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역사에 추가적인 설명을 드리자면 콘스탄틴이 황위에 오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폴란드 귀족 여성이랑 결혼을 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그리스 정교 국가로서 황제는 물론 그 배우자도 그리스 정교 신자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카테리나 2세 처럼 외국에서 시집온 여자들은 모두 결혼과 함께 그리스 정교로 개종을 했죠. 그런데 콘스탄틴과 결혼한 폴란드 여성은 개종을 거부했고 부인과 황위 중에서 콘스탄틴은 부인의 신앙을 지키게 함으로써 스스로 황위를 포기한겁니다. 니콜라이 1세의 즉위 이후 콘스탄틴은 폴란드 총독에 임명되어 부인의 고국을 다스리게 되었고 이때 바르샤바에 대학을 건립하고 형식적이지만 폴란드 의회도 만드는등 조국 러시아보다 폴란드에 더많은 신경을 쓰지만 1848년 폴란드인들의 봉기로 폴란드에서 쫓겨나게 되고 결국 러시아군을 데려와 자신이 가꾸어온 폴란드를 다시 파괴하는 기구한 운명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의 봉기중 사망한 밀로라도비치 장군은 원래 세르비아 인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저항하는 봉기를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러시아로 도주하면서 밀로라도비치도 러시아군에 입대해서 군인의 길을 걷게 되었죠. 그리고 밀로라도비치는 총만 맞은게 아니라 총검에도 찔렸지만 즉사하지 않고 니콜라이 1세를 만나 마지막 부탁을 할 수 있었는데 그 내용은 자신의 가족들을 보살펴달라는 것과 자신의 마부로 오랫동안 일했던 농노 병사를 농노에서 해방시키고 먹고 살수 있는 재산을 내려달라는 것이었고 니콜라이 1세는 이를 허락합니다. 그리고 무라비예프는 남부연합이 아니라 북부 연합이었습니다.
니콜라이 1세의 비 샤를로테도 프로이센 공주이고 니콜라이 2세의 비 알렉산드라도 독일 여성이다. 유럽 모든 왕실이 정략결혼과 혼혈이다. 러시아 혁명때 알렉산드라가 독일 여자라고 공격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마리 앙투아넷 처럼 시기를 잘못 만난 것이다. 콘스탄친의 부인은 평민이라서 왕따를 당한 것이다.
이상주의에 심취한 청년 장교들의 난은 대게 성공하든, 실패하든 좋게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적어도 제정 러시아에겐 저게 마지막 기회였던 것 같다. 그 뒤로도 백여년간 전제정치를 고집하다가 피의 일요일을 겪고도 정신을 못 차려서 의회를 무력화 할 궁리밖에 할 줄 몰랐던 무능한 제정이 몰락하는건 필연이었으며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진짜 마지막 기회는 세르게이 비테, 표트르 스톨리핀이 마지막 기회였죠. 만약 암살당하지 않았거나 차르의 신임을 얻었다면 러시아의 역사는 아마 아예 바꼈을 겁니다. 내전도 빨간맛의 러시아도 존재하지 않았겠죠. 스톨리핀의 정책과 비테의 정책은 현재 러시아의 개혁과 경제정책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정책이니까요
나폴레옹전쟁으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친척들끼리 나라를 통치하던 왕조국가가 붕괴되고 신분제를 뛰어넘은 나폴레옹의 상비군을 보유한 국민국가로 전환되는 자유주의, 민족주의의 전환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신분해방 토지개혁 상비군과 민족주의 국민국가의 건설에 뒤쳐진 러시아는 짜르가 비테와 스톨리핀의 득세를 용납하지 않았던 것. 결국 루이 16세와 '줄리' 앙뜨와네트의 단두대 처형처럼 러시아 혁명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게 짜르가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한 것 . "두마는 1905년 10월 30일(구력 10. 17) 니콜라이 2세의 10월선언을 통해 성립되었다. 이 선언에서 니콜라이는 두마가 대표자회의가 될 것이며 두마의 승인을 받아 법률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제1차 두마(1906. 5)가 소집되기 전, 1906년 4월에 공포한 '기본법'은 두마의 장관에 대한 통제권과 국가예산에 대한 권리 일부를 박탈하고, 사실상 입법권까지 축소시켰다. 두마는 4번(1906. 5. 10~7. 21, 1907. 3. 5~6. 16, 1907. 11. 14~1912. 6. 22, 1912. 11. 28~1917. 3. 11) 소집되었으나 장관들이나 황제의 신임과 협조를 거의 얻지 못했다. 회기가 아닐 때는 황제의 칙령이 두마를 대신했다. 제1·2차 두마는 간접선거(5개 대도시 제외)로 선출되어, 두마가 보수적이기를 기대한 정부에 의해 농민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대표권이 주어졌다. 그럼에도 두마는 광범위한 개혁을 요구하는 자유주의·사회주의 야당이 의석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제1·2차 두마는 곧 해산되었다(→ 제1차 두마, 제2차 두마). 1907년 표트르 아르카디예비치 스톨리핀 총리는 급진주의자나 소수민족의 대표자 수를 줄이기 위해 쿠데타와 다름없는 조치로 선거권을 제한했다. 그 결과 제3차 두마는 보수적인 성향을 보였다. 제3차 두마는 정부의 농지개혁과 군대개편을 대체로 지지했고, 관료주의 악습과 정부의 자문들을 비판했는데도 5년 임기를 채웠다. 제4차 두마도 보수적인 경향을 띠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됨에 따라, 특히 군수품 공급에서 나타난 정부의 무능력과 태만에 대해 점차 불만을 품었다. 1915년 봄이 되자 두마는 제정(帝政)에 반대하는 세력의 중심이 되었다. 1917년 2월(3월) 혁명 초기에는 두마 임시위원회가 성립되었고 이 위원회가 최초의 임시정부를 구성했으며 니콜라이 2세의 폐위를 받아들였다."
데카브리스트 반란은 기회 축에도 못듭니다. 청년장교들이 나라는 바꿔야된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바꿔야될지에 대해선 자기들도 답이 없어서 어물쩡거리다가 바로 진압되었거든요. 그리고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러시아 제국은 1800년대에 점진적으로 개혁을 진행하면서 느리게나마 상황이 호전되고는 있었습니다. 표트르 스톨리핀의 개혁이 이 호전되는 상황을 온전한 개혁으로 이끌어줄 수도 있었겠죠
역사가들이 말하는 러시아 역사는 서유럽이 지향하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로 발전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먼저, 국가 환경이 다른 나라에 비해 굉장히 광활하고 인구가 분산되어 있어 정말 소수의 지식인만 자유주의에 대해서 알게 되었죠. 그걸 어떤 형식이든지 서민들이 접하고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야하는데, 그러기에는 물리적으로 너무 광활하고 힘들었죠. 더군다나 산업 발전이 도시에 비해 지방은 굉장히 침체되어서 농업 위주의 사회였으며, 농노제가 쉽게 폐지할 수 없는 폐쇄적인 사회였습니다. 결국 현대 러시아까지 미친 영향은 러시아가 가진 천혜의 환경들이 결국 민중들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사회가 하나로 단결하기 위해서는 서유럽의 자유주의 시스템이 아닌 계속 중앙 집권식 사회를 선호할 수 밖에 없게 되고 결국은 오늘날까지 중앙 집권 즉 푸틴에 의해서 러시아 사회는 돌아가게 됩니다. 이게 어찌 보면 후진적일 수 있는데, 그 사회가 환경에 맞게 살아남은거라 볼 수 있습니다. 중앙집권이 아닌 러시아 사회는 더욱더 삶이 피폐해지는 러시아 역사가 있고 현대에는 소련 붕괴회 자유주의 물결로 90년대 러시아 사람들이 서유럽 체제를 향유했으나, 이때도 결국은 너무나 많은 혼란으로 나라가 엉망이 되어 사람들이 더 힘들었던 기억이 있죠. 과거를 보면 볼세비키 혁명전까지 공화정 체제였는데, 그때도 사람들은 더 나아질거라 생각했지만 너무 많은 정치 세력과 그 사상들이 서민들에게 제대로 전파되고 공유할 수 없는 지리적 물리적 러시아 환경으로 나라는 더욱더 피폐해졌었습니다. 결국 러시아 역사에서 러시아인 DNA상 강력한 군주를 중심으로 나라는 뭉치는 경향이 있고, 이러한 군주의 영향으로 나라는 발달한 경험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표트르 대제, 예카쩨린 대제 등이 있죠.
@@ignisilluminati 근데 애초에 미국의 건국을 이끈 주도세력 자체가 영국의 전제권략에 의해 밀려난 자들의 후예라 반골정신이 충만했죠. 그리고 건국군주(?)라 할 수 있는 워싱턴이 첫발을 잘 떼어놔서 성공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는... 워낙 조건이 나빠서 서방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긴 힘들어요. 앞으로 푸틴 이후가 문제겠죠.
와 이 영화를 리뷰해주시네요 제일 좋아하는 러시아 영화에다가 러시아어 공부할때 자막없이 보는건데 감사합니다 / 저때 젊은 장교 반란이 성공했다면 제정 러시아가 아니라 입헌제정국이 될뻔한 일이었는데 만일 러시아 제국이 전제 제정 형태가 아닌 입헌국으로 갔으면 아마 소비엣뜨가 성행 할일도 그닥 없었을건데 말이죠....
니콜라이 2세가 황제로 즉위하면서도 여러번의 기회는 존재했었습니다. 표트르 스톨리핀 총리가 끝까지 생존하여 농지 개혁과 노동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룩하고, 피의 일요일이 아닌 거룩한 일요일로 만들어서 무너지기 직전인 백성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혈우병에 시달리는 병약한 삼대독자 알렉세이 대신에 당찬 큰딸 올가를 차기 황제 후계자로 등극시켰으면 예카테린부르크에 있었던 그 끔찍한 밤은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 아니면 평생 모르고 지나칠뻔한 흥미있는 작품들을 꾸준하게 소개해주시니 구독을 못끊겠네요.. 이 영화 한번 보겠다고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는데 고화질 영상 구하는것도 힘들지만.. 자막은 스스로 번역해서 봐야할판이라.. 고행길 만들어주는 채널.. 사.. 사.. 랑.. 합니다..
7:58 ㅋㅋㅋㅋ 여기에서 나오는 구호는 "Здравствуй ваше императорское величество!"입니다 한국어로 하면 "황제폐하께 인사드립니다!" 정도가 되겠네요. 당연한 말이지만 '폐하'는 황제에게만 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즉위식을 하기 전 임에도 저 부대는 니콜라이를 황제로 추대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이거 진짜 명작입니다. 한국에도 개봉했는지 모르겠는데 전투씬도 재밌고 역사적 의의도 있어서 볼만 해요! 다만 역사 자체가 많이 아쉽고 답답하기 때문에 영화가 재밌다고는 말 못 합니다. 그래도 공산주의가 된 러시아가 약 100년 전엔 저런 혁명의 시도가 있었다는 건 눈 여겨 볼 사실이죠.
2차대전 후에도 복귀한 소련군 장교들 사이에 체제 변화를 요구하는 불온한 움직임이 있어서 흐루시쵸프가 재빨리 체제 완화 정책과 복지 강화 정책을 펼쳤다고 합니다. 러시아 군인들이 유럽에서 오래 싸우고 돌아오면 체제 변화를 요구하는 역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반복될 지 기대해봅니다.
참 웃긴게 정작 근위대 소속들은 대부분이 기득권인 귀족들이 지들 아들들이나 친지들 넣은 곳임 이게 얼마나 심했냐면 알렉산드로스 1세가 좀 작작 넣으라고 할 정도였다 자유주의적이라고 한다한들 데카브리스트 봉기가 ㄹㅇ 기적적으로 성공했다해도 귀족정의 복귀 그 이상 이하도 아님
사실 우리에겐 미국 영국 프랑스만 엄청 주입식 교육되고 러시아나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들은 근대시대 이후부턴 굵직한 에피소드 외엔 잘 모르고 교육자들도 굳이 교육을 안시키더군요. 따지고보면 우리 입장에선 미국보다 러시아쪽 관계사나 그나라 역사를 배우는게 인접국가로서 좀더 이득일 수도 있는데 좀 아쉽긴하네요.
데카브리스트의 난이 서있다 끝난 혁명이라 불리는 이유는 자신들의 혁명이 끝나고 어떻게 농노같은 당대 사회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정하지도 못하고 광장에서 서있다가 포도탄 맞고 끝났기 때문이죠
8:17분에 복무기간 15년으로 줄여준다는 말에 반란에 동참하는 병사들 보고 원래는 몇년이었는지 찾아보니 25년인걸 보고 할 말을 잃었다. 10년 깎아준다는데 당연히 레볼루숑 해야지.
현재 진급이 용이한 해군 기준으로 이론상 만 19세 하사 임관을 해서, 만 33세에 원사를 달 수 있는 데, 이게 14년 입니다. 해상병으로 입대해야 15년 비슷한데...
거의 전 병력의 짬이 원사급...
그 전에는 종신제였습니다. 한번 끌려가면 죽을 때 까지 군인이여야 하는 제도...
10년 깎아 준다는데 저도 바로 참여할 거 같아요
북한보다 더 심하네.. 하긴 거기는 제대하더라도 나라 전체가 감옥 혹은 군대이긴 하지만
@@최우람-d8x 조선왕국은 61세 환갑까지 임.
실제 역사에 추가적인 설명을 드리자면 콘스탄틴이 황위에 오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폴란드 귀족 여성이랑 결혼을 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그리스 정교 국가로서 황제는 물론 그 배우자도 그리스 정교 신자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카테리나 2세 처럼 외국에서 시집온 여자들은 모두 결혼과 함께 그리스 정교로 개종을 했죠. 그런데 콘스탄틴과 결혼한 폴란드 여성은 개종을 거부했고 부인과 황위 중에서 콘스탄틴은 부인의 신앙을 지키게 함으로써 스스로 황위를 포기한겁니다. 니콜라이 1세의 즉위 이후 콘스탄틴은 폴란드 총독에 임명되어 부인의 고국을 다스리게 되었고 이때 바르샤바에 대학을 건립하고 형식적이지만 폴란드 의회도 만드는등 조국 러시아보다 폴란드에 더많은 신경을 쓰지만 1848년 폴란드인들의 봉기로 폴란드에서 쫓겨나게 되고 결국 러시아군을 데려와 자신이 가꾸어온 폴란드를 다시 파괴하는 기구한 운명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의 봉기중 사망한 밀로라도비치 장군은 원래 세르비아 인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저항하는 봉기를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러시아로 도주하면서 밀로라도비치도 러시아군에 입대해서 군인의 길을 걷게 되었죠. 그리고 밀로라도비치는 총만 맞은게 아니라 총검에도 찔렸지만 즉사하지 않고 니콜라이 1세를 만나 마지막 부탁을 할 수 있었는데 그 내용은 자신의 가족들을 보살펴달라는 것과 자신의 마부로 오랫동안 일했던 농노 병사를 농노에서 해방시키고 먹고 살수 있는 재산을 내려달라는 것이었고 니콜라이 1세는 이를 허락합니다. 그리고 무라비예프는 남부연합이 아니라 북부 연합이었습니다.
🔼✂️
아 눈아파
세줄요약!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니콜라이 1세의 비 샤를로테도 프로이센 공주이고 니콜라이 2세의 비 알렉산드라도 독일 여성이다. 유럽 모든 왕실이 정략결혼과 혼혈이다. 러시아 혁명때 알렉산드라가 독일 여자라고 공격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마리 앙투아넷 처럼 시기를 잘못 만난 것이다. 콘스탄친의 부인은 평민이라서 왕따를 당한 것이다.
이 반란의 주도자들이 대거 유형 간 도시가 이르쿠츠크이고 그래서 그 도시에는 지역 다른 도시에 비해 유럽풍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이상주의에 심취한 청년 장교들의 난은 대게 성공하든, 실패하든 좋게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적어도 제정 러시아에겐 저게 마지막 기회였던 것 같다. 그 뒤로도 백여년간 전제정치를 고집하다가 피의 일요일을 겪고도 정신을 못 차려서 의회를 무력화 할 궁리밖에 할 줄 몰랐던 무능한 제정이 몰락하는건 필연이었으며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래도 비테나 스톨리핀 보면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여
진짜 마지막 기회는 세르게이 비테, 표트르 스톨리핀이 마지막 기회였죠. 만약 암살당하지 않았거나 차르의 신임을 얻었다면 러시아의 역사는 아마 아예 바꼈을 겁니다. 내전도 빨간맛의 러시아도 존재하지 않았겠죠. 스톨리핀의 정책과 비테의 정책은 현재 러시아의 개혁과 경제정책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정책이니까요
나폴레옹전쟁으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친척들끼리 나라를 통치하던 왕조국가가 붕괴되고 신분제를 뛰어넘은 나폴레옹의 상비군을 보유한 국민국가로 전환되는 자유주의, 민족주의의 전환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신분해방 토지개혁 상비군과 민족주의 국민국가의 건설에 뒤쳐진 러시아는 짜르가 비테와 스톨리핀의 득세를 용납하지 않았던 것.
결국 루이 16세와 '줄리' 앙뜨와네트의 단두대 처형처럼 러시아 혁명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게 짜르가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한 것
.
"두마는 1905년 10월 30일(구력 10. 17) 니콜라이 2세의 10월선언을 통해 성립되었다.
이 선언에서 니콜라이는 두마가 대표자회의가 될 것이며 두마의 승인을 받아 법률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제1차 두마(1906. 5)가 소집되기 전, 1906년 4월에 공포한 '기본법'은 두마의 장관에 대한 통제권과 국가예산에 대한 권리 일부를 박탈하고, 사실상 입법권까지 축소시켰다.
두마는 4번(1906. 5. 10~7. 21, 1907. 3. 5~6. 16, 1907. 11. 14~1912. 6. 22, 1912. 11. 28~1917. 3. 11) 소집되었으나 장관들이나 황제의 신임과 협조를 거의 얻지 못했다. 회기가 아닐 때는 황제의 칙령이 두마를 대신했다. 제1·2차 두마는 간접선거(5개 대도시 제외)로 선출되어, 두마가 보수적이기를 기대한 정부에 의해 농민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대표권이 주어졌다.
그럼에도 두마는 광범위한 개혁을 요구하는 자유주의·사회주의 야당이 의석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제1·2차 두마는 곧 해산되었다(→ 제1차 두마, 제2차 두마).
1907년 표트르 아르카디예비치 스톨리핀 총리는 급진주의자나 소수민족의 대표자 수를 줄이기 위해 쿠데타와 다름없는 조치로 선거권을 제한했다. 그 결과 제3차 두마는 보수적인 성향을 보였다. 제3차 두마는 정부의 농지개혁과 군대개편을 대체로 지지했고, 관료주의 악습과 정부의 자문들을 비판했는데도 5년 임기를 채웠다.
제4차 두마도 보수적인 경향을 띠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됨에 따라, 특히 군수품 공급에서 나타난 정부의 무능력과 태만에 대해 점차 불만을 품었다. 1915년 봄이 되자 두마는 제정(帝政)에 반대하는 세력의 중심이 되었다. 1917년 2월(3월) 혁명 초기에는 두마 임시위원회가 성립되었고 이 위원회가 최초의 임시정부를 구성했으며 니콜라이 2세의 폐위를 받아들였다."
데카브리스트 반란은 기회 축에도 못듭니다. 청년장교들이 나라는 바꿔야된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바꿔야될지에 대해선 자기들도 답이 없어서 어물쩡거리다가 바로 진압되었거든요. 그리고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러시아 제국은 1800년대에 점진적으로 개혁을 진행하면서 느리게나마 상황이 호전되고는 있었습니다. 표트르 스톨리핀의 개혁이 이 호전되는 상황을 온전한 개혁으로 이끌어줄 수도 있었겠죠
'대게'가 아니라 '대개'입니다. - 문법탈레반 올림.
역사가들이 말하는 러시아 역사는 서유럽이 지향하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로 발전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먼저, 국가 환경이 다른 나라에 비해 굉장히 광활하고 인구가 분산되어 있어 정말 소수의 지식인만 자유주의에 대해서 알게 되었죠. 그걸 어떤 형식이든지 서민들이 접하고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야하는데, 그러기에는 물리적으로 너무 광활하고 힘들었죠. 더군다나 산업 발전이 도시에 비해 지방은 굉장히 침체되어서 농업 위주의 사회였으며, 농노제가 쉽게 폐지할 수 없는 폐쇄적인 사회였습니다.
결국 현대 러시아까지 미친 영향은 러시아가 가진 천혜의 환경들이 결국 민중들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사회가 하나로 단결하기 위해서는 서유럽의 자유주의 시스템이 아닌 계속 중앙 집권식 사회를 선호할 수 밖에 없게 되고 결국은 오늘날까지 중앙 집권 즉 푸틴에 의해서 러시아 사회는 돌아가게 됩니다. 이게 어찌 보면 후진적일 수 있는데, 그 사회가 환경에 맞게 살아남은거라 볼 수 있습니다.
중앙집권이 아닌 러시아 사회는 더욱더 삶이 피폐해지는 러시아 역사가 있고 현대에는 소련 붕괴회 자유주의 물결로 90년대 러시아 사람들이 서유럽 체제를 향유했으나, 이때도 결국은 너무나 많은 혼란으로 나라가 엉망이 되어 사람들이 더 힘들었던 기억이 있죠. 과거를 보면 볼세비키 혁명전까지 공화정 체제였는데, 그때도 사람들은 더 나아질거라 생각했지만 너무 많은 정치 세력과 그 사상들이 서민들에게 제대로 전파되고 공유할 수 없는 지리적 물리적 러시아 환경으로 나라는 더욱더 피폐해졌었습니다.
결국 러시아 역사에서 러시아인 DNA상 강력한 군주를 중심으로 나라는 뭉치는 경향이 있고, 이러한 군주의 영향으로 나라는 발달한 경험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표트르 대제, 예카쩨린 대제 등이 있죠.
사실 2월혁명때 현대식 사민주의 성향의 케렌스키가 민주정 공화정 정권 세우려 했는데, 이거도 무마되버림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미국을 보면 핑계일 뿐인듯.. 자기들이 민주주의 정말 제대로 해보려고 노력도 안 해놓고 못 한다고 지레 포기한 거지.
@@ignisilluminati 근데 애초에 미국의 건국을 이끈 주도세력 자체가 영국의 전제권략에 의해 밀려난 자들의 후예라 반골정신이 충만했죠.
그리고 건국군주(?)라 할 수 있는 워싱턴이 첫발을 잘 떼어놔서 성공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는... 워낙 조건이 나빠서 서방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긴 힘들어요. 앞으로 푸틴 이후가 문제겠죠.
@@백승억-n5w 사실 그런 면에서 옐친이 나쁜놈이긴 함. 우리한테는 잘 대해줘서 한국인으로서 불만은 없는데.. 러시아 입장에서 옐친이 처음으로 제대로 민주주의 해볼 수 있는 환경에 들어온 지도자였는데 너무 똥을 크게 싸버림
@@ignisilluminati그런데 솔직히 그럴만 하다는 입장임. 우리나라만 따져도 17개쯤 되는 지역의 지역감정이 죄다 다른데 러시아는 시와 군만 3000개에 달해서 관료들이 진짜 순식간에 썩어버림.
데카브리스트의 난,
나폴레옹 전쟁 때문에 프랑스를 보고 러시아로 돌아온 청년 장교들이 "이딴게... 나의조국?" 상태에 빠져버리면서 터진 반란이라고 들었는데...
데카브리스트가 콘스탄틴 대공을 지지한게, 이 사람이 근위대 사령관 등으로 나폴레옹전쟁에 지휘관으로 참전해 (자신들과 함께) 열심히 싸운 인물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죠.
저 광장전투신만 유튜브에서 자주보여서어떤 역사적 사건인지 찾아보고 했었는데, 이 영화 풀리뷰를 씨네모리님 채널에서 보게되다니.. 감사합니다! 우ㄹㄹㄹ라ㅏㅏㅏㅏ
항상 고맙습니다 ❤️ 😊
언제나 감사합니다
무더위 건강 유의하세요
영화를 통해서 역사에 관심 없던 제가 역사를 알게 되는 일욜 아침 씨네모리~~~중간중간 찰진 드립도 더 재밌게 해서 더 잘 보고 있습니다 연애질에는 극혐하는 씨네 모리 따봉~~~👍👍👍ㅋ
와 이 영화를 리뷰해주시네요 제일 좋아하는 러시아 영화에다가 러시아어 공부할때 자막없이 보는건데 감사합니다 / 저때 젊은 장교 반란이 성공했다면 제정 러시아가 아니라 입헌제정국이 될뻔한 일이었는데 만일 러시아 제국이 전제 제정 형태가 아닌 입헌국으로 갔으면 아마 소비엣뜨가 성행 할일도 그닥 없었을건데 말이죠....
애당초 소련의 국부인 레닌이 혁명에 빠지게 된 계기가 공화주의 혁명가였던 형이 붙잡혀 처형당한 것이었으니, 어찌보면 러시아 혁명은 전제정치 체제 그 스스로가 쏘아올린 성대한 자살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니콜라이 2세가 황제로 즉위하면서도 여러번의 기회는 존재했었습니다. 표트르 스톨리핀 총리가 끝까지 생존하여 농지 개혁과 노동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룩하고, 피의 일요일이 아닌 거룩한 일요일로 만들어서 무너지기 직전인 백성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혈우병에 시달리는 병약한 삼대독자 알렉세이 대신에 당찬 큰딸 올가를 차기 황제 후계자로 등극시켰으면 예카테린부르크에 있었던 그 끔찍한 밤은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러시아같은 형편없는 국가의 언어를 굳이 왜 배우시는지...
@@헬로헬로-z8b 와, 지금 러시아어보다 더 형편없이 보이시는 데 성공하신 것 같아요!
@@헬로헬로-z8b 당신 같이 형편없는 사람이 있다고 한국이 형편없는 나라는 아니듯 러시아도 그렇습니다.
유튜브에서 보던건데 이렇게 해설을 해주시니 이해가 더 잘되네요. 감사합니다. ^^
유럽의 끝에 다다른 보나파르티즘의 종말.
가슴이 웅장해지는 러시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장중한 스케일.
군사적 행동을 하였으면 과감하게 승부를 봐야 하는법. 서로가 목숨건 상태에서 어설픈 자비와 배려는 파멸이거늘....
돌아올수없는 강일까요?
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채널!!
감사합니다 기분좋게 시청했읍니다~~
여기 아니면 평생 모르고 지나칠뻔한 흥미있는 작품들을 꾸준하게 소개해주시니 구독을 못끊겠네요..
이 영화 한번 보겠다고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는데 고화질 영상 구하는것도 힘들지만..
자막은 스스로 번역해서 봐야할판이라.. 고행길 만들어주는 채널..
사.. 사.. 랑.. 합니다..
씨네모리님 영화 리뷰 보면 고등학생 때 배웠던 세계사 내용들이 새록새록 기억 남 너무 좋음
러시아 역사도 상당히 흥미롭네요 오늘도 잘봤습니다~!
저 광장전투신만 유튜브에서 자주보여서어떤 역사적 사건인지 찾아보고 했었는데, 이 영화 풀리뷰를 씨네모리님 채널에서 보게되다니.. 감사합니다! 우ㄹㄹㄹ라ㅏㅏㅏㅏ
으아아아 이게 올라왔네요
항상 자막없이 봐서 너무 궁금했어요!!
설령 장교들의 혁명이 성공해도 프랑스의 혁명정부처럼 수습 제대로 못해서 더 난장판이 날거 같네요.
프랑스에 이은 단두대혁명으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했죠 ㅋ
이상을 추구하는 젋은 장교들은 순수했기에 실패했다. 좋은 영화 감사함니다.
7:58 ㅋㅋㅋㅋ 여기에서 나오는 구호는 "Здравствуй ваше императорское величество!"입니다 한국어로 하면 "황제폐하께 인사드립니다!" 정도가 되겠네요.
당연한 말이지만 '폐하'는 황제에게만 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즉위식을 하기 전 임에도 저 부대는 니콜라이를 황제로 추대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와 이 영화 리뷰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재미있게 봤던 영화를 씨네모리님 리뷰로 다시 보니 더 이해가 되고 재미있네요.
무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세요.
14:59 대표적인 도시로 톰스크가 있습니다. 톰스크는 노보시비르스크 근방에 위치한 시베리아 변방 도시인데, 인구의 80% 이상이 대학생일 정도로 교육열이 매우 높은 도시입니다.
좋은영화 소개 궁금했는데 감사합니다
리뷰해주신 덕분에 내용을 참고하게되어 계속 완독을 실패하던 전쟁과 평화를 드디어 완독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만약 저때 반란이 성공했다면 러시아판 프랑스혁명이 되었을까요?
작은 사건들이 모여 역사의 큰 흐름을 만든다는 것에서 만약이란 가정은 늘 흥미롭네요ㅎㅎ
잘봤습니당 씨네모리님!!😊
반란이 성공햇어도 민중과 기존 지지권들의 지지를 못 받앗기때문에 조선의 삼일천하 꼴 났을겁니다.
프랑스혁명은 재벌들이 일으킨 부르조아폭동임. 성격이 다르지.
항상 유튜브 짤로 덤성덤성 봤었는데 소개해주셔서 반갑네요..
이거 진짜 명작입니다. 한국에도 개봉했는지 모르겠는데 전투씬도 재밌고 역사적 의의도 있어서 볼만 해요!
다만 역사 자체가 많이 아쉽고 답답하기 때문에 영화가 재밌다고는 말 못 합니다.
그래도 공산주의가 된 러시아가 약 100년 전엔 저런 혁명의 시도가 있었다는 건 눈 여겨 볼 사실이죠.
2차대전 후에도 복귀한 소련군 장교들 사이에 체제 변화를 요구하는 불온한 움직임이 있어서 흐루시쵸프가 재빨리 체제 완화 정책과 복지 강화 정책을 펼쳤다고 합니다. 러시아 군인들이 유럽에서 오래 싸우고 돌아오면 체제 변화를 요구하는 역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반복될 지 기대해봅니다.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씨네모리님!!! 구원연합 정말 보고싶었던 영화인데 리뷰도 없어 아쉬워하던 찰나 올려주시니 사랑해요😘😘 여기에 제 뼈를 묻을게요 항상 잘보고 있었고 고마워요:)
오늘도 흥미진진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굿모닝 일요일아침은 씨네모리 영화동산에서~
이 채널주인장이 이런영화 올린 시기일때 개ㅈ센은 뭐했을까? ㅎㅎ
영상들이 죄다 러시아어나 영어로만 나와서 뭔 소린지 몰랐는데 감사하게도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걸 처음 알았네요
감사합니다
데카브리스트 영화도 있군요!! 영화 감사합니다!
"구원연합"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영상 잘 보고 갑니다 ~
사실 영화에서 묘사가 되지 않았지만 니콜라이 1세는 계승권에서 형을 건너뛸 수 없다며 거절했다가 콘스탄틴의 설득으로 황제가 되었고 즉위 초반에 피를 보고 싶지 않아서 직접 광장에 교섭을 했는데 아무 소득 없이 결렬되었다가 진압하게 된것입니다
와... 이 영화를 리뷰해 주시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보자마자 소름이 확 돋았어요!
돋
@@hder9 ㄳ 고침
이걸 리뷰해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아! 이영화 작년부터 러시아어로 광고 많이해서 궁금했는데 감사합니다
혹시 이런 영화들은 어떤 루트로 감상하시는건가요…보고싶은데 국내엔 없는 영화가 대부분이라
러시아에 있었던 데카브리스트의 봉기!! 처음 알게된 역사입니다. 구원연합이라는 이 영화 꼭 봐야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더운데 건강 조심하세요^^
와 진짜 보고 싶은 영화인데 이런 영화 어느 ott에서 보시나요? 보고 싶은 외국 영화 드라마 많은데 스트리밍 해주는 ott 찾기 너무 힘들다 ㅜㅜ
아 아거 보고싶었는데 감사합니다 ㅠ
저는 러시아 제국에 대해서 알아본 것이 거의 없어서 제정 러시아 시절에 저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오늘도 씨네모리님 덕분에 제가 모르고 있었던 역사를 또 하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조선왕국 고종의 로망 러시아 짜르.
지까브리가 12월이니 지까브리스또의 난은 12월에 벌어진 농노들과 청년장교들의 난입니다
한계는 분명했지만 자유주의를 동경하는것은 인간 본연의 심성이라는 점에서 의미있다 봅니다
새벽 올림픽 시청 후 일요일 아침 꼭 봐야하는 씨네모리!!
이런걸 보면 러시아는 200년 전에도 10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전혀 변하지 않고 그대로라는 생각이 들죠.
님이 역사를 모르는것 뿐
진짜 포도탄을 맞고도 견디며 서있던 반란군들을 보여주는 장면은 진짜 명장면입니다 ㅠㅠ
낭만의 시대네
모리짱 영상 전체보기 같은 건 없나요? 그리고 재생목록에 일본 막부시대 영화 모음집 좀 제발 ㅜ.ㅜ
크 이번 영화도 좋네요
러시아 국가 변천사
동슬라브토후국>키예프공국>킵차크칸국>모스크바대공국>루스차르국>러시아제국>소련연방>러시아공화국
이야 포도탄 맞는거 영상으로 처음봤는데 충격이네요 ㄷㄷ
참 웃긴게 정작 근위대 소속들은 대부분이 기득권인 귀족들이 지들 아들들이나 친지들 넣은 곳임 이게 얼마나 심했냐면 알렉산드로스 1세가
좀 작작 넣으라고 할 정도였다
자유주의적이라고 한다한들 데카브리스트 봉기가 ㄹㅇ 기적적으로 성공했다해도 귀족정의 복귀 그 이상 이하도 아님
또한 알렉산드로스 2세가 개혁을 실시하지만 문제는 급진적인 변화를 원한 아나키스트한테 죽으면서 알렉산드로스 2세 사후 개혁이 리턴당함 동시에 사상 경찰도 ㅈㄴ 증가하면서 개혁 외치는 지식인들도 뭐 할 수 있는게 없어짐
일요일 아침에 씨네모리라..아주 귀하군요
농노들을 걱정해서라기보단 노동자가 필요했기 때문일 듯
영화 전체보기에는 자막이 없다니....😢
와 이걸 어케... 보고싶어도 못찾고있는 영화였는데 ㅜ
07:57 - Здравствуй Ваше Императорское Величество! / 황제 폐하의 강녕을 기원합니다!
하바랭면 ㅋㅋㅋㅋ
뭔가 갑신정변이랑 비슷하네요.
실패했지만 결국 그 뒤에 자기들이 요구하던게 이뤄지고 나라는 망하고
러시아사람들 소련뽕있는게 역사내내 유럽서 항상 뒤쳐지다가 소련때 유럽서는 원탑, 세계에선 1등과 삐까뜨는 2등까지 해봄.
2등의 불행.
역사내내 그랬던건 아님 러시아도 잘나가던 시절은 잇었는데 근대 오면서 도태되고 처참하게 쳐망해서 그런거
@@eoenhtbqcd 국가야 항상 강대국이긴 했지만 국민적으로 삶의 질은 처참했음. 그나마 비교라도 해볼 수 있었던 게 소련시기
@@eoenhtbqcd 근대 이전엔 타타르의 멍에.. 그 이전엔 동로마 아래의 공국칭하던 부족들이었을텐데요..
타타르의 멍에 전에는 유럽 전체에서 손꼽히는 국가였지만...
해당영화 보고싶었는데 자막이 없어서 못봤는데 혹시어떻게보나요?
설명란에 있습니다
이 영화 어디서 볼수 있죠?ㅎ
7:33 내가 볼 땐... 러시아는 글렀어...
난 형 꺼 중에서 이게 제일 재밌는 듯 ㅎㅎ
꿀잼
철종때 우리도 저런기회가왔어야했는데 나오는인물이 많아서 햇갈리기는 하지만 우리랑 비교해서보면 볼만하네요
해외 vs 쇼츠에서 맨날 쓰이는 영화
(위키에서도 자세히 안 나오던데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8:16 15년이..... 단축한 거라고?
오!
14:41 손자 걱정할때가 아닌게 본인도 끔살……
아주 놀랍고 흥미롭게 영상 잘봤습니다. 지금 푸틴 정권을 무너뜨릴 러시아의 청년 장교들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악령 드라마에 나왔던 주연들 다 나오네요 🎉
이런 영화 어디서 사이트에서 볼수있나요....???
횐님덜 즐거운 일요일 + 굿모닝
이 채널은 매우 훌륭하다. 씨네모리는 매우 훌륭하다.
썸네일만 보고 러일전쟁을 다룬 영화이거나 골든 카무이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이 일이 있고 나서 111년뒤에 일본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있었죠..
2.26 사건
그리고 우리나라의 5.16..
@@ignisilluminati ㅈㄹㅇㅂ 하나회를 어디다 갖다대냐?
유사한가요? 226은 황제가 아니라 정치인들을 처단 군이 정치를 장악한 사건이 아닌지요?
@@꼬마자동차-u4z 피의 일요일도 처음에는 "차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정도의 느낌으로 시작했죠.. 차르가 정신 못 차려서 저렇게 간 거구요. 2.26의 경우에도 주동자였던 기타 잇키는 덴노를 바지사장으로 앉히는 구도를 계획했습니다.
이게 나의 서프라이즈라고~!
독일의 빌헬름 1세는 사진이 남아 있는데 한 살 많은 니콜라이 1세는 사진이 없음. 니콜라이 생전에 사진기가 없던 시절도 아닌데.
대놓고 거부했다하더군요.
따로 크게 흥미를 느끼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비슷한 사례로 당시 오스만 제국의 압뒬 메지트 1세의 경우에도 사진찍기 극도로 싫어해서 (복제당하는 느낌?) 혹여나 몰카라도 찍다 적발되면 손과 눈을 불구로 만든다고 포고령을 놓았다는 이야기도 있죠.
당시 러시아에 입헌군주제와 공화정이라 상상할 수 없네요
조선왕국 고종의 로망 러시아 짜르.
당시 미국은 대통령제, 영국은 입헌군주, 프랑스는 공화정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로시아는 변화를 거부하다가 멘셰비키, 볼셰비키 혁명을 맞이합니다. 러일전쟁과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도 망조가 든 현상임.
어쩌면 제정러시아 멸망과 소련탄생을 막을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 라던데
위대한 러시아 혁명의 서막
이르쿠츠크에,가서 확인했다
100년후 진정한 러시아 혁명에 성공했지
자막같은경우에는 씨네모리님이 번역하신건가요?
러시아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모르는거 같아요.
사실 우리에겐 미국 영국 프랑스만 엄청 주입식 교육되고 러시아나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들은 근대시대 이후부턴 굵직한 에피소드 외엔 잘 모르고 교육자들도 굳이 교육을 안시키더군요. 따지고보면 우리 입장에선 미국보다 러시아쪽 관계사나 그나라 역사를 배우는게 인접국가로서 좀더 이득일 수도 있는데 좀 아쉽긴하네요.
저거 2022년에 드라마로도 나왔더라구요 언젠간 리뷰로 부탁드립니다~
내겐 어릴적 디즈니 만화동산과도 같은 채널, 씨네모리 ㅋㅋ
갑자기든 생각인데 100년뒤 등장한 소련이란 국가에선 데가브리스트의 난을 어떻게 생각헀고 어떻게 평가했는지가 궁금하네요
소수파 봉건귀족들의 모험주의적 폭동. 애초에 공산주의는 이전 정치체제는 전부 공산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간주해서 말이죠.
이 영화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러시아 영화는 어지간하면 유튜브에 다 풀려 있어요
문제는 러시아어 모르면 말짱도루묵.
👍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대포를 맞기 전까진...
러시아에 이런 역사도 있었군요. 10월 혁명이 전부인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