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시성 옌안 김산 활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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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31 гру 2024
  • 김산(본명 장지락)은 평안북도 용천 출생으로 1920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한 뒤, 이듬해 공산청년동맹에 가입해 공산주의 잡지 '혁명'을 간행하고 1925년 중국 혁명에 참가, 다음 해 조선혁명청년동맹 조직위원회의 기관지 '혁명동맹' 부주필을 맡아 선언문을 작성하고, 동양민족연맹을 결성하였다.
    1928년부터 1930년까지 홍콩, 상해, 베이징 등지에서 활동하다 베이징 경찰에 체포되어 일본 영사관으로 넘겨진 뒤 조선에서 심문을 받다 다음 해 4월 풀려났다. 이후 다시 베이징으로 가서 사범학교 및 소학교 교사로 생활하다가 1933년 4월 중국 경찰에 붙잡혀 다음 해 1월에 탈출하였다.
    이어 공산당 북부지구위원회에서 활동하던 중 결혼해 잠시 철도 노동자로 일했고, 1936년 7월에는 상하이에서 조선민족해방동맹을 창설하고, 8월에는 조선 혁명가 대표로 선발되었다. 1937년에는 항일군정대학에서 물리학, 화학 등을 강의하였다.
    1938년, 캉성(康生)의 지시로 '트로츠키주의자이자 일본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지시를 받은 중국 당국에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김산은 1937년 님 웨일스를 만나 자신의 혁명 인생을 구술 하였고 이는 '아리랑'으로 1941년 출간되었다. 그런데 두 사람을 만나게 한 계기가 된 곳이 루쉰예술문학원 도서관이었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제작 202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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