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g Taejong of Joseon Dynasty took a lot of women as his concubine to replace his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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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8 бер 2022
  • In the 11th year of King Taejong (1411), the conflict between King Taejong and Queen Wongyeong was getting worse.
    Queen Wongyeong and her family made every effort to make King Taejong a king, but King Taejong, who ascended the throne, didn't consider it seriously, and took a lot of women as his concubine. So Queen Wongyeong, who was possessive, was overwhelmed with his betrayal. Due to King Taejong's womanizing and Queen Wongyeong's jealousy, the royal family had no comfortable day.
    Based on this conflict, to hold back his family-in-law, King Taejong agreed with the impeachment of his brother-in-laws, Min Mu-gu and Min Mu-jil. Eventually, in 1410, King Taejong, at the strong request of his relatives and servants, ordered Min Mu-gu and Min Mu-jil to commit suicide. So the relationship between King Taejong and Queen Wongyeong run on the rocks.
    After that, Queen Wongyeong, who lost her mind, often said rude things to King Taejong, causing the king's anger. So, less than a year after the her brothers died, the queen was on the verge of being abandoned.
    King Taejong wanted to replace Queen Wongyeong. So, to choose a woman who can rule over the ladies of the court, in 1411 (the 11th year of King Taejong's reign), he established a system to have one consort and two mistresses.
    So, on October 27 of the same year, He made the daughter of Kim Gu-deok, the director of the Office of Ritual Procedures, Consort Myeong. And the daughter of No Goo-san, the Scholar of the Office of Special Advisors, and the daughter of Kim Jeom, the former magistrate of Jiham, were sealed as concubines. They were called Palace Lady Sohye (The future Consort So) and Palace Lady Sukgong, respectively. #KingTaejong #theAnnalsoftheJoseonDynasty #History

КОМЕНТАРІ • 150

  • @user-yr3il4uu2h
    @user-yr3il4uu2h 2 роки тому +73

    원경왕후의 복수는
    장남이 조금해주고
    차남은 모두를 위해
    기도하는 스님
    삼남은 세상에서 제일
    위대하고 고마우신
    우리글을 만드신
    세종대왕

  • @park6002
    @park6002 2 роки тому +235

    옛날이나 현대나 남편출세시키고나면 마누라 바꾸고ㆍ집바꾸고 차바꾼다는 말이 맞는말인듯 희생해서 성공시키면 안된다는 교훈

    • @Elin-sw3jd
      @Elin-sw3jd 5 місяців тому

      남자는 돈,권력,명예 등을 얻으면 그때 진면목을 볼 수 있다잖아요 그렇게돼면 (가장 최전성기에) 바람피우고 여자 만나고 등등 한다고...

  • @user-gf8bu7iw5m
    @user-gf8bu7iw5m 2 роки тому +18

    근데 처남-친정, 후궁 일로 피 터지게 싸우는 중에도 부부관계와 출산을 멈추지 않았던 미스테리한 부부.

  • @user-mf1gl1nh3v
    @user-mf1gl1nh3v 2 роки тому +41

    누구 뒷바라지해줄 필요없다.
    인간은 다 지 잘나서 잘된줄알지 고마운줄몰라

  • @user-ww4ek6yd4x
    @user-ww4ek6yd4x 2 роки тому +3

    늘 화이팅입니다.좋은 정보 주셔셔 감사합니다.^^;^^☆♡♡^^;^^☆♡^^

  • @user-pt3nf4sj1q
    @user-pt3nf4sj1q 2 роки тому +47

    원경왕후 억울하고 배신감이 컸을거라 생각이...

  • @user-kl5yd3cy9q
    @user-kl5yd3cy9q 2 роки тому +54

    이방원은 의리가 없어. 힘들때 같이 한 조강지처는 버리는게 아닌데, 원경왕후 친정이 이방원 왕 만드려고 죽을 각오하고 지원했고, 원경왕후는 남편 걱정되어서 갑옷입고 싸움터까지 직접 나가려한 남편 끔찍이위하는 여장부였는데, 본처 친정 작살 내버리고, 후궁 잔뜩 들여서 본처 개무시하는 만행을 저지름.

    • @inhukj7875
      @inhukj7875 2 роки тому +1

      권력에 남녀노소 없음

  • @user-xt2nj4cx8n
    @user-xt2nj4cx8n 2 роки тому +3

    영상감사합니다🙏

  • @Mi-qr8kr
    @Mi-qr8kr 2 роки тому +27

    이방윈을 왕 만들기위해
    힘쓰던 민씨집안 멸망하
    는구나.아~이방윈 너무
    했구나 조강지처를..
    저렇게 ~~~

  • @user-du1we1no2i
    @user-du1we1no2i 2 роки тому +62

    철저하게 부인과 공신을 챙겼던 세조와 대조적인 부분

    • @user-fn4iy4wv3d
      @user-fn4iy4wv3d Рік тому +1

      세조가 아니고 세종 아니에요?

    • @user-uu5jx5so9o
      @user-uu5jx5so9o Рік тому +1

      세조입니다

    • @Elin-sw3jd
      @Elin-sw3jd 5 місяців тому +1

      ​@@user-fn4iy4wv3d세종도 부인과 금슬이 좋긴 했지만 많은 후궁을 들여 자식을 많이 봤죠
      총애하는 후궁도 있었고...
      세종도 자기 아버지가 자기 부인 집안 파토낼때 지켜주지 못했고
      소헌왕후가 현명해서 후궁들과 잘 지낸거지...

    • @user-ib8xf7tb9q
      @user-ib8xf7tb9q 5 місяців тому

      세조가 자기 부인한텐 잘했어요

    • @user-ib8xf7tb9q
      @user-ib8xf7tb9q 5 місяців тому

      세조가 자기 부인한텐 잘했어요

  • @user-pf4mi4su7u
    @user-pf4mi4su7u 2 роки тому +24

    소유욕이 강했던? 어떤 여자가 저걸 참나? 돌부처도 돌아 앉는다는 첩을 들이는데~~~~

  • @user-nh1ks4cz4q
    @user-nh1ks4cz4q 2 роки тому +123

    부부싸움이 아니라 원경왕후가 일방적으로 당한것입니다
    물심양면으로 밀어줘서 왕을 만들어놓았더니
    고작 한다는짓이 수많은 여자들과 놀아는것이 최우선이었으니
    누가 좋아합니까

    • @user-bg6qg9nk1f
      @user-bg6qg9nk1f 2 роки тому +6

      외척견제하려면 어쩔수없었음

    • @user-pj7jp6qf9n
      @user-pj7jp6qf9n 2 роки тому +4

      차기왕의 외척입니다. 태종은 이것을 묵과할수 없었던것!

    • @user-nh1ks4cz4q
      @user-nh1ks4cz4q 2 роки тому +33

      @@user-pj7jp6qf9n 수많은 여자들과 놀아나는것은 외척경계와 상관이 없고
      오히려 외척을 양산할뿐입니다
      왕비만 외척이 아니라 후궁들도 외척입니다
      궁예는 외척을 만들지 않으려고 후궁도 안두었어요
      이방원 색욕에 눈이 멀어서 그무슨 병신짓입니까

    • @inhukj7875
      @inhukj7875 2 роки тому +2

      일방적으로 당했다기엔 원형왕후 입장에는 맞는데 민씨 일가의 경우는 권한이 충분히 위협적임
      특히 양녕이 왕위를 물려받을 거라면 특히 위협적임

    • @inhukj7875
      @inhukj7875 2 роки тому +1

      @@user-nh1ks4cz4q 외척을 양산하면 서로 견제가 됨 심지어 그 것이 왕비가 아닌 후궁이라면 더욱이

  • @user-tv7vp1yx5l
    @user-tv7vp1yx5l 2 роки тому +6

    재밌네요 몰랐던 궁주들 이야기

  • @channelhoony6322
    @channelhoony6322 2 роки тому +67

    어찌보면 자신을 🤴으로 올려주느라 내조에 충실했던 왕후를 내친거나 마찬가지구마!

    • @jaecheolhong8830
      @jaecheolhong8830 2 роки тому

      L

    • @user-qv2dc2si9t
      @user-qv2dc2si9t 2 роки тому

      왕권을 탈취하기 위해서
      형제와 조카와 혈육들을
      죽이는 구역질나는 그런
      망종들의 미친 쥐랄들이
      그렇게도 자랑스럽냐고...

  • @taemixstudio
    @taemixstudio 2 роки тому +1

    조선 왕실의 후궁에 대해 알 수 있어 매우 유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 @user-bm4xh5rz1p
    @user-bm4xh5rz1p 2 роки тому +43

    실록에 의하면 효빈김씨는 태종이 즉위하기 전부터 그와 부인 원경왕후를 모시는 시녀로 기록돼 있습니다 2차 왕자의 난이 벌어지던 당시 나갔던 집안의 말이 혼자 돌아온 것을 보고 태종이 패배한 것으로 오해한 원경왕후가 자기도 나가서 싸우다 죽겠다며 뛰쳐나가려는 걸 말리던 자 중 하나가 그녀였으며 태종 총서에는 태종이 즉위하기 전 송도에서 살았을때 집에 하얀 용이 나타난걸 보고 이것을 집안 사람들에게 알린 사람이 그녀였다는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태종 15년 1415년 겨울 태종 이방원이 처가 민씨 일가를 처리하던 과정 중에 정실 원경왕후 민씨의 지나친 투기를 비난하며 그녀의 출신과 경녕군 이비의 탄생배경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효빈김씨는 원래 원경왕후의 친정에서 거느리던 노비로 태종의 아들 즉 훗날의 경녕군을 임신한지 삼개월후 궁을 나가는데 이후 원경왕후는 궁 밖에 있던 그녀를 학대했다고 합니다
    실록에 따르면 한겨울인 음력 12월에 만삭인 효빈김씨가 출산이 임박해지자 이것을 들은 원경왕후가 (태종 이방원의 생각으로는) 마치 얼어죽기를 바라듯 자기가 그 소식을 알려준 계집종을 시켜 문 바깥에 방치했는데 효빈김씨의 오빠 김화상이란 자가 이것을 보고 불쌍하게 여겨서 만든 천막에서 그녀가 출산하자 다시 계집종들을 시켜 김화상이 마련해준 침구들을 빼앗고 숭교리의 벌개라 하는 궁노의 집 앞 토담집으로 그녀를 옮겼습니다 그러나 한상좌란 자가 동정심에 마의를 가져다줘서 효빈김씨는 일주일을 버틸수 있었고 그제서야 원경왕후가 효빈김씨의 아버지와 김화상으로 하여금 소에 실어 교하의 집으로 보낸것이 이야기의 끝입니다 이후 단종 2년에 사망해서 궁에서 쌀과 관 등을 보내서 부조를 한게 기록의 전부이다 다만 고종기 승정원 일기에서 효순궁주라 불리던 그녀를 효빈으로 올렸다는 기록이 더 있습니다

    •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2 роки тому +12

      야사에 따르면 효빈 김씨는 미색이 뛰어났다고 하죠. 원경왕후의 시녀였다는 설과 신덕왕후의 시녀였다는 설이 있는데 신덕왕후의 시녀였다는 설에서도 미색이 너무 뛰어나 자신의 처소를 드나들다 이성계가 그녀에게 관심을 보일까 봐 신덕왕후가 태조가 처소에 든다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녀를 숨겼다고 하죠. 오늘날의 손예진 씨 같은 여성이었으려나요?
      다만 그녀에 대한 기록을 놓고보면 이렇게 미모기 뛰어난 여성이었음에도, 의외로 성격이 무뚝뚝했던 건지, 태종의 총애는 금방 식어 버려요. 아이 수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태종과의 사이에서 1남 낳은 것이 다고, 만약 저 겨울날 방치 사건 때문에 불임의 몸이 되었다 친다 해도 이후 그녀에 대한 기록이 단종이 그녀가 사망하자 부의했다는 기록이 전부니까요. 딱히 이후 태종이 그녀를 총애했다거나 감싸주었다거나 하는 기록이 없어요.
      저 겨울날 방치 사건이 일어난 것이 1402년입니다. 경녕군이 1403년 1월 생이니까 1402년 연말에 일어난 일이었겠죠. 당시엔 자신의 아들들을 줄줄이 죽인 태종과 태조의 사이가 최악이었고 조사의의 난이 일어나서 정신이 없었던 태종이 감싸주지 못한 거라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그 이후로도 딱히 그녀를 태종이 꾸준히 찾았다거나 예우했다는 이야기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13년이 지난 1415년에 민씨 일가를 처단하기 위해 13년 전 있었던 일을 가지고 태종이 비난했다는 데서 어쩌면 태종이 누명을 씌운 것일 수도 있다는 설도 있어요. 다만 원경왕후의 그 강한 성격을 놓고볼 때(;;;) 사실이라는 쪽에도 무게가 실립니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효빈 김씨는 원경왕후에게도, 태종에게도 그다지 사랑 받지 못한 여성이었다는 점입니다. 미모는 뛰어났지만요. 원경왕후의 시녀였다는 설을 채택해 볼 때 똑같이 원경왕후의 시녀였음에도 태종이 후궁으로 들인 신빈 신씨는 축첩이 허용되던 시대에 원경왕후가 끝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태종과의 사이에서 아이도 10명인가 낳았으며, 원경왕후가 먼저 죽자 태종의 병수발을 마지막에 맡은 부인이었을 정도로 태종의 총애도 많이 받았죠. 태종 사후에도 왕실 어른으로 군림했고요.

    • @user-nh1ks4cz4q
      @user-nh1ks4cz4q 2 роки тому +14

      @@user-uo6ih8ur1t 효빈김씨는 원경왕후 사가시절의 몸종이었고 신덕왕후의 시녀도 이방원놈이 건드렸어요
      그놈은 이쁜 시녀들은 다 건드렸어요

  • @user-wd2lr1tv9s
    @user-wd2lr1tv9s 2 роки тому +31

    이래서 남자 뒷바라지는 하는게아니다
    친정에서 목숨바쳐 뒷바라지해 촌놈
    왕 만들어 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오입질에 친정 가문까지 다 몰락했잖아

  • @khd5031
    @khd5031 2 роки тому +150

    왕으로는 훌륭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적으로는 참 수준이하였던것같네요

  • @user-fv1es5uk1r
    @user-fv1es5uk1r 2 роки тому +18

    태종도 좀 절제하고 원경왕후도 민씨 가문에 대한 욕심 쫌만 내려 놓고 서로 지혜롭게 하면 좋았으련만
    사람의 욕망이란 참...
    역사라는 게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둘 다 극으로 치달은 건 확실해 보이네요~에공

  • @user-ft3vb3iq5b
    @user-ft3vb3iq5b 2 роки тому +42

    감사합니다.이번엔 태종과 원경왕후의 딸들인
    정순공주, 경정공주, 경안공주, 정선공주 해주
    세요~~~ 특히 정선공주는 형제들과는 다르게
    부모 사랑 한번 못받아본 공주라 더욱 안타까
    웠어요.

  • @parkcap-jaang8812
    @parkcap-jaang8812 2 роки тому +29

    지금의 감성으로 보기엔 태종이 나쁜 남편이지만 외척세력을 자르고 왕권을 강화하여 훗날 세종이 훌륭한 왕이 되도록 한 기반을 닦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경왕후의 여흥 민씨 집안은 왕비로는 인현왕후와 민비(명성황후)를 왕비로 배출했지만 민비때 외척의 세도로 조선이 망하는데 큰 일조를 한 집안입니다ㅡ

    • @user-wl1gd3ff8j
      @user-wl1gd3ff8j 2 роки тому +4

      맞습니다.탄탄한미래의왕조,조선왕조를위해서 태종은 잔인한 결심을한거죠.조선왕조시대찬란히빛나는 4대임금,세종대왕을 만드신 아버지,조선을위해 외가 가족들의끈을 미리 막은거지요.그런면에서 대단한 왕조를세운 태종 입니다.

    • @Elin-sw3jd
      @Elin-sw3jd 5 місяців тому

      헐? 여흥 민씨에요? 솔직히 그 집안 별로인듯 왕비들도 다 별로인 왕비들...나라에도 도움 안돼고...

  • @user-sh9hu5kp2p
    @user-sh9hu5kp2p 2 роки тому +16

    권력욕에 눈이멀어 마누라 가문을멸문시키다니 마누라 가슴에 비수를꽃아놓고 자신을따르라니 의리라곤 없는 인간말종

    • @CWG-op9td
      @CWG-op9td Рік тому

      There would be no great king Sejong without annihilating the greedy queen’s brothers.

  • @kim-j.y
    @kim-j.y 2 роки тому +10

    이방원..형제까지 죽이며 왕까지 올랐는데 마누라는 못버릴까??? 단 힘이 부족할때 장인쪽 힘만 필요했을뿐...남편을 도울정도로 명석하고 집안의 권력도 있지만 같은 이불속에서 잤던 남편을 몰랐네...믿는도끼에 발등찍힘 더아픈법...

  • @In-im8sl
    @In-im8sl 2 роки тому +16

    아마 자신이 우위라는걸 보여주기 위해 중궁전에 가지 않았나 싶네요. 니가 아무리 나를 미워해봐야 나를 거부할수 있겠나하는 심보로... 정말 나쁜 남자네요.

  • @user-gg5vd4dk3l
    @user-gg5vd4dk3l 2 роки тому +45

    왕권이 강화되고, 권력에 아첨했던 신하들은 출세하여
    온갖 비리만행을 저지른것이 조선의 후퇴를 거듭하고,
    나라가 멸망하는 과정이 되는것 같습니다.

  • @meetrieum
    @meetrieum 2 роки тому +17

    와 댓글들이 대단들하네요..
    이러다간 왕의계보뿐아니라 후궁들계보까지 달달 외우게생겼음 ㅋㅋ

  • @sylviap6494
    @sylviap6494 2 роки тому +29

    철저하게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태종!
    원경왕후에 대한 배신으로
    사후 지옥불에 떨어졌고,
    원경왕후에 의해
    몽둥이 찜질로 영원히
    비명을 지르고 있지 않을까🤬싶다.

  • @user-yd4zm9hq2k
    @user-yd4zm9hq2k 2 роки тому +25

    바람피고 처남들 다 죽이고ㅠㅠ 외척발호견제가 명분이지만 너무 심했음~원경왕후랑나중에 궁에서도 따로살고 가정내이혼으로 죽을때까지 말도 안하고 지냈음

  • @inyeobseo9369
    @inyeobseo9369 2 роки тому +45

    최대의 미스테리는 태종과 원경왕후의 냉전 기간에도 아이들이 태어났다는 점인데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인지 대외적인 냉전과 사생활은 별개인지 알기 힘듭니다. 별거, 이혼을 준비중인 부부들도 동침을 하는 예가 있나요?
    후궁은 왕이 죽으면 여승이 되거나 사가에 나가 사는 게 원칙입닞다. 조선 후기에도 왕의 어머니인 후궁들만 궁에서 살았습니다. 후궁이 내명부를 지휘한다는 것은 예법상 맞지 않습니다. 세종, 문종을 보면 옹주를 낳고도 상침 송씨, 사칙 양씨 궁녀의 직책이 보이는데 출산을 하여도 다 후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2 роки тому +11

      주위에서 보면 냉전 기간에도 부부 관계는 있는 부부들 있어요... ㅋㅋ 그렇게 이혼 준비하다 결국 다시 같이 살기도 하고요.
      참고로 말씀하시듯 왕의 후궁들은 왕 사후 궐에서 나가 비구니가 되거나 사가에 나가 사는 것이 원칙이긴 하지만 예외도 있어요. 왕의 어머니인 후궁들만 궁에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중전이랑 사이가 좋았던 후궁 같은 경우 나이가 비슷하고 하면 처지도 비슷하고 해서 그 중전이 넓디 넓은 궁궐 안에서, 의외로 외롭기 마련인데 자기 친구 하려고 절로 나가려는 걸 만류해서 궁에 머물게 하기도 하죠. 본인이 대비가 되는데 대비라는 존재가 의외로 외로워요. 자신을 모시는 상궁/나인들은 사는 세계가 너무 다르고 왕과 중전은 자신을 받들어 모시기만 할 뿐 동등한 관계는 아니고요.
      대표적인 예가 중종의 후궁이었던 창빈 안씨죠. 그닥 욕심도 없고 나서지도 않는 성격이라 중종 시절 후계자 전쟁에서도 한 발 물러나 있었고 중종 사후 당연히 관례에 따라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려는 걸 문정왕후가 자기 친구 하려고 만류해서 궁에 머물며 문정왕후의 말벗 역할 담당했죠. 사실 종법 해석상으로도 선조 외에는 적임자가 없긴 했지만, 이로 인해 자신의 할머니에게 문안 인사 드린다며 창빈 안씨의 손자들이 궁에 자주 드나들었고 후사가 없었던 명종과 인순왕후가 이들 형제를 눈여겨본 것도 훗날 선조가 즉위하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창빈 안씨처럼 완전히 궁에 머문 것은 아니지만 중종의 또다른 후궁 귀인 한씨도 문정왕후의 만류로 비구니가 되지는 않고 궁 근처에 살며 궁에 자주 드나들며 문정왕후의 친구 역할 담당한 것으로 나오네요. (중종의 총애가 깊지 않았고 후계 구도에서 한 발 물러나 있던 후궁들)
      이건 비단 중전/후궁만의 일은 아니고 평균 수명이 남자가 더 짧다 보니, 그리고 남성 사망률이 높았던 시절 밥은 먹고 살 만한 집 정도만 되어도 첩 1명 정도는 있는 경우가 많았다 보니, 과거에는 남편 사후 본부인과 첩이 형님, 동서하며 말년을 의지하며 지내는 경우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기도 했어요.
      후궁이 내명부를 지휘한 경우는 없었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신덕왕후 사후 실질적으로 태조 이성계의 본부인 역할 한 원비 성씨(이름 맞나?), 태종의 본부인 역할 한 신빈 신씨 등 모두 어디까지나 상왕으로 물러나 앉은 상태에서 본부인 역할 하며 간병 및 왕실 어른 역할 한 정도지 내명부 전체 지휘는 중전이 했죠.
      그리고 그렇기에 정말 예외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대비의 만류로 대비의 말벗 역할 하기 위한 역할로 궁에 머무를 수 있었다고 봅니다. 아무런 정치적인 영향력이나 권력 없이 그저 왕실 어른으로 좋은 옷과 음식, 방 하나랑 보필할 궁인 몇 명 붙여주면 되니까요. 이것도 물자가 풍족하지 못한 시절에는 절로 나가야 하는 후궁들에게는 감지덕지할 일이었겠지만 오늘날의 재벌가보다 몇 배는 부자였을 조선 왕실에서는 별 것도 아닌 일이었죠.
      약간은 다른 예로 그래서 훗날 영조가 정말 예외적인 일이긴 하지만 금지옥엽 화완옹주가 남편이랑 사별하고 딸마저 요절하자 궁에 다시 들어와 살게 했죠. 이건 정말 예외 중의 예외였죠. 아무리 공주/옹주가 사별해도 사가에 머무는 것이 원칙이라 좋은 집 내려주면 정말 많은 것을 해 주는 것이었는데... 애초에 왕자였다면 재혼했겠지만 왕자였다면 후계 구도 문제 등도 불거질 수 있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옹주인 데다 그 카리스마 짱짱인 영조가 추진하는 일이라 다들 토를 못 단 거죠;;; 화완옹주는 정치에 나서려고 해서 정치적인 분란도 좀 일어나지만...

    •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2 роки тому +10

      참고로 후궁 품계라는 것도 본인이 노력해서 되는 일이 아니긴 하지만 시대 운빨이라는 것도 있어요.
      말씀하시듯 조선 초기에는 왕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보고도 사실상 승은 상궁에 머물러 있었던 후궁들이 있어요. 다른 후궁들은 옹주가 요절해서 실질적으로 왕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가 없다고 칠 수 있어서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세종의 후궁 상침 송씨는 딸 정현옹주가 오래 살았음에도 사실상 조선 역사상 그녀에게만 내려진 승은 상궁보다 조금 더 나은 상침 품계에 머물렀죠. 딸 하나 낳고 완전히 총애를 잃은 거죠. 그나마 딸은 오래 살아서 말년에는 딸 집에서 함께 지내다 사망했다고 나오네요.
      그러다 성종 시절 경국대전이 확립되면서, 그리고 국가 기틀이 확립되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왕이나 중전/대비의 총애에 따라 아이를 낳지도 못했음에도 후궁에 봉해지는 후궁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일례로 인종, 명종 모두 아이를 낳은 후궁이 없음에도 후궁으로 기록되어 있는 이들이 몇몇 있죠. 간택 후궁이라 숙의를 달고 들어온 거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기록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아요. 숙원부터 시작한 후궁들 몇몇 있음.
      명종의 후궁 경빈 이씨는 선조가 가장 총애한 후궁 인빈 김씨 입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죠. 문정왕후의 시녀였다가 명종의 눈에 들어 승은을 입었다고 나오는데 승은을 입은 시점이 1558년입니다. 그러다 10년 가량 승은 상궁에 머물다 1567년 명종 말년에 후궁 중 가장 낮은 품계인 숙원 품계 받아요. 명종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지 못해 적적한 마음에 어린 사촌을 데려다 키웠는데 그게 바로 훗날의 인빈 김씨죠. (그녀가 "빈"까지 오른 건 훗날 영조가 왕실 위상 드높이기 작업으로 역대 왕들이 후궁들 품계를 올려줘서라네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왕실 안정을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가족 구성원을 늘려 집단을 거대화하려고요. 그리고 후손이 많았던 시절, 그러니까 역대급으로 여자 좋아하고 정력가라 후궁도 많고 자녀도 많았던 성종/연산군/중종 시절에는 아이를 낳지 못했는데도 후궁에 봉해진 이들에 대한 기록은 사실상 이런 후궁이 있었다 정도라 자세한 내막은 알 길이 없지만 인종, 명종 시절로 접어들면서는 후손이 급하다 보니 아들을 낳았으면 하는 마음에 기원의 의미를 담아 아이가 없음에도 후궁에 봉해준 거 아닐까 싶습니다. 이건 정말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다만 조선 중기까지는 후궁 품계 주는 것이 매우 박했어요. 후궁 품계를 일단 내려주면 거처도 달라지고 모시는 나인 수, 의복, 음식 등 여러모로 업그레이드해야 하여 돈이 많이 들다 보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의례에서 담당하는 역할도 달라질 테고요.
      명종의 후궁 경빈 이씨만 해도 10년 가량 승은 상궁에 머물다 겨우 숙원 품계 받았죠. 그거야 그녀가 나인 출신에 아이도 못 낳아서도 있겠지만 똑같이 승은 후궁이었던 그녀의 사촌 인빈 김씨는 선조가 평생 가장 총애한 여인에 아이도 많이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빈까지 오르는 데 30년 가량 걸려요. 임진왜란 등 혼란기 때문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이걸 제외하고 봐도 20년 가량 걸린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물론 왕의 총애는 덜해도 명문가 출신 간택 후궁들은 좀 더 빠르게 승급하긴 했습니다.
      그러다 효종의 외아들 현종이 보위를 잇고 현종의 외아들 숙종이 보위를 이으면서 왕실 후손이 귀해지자 이번에는 후궁 품계가 남발되기 시작합니다. 효종의 후궁 안빈 이씨는 효종을 청나라까지 따라가 보필하고 딸도 하나 낳았음에도 효종의 박대를 받다 가장 낮은 품계 하나 옛다 먹고 떨어져라식으로 받고요;;; (후대 왕들이 청나라까지 따라가 효종을 보필한 공을 높이 사 빈으로 올려준 거;;;) 현종은 김상업을 승은 상궁에만 머물게 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숙종에게는 그 유명한 장희빈과 숙빈 최씨 외에도 아이를 낳지 못한 귀인 김씨와 소의 유씨도 후궁으로 기록되어 있고 이들은 숙종 생전에 품계를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품계를 받은 것도 있지만 명빈 박씨, 영빈 김씨 등 빈까지 오르는 후궁들도 2명 더 있고요.
      이후 경종이야 성생활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어 후궁이 없지만 영조와 정조 시절에는 왕의 총애가 깊었던 것도 있지만 각각 영빈 이씨와 의빈 성씨가 정말 이례적일 정도로 빠르게 빈까지 올랐죠. 숙의부터 시작한 명문가 출신 간택 후궁이 아니라 숙원부터 시작한 나인 출신 승은 후궁임에도요. 철종 시절에도 아이만 낳았다 하면, 아니 사실상 승은만 입었다 하면 다 후궁으로 봉해줬고요.
      이런 시대적인 차이는 있네요. 참고로 아들을 낳았음에도 후궁을 못 단 여인은 조선 역사상 전무하네요. 이건 당연한 얘기겠지만...

    • @user-ds9zb9wu8r
      @user-ds9zb9wu8r 2 роки тому +5

      떡정은 무시못하지

    • @user-fn4iy4wv3d
      @user-fn4iy4wv3d Рік тому

      미스테리도 아닙니다. 역겨운 유교사상의 조선시대 왕과 왕비잖아요. 부부관계 하기 싫어도 왕과 비 사이에 그리고 궁중법에 지정된 합궁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시대에 피임이나 21세기와 같이 올바른 성교육이 없었잖아요? 그냥 관계하기 싫어도 집어넣어서 안에다 싸는게 다니까 왕비가 난임이거나 왕이 무정자증 아닌 이상 무조건 임신은 가능한거죠.

  • @tasia_7withyou958
    @tasia_7withyou958 2 роки тому +3

    As an outsider, history of other countries are interesting
    I am so captivated by Queen Wongyeong's life story
    While it seemed like she's greedy af, she still seems so mysterious to me
    Her marital relationship is also so weird compared to other queens (while it seems weird to have more children after their fight, I think King Taejong still do it with Queen Wongyeong because he wants to acquire support from the Queen's faction?), and it is really toxic
    I hope that she reincarnated in this new era where women could also rule this world and show her potential

  • @user-uz5li5qy8k
    @user-uz5li5qy8k 2 роки тому +2

    역사는 역시 어려워요

  • @user-cp3sw5cw5m
    @user-cp3sw5cw5m 2 роки тому +11

    헌신하다 헌신짝 되어버려요

  • @user-bq8pi4pu5x
    @user-bq8pi4pu5x 2 роки тому +30

    이방원은 잘못된 사람이네요
    고난을함께 하고 죽기를각오하고 방원을도왔건만 방원이 마음이 좁쌀 보다 적어서 원경왕후 집안까지 망처노앗네요 그런사위 만날까바 그시대는 겁낫겟네요 그러게 사위는 남

  • @user-zg8gq5zx8e
    @user-zg8gq5zx8e 2 роки тому +6

    남자출세헌신하면자기가당해요부부라도항상위치에서현명한판단을~~~~~^

  • @user-qm7wg2fx3r
    @user-qm7wg2fx3r 2 роки тому

    씁쓸합니다

  • @user-mp8wv6hq4p
    @user-mp8wv6hq4p 2 роки тому +14

    이방원이가.
    드라마를 찍어야 할만큼
    인물인감유.!

    • @inhukj7875
      @inhukj7875 2 роки тому +5

      ㅇㅇ 드라마를 찍을 만큼 됨

    • @shiahlee3083
      @shiahlee3083 2 роки тому +3

      세종대왕 아버지 이고 그정도 인재였습니다

  • @jjunbee9136
    @jjunbee9136 2 роки тому +7

    태종 때문에 조선에 첩질이 공식화 되었군.....

  • @youtext
    @youtext 2 роки том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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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ser-vi2bi2zi1x
    @user-vi2bi2zi1x 2 роки тому +2

    숙공궁주는 아비의 못된점을 안닮았나보네
    어쨋든 자신을 내친 태종의 명복을 빌었다니

  • @shiahlee3083
    @shiahlee3083 2 роки тому +10

    그래도 존경 할 수 밖에 없는건.. 그 세종대왕 의 아버지 였고 세종 대왕의 왕권이 맘놓고 한글 창제와 여러가지 유용한 물건들 발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외척 세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예 다 쓸어버린건 안타깝고 가슴 아픈건 어쩔 수 없지만 왕권 강화를 위해선 어쩔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 @user-fv1ur1kr3b
      @user-fv1ur1kr3b Рік тому

      글쎄요 드라마에서 그렇게 나와서 그런 인식이 많은거 같은데
      외갓집이 정적도 아니고 태종이 왕 되게 도왓는데 세종 대왕 일을 방해하나요
      님 말은 외가가 세종 대왕을 공격하거나 그래야 성립하는거 같은데요
      세종 대왕이 정치할때 외척이 강해서 좀 피곤하거나 힘들순 잇어도 외가 세력 반란을 일으키겟어요 공격을 하겟어요
      그냥 이씨 가문만 잘되고 민씨 가문엔 전혀 이권을 주기 싫어서 싹죽인거 같은데요 이씨만 잘되고 번성하기 위해서

    • @user-fv1ur1kr3b
      @user-fv1ur1kr3b Рік тому

      양녕 대군도 그렇게 애지 중지 하고 태종 위기에 빠졋을때 도운게 민씨집안인데
      세종이 왕 되도 도왓겟죠
      외갓집이 반란 일으키나요
      왕 되고 나서 그 이익을 민씨랑 나누고
      싶지 않아서 죽인거로 보임
      거기다 플러스 여자들기생들 궁녀들 실컷 첩삼고 싶은데 민씨집안이 강력하고 원경왕후도 대드니 죽여버린 이유도 잇을듯
      님 말대로 세종 대왕 위한거면 양녕대군 죽이고 자기도 첩은 그렇게 들이지 말앗어야죠
      왕자들 많으면 다 그게 정적인데요
      게다가 양녕은 인간 말종이엿는데

  • @user-jx4vy7tx9w
    @user-jx4vy7tx9w 2 роки тому +8

    믿는도끼에 발등찍혀구먼 ~
    헌신하면 헌신짝된다는 교훈이넹

  • @yunhui6593
    @yunhui6593 2 роки тому +1

    김점 성품이 아주 사악했네요 얼마나 기고만장 했을까! 저런 인간은 강력처벌을 했어야지... 애비가 딸의 인생을 ...

  • @mocakeikchoi4349
    @mocakeikchoi4349 2 роки тому +20

    글쎄요. 꼭 태종을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원경왕후는 우리 친정이 이렇게 도와줘서 하면서 권력을 휘두르게 되면 자칫하면 외척이 득세할 수 있을 상황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외척이 득세해서 좋았던 상황이 없지 않습니까. 물론 원경왕후 입장에서는 배신감을 느끼겠지만, 한 개인의 집안이 국가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지.

    • @user-wu3mm6en1x
      @user-wu3mm6en1x 2 роки тому +2

      양녕대군을 등에업은 처남들도 눈밖에남

    • @user-rd3ok2ys3k
      @user-rd3ok2ys3k 2 роки тому

      태종이야 두말할 것 없이 나쁜놈 이지요. 그런데 나쁜놈이 안되면 왕이라는 비인간적인 자리를 지킬 수 없었겠지요. 자기 핏줄인 이복형제들도 죽인 마당에 처갓집 식구 죽이는 것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겠지요.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아버지와 그 둘째 부인, 이복동생들도 배신하는 마당에 처남이나 공신들이야 말해 머하겠읍니까? 원경왕후가 원래 권력이란 것의 속성이 그런 것이란 것을 깊이 파악하고 잘 찌그러져 있었다면 친정식구들 목숨은 건질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남편을 왕으로 만든 그 순간부터 친정집의 운명은 정해진 걸지도.... 만약 남편을 왕으로 못만들었다면 정적들에 의해 자식들도 다 죽임을 당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래서 원경왕후는 그 모든 비극적 상황을 예상했어도 남편을 왕으로 만들 수 밖에 없었을 수도 있겠지요. 출세하면 마누라부터 우선 바꾸고 차바꾸고 집바꾸는 것이 남자라는 걸 알아도 남편이 죽을 위기에 처하면 모른척 할 수 없는 것이 세상 거의 모든 여자인 것 처럼요. 원경왕후처럼 현명하고 영리한 여자가 그걸 예상 못하진 않았겠지요.

    • @hyunjukim5553
      @hyunjukim5553 2 роки тому +11

      헐~ 정치도 사람이 하는겁니다
      외척이 안설치면 권력주위에는 충성스런 신하들만 남나요? 조직관리도 리더의 덕목이지
      부인가족을 몰살시킨게 왜 안나쁩니까? 내눈엔 권력은 아들과도 부인과도 나눌수없기에 선제공격한겁니다 아들쪽으로 쏠릴까봐
      원경왕후가 잘못한거죠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왕이되게 도왔으니 배신당한겁니다

    • @jamwondong_jiujiteiro
      @jamwondong_jiujiteiro 2 роки тому +2

      @@hyunjukim5553 아닌거 같은데요

  • @user-nh1ks4cz4q
    @user-nh1ks4cz4q 2 роки тому +33

    이방원은 성욕을 만족하기 위해서 왕이 되었으니
    이방원의 목표는 수많은 여자들과 성관계를 즐기면서 욕을 먹지 않는것이었죠
    유교사회에서 일반남자가 그랬다가는 욕을 처먹을게
    뻔하니 후궁제도까지 법제화해서 합법적으로 여자들을 취했죠
    그러니 원경왕후와 사이가 좋을리가 없죠

    • @pele2434
      @pele2434 2 роки тому +14

      그런듯. 후궁들이려고 왕된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남의 첩 가희아라는 여자까지 지 첩으로 삼는등 양녕대군이 어리를 취한걸 욕할 자격이 없는 인간말종이었죠

    • @user-nh1ks4cz4q
      @user-nh1ks4cz4q 2 роки тому +9

      @@pele2434
      남의첩을 빼앗은 태종
      남의첩을 빼앗은 태종의 맏아들 양녕대군
      남의첩을 빼앗은 태종의 8남 혜령군
      추악한 이방원

  • @user-vo7jk2bf9j
    @user-vo7jk2bf9j 2 роки тому +1

    저럴려고 그렇게 왕이되려하나보다

  • @user-nh7yr9er4b
    @user-nh7yr9er4b 2 роки тому +15

    민씨가 너무 정치적 야욕으로..친정가문이 멸족되는....결과적으로 판단력이 많이 부족한 여자

  • @14DimensionEnterprise
    @14DimensionEnterprise 2 роки тому +16

    이방원이 절대적으로 잘한 것이다. 충녕, 즉 세종을 위해 악역을 자처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세종이 어떤 인물인지.

  •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2 роки тому +41

    여기에 나온 후궁들이 다가 아닙니다. 기록에 남은 부인만 18명에 이들과의 사이에서 40명 넘는 아이를 낳았어요. 정말 여자도 좋아했고 정력가였습니다.
    다만 애증이 교차하는 사이이기는 하지만 태종이 가장 사랑한 여인은 원경왕후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중전&왕 커플 중 가장 많은 자녀를 본 커플이 이들 부부이고 사이가 최악으로 치닫고도, 원경왕후가 마흔 후반에 접어들고도 출산을 했어요-_-;;; 태종은 "정말" 원경왕후를 여인으로 사랑했습니다.

    • @user-bm4xh5rz1p
      @user-bm4xh5rz1p 2 роки тому +10

      애증의 대상 원경왕후 8명의 왕자와(정안군 시절 요절한 왕자 3명과 1412년 요절한 왕자 1명 포함) 4명의 공주 출산

    • @user-bm4xh5rz1p
      @user-bm4xh5rz1p 2 роки тому +7

      18명의 왕자와(정안군 시절 요절한 적자 3명과 1412년 요절한 적자 1명 그리고 1400년과 1403년애 각각 태어난 요절한 서자 2명(엄마는 미상) 포함) 19명의 딸(요절한 딸 포함(엄마는 미상)을 낳았죠 여자를 좋아했던 정력가였죠

    • @hyunjukim5553
      @hyunjukim5553 2 роки тому +12

      여인으로 사랑한건지 성욕이 큰건지 모르죠 당시는 피임법이 없었으니
      원경왕후는 결국 왕비되려는 욕심에 자기집안 멸문시키고 성질만 더럽지 멍청한 여자였다고 봅니다

    •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2 роки тому +29

      @@hyunjukim5553 태종이 성욕이 강하긴 했지만 아무리 고려가 공식적으로는 1부 1처제였어도 고위직 남자들은 당연히 다 딴 살림 차리고 다니고 첩실이 있었죠. 이방원 정도면 딴 살림 차리려면 얼마든지 차릴 수 있었습니다. 뭐 아이를 못 낳았을 뿐 다른 여자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참 뜨거운 부부였던 건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원경왕후가 멍청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남편과 자신의 뜻이 달랐습니다. 자신은 남편을 왕으로 만들어 준 자신과 집안을 남편이 위해줄 줄 알았는데 그 남편은 오히려 그 반대였던 거죠.

    • @user-je5km7td7q
      @user-je5km7td7q 2 роки тому +4

      @@user-uo6ih8ur1t 그렇죠!

  • @ranyu3587
    @ranyu3587 2 роки тому +2

    아니 후궁들만나오냐고 난원경왕후조강지처를인정하고 후궁첩들을증오한다

  • @user-ge6wi6vz8x
    @user-ge6wi6vz8x 2 роки тому

    명나라가 바로 태조고황제 이성계가 건국한 본 조선인데 영락제 태종 이방원이 누구에게 사신을 북경으로 보냈다는 것인가요?

  • @user-vt7pw8eq1x
    @user-vt7pw8eq1x 2 роки тому +1

    앞으로 다가올
    역사가 궁금
    권력을 나누자
    헐~어떤여자가 떠오르네

  • @user-nt1em3ot2d
    @user-nt1em3ot2d 2 роки тому +3

    나쁜 남편이었군

  • @user-mo7rx5cb6s
    @user-mo7rx5cb6s 2 роки тому

    파렴치한 인물의 가족사를 알 필요가 있나요?

  • @user-zh4xx9nf7k
    @user-zh4xx9nf7k Рік тому

    태종 [조선 제3대왕] ~ 원경왕후
    세자 [훗날 양녕대군] ~ 세자빈 [양녕]
    효령대군 ~ 정씨 ~ 충녕대군 ~ 충녕 딸

  • @user-ib8xf7tb9q
    @user-ib8xf7tb9q 5 місяців тому

    예전부터 그랬잖아 헌신하지말라고

  • @user-ny9yx9sn6r
    @user-ny9yx9sn6r 2 роки тому +5

    그 시대에 저런 미인이 있었을까요?

    • @inyeobseo9369
      @inyeobseo9369 2 роки тому

      기록에 의하면 중종의 경빈 박씨, 희빈 장씨, 영조의 영빈 이씨는 미녀였다고 합니다. 여성에게 미모보다 중요한 것은 왕의 마음을 헤아리고 편하게 하는 인성과 바른 말씨입니다. 미녀인데 인성이나 언어구사력이 결함이라면 곧 총애를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여자가 폐비 윤씨입니다.

    • @user-fn4iy4wv3d
      @user-fn4iy4wv3d Рік тому +1

      원경왕후가 아름다웠다 라는 글은 본적이 없습니다

  • @user-wu3mm6en1x
    @user-wu3mm6en1x 2 роки тому +4

    여장부이나 태양2개일순 없으나 본인이왕이 되려고 한 야심으로 몰락함

  • @user-kd1nk5lb5i
    @user-kd1nk5lb5i 2 роки тому +16

    태종이 바람기 여자를 좋아한게 아니고 마누라가 왕권 절반을 지꺼라고 하는데 마누라가 드세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된다 스스로 무덤을 판거지 그래도 이방원이 왕권은 확실하게 바로 세웠지 이 방원이를 괴물로 만든건 이 성계 정도전 형제들 주위에서 죽을려고 나댔지

    • @user-kj6ts4ee7n
      @user-kj6ts4ee7n 2 роки тому +3

      왕권강화, 외척견제

    • @yerialishah4724
      @yerialishah4724 2 роки тому +2

      늘좋썬왕죠찔쉴드텨주는드라마가문제임

  • @user-ow5ui4ur8j
    @user-ow5ui4ur8j 2 роки тому +9

    개자식 지 오입 하려고 걸리적 거리는 처가식구들 형제들 등 다 죽였지

  • @moosoyou
    @moosoyou 2 роки тому +5

    세종 친모는 신세경이다.

  • @lee-pl4wc
    @lee-pl4wc 2 роки тому

    이방원 이것도 역사 왜곡된 아니고 대충 막장 드라마를 방송하냐 안하니 못허다

  • @user-wl1gd3ff8j
    @user-wl1gd3ff8j 2 роки тому +1

    댓글들보면중국인이 판치고있네요.조선의기반을확고히 하기위해 희생시킨겁니다.

  • @user-tw3lc7xd2b
    @user-tw3lc7xd2b 2 роки тому +28

    윤석열이 조선의 이방원처럼 자기 처장모 비리에 대해 수사했으면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을 텐데.. 반대로 감 ㅋㅋ

    • @user-ox7qj5mb2v
      @user-ox7qj5mb2v 2 роки тому

      김점이 지금 찢재명과 비슷허네.성남시장시절 입구에 깍뚜기 두명 세워놓고 전라도 출신우대 한거 거기 근무자들 다 아는사실.일잘하기는 개똥 .

    • @user-yo3vx1jr5x
      @user-yo3vx1jr5x 2 роки тому

      죄명이는 죄인으로 살다가라

    • @user-qi9qi7xu9f
      @user-qi9qi7xu9f 2 роки тому +2

      뭐래~

    • @user-ox7qj5mb2v
      @user-ox7qj5mb2v 2 роки тому

      @@forus9695 헐

    • @user-cf2bg3lw9q
      @user-cf2bg3lw9q 2 роки тому +1

      똥오줌 구분하냐?

  • @user-lx2xu3cl9j
    @user-lx2xu3cl9j 2 роки тому +1

    예슈아의 양들은 이 지구촌 어디에 있다고 할지라도 모두 똑 같은 페이지 위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7절) 내(예슈아) 양은 내(예슈아)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 예슈아커밍 / Yeshua Coming -
    요한복음 10장 1절~30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사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예슈아)라
    문지기(예슈아의 파수꾼들)는 그(예슈아)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예슈아)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사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예슈아)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천국으로 들어가고)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천국에 있는 영원한 생명의 물)을 얻으리라
    도둑(사탄)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예슈아)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예슈아)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사탄)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예슈아)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야훼)께서 나(예슈아)를 아시고 내(예슈아)가 아버지(야훼)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잃어 버린 영혼들=생명책에 그 이름들이 기록 되어져 있으나 아직 예슈아를 모르는 영혼들)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예슈아)에게 있으리라
    내가 내(예슈아) 목숨을 버리는 것(육신이 모든 물과 피를 흘리고 죽고 3일 만에 부활=야훼 하나님과 사람들의 화목 제물로 어린양이 몸소 되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야훼)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예슈아 하나님 야훼 하나님에 대한 순종)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야훼)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예슈아)가 내 아버지의 이름(야훼=예슈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예슈아)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생명의 면류관=천국에 있는 영원한 생명의 물)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야훼)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야훼)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예슈아)와 아버지(야훼)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야훼=성령님=예슈아)
    *******************************************************************
    예슈아의 양들은 이 지구촌 어디에 있다고 할지라도 모두 똑 같은 페이지 위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7절) 내(예슈아) 양은 내(예슈아)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은 예슈아의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6절)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예슈아의 양들은 이 지구촌 어디에 있다고 해도, 어떤 언어를 쓰고 어떤 얼굴색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지금 모두 똑같은 페이지 위에 있습니다.
    오직 예슈아! 샬롬.

  • @user-we8xf3yx4x
    @user-we8xf3yx4x 2 роки тому

    5년제...줄리는 ??? 화냥짓거리....ㅜㅜㅜ
    맞나 ??

  • @HY-yd7ph
    @HY-yd7ph 2 роки тому +1

    #예슈아(예수그리스도 히브리어)께서 아주 곧 오십니다. 예슈아의 신부로써 하얀예복을 준비하고 예슈아를 맞을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영혼과 육체와 정신과 마음을 거룩하고 깨끗하고 순수하고 순결하고 강하고 담대하고 성숙하고 공기처럼 가볍게 맑은 물처럼 깨끗하게, 모든 우상들을 다 내려 놓고 가볍게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독사뱀주사를 맞지 마시고, 인체삽입용 마이크로칩 RFID 칩을 몸에 받지 마시고, 끝까지 견디셔야 합니다. 예슈아께서 아주 곧 오십니다. 그날과 그시는 우리가 알수 없지만, 아주 그 때가 가깝습니다. 성경책을 창세기부터 요한게시록까지 일독을 하세요. 그리고 진정한 회개를 하세요. 전세계의 거룩한 예슈아의 신부들은 이제 준비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소식을 듣고서 나도 준비 빨리 해야겠다고 말을 했지만, 저는 그 사람에게 메세지를 전했지만, 그 사람은 세상적인 사람이고, 독사뱀주사를 부서터까지 4개를 맞은 사람이고, 너무 늦었습니다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절대로 독사뱀주사를 맞지 마세요. 절대로 인체삽입용 마이크로칩을 받지 마세요. 끝까지 예슈아를 믿는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예슈아께서 아주 곧 오십니다. 예슈아의 신부들은 휴거비행기 보딩패스 중입니다. 보딩패스 하고 안전벨트 매고 대기중이셔야 합니다. 휴거비행기는 아주 곧 떠납니다. 전세계에 예슈아를 기다리는 신부들은 알고 있습니다. 때가 아주 가깝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직 예슈아!!!
    무조건 휴거다. 그렇지 않으면,순교다. 끝
    ##C바이러스는 생물학 무기이며 독사뱀 주사+부스터샷은 bio테크와 nano테크로 만들어졌습니다
    인간의 DNA 변형시키므로 더이상 인간이 아니며 인간을 인터페이스화 시킵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신부들을 데리고 가시고 난 후 전세계계엄령 발동으로 RFID칩 시행될 것이며 Health Care System 통해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잡아가고 죽일 것이지만 마지막 천국행은 칩을 받지 않고 순교해야만 가능합니다. 적그리스도 때엔 6G인공위성으로 토탈컨트롤함으로 어디든 찾아낼 것이기 때문에 도망해도 소용없습니다
    .

  • @user-ManBal
    @user-ManBal 2 роки тому +1

    여자가 아무리잘낫어도
    기가세면 언젠간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이건하늘에
    질리라고생각되는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