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기를 잡지 않고 삼도근왕병이라는 목적어만 붙여서 데리고 가기만 했으니 제대로 싸울 리 없죠 당시 상비군은 많지 않았고 훈련을 받고 당시 산업의 근간인 농사를 짓다가 유사시 동원되는 형태였습니다 지역이 어느 지역이냐가 중요한 건 절대 아니고 전라충청 대규모 징집했으면 숫자 파악부터 정확하게 한 후 각 제대별로 군기를 단단히 잡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수 십,수 백 번 외치게 해야 합니다 또 뒤로 물러나거나 사기를 떨어뜨리는 말을 함부러 하고,지휘관을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자는 참수한다는 군율을 세웠어야 했습니다 영천성 수복 전투는 전투 경험이 없는 지휘관(양반)과 의병(농민,노비)들 3600명이 일본군 1000명 중 970명을 백병전,심리전,매복전 등으로 사살하는 큰 전과를 올렸는데 경북연합 부대 창설 후 병력을 모아 놓고 철의 군율을 발표하고 군기를 잡았기 때문에 대승할 수 있었습니다 살려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억누르고 싸울 수 있게 하는 데가 군대인데 용인전투에서는 민간인을 그대로 둔 채 싸웠으니 백전백패는 뻔한 일이죠
이번화처럼 만들기 싫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특별한 전술도 없고,,, 병력수만 쓸데없이 많고... 이게 뭔지, 이 전투를 여러분께 어떻게 설명해드려야할지.... 제가 만든것을 보고있는데, 저 스스로도 이해가 안갑니다. 어떻게 패전할 수 있었을까요... 아무튼 다음은 '그때 그 사건' 한편 한 후에 다시 임진왜란 제작하도록하겠습니다. 그럼 재미있게 보시길...
용인 전투는 우리나라 역사상 굴욕적인 참패 고당 전쟁, 병자호란, 6.25포함 4대 전투 중 하나죠 전 병력이 정예일 수가 없습니다 정예병은 선두에 서게 됩니다 미끼로 사용할때는 병력을 정예를 뒤에 배치 하고요 병력의 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휘관이 무능이 첫째고 선봉이 무너져 도망치게 되면 군중심리로 공포가 극대화 전염되어 후방도 자연스레 무너집니다 한번 공포에 질린 부대는 명령이 먹히지 않기에 막는 방법은 지휘관이 도망치는 순간 목을쳐서 눈으로 공포를 주는거죠 도망치면 여기서 바로 죽는다 라는...그 타이밍도 놓치면 끝입니다 적이 소수라도 등 돌려 도망가는 순간 학살입니다 그것을 감안하여 작전 및 배치를 해야 됩니다 96년인가 서울대에 모여든 한총련 시위대 진압하기 위한 약 30개 중대 3000여명이 서울대 정문에서 서울대역 방향으로 깔렸는데 선봉 정예부대인 기동대 병력이 1~2백여명의 한총련 사수대에 무너져 등돌리기 시작하자 후방에 배치된 방순대 등 비정예 부대도 모두 무너진 적도 있죠 기싸움이 승패를 좌우 합니다 그래서 전투전 사기진작을 많이하는거고 지휘력이 가장 큰 문제 입니다 이 전투 이후 독산성전투에서는 승리를 하기도 하죠 중국을 점령한 금 요 청 원 나라가 10~20만 소수 병력이 100만 병력 가까운 나라를 이길 수 있는 것은 뛰어닌 지휘관 및 정예병이기 때문이겠죠
용인 전투는 국내 치욕적인 4대 전투 중 하나 고당 전쟁시 주필산 전투 병자호란 쌍령 전투 6.25 강원도 현리 전투 공통점은 지휘관 무능 및 무분별한 후퇴 전 병력이 정예일 수가 없습니다 정예병은 선두에 서게 됩니다 미끼로 사용할때는 정예병를 뒤에 배치 하고요 병력의 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휘관 무능이 첫째고 선봉이 무너져 도망치게 되면 군중심리로 공포가 극대화 전염되어 후방도 자연스레 무너집니다 한번 공포에 질린 부대는 명령이 먹히지 않기에 막는 방법은 지휘관이 도망치는 순간 목을쳐서 눈으로 공포를 주는거죠 도망치면 여기서 바로 죽는다 라는...그 타이밍도 놓치면 끝입니다 적이 소수라도 등 돌려 도망가는 순간 학살입니다 그것을 감안하여 작전 및 배치를 해야 됩니다 96년인가 서울대에 모여든 한총련 시위대 진압하기 위한 약 30개 중대 3000여명이 서울대 정문에서 서울대역 방향으로 배치 되었는데 선봉 정예부대인 기동대 병력이 1~2백여명의 한총련 사수대에 무너져 등돌리기 시작하자 후방에 배치된 방순대 등 비정예 부대도 모두 무너진 적도 있죠 기싸움이 승패를 좌우 합니다 그래서 전투전 사기진작을 많이하는거고 지휘력이 가장 큰 문제 입니다 용인전투에서 자신의 병사들을 잘 수습해서 퇴각한 권율과 황진은 이후 웅치와 독산성전투에서는 승리를 합니다 중국을 점령한 금 요 청 원 나라가 10~20만 소수 병력이 100만 병력 가까운 나라를 이길 수 있는 것은 뛰어난 지휘관 및 정예병이기 때문이겠죠
사실 조선군은 이렇게 어이없이 패퇴하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데 이는 일선 부대를 통제할 부사관의 부재가 큽니다. 세조 때 오위군으로 편재를 바꾸면서 부사관 역할을 했던 갑사를 없애버리는 끔찍한 삽질을 벌이면서 벌어진 결과지요.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과 일본군의 지휘관 사망률의 차이가 큰 것도 지휘관을 보좌하고 일선 부대를 통제할 사관이 없으니 장성이 직접 전선에 나서서 지휘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군대가 너무 오합지졸이였다고 하더라고요ㅠㅠ 군대를 이끌던 장수중 한명은 양때가 풀뜯으며 소풍을 가는것 같더라 라고 표현했습니다ㅠ 200년 평화속에서 훈련된 병사가 아닌 대부분 급하게 징집된 농민이였기 때문이죠ㅠ 이때문에 군대를 분산시켜 진격하여 한번에 전멸하고자 하는걸 막고자 하였지만 총사령관이 이정도 숫자면 적이 바로 도망칠 것이라 생각하여 뭉쳐다니게 되고 이는 나중에 도망치며 압사당한 사람이 많아지는 원인이 됩니다ㅠㅠ 너무 숫자만 믿고 덤빈 상황이였고 결국 반격당하자 완전히 무너져 버리게 되죠ㅠ 띠벌 너무 훈련이 안된 병사들이였어
일본은 도요토미히데요시가 농병분리해서 농사짓는애들이 절대 칼 못잡게해서 농업생산량 가파르게 올랐고 칼잡는 병사애들은 전업 전쟁꾼이라 전쟁이 없으면 실업자가 되는 상황 v.s 병사한테 농사짓게한 조선군 결과는 솔직히 뻔했음 그나마 다행인게 다들 아시다시피 그 차이 이상을 수군이 메꿔줬으니 나라 안뺏겼지
임진왜란 이전 조선은 200년의 대평화를 누렸는데 북방의 여진족이 가끔 침입하는게 다였습니다. 따라서 북방에 그나마 전투경험이 있는 정예군이 배치되어있었고 전라, 충청도에서 소집한 남부 병력은 아무리 대군이라 하나 때부터 전쟁이 뭔지도 모르는 농민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은 전쟁에 잔뼈가 굵은 정예중의 정예병으로 병력이 30배가 차이난다 한들 조선군은 정신무장 자체가 안되어 있었기에 패배했습니다. 쉽게 예를 들자면 칼 들고 싸이코가 미친듯이 달려오면 아무리 30명이 뭉쳐있어도 군인정신이 없는 평화시의 정신상태로는 겁쟁이들에 불과하기에 모두 도망쳐버리는 형국이였겠죠
이각: 바깥에서 함께 싸우겠다더니 동래성에서 동래부사 송상현 버리고 도망. (송상현은 "전사이 가도난"이란 말로 싸우다 죽기는 쉬우나 길을 내준긴 어렵다는 말로 유명) 이일: 이순신 모함해서 죽일 뻔하고 상주전투에서 패퇴(이새끼 내가 제일 싫어함) 이광: 용인전투에서 와키자카의 1500왜군에 의해 조선군 5만 와해 당함 라임이 아주 죽여줘요 이각 이일 이광
제승방략체제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전투 총지휘관인 신립이 탄금대에서 대패하고 전사하니 다른 지휘관들이 서로 사분오열해서 5만이라는 군대가 혼란에 빠져서 왜군 1500에게 일방적으로 도륙당하고 패배했음.... 이 전투패배로 왜란이 끝나고 다시 진관체제로 조선병력체제가 바뀜.
전투라 하기도 뭣한 사건이였습니다. 말 그대로 소규모의 일본군의 공격이 개시되자 부대 전체가 공황상태에 빠져서 뿔뿔이 흩어져 도주해버린 사건이니까요. 공황이 부대원 전체로 확산되었고 누구도 이를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권율과 황진은 휘하의 부대를 그대로 보존해 전라도로 퇴각했고 이 부대가 이후 벌어진 이치, 웅치 싸움의 주 전력이 되었습니다.
전쟁경험이 전무한 군대이다보니 저럴 수 밖에요. 농사만 짓다가 끌려온 사람이 대부분일텐데 숫자로 밀어 붙이다가 생각보다 강한 병사에 위축되었을 것 이고 고작 1000명 온거에 당황하면서 군수푼 버리고 전부 도망... 경험이 없다보니 적 원군이 내려오는지 올라오는지도 모르고 방비도 안하니 저렇게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거. 무능이라기 보다는 훈련량과 경험부족때문이라 봅니다.
당시 전라도에서 징집됬으면 병사들 대부분이 농민들중에 징집된거 아님? 와키자카 기마대가 중앙을 휘젖고 다니는데 전투경험이 없는 농민들이 겁을 먹고 도망가는건 어떻게보면 당연한거임. 애초에 훈련이 안된 농민 병사들을 대리고 성밖으로 나간거 자체가 지휘관이 전투상식이 없다는것을 입증함.
저건 지휘관이 문제가 아닌거 같다.. 지휘관 입장에서 보면.. 전라감사로써 왕이 몽진나간 마당에 당장 뭐라도 안하면 욕이란 욕은 다처먹고 후일 모가지가 날아갈지 모르고 .. 북상하자니 너무 오합지졸이고.. 그나마 선택한게 보급로 끊어먹기 같은데.. 이야 아무리 그래도 1600한테 쫄아서 진거는 좀 심하네.. 기병대도 아니고 전투사를 보면 극소수 기병대에 쫄아서 적 다수보병대가 갈려나간 사례가 있긴해도.. 이건..
훈련안된 병력 조총소리 처음 듣는 병력이 대다수였음 숫자만 많았지 통제되는 정예는 거의 없었음 2만이상은 전장에서 통제불능 도망가는 병력이 아군에게 두려음 일으킴 지휘관들 역시 도주 숫자만 많은 양들 이었음 임진난후 조선군에 대한 일본군의 평가 "펑지에선 순한사슴 성을수비할땐 사자와 같았다"
믿고 싶은 걸 믿는 것이 역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이 역사이죠. 민족성향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일본은 전쟁을 자주해서 경험도 많았고 죽고 죽이는 과정에서 전술과 무기발달이 매우 높았습니다. 조선은 역시 입으로 정치하고 입으로 이기죠. 말만 드럽게 많았던 조상들의 피를 우리가 물려받아서 여전히 온라인에서 서로 댓글전쟁하는 것 처럼요.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보단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에 준비해서 미래를 대비하는게 현명합니다. 2번의 일본침략 당했는데 3번은 안 당하겠지? 이런 생각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지금도 한국은 병력과 무장력으로만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있는데 절대 우세하다고 믿어서는 안됩니다. 방심은 금물입니다.
쉽게 말해 일본군 은 당시 1400년도 후반부터 1590년도 까지 100년을 싸움만한 집단 입니다. 야생 늑대랑 집에서 키우는 개랑 싸우면 당연히 목이 물려 제압당하는 그런 거라고 보심 됩니다. 조선5만도 정규군이 아니라 농민들 즉 농사 짓던 사람들 곡갱이. 낫, 죽창들고 진법이 뭔지 일사분란이 뭔지 전혀 교육 되지 않았고 우리는 활. 일본은 칼 및 장창, 조총으로 백병전에 능했죠. 대신에 초기에는 주구장창 깨졌으나 정유재난 쯤 일본군 패턴 파악하고 계속해서 승리합니다. 일본쪽 기록보면 병사들도 의욕 꺽이고 이전쟁에서 승리 못한다라고 할 정도로 전쟁후기쯤 일본군 사기 꺽여버립니다.
임진왜란 개시당시에 조선군은 정규군이 1만이 채 되질 않았고, 근왕병 5만이 모였다고 썰에 말하지만, 진짜로 5만군대가 모였을까요? 각처에서 모았을거라 예상되지만, 그렇게 많지 않았을것이고..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5만군대가 어디서 나오나요? 분명 과장된 수치입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정규군이 아닌 농민들을 동원한수준이었을겁니다. 반면에 일본군은 오랫동안 내전을 통해 전투 경험이 풍부한 군대였구요. 용인전투는 우리가 참패한 전투는 맞지만, 이렇게까지 이야기할 정도는 아니죠.
인정할건 해야지... 조선시대 군인은 사실 거의 대부분이 농민임... 바쁠땐 농사짓고 일없을땐 군사훈련받고... 충청고나 전라도는 초반에 피해입은것도 없어서 충분하 10만이 아니라 그이상의 장정도 더 모을수있었죠.. 문제는 그렇게 쪽수믿고 밀어붙이면 도망갈거라고 봤는데 앞에서 조선병사들이 순식간에 죽어나가자 겁이 나서 도망감... 사람심리란게 먼저기선제압당하면 잘못하죠... 그래서 깔려주고 밟혀죽고..물론 무기도 제대로 안갖춰진 조선군도 많았음....
군기를 잡지 않고 삼도근왕병이라는 목적어만 붙여서 데리고 가기만 했으니 제대로 싸울 리 없죠
당시 상비군은 많지 않았고 훈련을 받고 당시 산업의 근간인 농사를 짓다가 유사시 동원되는 형태였습니다
지역이 어느 지역이냐가 중요한 건 절대 아니고 전라충청 대규모 징집했으면 숫자 파악부터 정확하게 한 후 각 제대별로 군기를 단단히 잡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수 십,수 백 번 외치게 해야 합니다
또 뒤로 물러나거나 사기를 떨어뜨리는 말을 함부러 하고,지휘관을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자는 참수한다는 군율을 세웠어야 했습니다
영천성 수복 전투는 전투 경험이 없는 지휘관(양반)과 의병(농민,노비)들 3600명이 일본군 1000명 중 970명을 백병전,심리전,매복전 등으로 사살하는 큰 전과를 올렸는데 경북연합 부대 창설 후 병력을 모아 놓고 철의 군율을 발표하고 군기를 잡았기 때문에 대승할 수 있었습니다
살려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억누르고 싸울 수 있게 하는 데가 군대인데 용인전투에서는 민간인을 그대로 둔 채 싸웠으니 백전백패는 뻔한 일이죠
진심 용인전투는 교과서에서 가르쳐줘야함. 무능한 지휘관의 병크와 훈련도 제대로 안받은 수만 많은 오합지졸들이 이렇게 참담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걸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도록.
임진강 방어선 전투도 가르쳐줘야하죠 ㅇ
우리나라역사 조선시대부터 현대사까지 60프로가 날조 구라임
이번화처럼 만들기 싫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특별한 전술도 없고,,, 병력수만 쓸데없이 많고... 이게 뭔지, 이 전투를 여러분께 어떻게 설명해드려야할지.... 제가 만든것을 보고있는데, 저 스스로도 이해가 안갑니다. 어떻게 패전할 수 있었을까요...
아무튼 다음은 '그때 그 사건' 한편 한 후에 다시 임진왜란 제작하도록하겠습니다. 그럼 재미있게 보시길...
pozol 포졸 문제는 보급물자까지 그대로 냅두고 도망...
pozol 포졸 다음편 어제 나가죠?
어제가 아니라 언제
용인 전투는 우리나라 역사상 굴욕적인
참패 고당 전쟁, 병자호란, 6.25포함 4대 전투 중 하나죠
전 병력이 정예일 수가 없습니다
정예병은 선두에 서게 됩니다
미끼로 사용할때는 병력을 정예를 뒤에 배치 하고요
병력의 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휘관이 무능이 첫째고
선봉이 무너져 도망치게 되면 군중심리로 공포가 극대화 전염되어 후방도 자연스레 무너집니다
한번 공포에 질린 부대는 명령이 먹히지 않기에 막는 방법은 지휘관이 도망치는 순간 목을쳐서 눈으로 공포를 주는거죠 도망치면 여기서 바로 죽는다 라는...그 타이밍도 놓치면 끝입니다
적이 소수라도 등 돌려 도망가는 순간 학살입니다
그것을 감안하여 작전 및 배치를 해야 됩니다
96년인가 서울대에 모여든 한총련 시위대 진압하기 위한 약 30개 중대 3000여명이 서울대 정문에서 서울대역 방향으로 깔렸는데 선봉 정예부대인 기동대 병력이 1~2백여명의 한총련 사수대에 무너져 등돌리기 시작하자 후방에 배치된 방순대 등 비정예 부대도 모두 무너진 적도 있죠
기싸움이 승패를 좌우 합니다
그래서 전투전 사기진작을 많이하는거고 지휘력이 가장 큰 문제 입니다
이 전투 이후 독산성전투에서는 승리를 하기도 하죠
중국을 점령한 금 요 청 원 나라가 10~20만 소수 병력이 100만 병력 가까운 나라를 이길 수 있는 것은 뛰어닌 지휘관 및 정예병이기 때문이겠죠
용인 전투는 국내 치욕적인 4대 전투 중 하나
고당 전쟁시 주필산 전투
병자호란 쌍령 전투
6.25 강원도 현리 전투
공통점은 지휘관 무능 및 무분별한 후퇴
전 병력이 정예일 수가 없습니다
정예병은 선두에 서게 됩니다
미끼로 사용할때는 정예병를 뒤에 배치 하고요
병력의 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휘관 무능이 첫째고
선봉이 무너져 도망치게 되면 군중심리로 공포가 극대화 전염되어 후방도 자연스레 무너집니다
한번 공포에 질린 부대는 명령이 먹히지 않기에 막는 방법은 지휘관이 도망치는 순간 목을쳐서 눈으로 공포를 주는거죠 도망치면 여기서 바로 죽는다 라는...그 타이밍도 놓치면 끝입니다
적이 소수라도 등 돌려 도망가는 순간 학살입니다
그것을 감안하여 작전 및 배치를 해야 됩니다
96년인가 서울대에 모여든 한총련 시위대 진압하기 위한 약 30개 중대 3000여명이 서울대 정문에서 서울대역 방향으로 배치 되었는데 선봉 정예부대인 기동대 병력이 1~2백여명의 한총련 사수대에 무너져 등돌리기 시작하자 후방에 배치된 방순대 등 비정예 부대도 모두 무너진 적도 있죠
기싸움이 승패를 좌우 합니다
그래서 전투전 사기진작을 많이하는거고 지휘력이 가장 큰 문제 입니다
용인전투에서 자신의 병사들을 잘 수습해서 퇴각한 권율과 황진은 이후 웅치와 독산성전투에서는 승리를 합니다
중국을 점령한 금 요 청 원 나라가 10~20만 소수 병력이 100만 병력 가까운 나라를 이길 수 있는 것은 뛰어난 지휘관 및 정예병이기 때문이겠죠
멍청한 지휘관은 적보다 무섭네요..
식량을 버리고 도망가서 그 수많은 사상자가 생기다니... 역시 전투는 전략 전술 병력도 중요하지만 보급고가 끊기면 답이 없다는 걸 명백히 알려주는 전투였네요.
아사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론
안습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더 만들어주시면 안될까요..
임진왜란 편 기다리면서 포졸님 영상 정주행 완료햇어요...
진짜 오랜만에 제대로된 유튭 채널이네요 원하는정보만 가득있어 헠헠
사실 조선군은 이렇게 어이없이 패퇴하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데 이는 일선 부대를 통제할 부사관의 부재가 큽니다. 세조 때 오위군으로 편재를 바꾸면서 부사관 역할을 했던 갑사를 없애버리는 끔찍한 삽질을 벌이면서 벌어진 결과지요.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과 일본군의 지휘관 사망률의 차이가 큰 것도 지휘관을 보좌하고 일선 부대를 통제할 사관이 없으니 장성이 직접 전선에 나서서 지휘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군대가 너무 오합지졸이였다고 하더라고요ㅠㅠ 군대를 이끌던 장수중 한명은 양때가 풀뜯으며 소풍을 가는것 같더라 라고 표현했습니다ㅠ 200년 평화속에서 훈련된 병사가 아닌 대부분 급하게 징집된 농민이였기 때문이죠ㅠ 이때문에 군대를 분산시켜 진격하여 한번에 전멸하고자 하는걸 막고자 하였지만 총사령관이 이정도 숫자면 적이 바로 도망칠 것이라 생각하여 뭉쳐다니게 되고 이는 나중에 도망치며 압사당한 사람이 많아지는 원인이 됩니다ㅠㅠ 너무 숫자만 믿고 덤빈 상황이였고 결국 반격당하자 완전히 무너져 버리게 되죠ㅠ 띠벌 너무 훈련이 안된 병사들이였어
역사왜곡 하지말라더니 이런건 교과서에 없나
아주옛날에 역사스페셜에서 용인전투 반영했었음 당시 초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재밌게봤던기억이...
이래서 리더가 중요한겁니다
일본은 도요토미히데요시가 농병분리해서 농사짓는애들이 절대 칼 못잡게해서 농업생산량 가파르게 올랐고 칼잡는 병사애들은 전업 전쟁꾼이라 전쟁이 없으면 실업자가 되는 상황 v.s 병사한테 농사짓게한 조선군 결과는 솔직히 뻔했음 그나마 다행인게 다들 아시다시피 그 차이 이상을 수군이 메꿔줬으니 나라 안뺏겼지
토탈워를 이렇게 사용하다니..
당신은 젤나가십니다...!
마지막 어이없어서 웃음이..
임진왜란 이전 조선은 200년의 대평화를 누렸는데 북방의 여진족이 가끔 침입하는게 다였습니다. 따라서 북방에 그나마 전투경험이 있는 정예군이 배치되어있었고 전라, 충청도에서 소집한 남부 병력은 아무리 대군이라 하나 때부터 전쟁이 뭔지도 모르는 농민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은 전쟁에 잔뼈가 굵은 정예중의 정예병으로 병력이 30배가 차이난다 한들 조선군은 정신무장 자체가 안되어 있었기에 패배했습니다. 쉽게 예를 들자면 칼 들고 싸이코가 미친듯이 달려오면 아무리 30명이 뭉쳐있어도 군인정신이 없는 평화시의 정신상태로는 겁쟁이들에 불과하기에 모두 도망쳐버리는 형국이였겠죠
이각: 바깥에서 함께 싸우겠다더니 동래성에서 동래부사 송상현 버리고 도망. (송상현은 "전사이 가도난"이란 말로 싸우다 죽기는 쉬우나 길을 내준긴 어렵다는 말로 유명)
이일: 이순신 모함해서 죽일 뻔하고 상주전투에서 패퇴(이새끼 내가 제일 싫어함)
이광: 용인전투에서 와키자카의 1500왜군에 의해 조선군 5만 와해 당함
라임이 아주 죽여줘요 이각 이일 이광
임진왜란때 용인전투, 탄금대 전투, 칠전량 해전. 병자호란 때 쌍령전투, 험천전투
적군 에게 죽임을 당한 군사 보다 밟혀 죽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조선군 은 당나라 군대 와 2차 세계대전 의 이탈리아 군대 보다 더 개막장 이였음.
이동연 안타까운 일이지만 수십년뒤 쌍령전투에서도 재현됩니다ㅜㅠ 성종 이후로 문무겸비를 버렸으니 당연할지도 모르겠네요 ^^;;
이성민 자업자득 이죠.
이동연 역사의수치 조선군
이동연 당나라군대는 중국역사상 최강의군대인대요
+이성민 한국전쟁 전투중에서도 용인전투랑 쌍령전투와 비슷한전투가 있었죠, 그 전투로 인해 국군은 미군에게 전시작전권을 빼앗겼죠
멍청한 지휘관이 지휘하면 결과가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임.
교훈: 머리가 나쁘면 손, 발이 고생한다.
제승방략체제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전투 총지휘관인 신립이 탄금대에서 대패하고 전사하니 다른 지휘관들이 서로 사분오열해서 5만이라는 군대가 혼란에 빠져서 왜군 1500에게 일방적으로 도륙당하고 패배했음.... 이 전투패배로 왜란이 끝나고 다시 진관체제로 조선병력체제가 바뀜.
전투라 하기도 뭣한 사건이였습니다. 말 그대로 소규모의 일본군의 공격이 개시되자 부대 전체가 공황상태에 빠져서 뿔뿔이 흩어져 도주해버린 사건이니까요. 공황이 부대원 전체로 확산되었고 누구도 이를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권율과 황진은 휘하의 부대를 그대로 보존해 전라도로 퇴각했고 이 부대가 이후 벌어진 이치, 웅치 싸움의 주 전력이 되었습니다.
영상에나오는 게임 뭔가요? 재밌어보이네요
팍춍 토탈워 2 쇼군
조선의 흑역사
용인전투
일본의 흑역사
명량해전
무능한 지휘관이 적보다 더무서운 존재라는것이 증명된 전투
14화는 무슨 전투로 할껀가요?
1차 진주성전투 (진주대첩이라 불리는)
도 만드실 생각 잇으신가요 혹시
마인츠 시간순서대로 임진왜란의 모든 전투를 다룰예정입니다
용인전투도 탄금대처럼 가상전투 만들어주세요 플리즈^^
고구려군 5만이었다면..
사천.당포.당항포. 율포해전 순으로 배웠는데 그 사이에 진해해전 처음듣는데 아주 작은 해전이었나봐여
근데 초장에는 무능하게 발렸지만 바로 저병력 중 살아남는 병력이 행주대첩을 이뤄냅니다. 상당수는 의병활동으로 전환했구요. 전라, 충청에서 지방군 5만이면 그래도 조선군 동원력이 ㅎㄷㄷ
상비군이 아닌 농민군이에요.그래서 저정도 숫자가 가능해죠.
@@동대사 단순 징집병이라 해도 중근세 국가 중에서 저정도 숫자를 동원할 수 있는 국가는 흔치 않습니다.
@R Wj 예나 지금이나 동아시아는 지옥같은 동네가 확실합니다 허허헣...
다음에 기회가 되면 대체역사 러일전쟁 과 중소 분쟁, 나선정벌 그리고 홍경래의 난 해주세요. ㅎㅅㅎ
이동연 천천히 아이디어를 모아보겠습니다
안넣은 이유를 납득했어...
전쟁경험이 전무한 군대이다보니 저럴 수 밖에요.
농사만 짓다가 끌려온 사람이 대부분일텐데 숫자로 밀어 붙이다가 생각보다 강한 병사에 위축되었을 것 이고 고작 1000명 온거에 당황하면서 군수푼 버리고 전부 도망...
경험이 없다보니 적 원군이 내려오는지 올라오는지도 모르고 방비도 안하니 저렇게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거.
무능이라기 보다는 훈련량과 경험부족때문이라 봅니다.
진짜 무능의 끝이다. 이래서 지휘관이 좋아야 하는거지
아니 진짜 지휘관이 무능해도
병사들도 ㅄ들 집단임 ㅅㅂ
죽더라도 한놈이라도 더 죽이고 죽어야지 이런 배짱도 없는 ㅄ들
당시 전라도에서 징집됬으면 병사들 대부분이 농민들중에 징집된거 아님? 와키자카 기마대가 중앙을 휘젖고 다니는데 전투경험이 없는 농민들이 겁을 먹고 도망가는건 어떻게보면 당연한거임. 애초에 훈련이 안된 농민 병사들을 대리고 성밖으로 나간거 자체가 지휘관이 전투상식이 없다는것을 입증함.
하정훈 맞습니다 당시 총지휘를 맡은 전라감사는 무관이 아닌 문관출신이었습니다 당시 지휘관의 능력이 패전의 원인중 하나이지요
그러니까 제 말대로 5만명이 1600명 포위해서
멀리서 활로 공격하면 되는데 답답함
활이 사정거리가 훨씬 길고 좋은데
그리고 5만명이 전부 징집 병사들이 아니 잖아요
실제론 사망자가 1000명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너무 과장된것 같음 25000명이 죽었다는 말은 들어본적도 없는데 다 도망쳤다 했지
경상감사 김수는 영상 만든 자네가 묵어버렸는가?
+ros6859 경상도군은 500명도 안되어서 제외시켰습니다
저 군사들 다 해군이었으면 어떻게 됬을까
영상에 나오는 전투장면이 게임인가요 아님 프로그램인가요??
이때 지휘관이 문관이었다 들었는데
이러니까 국사에 안실리죠 ㅋㅋ 솔직히 패전한건 존나 많아요 활이 조총보다 최대 사정거리가 멀다는건 요즘 시대에 밝혀진 사실이니까요 그때 알았다면 승리했을텐데 이순신만 알았을 꺼에요
어떻게하면 5만대군이 1600명한테 개박살 당할 수 있을까요 ? 현대전도아니고 조총위력이 상당한거는알지만 기관총처럼 연사도아니고... 결국 임진왜란초기 패전은 용인전투와 탄금대전투에 몰빵이 패배한이유같습니다..
단순히 훈련안받은 농민군이더라도 도망보단 죽도록싸웠을건데 초장부터 도망칠준비부터 했다는것 아니겠나 그 이유 아주 단순하다 싸울 의지가 없었다는것 임금님도망가셨지 정치판 개판이였지 지휘관놈들 당연히 무능하셨겠지 지미럴 나같아도 도망갈 생각부터하겠다 ㅋㅋ
군사를 다 통찰시키지 못하면서 4만명으로 밀러붙일려고 했네;;
아니 300을 만명으로 못이기면 지휘관 총살 시켜야지...아 개답답
Isuzu Sento ㅋㅋ 영화 삼백보셧져 그래서 페르시아 크세스 크세르왕이
지휘관 쳐죽인듯 ㅋ
5만명중에 궁수는 없었단 말인가?
불멸의이순신 69~70화 보면
오늘 공부끝이라카더라
이 뒤에 병자호란때도 3만 조총병으로 팔기군 1300인가한테 썰리지않음?? 그것도 똑같이 남부에서 남한산성구하러오다;
뭦
착호갑사로 하시면 불리한 지형이라도
걍 발르던대 쇼군 토탈워2 조선모드...
저건 지휘관이 문제가 아닌거 같다..
지휘관 입장에서 보면.. 전라감사로써 왕이 몽진나간 마당에 당장 뭐라도 안하면
욕이란 욕은 다처먹고 후일 모가지가 날아갈지 모르고 .. 북상하자니 너무 오합지졸이고..
그나마 선택한게 보급로 끊어먹기 같은데.. 이야 아무리 그래도 1600한테 쫄아서 진거는
좀 심하네.. 기병대도 아니고 전투사를 보면 극소수 기병대에 쫄아서 적 다수보병대가 갈려나간 사례가
있긴해도.. 이건..
저병력을 걍어택땅만찍었어도 5~6천정도죽더라도이길수 있었는데
와 벌써 13번 ㅋㅋㅋ
용인전투의 순기능은 지나친 국뽕러들에게 던져주면 좋은 먹잇감이 된다는것
역시 그시대의 왕과 지휘관,백성 군사들 싹다 멍청했네요
......
이게 다른곳에서 알아본 걸로는 불리한 지형임에도 싸우다가 패퇴한게아니라
아침밥 처먹으려다가 기병에게 기습당해서 패퇴한걸로 알고있는데 뭐가 맞는거지
실화인가? 어이가 없네...
쌍령전투에서도 그렇고 항상 아무 훈련이나 전술이나 대책없이 막연하게 덤비다가 공황장애에 빠져서 자멸. 우리가 그렇게 못난 민족이 아닌데 도데체 조선은 왜 저렇게 문약했는지 안타깝다.
도망가다가 깔려죽고 밟혀죽은사람이 더많데 ㅋㅋ
병력수가 갑자기 많아지는게 이상하네요.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 했을 것이니, 농민이나 다름없는 집징병들로 싸우려다가 전문무사들에게 패퇴한 것으로 보입니다.
dd d 아시가루는 전문 무사가 아닙니다
dd d 전술없이 가다가 살육당한거지
아시가루도 말이 농민병이지 사실 정규병이나 다름없습니다 전국시대때 부터 하도 전쟁터에 불려나가서 싸우다보니 농부주제에 매우 싸움을 잘했죠
5만중 1만은 정규군이었으니 쉴드 불가
우리는 농민들 곡갱이, 낫 들고 나갈정도고 일본은 백년간 전쟁만 한 집단이니 당연 이길 수 밖에.
야생늑대랑 가정집 개랑 누가 이기겠습니까? 야생늑대가 초반에 개 목 물면 싸움 끝 이죠.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저 병력을 야전이 아니라 수성전으로 활용했으면 하는 생각이드네요
사나다 육문전기가 영상에 나오는게 에러네요 ㅋㅋㅋ
병자호란때도 저 부근에서 청나라기마병 100여명에게 수만명이 도망치다가 압사당하고 거의 전멸했다고 함..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뭐 무기가 월등하게 차이나거나 그런것도 아니고 조선군들 진짜 대책없슴..
300기입니다.
훈련안된 병력
조총소리 처음 듣는 병력이 대다수였음
숫자만 많았지 통제되는 정예는 거의 없었음
2만이상은 전장에서 통제불능
도망가는 병력이 아군에게 두려음 일으킴 지휘관들 역시 도주
숫자만 많은 양들 이었음
임진난후 조선군에 대한 일본군의 평가
"펑지에선 순한사슴 성을수비할땐
사자와 같았다"
황현필이라는 유튜버가 조선수군이 전라도 사람들이라고 자랑스러워하던데 전라도 군사 1만명이 300명도 못이기네 ㅋㅋ
미쳐요 진심 전투원도 아니고 보급수비병력 1600한테 진다는게 말 같은 소린가
육군은 일본한테 이길 수가 없었다, 전쟁으로 단련된 넘들한테 전투한번 안해본 조선군이 무슨수로 이기냐?
근데 전사자 3천도 일본이랑 비교하면 적은수가 아니네요 ㄷㄷ;
가르쳐줘봐야 한산도, 진주, 행주대첩 우리 위대함 일당백 오진다 ㅇㅈ? 이렇게 하고 끝 ㅋㅋ
저런 전투는 대열 짜는게 중요한데 조선은 징병해서 제대로 훈련이나 했을까 일본은 어땠는지 궁금하네
원 6개 저거 사나다가 깃발아닌가?
류성룡 이 진군하는 모습이 마치 양때 ~ 를 모는것과같다고 한게 틀린말은 아닌듯 ~ 오합지졸 그자체 ~
이 전쟁 시뮬레이터 이름 뭐임?
쇼군토탈워2 , 스팀에 영어로 Total War Shogun2라 검색하시면 32000원에 구매가능합니다.
믿고 싶은 걸 믿는 것이 역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이 역사이죠. 민족성향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일본은 전쟁을 자주해서 경험도 많았고 죽고 죽이는 과정에서 전술과 무기발달이 매우 높았습니다. 조선은 역시 입으로 정치하고 입으로 이기죠. 말만 드럽게 많았던 조상들의 피를 우리가 물려받아서 여전히 온라인에서 서로 댓글전쟁하는 것 처럼요.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보단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에 준비해서 미래를 대비하는게 현명합니다. 2번의 일본침략 당했는데 3번은 안 당하겠지? 이런 생각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지금도 한국은 병력과 무장력으로만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있는데 절대 우세하다고 믿어서는 안됩니다. 방심은 금물입니다.
이거도 일본 입장에서는 거의 대첩이네....
일본이조선을이긴것은대첩으로안된되요..개우시죠걍
이게말이되나요? 1500명이 5만명을 평지에서 이겼다? 삼국지에서나오는 유명장군들이막은것도아니고 좀오바가심한데요?
쉽게 말해 일본군 은 당시 1400년도 후반부터 1590년도 까지 100년을 싸움만한 집단 입니다. 야생 늑대랑 집에서 키우는 개랑 싸우면 당연히 목이 물려 제압당하는 그런 거라고 보심 됩니다. 조선5만도 정규군이 아니라 농민들 즉 농사 짓던 사람들 곡갱이. 낫, 죽창들고 진법이 뭔지 일사분란이 뭔지 전혀 교육 되지 않았고 우리는 활. 일본은 칼 및 장창, 조총으로 백병전에 능했죠.
대신에 초기에는 주구장창 깨졌으나 정유재난 쯤 일본군 패턴 파악하고 계속해서 승리합니다. 일본쪽 기록보면 병사들도 의욕 꺽이고 이전쟁에서 승리 못한다라고 할 정도로 전쟁후기쯤 일본군 사기 꺽여버립니다.
아니 왜 졌지?
...?
이후 원균의 동생 원연이라는 사람이 의병의 이끌고 햇골전투에서 와키자카를 상대로 승리합니다. 알아두시길.. 깨알 같아서 향토사에서 언급되는 부분이라 존재감이 없어요
형보다동생이낮네 공신됬대요?
@@김하-i6d원연이 이순신이랑 술마시면서 같이 원균 욕함
조선 수준이 이렇지
존나한심하네 ㄹㅇㅋㅋㅋㅋㅋ
전라도.충청도
용인전투에서 승리한 일본의 와키자카라는 장수는 훗날 한산도대첩에서 이순신에게 참패당합니다
역사의 결과는 비참 구질구질한역사
이건 일본 이 잘싸운게 아니라 우리 군 이 바버 라서 ㅠㅠ
잘싸운것도맞고
우리군이 약했던것도 맞음
차마 보기가 싫다
아니 얼마나 지휘관이 돌대가리면 저런소수군대를 못이기냐 그리고 마지막 브금이름뭐임
지금이랑 똑같을듯 ㅋㅋㅋ 지금도 전쟁나면 똥별들 오지게 해처먹고 비효율전투 줫나하겠네 ㅋㅋ 걍 이때 일본한테 먹혔어야 했는데
와... 진심 개어이없다 ㅡ ㅡ;;
일본 그러면 무서울 것 같은데 ~~ 트와이스 사나, 미나, 모모 ~ 아육대 양궁에서 활도 못쏘고 , 달리기도 ㄱ.렇고, 모모는 백치미가 가득하고 ~~ 축구도 우리가 더 많이 이기고 그런.ㄴ데 ~~ ㅋㅋㅋ
토탈워쇼군2
무현이가 이걸보면 부랄찢고 울고 날리날뜻
노알라 노무현 거세당하지 않았나
노알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임진왜란 개시당시에 조선군은 정규군이 1만이 채 되질 않았고, 근왕병 5만이 모였다고 썰에 말하지만, 진짜로 5만군대가 모였을까요? 각처에서 모았을거라 예상되지만, 그렇게 많지 않았을것이고..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5만군대가 어디서 나오나요? 분명 과장된 수치입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정규군이 아닌 농민들을 동원한수준이었을겁니다. 반면에 일본군은 오랫동안 내전을 통해 전투 경험이 풍부한 군대였구요. 용인전투는 우리가 참패한 전투는 맞지만, 이렇게까지 이야기할 정도는 아니죠.
박정규 아 5만이아니라 10만명이고 굶어 죽은사람만 4만 전투로인해 죽은사람이 1만여명 압사가 1만여명이상입니다^^
박정규 역사왜곡할려하노 인정할껀인정하세여 ㅋ 이게 딱 찐따 마인드임 그러면 일본은 100몇척이 12척한테 진거 이정도는 아님 ㅋ 그리고 살수대첩도 중국도 80만정도는 아님 ㅇㅈㄹ하겠네?ㅋ
말이 근왕병이지 오합지졸이죠. 대부분 농민군에다가
구독자1000명되기 아무것도안하고 ? 역사스폐셜에서도 정규군은 1만정도라 했는데용;;
인정할건 해야지... 조선시대 군인은 사실 거의 대부분이 농민임... 바쁠땐 농사짓고 일없을땐 군사훈련받고... 충청고나 전라도는 초반에 피해입은것도 없어서 충분하 10만이 아니라 그이상의 장정도 더 모을수있었죠.. 문제는 그렇게 쪽수믿고 밀어붙이면 도망갈거라고 봤는데 앞에서 조선병사들이 순식간에 죽어나가자 겁이 나서 도망감... 사람심리란게 먼저기선제압당하면 잘못하죠... 그래서 깔려주고 밟혀죽고..물론 무기도 제대로 안갖춰진 조선군도 많았음....
1등
교육적으로 좋지 않은 자료군요... 이 동영상은 없애 버리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