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from the 6th century that Dokdo became Korean land. It is longer than Japanese history. 독도가 한국땅이 된 것은 6세기부터이다. 일본의 역사보다 먼저 시작된 거다. 독도는 대학민국땅.♡ 플래시몹 참가자들 멋지다.훌륭해♡♡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에 있는 섬. 위치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 번지 경위도 동도(동경 131도 52분 10.4초, 북위 37도 14분 26.8초), 서도(동경 131도 51분 54.6초, 북위 37도 14분 30.6초) 면적 : 187,554㎡(동도 73,297㎡, 서도 88,740㎡,부속도 25,517㎡) 독섬이라고도 하며, 면적은 18만 7,554㎡이다.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87.4㎞ 떨어진 해상에 있으며, 동도(東島)·서도(西島) 및 그 주변에 흩어져 있는 89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화산섬이다. 동도는 동경 131도 52분 10.4초, 북위 37도 14분 26.8초에, 서도는 동경 131도 51분 54.6초, 북위 37도 14분 30.6초에 위치한다. 동도·서도간 거리는 151m로 좁은 수도(水道)를 이룬다. 동도는 해발고도 98.6m, 면적 73,297㎡이고, 서도는 해발고도 168.5m, 면적 88,740㎡이다. 삼국사기에는 512년(신라 지증왕 13) 하슬라주의 군주 이사부가 울릉도를 중심으로 한 해상왕국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독도가 우산도(于山島)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1432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 우산과 무릉 두섬은 날씨가 맑은 날 서로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1471년 삼봉도(三峰島)와 1794년 가지도(可支島)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울릉도를 울도군이라 칭하고 울릉전도와 죽도(竹島)·석도(石島)를 관할하도록 정하였는데, 석도는 '돌로 된 섬'이라는 뜻의 '돌섬'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전라도 방언에서는 '돌'을 '독'이라 하여 전라도 남해안 출신의 울릉도 초기 이주민들은 '돌섬'을 '독섬'이라 불렀으며, '독섬'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독도(獨島)'가 되었다고 한다. 독도가 행정지명으로 처음 언급된 것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沈興澤)이 중앙정부에 올린 보고서로 알려져 있다. 한편, 프랑스와 유럽 같은 나라에서는 독도를 발견한 배의 이름을 따서 '리앙쿠르(Liancourt)', '호네스트(Hornest)'로 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1905년에 일본은 일방적으로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바꾸고 시마네현[島根縣]에 편입한 뒤 계속해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 시마네현 의회는 한국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2005년 3월 16일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竹島の日]'로 정하는 조례안 가결했다. 이에 맞서 한국 정부는 같은해 3월 17일 일반인에게 독도 방문을 전면 허용하고 대일(對日) 신 독트린을 발표하였다. ※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역사적 사실 근거 〈독도 관련 주요 연표〉 (출처: 울릉군, 2007) -512년 : (신라 지증왕 13)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 -1417년 : (조선 태종 17) 왜구 출현으로 주민 쇄환정책 실시 -1454년 : (단종 2)『세종실록』「지리지」에 울릉도·독도 내용 수록 -1694년 : (숙종 20) 장한상이 울릉도를 순찰하며 독도 위치 설명 -1697년 : (숙종 23) 2~3년 간격으로 울릉도 수토 시작 -1882년 : (고종 19) 개척령 반포와 함께 주민 이주정책 실시 -1900년 : (광무 4) 강원도 울도군 설치(칙령 41호,부속도서 울릉도, 죽도, 석도(독도)를 관할) -1952년 : 평화선 설정으로 독도를 대한민국 영토로 전 세계에 선언 -1953년 : 독도의용수비대 조직-독도 경비 -1956년 : 울릉경찰서 독도경비대에 인계 -1981년 : 독도 주민등록 최초 전입(최종덕, 울릉도 도동리 산69) -1982년 : 국가지정 문화재 천연기념물 제366호‘독도해조류번식지’로 지정 -1999년 : 국가지정문화재관리단체 지정 및 천연기념물 제366호 독도관리지침 고시 문화재명칭 변경(독도해조류번식지→독도천연보호구역) -2000년 : 2000.4.7 행정구역 명칭 및 지번 변경(행정구역: 당초 도동리→독도리로 변경, 지번: 당초 도동리 산42~76번지→독도리 산1~37번지로 변경) -2005년 3월 : 독도관리기준안(기존 독도관리지침 폐지) 및 독도(동도) 개방 -2005년 6월 28일 : 정부합동 독도현황고시 -2005년 9월 : 지번변경(당초 산1~37번지→1~96번지로 변경) 독도의 역사지리독도는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서 독도의 역사는 울릉도의 역사 안에서 살펴볼 수 있다.먼저 문헌상 울릉도에 사람이 살았다는 기록은 3세기에 나오기 시작한다.『삼국지(三國志)』권30,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 옥저조(沃沮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옥저의 기로(耆老)가 말하기를 ‘국인이 언젠가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다가 바람을 만나 수십일 동안 표류하다가 동쪽의 섬에 표착하였는데 그 섬에 사람이 살고 있었으나 언어가 통하지 않았고 그들은 해마다 칠월이 되면 소녀를 가려 뽑아서 바다에 빠뜨린다’고 하였다.” 여기서 ‘동쪽의 섬’을 우산국으로 볼 것인지 대한 이견이 있었으나, 현재 4세기의 유물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3세기경에 이미 울릉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고,또한 ‘우산국’이라는 국가가 성립되어 있었다는 것을 위의 사료로 추정할 수 있다. 우산국의 성립과 발전에 대한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멸망에 관한 기록만을 볼 수 있다.『삼국사기(三國史記)』권4, 지증왕 13년 6월(512년)의 기록에 따르면, 우산국이 지세가 험난하고 사람들이 용맹하여 결국은 하슬라주(강릉)의 군주가 계략을 써서 복종시켰다고 한다. 이는 당시 하슬라주의 군대가 신라 최전방을 담당하던 최정예부대였음에도 우산국을 정벌하기 쉽지 않았다는 얘기로, 우산국의 군사력과 문화수준이 상당히 높은 단계에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이에 대한 얘기는 현재 사자바위, 투구봉, 나팔봉과 관련된 설화로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고려의 태조왕건이 후백제견훤을 물리치고 후삼국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우산국은 다시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고려사』권1 태조13년 8월(930년)에는 “우릉도(芋陵島)가 백길(白吉)과 토두(土豆)를 보내어 토산물을 바침에 백길을 정위(正位)로 토두를 정조(正朝)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고려시대에도 변함없이 울릉도는 한반도의 지배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종 9년에는 여진의 침략으로 농업이 피해를 입자 농기구를 하사해 준 기록도 있다. 고려사에 한 동안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기록이 나오지 않는데, 이는 여진의 침입으로 그 일대가 황폐화되었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어 1157년에는 울릉도를 적극 개발하려다 중단한 기록이 나오며, 원 간섭기에는 울릉도의 주민이 고려 조정에 입조한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의 역사를 상세히 기록한『조선왕조실록』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자주 등장한다. 여말선초에 왜구의 노략으로 피해가 심해지자 15세기 초 태종은 주민들의 피해를 우려해 육지에 나와 살도록 쇄환정책을 실시한다. 태종 17년에는 울릉도와 주변 섬을 조사하기 위해 삼척만호 김인우를 무릉등처안무사(武陵等處按撫使)로 임명하였으며, 이후 대책회의에서 ‘우산·무릉등처’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세종도 몇 차례나 주민 이주정책을 실시하면서 김인우를 우산·무릉등처안무사로 임명하고 우산도와 무릉도의 두 섬을 순견(巡見)하는 임무를 맡긴다.『세종실록』「지리지」는 당시 조선의 통치영역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자료로서 조선이 쇄환정책을 계속 유지했으나, 우산도와 무릉도가 모두 여전히 조선의 통치하에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한편, 왜구의 침략이 줄어들자 강원 도민들이 본토의 조세부과와 역의 동원을 피해 울릉도와 독도로 피역하는 수가 증가하게 된다. 이에 강원도 감사 유계문은 무릉도의 우산이 비옥하여 산출이 많고, 또한 사람이 없어 왜노들이 점거할 우려가 있으니 무릉도에 군현을 설치하고 백성을 살게 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종은 육지에서 멀고 바람과 파도가 심하니 대신 매년 사람을 보내 탐색을 하고 토산물을 채취하라는 뜻을 전한다. 임진왜란 이후 통치력이 많이 약화되어 있던 조정은 김연성과 군사 260명을 울릉도로 보내 정세를 살폈다. 이는 동해안 어민의 쇄환과 울릉도가 자국의 땅임을 확인코자 한 중앙정부의 순심정책을 엿볼 수 있고, 또한 강원도의 삼척영장이 이를 맡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숙종 19년에는 좌수영 소속의 능로군으로 복무했던 어부인 안용복이 고기를 잡고자 울릉도에 들어갔다가 일본의 어부들과 시비가 벌어져 일본으로 납치된 사건이 일어난다. 안용복은 당대 최고 실권자인 에도관백(關白)에게서 “울릉도와 자산도는 일본 땅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 어민들의 출어를 금지 시키겠다”는 서계를 받는다. 하지만 곧 대마도주에게 빼앗기고, ‘월경죄인’으로 감금당한다. 풀려난 안용복은 분개하며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독도와 울릉도가 우리 땅임을 명백히 하고 돌아온다. 그의 활약으로 인해 대마도주는 일본인의 울릉도 출어금지를 공식화한다. 안용복의 활동은 일본의 영토 편입 야욕으로부터 울릉도와 독도를 지켜내고, 일본의 최고 권력기관으로부터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받았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조선은 1895년 도감제(島監制)를 실시하여 울릉도를 행정 관할한다. 울릉도의 인구가 1899년에는2,000명에 이르자, 대한제국은 울릉도를 다시 시찰하고 1900년 10월 25일 칙령 제41호를 반포해 울도군(鬱島郡)을 신설한다. 그리고 울도군의 관할구역을 관보 1716호에 수록함으로써 법적인 효력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당시 울릉도에는 이미 일본인들이 상당수 들어와 규목을 도벌해 가고 있었다. 1903년 울도군수 심흥택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일본인의 호수는63호이며 벌목의 한정이 없어 일본순검에게 처음부터도 불법이었고, 이제부터 더 이상의 벌목은 금한다고 하니 “이 섬에서 벌목한 것이 이미 10년이 지났고, 한국정부와 일본 공사가 교섭하여 명령한 바가 없으니 이를 금단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는 당시 대한제국의 힘이 일본의 침투에 대해 무능하였음을 보여준다. 한편 일본은 러일전쟁을 거치며 중요성을 깨닫게 된 독도에 해군 망루를 세우고 무선전신을 설치하고자, 1905년 1월 28일독도의 일본영토 편입을 결정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정부에서 알고 반박하지만,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해 항의할 데가 마땅치 않았다. 조선통감부가 설치된 뒤에 「한일어업협정」, 「한국어업법」이 제정·공포된다. 이것이 시행됨에 따라 한국어민은 까다로운 허가절차를 거쳐야 했고, 고스란히 연안어장을 일본어민에게 내어주게 된다. 또한 일본은 1942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대규모 공출과 징병, 징용을 행한다. 울릉도라고 이를 피해갈 순 없었고, 명이, 쑥, 칡 등을 먹고 생명을 이어나가야 했다. 일제 강점기의 사료 중 독도에 관한 언급은 일본 해군성 수로부에서 만든 『일본수로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합방 이전의『조선수로지』와 그 이후의『일본수로지』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표기하고 있다. 독도를 울릉도로부터 떼어내어 일본의 영토로 설명하기 시작한 것은 1952년 이후부터이다. 일본의 항복으로 해방이 되지만, 곧이어 남북이 분단됨에 따라 우리나라의 영토주권은 심하게 훼손되기에 이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6년 1월 29일연합국 최고사령부는 지령(SCAPIN) 제677호를 발표해 울릉도와 독도, 제주도는 일본영토에서 제외된다는 언급을 한다. 이어 6월 22일 SCAPIN 제1033호에서 일본의 영역을 더욱 분명히 규정하면서, 독도의 12해리 이내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지령을 내린다. 이로써 국제적으로 울릉도와 그 부속도서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명백히 인정받게 된다. 독도의 영토지리1900년 대한제국 정부는 지방 행정 제도를 개편하면서 울릉도와 죽도, 독도를 묶어 하나의 ‘군’, 즉 울도군을 만들었다. 울릉도에 ‘군수’를 상주시켜 울릉도와 독도의 수호와 행정 관리를 강화였으며, 이를『관보(官保)』를 통해 세계에 공표하였다. 이는 서양 국제법체제로서도 한국 영토로 재선포된 것이다. 관보의 1900년 10월 25일자 칙령 제41호(전문 6조)「울릉도를 울도(鬱島)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한 건」의 2조에 따르면,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할 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석도란 독도를 말한다. 당시 울릉도에는 다수의 남해안 어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독도를 바위섬이란 뜻의 ‘독섬’이라고 불렀다. 남해안 사투리로 ‘독’은 ‘돌(石)’을 의미하며, ‘독섬’을 한자로 의역하면 ‘석도’, 음역하면 ‘독도’가 된다. 또한 1946년 1월 국제법 기관인 ‘연합국 최고 사령부’는 독도를 한국 영토로 판정하여 거듭 한국 영토임이 확인되었다. 연합국이 독도를 한국의 영토라고 판정한 근거의 기원은 멀리 카이로 선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카이로 선언에서 연합국은 한국의 독립을 약속하고, 패전 후 일본영토의 한계를 규정하였다. 이에 따르면 독도는 1894년 이후 “일본이 참욕과 폭력에 의하여 약취한 것”에 해당된다. 연합국은 일본으로부터 분리하여 원래 소속으로 반환해야할 영토를 규정한 연합군최고사령부지령(SCAPIN) 제677호를 발표한다. 제677호 제 3항에는 일본으로 귀속될 섬과 제외될 섬을 명기하고 있다. 당연히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에 귀속되지 않고 한국영토로 발표되었다. 또한 만일 이를 수정할 때에는 “별도의 특정한 지령을 발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이 지령은 미래까지 유효하다”고 선언하였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지정한 비행정보구역(FIR, Flight Information Region) 설정에서도 독도 상공은 당연히 인천비행정보구역(Incheon FIR)에 포함되고 있고, 일본은 후쿠오카 비행정보구역, 북한은 평양 정보구역으로 규정되어 있다. 또한 일본의 방공식별구역(JADIZ)에서도 일본 열도와 동해의 일본측 해역이 포함되고 있다. 물론 독도는 한국령으로 일본이 제외하고 있다. 군사적 영토 인식에서도 미국과 일본 모두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울릉도의 영유국가가 독도를 영유하는 것은 지리적으로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도서이기 때문인데, 이는 많은 고문서에서 확인이 가능하다.『세종실록』「지리지」(1432년)에는 울릉도를 ‘본도’라 하고 독도의 당시 명칭인 우산도를 울릉도의 ‘속도’라고 하였다. 이러한 지리적 인식은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관습에 ‘송죽(松竹)’은 항상 붙어 다니는 한 쌍으로 간주한다. 그렇기에 울릉도를 ‘죽도’로, 독도를 ‘송도’로 불렀던 것이다. 무엇보다 두 섬에서 목측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를 뒷받침 해주는 중요한 사실이다.『세종실록』에는“우산 무릉 2도 재현정동해중 2도상거불원 풍일청명 즉가망견 신라시칭우산국(于山 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距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新羅時稱于山國)”이라고 적혀 있다. 이처럼 날씨가 청명할 때 두 섬에서 서로 볼 수 있다는 기록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국 어민과 울릉도 주민의 어로생활권역으로서 울릉도와 독도는 모섬과 자섬이라는 지리적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물론 심지어 일본의 역사기록과 공식적인 문서조차도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식하고 표기한 사례를 여러 문헌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최초의 기록은『삼국사기』신라본기4, 지증마립간 512년 기사로, 지증왕 13년 6월에 우산국이 귀복하고 해마다 토산물을 바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일본 정부의 자료로는 1877년(明治 10년) 3월20일 조,「태정관 지령문서」에 ‘품의한 취지의 다케시마(울릉도) 외 일도(독도) 지적 편찬의 건에 대하여 본방(일본)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심득할 것’이라는 내용이 있어 당시 일본도 독도가 한국의 땅이라는 것을 공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국가에서 제작한 고지도들은 당시의 영토인식을 보다 극명하게 보여준다. 독도가 공식적으로 지도상에 표기된 현전하는 최초의 지도는 조선 전기 지리서의 하나인『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1530)이다. 이 지도에는 독도가 정 위치가 아닌 울릉도의 서쪽에 그려져 있다. 이는 당시에 본토에서 울릉도에 갈 때 해류의 영향으로 독도에 먼저 도달하고 울릉도로 갔기 때문에 독도를 더 가깝게 그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 왕반의 천하여지도를 바탕으로 1603~1650년경 조선에서 수정하여 새로 제작한「조선본 동아시아 지도」(17세기 초)의 한반도 부분에도 울릉도와 독도가 명확히 표시되어 있다. 이 지도는 현재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중이다. 1785년의「삼국접양지도」는 일본의 하야시 시헤이(1738~1793, 일본 실학파의 최고 학자)가 그린 지도로서, 국경과 영토를 명료하게 구분하여 채색을 한 지도이다. 독도는 조선의 색채인 황색으로 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것이란 표기까지 하였다. 1855년 김대건 신부의 지도를 지리학자 말트 브룅(Malte-Brun)이 축소하여『파리지리학회지』(1855)에 게재한 지도에도 울릉도는 ‘Oulamgto’, 독도는 ‘Ousan’이라고 역시 정확히 표기가 되어 있다.
OMG THIS IS WHERE I AM DESTINED TO LIVE!!!!!!!! Imma move to South Korea when I grow up!! I love everything about Korea! I love the food I love the ppl I love Kpop I love K-dramas! I LOVE EVERYTHING ABOUT KOREA!! 한국 사랑해요~!!!!❤ I ❤ SOUTH KOREA
가슴이 뭉클합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매우 밝습니다 아름답고 멋진 젊은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60대지만 만약 일본 아이들과 전면전이 벌어 진다면 전장에 나아가 밥이라도 포탄이라도 나를 것입니다 독도를 수호하고 고토를 수복하는 그날까지 대한민국은 영원할 것입니다 간도와 대마도의 수복을 위하여!!!!
sunnywind02 가사에 있듯이 러일전쟁 후에 일본이 우리 독도를 지네들 땅이라고 우기고 있다. 그리고 다케시마가 아니라 독도라고 독!도! 지네들이 역사를 외곡하면서까지 독도를 돈벌이로 쓸라고 어떡해서든 뺏을라고 지랄 일까 ㅉㅉ 글고 독도는 위치적이나 지리적이나 역사적이나 어떡해 봐도 한국땅이거든? 그러니깐 님은 니나라로 돌아가세요 한국사람이면 진짜 한국인도 아니다
😂❤❤❤🎉
독도는 우리땅 입니다
응원합니다 홧팅입니다 사랑합니다 💜 💕 ❤️ 😘
요즘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는데 이 영상 보니 마음이 울컥하고 기운이 나네요, 또 다시 모일때 입니다
저도 요즘 찌증나고 어수선함에
이영상들 일부러 다시 찾아봅니다
윤석열과 국힘당이 싫어할거같고..검찰에 압수수색 당할거같아ㅡ
하루ㆍ하루 ㆍ미치 겠습닙다 ! 우리 에 국토 을 우리에 국토 라고 당당 하게 외치지 못하는 이 모지란 XX 을 끌어 내립십다
윤석열 일본 노미다 쪽바리다 후쿠시마 오염수 김건희와 함께 처먹어라
@@swl5046 죄졌냐? 전과자냐? 압수수색 무서워하는거보니까 범죄자네 ㅋㅋ
이런 좋은 캠페인은 멈추지말고 계속되어야합니다!!!!
독도는 우리땅이다!!!!!!!화이팅!!!!!!
👍👍👍👍👍👍👍👍👍👍👍
日本の土地だふざけんな
10년전 영상인데 뭉클하네요! 그때보다 지금이 더 필요할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시 모여서 하는 모습을 보고 싶네요~ 독도는 이념이나 정치의 문제가 아닙니다. 독도는 우리땅!!!
구한말로 돌아간것 같은 이때... 보다가 울컥 했습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한국밴드인데요! 코로나 끝나면 이 노래 영어로 불러서 여기 런던 시내에서 찍어야 겠습니다! 아이디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제대로 지킵시다 모두 일어납시다
독도문제를론한다는것자체가우리행성의존재자체를론한다는것과같은어불성설입니다.영구불멸독도는우리땅입니다.
이런 행동이 범 국민적으로 퍼졌으면 좋겠다 싶내요
눈물이 나네요 .
가슴은 뭉클해 져오고 저도 한국 사람이라는게 자랑 스럽네요 .
독도는 우리땅 . 화이팅 .
독도는 대한민국땅이지 너네도 인정했다고 왜 부정하냐 ㅋㅋㅋ
우기면 다되는줄 아는 나라
독도는 한국땅 입니다.
뭔 개소리세요 독도는 한국땅입니다
우리나라대한민국는독도우리땅있고
우리나라꺼데왜일본꺼야말도안되는소리하고있어일본은우리에적인데
독도는우리나라땅입니다
함부로그나라땅이라고말하지
마세요독도는우리나라대한민국땅있니까
당연히 우리땅 인데 독도 그럴필요없읍니다.
대마도 집중적으로 집요하게 매일매일 일본압박 대마도 반환요구 계속적으로 대사관 앞에서 매일매일 시위 불법 점거 거주 왜인들 왜 놈 왜 구 쫒아내는데 심혈을 이승만 대통령 시절 대마도 반환요구
독도 몹플레시 볼 때마다 뜨거운
마음입니다 정치가 국민을 쪼갠
이즈음 다시 이 운동으로 하나가
됩시다 여야의원 전부, 청와대 검찰
전원 다 모여 한바퀴 돕시다
9년전 과거가 저랬구나 코로나 종식되면 다시 함 했으면 좋겠네요 이 춤 초딩때 배웠었는데 아직 몸이 기억합니다
어머나 진짜요
다시 한번 플래시몹 했으면 좋겠어요~
저때는 혼자~이제는 아이들 데리고 가고 싶네요^^
전 오늘 처음 봤어요~
정말 감동적이고
보는내내 울컥했답니다ㅠ
10년전, 10年前, 10 years ago
가슴 뭉클합니다
It is from the 6th century that Dokdo became Korean land. It is longer than Japanese history.
독도가 한국땅이 된 것은 6세기부터이다. 일본의 역사보다 먼저 시작된 거다. 독도는 대학민국땅.♡
플래시몹 참가자들 멋지다.훌륭해♡♡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네요
그많은 침략을견디고 달려가고있고
우리의 역사를지키고 세기기위해 공식일정
도잡고 수백 수만번에 침략에도 역사를세기며
꿋꿋히 애국심을 세기는것이멎져요
이런 플래시몹 계속 이여나가야 합니다 응원합니다 힘냅시다 대한민국 화이팅
이런 좋은 모습은 우리젊은 세대들이 계속 이어져 나갔으면 좋겠어요.
외국인들이 많이 모이는곳에서 종종 해주세요. 최고에 이벤트입니다.
독도는한국땅 애초에 분쟁을할 땅이아님 . 예전부터그리고 현재 미래까지 대한민국땅임 ㅋㅋㅋㅋㅋ
인정이요
인정인정 인정스
인정인정인정인정스스ㅡ스스스ㅡ슷
인정!!!!
ㅇㅈ
독도는 우리땅.대한미국 영토다
다시금 보고 싶다
대통령이란놈 하는짓에 너무 화가나서 거의 돌뻔 했는데
어린 학생들까지 몰려나와 이런 행사 하는걸 보니 가슴이 벅차오르네요.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가시지 않았고 너무 신나고 행복합니다.
우리는 못하는게 없다니까요.
넌 예의도 없냐? 모든걸 떠나서 한 국가원수를 놈이 뭐냐? 미친놈아..아주 무식한놈들이 나라를 말아먹고있어..너같은놈이 나라를 위해 욕밖에 한게 없지않어..이 미친놈아..예의도 없는놈..속세를 떠나든가 외국으로 이민가.. .
행동하는 젊음이 정말 아름답고 목이 메이고 끝네 는물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교동도는 영국의 식민지 🇬🇧
독도는 미국의 식민지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에 있는 섬.
위치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 번지
경위도 동도(동경 131도 52분 10.4초, 북위 37도 14분 26.8초), 서도(동경 131도 51분 54.6초, 북위 37도 14분 30.6초)
면적 : 187,554㎡(동도 73,297㎡, 서도 88,740㎡,부속도 25,517㎡)
독섬이라고도 하며, 면적은 18만 7,554㎡이다.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87.4㎞ 떨어진 해상에 있으며, 동도(東島)·서도(西島) 및 그 주변에 흩어져 있는 89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화산섬이다. 동도는 동경 131도 52분 10.4초, 북위 37도 14분 26.8초에, 서도는 동경 131도 51분 54.6초, 북위 37도 14분 30.6초에 위치한다. 동도·서도간 거리는 151m로 좁은 수도(水道)를 이룬다. 동도는 해발고도 98.6m, 면적 73,297㎡이고, 서도는 해발고도 168.5m, 면적 88,740㎡이다.
삼국사기에는 512년(신라 지증왕 13) 하슬라주의 군주 이사부가 울릉도를 중심으로 한 해상왕국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독도가 우산도(于山島)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1432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 우산과 무릉 두섬은 날씨가 맑은 날 서로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1471년 삼봉도(三峰島)와 1794년 가지도(可支島)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울릉도를 울도군이라 칭하고 울릉전도와 죽도(竹島)·석도(石島)를 관할하도록 정하였는데, 석도는 '돌로 된 섬'이라는 뜻의 '돌섬'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전라도 방언에서는 '돌'을 '독'이라 하여 전라도 남해안 출신의 울릉도 초기 이주민들은 '돌섬'을 '독섬'이라 불렀으며, '독섬'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독도(獨島)'가 되었다고 한다. 독도가 행정지명으로 처음 언급된 것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沈興澤)이 중앙정부에 올린 보고서로 알려져 있다.
한편, 프랑스와 유럽 같은 나라에서는 독도를 발견한 배의 이름을 따서 '리앙쿠르(Liancourt)', '호네스트(Hornest)'로 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1905년에 일본은 일방적으로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바꾸고 시마네현[島根縣]에 편입한 뒤 계속해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 시마네현 의회는 한국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2005년 3월 16일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竹島の日]'로 정하는 조례안 가결했다. 이에 맞서 한국 정부는 같은해 3월 17일 일반인에게 독도 방문을 전면 허용하고 대일(對日) 신 독트린을 발표하였다.
※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역사적 사실 근거
〈독도 관련 주요 연표〉 (출처: 울릉군, 2007)
-512년 : (신라 지증왕 13)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
-1417년 : (조선 태종 17) 왜구 출현으로 주민 쇄환정책 실시
-1454년 : (단종 2)『세종실록』「지리지」에 울릉도·독도 내용 수록
-1694년 : (숙종 20) 장한상이 울릉도를 순찰하며 독도 위치 설명
-1697년 : (숙종 23) 2~3년 간격으로 울릉도 수토 시작
-1882년 : (고종 19) 개척령 반포와 함께 주민 이주정책 실시
-1900년 : (광무 4) 강원도 울도군 설치(칙령 41호,부속도서 울릉도, 죽도, 석도(독도)를 관할)
-1952년 : 평화선 설정으로 독도를 대한민국 영토로 전 세계에 선언
-1953년 : 독도의용수비대 조직-독도 경비
-1956년 : 울릉경찰서 독도경비대에 인계
-1981년 : 독도 주민등록 최초 전입(최종덕, 울릉도 도동리 산69)
-1982년 : 국가지정 문화재 천연기념물 제366호‘독도해조류번식지’로 지정
-1999년 : 국가지정문화재관리단체 지정 및 천연기념물 제366호 독도관리지침 고시 문화재명칭 변경(독도해조류번식지→독도천연보호구역)
-2000년 : 2000.4.7 행정구역 명칭 및 지번 변경(행정구역: 당초 도동리→독도리로 변경, 지번: 당초 도동리 산42~76번지→독도리 산1~37번지로 변경)
-2005년 3월 : 독도관리기준안(기존 독도관리지침 폐지) 및 독도(동도) 개방
-2005년 6월 28일 : 정부합동 독도현황고시
-2005년 9월 : 지번변경(당초 산1~37번지→1~96번지로 변경)
독도의 역사지리독도는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서 독도의 역사는 울릉도의 역사 안에서 살펴볼 수 있다.먼저 문헌상 울릉도에 사람이 살았다는 기록은 3세기에 나오기 시작한다.『삼국지(三國志)』권30,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 옥저조(沃沮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옥저의 기로(耆老)가 말하기를 ‘국인이 언젠가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다가 바람을 만나 수십일 동안 표류하다가 동쪽의 섬에 표착하였는데 그 섬에 사람이 살고 있었으나 언어가 통하지 않았고 그들은 해마다 칠월이 되면 소녀를 가려 뽑아서 바다에 빠뜨린다’고 하였다.” 여기서 ‘동쪽의 섬’을 우산국으로 볼 것인지 대한 이견이 있었으나, 현재 4세기의 유물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3세기경에 이미 울릉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고,또한 ‘우산국’이라는 국가가 성립되어 있었다는 것을 위의 사료로 추정할 수 있다.
우산국의 성립과 발전에 대한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멸망에 관한 기록만을 볼 수 있다.『삼국사기(三國史記)』권4, 지증왕 13년 6월(512년)의 기록에 따르면, 우산국이 지세가 험난하고 사람들이 용맹하여 결국은 하슬라주(강릉)의 군주가 계략을 써서 복종시켰다고 한다. 이는 당시 하슬라주의 군대가 신라 최전방을 담당하던 최정예부대였음에도 우산국을 정벌하기 쉽지 않았다는 얘기로, 우산국의 군사력과 문화수준이 상당히 높은 단계에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이에 대한 얘기는 현재 사자바위, 투구봉, 나팔봉과 관련된 설화로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고려의 태조왕건이 후백제견훤을 물리치고 후삼국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우산국은 다시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고려사』권1 태조13년 8월(930년)에는 “우릉도(芋陵島)가 백길(白吉)과 토두(土豆)를 보내어 토산물을 바침에 백길을 정위(正位)로 토두를 정조(正朝)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고려시대에도 변함없이 울릉도는 한반도의 지배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종 9년에는 여진의 침략으로 농업이 피해를 입자 농기구를 하사해 준 기록도 있다. 고려사에 한 동안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기록이 나오지 않는데, 이는 여진의 침입으로 그 일대가 황폐화되었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어 1157년에는 울릉도를 적극 개발하려다 중단한 기록이 나오며, 원 간섭기에는 울릉도의 주민이 고려 조정에 입조한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의 역사를 상세히 기록한『조선왕조실록』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자주 등장한다. 여말선초에 왜구의 노략으로 피해가 심해지자 15세기 초 태종은 주민들의 피해를 우려해 육지에 나와 살도록 쇄환정책을 실시한다. 태종 17년에는 울릉도와 주변 섬을 조사하기 위해 삼척만호 김인우를 무릉등처안무사(武陵等處按撫使)로 임명하였으며, 이후 대책회의에서 ‘우산·무릉등처’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세종도 몇 차례나 주민 이주정책을 실시하면서 김인우를 우산·무릉등처안무사로 임명하고 우산도와 무릉도의 두 섬을 순견(巡見)하는 임무를 맡긴다.『세종실록』「지리지」는 당시 조선의 통치영역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자료로서 조선이 쇄환정책을 계속 유지했으나, 우산도와 무릉도가 모두 여전히 조선의 통치하에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한편, 왜구의 침략이 줄어들자 강원 도민들이 본토의 조세부과와 역의 동원을 피해 울릉도와 독도로 피역하는 수가 증가하게 된다. 이에 강원도 감사 유계문은 무릉도의 우산이 비옥하여 산출이 많고, 또한 사람이 없어 왜노들이 점거할 우려가 있으니 무릉도에 군현을 설치하고 백성을 살게 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종은 육지에서 멀고 바람과 파도가 심하니 대신 매년 사람을 보내 탐색을 하고 토산물을 채취하라는 뜻을 전한다.
임진왜란 이후 통치력이 많이 약화되어 있던 조정은 김연성과 군사 260명을 울릉도로 보내 정세를 살폈다. 이는 동해안 어민의 쇄환과 울릉도가 자국의 땅임을 확인코자 한 중앙정부의 순심정책을 엿볼 수 있고, 또한 강원도의 삼척영장이 이를 맡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숙종 19년에는 좌수영 소속의 능로군으로 복무했던 어부인 안용복이 고기를 잡고자 울릉도에 들어갔다가 일본의 어부들과 시비가 벌어져 일본으로 납치된 사건이 일어난다. 안용복은 당대 최고 실권자인 에도관백(關白)에게서 “울릉도와 자산도는 일본 땅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 어민들의 출어를 금지 시키겠다”는 서계를 받는다. 하지만 곧 대마도주에게 빼앗기고, ‘월경죄인’으로 감금당한다. 풀려난 안용복은 분개하며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독도와 울릉도가 우리 땅임을 명백히 하고 돌아온다. 그의 활약으로 인해 대마도주는 일본인의 울릉도 출어금지를 공식화한다. 안용복의 활동은 일본의 영토 편입 야욕으로부터 울릉도와 독도를 지켜내고, 일본의 최고 권력기관으로부터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받았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조선은 1895년 도감제(島監制)를 실시하여 울릉도를 행정 관할한다. 울릉도의 인구가 1899년에는2,000명에 이르자, 대한제국은 울릉도를 다시 시찰하고 1900년 10월 25일 칙령 제41호를 반포해 울도군(鬱島郡)을 신설한다. 그리고 울도군의 관할구역을 관보 1716호에 수록함으로써 법적인 효력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당시 울릉도에는 이미 일본인들이 상당수 들어와 규목을 도벌해 가고 있었다. 1903년 울도군수 심흥택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일본인의 호수는63호이며 벌목의 한정이 없어 일본순검에게 처음부터도 불법이었고, 이제부터 더 이상의 벌목은 금한다고 하니 “이 섬에서 벌목한 것이 이미 10년이 지났고, 한국정부와 일본 공사가 교섭하여 명령한 바가 없으니 이를 금단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는 당시 대한제국의 힘이 일본의 침투에 대해 무능하였음을 보여준다.
한편 일본은 러일전쟁을 거치며 중요성을 깨닫게 된 독도에 해군 망루를 세우고 무선전신을 설치하고자, 1905년 1월 28일독도의 일본영토 편입을 결정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정부에서 알고 반박하지만,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해 항의할 데가 마땅치 않았다. 조선통감부가 설치된 뒤에 「한일어업협정」, 「한국어업법」이 제정·공포된다. 이것이 시행됨에 따라 한국어민은 까다로운 허가절차를 거쳐야 했고, 고스란히 연안어장을 일본어민에게 내어주게 된다. 또한 일본은 1942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대규모 공출과 징병, 징용을 행한다. 울릉도라고 이를 피해갈 순 없었고, 명이, 쑥, 칡 등을 먹고 생명을 이어나가야 했다.
일제 강점기의 사료 중 독도에 관한 언급은 일본 해군성 수로부에서 만든 『일본수로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합방 이전의『조선수로지』와 그 이후의『일본수로지』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표기하고 있다. 독도를 울릉도로부터 떼어내어 일본의 영토로 설명하기 시작한 것은 1952년 이후부터이다.
일본의 항복으로 해방이 되지만, 곧이어 남북이 분단됨에 따라 우리나라의 영토주권은 심하게 훼손되기에 이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6년 1월 29일연합국 최고사령부는 지령(SCAPIN) 제677호를 발표해 울릉도와 독도, 제주도는 일본영토에서 제외된다는 언급을 한다. 이어 6월 22일 SCAPIN 제1033호에서 일본의 영역을 더욱 분명히 규정하면서, 독도의 12해리 이내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지령을 내린다. 이로써 국제적으로 울릉도와 그 부속도서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명백히 인정받게 된다.
독도의 영토지리1900년 대한제국 정부는 지방 행정 제도를 개편하면서 울릉도와 죽도, 독도를 묶어 하나의 ‘군’, 즉 울도군을 만들었다. 울릉도에 ‘군수’를 상주시켜 울릉도와 독도의 수호와 행정 관리를 강화였으며, 이를『관보(官保)』를 통해 세계에 공표하였다. 이는 서양 국제법체제로서도 한국 영토로 재선포된 것이다.
관보의 1900년 10월 25일자 칙령 제41호(전문 6조)「울릉도를 울도(鬱島)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한 건」의 2조에 따르면,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할 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석도란 독도를 말한다. 당시 울릉도에는 다수의 남해안 어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독도를 바위섬이란 뜻의 ‘독섬’이라고 불렀다. 남해안 사투리로 ‘독’은 ‘돌(石)’을 의미하며, ‘독섬’을 한자로 의역하면 ‘석도’, 음역하면 ‘독도’가 된다.
또한 1946년 1월 국제법 기관인 ‘연합국 최고 사령부’는 독도를 한국 영토로 판정하여 거듭 한국 영토임이 확인되었다. 연합국이 독도를 한국의 영토라고 판정한 근거의 기원은 멀리 카이로 선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카이로 선언에서 연합국은 한국의 독립을 약속하고, 패전 후 일본영토의 한계를 규정하였다. 이에 따르면 독도는 1894년 이후 “일본이 참욕과 폭력에 의하여 약취한 것”에 해당된다. 연합국은 일본으로부터 분리하여 원래 소속으로 반환해야할 영토를 규정한 연합군최고사령부지령(SCAPIN) 제677호를 발표한다. 제677호 제 3항에는 일본으로 귀속될 섬과 제외될 섬을 명기하고 있다. 당연히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에 귀속되지 않고 한국영토로 발표되었다. 또한 만일 이를 수정할 때에는 “별도의 특정한 지령을 발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이 지령은 미래까지 유효하다”고 선언하였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지정한 비행정보구역(FIR, Flight Information Region) 설정에서도 독도 상공은 당연히 인천비행정보구역(Incheon FIR)에 포함되고 있고, 일본은 후쿠오카 비행정보구역, 북한은 평양 정보구역으로 규정되어 있다. 또한 일본의 방공식별구역(JADIZ)에서도 일본 열도와 동해의 일본측 해역이 포함되고 있다. 물론 독도는 한국령으로 일본이 제외하고 있다. 군사적 영토 인식에서도 미국과 일본 모두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울릉도의 영유국가가 독도를 영유하는 것은 지리적으로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도서이기 때문인데, 이는 많은 고문서에서 확인이 가능하다.『세종실록』「지리지」(1432년)에는 울릉도를 ‘본도’라 하고 독도의 당시 명칭인 우산도를 울릉도의 ‘속도’라고 하였다. 이러한 지리적 인식은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관습에 ‘송죽(松竹)’은 항상 붙어 다니는 한 쌍으로 간주한다. 그렇기에 울릉도를 ‘죽도’로, 독도를 ‘송도’로 불렀던 것이다.
무엇보다 두 섬에서 목측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를 뒷받침 해주는 중요한 사실이다.『세종실록』에는“우산 무릉 2도 재현정동해중 2도상거불원 풍일청명 즉가망견 신라시칭우산국(于山 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距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新羅時稱于山國)”이라고 적혀 있다. 이처럼 날씨가 청명할 때 두 섬에서 서로 볼 수 있다는 기록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국 어민과 울릉도 주민의 어로생활권역으로서 울릉도와 독도는 모섬과 자섬이라는 지리적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물론 심지어 일본의 역사기록과 공식적인 문서조차도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식하고 표기한 사례를 여러 문헌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최초의 기록은『삼국사기』신라본기4, 지증마립간 512년 기사로, 지증왕 13년 6월에 우산국이 귀복하고 해마다 토산물을 바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일본 정부의 자료로는 1877년(明治 10년) 3월20일 조,「태정관 지령문서」에 ‘품의한 취지의 다케시마(울릉도) 외 일도(독도) 지적 편찬의 건에 대하여 본방(일본)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심득할 것’이라는 내용이 있어 당시 일본도 독도가 한국의 땅이라는 것을 공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국가에서 제작한 고지도들은 당시의 영토인식을 보다 극명하게 보여준다. 독도가 공식적으로 지도상에 표기된 현전하는 최초의 지도는 조선 전기 지리서의 하나인『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1530)이다. 이 지도에는 독도가 정 위치가 아닌 울릉도의 서쪽에 그려져 있다. 이는 당시에 본토에서 울릉도에 갈 때 해류의 영향으로 독도에 먼저 도달하고 울릉도로 갔기 때문에 독도를 더 가깝게 그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 왕반의 천하여지도를 바탕으로 1603~1650년경 조선에서 수정하여 새로 제작한「조선본 동아시아 지도」(17세기 초)의 한반도 부분에도 울릉도와 독도가 명확히 표시되어 있다. 이 지도는 현재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중이다. 1785년의「삼국접양지도」는 일본의 하야시 시헤이(1738~1793, 일본 실학파의 최고 학자)가 그린 지도로서, 국경과 영토를 명료하게 구분하여 채색을 한 지도이다. 독도는 조선의 색채인 황색으로 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것이란 표기까지 하였다. 1855년 김대건 신부의 지도를 지리학자 말트 브룅(Malte-Brun)이 축소하여『파리지리학회지』(1855)에 게재한 지도에도 울릉도는 ‘Oulamgto’, 독도는 ‘Ousan’이라고 역시 정확히 표기가 되어 있다.
👏👏👏
헐 👍👍👍👍👍👍👍💕💕💕💕❤❤❤❤❤❤❤💌💌💌💌💌
워허우
대박이시군요!!
👏👏👏👏.👏👏👏👏👏👏👏👏👏♥♥♥♥♥♥♥♥♥♥♥♥♥
요약 좀 하지... 복붙 하시느라 수고하셨수.
한국재능기부봉사단 여러분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대들 진정한 이나라의 애국자들 이십니다
❤,❤
맞습니다 독도는 우리 땅
정 말 우리 땅 입니다
60대인 저도 동참하고 싶네요
우리땅 독도 롤 항상 지킵시다
🇰🇷👯👫👭👬👍👍✌✌✌
화이팅 읭원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영상을 보는데 가슴뭉클하고
눈물이 나는건 저뿐이 아니가 보군요.
우리나라 대한민국 하나 입니다
가슴 뭉클~~
요즘 본 영상중에 최고멋져요
저도함께 하고싶어요
정말 독도는 우리땅~~
젊은 청춘들이 있기에 영원한 우리땅 ~~
지구상에 다케시마는 없다 정신줄 푼 사람들이 표기한 지도에만 있을 뿐 지구상에는 아름다운 독도가 있을 뿐이다
Korea island Dokdo and Dong hae, East sea
2022년 10월...모든지역 다시 보고있습니다.독도는 우리땅!!!
'독도'는 당연히 한국땅입니다~~!!
우리 땅 아닙니다 한국 땅 입니다
ㅋㅋ
“우리” 가 가리키는 대상이 한국아녀도 독도는 한국 땅이다
독도 근처에 얼씬데는
모든것들은 가차없이
격추 또는 침몰해 몰살
해버려
@@whitepak500 ?
오래된 령상이지만 지금도 가슴이 뜨거워져요🎀
대한민국 만세 만세 만만세 🇰🇷
감사합니다 🙏
영상입니다
북괴?
👍👍👍애들아 너희들 완전 짱이야
진짜 진짜 멋있었어✌✌✌
독도가 대한민국이 하나로 뭉칠수 있는 계기입니다~
사랑합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여!
해마다 몇번을 들을때마다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정말 좋아요.
통일되게 여럿이 같이하니까 정말 멋있네요. 연습 많이 한거 같애요. 수고많았어요. 응원합니다.
코로나 물리 치고 전국을
돌면서 계속 하면 좋겠어요
눈물이 나요 애국심을 충전 해요 아이들 교육에서 저격이구요 한국사람들
머리 넘 좋아요 이런 행사를
하시 다니 독도는 당연히 우리땅♡
오늘도 내일도 독도사랑 플래시몹은 계속됩니다.
볼수록 들을수록 뿌듯해지는 영상입니다.
독도는 우리땅 대한민국 한국땅입니다^^ 이영상을 촬영하신분들께 감사합니다^^
최고입니다 ♡♡♡♡♡
이버전의 독도는 우리땅 핸드폰으로 듣는데 매번 들을때마다 울컥울컥,,,
수고하셨습니다 😊 감사합니다.
암요 우리 땅이지요. 독도 화이팅!!
요즘 젊은이들의 멋진 생각과 표현에 다시 한 번 감동입니다
고생 많으 하셨고요~~~
계속 힘내세요~~
너무너무 보기좋아요 멋있고 전국민 학교에도 배우면좋을것 같아요 특히 국회의원님도 회의하기전 인원체크하고 독도는우리땅 리듬에마추어 노래부르고 시작하면 좋을같읍니다
2023년 플래시몹 하면서 정성화 배우님이 안중근 의사 분장하고 나와서 대사치면 진짜 대박일듯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것이요
우리대한민국인들은 항상 멋있고 매력이 넘칩니다~!!!👍✋👊👏😊💖
저도대한민국사람입니다
저도우리나라가힘네라고응원하고있어요대한민국만세~힘내라
오늘 3월 1일 입니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오늘 이 영상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후손들이 잘사는 나라가 되으어서면 좋겠습니다. 또한 역사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다들건강하시고 대한민국 만세. 👏👏👏👏✊✊✊🇰🇷🇰🇷🇰🇷🇰🇷❤🌹
笑わせんな😂
정말 가슴 뭉클해집니다.
고맙습니다.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모습에 감동하게 되네요.
온국민이 하나 되는 그날까지
독도사랑 플래시몹은 계속됩니다._^♥_
내 년에 함깨 독도 플레시몹 공식일정 전국 투어 편 꼭 기대합니다 독도 우리땅 입니다 꼭 우리 다같이 온국민이 다같이 할수있도록 기대합니다 ~
💯💯💯💯💯💯💯💯♥♥♥♥♥♥♥♥♥♥♥
여러번 본 영상인데도 눈물이 납니다....
광화문 광장 가끔씩 독도 노래 틀어 줬으면 좋겠다.두번다시 일본 넘보지 못하게.독도 노래들면 가슴이 뭉클해져 눈물난다.
국뽕에 흠뻑 취하고 갑니다.자랑스런 한국민들 사랑합니다
OMG THIS IS WHERE I AM DESTINED TO LIVE!!!!!!!! Imma move to South Korea when I grow up!! I love everything about Korea! I love the food I love the ppl I love Kpop I love K-dramas! I LOVE EVERYTHING ABOUT KOREA!! 한국 사랑해요~!!!!❤ I ❤ SOUTH KOREA
전국적으로.매일두번식.했서며.조게네요
우리의 져력을 다시한번 보여주고싶내요
다시힘을합하여 일어나봅시다
가슴이 ......감사합니다.
멋지다. 대한민국 희망이 있다. 학생 들의 깨어 있는 눈이 아름답다. 계속 했으면 좋겠다.
이 나라의 미래들이 독도를 수호하려 한마음 한 뜻으로 똘똘 뭉쳐 있으니 고맙고 감격할 따름이다
우리 학생들 너무 장하다
독도는 우리땅 입니다.
우리가족도 동참합니다
독도프로젝트 희망입니다
후배님 들 고마워 😊
애국심이 불타오릅니다 우리나라 지켜주신분들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자랑스럽습니다!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나네요....
"고고 독도" 독도는 우리땅~!!!
계속 되어야합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미래가 밝습니다^^
힘내자 대한민국!
아 눈물나.
지금도 기습적으로 상시해주세요
일본불매 지구끝날까지!!!!!!!
일본 불매는 자손 대대로 이어질것입니다 . 영원히 ...
와 우리 젊은 학생들 깨어있구나 대한민국 미래가 밝네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게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 만세
뒤 늦게 최근에 올린 영상 전부를 봤습니다. 근데 요새는 왜 안하시나요? 코로나 물러 가면 1년에 한 두번이라도 해 주세요. 응원합니다. 홧~팅~!!!!
독도는우리땅 초5인데 지금 우리5학년이 왜우고있어요.독도 우리땅!!!!
日本領土だ!アホ!
닥쳐^^ 타카노리 야마시타 씨
포도 TV 엿 이아니라 욕입니다
크리퍼 크리퍼 엿같다는거죠 욕같다?말이이상하지않아요?
저도 학교에서 체육대회날에 한데요!!
이런일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 열심히 해주셔서 앞으로 전 세계에 독도가 한국땅이라는걸 알려주세요^^
2022년 모든 지역 영상 다시보고있습니다!자랑스럽습니다.독도는 우리땅!!
독도는 우리땅 🎉🎉🎉❤❤❤
아 너무 울컥하네요....너무 멋지고 독도 사랑 참여하신 모든 분들에께 찬사를 보냅니다...
2021년에보시는 분손!!
손!🖐
노래존나신나는데 왜눈물나냐ㅜㅜ뭉클하다ㅜㅜ
여러분이 진정한 아
애국자임니다🎉🎉🎉
여러분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아시죠
독도는 우리 대한민국 땅인거
日本の領土だ。
Takanori Yamashita 꺼지 라고
독도는 우리땅!
독도플래시몹 영상보며 눈물이....독도는 당연 우리땅이고 대마도도 꼭 되찾아야할 땅
멋쟁이 애국자들~
이런 젊은이들이있어 아직은 희망이 넘치는 대한 민국입니다 정치 하시는분들 본받으시고 이런 젊은이들이 해왜에 나가서도 공연할수있도록 나리님들 해왜 연수비 반납하시고 적극 지원 해주세요
멋진동영상감상합니다
절은세대하나가된모습보기좋습니다밝은 마래가보입니다
울컥합니다~
독도는 우리땅~ 대한민국 화이팅!!
우리 국민들 회이팅!!!!
가슴이 뭉클합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매우 밝습니다
아름답고 멋진 젊은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60대지만 만약 일본 아이들과 전면전이 벌어
진다면 전장에 나아가 밥이라도 포탄이라도
나를 것입니다
독도를 수호하고 고토를 수복하는 그날까지
대한민국은 영원할 것입니다
간도와 대마도의 수복을 위하여!!!!
독도는 우리땅이야 일본아!
@@사랑밖에몰라 ㄱㅊㄱㅊ 일뵹신년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이노래는 질리지않다능ㅇ..
당근이지ㅡ
멋지다
대한민국
세계에서젤좋은나라
대한민국이다ㅡㅡㅡㅡ
예쁜 녀석들 😘😘😘
독도 플래시몹 영상은 몇년이 지난건데도 볼때마다 웃으면서 눈물나고 눈물나면서 웃는다.
젊은이는 주인이니
잊지마시고 이런 기회 자주 자주 가져 주세요 행복합니다
미국사는데 눈물과웃음이 같이~~~~고맙고 ~감사하고~~독도는 우리땅!!!
독도랑 동해는 우리땅이다
감사합니다
The title is Dokdo is Our Korean Territory.
몆번을.봐도.감동.일본.너희는.이리할수있냐.이젊은이들이.산증인.참가한젊은이들.모두가.애국자네요.고맙고.수고했어요.독도는.우리나라랍니다
이 영상 볼때마다 .. 눈물이 납니다.. 독도는 우리땅입니다!!!
독도는우리땅입니다^^
sunnywind02 가사에 있듯이 러일전쟁 후에 일본이 우리 독도를 지네들 땅이라고 우기고 있다. 그리고 다케시마가 아니라 독도라고 독!도! 지네들이 역사를 외곡하면서까지 독도를 돈벌이로 쓸라고 어떡해서든 뺏을라고 지랄 일까 ㅉㅉ
글고 독도는 위치적이나 지리적이나 역사적이나 어떡해 봐도 한국땅이거든?
그러니깐 님은 니나라로 돌아가세요 한국사람이면 진짜 한국인도 아니다
sunnywind02
다케시마는 일본 땅 맞음.왠지 아셈?님들이 만든 가상의 땅이니깤ㅋㅋㅋㅋㅋㅋㅋㅋ
가상의 땅 잘 가지시고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라는것만 잘 알아두세요.
억지로우기면죽여버린다👿
학교체조로정하시오
@@sunnywind02 여기도 있네 좆더러운종간나새끼 번역기 하나하나 돌려가며 말하는거 존나 한심하다
뚯깊은 좋은 연상~~가슴 뭉클합니다~~
좋은 영상 볼 수 있어 좋았고~ 감사합니다~~^^
건강한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서 한번더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당신이 한번더 필요한 시간이라 생각을 합니다
이런좋은행사 계속해주시면 감사합겠습니다
독도는 한국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