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구 선수의 사망후 김득구 선수의 어머니가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으며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때 심판을 보았던 미국인 심판도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맨시니도 그에 따른 정신적 후유증을 심하게 겪었습니다. 이후 맨시니는 한국에 온적이 있었는데 장성한 아버지 없이 자란 김득구의 아들이 의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아들은 거절했습니다. 이때 맨시는 그 소식을 듣고 이해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김득구 선수....국민학교 5학년 때로 기억이 됩니다. 바깥에서 놀고 방안에서 사촌 형, 동생들과 TV를 봤는데, 김득구 선수와 맨시니 선수의 권투 시합이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한국선수가 미국선수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을 했고, 금방 경기가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저는 우리나라 권투 선수 중에서 김득구 선수를 가장 존경합니다. 한치의 물러섬이 없이 세계 챔피언 맨시니와 불꽃처럼 싸우는 모습을 보고 정말 감동을 받았습니다. 정말 최선이란 단어를 알려준 권투 선수 였고, 모두가 질거란 예상을 뒤짚고 맨시니를 거세게 몰아 쳤던 김득구 선수.....자신의 삶에서 최선의 최선을 다한 그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비록 모든 것을 하얗게 붙태우고 하늘로 돌아가셨으나, 그때 그 경기처럼 자신의 삶에 진실로 최선을 다해서 모든 혼을 쏟아 붓고, 모든 걸 다 불태운 투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까지도 큰 감동과 귀감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맨시니와의 경기가 끝날 때 정말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몇일 동안 났던 기억이 납니다. 잠자기 직전에도 그 상황에서도 링을 붙잡고 일어 서려는 김득구 선수님이 지금도잊혀지지 않네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랍니다. 김득구 선수님은 최선이란 단어를 가르쳐준 최고의 복서이셨습니다. 영원히 Respect 드립니다. R.I.P. 감사합니다.
그 당시 진짜 대단했었죠 세계챔피언 박종팔 선수. 어릴때 시합 보면서 흥분해서 미쳐날뛰던 기억이 나네요ㅋㅋ 그때는 복싱이 세계적으로 인기스포츠여서 선수층도 두터웠고.. 그만큼 세계챔피언타이틀은 위대한 업적이죠. 한국인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느끼게해준 박종팔 선수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당시 국민학교 5,6학년쯤 아버님 회사 앞의 고기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봤던것 같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복싱의 인기는 어마어마 했었고, 김득구 선수 경기도 온국민의 관심이 쏟아진 경기였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게 김득구 선수 쓰러지고 링줄을 잡고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 갖은 힘을 쓰던 모습,,, 참 오래된 기억인데 그 모습이 기억이남,,,
김득구 사망 당시 그녀의 약혼녀는 임신중이었고 그후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는 자라서 치과의사가 되었고 미국의 만시니를 찾아가 조우 하면서 말했다 너의 잘못이 아니다 이말은 들은 만시니는 오열했고 김득구 사망 당시 후유증으로 만시니 또한 선수생활을 접고 알콜중독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김득구 아들과의 만남이후 알콜중독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실화 입니다 박종팔 선수는 친구 김득구 사망후 챔피언으로 승승장구하다 87년도 타이틀을 뺏기고 88년도 백인철 선수와의 라이벌전에서 케이오패 당하고 은퇴했습니다 박종팔 이후 한국권투계는 중량급에서 챔피언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김득구 선수가 레이 맨시니와 붙게 된 건 세계적인 프로모터 밥 애럼의 농간이 크게 작용했다고 하더군요. 그 당시 김득구는 세계무대 경험이 없어 세계복싱계에서는 무명에 가까웠죠. 그런 선수를 왜 WBA 랭킹 1위에 올렸냐는 거죠. 김득구 선수가 탑급 선수들과 싸울만한 기량을 아직 갖추지 못했다는 게 당시 복싱계 사람들의 평이었거든요. 김득구의 프로모터도 인정했고. 레이 맨시니가 챔피언으로 있던 당시 그 체급 랭킹에는 쟁쟁한 선수들이 있었죠. 하지만 밥 애럼이 랭킹을 조작해서 김득구를 맨시니의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삼은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당시에 꽤 많았었죠. 밥 애럼은 돈 킹과 함께 당시 세계복싱계 프로모터의 양대 산맥이었죠. 매니 파퀴아오의 프로모터로도 명성을 날렸고.
당시 tv로 봤지만 정말 감동이 밀려왔었죠. 박종팔 아저씨가 앞으로 넘어지는데 진짜 역정승을 하는데 정말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좋았었습니다. 김득구 선수도 tv로 경기를 보았는데 너무 안타깝더군요. 당시는 죽을 각오로 다들 하셨을 거에요. 너무 안타깝더군요. 아마 제 기억으로는 약혼녀도 있었고 뱃속에 아이도 있었다고 들었던것 같아요. 맨시니가 나중에 한국에 방문해서 묘소도 찾았다고 하더군요.
그때 그 시절 박종팔님 경기 너무 잘봤습니다
한방에 모여서 시청하며 다같이 소리 지르며 응원하고~~~
김득구.최요삼 운명을 달리한 한국의 투지를 보여준 이 두분의 영화와도 같은 앤딩에 다시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릴때 기억이지만 당시 박종팔 선수님은 얼굴도 잘생기셨고 키도 훤칠하셔서 국민학생이었던 제 눈에 너무 멋져 보였음..
그때가 몇년도 였었죠
박종팔 선수 에게. 반했던때요
@@권투중계방송TV이교덕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안나지만 80년대 초반 일겁니다.친형님들과 나이가 20년 가까이 차이가 나다보니 형님들 덕에 당시 권투경기들을 보면서 자랐었죠.
김득구 선수의 사망후 김득구 선수의 어머니가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으며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때 심판을 보았던 미국인 심판도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맨시니도 그에 따른 정신적 후유증을 심하게 겪었습니다. 이후 맨시니는 한국에 온적이 있었는데 장성한 아버지 없이 자란 김득구의 아들이 의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아들은 거절했습니다. 이때 맨시는 그 소식을 듣고 이해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맨시니와 김득구씨의 아들과 만났습니다
사고이후 맨시니가 아내와 아들한테 자기의 전재산을 주겠다하면서 용서를 구하죠
하지만 아내와 아들이 만나주지도않았고 거절함
몇년이흐르고 김득구아들이 의사가 됐다는소식을듣고 엄청기뻐했고 만남까지 하죠
맨시니 선수도 멋지네요
김득구 사망후 돈때문에 가족들 불화가 심했다는 말도 있던데요
@@두목꺽정 팩트임?
김득구 선수....국민학교 5학년 때로 기억이 됩니다. 바깥에서 놀고 방안에서 사촌 형, 동생들과 TV를 봤는데, 김득구 선수와 맨시니 선수의 권투 시합이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한국선수가 미국선수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을 했고, 금방 경기가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저는 우리나라 권투 선수 중에서 김득구 선수를 가장 존경합니다. 한치의 물러섬이 없이 세계 챔피언 맨시니와 불꽃처럼 싸우는 모습을 보고 정말 감동을 받았습니다. 정말 최선이란 단어를 알려준 권투 선수 였고, 모두가 질거란 예상을 뒤짚고 맨시니를 거세게 몰아 쳤던 김득구 선수.....자신의 삶에서 최선의 최선을 다한 그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비록 모든 것을 하얗게 붙태우고 하늘로 돌아가셨으나, 그때 그 경기처럼 자신의 삶에 진실로 최선을 다해서 모든 혼을 쏟아 붓고, 모든 걸 다 불태운 투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까지도 큰 감동과 귀감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맨시니와의 경기가 끝날 때 정말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몇일 동안 났던 기억이 납니다. 잠자기 직전에도 그 상황에서도 링을 붙잡고 일어 서려는 김득구 선수님이 지금도잊혀지지 않네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랍니다. 김득구 선수님은 최선이란 단어를 가르쳐준 최고의 복서이셨습니다. 영원히 Respect 드립니다. R.I.P. 감사합니다.
준비된 사람은 죽음사를 두렵지 않다
김교신 1927 ~ 1942 성서조선志
일제강점기 기독교 ✝️ 월간잡지
Nod 불안감😢기祈빎 도禱빌다 😢
현실속에서 허虛 공空을 채워주세요
잘 믿고 잘 사는 법 📺 티비방송 ✝️ ☦️
AD90년 사도요한 유대교✡️기독교✝️ 분리되다
교회⛪️성경책📖사도신경권위자생겨나다
일시무시일 앙명인중천지일 일종무종일 단군천부경👍
AD90년 교회⛪️성경 📚 사도 바울
얌니아 바리새파 랍비회의 양갈래길
사도신경 😮 구약 신약성경 😅 😅
하나님 외 예수 가말리엘 랍비,아브
라함 이삭 야곱 아닙니다 😮유대교
😮기독교로 🐑 ♈️ 🐑 가라지들아
준비된 사람은 죽음사를 두렵지 않다
김교신 1927 ~ 1942 성서조선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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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함 이삭 야곱 아닙니다 😮유대교
😮기독교로 🐑 ♈️ 🐑 가라지들아
말 존나 많네
@@대구패피 ㅋㅋㅋㅋㅋㅋㅋ
초등학교때 영화로 접했던 김득구 선수 이야기인데, 지금봐도 슬프네요~
초딩시절 학교 강당에서 전교생 김득구선수 소재 영화 봤는데 슬펐던 기억이 납니다 ㅠㅠ
김득구 선수 묘를
한번 찾아갔을때는 묘 상태가
많이 좋은상태가 아니였습니다.
관리 하는사람이 없다보니..
제가얼마전. 한번도 찾아갔을때는
묘 이장을 한거 같더라구요
이장했는 묘라도 한번 보고 싶었는데.
아쉽더라구요
온국민의 응원을 뒤업고
맹렬하게 싸웠던 김득구
동양 타이틀전 부터
전국민적인 관심사 를
받았던 박종팔선수의 인기
권투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진짜 옛날 우리나라 스포츠 선수들은 헝그리정신으로 대한민국의 강한정신을 보여줬던거 같아서 슬프면서 감동적인듯..ㅜㅜ
4분이 동시에..... 가슴아픈사건이네요...처음알았습니다....고인의명복을 빕니다.~
난 왜 눈물이 날까..
김득구선수의 사망으로 15라운드였던 권투경기가 12라운드로 조정됨. 저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 지금봐도 안타깝네요.
@하고싶은대로 난 몰랐음. 3대성 덕분에 잘 알고감.^^
@하고싶은대로 니가 모르는거 남들은 다 알고 있음
상대 선수도 죄책감 트라우마 가지게되었다고..
@하고싶은대로 모르는사람 꼽주면 지는 올라가는 생각을가진 저급한 인간이네 ㅋ
장정구도 15라운드까지 했던 기억이...
그 당시 진짜 대단했었죠 세계챔피언 박종팔 선수. 어릴때 시합 보면서 흥분해서 미쳐날뛰던 기억이 나네요ㅋㅋ 그때는 복싱이 세계적으로 인기스포츠여서 선수층도 두터웠고.. 그만큼 세계챔피언타이틀은 위대한 업적이죠. 한국인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느끼게해준 박종팔 선수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지금도 어릴적이지만 김 득구 선수 마지막 경기가 너무 기억에 남습니다
이더꾸가 본명이라해야됨
초딩때 가야르트전 진짜 본방 사수하고, 담날 학교가면 복도에서 애들이랑 그대로 재연했었는데,.. ㅎㅎㅎ 박종팔, 장정구, 유명우, 문성길,.. 세계타이틀전이 매달 한번이상 국내에서 벌어지고 중계되던 그때가 너무 그립습니다.
국민학교시절 아닙니까?
어릴때 이계인씨가 주인공으로 울지않는 호랑이는 영화를 tv에서 봤습니다.이미 30년도 훌쩍 지난 시간인데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김득구...
저두 봤습니다. 기억이 나네요^^ 이계인씨 주연,,,
김득구역엔 유오성보단 이계인이 더 어울림
비운에복서 김득구선수를 추모하며 강한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은 투지를 감사하며 사랑합니다
같은 또래의 사람으로 너무 마음이 아프고 한국 최고의 복서라 상각하며 존경합니다.
고딩때 챔피언라는 영화를 먼저 보고 그다음에 경기를 먼저 봤는데 그 충격은 정말 이루 말할수가 없네요 ㅠㅠ 레전드 선수이라는건 변함이 없습니다 ㅠㅠ
김득구 선수 당시 생방송으로 시청했는데 안타깝게도~🙏R.I.P
홍수환,박종팔,장정구,유명우,문성길,김광선, 故 김득구
저 당시에 한국 복싱은 전성기시절이쥬.
"나에게는 최후까지 싸울 용기와 의지가 있노라" 고 김득구
"이기지 못하면 살아돌아오지 않겠다"
김득구 선수의 투혼
말은 씨가된다
덩치에 주늑도 안들고 진짜 최고의 선수십니다
성냥갑으로 만든 관을 항상 지니고 다녔던 김득구 선수.. 챔피언이 되지 못하면 살아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그의 투혼이 참으로 뜨겁습니다.
1:55 이걸 맞고도 아예 안무너진게 참 신기하네 상대도 대단하다
박종팔 선수의 오랜 팬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뻐했던 경기는 나경민 선수와의 2차전, 가장 마음 아팠던 경기는 오벨메이야스의 타이틀도전자 결정전 (이긴 선수가 헤글러에게 도전) 이었습니다. 박종팔 선수의 시원시원하고 화끈한 경기는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어렸을적 저 경기를봤는데, 박종팔이 다운되도 진다고 생각안했다. 그때 한국선수들 투지 대단했슴..
제가 제일 존경하는 분입니다
배고픈시절. 가난한자들의
희망 이였던 복싱. 김득구를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아마 내 생애 스포츠 중계를 보며 남자가 처음으로 울면서 본게 김득구 선수 경기 였음.아마 대학 2학년 때... 참피언. 김득구!
최고의 테크니션이자 강타자 박종팔 챔프!
맷집.체력이 조금 아쉽지만 레프트 바디는 대한민국 최고!
ㄴㄴ 체력은 쎗어요 체력 약하면 역전승이ㅜ안나왔죠 맷잡이 약해 케이오패가 많았죠
@@guyoungtan 맷집이 약하다기보단 박종팔선수는 대부분가드를 내리고경기에 임했었죠 맞지 않아도 되는 주먹을 많이 맞곤했었죠 동네어르신들도 박종팔선수 저선수는 항상가드를 내리고있다고 걱정도 많았습니다
@@bbangjjogari 그게 맷집 약한거지 강해야 노가드로 하는거지
아직도 기억한다...
당시 김득구는
맨시니를 담구겠다고
관짝을 짜서 가져갔었다.
그때 생각했다. 둘 중 하나는 진짜로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관짝이 진짜가 아니라 성냥갑을 접어서 관같이 만들어 가지고감
@@김치-i5f
당시 기사내용... 김득구는 미국행 비행기에 작은 나무관을 싣고 갔다. 물론 상징적인 것이었지만, 그 각오는 방덕과 같은 것이었다. 김득구는 호텔방에 “맨시니 너는 나한테 죽는다.”는 낙서까지 하며 독기를 발산한다.
@@서울유감 그게 성냥갑으로 만든 모형관이라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종팔형님 멋지십니다
안타까운 김득구 선수..유복자였던 아들 잘 지내시죠?
어머니의 눈물을 잊을 수가 없네요.😢
와 나경민 선수한테 첫판 지고 99일뒤에 몸 상태가 미쳤네요
배고프던시절 운동할때 다른사람들 대화하는것 들을때 음식 먹을때 먹기는 먹는데 안좋아 한다는 말을 이해 못 했는데 먹고 살만 하니까 그말이 이해가됨
벨트 멋있다. 디자인이 좋아
김득구가 오른 속으로 링줄을 잡고 비틀거리면서 이를 악물고 일어서려는 순간 ,,,
그날 하루종일 식사를 못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당시 중동의 사막에서, 공단의 재봉틀앞에서 쇠깍다가, 다방에서 온 국민이 일어나라 일어나라,,
군대서 상병말년때 파견나갔는데, 그날이 아마 잏요일 이었을겁니다. 열심히 응원했었는데… 당시 같은또래로서 젊음이, 인생이 아깝더라고요.
오랜세웧이 흘렀네요.
다방에 사람들로 꽉짰고
각 가정마다 온가족이 모여
김득구 선수를 응원했었습니다
길거리는 텅비고. 버스도
택시 기사들도 모두
차 세워놓고 텔레비전 📺
있는곳으로 모여들었죠
본인이 하고싶은거하다가 최고의자리에서 안타깝게 가셨지만 본인도 후회는 없으실겁니다
어린 나이에 김득구 선수의 경기를 보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ㅠ.ㅠ
김득구* 박종팔 선수 함께
한솥밥 먹는 같은 동아 체육관
소속 이었읍니다
지금도 그광경이 아른거린다 그때를 생각하니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오직 생계를 위해 노력했고 홀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어린나이에 투혼의 정신을 발휘하여 잘싸웠는데 너무안타까웠다
1980년대 🇰🇷 권투의 최전성기 였다고 생각합니다🤔박종팔,백인철,김철호,장정구,유명우,비운의 파이터 김득구 선수 모두가 헝그리 정신으로 대변되는 투혼의 복서들 이었습니다🧐거기에다 1986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12체급 전체를 석권하는 역대급 전적을 올렸던게 기억에 새롭습니다🤣
1986년 부산 아시안게임인가요?
@@행복한종민 1986 아시안게임이 서울에서 개최된거 세상이 다아는데 부산이라고 물어보면 어떻게 댓글 달아야 됩니까?
@@zuma7624 급식이라 그래요 ㅋㅋ
@@zuma7624가르쳐 줍시다. 어쩌겠어? 쳐 무식해서 모르는거 알려줘야지.
김득구 선수가 객지에서 목숨을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슈퍼 플라이급의 김철호 선수가 선수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은퇴해버립니다
내일의죠 현실판같아요...
너무 슬프다..
득구형님...그날 너무 슬펐습니다.
당신의 정신 근성 존경합니다...
당시 국민학교 5,6학년쯤 아버님 회사 앞의 고기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봤던것 같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복싱의 인기는 어마어마 했었고, 김득구 선수 경기도 온국민의 관심이 쏟아진 경기였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게 김득구 선수 쓰러지고 링줄을 잡고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 갖은 힘을 쓰던 모습,,,
참 오래된 기억인데 그 모습이 기억이남,,,
무식했던 시절 15라운드 ㄷㄷㄷ
선수들 너무 힘들었겠다 ㅜㅜ
마라톤보더 더 힘들었을듯..
챔피온 레이 멘시니, 도전자 김득구 이 두사람의 경기는 정말 복싱팬들에게 두번 다시 볼수 없는최고의 경기이자, 세상에서 제일 슬픈 경기였다.
😢😢😢
김득구 사망 당시 그녀의 약혼녀는 임신중이었고 그후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는 자라서 치과의사가 되었고 미국의 만시니를 찾아가 조우 하면서 말했다 너의 잘못이 아니다 이말은 들은 만시니는 오열했고 김득구 사망 당시 후유증으로 만시니 또한 선수생활을 접고 알콜중독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김득구 아들과의 만남이후 알콜중독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실화 입니다 박종팔 선수는 친구 김득구 사망후 챔피언으로 승승장구하다 87년도 타이틀을 뺏기고 88년도 백인철 선수와의 라이벌전에서 케이오패 당하고 은퇴했습니다 박종팔 이후 한국권투계는 중량급에서 챔피언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대 최고의 복서
김득구!!!! 영원하라
나경민선수 근황도 궁금합니다
저때는 모든게 죽느냐 사느냐 였던 시절이지..
김득구 선수가 레이 맨시니와 붙게 된 건 세계적인 프로모터 밥 애럼의 농간이 크게 작용했다고 하더군요.
그 당시 김득구는 세계무대 경험이 없어 세계복싱계에서는 무명에 가까웠죠. 그런 선수를 왜 WBA 랭킹 1위에 올렸냐는 거죠.
김득구 선수가 탑급 선수들과 싸울만한 기량을 아직 갖추지 못했다는 게 당시 복싱계 사람들의 평이었거든요. 김득구의 프로모터도 인정했고.
레이 맨시니가 챔피언으로 있던 당시 그 체급 랭킹에는 쟁쟁한 선수들이 있었죠. 하지만 밥 애럼이 랭킹을 조작해서 김득구를 맨시니의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삼은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당시에 꽤 많았었죠.
밥 애럼은 돈 킹과 함께 당시 세계복싱계 프로모터의 양대 산맥이었죠. 매니 파퀴아오의 프로모터로도 명성을 날렸고.
1:58 가야르도 아싸 호랑나비 다운
1회 박종팔처럼 앞으로 다운 되는 것도 위험한데 저렇게 호랑나비 다운되면 끝났다고 봐야죠
김득구선수안타까워요ㆍ고인의명복을ㆍ빕니다
아직도 가슴이 찡한 김득구
이철원.송재익.임주완케스터 님들이 그리워지네요.
당시 tv로 봤지만 정말 감동이 밀려왔었죠.
박종팔 아저씨가 앞으로 넘어지는데 진짜
역정승을 하는데 정말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좋았었습니다.
김득구 선수도 tv로 경기를 보았는데 너무 안타깝더군요.
당시는 죽을 각오로 다들 하셨을 거에요.
너무 안타깝더군요.
아마 제 기억으로는 약혼녀도 있었고
뱃속에 아이도 있었다고 들었던것 같아요.
맨시니가 나중에 한국에 방문해서 묘소도 찾았다고 하더군요.
고인이되신 김득구 선수시절 저..14라운드는 대체 와 살인적이네요
내가 동아체육관 다닐때 세계타이틀전 앞둔 박종팔 선수와 스파링했었는데 가야드로 선수의 어리둥절한 표정 이해하지. 나도 저랬으니까..당시 난 라이트급이었으니까..낮인데 별들이 보이더군. 그 때 동아체육관은 충무로 대한극장 옆에 있었지.
김득구 맨시니 경기봣는데
ㅠ 정말 잘사웠는데 안타값네
199 크리스마스 파티 때 친구들과 플레이공의 스포츠토크로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내일의죠 모티브가 김득구쥬?
일본 선수입니다
지금도 생생합니다
초4때
아버지랑 같이
14인치 흑백티비로 봤던 기억이ㅜ
명복을빕니다
WBA S 미들급 세계챔피언
박종팔💥백인철
이 생의 삶이 매 맞고 살 팔자라니~~그렇게 살수밖에 없엇던 환경이 ~~ 영면하소서
명복을 빕니다.🙏
김득구 선수님!
영면 하십시오.
종팔 헝님 아 옛날이여
아!김득구! 가슴 아파요
전설이여
12:00 나경민 선수도 대단하네..저런 바디를 몇번이나 맞고도 계속 싸우시네 ㄷㄷ
미친 14라운드.... 물론 지금은 바꼈지만. 저게 인간이 뛸 수 있는 라운드냐
200 새해에는 Playgong으로 색다른 스포츠 이야기로 시작해봤어요! 상담만 해도 만원 보너스까지!
나경민 선수님 보고싶당 ㅠ ㅠ 전혀 방송에서 근황같은걸 모르겠엉 ㅠㅠ
그당시 해글러,레너드 같은 외국선수와 대결을 하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아무도 개러티 때문에
시합이 성사가 안된 것 같습니다.
그랬으면 죽었을듯
김득구 아들은 아버지도 몰랐는데 권투하고 싶다해서 엄마 식겁하게 하드만 지금은 치과의사랍니다
저당시에 wbc혹은 wba에서 미들급 챔피언을 동양인이 한다는게 말이 안되는 정말 기적같은 일이었죠 아마 지금도 그럴걸요
슈퍼미들급 이었습니다
미들급 세계도전은
도전자 결정전에서
박종팔 선수가 오벨메히야스와
적지에서 대결에서 지고말아
세계미들급 도전은 물거품이
되었죠 박종팔 선수의 인기는
대단하였죠 온국민 열광적이고
신들린것 처럼 흥분하고 응원을 보냈습니다
@@권투중계방송TV이교덕 미들급 도전자 결정전에서 오벨메히야스에게 이겼어도 챔피언 되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그 당시 미들급은 마빈 헤글러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으니까요.
김득구비운의복서지만최선을다는것본바다야지요
나경민 선수 근황을 알수가 없네요.
비가 엄청나게 오는 날이었다
리버샷 맞고 패하고 리버샷으로 이기네. 대단들하다.
벨트 되게 멋있다
울지 않는 호랑이 김득구 영화 초등때 본 기억이 있네요...
김동현선수 귀엽다.ㅋㅋㅋ
주먹 진짜 빠르다
가야르도 경기는 진짜 확실하게 보내버리는게 뭔지 보여준 경기였어요..ㅋㅋ
애초에 김덕구군은 세계1의랭커가 될 기량이나 링케리어가아니였다
아르게요에게 ko패한후 WBA챔프가된 멘시니가 쉽게 방어를할수있게 프로모터 밥앨럼이 랭킹을조작한것이 불행의시작이였다
문제는 김득구선수가 15회까지 가버린것이죠.
자기들은 다 설계를했는데.김득구 선수의 투지는 설계하지 못한겁니다.
결국 맨시니도 망쳤고.심판도 망쳐버린 비극적인 설계가 되버린겁니다.
레전드
밥 먹고 보고 있었는데 순간 울컥 하면서 가슴이 먹먹하네요
혹시 벨트는 영구 소장 인가요? 챔피언 타이틀 상실하면 반납 인가요?
단체마다 다르지만 거의 챔피언이되면 반납없이 가져갑니다 예를들어 유엡시경우 챔프전이있으면 그때그때 벨트를 만들어요 그래서 조제알도나 많이 방어전성공한 선수들은 집에 벨트가 많아요
@@qew8208 답 감사 합니다
벨트는 내가 땃을 때 이미 소유 도전자가 이기면 새벨트를 단체에서 다시 주는거지 벨트로 돌려막기를 왜 합니까 발상 하곤 ㅎ
가야르도...네임밸류가 좀 있었던 선수였는지 궁급금하네요.
예전에 영화 챔피언 보고 알게되었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멘시니도 저날이후 비운의 삶이
이거 중계보고 열받아 죽는지 알았네
진정한 허리케인 조의 주인공이라고 본다 하얗게 불태운 김득구선수
감독이 중단만시켜서도 ᆢ 넘슬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