호니-k2b Рік тому

      형주출신 인재:
      서서 제갈량 방통
      황충 위연 등

    • @haga6762
      @haga6762 Рік тому

      @@호니-k2b 그 중에서도 서주 출신은 제갈량 밖에 없음

    • @카본블루-i9l
      @카본블루-i9l Рік тому +1

      글 진짜 못쓴다

  • @Han_Sushi_2022
    @Han_Sushi_2022 Місяць тому

    회복할려고 했다던 자리는 고 백 신 영토였어요... 비추 합니다... 좀더 알아보고 영상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명나라 이후 역사 외곡 영토가 이렇게 돌아 다니는거 불편하네요

  • @uhmmaa3
    @uhmmaa3 Рік тому +1

    북쪽이라며 중원지방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jjyy1716
      @jjyy1716 Рік тому

      황하가 가로 지르는 화북평야가 고대부터 문명의 중심지였고. 그 시절 그들이 봤을때 북쪽, 남쪽, 서쪽 다 이민족이였음.

    • @모기-v1q
      @모기-v1q Рік тому

      황하 유역 주변 지역을 통털어 중원지방이라 부름.

  • @아래집성준
    @아래집성준 Рік тому +6

    관우는 알수록 거품이네ㅋㅋ

  • @Hajee-j2q
    @Hajee-j2q 2 місяці тому

    언제까지 남의 나라 소설을 이야기 하려는고?

  • @Soongen
    @Soongen Місяць тому

    삼국지시대가 겨우 30여년정도에서 일어난 역사에서보면 찰나와도같은것 짧은시간이었는데 뭘그렇게 장황히 설명을...

  • @sohansome1
    @sohansome1 2 місяці тому

    개구라 삼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