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꿈이있는 자유 4집, 예수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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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іковано 9 лют 2025
- 한웅재 공식 유튜브
Composed by 한웅재(Han Woong Jae)
Piano/김지형
Recording:신영수
MIx:윤정오
Mastering:김인아
Photo, Screen Editing:한웅재
주님 날 위해 지신 십자가
허물 많은 내 삶에 늘 흐르며
죽었던 내 영혼 살리시네
메마른 나의 맘을 적시네
내가 만난 가장 큰 사랑 예수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으니
이제 내가 사는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분이 사는 것
내가 만난 가장 큰 용서 예수
세상 모든 어둠 힘을 잃고
우리 가진 모든 미움 녹아지리라
어떻게 그분 닮을 수 있을까
어떻게 그 길 걸을 수 있나
내가 만난 가장 큰 이름
예수
이곡도 인천에서 목회하던 시절
새벽예배 시간에 만든 노래입니다
성도들 돌아간 텅 빈 예배당에 앉아 있으면
이렇게 간결한 노래들이 솟고는 했죠
(한웅재)
비록 기독교를 떠났지만. 중학생 때 교회 찬양 행사에서 어떤 형이 불렀던 이 노래 멜로디와 분위기, 가사는 잊혀지지 않는다. 예수라는 사람. 가장 비참한 자리에서 죽었고 그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끝까지 목숨걸고 전파한 이름, 예수. 그는 누굴까. 찬양 감사히 잘 듣고 갑니다.
내가 만난 가장 큰 이름
내가 만난 가장 큰 이름
내가 만난 가장 큰 이름 예수
주님 사랑해요...이시간 이찬양으로 주님품에 안겨 고백하게 됩니다..예수...너무나 아름다운 찬양입니다
[꿈이있는자유 4집 '예수'] 가장 좋아하는 찬양 중 하나입니다. 목사님의 좋은 노래 덕분에 들을 때마다, 따라 부를 때마다 진정한 고백이 됩니다. 늘 감사드려요. 이 곡도 반주음원(mr)이 혹시 나올지 기대하고 있습니다ㅎㅎ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니
이제 내가 사는것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분이 사는 것
내가 만난.. 가장 큰 용서
예수
세상 모든 어둠
힘을 잃고
우리 가진 모든 미움
녹아지리라
어떻게 그 분 닮을 수 있을까
어떻게 그 길 걸을 수 있나
내가 만난 가장 큰 이름
내가 만난 가장 큰 이름..
내가.. 만난...
가장 큰.. 이름...
예수
죽었던 내 영혼 살리시는 매마른 나의 맘을 적시는 그 이름.
이런 찬양이 있었나요 오늘 처음 들었는데 너무나 좋네요.. 찬양이 고백이되고 기도가 됩니다
내가 만난 가장 큰 사랑 예수~○
목사님! 아름다운 찬양 감사해요!!!
천재 작곡가 시네요
한웅재 공식 유튜브에 들어오니, 이 노래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서 뜻밖에 은혜가 있습니다~ 이 노래가 이런 탄생비화가 있음을 새롭게 알게 되었네요^^
이 노래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나요? 듣고싶습니다~
내가 만난 가장 큰 용서 예수
얼마나 듣고 또 듣고 울고 기다리고 바라고 원하고.......꿈자부터 지금껏.요. 목사님. 감사합니다
아멘❤
와 정말 오랜만에 들었는데 너무 좋네요ㅜㅜ
아 멘!
감사합니다 ~♡♡♡
제가 갔던 가을공연,
마지막 곡은 이 곡이었죠.
마지막 곡이 이 곡이라 참 좋았습니다.
라이브음반에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으로 가득 채워진 여백 같네요.
듣고만 있어도 은혜가 됩니다. 다름이 아니라 예수 MR 공유해주실 수 있나요? 살 수 있다면 사겠습니다.
꿈이있는 자유...
혹시 가수 소향님이 활동하던 소속사가 아닌지...
인천에 살때 그랬던걸로 기억하는데, 아닌지도 모르겠네요...ㅎ
6월에 한국 갑니다. 그때 엘피 사고싶어요 .
DM드리겠습니당
jh기쁨 LP 좋지요^^
목사님 이곡 봉헌송으로 사용하고 싶은데 악보를 구할수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예수님의 가르침과 바울의 가르침의 차이.
이 댓글 아래의 응답을 읽으십시오 .
# ( 1 )
바울은 서로 모순된 요소들이 담긴 종교를 만들어냈습니다.
유대인의 유니테리언 사상을 취하여 여기에다가 이교도의 철학을 접목시켰습니다.
이런 혼합은 바울이 몇 가지의 예수 가르침에다 자신에게 그리스도가 계시하였노라고 주장한 것을 합하여 생겨난 것 입니다. 바울 신학은 당시 그리스 사상에 비추어 해석 한 그 개인 체험에 바탕을 둔 것이었습니다.
예수를 신성시하였을 뿐 아니라, 플라톤의 말을 그 분의 신성한 말씀에 삽입하였습니다.
고해성사 라는 이론은 바울의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예수와 그 추종자들은 전혀 알지 못한 신앙이었습니다. ‘원죄’와 ‘십자가 처형’, 그리고 ‘예수의 부활’ 등의 신앙도 그 이론에 바탕을 둔 것으로서 정당한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종합 종교인 그리스도교가 탄생하였으니, 햇수로 계산해 볼 때 너무나 터무니없고, 역사로 볼 때 허위이며, 하지만 심리로는 인상 깊은 종교가 되었습니다.
바울 자신이 매우 열성적으로 건립하려 한 종교의 장엄한 사원 각 방향에 문을 세웠습니다. 그 결과 바울 상표의 그리스도교를 생전 처음 접한 사람들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이 사원에 들어와 자기 자신들이 전부터 오랫동안 섬겨오던 똑 같은 신 에게 경배를 드린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도입하여 근본이 잘못 된 개념이 발달되고 수립됨에 따라, 예수를 추종한다고 생각 한 많은 신자들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 바울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인츠 잔트(Heinz Zahrnt)가 바울을 ‘예수의 복음서를 더럽힌 자’라고, 그리고 베르데(Werde)가 그를 ‘그리스도교의 두 번째 창시자’라고 부르는 데에는 상당히 정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베르데는 바울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겼노라고 말합니다:
“…역사 속의 예수와 교회에서 말하는 그리스도 사이의 단절이 매우 커서 둘 사이를 일치한다는 것은 거의 알 수 없게 되었다.”
숀필드(Schonfield)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바울 이단이 정통 그리스도교의 기초가 되었고 합법적인 교회가 이단으로 몰렸다.”
이렇게 바나바는 가장 사악한 이단자가 되었습니다.
예수의 추종자들에게는 진리의 길이 기하학의 직선처럼 길지만 폭이 넓지는 않았습니다. 이들이 예수 가르침을 바꾸는 일에 동의하지 않은 이유는 그 일이 단지 정략으로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이 모두 다 진리요, 참이었습니다. 바나바와 그 교우들은 예수로부터 직접 배운 그리스도교를 계속 전도하고 실천하였습니다. 이들은 언제던지, 그리고 당시까지만 해도 한 세력으로서 생각이 되었습니다. 이들 중에 여러 성인과 학자가 나와 그리스도교의 모든 분파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예수 추종자들과 바나바는 결코 중심 조직으로 발달하지는 못했지만, 이 지도자들이 진리에 바친 헌신 덕택에, 그 수가 급속히 늘어갔습니다. 이 사람들은 신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현명하고 학식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주로 주변의 험한 지세 때문에 서로간에 고립이 되었습니다. 잘 짜 여진 조직이 없던 것이 오히려 박해자들로 하여금 쉽게 이들을 색출 해 내지 못하게 하는 큰 원인이 되었습니다.
바울 판 그리스도교가 그리스와 유럽으로 전파 된 반면에, 하나님을 믿는 이 사람들은 견문을 가지고 남쪽으로 퍼져나가 결국 북아프리카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들이 구성한 공동체에서는 예수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보전 하였습니다.
아직까지도 예수 가르침을 구현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상당한 지식이 전달되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행동을 모방하고 교리는 구전으로 전달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신의 유일성을 계속적으로 확신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가 사라진 뒤 처음 수세기 동안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섬기기를 거부하는 여러 종파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들은 에비온파(Ebionites), 쎄린트파(Cerintians), 바실리드파(Basilidians), 카르포크라트파(Carpocratians), 히피시스타르파(Hypisistarians) 등 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온 우주의 전능하신 통치주요, 그 분에게는 어떤 동등자가 없이 최고 신으로 숭배하였습니다
그 때 까지는 예수 생애와 가르침에 대해 상이한 여러 기록물들이 이용 되었습니다. 예수는 아랍어의 방언 인 아람어로 말하였는데, 일반적으로 기록 용으로는 쓰이지 않는 말 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초 복음서는 히브리어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이 초창기에는 어느 복음서라도 공식적으로 인정하거나 거부하지도 않았습니다.
# ( 2 )
각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우두머리가 어떤 책을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여부를 결정하였습니다. 각 종파는 누구한테서 가르침을 받았느냐에 따라 서로가 다른 출처를 추종하였습니다. 바나바의 본보기를 쫓는 사람들과 바울을 추종하던 세력 간의 출처는 각각 서로가 달랐습니다. 그리하여 예수가 지상에서 사라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예수 추종자들과 나중에 로마 카톨릭교가 된 바울 기독교 사이에는 분명하고 깊은 차이가 생겼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생활방식과 신앙에서 명확할 뿐 아니라, 또한 지리상으로도 크게 양분이 되었습니다. 바울 그리스도교가 점점 정립이 되어감에 따라 예수의 추종자들에 대한 적의가 커져갔습니다. 로마 제국의 통치자들과 점점 제휴하면서 처음에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가하던 박해가 이제는 신의 유일성을 확신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향했습니다. 그들 신앙을 바꾸려고 했으며, 또 이를 거절하려는 사람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경전을 함께 강제로 없애려는 시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초기 순교자들 중 대부분이 유니테리언 이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가 더욱 받아들여지면 질수록 이를 고수하려는 자들은 신의 유일성을 확신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반대를 하였습니다. 줄리안(Julian) 황제 집권 때까지 이런 싸움이 그 극에 이르러, 이 황제가 “어느 들짐승도 서로 미워하는 그리스도교 종파만큼 인간에게 그런 짓을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당연히 예수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자들은 자기들 의견을 지지하기 위해 경전을 또한 바꾸고 심지어 거짓 글들을 도입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톨란드(Toland)는 나사렛인(The Nazarenes)에서 초기 유니테리언 순교자 이라네우스(Iraneus)의 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고 참된 경전에 대하여 그처럼 무지한 자 들을 놀라게 하기 위하여, 그들 자신들이 만들어 낸, 그 출전이 의심과 거짓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경전을 강요하였다.”
톨란드는 계속 언급합니다:
“초대 그리스도교회에서 손에 손잡고 속임수와 맹신 행위가 얼마나 심하였는지는 이미 잘 알려진 바이다. 후대 교회도 초대 교회처럼 조직한 책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악이 나중에 점차 커져 수도승들이 유일한 복사자 요, 모든 좋고 나쁜 서적에 대한 유일한 보관자가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리스도교의 시작, 그 본래 역사 기록과 우화, 진리와 거짓을 거의 구분할 수 없었다….”
“사도들을 이은 후계자들이 스승들이 가르친 순수한 교훈을 어떻게 그렇게 많이 혼동하여 다른 자들의 것으로 잘못 생각할 수 있었을까? 또 그들이 이 문제에 대해 어두웠는데도 어떻게 더 쉽게 밝은 빛의 인도를 따를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러한 외경들을 교부들이 정전과 같은 위치에 놓은 것을 볼 수 있었으며, 그것도 우리가 이 외경을 신성하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던 때에, 전자는 후자 못지 않게 신의 경전으로 가끔 인용되었다. 나는 이에 대해 두 가지 질문을 던지려 한다.
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오리게네스(Origen),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와 다른 저자들이 진짜라고 인용한 모든 책들을 마찬가지로 신빙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가? 그리고 서로 모순될 뿐 아니라 흔히 자기들끼리 똑같은 사실을 놓고 의견 충돌을 보인 교부들의 증언에 대하여 무슨 강조가 필요할까?”
톨란드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이런 질문을 ‘생기 없는 성직자나 교회 권속들’에게 하면, 이에 논리적으로 대답하는 대신, 그 질문자를 ‘이교도니 숨어있는 무신론자’라고 불렀다.”
그는 또 이렇게 언급합니다:
“이런 행위로 말미암아 그들을 모두 사기꾼이라는 의심을 품었는데, 인간이란 취약한 부분을 건드린다면 당연히 소리지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어느 인간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해 화를 안낼 수 없을 것이다….”
끝으로 톨란드는 묻고 있습니다:
“나사렛 인 이나 에비온(Ebion)인들을 모든 그리스도교 역사가 들이 만장일치로 최초 기독교인이었노라고 인정하고, 또 자기 국민인 유대인들과 함께 살다간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그분의 행동에 대한 증인이 되었으며, 모든 사도들이 이들 가운데 나온 사실들을 생각해 보면, 내가 말하건대, 어떻게 이들이 다른 누구보다도(최초 이단자라 불렀으므로) 예수의 교리와 구상에 대하여 잘못된 개념을 지어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구분이 돌아가신 다음 그분을 전혀 알지 못하는 자들이 전하는 것을 믿는 이방인들이 어떻게 이런 것들을 더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었으며, 유대교 신자 말고 누구로부터 자기들 견문을 쌓을 수 있었을까”
# ( 3 )
바르나바가 사이프러스로 떠난 뒤에도, 바울은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초기에 많은 기독교인들과 오랫동안 충분히 함께 하였으므로 이제는 그 일원으로 인정받았으나, 아직도 자기 위치는 확고하지 못했습니다.
자기자신을 예수 사도라 불렀어도 예수가 살아있는 동안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은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가 그에게 계시를 내렸다고 주장할지라도, 이방인에게 전도하는 일에 대해서는 예수와 함께 지낸 사람들과 교제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목격자들에게 선지자와 함께 한 동행은 값진 도움이 되고, 또 자기 주장을 펴는데 부차적인 권위로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함께 가자고 종용했던 것 입니다.
이 두 사람이 지난 날 서로 매우 심하게 다투었으면서도 이제 함께 지내는 것을 볼 때 매우 놀랍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변했습니다. 이제는 여러 사람들이 바울을 기독교인으로 인정하였고, 더 이상 첩자나 박해자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리스 철학가요, 기독교인에 대한 지독한 비판가인 켈수스는 안티옥에서 두 사람이 다툰 원인은 베드로의 명성이 높은 이유로 바울이 그를 질투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질투는 사실 특히 이방인들 사이에서 자기자신의 명성이 높아감에 따라 차츰 씩 줄어들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받은 박해도 이 두 사람을 친하게 맺어주는 데 기여를 했습니다. 로마 당국과 그들을 지지하는 유대인들이 가하는 박해가 그 당시에도 극심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가정된 예수 재판과 십자가 처형 당시 임박한 위험과 박해에 직면하여 그분의 동료라는 사실을 부인함으로써 나약한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이제는 여기저기 상황이 바뀌어 박해가 줄어들었으므로, 예수 메시지에 대해 바울이 접근하는 방식에 더 기꺼운 마음으로 일치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상황에 따라, 예수의 가르침을 임시방편으로 바꾸거나 개조 함으로서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도 받아들이도록 할 뿐 아니라, 당시 통치 권력에 분명한 위협이나 위반이 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주님의 법과 일치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당시 통치자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정책은 베드로 전서 2장 13-18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 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그에게 보낸 방백에게 복종하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자유롭게 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 사람을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왕을 공경하라.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바울은 베드로와 함께 서방을 여행하였습니다. 바르나바의 성실함이나 막대한 영향력이 없이도, 자기가 만든 새로운 교리와 개조한 행동방식에 대해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서 15:20-21에서 바울이 말합니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 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기록된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만약 바울이 예수가 전한 본래 가르침을 그대로 전파하였다면, ‘남의 터 위에’ 있는 것은 그분의 것과 똑같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둘 모두 한 건물을 짓는 일에 종사하였습니다. 맨 처음으로 바울이 자기 입으로 직접 예수나, 혹은 그리스도에 관해 듣는 자들은 아직도 사도들이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전하고 있는 이야기와 바울의 것을 결코 비교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따르는 이야기는 바울이 만든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자기 메시지를 전파하는 일에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아볼로(Appolos)라는 유대학자로부터 상당한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덕택에 바울은 자기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일에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소위 말하자면, 바울이 심고 아볼로가 물을 준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아볼로조차도 바울이 말하는 새로운 주장을 모두 인정할 수 없어서 바르나바처럼 그와 결별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예수의 상세한 가르침에서 점점 벗어나 자기에게 환영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한 그리스도를 더 강조하였습니다. 예수가 전한 안내를 바꾼다고 비난하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은 계시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에게 신권을 주는 것 이었습니다.
그가 주장한 대로, 이 ‘권한’에 따라 복음의 은총이 유대인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에게 해당되었습니다. 더구나 모세 율법을 따를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직접 계시하신 것과 정반대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그 요구는 저주였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예수의 추종자들뿐 아니라, 유대인들까지도 격분시켰는데, 그 이유는 양 쪽 예언자들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유대인을 증오하는 자들이나, 예수에 관해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자들에게 자기 가르침을 전파하려 한 이유는 자명합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유추하여 자기가 만든 새로운 교리를 정당화하였습니다:
“ 형제들아 내가 법을 아는 자들에게 말 하 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 하느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이 곧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7:1-4)
이런 유추를 통하여 볼 때, 분명한 사실은 바울이 예수와 ‘그리스도’를 구분 하였다는 점 입니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예수가 사망했으므로 그와 그 추종자들을 구속하는 율법은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는 예수가 아닌 또 다른 율법을 가져 온 그리스도와 ‘결혼하는’ 것 입니다. 따라서 예수가 아닌 그리스도를 따라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가르침을 고수하는 사람은 길을 잃게 됩니다.
이 논리를 이용하여 바울은 예수자신이 결코 가르치지 않은 원죄와 속죄라는 교리를 합성하였습니다.
심판의 날 “저는 그리스도를 믿나이다.”라고 말하면, 어느 누구나 자기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수 있고, 그 행동 결과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는다고 여러 지방 말로서 설교하였으므로 이 교리는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 ( 4 )
그러나 바울이 주장한 논리의 바탕으로 삼고 있는 기본 전제는 거짓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죽지도 않았으며, 부활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주장하는 보속과 속죄 교리는 잘못된 것입니다.
바울이 주장하는 논리는 두 가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예수가 전한 가르침을 변질시켰고, 예수가 누구였는지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주는 길을 마련하였습니다.
사람들 마음속에서 예수는 인간 인식에서 신 개념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가 지상에서 머무는 동안 하신 말씀과 보이 신 기적에 놀라 그 분을 선지자 이상으로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이번 경우에는 그분에게 신성을 부여한 것 입니다.
그 분을 적대하는 자들 중에는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소문을 퍼뜨려 하나님께 동반자가 있다고 하여 정통 유대인들을 화 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분이 사라지기 전부터 벌써 그 분의 본성을 호도하여 신성을 부여하려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예수가 전에 가르쳤던 것을 무효화하는 권한을 가진, 이처럼 상상 속 에서나 존재하는 그리스도는 분명 보통 인간과는 다른 까닭에, 결국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으로 혼동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 상상 속의 인물이 경배 대상이 되고 하나님과 결합하였습니다.
인간 예수에서 신성한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이처럼 변신하였기 때문에 그리스와 로마에 있는 지식층은 바울과 그 추종자들이 전하는 것을 자기들 철학과 동화할 수 있었습니다.
존재에 대한 그들 견해는 삼원이어서 바울 교회에서 말하는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에 삼위일체에 부합하도록 ‘성령’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두 이론이 하나가 되어 삼위일체 교리가 탄생하였습니다.
당시 그리스에서 널리 퍼진 철학사상이 이 가르침을 윤색하였을 뿐 아니라, 그리스어 그 자체가 가르침을 표현하고 의미를 해석하는 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스어에는 그리스인의 철학을 포함할 수는 있으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충분히 전할 만큼 방대하지도 않고 매끄럽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진정한 예수 추종자 중에 그리스어를 유창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조차도 그분 가르침을 그 말로 완전히 표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말투를 바꾸어야 만 했습니다. 히브리어로 된 복음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하려고 할 때, 이런 한계가 너무 커서 결국에는 거의 모든 히브리 복음서를 훼손하고 나서야 일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실제 바울이 예수 신성이나 삼위일체 교리를 설교하지는 않았어도, 그의 표현 방법과 변신으로 이 두 교리를 오해하게 만드는 문을 열어 주었고, 유럽에서 이것들이 수립될 수 있는 길을 터 주었습니다. 이 교리들 때문에 결국 마리아가 ‘신의 어머니’라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위치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예수가 살았던 시기와 지금 자기가 사는 시기 사이에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 것 같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당시 상황이 바뀌어 예수의 가르침은 구식이 되어 더 이상 적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도덕을 위한 새로운 바탕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당시 상황을 유심히 살핀 뒤 자기를 신뢰하도록 하는데 필요 한 것들을 가르쳤습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 (고린도전서 6:12)
바울은 모세와 예수 모두를 거절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노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이 응답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 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며, 어찌 나도 주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로마서 3:7-8)
이 말로 볼 때, 바울은 자신이 거짓말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수단은 목적을 위해 정당하다고 느낀 것 같으나, 어떻게 진리가 거짓말을 통해 풍성해 질 수가 있다고 하는지는 모를 일 입니다. 이 논리대로 인간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하다면, 예수를 따르는 한 추종자가 무슨 반대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도대체 당신은 누구입니까? 복음서에 나온 예수님의 말씀부터 왜곡하고서 예수를 믿는다고 합니까? 당신이 주장하는 예수의 가르침은 무엇을 근거로 한 것입니까?
혹시 이곡 mr 살수 있는곳이 있을까요??
저도 꼭 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