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목가적 풍경이 힘겹게 품어 감추어도 배고픔의 숙명은 참으로 가혹했다 세상은 산으로 만들어졌다 문명은 멀리 있는 메아리였다 시집가며 원시를 벗어났지만 더 낮은 산에 갇힌 것 뿐이었다 7남매의 맏며느리가 되었건만 손바닥만한 땅떼기도 없었다 살아서 뭐 하나 기가 막히는데 동네 어르신 거친 손을 읽었다 “앞 뜰 논도 내 논 뒤 뜰 논도 내 논” 맨 손으로 청석을 깨 밭을 일구었다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세월도 잊은 채 남의 땅이라도 빌려 죽기살기로 뒹굴었다 안 입고 안 먹고 안 놀고 좀 모라자란 듯이 흙에만 살았다 몹쓸 가난은 잡초보다 질겼다 그렇게 살아보려고 몸서리쳐도 누추한 시간의 늪에 빠져들었다 “앞 뜰 논 도 내 논 뒤 뜰 논도 내 논” 자식들도 헐벗은 어미가 부끄러웠다 희로애락을 잊었느냐고 했다 일만 하려고 세상에 왔느냐고 하면 이래 사나 저래 사나 죽으면 똑같다 했다 잠 자는 게 제일 편하고 게으른 세월이나 얼른 가서 영영 눈 감는 게 소원이랬다 한 번도 내 인생은 없었다 부모와 서방과 자식의 그림자일 뿐이었다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 하면서 자식들 살림살이 살얼음판 같은 것도 죄 많은 당신 탓이라 눈시울 붉혔다 좋은 세월에 밥은 다 먹고 사는데 배 곯던 예전보다 더 허기진다 했다 몸은 고목이 되어 휘어지고 부서져도 마음은 다시금 밭고랑에 쪼그리고 앉았다 “앞 뜰 논도 내 논 뒤 뜰 논도 내 논” (2011. 4. 3 오후 9:13페북 입력) 정덕길
어머니
목가적 풍경이 힘겹게 품어 감추어도
배고픔의 숙명은 참으로 가혹했다
세상은 산으로 만들어졌다
문명은 멀리 있는 메아리였다
시집가며 원시를 벗어났지만
더 낮은 산에 갇힌 것 뿐이었다
7남매의 맏며느리가 되었건만
손바닥만한 땅떼기도 없었다
살아서 뭐 하나 기가 막히는데
동네 어르신 거친 손을 읽었다
“앞 뜰 논도 내 논 뒤 뜰 논도 내 논”
맨 손으로 청석을 깨 밭을 일구었다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세월도 잊은 채
남의 땅이라도 빌려 죽기살기로 뒹굴었다
안 입고 안 먹고 안 놀고
좀 모라자란 듯이 흙에만 살았다
몹쓸 가난은 잡초보다 질겼다
그렇게 살아보려고 몸서리쳐도
누추한 시간의 늪에 빠져들었다
“앞 뜰 논 도 내 논 뒤 뜰 논도 내 논”
자식들도 헐벗은 어미가 부끄러웠다
희로애락을 잊었느냐고 했다
일만 하려고 세상에 왔느냐고 하면
이래 사나 저래 사나 죽으면 똑같다 했다
잠 자는 게 제일 편하고
게으른 세월이나 얼른 가서
영영 눈 감는 게 소원이랬다
한 번도 내 인생은 없었다
부모와 서방과 자식의 그림자일 뿐이었다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 하면서
자식들 살림살이 살얼음판 같은 것도
죄 많은 당신 탓이라 눈시울 붉혔다
좋은 세월에 밥은 다 먹고 사는데
배 곯던 예전보다 더 허기진다 했다
몸은 고목이 되어 휘어지고 부서져도
마음은 다시금 밭고랑에 쪼그리고 앉았다
“앞 뜰 논도 내 논 뒤 뜰 논도 내 논”
(2011. 4. 3 오후 9:13페북 입력)
정덕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