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거래같은 정상거래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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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23 вер 2024
  • 설교 요약:
    이삭의 쌍둥이 아들인 에서와 야곱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온몸에 붉은 털이 있고 야성적인 성격의 에서(히/에사브) 는 초원을 무대로 하여 사냥을 즐기는 활동적인 사람으로 자라났습니다. 반면에 동생인 야곱(히/야아콥) 은 조용한 성격에 집안일을 잘 돌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에서가 사냥을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배가 무척 고팠습니다. 그런데 마침 야곱이 붉은 죽을 끓이고 있는데 그것이 너무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에게 ‘그 죽 한 그릇만 좀 급히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야곱이 말하기를 ‘형의 장자권을 나에게 팔면 죽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은 자기들끼리 단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서로 사고 팔고하는 거래를 합니다. 이 시간 이후로 야곱은 축복을 상징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런 거래를 하자는 시험은 지금도 우리에게 계속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상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신앙이 무엇일까요?
    1. 육신적인 것을 버리고 영적인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2. 일시적인 것을 버리고 영원한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3. 가시적인 것을 버리고 숨겨진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1. 육신적인 것을 버리고 영적인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에서는 그 귀한 장자권을 붉은죽 한 그릇에 팔아버리는 수준 낮은 사람입니다. 장자권의 축복이 뭣일까요? ① 아버지의 대를 잇는 축복입니다. ② 아버지의 부를 이어받는 축복입니다. ③ 선조의 축복권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④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을 이어가는 축복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축복을 아주 하찮은 붉은죽 한 그릇에 팔아버리는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에서의 수준은 취미와 삶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상 2장 3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축복을 받기 위한 거래는 육적인 것을 버리고 영적인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에서는 어떤 사람입니까? 肉體 本能 우선주의 가치관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우선 육체적 욕구를 채우는 일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십시오. 돈벌이가 되는 일은 전부 육체적 본능을 채우는 일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육체적 욕구를 채우는 일에는 돈을 아끼지 않고 쓰면서 하나님을 위해, 불우한 이웃을 위해, 교회를 위해 쓰는 것은 전혀 가치 없는 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혹 우리가 현대판 "에서"가 아닌가를 깊이 살피시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2. 일시적인 것을 버리고 영원한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하루종일 사냥을 한 에서는 집으로 돌아올 때 너무도 배가 고팠습니다. 그때 마침 야곱이 붉은 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야곱이 그 시간에 맞추어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야곱은 기지를 발휘하여(?) 에서에게 장자의 명분과 붉은 죽을 교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때 에서는 자기의 지금 배고픈 현실에 비하여 장자의 명분은 너무도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이고 무의미한 것이었습니다. 에서는 이렇게 실리만을 추구하는 인생설계를 함으로 가엾은 비극의 주인공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에서]가 정상적인 사람이었다면 "야 이놈아! 이 죽 한 그릇 주면서 그 장자의 명분을 달라구? 예끼 이놈!" 하고 물러섰어야 할 것입니다. 죽은 일시적인 당장의 만족을 줄 뿐입니다. 먹고 나면 또 배고프고 또 다시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장자의 명분이란 당장 보이는 가치는 없고 실제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평생에 권리가 있고 명예가 있고 축복이 따르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기다리는 마음과 상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성을 믿고 그 성취를 기다리는 일이 신앙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기다릴 줄 모르는 성급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왜 간사하다 할 정도로 그토록 장자의 명분을 탐냈을까요? ① 장자의 명분에는 하나님의 복이 연결된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② 축복을 사모하는 마음이 넘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장자의 명분을 죽 한 그릇에 팔아 넘긴 에서 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소중히 여겨야 할까요? ①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②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③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3. 가시적인 것을 버리고 감추인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에서는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합니다. 그때 당시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자의 명분, 그런 것을 입술의 말로 판다고 팔아 넘어가는 것이랴? 했을 것입니다. 사실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보지 못한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를 망령된 자]라고 평가합니다. (히브리서12:16) 에서의 결정적인 문제는 눈에 보이는 것 제일주의 사상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것이면 무가치 한 것이라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장의 가치가 최고의 가치인 것입니다. 이런 價値觀을 갖고 살면 늘 세상에 속고 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가치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소중한 것임을 알려면 육에 속한 사람에서 벗어나야 가능합니다. 永生, 天國이라는 것도 눈에는 안보입니다. 가보지도 못했으니까요. 감추인 것을 볼 수 있으려면 영의 世界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거듭나야 합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길이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우리는 영적 능력을 얻을 수도, 볼 수도, 맛볼 수도 없습니다. 예수를 모르는데 어떻게 하늘나라를 알 것입니까? 겉만 보고 가치를 판단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어찌 알 것이며, 그 가치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는 확실히 보장된 미래가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2:20) 예수님도 사도들도 승리한 믿음의 선배들도... 절대로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보장된 미래를 바라보면서 현실을 극복하여 승리하였습니다. 붉은 죽은 가시적인 것이지만 장자권은 감추어진 가치입니다. 실패한 에서의 가치관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➀ 편의주의입니다. 진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편리한 쪽으로 사는 것입니다. ② 현실주의입니다. ③ 합리주의입니다. 한 번 사는 인생, 믿음이 없어 천국도 가지 못하고 들림 받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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