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마지막에 진짜 확실하게 선을 잘그셨네요 ㅎㅎ 맞습니다.. 본적도 없고 역사적 기록도 별로 없는 귀선인데 굳이 이게맞다 저게맞다 라고 학자들 주장에 내가 뛰어들 필요도 없습니다..그냥 거북선은 판옥선과 같이 조선의 바다를 지킨 전함이라고 생각하면 될뜻 합니다 ㅎ 역사적 이론은 학자들에게~~~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거북선이 일본의 배가 되는건 아니잖아요 ㅎㅎ
@@평균-f7w 보급선 30척은 너무 축소한거아냐? 일단 해안 조운로를 통한 보급이 안된게 일본군의 장기적인 전략에 치명타를 가한건 맞다고 봄. 서해안 쭉타고 해안으로 같이 진출했으면 압록강 타고 넘어 만주 요동까지 충분히 진출했을거임. 그럼 본토에 있던 더 강력한 전력의 도쿠가와 진영 군대도 덩달아 참전했겠지. 거기다 여진과의 외교 동맹이 성사됐다면 최소 만리장성 근처까지 진출. 전쟁사 매니아면 보급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텐데..
@@militarygearjunkie2522 보급이 막혀 퇴각을 한게 아님 보급도 괴롭혀서 귀찮은거지 막힌것도 아니였고 최근의 한국 역사 학회에서 "이순신이 일본군의 보급선을 갈가리 찢었다"는 주장을하고있다 ( 예 · 한일 역사 공동 연구 보고서 (제 1 기) ·鄭求福발표 논문 "임진왜란의 역사적 의미」 「이순신 의한 해전의 승리로 해로를 통한 군량의 수송도 차단되었다.") 일본군의 보급로는 히젠 나고야에서 해로 이키를 거쳐 대마도 이즈하라에 이르러 쓰시마 북단에 위치한 오우 등에서 부산에 착안하여 짐을 내린 후는 육상을 한성으로 향하는라는 것이었다 . 이 보급로를 조선 수군이 두절하려면 부산 항구를 지속적으로 해상 봉쇄하거나 부산 자체를 점령 탈환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순신이 부산의 해상 봉쇄를 한 것은 아니라 부산 전 서양 나타나는 것 자체 거의 없었다. 한산도 해전까지 이순신의 활동 영역은 가덕도보다 서쪽 해역이며, 부산 근처에 나타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순신의 이름은 중국의 "明史- 열전 제 208 조선 전」, 일본의 「征韓録" 주석 7] 조선의 「징비록」주석 9]「난중 잡록」이나 리 미스터 조선 시대의 작품으로되는 "壬辰録( 한국어판 ) " [주석 10] 등 각종 문헌에 등장하고있다. 조선 통신사 로 동행 신유 한은 오사카의 서점에서 징비록 등의 조선 서적을 찾아 냈다는 것을 "海游록 " [24] 에 기록하고 있지만,에도 시대에는 막부와 조선은 친절한 모두 대중에게 각별히 주목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메이지 유신에서 정한론 이 기세를 가지게 일본의 대륙 진출에서 조선이 일제시기 가되는 과정에서 다시 이전 시대가 주목 받게되고, 이순신은 일본인과 조선인 문학 및 연구자에 의해 재평가 된 주석 11] . 또한 중국 상하이에서 활동하고 있던 대한민국 임시 정부 는 일본을 물리 친 영웅으로 이순신을 상징화 주석 12] , 그의 자서전 「독립 신문」에 게재 등 주석 13] 한창 떠들て항일 의 선구자로 간주되었다. 이순신을 만들어낸 영웅이라고 말하고 있음 그리고 임진왜란 왜병의 퇴각은 풍토병때문인게 가장 크다고 함
큰 가정을 해보면, 1. 천장의 나무 뼈대위에 얇은 철판을 깔았을 수 있음. 그럼 무게가 생각보다 많이 안나가고 사탄각으로 인한 방탄 효과를 볼 수 있음. 2. 일본이 전쟁에 졌으니 철갑선이기 때문에 졌다는 변명을 하기 위해 3. 일본이 조총을 썼기 때문에 총알이 뜅기는 소리로 철판인지 아닌지 소리로 구분할 수 있었음. 그래서 결론은 알 수 없다 겠네요.
임란전엔 조선은 위쪽 애들이랑 오랜 실전으로 단련된 경험이 있던 터라 육전은 자신있었고, 해전은 섬나라 애들이 전문가인 영역인지라 걱정꺼리였음. 근데 뚜껑을 열어보니 육전에서 밀리고 해전은 껌이네? 사실은 왜구 상대 육전은 명나라 애들도 이전부터 고생 많아왔던 게 안그래도 내전으로 단련된 일본애들이 칼을 휘두르면 그 리치가 기존 자기네 무기보다 길었기에 명 농민군이 제대로 접근을 못했다고 함. 결국 조선 명이 왜와 육전에서 고생한 데는 왜가 동아시아 대빵 육전용 냉병기들을 들고 쳐들어왔던 부분이 있는 듯. 해전 역시 무기가 다른 게 결과에 영향을 줬는 거 같은데 이번에는 조선수군이 동아시아 대빵이었음. 일본애들 배는 육박전용 병력을 빨리 붙여주는 수송선 정도 용도였기에 좁고 높았고 가볍고 빠른 데 집중하느라 안정성 내구성은 떨어지는 배였고. 조선배는 오랜 왜구 상대 경험으로 단단하고 안정적인 대형함 위주로 발전시키고 원거리 화포 공격 위주 교리 장착... 일본애들이 접근하기 전에 조선 화포에서 발사되는 쇳덩이나 나무기둥에 뚫려 배가 부서져 나가는 거니까 둘이 제대로 준비하고 붙으면 일본애들이 교전비가 안나오는 그림. 이순신이 병력을 제대로 준비시켰고 플러스 이순신은 가능한 한 지지 않는 판을 구상해 놓고 싸움을 거는 방식으로 관리하니까 만화급으로 교전비 관리되고 상대는 학살급으로 쳐부수면서 이쪽은 부상자도 잘 안 만드는 수준 간 거라서 당대에 동북아 군신급 명성 획득, 명 황제로부터 선조와 동등한 직위 하사받는 정도로 수퍼스타 등극. 일본애들 해전은 배가 높을 수록 육박전에 유리하니까 높이만 높았고, 거북선은 그 사이를 해집고 들어가서 충파로 재질이 약한 일본배 부수거나 화포로 부숴버리면서 전열에 혼란 야기하고 빠지는 거 같은데 거북선이 저상형이었으면 아무리 천장에 쇠못 촘촘히 박아놔도 배 위로 뛰어드는 게 교전방식인 애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는 건 좀 부담되었을지도? 그래서 판옥선 만큼은 높이가 되는 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 봄? 걍 판옥선에 뚜껑 씌우고 두세 척 돌진시킬 때 용머리에 연막을 피워 그간 생긴 일본애들의 이순신함대에 대한 공포를 이용하는 놈도 있고, 포를 정면으로 쏘면서 들어가는 놈도 있고...라는 상상. 상대는 제대로 된 포가 없고 있어도 불안정하고 약한 배 구조상 명중률이 형편없고 판옥선급 선체를 부술 정도가 못되니 안심하고 근접해서 포로 부수다가 가깝게 붙어오는 급한 상황에선 들이받아버리기... 조선 배 재질이 단단한 나무를 쓰고 연결도 나무못 방식이라 단단해서 같은 충격으로 부딪히면 무른 나무에 쇠못 박은 일본 배만 박살... 몇 척씩 박살내고 적 전열 뒤죽박죽 만들어 놓고 각 잡아놓고 있는 본대가 원거리 사격으로 두들기게 뒤로 후퇴... 연습 많이 해 놔서 명중률들 괜찮았나봄 정박해서 안 나오는 상대의 리치 밖에서 대장군전인가?로 원거리 사격해서 함대 박살내버린 전투도 있었던 거 같음. 일본 애들이 배에 꽂힌 거 하나 기념으로 가져가서 일본에 전시된 그 미사일같이 생긴 대들보. 저 잘 보이지도 않는 먼 곳에서 대들보가 날아와서 배를 부수고 관통해버리는 거면 배 어디 타고 있든 공포스러웠겠다 싶음
저당시 유럽의 해양패권을 양분하던 스페인과 잉글랜드도 일본과 조선의 수군수준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였고 물량은 오스만정도는 되야지 비빌만했으니 단일국가들의 교전으로 봤을 때 어마어마한 수준의 해군력의 격돌이긴 하죠. 레판토해전같이 스페인 베네치아 오스만 튀르크제국 같이 수많은 국가들이 참전해야 겨우 약간 클 정도의 규모니까요
거북선 미스테리의 가장 큰 의문은 철갑선이냐 실존했느냐가 아니라 왜 명량 이후에 재건조가 이루어지지않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명량이후 충무공은 선박 보충에 힘을 기울였고 거북선 설계자로 알려진 나대용이 생존해있음에도 노량해전까지 거북선이 재건됐다는 사실이 없어요. 그토록 위력적인 병기였고 충무공 전술의 핵심이었다면 최우선으로 재건됐어야함에도 말입니다. 나름의 추리를 말하자면 거북선은 전설만큼 강력하거나 재건할만큼 실용적이지도 않은 않은 병기였다라는 거죠. 명량에서 보였듯 기존 판옥선과 이를 이용한 전술로도 충분히 왜군과 맞설 수 있었기에 판옥선의 수를 늘리는 게 급선무였다고 생각하면 거북선은 소위 가성비가 떨어지는 병기였다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되려 거북선은 충무공의 군사적 재능을 평가절하하는 역활로 악용된 사례일수도 있구요
거북선의 역할은 적 수군이 진법을 펼칠수 없도록 진열을 흩어놓는 역할의 돌격선이죠 명량해전 이전까지는 조선수군과 맞서는 형태의 해전이 많았다면 명량해전 이후의 해전들은 이미 전쟁 막바지의 왜군이 전의를 상실하고 남해안에 왜성을 쌓고 주둔한채 고국으로 돌아갈날만 기다리는 형태의 소극적인 상황이므로 굳이 거북선을 건조할 필요가 없었을겁니다
@@이기승-y8l 칠천량 이후 왜군의 질은 몰라도 양은 조선수군과 어마어마한 차이였습니다. 언제든 대회전이 벌어질 걸 예상하고 전략을 짜야한다면 그럴수록 강력한 병기는 반드시 있어야죠. 그렇기에 거북선이 그렇게 대단한 병기라면 최소 명량이후에는 건조가 되었어야합니다. 그래서 거북선이 명성만큼의 대단한 병기는 아니었거나 나대용외에 핵심 제작진의 부재등의 이유로 건조되지않았을 거란 의견을 제시한 거죠 충무공이 대대적으로 알려진 건 박정희때였고 당시 경제부흥의 상징인 포항제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최고의 명장과 최강이자 세계최초의 철갑선의 투톱이란 이미지를 만들어낸 걸지도 모르죠.(판옥선에 나무 뚜껑을 대고 적군의 착함을 막기위해 못과 칼. 창 등을 꽂아놓은 게 정설이니 철갑선은 아니고)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명량해전에서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까지 대략 1년입니다. 칠천량해전이후 수군의 손실이 큰 이순신으로서는 빠르게 수군을 재건하여야 했기에 손도 많이가고 제작비나 제작기간이 긴 거북선을 만들 여력이 안됐을수도 있죠 전쟁이후 후대에도 계속 거북선 건조를 한것을 보면 실용성이 떨어지는 병기는 아니었을겁니다
@@이기승-y8l 저는 가성비가 떨어지는 병기였을 수 있다 했지 효율성을 말한적은 없습니다. 즉 판옥선이 13척에 불과했던 당시를 보면 어떡해서든 전함 수를 늘려했을 터이고 제작진 문제가 아니라면 거북선이 판옥선보다 비용대비 성능이 메리트가 떨어졌기에 제작하지 않은것일 까 하는 게 제 추론의 요지란 겁니다. 임란 후에도 거북선이 주력또는 필수 함선으로 자리잡지못했다는 것을 보면 마찬가지로 가성비나 제작진의 부재가 의심되고요. 혹 선조의 작태를 보면 충무공의 상징중 하나인 거북선을 조선수군에 편입시키는 걸 거부했을 수도 있겠구요.
가성비는 당연히 떨어졌겠죠 철갑무게나 용머리무게도 상당했을것이고 그로인해 속도도 느렸을것이고 전투에서는 서로간의 신호가 중요할텐데 덮개가 덮혀 있으니 그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니 돌격선 역할정도겠죠 칠천량이전 조선수군의 거북선 수가 3척정도가 존재했을거라는 추정이 있습니다
오히려 두껍고 강한 원목 심재 목재보다 철판이 더 가벼울 수 있습니다. 시기별로 개선을 하거나 생략하거나 버젼이 달랐겠죠. 철판도 일부만 덫 댔을 수 있고요. 그러다 물자 부족해지면서 생략됐을 수 있고요, 전황과 물자 부족해서 급조할때는 얼기설기 만들었을지도요. 모든 가능성은 열어두고요.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초기에 철판때문에 배가 침몰하는 걸로 나오는데 과연 정말 어떻게 생겼고 전투는 어떻게 했을지 정말 궁금하고 미스테리하네요.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포탄이나 화약도 관리해야하고 그 소음과 진동 가스 같은 걸 나무가 버텨야 되는데 전에 TV에 잠깐 나온데로 침상과 화장실까지 구비한 것으로 나오는데.. 상상도 하기 힘들군요.
거북선 자체가 매우 극소수였을거에요... 당시 함선들의 통신수단은 북등의 소리신호랑 신호기의 시각신호뿐이라 그걸못하는 거북선은 함선의 컨트롤이 매우 힘들어서 대량으로 움직이지를 못합니다. 적함대에 던져놓고 판옥선으로 포격전을 하면서 해집어놓는 거북선의 역할 특성상 두종류로 나눠서 양산하고 굴리는건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일겁니다. 수병들의 훈련이 따로진행되야되는데 굉장히 비효율적인 일이죠
판옥선이 먼저 였지요 판옥선 위에 지붕을 언진거니까요 판옥선도 노 젖는 곳 위에서 싸우잖아요 3층이지요 명량에서 마지막에 나오는게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또 출정해서 이동할 때 판옥선과 거북선에 위장으로 지붕 위에 무엇이 거북선이고 무엇이 판옥선인지 알 수 없게 짚으로 역은 걸로 덮었다는 걸 본 기억이 있네요
거북선은 당시의 전선인 판옥선의 개량형일 겁니다. 완전히 다른 형태나 설계의 군함이 아닐 겁니다. 특히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 박식한 만큼... 근접전이 아닌 포격전을 함선에서 주로 사용하는 개념으로 전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거북선은 돌격선으로 적진에 직접 침투하여 충각 또는 근접전으로 교전하여 적 함대의 진영을 흐트러뜨리는 전술을 사용했다면... 적함에 근접하여 상륙 교전하는 일본군을 막기 위해서는 거북선처럼 반드시 지붕이 필요하고 왜군이 함선에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못과 같은 것을 당연히 박아서 왜군이 기어오르지 못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노와 돗을 동시에 사용하는 판옥선의 개념상... 필요시 돗대를 눕힐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당연하고... 거북선도 돗대를 눞히도록 중앙은 뚫여있는 통제영 거북선이 가장 효울적일 겁니다. 함포를 사용하면 당연히 흑색화약의 엄청난 연기가 나오죠. 거북등처럼 둥글게 다 막혔다면 포를 쏜다음에 거북선 내부는 화약연기로 질식할 겁니다. 그러나 통제영 거북선처럼 돗대를 눕히는 공간이 개방되어 있다면 흑색화약이 포연은 금방 사라질 겁니다.
철갑은 조선의 두정갑을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두정갑에 들어가는 작고 얇은 놋판을 가공할 정도의 야금술을 감안하면 어려운건 아니라 생각되네요.. 덧붙여 판옥선은 물에 잠기는 하부가 평평한 판같이 생겨 판옥선입니다. 그래서 무게중심이 서양 또는 일본의 배보다 상당히 낮아 상부에 철갑을 놓는다해도 그 영향이 적을 것을 생각되네요. 그리고 용머리에서 포를 쏘는것과 연기를 뿜는건 생각을 조금만 틀어보면 가능한 이야기로 보입니다. 다연장 화차를 운용할 정도로 화약술이 뛰어났던 사실을 감안했을 때 현대의 가스탄 혹은 연막탄의 개념으로 다가가는게 맞을것 같아요. 동일한 포신에서 포탄 발사와 연막 분출을 같이 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연기를 위한 별도의 굴뚝은 필요가 없죠.. 그리고, 층에대한 이야기가 있는데요. 노를 젓는 행위는 주로 앉은 상태에서 행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복층 구조의 2층을 생각하면 한 층에 두 가지 기능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나온다고 생각됩니다. 판옥선 자체도 분명 위로 노출된 갑판이 존재합니다만, 어느 그림에도 노를 젓는 사공은 보이지 않습니다. 선실이 존재하는 1층 그리고 측부에 노젓는 사공이 들어가는 1.5층 화포 및 전투원이 탑승하는 2층의 구조로 생각하면 딱 맞아 떨어질듯 합니다. 화포의 운용을 꼭 좌우 교대로 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만약 좌우 화포가 각각 5개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먼저 용머리에서 연막을 터뜨려 시야를 차단한 후 좌우 1.3.5를 먼저 발사하고, 2.4를 발사하는 동안 1.3.5를 다시 장전하는 방식으로 운용하는게 적선이 밀집된 진형을 깨는 돌격선의 특성을 생각하면 맞지 않았을까 싶네요. 한번에 빵 쏘는게 아니라.. 그리고 영상 중 화포를 '치켜 쏘았다'는 표현을 봤을 때 현대의 곡사포/박격포 개념의 단거리로 적선 갑판을 직접 노리는 화포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겠네요..
영상초반부 행주대첩 관련 설명은 좀 잘못 알려진 내용입니다. 행주성은 지금 가보셔도 알지만 나지막한 그냥 작은 흙성이라 당시 조선군, 승병 약 3,000 정도 들어가 싸웠고, 진주성이나 남원성처럼 주민들이 함께 들어가있을만한 공간도 채 못된걸로 나옵니다. 아녀자들은 행주치마에 돌나르고 어르신들이 돌던지고.. 그건 잘못 전해진거라고 역사학자들이 말하더라구요.. 그냥 그 성이름이 행주성이고 행주치마는 그 이전부터 문헌에도 나오는 이름입니다. 여담이지만 행주대첩은 권율의 오판으로 자칫 대패할뻔했지만 권율 밑에 있던 조방장 조경의 판단으로 성앞에 목책을 2중으로 설치해놓은것과 막바지에 조선수군의 지원을 받아 승리한 전투였습니다. 행주성 전투 총지휘관이 권율이었기에 권율의 행주대첩으로 알려지긴하지만.. 물론 그때까진 권율은 지휘관의 능력은 있으셨던 분인건 맞습니다.
음 한번도 고민해보지 않았지만 김원님 방송을 보니 거북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김원님 말씀처럼 거북선도 시대에 맞게 변형이 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저는 이런 생각이 드네요. 거북선이 꼭 판옥선으로만 만들어지지 않고 다양한 전투선을 개조해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라구요. 예를 들면 고속정이라던가 구축함 등과 같이 여러 함급을 상황에 맞게 개조하였고, 그렇게 개조된 함선들을 모두 거북선이라 칭하지 않았을까?라구요.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판옥선은 3층구조라도 3층에 지붕이 없기때문에 복원력에 문제가 없지만 3층구조에 지붕을 엎고 철판까지 덧되게 되면 분명 복원력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거북선이 제대로 기동하려면 2층구조가 되어야 복원력에 문제가 없어집니다 노와 포가 교차되는건 분명 불편한 문제 였겠지만 선수부분과 선미쪽에 포를 배치하고 가운데 노를 배치하여 운영하는것이 최상이였을 겁니다 다만 판옥선에 비해 포의 숫자는 많이 줄게되지만 돌격선의 특성상 근접에서 포를 쏘기 때문에 적은 수의 포라도 적에게는 위협적이였을 겁니다 판옥선은 원거리에서 포를 쏘기 때문에 많은 수의 포를 운영해야 적선에 명중률이 높아지겠지요
이것말고도 전투를 치루면서 유인책을 벌일때 앞 뒤간의 배의 간격이나, 배를 옆으로 다시 돌려(넘어질수도 있었음) 포를 쏘는 기술, 일기를 쓰시는 시기, 이순신님의 꿈의 내용 같은걸 보면 얼마나 신기한것도 많고 또 미리 전쟁에 대비하신 자세와 이름 없는 노꾼들의 고생과 희생이 담겨있는지 알 수 있죠 신기방기한 장군이셨습니다
이순신 장군님의 성향 상 판옥선 베이스로 제작했다는 설은 확실히 유력해보입니다. 애초에 싸워서 이기는게 아니라 미리 이기는 싸움을 준비하시는 분이니까요. 상대보다 우월한 파괴력을 가진 판옥선을 버리면서 다시 만들 이유도 딱히 없어 보이고요. 위에 철판이 제일 난재같네요. 근데 얇은 코팅 수준의 철판일 가능성은 확실히 있어 보이네요. 돌격선으로 제작한 특성상 출입을 제한하는 장치는 확실히 존재했을거라 생각합니다.
평소 즐겨 듣고 있습니다. 그냥 갑자기 든 생각인데 혹시 거북선이 한가지 종류가 아니지 않았으면 지금 나오는 여러 가설들이 다 맞지 않을까요? 당시 전쟁중이니 꼭 판옥선으로만 거북선을 만들었을까하는 생각에서 적어봅니다.라고 생각했는데 밑에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셨네요. 김원 화이팅
포 같은 경우 일정한 시차를 두고 나누어 발사했을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재장전을 했기에 적진에서 보았을 때는 침몰 불가능한, 그리고 쉴새 없이 화포를 뿜어내는 공포의 귀선이었겠죠. 덧붙여 저도 김원님의 의견에 공감하는 바, 국내 사료에 철판이 일절 언급 되지 않은 내용은. 우리가 남들에게 평소 밥을 먹었다고 하지, 굳이 쌀밥을 먹었다라고 말하지 않는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되네요.
설기문 박사의 최면 요법으로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본다면 어떨까요? 아니면 이순신 장군을 신으로 모시는 무당의 입을 통해서 실체를 밝혀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구상의 기원전 유물들도 발굴되고 남아있는데 썰만 남무하고 고작 몇백년전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는것이 안타깝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아래 Pure gold님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정걸장군 소개영상을 준비하면서...수군의 변천사를 공부해보니.. 수군 선단을 이해 하면 거북선도....판옥선도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선단에는 주력전투선, 돌격선, 보급선, 첩보선등등으로 구성됩니다. 1555년 을묘왜변이후에는 판옥선이 주력 전투함이고, 보급선은 맹선, 첨보선은 일반 어선중 빠른 배.. 돌격선은 2척정도이고 1척정도는 예비선으로... 그 돌격선은 주력 전투선이 아니고 돌격용이기에 전라우수사,충청수사,전라좌수사,경상우수사,경상좌수사의 필요에 따라서 건조할수도 건조하지 않을수도 있다고 합니다. 즉, 돌격선 형태인 귀선(혹은 거북선)은 전라좌수사 이순신장군에게는 필요했기에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돌격선은 그 형태와 크기(재원)이 다 다를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즉, 시기와 수사(각 수영에 장군)에 필요에 따라서.. 그렇기때문에 우리가 거북선모양을 획일하게 정형화 할 필요는 굳이 없을듯 싶습니다. 또한, 판옥선이나 돌격선 배를 만들기위해서는 홍송(소나무 종류)이나 해송이 필요로 하는데.. 그 홍송을 구하기 용이하면 좀 더 크게...그렇지 않으면 작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는 홍송이 변산반도에서 많이 자라서.. 전라우수영은 배가 크지만...경상우수영과 좌수영은 상대적으로 작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큰 범주로 보시면 거북선의 각기 다른 모습이 어쩌면 쉽게 이해될수도 있을듯 싶습니다
판옥선의 재료가 되는 나무의 재질이 일본배에 들어가는 나무보다 매우 매우 매우 단단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포를 많이 설치해서 쏴도, 배가 버텼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배에 비해서 화포가 발달했구요.. 암튼, 일본애들 입장에서는 총을 쏘면 지들 배는 뚤리는데 우리배는 안뚤리니까.. 그래서, 보고할때 그냥 철갑을 둘렀다고 한게 아닐까 싶네요..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그런데 한번에 모든 포가 쏘기보다 홀수 쏘고 짝수 쏘고(포쏘는 전술이 있엇을수도)하면 딜레이를 최소화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용 머리에서 포를 쐈다는 거는 혹시 머리가 2개고 아래쪽에서 포를 쏘고(용머리모양포일수도) 위쪽 머리에서 굴뚝 역할을 해서 거기로 연기가 나가면서 그 비유를 하지 안았을까요?(아니면 환기구? 역활을 했을수도 안쪽에 포들이 쏘면 그 연기가 나갈수있도록 위쪽에 용머리로 연기가 빠져나 갈수있는 구조가 아닐지?)
오늘도 제 숙면을 책임져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김원님이 범죄에 대한 컨텐츠만 다루는게 아니라 역사적인 부분 미스테리한 부분등 다양하게 다뤄주셔서 좋은것같네요
역사 유튜버이지만 김원님의 이런 콘텐츠 너무 잘 보고 있습니다 ^^
항상 좋은 영상 너무 감사합니다 ^^
거북선도 여러가지가 존재할 가능성도...
하나는 충돌 귀선...둘은 포를 쏘는 귀선...셋은 아무것도 없는 귀선 보급선
와....ㄹㅇ소름....일리있고 있을법하다..~ㄷㄷㄷ
@@용환길-l4f 생각해보면 답이 나옴
1충돌형 거북선은 위앞부분은 철갑형
2포쏘는 거북선은 등만 철갑 앞옆뒤쪽은 포를 쏘기위해 나무로 했겠죠 포가무겁기때문 그리고
노를 젓을려면 공간이 커야함 단 속도가느림
3 3층구조로 배가 큰편 보급선으로 추정
이순신 장군님이 난중일기에 거북선의 설계나 생김새에대해 자세히 조금만 더 써주셨었으면하는 아쉬움이남네요. 물론 원균의 트롤짓을 자세히 서술해놓으신건 신의 한 수 였음ㅋㅋㅋㅋㅋ
비밀 병기급이라 잘못하면 반역죄?로 몰릴수잇으니 선 지키신든 ㅡ그래봐야 ...
ㅈㅅ..
원래는 원균도 전쟁할때 선조가 내린명령에 싸우면 다죽는다고 반대했는데 선조가 뒤지기 싫으면.나가서 싸워 해가지고 울며 겨자먹기로 싸운거 아닌가요??
@@여심용광로 지가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에있는 꼬라지 보기싫다고 지는 가토 잡으러 갈수있다고 선조한테 바람 넣은거자나 ㅂㅅ아ㅋㅋ
@@justmen454 아 난 또 니 엄마가 바람 넣은 줄 알았지 좋은 정보 고마워^^
불멸의 이순신만 열번 넘게 봤을정도로 거북선과 이순신을 존경하는 한사람입니다 제가 갔던 박물관에서는 1층과 2층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게 아니라 반층으로 되어있었습니다 1의반층 밑에는 노꾼 반층위는 대포를 쏘는곳으로요ㅎ
지금 거북선 많이 왜곡 되었어요.... 원래는 3층으로 규모가 지금 꺼는 일제 왜곡된 거라고 봅니다.
드디어 올라왔네요 기다렸습니다!!
영상 마지막에 진짜 확실하게 선을 잘그셨네요 ㅎㅎ
맞습니다.. 본적도 없고 역사적 기록도 별로 없는 귀선인데 굳이 이게맞다 저게맞다 라고 학자들 주장에 내가 뛰어들 필요도 없습니다..그냥 거북선은 판옥선과 같이 조선의 바다를 지킨 전함이라고 생각하면 될뜻 합니다 ㅎ 역사적 이론은 학자들에게~~~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거북선이 일본의 배가 되는건 아니잖아요 ㅎㅎ
거북선이 2층이건3층이건 철갑을 두르던말던 중요한건 임진왜란을 승리로이끈 주역이었단것과 성웅 이순신장군이 있었단 거겠죠
지금도 제 어린아들에겐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하신 장군님이라고
얘기해주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사람이 왜 대한민국 역사 ㅋ
@@militarygearjunkie2522 뭔말을 하고싶은건데
@@militarygearjunkie2522 ??? 임진왜란 승리의 주역이라뇨.. 전라도 다 빼앗기고 본진에는 얼씬도 못하고 보급선만 30척 가량 부순게 전분데요
@@평균-f7w 보급선 30척은 너무 축소한거아냐? 일단 해안 조운로를 통한 보급이 안된게 일본군의 장기적인 전략에 치명타를 가한건 맞다고 봄. 서해안 쭉타고 해안으로 같이 진출했으면 압록강 타고 넘어 만주 요동까지 충분히 진출했을거임. 그럼 본토에 있던 더 강력한 전력의 도쿠가와 진영 군대도 덩달아 참전했겠지. 거기다 여진과의 외교 동맹이 성사됐다면 최소 만리장성 근처까지 진출. 전쟁사 매니아면 보급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텐데..
@@militarygearjunkie2522 보급이 막혀 퇴각을 한게 아님 보급도 괴롭혀서 귀찮은거지 막힌것도 아니였고
최근의 한국 역사 학회에서 "이순신이 일본군의 보급선을 갈가리 찢었다"는 주장을하고있다 ( 예 · 한일 역사 공동 연구 보고서 (제 1 기) ·鄭求福발표 논문 "임진왜란의 역사적 의미」 「이순신 의한 해전의 승리로 해로를 통한 군량의 수송도 차단되었다.")
일본군의 보급로는 히젠 나고야에서 해로 이키를 거쳐 대마도 이즈하라에 이르러 쓰시마 북단에 위치한 오우 등에서 부산에 착안하여 짐을 내린 후는 육상을 한성으로 향하는라는 것이었다 . 이 보급로를 조선 수군이 두절하려면 부산 항구를 지속적으로 해상 봉쇄하거나 부산 자체를 점령 탈환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순신이 부산의 해상 봉쇄를 한 것은 아니라 부산 전 서양 나타나는 것 자체 거의 없었다. 한산도 해전까지 이순신의 활동 영역은 가덕도보다 서쪽 해역이며, 부산 근처에 나타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순신의 이름은 중국의 "明史- 열전 제 208 조선 전」, 일본의 「征韓録" 주석 7] 조선의 「징비록」주석 9]「난중 잡록」이나 리 미스터 조선 시대의 작품으로되는 "壬辰録( 한국어판 ) " [주석 10] 등 각종 문헌에 등장하고있다. 조선 통신사 로 동행 신유 한은 오사카의 서점에서 징비록 등의 조선 서적을 찾아 냈다는 것을 "海游록 " [24] 에 기록하고 있지만,에도 시대에는 막부와 조선은 친절한 모두 대중에게 각별히 주목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메이지 유신에서 정한론 이 기세를 가지게 일본의 대륙 진출에서 조선이 일제시기 가되는 과정에서 다시 이전 시대가 주목 받게되고, 이순신은 일본인과 조선인 문학 및 연구자에 의해 재평가 된 주석 11] . 또한 중국 상하이에서 활동하고 있던 대한민국 임시 정부 는 일본을 물리 친 영웅으로 이순신을 상징화 주석 12] , 그의 자서전 「독립 신문」에 게재 등 주석 13] 한창 떠들て항일 의 선구자로 간주되었다.
이순신을 만들어낸 영웅이라고 말하고 있음
그리고 임진왜란 왜병의 퇴각은 풍토병때문인게 가장 크다고 함
그토록 대단한 거북선이었는데 어떻게 자세한 기록이 제대로 된게 없을까.. 그것또한 미스테리 ㅠㅠ
조선대까지 모든 기록은 강화도에 두었었는데 여러 역사적인 침략을 받으며 80프로 이상 불타거나 약탈당해서 소실되었거든요. 조선 고려 이전 기록도 삼국사기 하나 덩그러니 남은게 현실입니다
외세 침략으로 많이 사라졌구요
일제강점기때 국보급이나 보물들이 일본으로 많이 나갔습니다 아마 그때 나간듯요
일본에서 어떻게 이순신 장군을 그리 잘 알아서 일본에 이순신장군 연구소가 있겠습니까? 그 많은 자료들은 어디서 구했겠구요...
@@gombo35 강화도 한 곳에 둔건 아니고 4군데 분산시켜 관리 했고 그 외에는 모두 맞음
난중일기에 좀 더 자세히 기록해주셨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 명량해전도 그렇고
일본이 37년??간 한국 먹고 일제시대때 많은 한국역사을 왜곡하고 불태웠죠. 이정도 남은걸로도 고마워해야하는거죠.. 워낙 한국의 문화와 역사가 깊고 많다보니.. 아무리 없애도 남아있는거죠.. 선조들이 대단함..ㅎㅎ
안녕하깁니까. 처음 영상 봤는데 목소리 좋으시내요 구독하고 열심히 보겠습니다
이걸 알려줘 말어..
알려주세용!
ㄷㄷ
순신이형 ㅋㅋㅋㅋ
악~~ 거 션~하게 알려주때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알려주세욬ㅋㅋㅋㅋ
와 신박한 내용이네요 요런거 자주해주세요😍🥰🥳
드디어 나올게 나오네 김원씨 화이팅 하십쇼! 아직 더 많습니다 예상 한 것보다 아는 것 보다 더 ....
비가오는날엔 김원님 목소리 듣고있으면 잠이솔솔 옵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항상 잘 봅니다^^
철갑을 두른듯...애국가에도 나오지만 철갑을 두른것처럼 보이게 했을듯요 실제 거북선을 본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짐작컨데 지금보면 초라하지만 위엄있게 꾸며서 위협을 준 우리조상의 지혜는 보입니다
@@Rornrnfjfd 무슨말인지....
실제 불에도 타지 않았다쟎쑤
판옥선이 방이선이라면 공격선이 없던 당시 만든게 거북선 아닌지 추측 해 봄
큰 가정을 해보면,
1. 천장의 나무 뼈대위에 얇은 철판을 깔았을 수 있음. 그럼 무게가 생각보다 많이 안나가고 사탄각으로 인한 방탄 효과를 볼 수 있음.
2. 일본이 전쟁에 졌으니 철갑선이기 때문에 졌다는 변명을 하기 위해
3. 일본이 조총을 썼기 때문에 총알이 뜅기는 소리로 철판인지 아닌지 소리로 구분할 수 있었음.
그래서 결론은 알 수 없다 겠네요.
오늘도 잘 보았습니다. 어떤 모습일지 모르지만 대단한 것 만큼은 변함이 없을 듯 합니다.
오늘도잘보겠습니다
장군께서 내직으로--훈련원--계실 적
거북선에 대한 기록을 접하고 쭉 심중에 품고 있다가 좌수사 되고, 나대용을 감조 군관으로 삼아 판옥선에 그것을 실현해보신듯..
오늘도 잘 봤습니다
오늘도 감사히 잘보고갑니다 늘건강하세요 고생하셨어요
김원TV에서는 임진왜란당시 참전하셨던 수군들 또는 거북선을 직접 보셨거나 제작에 참여하신 분들에 많은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웃 터짐
에 => 의
재미있고 흥미로운 미스테리컨탠츠 잘보겠습니다 오늘도 영상감사합니다
조금씩 역사속에 다르게 표현되는건 만들면서 계속 리뉴얼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네요. 암튼 세계적으로 이순신장군님이 엄청 유명하다고 합니다. 자랑스럽네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맞고요.. 미국의 해군들 한테는 필수적으로 이순신 장군의 전쟁전략을 공부하는 과정을 공부해야 합니다.
@비밀 에휴
@비밀 에휴..
@비밀ㅋㅋㅋㅋ무식하네요
@비밀 왜 이렇게 화나셨어용?
판옥선에 뚜껑 덮었답니다.. 판옥선이 워낙 잘 만든 배입니다. 그당시
이게 맞을듯 새로 설계하고 만드는거 보다 기존에 있는걸 개조하는게 비용하고 시간이 적게 나오니....
예나 지금이나 예산 무시 못하죠 ㅋㅋㅋ
오! 좋은 아이템. 선 좋아요 누르고 이따 자기전에 볼께요.
중요한건 적이 칭송해주는 전함입니다
무섭기는 정말 무서웠나봅니다
임란전엔 조선은 위쪽 애들이랑 오랜 실전으로 단련된 경험이 있던 터라 육전은 자신있었고, 해전은 섬나라 애들이 전문가인 영역인지라 걱정꺼리였음. 근데 뚜껑을 열어보니 육전에서 밀리고 해전은 껌이네?
사실은 왜구 상대 육전은 명나라 애들도 이전부터 고생 많아왔던 게 안그래도 내전으로 단련된 일본애들이 칼을 휘두르면 그 리치가 기존 자기네 무기보다 길었기에 명 농민군이 제대로 접근을 못했다고 함. 결국 조선 명이 왜와 육전에서 고생한 데는 왜가 동아시아 대빵 육전용 냉병기들을 들고 쳐들어왔던 부분이 있는 듯.
해전 역시 무기가 다른 게 결과에 영향을 줬는 거 같은데 이번에는 조선수군이 동아시아 대빵이었음. 일본애들 배는 육박전용 병력을 빨리 붙여주는 수송선 정도 용도였기에 좁고 높았고 가볍고 빠른 데 집중하느라 안정성 내구성은 떨어지는 배였고. 조선배는 오랜 왜구 상대 경험으로 단단하고 안정적인 대형함 위주로 발전시키고 원거리 화포 공격 위주 교리 장착... 일본애들이 접근하기 전에 조선 화포에서 발사되는 쇳덩이나 나무기둥에 뚫려 배가 부서져 나가는 거니까 둘이 제대로 준비하고 붙으면 일본애들이 교전비가 안나오는 그림.
이순신이 병력을 제대로 준비시켰고 플러스 이순신은 가능한 한 지지 않는 판을 구상해 놓고 싸움을 거는 방식으로 관리하니까 만화급으로 교전비 관리되고 상대는 학살급으로 쳐부수면서 이쪽은 부상자도 잘 안 만드는 수준 간 거라서 당대에 동북아 군신급 명성 획득, 명 황제로부터 선조와 동등한 직위 하사받는 정도로 수퍼스타 등극.
일본애들 해전은 배가 높을 수록 육박전에 유리하니까 높이만 높았고, 거북선은 그 사이를 해집고 들어가서 충파로 재질이 약한 일본배 부수거나 화포로 부숴버리면서 전열에 혼란 야기하고 빠지는 거 같은데 거북선이 저상형이었으면 아무리 천장에 쇠못 촘촘히 박아놔도 배 위로 뛰어드는 게 교전방식인 애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는 건 좀 부담되었을지도?
그래서 판옥선 만큼은 높이가 되는 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 봄? 걍 판옥선에 뚜껑 씌우고 두세 척 돌진시킬 때 용머리에 연막을 피워 그간 생긴 일본애들의 이순신함대에 대한 공포를 이용하는 놈도 있고, 포를 정면으로 쏘면서 들어가는 놈도 있고...라는 상상. 상대는 제대로 된 포가 없고 있어도 불안정하고 약한 배 구조상 명중률이 형편없고 판옥선급 선체를 부술 정도가 못되니 안심하고 근접해서 포로 부수다가 가깝게 붙어오는 급한 상황에선 들이받아버리기... 조선 배 재질이 단단한 나무를 쓰고 연결도 나무못 방식이라 단단해서 같은 충격으로 부딪히면 무른 나무에 쇠못 박은 일본 배만 박살... 몇 척씩 박살내고 적 전열 뒤죽박죽 만들어 놓고 각 잡아놓고 있는 본대가 원거리 사격으로 두들기게 뒤로 후퇴...
연습 많이 해 놔서 명중률들 괜찮았나봄 정박해서 안 나오는 상대의 리치 밖에서 대장군전인가?로 원거리 사격해서 함대 박살내버린 전투도 있었던 거 같음. 일본 애들이 배에 꽂힌 거 하나 기념으로 가져가서 일본에 전시된 그 미사일같이 생긴 대들보. 저 잘 보이지도 않는 먼 곳에서 대들보가 날아와서 배를 부수고 관통해버리는 거면 배 어디 타고 있든 공포스러웠겠다 싶음
저당시 유럽의 해양패권을 양분하던 스페인과 잉글랜드도 일본과 조선의 수군수준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였고 물량은 오스만정도는 되야지 비빌만했으니 단일국가들의 교전으로 봤을 때 어마어마한 수준의 해군력의 격돌이긴 하죠. 레판토해전같이 스페인 베네치아 오스만 튀르크제국 같이 수많은 국가들이 참전해야 겨우 약간 클 정도의 규모니까요
거북선 미스테리의 가장 큰 의문은 철갑선이냐 실존했느냐가 아니라 왜 명량 이후에
재건조가 이루어지지않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명량이후 충무공은 선박 보충에 힘을 기울였고 거북선 설계자로 알려진 나대용이 생존해있음에도
노량해전까지 거북선이 재건됐다는 사실이 없어요.
그토록 위력적인 병기였고 충무공 전술의 핵심이었다면 최우선으로 재건됐어야함에도 말입니다.
나름의 추리를 말하자면 거북선은 전설만큼 강력하거나 재건할만큼 실용적이지도 않은 않은 병기였다라는 거죠.
명량에서 보였듯 기존 판옥선과 이를 이용한 전술로도 충분히 왜군과 맞설 수 있었기에 판옥선의 수를 늘리는 게 급선무였다고 생각하면
거북선은 소위 가성비가 떨어지는 병기였다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되려 거북선은 충무공의 군사적 재능을 평가절하하는 역활로 악용된 사례일수도 있구요
거북선의 역할은 적 수군이 진법을 펼칠수
없도록 진열을 흩어놓는 역할의 돌격선이죠
명량해전 이전까지는 조선수군과 맞서는 형태의 해전이 많았다면 명량해전 이후의 해전들은 이미 전쟁 막바지의 왜군이 전의를 상실하고 남해안에 왜성을 쌓고 주둔한채 고국으로 돌아갈날만 기다리는 형태의 소극적인 상황이므로 굳이 거북선을 건조할 필요가 없었을겁니다
@@이기승-y8l 칠천량 이후 왜군의 질은 몰라도 양은 조선수군과 어마어마한 차이였습니다. 언제든 대회전이 벌어질 걸 예상하고 전략을 짜야한다면 그럴수록 강력한 병기는 반드시 있어야죠.
그렇기에 거북선이 그렇게 대단한 병기라면 최소 명량이후에는 건조가 되었어야합니다.
그래서 거북선이 명성만큼의 대단한 병기는 아니었거나 나대용외에 핵심 제작진의 부재등의 이유로 건조되지않았을 거란 의견을 제시한 거죠
충무공이 대대적으로 알려진 건 박정희때였고 당시 경제부흥의 상징인 포항제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최고의 명장과 최강이자 세계최초의 철갑선의 투톱이란 이미지를 만들어낸 걸지도 모르죠.(판옥선에 나무 뚜껑을 대고 적군의 착함을 막기위해 못과 칼. 창 등을 꽂아놓은 게 정설이니 철갑선은 아니고)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명량해전에서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까지 대략 1년입니다. 칠천량해전이후 수군의 손실이 큰 이순신으로서는 빠르게 수군을 재건하여야 했기에 손도 많이가고 제작비나 제작기간이 긴 거북선을 만들 여력이 안됐을수도 있죠
전쟁이후 후대에도 계속 거북선 건조를 한것을 보면 실용성이 떨어지는 병기는 아니었을겁니다
@@이기승-y8l 저는 가성비가 떨어지는 병기였을 수 있다 했지 효율성을 말한적은 없습니다. 즉 판옥선이 13척에 불과했던 당시를 보면 어떡해서든 전함 수를 늘려했을 터이고 제작진 문제가 아니라면 거북선이 판옥선보다 비용대비 성능이 메리트가 떨어졌기에 제작하지 않은것일 까 하는 게 제 추론의 요지란 겁니다.
임란 후에도 거북선이 주력또는 필수 함선으로 자리잡지못했다는 것을 보면 마찬가지로 가성비나 제작진의 부재가 의심되고요. 혹 선조의 작태를 보면 충무공의 상징중 하나인 거북선을 조선수군에 편입시키는 걸 거부했을 수도 있겠구요.
가성비는 당연히 떨어졌겠죠
철갑무게나 용머리무게도 상당했을것이고 그로인해 속도도 느렸을것이고 전투에서는 서로간의 신호가 중요할텐데 덮개가 덮혀 있으니 그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니 돌격선 역할정도겠죠
칠천량이전 조선수군의 거북선 수가 3척정도가 존재했을거라는 추정이 있습니다
감사이들었습니다 👍👍👍😍😍😍역쉬 최고예요
잘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래간만에 깊은 생각을 해볼수있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이순신 장군님~~
대한민국!!!
역사 미스터리 컨텐츠 좋아요
만약 3층구조면 효율이 떨어지고 속도가 느려진다...
하지만 귀선을 3가지로 분류하면 충분이 속도면과 빠른전투가 가능해진다
지금도 용도에 따라 여러가지 함선이 있듯이 그때도 만든시기와 용도에 따라 거북선 모양도 여러가지였겠죠
저도 이생각했음
해서~~ 잘 들었네요 해서~~ 유익했습니다
김원님 kbs 다큐에서는 용머리가 들어갔다 나왔다하는 방식이었을거라 하네요
4일째 보고있습니다
이순신 장군 삶, 사망에 관한 미스테리도 있는데 다뤄주시면 재밌을거 같아요.
ㄹㅇ 이거지, 진짜 선조 개년땜에ㅡㅡ 살아서 오래 사시다 돌아 가셧다는 설이 그냥 진짜였음 좋겠는 1인임ㅜ
@@jJ-pr2uu 여러 미스테리가 많죠, 그 좋은 자리에 무덤 지어놓고 옮긴거도 그렇고 전쟁 후 시신을 한 명? 두명만 본 점두 그렇구요
황현필의 이순신의 바다 책 추천 드립니다. 10시간 가량의 유튭도 있는데 울컥울컥 합니다.
오히려 두껍고 강한 원목 심재 목재보다 철판이 더 가벼울 수 있습니다.
시기별로 개선을 하거나 생략하거나 버젼이 달랐겠죠. 철판도 일부만 덫 댔을 수 있고요. 그러다 물자 부족해지면서 생략됐을 수 있고요, 전황과 물자 부족해서 급조할때는 얼기설기 만들었을지도요. 모든 가능성은 열어두고요.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초기에 철판때문에 배가 침몰하는 걸로 나오는데 과연 정말 어떻게 생겼고 전투는 어떻게 했을지 정말 궁금하고 미스테리하네요.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포탄이나 화약도 관리해야하고 그 소음과 진동 가스 같은 걸 나무가 버텨야 되는데 전에 TV에 잠깐 나온데로 침상과 화장실까지 구비한 것으로 나오는데.. 상상도 하기 힘들군요.
노 젓는 공간이 한층 보다 작은 반층 정도라면 가능한지도 궁금하네여 반층 얘기는 안나와서ㅎㅎ,,,
거북선이 2종류가 아녔을까요? 유황을 뿜어대며 상대적군의 시야를 흐리게하는 거북선이랑 후발대 들어오는 포달린 거북선
거북선 자체가 매우 극소수였을거에요... 당시 함선들의 통신수단은 북등의 소리신호랑 신호기의 시각신호뿐이라 그걸못하는 거북선은 함선의 컨트롤이 매우 힘들어서 대량으로 움직이지를 못합니다. 적함대에 던져놓고 판옥선으로 포격전을 하면서 해집어놓는 거북선의 역할 특성상 두종류로 나눠서 양산하고 굴리는건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일겁니다.
수병들의 훈련이 따로진행되야되는데 굉장히 비효율적인 일이죠
총을 쓰는 일본이 왜 칼과 활을 쓰는 조선에 졌는가에 대한 즉 패전에 대한 해명 과정 중에 철판에 막혀 총알이 배를 뚫지 못했다고 변명하면서 철갑선 주장이 생겼다라는 설이 있어요.
판옥선이 먼저 였지요 판옥선 위에 지붕을 언진거니까요 판옥선도 노 젖는 곳 위에서 싸우잖아요 3층이지요 명량에서 마지막에 나오는게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또 출정해서 이동할 때 판옥선과 거북선에 위장으로 지붕 위에 무엇이 거북선이고 무엇이 판옥선인지 알 수 없게 짚으로 역은 걸로 덮었다는 걸 본 기억이 있네요
3층 구조가 설득력 있는거 같네요
용머리는 3층 포탄을 쏘는 곳 앞에다 만들었을거 같네요 머리 모양은 앞에 구멍을 내서 고정시켜놓구요
앞에서 포탄을 쏘고 양옆에서도 포탄을 쏘고요
최대한 얇은 철판을 사방으로 붙여서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라는 말이되네요
감사합니다~
정확하지도 알려지지도 분분한 그런것들을 어렸을때 이렇게 배웠다는거에 충격
이런 역사미스테리 진짜 잼씀 요
거북선은 당시의 전선인 판옥선의 개량형일 겁니다. 완전히 다른 형태나 설계의 군함이 아닐 겁니다. 특히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 박식한 만큼... 근접전이 아닌 포격전을 함선에서 주로 사용하는 개념으로 전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거북선은 돌격선으로 적진에 직접 침투하여 충각 또는 근접전으로 교전하여 적 함대의 진영을 흐트러뜨리는 전술을 사용했다면... 적함에 근접하여 상륙 교전하는 일본군을 막기 위해서는 거북선처럼 반드시 지붕이 필요하고 왜군이 함선에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못과 같은 것을 당연히 박아서 왜군이 기어오르지 못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노와 돗을 동시에 사용하는 판옥선의 개념상... 필요시 돗대를 눕힐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당연하고... 거북선도 돗대를 눞히도록 중앙은 뚫여있는 통제영 거북선이 가장 효울적일 겁니다. 함포를 사용하면 당연히 흑색화약의 엄청난 연기가 나오죠. 거북등처럼 둥글게 다 막혔다면 포를 쏜다음에 거북선 내부는 화약연기로 질식할 겁니다. 그러나 통제영 거북선처럼 돗대를 눕히는 공간이 개방되어 있다면 흑색화약이 포연은 금방 사라질 겁니다.
철갑은 조선의 두정갑을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두정갑에 들어가는 작고 얇은 놋판을 가공할 정도의 야금술을 감안하면 어려운건 아니라 생각되네요.. 덧붙여 판옥선은 물에 잠기는 하부가 평평한 판같이 생겨 판옥선입니다. 그래서 무게중심이 서양 또는 일본의 배보다 상당히 낮아 상부에 철갑을 놓는다해도 그 영향이 적을 것을 생각되네요.
그리고 용머리에서 포를 쏘는것과 연기를 뿜는건 생각을 조금만 틀어보면 가능한 이야기로 보입니다. 다연장 화차를 운용할 정도로 화약술이 뛰어났던 사실을 감안했을 때 현대의 가스탄 혹은 연막탄의 개념으로 다가가는게 맞을것 같아요. 동일한 포신에서 포탄 발사와 연막 분출을 같이 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연기를 위한 별도의 굴뚝은 필요가 없죠..
그리고, 층에대한 이야기가 있는데요. 노를 젓는 행위는 주로 앉은 상태에서 행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복층 구조의 2층을 생각하면 한 층에 두 가지 기능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나온다고 생각됩니다. 판옥선 자체도 분명 위로 노출된 갑판이 존재합니다만, 어느 그림에도 노를 젓는 사공은 보이지 않습니다. 선실이 존재하는 1층 그리고 측부에 노젓는 사공이 들어가는 1.5층 화포 및 전투원이 탑승하는 2층의 구조로 생각하면 딱 맞아 떨어질듯 합니다.
화포의 운용을 꼭 좌우 교대로 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만약 좌우 화포가 각각 5개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먼저 용머리에서 연막을 터뜨려 시야를 차단한 후 좌우 1.3.5를 먼저 발사하고, 2.4를 발사하는 동안 1.3.5를 다시 장전하는 방식으로 운용하는게 적선이 밀집된 진형을 깨는 돌격선의 특성을 생각하면 맞지 않았을까 싶네요. 한번에 빵 쏘는게 아니라.. 그리고 영상 중 화포를 '치켜 쏘았다'는 표현을 봤을 때 현대의 곡사포/박격포 개념의 단거리로 적선 갑판을 직접 노리는 화포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겠네요..
영상초반부 행주대첩 관련 설명은 좀 잘못 알려진 내용입니다. 행주성은 지금 가보셔도 알지만 나지막한 그냥 작은 흙성이라 당시 조선군, 승병 약 3,000 정도 들어가 싸웠고, 진주성이나 남원성처럼 주민들이 함께 들어가있을만한 공간도 채 못된걸로 나옵니다. 아녀자들은 행주치마에 돌나르고 어르신들이 돌던지고.. 그건 잘못 전해진거라고 역사학자들이 말하더라구요.. 그냥 그 성이름이 행주성이고 행주치마는 그 이전부터 문헌에도 나오는 이름입니다.
여담이지만 행주대첩은 권율의 오판으로 자칫 대패할뻔했지만 권율 밑에 있던 조방장 조경의 판단으로 성앞에 목책을 2중으로 설치해놓은것과 막바지에 조선수군의 지원을 받아 승리한 전투였습니다. 행주성 전투 총지휘관이 권율이었기에 권율의 행주대첩으로 알려지긴하지만.. 물론 그때까진 권율은 지휘관의 능력은 있으셨던 분인건 맞습니다.
거기다가 당시 왜군의 작전 참모인 이시다 미츠나리가 전투 같은걸 잘 할줄 몰랐죠. 그냥 미니맵 보고 어택땅 찍는 수준이라서 당시 왜군 장수들 전원 부상 당했다고 했나 그랬던걸로 알고있습니다. 총사령관이었던 우키다 히데이에는 중상까지 당할 정도였죠.
오늘도 잘보겠습니다.
감삿해요.!
좋아요👍
휴대폰도 모델명따라 다르듯이.. 모양이조금씩 변한것 뿐..
전시에 전략 전술 용도에따라 다양하게 만들어지지 않았을까요
@@spoonbending7812 저도 그렇게 배웠었어요 진격해서 입으로도 포쏘는 귀선도 있었고 입으로 연막을 내뿜는 귀선도 있었고 종류는 다양하더라구요
@@JulianMullerr 맞음.. 앞부분에 고추 같이 튀어나온게 있어서 평소에 물살을 가르고 전진하다가 배를 만나면 처박아서 빵꾸도 냈다고 들은거 같음...
@@OTL-x4f '충각'입니다.
@@OTL-x4f 고추ㅋㅋㅋㅋ엌ㅋㅋ
김원+역사미스테리 최애
음 한번도 고민해보지 않았지만 김원님 방송을 보니 거북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김원님 말씀처럼 거북선도 시대에 맞게 변형이 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저는 이런 생각이 드네요. 거북선이 꼭 판옥선으로만 만들어지지 않고 다양한 전투선을 개조해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라구요. 예를 들면 고속정이라던가 구축함 등과 같이 여러 함급을 상황에 맞게 개조하였고, 그렇게 개조된 함선들을 모두 거북선이라 칭하지 않았을까?라구요.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저런 완벽한 귀선을가지고도 대패한 원균은 진짜 대단하다
내 차가 포르쉐여도 운전 실력이 초보면
포르쉐도 초보죠
바리고 도망감 수중에서 싸웟으면 애초에 금방 끝나는 싸움 원균이 인조하고 짜고 나라 망치게함
원균은 물살이나 물길을 전혀 고려하지않고 싸웠다네요.
기록에 철판 이라는 기록은 없는데 일본에서는 철판이였다는기록이있었다면 혹시 등판에 색 을 칠한거아닐까. 거북이 등 껍질 처럼 .. ? 멀리서보면 철로생각할수있고 올라가봤다면 철심에 박혀봤으니까 철이라고 생각하는거 아닐까요?
에이 설마 화공이면그럼 탈텐데요 ㅋ ^^전쟁시 모르면무조건 후퇴가아니라 공격하다 안먹혀서 후퇴하겟죠
판옥선은 3층구조라도 3층에 지붕이 없기때문에 복원력에 문제가 없지만 3층구조에 지붕을 엎고 철판까지 덧되게 되면 분명 복원력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거북선이 제대로 기동하려면 2층구조가 되어야 복원력에 문제가 없어집니다 노와 포가 교차되는건 분명 불편한 문제 였겠지만 선수부분과 선미쪽에 포를 배치하고 가운데 노를 배치하여 운영하는것이 최상이였을 겁니다 다만 판옥선에 비해 포의 숫자는 많이 줄게되지만 돌격선의 특성상 근접에서 포를 쏘기 때문에 적은 수의 포라도 적에게는 위협적이였을 겁니다 판옥선은 원거리에서 포를 쏘기 때문에 많은 수의 포를 운영해야 적선에 명중률이 높아지겠지요
거북선은 두가지 모습이라 생각되고 2층선은 충각선 으로 생각되고 3층선은 2층 충각선을 호위 하는 돌격선으로 생각됨
싸물자 모르면
@@사다코-t9s 잼민이 시비걸러 왔네 거북선이 뭔지는 아냐?
이것말고도 전투를 치루면서 유인책을 벌일때 앞 뒤간의 배의 간격이나, 배를 옆으로 다시 돌려(넘어질수도 있었음) 포를 쏘는 기술, 일기를 쓰시는 시기, 이순신님의 꿈의 내용 같은걸 보면 얼마나 신기한것도 많고 또 미리 전쟁에 대비하신 자세와 이름 없는 노꾼들의 고생과 희생이 담겨있는지 알 수 있죠 신기방기한 장군이셨습니다
거북선... 1842년, 19세기까지 사용했다는 자료가 있음!!! 역사적으로 오래됐고 조선을 구한 역사이자 무기였던건 사실..
처음엔 3층구조로 만들었다 침몰되고 난후엔 2층구조로 다시 만들었죠 그리고 철 침이든 칼이든 고정을 하려면 철판어 없는 구조에선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망치로 박아넣어서 고정을 해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얇은 철판을 사용해서 고정하는게 훨씬 편하니까 철판을 사용했을겁니다
형 2분 봤는데 졸려서 끊어서 보겠습니다ㅜ
와 ~~ 국사 공부를 여기서 하다니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사건에 대한 미스터리도 좋지만...😱
역사 미스터리 컨텐츠도 많이 부탁드릴께요
제가 그당시 거북선을 개조 했더라면 3층 같은 4층으로 개조 했을듯 합니다 1층 2층에 노을 저어서 탄력적으로 움직이고 노옆에 포을 장전했을것이며 전방에 있는적을 거북선 머리에서 포1발이 아닌 여러발의 고정식 포을
사격했을꺼 같아요 사격후 포장전 인원을 따로 두었을것이며 연기가 들어 오는걸 막기위해 간막이을 해두고 사격후 재장전후 간막이(문)을 닫았을듯 합니다
연막을 사용했을때는 거북선으로 돌격해서
붙이치기전에 전방 1층2층에 포을 사격후
충돌하여 1차 포로 방어가 약해진 배을 돌격하여 박살냈을듯 합니다
3층은 배위로 백병전을 하기위해 올라온 3층에 창과 칼을 위로 들어올려 올라온 적병을
죽였을꺼 같아요
밖에서는 보이지 안아도 위로 올라온 적군의 발소리나 햇빛에 조그마한 틈으로도 보이니까요
3층 같은 4층이라 함은 3층에서 리프트되어 지휘소가 올라갔다 내려왔다 할꺼같네요
잠수함 망원경 처럼 공격과 수비에 맞게
올라갔다 내려왔다 했을듯 합니다
이래서 사무직과 현장직은 다르다고 흔히들 말함
존나 깨져봐야 저런소리 못하지
김원님 항상 수고 많으시네요.. 비가 아주~ 많이 내리고 있어요..
이순신 장군님의 성향 상 판옥선 베이스로 제작했다는 설은 확실히 유력해보입니다.
애초에 싸워서 이기는게 아니라 미리 이기는 싸움을 준비하시는 분이니까요.
상대보다 우월한 파괴력을 가진 판옥선을 버리면서 다시 만들 이유도 딱히 없어 보이고요.
위에 철판이 제일 난재같네요. 근데 얇은 코팅 수준의 철판일 가능성은 확실히 있어 보이네요.
돌격선으로 제작한 특성상 출입을 제한하는 장치는 확실히 존재했을거라 생각합니다.
내마음속최고의 전투함입니다~~
김원이 인생도 미스테리하다. 모든게 미스테리인 우동사라뇌
한 가지 모양이 아니라 여러 가지 모양의 거북선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함.
당시 정규화된 거북선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 버젼이 있을꺼라고 생각합니다.
호옹이 굉장히 가능성있는말이군요
또한, 사용하다보니, 불편한점, 필요한점들이 발견되 업그레이드 버전, 다운 버전 등등..
거북선이 어디에 묻혀있을까가 제일 궁금해요
전쟁을 겪고 잔해가 어딘가엔 있을텐데
어디있을까요
다 썩어 문드러졌겠지
0:04 순간 날짜를 잘못 볼 뻔 했네요 ㅋㅋㅋㅋ
1592년 5월 23일 (양력)
1592년 4월 13일 (음력)
ua-cam.com/video/uawCzro6VXU/v-deo.html
3층구조였어도 내부에서 허리를 굽히고 다녀야 하는 낮은 3층이었을듯
노짓거나 포쏘거나 하려면 주로 앉아있으니
오늘은 이거다! 개꿀잠 보장!
평소 즐겨 듣고 있습니다.
그냥 갑자기 든 생각인데
혹시 거북선이 한가지 종류가 아니지 않았으면
지금 나오는 여러 가설들이 다 맞지 않을까요?
당시 전쟁중이니 꼭 판옥선으로만 거북선을 만들었을까하는 생각에서 적어봅니다.라고 생각했는데 밑에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셨네요. 김원 화이팅
영상에도 잠시 나왔지만 일본에서 해전을 기록한 그림들이 정확하다고 봅니다 그것은 일본 나카오카 성 벽을 허물때 나온 것으로 그림을 보면 거북선이 서 너가지 종류가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음...이분 영상은 처음 와서 보게 되었네요...목소리가...중후하니 멋지네요... 근데 생긴게...너무 미남형이라 뭔가 안어울리면서도 멋지면서도 부담스러워...ㅎㅎㅎ그래서 부러워...ㅋㅋ
포 같은 경우 일정한 시차를 두고 나누어 발사했을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재장전을 했기에 적진에서 보았을 때는 침몰 불가능한, 그리고 쉴새 없이 화포를 뿜어내는 공포의 귀선이었겠죠.
덧붙여 저도 김원님의 의견에 공감하는 바, 국내 사료에 철판이 일절 언급 되지 않은 내용은. 우리가 남들에게 평소 밥을 먹었다고 하지, 굳이 쌀밥을 먹었다라고 말하지 않는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되네요.
거북선의 탄생비화를 이렇게 잘설명해주셔서 감사하네요...
전쟁은 다시는 없었으면 합니다.
민주당의 염원인 미군철수, 사드철회로 적화통일의 장을 열어줄 겁니다
러시아로 하나 되는 우크라이나
북한으로 하나 되는 한국. 공산당으로서 비로소 하나 되는 중국
설기문 박사의 최면 요법으로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본다면 어떨까요?
아니면 이순신 장군을 신으로 모시는 무당의 입을 통해서 실체를 밝혀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구상의 기원전 유물들도 발굴되고 남아있는데 썰만 남무하고 고작 몇백년전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는것이 안타깝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ෆ 역사를 김원님에게 듣고가니 더 알차네요 감사합니당 ෆ
아름다우시네요
@@anh-jx1yn 네?
오늘도 잘자요
아래 Pure gold님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정걸장군 소개영상을 준비하면서...수군의 변천사를 공부해보니..
수군 선단을 이해 하면 거북선도....판옥선도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선단에는 주력전투선, 돌격선, 보급선, 첩보선등등으로 구성됩니다.
1555년 을묘왜변이후에는 판옥선이 주력 전투함이고, 보급선은 맹선, 첨보선은 일반 어선중 빠른 배..
돌격선은 2척정도이고 1척정도는 예비선으로...
그 돌격선은 주력 전투선이 아니고 돌격용이기에
전라우수사,충청수사,전라좌수사,경상우수사,경상좌수사의 필요에 따라서 건조할수도
건조하지 않을수도 있다고 합니다.
즉, 돌격선 형태인 귀선(혹은 거북선)은 전라좌수사 이순신장군에게는 필요했기에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돌격선은 그 형태와 크기(재원)이 다 다를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즉, 시기와 수사(각 수영에 장군)에 필요에 따라서..
그렇기때문에 우리가 거북선모양을 획일하게 정형화 할 필요는 굳이 없을듯 싶습니다.
또한, 판옥선이나 돌격선 배를 만들기위해서는 홍송(소나무 종류)이나 해송이 필요로 하는데..
그 홍송을 구하기 용이하면 좀 더 크게...그렇지 않으면 작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는 홍송이 변산반도에서 많이 자라서..
전라우수영은 배가 크지만...경상우수영과 좌수영은 상대적으로 작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큰 범주로 보시면 거북선의 각기 다른 모습이 어쩌면 쉽게 이해될수도 있을듯 싶습니다
그냥 거북선마다 커스텀 메이드로 다 달리 설계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기록들 보면 전부다 묘사가 다르고...
대량 양산하는 배도 아니고 하나하나 만드는데 오래걸린배니 기본뼈대만 같고 그외부분은 다 달리했을것 같네요.
전투 포지션 마다 용머리의 위치가 달라졌을수도 있음
판옥선의 재료가 되는 나무의 재질이 일본배에 들어가는 나무보다 매우 매우 매우 단단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포를 많이 설치해서 쏴도, 배가 버텼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배에 비해서 화포가 발달했구요..
암튼, 일본애들 입장에서는 총을 쏘면 지들 배는 뚤리는데 우리배는 안뚤리니까.. 그래서, 보고할때 그냥 철갑을 둘렀다고 한게 아닐까 싶네요..
오래전에 올리신 영상에 뒤늦게 덧글 달지만 영화 한산에서 거북선 진짜 강하고 너무 멋있었어요!! 실제로는 어땠을지 몰라도 거북선은 💘입니다! 😃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그런데 한번에 모든 포가 쏘기보다 홀수 쏘고 짝수 쏘고(포쏘는 전술이 있엇을수도)하면 딜레이를 최소화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용 머리에서 포를 쐈다는 거는 혹시 머리가 2개고 아래쪽에서 포를 쏘고(용머리모양포일수도) 위쪽 머리에서 굴뚝 역할을 해서 거기로 연기가 나가면서 그 비유를 하지 안았을까요?(아니면 환기구? 역활을 했을수도 안쪽에 포들이 쏘면 그 연기가 나갈수있도록 위쪽에 용머리로 연기가 빠져나 갈수있는 구조가 아닐지?)
현대의 해군 함정에서 동형함끼리도
무장체계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세부적인 외형은 서로 조금씩 다릅니다
조선시대 전투함도 마친가지라 봅니다
기록에서 묘사되는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고 해도
거북선을 가상의 배라고 단정짓는건 좀 아니죠
조선시대 살다옴? 뭘 아니고 자시고야
진짜 무슨 목소리가 저렇게 안어울리지.. 무ㅜㄴ가 싱크로 맞춰서 듣는것 같네.. 목소리가 넘 좋으시다
초반부 행주대첩 설명이 잘못되었네요.
기록상 여성이 행주대첩 참가한 기록이 없습니다.
당연히 돌을 앞치마에 담아 전쟁을 한것도 오류입니다.
산성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언덕배기 이름이 행주임.
거북선 버젼이 여러가지였겠지.
지금처럼 양산하던 때가 아니니...
당연한거다.
판옥선을 개조했으니 3층구조라는게 신빙성이 있는거 같은데, 전 2,3층에 모두 대포가 있었을꺼 같네요… 상대적으로 작은 일본배가 백병전을 위해 바빡 붙게 되면 3층에선 대포 각이 안나올듯 그래서 2,3층에 모두 대포가 있었을것 같네요
판옥선이 3층으로 갔으면 전쟁에서 패했겠죠.
느려터진 배로 무슨 승부가 난다고 그건 신빙성이 없는거죠 아마3층배는 보급선일수도 있음
조사를 덜하셨네요. 인터넷 더 찾아
보세요. 거북선 원본 실물이 있으니
일제까지 존제했네요. 사진이요.
궁금하면 찾아보세요. 지금은 있을지
모르지만 미스터리 로 몰지마세요.
이층입니다.
그 사진 무슨 사진인지 알 것 같은데 혹시 구한말에 선교사가 찍었다는 거북선 사진 말씀하시는 거면 70년대 영화 소품으로 판명난지 오래됬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혹시 다른 사진이라면 링크 부탁드립니다!
난 남자지만 형님 목소리듣고 잡니다.. 불면증이…가라앉는 느낌…
거북선은 실제했고 사천해전 실전에서 엄청난 위력을 보입니다, 돌격선으로써의 쓰임새가 어마무시하지요. 이순신이 한 해전에선 거북선은 한번도 패하지않았고 침몰하지 않았습니다.실제론 3층이 맞다고봅니다
김원님이 빵을 총 몇번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