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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석이야 신사죠. 개그맨이니 남 웃기는 게 직업이었지만 다른 개그맨들은 남 웃기려고 그 사람의 감정이나 그 사람 단점을 조금 건드려서 웃기려는 사람들이 많아요. 근데 서경석은 남을 웃기려 할 때 절대 상대의 감정을 건들면서 웃기려 하지 않고 차라리 자신의 단점을 남에게 보여서 웃기려 하는 멋진 신사죠.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요.
ㅎㅎ17년 임관하고 전역한 학군입니다. 연대본부중대장으로 임무수행시 모시던 육사출신연대장님께서 딱 저 군번이었습니다. 그래서 첫 간담회에서 "본인 동기는 서경석이었고, 53사 옆연대에서 본인들 동기들이 초급간부시절 이런문제가있었다. 그리고 전 부대에서 본인 대대가 가짜사나이나왔었다 그때 서경석을 만났었는데 너무반가웠다"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대령님 ...
외삼촌이 80년대 말 공군 하사로 임관하셨는데 하사시절 어떤 고초를 겪으셨을지... 육사출신 소위도 저리 괴롭혔는데 항과고 출신 하사도 엄청 괴롭혔겠네요. 더군다나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임관하셔서 병사들보다 나이도 적으셨을텐데 그걸 견디고 군생활 계속 하신 외삼촌이 새삼 존경스러워집니다. 지금은 십여년전에 준위를 다시고 전역을 앞두고 직보반에 가계신대 하네요.
1970년대에 군대를 다닌 사람입니다. 육군을 위주로 말하면 하사도 2가지가 있었습니다. 속칭 80군번과 84군번입니다. 문제가 되었던 건 주로 84군번(단기하사)이지요. 처음 자대에 84군번 하사가 오면 고참 병장 들이 작당을 해서 하사 길들이기를 합니다. 반면에 같은 하사라도 80군번(장기하사)에게 개기는건 자살행위로 보구 감히 개길 생각조차도 못합니다. 오히려 80하사들이 꼴통 짓을 하는게 문제 였습니다.
서경석씨가 라고 한 것은 단순히 군인이 본인에게 맞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가입교 당시에 다른 동기가 불합리 또는 부조리한 일을 당하여서 수석인 서경석씨가 대표하여 상관(?)에게 보고하였으나 묵살 등을 당하여서 판단한 부분과 동기들에게 추가적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결단한 것이라고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군인으로 살 자신이 없었다 등으로 책임을 본인에게 돌리는 듯 말하는 것 또한 본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일이 커지고 피해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게 평생을 배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03이때... 군 출신별 파벌... 타파 이것 때문이지 않을지.... 근데 더 웃긴건... 지금도... 대통령은 임관식... 한곳만 참여... 그래서 제가 있던 시절에... 자기 출신 임관식 대통령 안온다고... 와야 한다고 컬럼 써달라고 한 인사 머시기가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뭣이 중헌디...??... 솔까말... 대통령이 오건 말걸... 자기 할말만 잘하는 되는 것인데..ㅠ.ㅠ... 가오 세우기... 자기출신... 각잡기... 에효....ㅠ.ㅠ.... 노답입니다... 노답...
게다가 육군 학사장교는... 전두환이... 똑똑한 애들?? 나름 사회물 먹고 민간 대학 졸업한 애들.... 서로 갈라 치기하려고... 홀수 짝수... 임관 시기 달리해서... 임관 10년 전까지는.. 같은해 군번인데 선후배라고... 갈라치기 만들고.... 웃긴건... 타군 가보니... 같은 년도 학사 학군 사관학교 할 것 없이 동기인데... 유독... 육군 학사만... 어찌보면... 병신군번인듯.... 같은해인데... 쓸데 없이 선후배라며 싸우게 만들고... 그 시스템에 빠져서... 지가 선배라고... 군림하려고나 하고... 돌대가리들.... 육군이 그 지랄하니... 해병대도 육군 후반기 학사한테 막대하고... 골때리는 육군임... 그런데 야전에서 실제로 해군.. 해병.. 선배들 만나보니... 그렇게 대하는 꼴통들은... 어차피... 꼴통들... 노가다쟁이들일뿐이라고 ㅠㅠ
1992년 1월말에 입대해서 94년 5월초에 제대했습니다. 군 복무기간이 30개월에서 26개월로 줄어드는 과도기라서 군 생활 딱 2년 3개월 4일 하고 나왔네요. 제대 두 달도 채 안 남기고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와서 말년 병장 때 제대 못 하는 것 아닌가 걱정했던 생각이 나고요, 제대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김일성 사망했을 때 친구들이 "방금 들은 소식인데 제대 6개월 이내인 자는 다시 현역 복귀해야 한다더라"고 "너 방금 뉴스 안 봤냐, 지금 빨리 군복 입고 복귀해라" 하면서 절 놀리기도 했죠 ㅎㅎ 그 해 여름이 역대급 무더위로 유명하기도 했죠. 근데 장교 무장탈영은... 제대하고 얼마 후에 그걸 뉴스로 봤는데, 부사관이면 모를까(병 출신 아닌 민간 출신 하사에겐 암암리에 맞짱 떴음) 아무리 소위라도 장교에게 맞짱 뜬다는건 제가 있던 부대에선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는데 별 이상한 부대도 다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부대마다 달랐다고 봐야죠. 암튼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육사를 갔었는데 작년 말에 투스타 달고 사단장이 되었다고... 그리 친했던 친구는 아니라서 다른 친구 통해 건너건너 소식을 들었는데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나... 생각하게 됩니다.
30년전 대전에서 친구랑 불고깃집에서 점심때 한잔하고 있었는데 .. 서경석 씨 형 이 고깃집 관련 영업을 하고 계셨나봐요 일요일이었던거 같은데 인사하고 손님들 테이블을 돌면서 술도한잔 따라주시고 형님분 영업도와주시더라구요 저도 어린나이였고 생각도 못한데서 연예인을 봐서 얼떨떨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서경석 씨가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한참 잘나가는 연예인이면 잠도 부족한데 시간 나면 쉬어야죠 ... 그리고 형님이 하시던일이 잘나가던 연예인 형 사업치고는 남들보기 그럴싸한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 보통사람 같으면 다른거 해보라고 돈으로 도와 주려 하거나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죠 ... 그런데 형을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인정해주고 동생으로 도와주려는거 아니에요
육사는 9급 7급에 비해 딸린다가 맞고 뭐 요즘은 5급이나 7급이나 9급이나 경쟁률이 쎄서 똑같은 중위 대위 소령 시작이고 그에 비해 사관학교는 월급에 비해 매년 소위시작으로 순환근무 하고 진급에 스트레스 받을 정도인데 가난하거나 사연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라는 낙인이 찍혀 있음.
하나회보다 더 ........한건 참여연대? 하나회척결하고 인반군인들에게 돌아갈 명예회복홰서..... 지금 군인들을 이렇게 ㅇ같이 보나 국민들이.... 천안함이 북한의 소행이아니라고 시민단체들이 설치고..... 지휘관의 지휘권보다 장병의 인권이 더 소중해서.....수류탄사고로 1명이 사망하자 2년을 넘게 수류탄교육을 전면중지시키고...... 군대도 나오지않은 게이가 회장으로 있는 단체가 총장,의장,장관을 우습게보고..... 연평도에 처참한 현장에서 소주병을 발견하고 이게 진짜 폭탄주네...라는 농을 던지는 .....현재의 안보관.... 모든건 공과사가 있고 어느 한쪽면만 부각시키면 모든사람이 악인이 될수있고 또한 호인이 될수 있음....
하나회는 현대사에 아픈 역사임에 틀림없어요 제가 알기로 한미연합사부사령관을 역임하고 전역하신 육사 36기 김현집 대장 이분이 마지막 하나회 멤버로 알고있는데 당시엔 하나회 멤버였다는게 진급에 족쇄로 작용할 수도 있는 시절이었는데 능력 하나로 대장까지 진급하신것도 흥미로운 일이네요
하나회 정식 맴버가 아니여도 40기수때까지도 라인은 다 있었습니다 하나회 포섭 자체가 육사생도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하나회 유망주들은 하나회가 땡삼이한테 털리기 직전까지 있었어요 그래서 나도 하나회 들어가서 잘나가고 싶어! 이런것보다 선배따라 라인따라 그냥 저냥 흘러들어가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그때 자의반 끌려감반으로 하나회 라인타게되버린 사람들 43~44기까지 거의 다 잘 안됐습니다 대령달면 용하다 했죠 하나회 털기전에 영관급 달 군번이 아닌 분들은 영향을 안받은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국군의 작전권이 국군에 없고 미군이 가진 이유를 설명해주심 어떨까요? 다들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공세작전 좋아요~ 아주 좋아!!! “북진통일!!!” 말 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근데 리승만도 6.25전에는 전쟁나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라고 떠들더니 정작 전쟁이 나자 국군이 서울 잘 지키고 있다 구라치고 대전으로 도망가서 “런승만”이란 조소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 국군의 고위직들이 하는 짓 보면 막상 전쟁 났을 때 허둥지둥 어버버 하며 미군의 군복 바짓가랑이 잡고 살려달라 할 듯…
@@에효-i4w 정복에 다는 어깨 계급장 말씀하시는거 같은데.. 요즘은 그것도 차별이라고해서 영관급 장교이상을 제외하곤 전부 견장(지휘, 참모)에 검은색으로 계급장 인쇄된것 붙이구요. 보통 계급장이라고 알고 계시는 약장은 육군/해병대 검은색, 공군 흰색, 해군 파란색으로 해당 계급만 표시되는 계급장입니다. 기존엔 장교부터 카라 약장 이었으나 바뀌었구요. 용사를 제외한 전간부들 모두 카라에 약장을 패용 합니다. 각군 통일로 준사관인 준위만 소위와의 구분을 위해 금색 약장을 씁니다. 전투모나 견장에 있는건 계급장이고 정복 팔이나 견장에 있는건 비표였으나 이 비표도 차별이라고 해서 영관급 장교에게만 정복에 비표 사용 합니다.
저도 5공시절 해사 입교후 1학년말에 자퇴한 사람인데 환갑이 지난 지금 삶을 돌이켜보면 제 개인적으로 인생에서 가장 큰실수가 사관학교 입학이었고 가장 잘 결단한일이 사관학교 자퇴였다고 생각됩니다 한번뿐인 인생을 직업군인으로서 평생 살지않고 전가족이 뉴질랜드 영주권도받고 전세계 45개국을 여행다니며 후회없이 열심히 신나게 살았습니다 제독ㆍ장군출신 동기생들보다 개인적으로는 더 만족스런 삶을 살아오고있습니다 평생 직업 군인은 특화된 군대 체질을 가진 사람들이 신중하게 결단을 해야하는 진로입니다 자퇴 당시 서경석씨의 심정이 저의 그시간과 overlap되네요
@@Twitter_exe 그 당시 사관학교가 인기가 있었지만, 서울대급은 아닙니다. 서울 중위권 대학 수준이었습니다. 육사가 340점 만점에 260점 정도, 해사/공사는 그보다 좀 낮고, 서울대는 300점이상, 서울대 농대, 연고대가 280~290점, 한양공대가 280, 인하공대250~260, 그 즈음 이하에 서울 중위권 대학, 당시는 부산대가 연대급 이상이었음. 지금과는 많이 다름. 공대가 강세였고, 각 대학 수석은 모두 의대가 아닌 공대에서 나옴, 모두 이과기준, 문과는 모름.
저도 11년 12월 17일 김정일 사망 당시 전문하사 신분화교육 중이었는데, 전쟁나는 줄 알고 "야야, 이거 자대 원복 아니야?" 이랬던 기억이 있네요. 입대할 땐 천안함 피격도발, GOP 갔을 땐 연평도 포격도발, 신분화교육땐 김정일 사망, 전역 전엔 DMZ 지뢰도발... 지금 돌이켜보면 아슬아슬했던 시기에 군생활을 했었네요. 자, 그럼 이번 군생활에서는 뭐가 터지려나... 에휴
그 당시 하사는 일반하사와 단기하사로 나누어져있었죠 일반하사는 자대에서 상병 3호봉부터 차출하여 사단 신교대에서 교육을 받고 자대로 원대복귀하여 자기가 속했던 분대 분대장 임무를 수행했고 단기하사는 육군하사관학교 출신으로 하사로 임용하고 온 하사로 48개월 근무후 장기근무 지원대상 이였죠 그 당시에는 병들과 하사들간에 트러블과 대립이 많았습니다 하사들에게는 경레 관등성명을 대면 집합을 당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신임 소대장이 오면 꼭 한번씩은 트러블이 있곤했지만 주먹질까지는 없었었습니다 신임 소위들과 한번씩 겪는 트러블은 오히려 더 친해지는 계기가 되곤 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계기도 됐구요 전역32년차가 되고 보니 아련한 옛일로 그 시절을 돌아봅니다
당시 급있는 대학의 수석은 대단한거죠. 근데 육사가 서울대급은 아니었어요. 90년대에도 육사가 예전 같지는 않았던 시기에요. 시험은 별도로 치루지만 실력면에서는 중대 외대 와 비슷하지 않았을까합니다. 근데 당시 중대 외대 수석은 서울대 가고도 남습니다. 그 시절을 이해하면 아는데..지금과 시험제도..등등이 완전히 달라서..
연예병사로 입대할 때 육사출신임이 알려져 유명했었지요. 육사를 가입교 기간에 그것도 수석이 그만 둬서 학교는 혼란에 빠지기도 하지만 본인이나 국가를 위해 잘 된 결정이라고 서경석씨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시에도 육사는 본고사가 있어서 그렇지 서울대 급은 아니었고 성균관대나 한양대 평균학과 정도 였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인재들이 지방 국립대의 학과로 많이 입학을 합니다. 이유는 장학금이 있었지요. 당시 입시 경쟁이 가장 치열할 때 였습니다. 장교무장탈영 사건이 발생한 건 병장들의 문제도 있었지만 중간의 경험 많은 하사관들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경험 많은 지금은 부사관으로 불리는 하사관 특히 하사는 보병부대 포병부대에 많이 부족하여 상병 때 육하교를 보내 일반하사를 하면서 분대장이나 포반장을 하였고 그 위에 중사가 부족하다 보니 병들과 초임 소대장이 소초에서 갈등을 했고 특히 힘쎈 소위들(체육과나 운동했던 이들)은 계급이나 완력으로 하려다 병들과 더 갈등이 벌어졌는데(위에선 단체 군기교육 보내고 입창시키고 구타 근절 바람보다 더 했다는 소문도 있었음) 계급 사회지만 넘어야 할 선을 넘다 보니 발생한 불상사였다고 봅니다. 당시 전 후방 병력 특히 하사관들이 부족할 때 교체를 하고 소초에 중간 허리인 간부가 없어서 그랬던 것이고 소위라고 무조건 무시 하지 않았습니다. 소위도 바짝 군기가 들어야 하는 건 맞는데 어디서 잘못 듣고 와서 힘자랑하고 병력들을 잘못 파악하고 있다가 당한 것인데 당시 선임하사가 있었다면 중간에서 잘 대처를 했을 것이지만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당시 장교들과 부사관들은 업무나 주특기를 자신들이 직접 참여하기 보다는 병장들에게 맡기는 경우가 있었고 이것이 하부제대의 문제가 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단기교육을 받은 3사 장교들 나이가 22~ 23살에 공수교육을 받고 군기가 바짝들어 왔지만 선배들에게 막연한 이야기만 듣고 주특기 숙달이나 경험이 많은 야전의 병력들을 다루기 쉬운 이들이 아니었고 숫자가 가장 많은 학군출신들은 옆에서 이야기 해주는 선배가 있어 좋은 유리한 부분이 있었고 가끔 특공부대나 특전사에서 전출 온 장교도 조금은 부대 분위기에 따라 조언을 구했으며 본부나 큰 부대에서는 소위라도 힘을 쓸 수 있었지만 당시 하사관들과 갈등이 약간 있었지만 크지 않았고 말단의 소초도 잘 하는 장교들은 문제가 없었는데 힘으로 누르려다 망신을 당했다고 보면 됩니다. 야전의 병장들이 사고를 치긴 했지만 초임 소위들에게 함부로 하지 못했고 인계사항을 잘못 전달한 선배들의 잘못도 컸다고 보면 됩니다. 선배장교들은 후배들의 상황을 잘 알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생각을 했습니다. 3사의 경우 선배들을 학교에서 동시에 교육을 받을 수 없다보니 육사처럼 잘 알 수 없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다른 장교단에 비해 어린 나이에 임관하여 다른 장교들과도 어울리기 어려웠고 더 힘들어 했던 것 같습니다. 자대에서 만나지만 잘 모르고 학군은 학교가 다 다르고 육사는 소대급 부대에서 본다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전투병과 장교를 가장 많이 양성하던 광주 상무대가 장성으로 이사를 준비합니다.
@@jbs7946 휴대폰으로 이동중에 쓰다 보니 길어져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난잡하다니요. 난잡하다는 말씀은 조금 결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 잘 쓰시는 님이 축약해서 설명해 주세요. 잘은 모르지만 댓글 잘 다셔서 좋아요! 도 많으시던데 ... 당시 군대를 제대하고 느낀 군대(저는 민무늬 군복을 입은 세대)를 설명 하려다 보니 말이 길어진 것이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보통 예전 군대가 기강이 잡히고 장교나 부사관 대우가 좋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많고 잘못 이해할 수 있다보니 설명이 길어진 겁니다. 그때도 문제가 많았다는 걸 부각시키다 보니 그런 것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gaudi8274 솔직히 제가 86년도에 245개 맞았는데, 연고대 가기 위해서 재수를 택했죠. 그리고, 그 점수로 대성학원 서울대반으로 시험 안치고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 육사 커트라인이 230 수준이었습니다. 제가 조금 관심이 있었기에 점수를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하지만, 제가 다니던 대원고등학교가 워낙 점수가 높아서 내신이 부족했고 결국 육사 지원은 포기 했죠... 4등급이상이었어야 했으니까... 제가 당시에 5등급이었고... 반에서 10~13등(70명중) 정도 했거든요...ㅠ
8:00 밤에 병장이랑 소위랑 싸워서 존나 팼다는 아버님뻘의 증언 ㅋㅋㅋ 자주 듣습니다 ㅋㅋㅋㅋ 근데 솔직히 매일같이 33개월간(약 2년 9개월) 맞으면서 악바리가 된 병장이면, 온지 1년도 안된 소위가 제압하긴 어렵지 ㅋㅋㅋㅋ 군대건 뭐건 권력은 힘이 있어야 하는건 맞는듯 그게 남들에게 받는 지지력이든, 본인의 능력이든 간에..
아 특중이, 경석이 . . 제 인생의 제일 잘한 선택이 1990년 11월 육사를 나온것 . . 경석이는 기훈때 선출하는 동기회장에도 당선 되었다는 . . 동기회장 선출시 경석 왈 "저희 부모님 께서는 장을 좋아합니다. 된장 고추장" 하면서 자는 동기들을 다 깨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중대별로 1명 씩 후보로 나왔기 때문에 (각 중대별로 20명) 20표 씩은 나와야 하는데 경석이가 몰표를 가져간 덕에 20표를 얻지 못한 후보들이 있던 중대는 저녁에 뜨밤을 보냈다는 . .
전 94년에 50사단 해안소초에서 근무한 용사입니다. 솔직히 구타 보다는 지금 생각 해보면 왕따라고 생각됨. 일부 소초에서는 92년 까지는 분초 생활을 하였고 93년 부터는 소초 생활 하였는데 전 다행히 분초 생활은 안해봄. 분초는 분대장이 왕이 라고 생각 될수 있지만 그 당시는 분대장은 병하사를 달아 주었고 분대장 역시 왕따인 상황. 분대장에게 경례도 못하게 함. 이런 상황이어서 소대장 왕따는 당연시 여기던 시절. 우리 소대장도 94년 여름에 12시간 탈영을 했었음. 그때 제가 해안 소초 상황병이었는데 소대장 찾느라 해안가및 부대 주변 야산 싹다 수색함. 여기 술먹고 취해있는 소대장(rotc) 찾아 왔고 제가 그때 당시에 상병이긴 했지만 위로 고참이 1년 넘게 차이나는 부대여서 싹다 제대한 상황. 솔직히 큰 문제(왕따)는 없었지만 제 생각에 혼자 다수의 병을 케어 하는 스트레스가 엄청 컸던거같음. 우리 소대장은 중위 달고 두번째 소대장으로 온거라 짬밥 인정도 돼었고 해서 친하게 지냈는데 ... 그 후로 전 육화교로 4주인가 훈련 갔고 그때 53사단 무장 탈영이 발생. 그후 부대 복귀 하니 해안 소초에 국방부 별 하나씩 모든 소초에 일주일 넘게 같이 생활하였다고함. 그때 대대장 연대장 잠을 못 잤다 라고 하데요. 하여튼 우리 소대장은 어깨에 힘이 뿡뿡 들어 갔는데... 솔직 그것도 한달을 못가더라구요. 해안 소초 소대장은 잠을 잘수 없는 구조라.. 취침 시간이 제대로 확보가 안돼니.. 일반 병은 오침을 하는데 소대장은 그때 못 자고 밤에는 병이 모두 근무 나가는 상황이라 잠 못자고.. 완전 피로 만빵인 상태. 하지만 그때는 페이퍼 work같은건 없었음. 하여튼 그후 중대장이 디스크로 후송 돼고. 우리 소대장이 중대장 역활을 하였음. 탈영을 했던 소대장 이었지만 전 말년까지 친하게 지냄. 중대장 역활까지 해서 엄청 존중도 더 해줌.. 하여튼 지금 생각 해보면 그때 그시절이 그립네요. 전 제대하고 4개월 후 우리 소초 해안으로 내려 갈때 쯤 놀러가봄. 소대장을 바뀌었지만.. 우리 소대원이랑 소초 에게 한잔 맛있게 했죠.. 해안소초의 문제는 술...이 가장 큰 문제 였던거 같음. 근무지 나가서 새벽 3시 넘으면 한잔 하는 문화가 가장 소대장의 스트레스가 아닐까 생각됨.
내가 존경하는 인물이 제주도지사를 엮임한 신구범. 그는 육사 4년때 자퇴한 이력. 매우 아쉽다. 그가 졸업 후 중령만 되었어도 차기 육군참모차장, 내무부 장관을 했을 터. 경쟁자 우근민(학사. 소령 전역)은 온갖 우씨-채용비리 등을 저지른 속이 시커먼 자. 지도자, 권력가는 고도의 윤리의식이 있어야 한다. 위기시 남다른 통솔력, 판단력으로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남다른 인격 요구됨.
개그맨 서경석 육사50기 신입생 가입교 중도 탈락. 공부는 잘 해도 의지가 약한...저는 공군출신으로 공사출신들 어느 정도 안다. 대게는 조종사였는데 조종사가 아닌 자들이 줄자로 잰 듯 정확한 걸 추구/집착한다. 생도 생활의 고역은 매일 아침 식사 후 소화시킬 여력 없는 필기시험 문제...수학 싫어 하는 자 생도 생활 버티기 힘들다. 허화평(육사17기) 수석은 도미시절 "왜 한국의 수학교육이 잘못된 방식인지 알겠더라." "미국은 속도전이 아닌 문제 풀이 과정을 면밀히 조사하여 점수를 매긴다. 누가 제한 시간내 많이 푸냐가 아니라 누가 독창적 / 창의적 풀이로 답을 결정했는가." 커닝구 하지 않고 성실히 시험에 임하는 소탈한 자세를 본다. 결국 강대국 미국은 정직-성실을 최고 덕목으로 한국은 "더 빨리, 더 많이"를 추구하다 보니 필요한 인재들이 사관학교 보다는 3사 / 갑종 출신에서 나오더라.
제가 중사진급후 얼마후 제나이 동갑벌인 육사50기 전입왔었죠...우리 부대는 임무상 초임소위들이 소대장직으로 안오고 거의 야전에서 1년간 소대장직을 수행하던 중위급 장교들이 소대장으로 전입오는데 육사는 소위부터 전입오더군요... 아마 짬이 있어 병사들 지휘 장악하는데 별 문제 없을거...? 아니면 소위 시작부터 특수지근무 인사고과를 반영하기위한 또다른 이유?도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데 암튼 큰 별탈없이 소대장직 잘 하시고 부사관들과도 잘 지네었죠... 지금도 생각나고 연락하며 지네는 예비역 육사50기 현역장성 51기분 있습니다... ^-^
하나회 청산했으면 군인처우를 더욱 좋게 개선해야 하는데, 군인처우는 그때부터 열악해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융실명제 했다고 자화자찬하면서 대한민국 경제는 IMF사태 맞게 한 멍청한 김영삼 대통령이었다. 퇴임후에는 돈을 조금 줘서 사람을 만나러 다닐 수 없다고 불평했다고 한다. 김영삼대통령은 대통령연금이 적다고 투덜거리던 사람이었다. 정치인들이 군사정권에 대해 반감이 많은 것은 이해하지만, 수십년이 지나도록 왜 점점 군인처우는 나빠지고 있는 지 모르겠다. 90년대 불바다란 말이 나왔을때 김영삼대통령이 전쟁은 절대 안된다고 해서 전쟁을 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암튼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할 수 없는 김영삼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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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의 육사(육군사관학교) 최악의 조직 하나회 숙청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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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버림받은 국군포로가 귀환 할 수 있었던 이유...(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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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연금 문제도 한번 다뤄보시면 좋을거 같아요. 연금 고갈문제로 개혁 한다는 판에 국회 국방위 소속 예비역 장성출신 의원님들 국회의원 직무중에도 연금 수혜 받을수 있게 입법 추진 한다네요.
캡틴씨가.장교였구나
경석이는 진짜 퇴교 잘 했음 만약 사단장이 됐다면 적군은 총 한번 안 쏘고 이긴다 왜 벌레만 많이 잡아 던지면 경석이는 꽁지 빠지도록 도망간다
서경석이야 신사죠.
개그맨이니 남 웃기는 게 직업이었지만
다른 개그맨들은 남 웃기려고 그 사람의 감정이나
그 사람 단점을 조금 건드려서 웃기려는 사람들이 많아요.
근데 서경석은 남을 웃기려 할 때 절대 상대의 감정을 건들면서
웃기려 하지 않고 차라리 자신의 단점을 남에게 보여서 웃기려 하는
멋진 신사죠.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요.
내가 이래서 김구라 ㅈㄴ 싫어함
그사람은 저속해요.ㅇ예명조차 구라가 뭐야.구라쟁이. 생긴것도 비호감.
1994년 임관한 육사 50기 해사 48기 공사 42기들 뿐만 아니라 동년 임관 육해(해병대 포함)공 학군 삼사 학사장교들 파란만장 하게 군생활들 시작했습니다. 이제 곧 30년이지만 수고들 많았습니다.
진짜사나이 육군에 이어서 해군도 나왔는데 저는 서경석을 직접 봤어요. 서경석님이 저랑 제 선임한테 “수고하셨습니다” 말씀하신게 생각나네요
장교 탈영사건 때 중학생 이였는데
그때당시 엄청 충격이 컸었음
서경석은 진짜 찐 능력자 인듯 ㄷㄷ
진짜 시간이 엄청 빠르네요. 당시 중령들이 지금은 준장/소장 달고 있으니까 ㄷㄷㄷ
ㅎㅎ17년 임관하고 전역한 학군입니다. 연대본부중대장으로 임무수행시 모시던 육사출신연대장님께서 딱 저 군번이었습니다. 그래서 첫 간담회에서 "본인 동기는 서경석이었고, 53사 옆연대에서 본인들 동기들이 초급간부시절 이런문제가있었다. 그리고 전 부대에서 본인 대대가 가짜사나이나왔었다 그때 서경석을 만났었는데 너무반가웠다"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대령님 ...
설마 ㄱㅂㅅ 대령?
초군반 시절 서경석이랑 동기 였던 육사 출신 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무장탈영으로 소대장들 길들이기가 큰문제가 되어 그당시 큰문제가 되었다.
벌써 30여년전 얘기인데...
그후로 군은 변화가 있었지 의문이다...
94년에 진짜 일들이 많았던시절이였는데....
참 쓸데없는 의문이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성적이 좋은 학생. 그냥 하는것이 아닙니다.
뭐를 해도 진지하고 생각많고 의리많고 착합니다.
서경석씨는 육사의 위상을
높여주는 결정적 역활을 했다.
육사퇴교후 서울대 들어갔으니
육사생 실력의 실체를 보여준거임
역할 역할.....
퇴교 아니에요....
자퇴 했어요~~~ ^^
@@한강타워 육사는 자퇴의사가 있어도 서류상은 퇴교처리입니다
군대라 그런가 내가 나가겠다 해서 나간다 보다는 "나가라"라는 명령이 나와야 나가는 거라
무슨 헛소리 입니까 서경석씨 개인이 서울대 갈수 있는 자원이 육사 갔다가 나온것일뿐 내가 서경석씨와 나이 비슷한 서울대 졸업자인데 당시 육사는 요즘말로 중경외시 급밖에 안됐어요. 고3때 내 눈으로 그정도면 공부 못한거였고
@@ygso-ru7nj 도대체 문해력은 어따 팔아먹은 건지? 서경석씨야 육사 수석이니 당연히 공부 잘한거지만 일반적으론 육사 진학자들 공부 시원치 않았다는 것. 서경석씨가 서울대 갔다고 해서 다른 육사 진학자들이 공부 잘한것이 아니지요
외삼촌이 80년대 말 공군 하사로 임관하셨는데 하사시절 어떤 고초를 겪으셨을지... 육사출신 소위도 저리 괴롭혔는데 항과고 출신 하사도 엄청 괴롭혔겠네요. 더군다나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임관하셔서 병사들보다 나이도 적으셨을텐데 그걸 견디고 군생활 계속 하신 외삼촌이 새삼 존경스러워집니다. 지금은 십여년전에 준위를 다시고 전역을 앞두고 직보반에 가계신대 하네요.
1970년대에 군대를 다닌 사람입니다. 육군을 위주로 말하면 하사도 2가지가 있었습니다. 속칭 80군번과 84군번입니다. 문제가 되었던 건 주로 84군번(단기하사)이지요. 처음 자대에 84군번 하사가 오면 고참 병장 들이 작당을 해서 하사 길들이기를 합니다. 반면에 같은 하사라도 80군번(장기하사)에게 개기는건 자살행위로 보구 감히 개길 생각조차도 못합니다. 오히려 80하사들이 꼴통 짓을 하는게 문제 였습니다.
@@메존일각고다이 육하교 나온사람들 군번은 89군번
입니다
84군번은 병생활 하다가 상병쯤
하교대 8주교육받고 하사달고
원복해습니다
89군번
최초입대시 단기하사로 입대한 자원
84군번
병으로 입대하여 병장진급후
분대장요원으로 충원된 소위 일반하사
(복무기간은 일반병사와 동일)
80군번
병장 만기복무후 장기지원한 병사들에게 부여한 군번
(장기하사 인원)
제복입은 사람들이존중 받는 국가가 선진국 입니다.
90년대에도 하사는 이등병 취급 받았습니다 중사 달아야 대우 해 줬지요
89 논산 군번입니다. 그때가 지금이나 대한민국 군대의 모토는 변하지 않지요..
"입대할 떈 조국의 아들, 다치거나 죽으면 느그 아들".... 이런 상황에서 뭘 더 바라겠습니까 ?
요즘 김탭틴님 영상 애착이 가서 자주 보고 있습니다. 영상 많이 올려주세요
서경석씨가 라고 한 것은 단순히 군인이 본인에게 맞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가입교 당시에 다른 동기가 불합리 또는 부조리한 일을 당하여서 수석인 서경석씨가 대표하여 상관(?)에게 보고하였으나 묵살 등을 당하여서 판단한 부분과 동기들에게 추가적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결단한 것이라고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군인으로 살 자신이 없었다 등으로 책임을 본인에게 돌리는 듯 말하는 것 또한 본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일이 커지고 피해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게 평생을 배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육사50기랑 같은 해 임관한 학군32기입니다. 그 때 한가지 특이했던 점이 병과학교 수료식과 실무부대 전입신고를 육사, 학군이 섞여서 같이 했었습니다. 보통은 양성기관에 따라서 따로 하는데 저희 때는 줄도 같이서서 했습니다.
아마도 03이때... 군 출신별 파벌... 타파 이것 때문이지 않을지....
근데 더 웃긴건... 지금도... 대통령은 임관식... 한곳만 참여...
그래서 제가 있던 시절에... 자기 출신 임관식 대통령 안온다고... 와야 한다고 컬럼 써달라고 한 인사 머시기가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뭣이 중헌디...??... 솔까말... 대통령이 오건 말걸... 자기 할말만 잘하는 되는 것인데..ㅠ.ㅠ... 가오 세우기... 자기출신... 각잡기... 에효....ㅠ.ㅠ....
노답입니다... 노답...
게다가 육군 학사장교는... 전두환이... 똑똑한 애들?? 나름 사회물 먹고 민간 대학 졸업한 애들....
서로 갈라 치기하려고... 홀수 짝수... 임관 시기 달리해서... 임관 10년 전까지는.. 같은해 군번인데 선후배라고... 갈라치기 만들고....
웃긴건... 타군 가보니... 같은 년도 학사 학군 사관학교 할 것 없이 동기인데... 유독... 육군 학사만... 어찌보면... 병신군번인듯.... 같은해인데... 쓸데 없이 선후배라며 싸우게 만들고...
그 시스템에 빠져서... 지가 선배라고... 군림하려고나 하고... 돌대가리들.... 육군이 그 지랄하니... 해병대도 육군 후반기 학사한테 막대하고... 골때리는 육군임...
그런데 야전에서 실제로 해군.. 해병.. 선배들 만나보니... 그렇게 대하는 꼴통들은... 어차피... 꼴통들... 노가다쟁이들일뿐이라고 ㅠㅠ
1992년 1월말에 입대해서 94년 5월초에 제대했습니다. 군 복무기간이 30개월에서 26개월로 줄어드는 과도기라서 군 생활 딱 2년 3개월 4일 하고 나왔네요. 제대 두 달도 채 안 남기고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와서 말년 병장 때 제대 못 하는 것 아닌가 걱정했던 생각이 나고요, 제대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김일성 사망했을 때 친구들이 "방금 들은 소식인데 제대 6개월 이내인 자는 다시 현역 복귀해야 한다더라"고 "너 방금 뉴스 안 봤냐, 지금 빨리 군복 입고 복귀해라" 하면서 절 놀리기도 했죠 ㅎㅎ 그 해 여름이 역대급 무더위로 유명하기도 했죠.
근데 장교 무장탈영은... 제대하고 얼마 후에 그걸 뉴스로 봤는데, 부사관이면 모를까(병 출신 아닌 민간 출신 하사에겐 암암리에 맞짱 떴음) 아무리 소위라도 장교에게 맞짱 뜬다는건 제가 있던 부대에선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는데 별 이상한 부대도 다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부대마다 달랐다고 봐야죠. 암튼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육사를 갔었는데 작년 말에 투스타 달고 사단장이 되었다고... 그리 친했던 친구는 아니라서 다른 친구 통해 건너건너 소식을 들었는데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나...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92년 3월 군번입니다. 맞아요. 15일정도 일찍 전역했죠..벌써 친구분이 사단장인가여...허허
01년도때인가 서경석씨는 현역때 이훈씨하고 공개방송위문열차 군부대 촬영왔었는데 병사신분인데도 연륜이 묻어났어던 기억이 생각납니다 심성은 타고 나는것 같습니다
1994년 6월경 제가 일병때, 육사 제50기 소위 임관되신 분이 저희 소대 소대장님으로 오셨습니다. (저에게는 두번째 소대장님이심.) 육사 소대장님! 멋있는 사나이입니다! 보고 싶습니다! 특공!
캡틴김상호대위님 당시 역사적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고 계시네요~ 감사 합니다~
현역 복무때문에 신병교육을 제가 근무하던 부대에서 받았죠... 신교대 입소하던날 중대행정병이 중대장님 서경석 오늘 신교대 입대한다고 해서 나가 보니까 부대가 엄청 시끄러웠던 기억이 나네요! 방송사 취재에 이윤석씨가 서럽게 울던 모습을 옆에서 봤었는데...
ㅋㅋㅋ이윤석형은 왜 운거야~~ 고무신도 아니구
서경석씨 32사 신교대 01년 10월 입대했네요
제가 99년 10월21일 32사 신교대 입대해서 잘 알고 있네요
53사단 93년에 제대한 군번인데. 당시 신입 하사관이나 소위 전입시 그정도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우리부대외 타부대 하사들이 우리부대 상병이상 병들에게 막대했을때 트러블 나는건 봤는데. 우리부대에 전입온 신입 부사관이나 소위들오면 계급대우 해줬습니다. 아마. 같은사단이라도 분위기가 조금씩 달랐는가 봅니다. 당시 군생활이 혹시 오해 받을거 같아 몇자 적어 봅니다.
53사단은 소대장 길들이기로 유명했으니까요....
소대장 무장탈영한게 53사단 ooTOD
나으 군시절때 중위 중사까지 그림자 취급
중사3호봉 중위2호봉 되야 인사해줌
어느시절이나 부바부이죠
몇년도 이후 구타 가혹행위 없던 부대도있고 있던부대도 있고
어느시절이나 본인 경험이 전부가 아닙니다
헉 세월이 바람과 같이 같네요 김상호대위님도 진짜사나이 때부터 방송 기질이 있어서 유튜부도 잘하시는 거구나 승승장구 하세요
서경석 육사 수석합격이였구나..
정말 투스타 진급할수도 있었겠네
30년전 대전에서 친구랑 불고깃집에서 점심때 한잔하고 있었는데 .. 서경석 씨 형 이 고깃집 관련 영업을 하고 계셨나봐요
일요일이었던거 같은데 인사하고 손님들 테이블을 돌면서 술도한잔 따라주시고 형님분 영업도와주시더라구요
저도 어린나이였고 생각도 못한데서 연예인을 봐서 얼떨떨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서경석 씨가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한참 잘나가는 연예인이면 잠도 부족한데 시간 나면 쉬어야죠 ... 그리고 형님이 하시던일이
잘나가던 연예인 형 사업치고는 남들보기 그럴싸한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 보통사람 같으면 다른거 해보라고 돈으로 도와
주려 하거나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죠 ... 그런데 형을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인정해주고 동생으로 도와주려는거 아니에요
원하지 않은 육사에 지원하는데 수석으로 들어간 서경석 클라스 진짜 ㄷㄷ 하다
뭘 했어도 성공할 사람
육사는 9급 7급에 비해 딸린다가 맞고 뭐 요즘은 5급이나 7급이나 9급이나 경쟁률이 쎄서 똑같은 중위 대위 소령 시작이고 그에 비해 사관학교는 월급에 비해 매년 소위시작으로 순환근무 하고 진급에 스트레스 받을 정도인데 가난하거나 사연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라는 낙인이 찍혀 있음.
@@UNroCK_SEvaNT정음이 불쌍한 인생😂
부대마다 다르지만 90년대 중후반에 소위,하사 들어오면 병장들은 대놓고 대들지는 않았지만 서로 건들지 않았음. 가끔 일부러 병장들 잡으려는 소위,하사들 있으면 소리없이 병장들이 피곤하게 분위기 만들었음.
진짜사나이가 곧있음 10주년 된다는게 제일 충격이네 뭐야이거 진짜
육사 50기때는 육사가 서울대급은 아니었고 서성한이나 중경외시 이상급이었습니다.
고3때 같은반 제 동창이었던 김특중 탈영소위도 50기 동기였는데 중경외시급 정도였네요.
중경외시가 뭡니까?
@@kuraedio 중앙 경희 외대 시립대요
경찰대학이 만들어지고 육사는 서연고 수준에서 내려옴 경찰대학이 서연고 수준이고
수석입학임을 감안하면 그래도 서연고 급으로 쳐줄만하지않나 싶네요 반박시 그 말도 다 맞음
@@sungsupark1705 상위 5~10%는 문과 서울대 법대나 이과는 서울대 공대 쯤은 됐을 거에요. 50기 기준으로요...
육사50기
소장 김화종 윤봉희 최병옥 하헌철
준장 구삼회 강현우 정광웅 차원준
저때 아버지 친구분께서 옷을 벗으셨음
장성금 회의 다녀오는 길 한복판 에서 전화받고 예편하심
하나회 출신이었을 확률이 높음.
@@tgrmoon7363 하나회 셨습니다
근데 아주 유능하신 분 이셨어요
@@gwagth 故 김영삼 前 대통령께서 대선당시의 슬로건이 '군정종식'. 이점만봐도 장기간 계속되었던 군부독재에 대한 증오가 엄청났던걸 알수있죠.
하나회보다 더 ........한건 참여연대?
하나회척결하고 인반군인들에게 돌아갈 명예회복홰서.....
지금 군인들을 이렇게 ㅇ같이 보나 국민들이....
천안함이 북한의 소행이아니라고 시민단체들이 설치고.....
지휘관의 지휘권보다 장병의 인권이 더 소중해서.....수류탄사고로 1명이 사망하자
2년을 넘게 수류탄교육을 전면중지시키고......
군대도 나오지않은 게이가 회장으로 있는 단체가 총장,의장,장관을 우습게보고.....
연평도에 처참한 현장에서 소주병을 발견하고 이게 진짜 폭탄주네...라는 농을 던지는 .....현재의 안보관....
모든건 공과사가 있고 어느 한쪽면만 부각시키면 모든사람이 악인이 될수있고
또한 호인이 될수 있음....
김상호님 근대 군대사를 자세하게 정확하게 설명하셨네요 감사합니다
88군번 인데 옛 생각이 많이 나네요(온 갖 부조리와 구타 ㅠㅠ)
4:50 하하하하하하핳 웃음소리 너무 좋습니다ㅋㅋㅋㅋ
4:54입니다만
개 욱기네 ㅋㅋㅋㅋ
@@kuraedio 큰아빠 3사잖아, 나 3사잖아 이걸 듣고 하하하하핳 들어야 진짜 웃깁니다ㅋㅋㅋㅋㅋㅋ
조창호 중위를 모티브로 민관군 합작 영화 알바트로스를 제작 했었는데 당시 양양 탄광서 촬영했고 짬이 좀 있어서 인민군 엑스트라로 출연했습니다 ㅋㅋ 저의 데뷔작이죠 차인표 이휘재 이정재 세분 모두 봤었는데 차9인표씨의 사려깊은 마음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전군이 그랬던게 아니고 해안경비부대처럼 격오지에 뚝 떨어져있는 부대라서 그런 일이 발생..50년대 쌍팔년도 군대에도 나이많은 병사들이 소위패고 그런게 가끔 벌어졌다..
맞아요. 쌍팔년도만 하더라도 갓 자대에 부임해 아버지뻘 인사계 상사 쪼인트 깔 정도로 물불 안가린 새파란 소위와 짬밥 삼년먹은 갈참병장 실세상병 간 갈등 엄청 심했죠.
하나회는 현대사에 아픈 역사임에 틀림없어요
제가 알기로 한미연합사부사령관을 역임하고
전역하신 육사 36기 김현집 대장 이분이
마지막 하나회 멤버로 알고있는데
당시엔 하나회 멤버였다는게 진급에
족쇄로 작용할 수도 있는 시절이었는데
능력 하나로 대장까지 진급하신것도
흥미로운 일이네요
하나회 정식 맴버가 아니여도 40기수때까지도 라인은 다 있었습니다
하나회 포섭 자체가 육사생도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하나회 유망주들은 하나회가 땡삼이한테 털리기 직전까지 있었어요
그래서 나도 하나회 들어가서 잘나가고 싶어! 이런것보다 선배따라 라인따라 그냥 저냥 흘러들어가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그때 자의반 끌려감반으로 하나회 라인타게되버린 사람들 43~44기까지 거의 다 잘 안됐습니다 대령달면 용하다 했죠
하나회 털기전에 영관급 달 군번이 아닌 분들은 영향을 안받은걸로 알고 있습니다.
@@계란감자 바른 길을 걷고자 육사 진학했는데 동향출신이라는 이유로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하나회에 가입하기 싫어도 강제로 가입해야 하는 경우도 꽤 있었으니.. 이때 가입거부하면 불이익을 주던 때라.. 특히 하나회 끌물라인은 좀 억울한 부분도 있죠..
저 전역할때쯤 오신분인데 대장까지 가셨네요
그때 본방 사수했었는데요.
방송에서 분대장으로 나왔던 병사가 결혼했던걸로 기억하구요.
체육대회에서 이이삭상병이 장혁이병을 3초만에 이겼던것도 기억나네요.ㅎㅎ
상호형 어느새 30만이 넘었네요 축하드립니다 더 애써주세요
우리 국군의 작전권이 국군에 없고
미군이 가진 이유를 설명해주심 어떨까요?
다들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공세작전 좋아요~ 아주 좋아!!!
“북진통일!!!” 말 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근데 리승만도 6.25전에는 전쟁나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라고 떠들더니 정작 전쟁이 나자
국군이 서울 잘 지키고 있다 구라치고
대전으로 도망가서 “런승만”이란
조소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 국군의 고위직들이 하는 짓 보면
막상 전쟁 났을 때 허둥지둥 어버버 하며
미군의 군복 바짓가랑이 잡고 살려달라 할 듯…
하사관을 부사관으로 부르고 계급장이 가슴에서 어깨로 올라간건 95년 였던걸로 기억합니다 94년 논산으로 입대하고 95년 2월에 자대에 갔는데 처음에는 인사계로 불렀던 보직이 행정보급관으로 바뀌면서 한동안 입에 안 익어서 욕먹었던 기억이 있네요
어깨가 아니라 양카라 아닌가요? 양 어깨는 견장이라 계급장이라 약장이랑 다른 개념 입니다.
@@김명곤-l7q 아 그런가요? 어깨에도 계급장을 달길래
@@에효-i4w 정복에 다는 어깨 계급장 말씀하시는거 같은데.. 요즘은 그것도 차별이라고해서 영관급 장교이상을 제외하곤 전부 견장(지휘, 참모)에 검은색으로 계급장 인쇄된것 붙이구요. 보통 계급장이라고 알고 계시는 약장은 육군/해병대 검은색, 공군 흰색, 해군 파란색으로 해당 계급만 표시되는 계급장입니다. 기존엔 장교부터 카라 약장 이었으나 바뀌었구요. 용사를 제외한 전간부들 모두 카라에 약장을 패용 합니다. 각군 통일로 준사관인 준위만 소위와의 구분을 위해 금색 약장을 씁니다. 전투모나 견장에 있는건 계급장이고 정복 팔이나 견장에 있는건 비표였으나 이 비표도 차별이라고 해서 영관급 장교에게만 정복에 비표 사용 합니다.
하사관99-26기 입니다.(현 비상근 예비역 상사입니다.)
하사관에서 부사관으로 명칭 변경은 01년도 입니다.(바뀐다는 말은99년도에도 있었습니다만, 정확하게 2001년 03.28일부로 부사관으로 명칭 변경입니다.)
그리고 임용제에서 2002년09월01일 부로 임관제로 바뀌었습니다.
계급장은 1996년 10.01일부로 병사계급장이 팔에서 가슴으로 하사관 계급장이 팔에서 목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중간에 1996년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공수부대의 계급장이 너무 잘보여서 계급장보고 사격해서 작게 만들었다는 썰이 돌기는 하였으나. 시기로 봐서는 썰일뿐인듯 합니다.
마지막에 김상호님이시네요 ㅎㅎ
저도 5공시절 해사 입교후 1학년말에 자퇴한 사람인데 환갑이 지난 지금 삶을 돌이켜보면
제 개인적으로
인생에서 가장 큰실수가 사관학교 입학이었고
가장 잘 결단한일이 사관학교 자퇴였다고 생각됩니다
한번뿐인 인생을 직업군인으로서 평생 살지않고 전가족이 뉴질랜드 영주권도받고
전세계 45개국을 여행다니며 후회없이 열심히 신나게 살았습니다
제독ㆍ장군출신 동기생들보다 개인적으로는 더 만족스런 삶을 살아오고있습니다
평생 직업 군인은 특화된 군대 체질을 가진 사람들이 신중하게 결단을 해야하는 진로입니다
자퇴 당시 서경석씨의 심정이 저의 그시간과 overlap되네요
그 당시 사관학교면 서울대급이었을텐데 ㄷㄷ…
선생님 사관학교 아니었으면 의대나 서울대 가셨을분이시네요
그래도직접지키는길을선택하신분들존경합니다
@@Twitter_exe 그 당시 사관학교가 인기가 있었지만, 서울대급은 아닙니다. 서울 중위권 대학 수준이었습니다. 육사가 340점 만점에 260점 정도, 해사/공사는 그보다 좀 낮고, 서울대는 300점이상, 서울대 농대, 연고대가 280~290점, 한양공대가 280, 인하공대250~260, 그 즈음 이하에 서울 중위권 대학, 당시는 부산대가 연대급 이상이었음. 지금과는 많이 다름. 공대가 강세였고, 각 대학 수석은 모두 의대가 아닌 공대에서 나옴, 모두 이과기준, 문과는 모름.
윗분이 정확하네요 해사는 서울 중위권이나 지거대보다 좀 낮은 수준 육사는 한양대 수준 정도?
@@js-vx1qr 육사가 한양대보다는 한 참 아래였죠.
당시 경쟁률 5:1 정도 시절이니, 한양공대면 지금 연고대보다 공부 더 많이해야 했음.
원래 공부 잘한 사람은, 우선 기본 이상으로 성실하고 모범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공부 못하고 애들은 말 안듣고 거짓말 뒤통수 때리고 담배 피고 친구 괴롭히고 돈 뺏고 더러운 종자 들이 대부분이라 보면 된다.
ㅎㅎㅎ 연기가 날로 발전하는 ~ 말도 청산유수~ ㅎㅎ
저도 11년 12월 17일 김정일 사망 당시 전문하사 신분화교육 중이었는데, 전쟁나는 줄 알고 "야야, 이거 자대 원복 아니야?" 이랬던 기억이 있네요. 입대할 땐 천안함 피격도발, GOP 갔을 땐 연평도 포격도발, 신분화교육땐 김정일 사망, 전역 전엔 DMZ 지뢰도발... 지금 돌이켜보면 아슬아슬했던 시기에 군생활을 했었네요. 자, 그럼 이번 군생활에서는 뭐가 터지려나... 에휴
이런거 좋아요!
큰아버지 3사에 나 3사잖아에 빵.... 저희집도 그래요...ㅋㅋ
시원하게 긁어 주시네요~~
7:52 유튜브에 『코미디 모의국회 청문회. 김병조, 최병서.국군 기강확립』 검색해서 보니. 정말 혀가 차고 기가 차던 시대였구나 싶었습니다.
그 당시 하사는 일반하사와 단기하사로 나누어져있었죠 일반하사는 자대에서 상병 3호봉부터 차출하여 사단 신교대에서 교육을 받고 자대로 원대복귀하여 자기가 속했던 분대 분대장 임무를 수행했고
단기하사는 육군하사관학교 출신으로 하사로 임용하고 온 하사로 48개월 근무후 장기근무 지원대상 이였죠
그 당시에는 병들과 하사들간에 트러블과 대립이 많았습니다 하사들에게는 경레 관등성명을 대면 집합을 당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신임 소대장이 오면 꼭 한번씩은 트러블이 있곤했지만 주먹질까지는 없었었습니다
신임 소위들과 한번씩 겪는 트러블은 오히려 더 친해지는 계기가 되곤 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계기도 됐구요
전역32년차가 되고 보니 아련한 옛일로 그 시절을 돌아봅니다
93년 2월 제대자 입니다.
94년 김일성 사망기사를 보았던 기억이 나는군요...
저는 당시 건설현장에서 소위 새끼기사(신입기사) 였습니다...
뭐튼 당시에 저는 그랬지요....
아 싸워야 되는거야? 어쩔수 없지 내 부모 형제를 위해서 가야할수밖에....
당시 급있는 대학의 수석은 대단한거죠. 근데 육사가 서울대급은 아니었어요. 90년대에도 육사가 예전 같지는 않았던 시기에요. 시험은 별도로 치루지만 실력면에서는 중대 외대 와 비슷하지 않았을까합니다. 근데 당시 중대 외대 수석은 서울대 가고도 남습니다. 그 시절을 이해하면 아는데..지금과 시험제도..등등이 완전히 달라서..
연예병사로 입대할 때 육사출신임이 알려져 유명했었지요.
육사를 가입교 기간에 그것도 수석이 그만 둬서 학교는 혼란에 빠지기도 하지만 본인이나 국가를 위해 잘 된 결정이라고 서경석씨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시에도 육사는 본고사가 있어서 그렇지 서울대 급은 아니었고 성균관대나 한양대 평균학과 정도 였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인재들이 지방 국립대의 학과로 많이 입학을 합니다. 이유는 장학금이 있었지요.
당시 입시 경쟁이 가장 치열할 때 였습니다.
장교무장탈영 사건이 발생한 건 병장들의 문제도 있었지만 중간의 경험 많은 하사관들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경험 많은 지금은 부사관으로 불리는 하사관 특히 하사는 보병부대 포병부대에 많이 부족하여 상병 때 육하교를 보내 일반하사를 하면서 분대장이나 포반장을 하였고 그 위에 중사가 부족하다 보니 병들과 초임 소대장이 소초에서 갈등을 했고 특히 힘쎈 소위들(체육과나 운동했던 이들)은 계급이나 완력으로 하려다 병들과 더 갈등이 벌어졌는데(위에선 단체 군기교육 보내고 입창시키고 구타 근절 바람보다 더 했다는 소문도 있었음) 계급 사회지만 넘어야 할 선을 넘다 보니 발생한 불상사였다고 봅니다.
당시 전 후방 병력 특히 하사관들이 부족할 때 교체를 하고 소초에 중간 허리인 간부가 없어서 그랬던 것이고 소위라고 무조건 무시 하지 않았습니다. 소위도 바짝 군기가 들어야 하는 건 맞는데 어디서 잘못 듣고 와서 힘자랑하고 병력들을 잘못 파악하고 있다가 당한 것인데 당시 선임하사가 있었다면 중간에서 잘 대처를 했을 것이지만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당시 장교들과 부사관들은 업무나 주특기를 자신들이 직접 참여하기 보다는 병장들에게 맡기는 경우가 있었고 이것이 하부제대의 문제가 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단기교육을 받은 3사 장교들 나이가 22~ 23살에 공수교육을 받고 군기가 바짝들어 왔지만 선배들에게 막연한 이야기만 듣고 주특기 숙달이나 경험이 많은 야전의 병력들을 다루기 쉬운 이들이 아니었고 숫자가 가장 많은 학군출신들은 옆에서 이야기 해주는 선배가 있어 좋은 유리한 부분이 있었고 가끔 특공부대나 특전사에서 전출 온 장교도 조금은 부대 분위기에 따라 조언을 구했으며 본부나 큰 부대에서는 소위라도 힘을 쓸 수 있었지만 당시 하사관들과 갈등이 약간 있었지만 크지 않았고 말단의 소초도 잘 하는 장교들은 문제가 없었는데 힘으로 누르려다 망신을 당했다고 보면 됩니다.
야전의 병장들이 사고를 치긴 했지만 초임 소위들에게 함부로 하지 못했고 인계사항을 잘못 전달한 선배들의 잘못도 컸다고 보면 됩니다.
선배장교들은 후배들의 상황을 잘 알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생각을 했습니다.
3사의 경우 선배들을 학교에서 동시에 교육을 받을 수 없다보니 육사처럼 잘 알 수 없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다른 장교단에 비해 어린 나이에 임관하여 다른 장교들과도 어울리기 어려웠고 더 힘들어 했던 것 같습니다.
자대에서 만나지만 잘 모르고 학군은 학교가 다 다르고 육사는 소대급 부대에서 본다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전투병과 장교를 가장 많이 양성하던 광주 상무대가 장성으로 이사를 준비합니다.
선배들의 방치가 지금의 군대를 만들어 망하게 만들었죠(이미 망한군대라고생각합니다)
@@Iuw-f7v 예전에도 군 부조리 , 하극상, 각종 사건 사고, 인권 유린, 병력부족에 시달렸었지요.
군대가 위기가 아니었던 적은 없다고 보며 현재 당면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발전할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규정이-x2u 지금은 그걸 해결하고자하는 사람은 절이싫으면 떠나란 취급받고 지능순으로 전역한단말이 있을정도로 심각한거같아요
@@jbs7946 휴대폰으로 이동중에 쓰다 보니 길어져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난잡하다니요. 난잡하다는 말씀은 조금 결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 잘 쓰시는 님이 축약해서 설명해 주세요.
잘은 모르지만 댓글 잘 다셔서 좋아요! 도 많으시던데 ...
당시 군대를 제대하고 느낀 군대(저는 민무늬 군복을 입은 세대)를 설명 하려다 보니 말이 길어진 것이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보통 예전 군대가 기강이 잡히고 장교나 부사관 대우가 좋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많고 잘못 이해할 수 있다보니 설명이 길어진 겁니다.
그때도 문제가 많았다는 걸 부각시키다 보니 그런 것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아 이 시기에 상무지구에 있던 상무대가 현재 장성군 삼서면으로 이동한거군요ㅎㅎ 그때 그자리에 계속 있었으면 그동안 복무한 군인들 여건도 괜찮았을텐데 많이 아쉽네요ㅎ 긴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86학번이지만, 육사는 당시 한양대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340점 만점에 250점 이상이면 갈 수 있었죠~
물론, 내신등급도 중요하지만...
수석이면 아마도 연대이상 수준이었겠죠? ㅎㅎ
86년도는 한참 전두환 군사정권시절인데ㅔ
250정도는 어렵지요.
커트라인이 최소265이상 이고 그점수로는 들어가 봐야 뒤애서 놀기때문에 임관하고도 잘 나가기 힘듦..
한양대도 한양대 나름입니다. 한양대는 공대가 알아줬고 문과는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한양대 문과 중에서는 한양대 법대가 최고였고
@@trinity1203
저는 이과라 문과는 관심 없어요...ㅎ
@@루이비뚱-z8s 저는 문과라 이과는 별관심이....ㅎ
@@gaudi8274
솔직히 제가 86년도에 245개 맞았는데, 연고대 가기 위해서 재수를 택했죠. 그리고, 그 점수로 대성학원 서울대반으로 시험 안치고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 육사 커트라인이 230 수준이었습니다. 제가 조금 관심이 있었기에 점수를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하지만, 제가 다니던 대원고등학교가 워낙 점수가 높아서 내신이 부족했고 결국 육사 지원은 포기 했죠... 4등급이상이었어야 했으니까... 제가 당시에 5등급이었고... 반에서 10~13등(70명중) 정도 했거든요...ㅠ
하사관들의 계급장은 96년도에 바뀐걸로 압니다 제가 95년 군번인데 그 당시만해도 사병이랑 같았어요
95년도에 사건이 발생하고 변화에 바람이 불었습ㄴ디ㅏ. ㅎ
아 94년
김일성사망때 토요일 오전이었는데 휴가 외박 다 짤리고 내무반에 완전 무장해서 대대장 정신교육반던때가 어제같네요
8:00 밤에 병장이랑 소위랑 싸워서 존나 팼다는 아버님뻘의 증언 ㅋㅋㅋ
자주 듣습니다 ㅋㅋㅋㅋ
근데 솔직히 매일같이 33개월간(약 2년 9개월) 맞으면서 악바리가 된 병장이면,
온지 1년도 안된 소위가 제압하긴 어렵지 ㅋㅋㅋㅋ
군대건 뭐건 권력은 힘이 있어야 하는건 맞는듯
그게 남들에게 받는 지지력이든, 본인의 능력이든 간에..
그때 변화때 계급장 위치만 바뀌고 장교들의 많은 일이 다 부사관에게 넘어왔죠!! 권한은 넘어온거 없이 일만 넘어왔다고요.
88군번 입장에서 볼때,
물론 신관소위는 힘을 못썻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극상까지 있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하사는 병장이 일부러 갈구고 반말했지만,
소대장 직위에 있는 장교까지 그렇게 하진 못했죠.
기껏 해봐야, 행군때 무거운 무전기를 매게 하던가~ 그정도...ㅎㅎ
빙고~
아 특중이, 경석이 . . 제 인생의 제일 잘한 선택이 1990년 11월 육사를 나온것 . . 경석이는 기훈때 선출하는 동기회장에도 당선 되었다는 . .
동기회장 선출시 경석 왈 "저희 부모님 께서는 장을 좋아합니다. 된장 고추장" 하면서 자는 동기들을 다 깨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중대별로 1명 씩 후보로 나왔기 때문에 (각 중대별로 20명) 20표 씩은 나와야 하는데 경석이가 몰표를 가져간 덕에 20표를 얻지 못한 후보들이 있던 중대는 저녁에 뜨밤을 보냈다는 . .
내가 태어난 년도에 우리군의 혁신적인 역사의 전환점이 있었다니 ㄷㄷㄷ
전 94년에 50사단 해안소초에서 근무한 용사입니다.
솔직히 구타 보다는 지금 생각 해보면 왕따라고 생각됨.
일부 소초에서는 92년 까지는 분초 생활을 하였고 93년 부터는 소초 생활 하였는데 전 다행히 분초 생활은 안해봄. 분초는 분대장이 왕이 라고 생각 될수 있지만 그 당시는 분대장은 병하사를 달아 주었고 분대장 역시 왕따인 상황. 분대장에게 경례도 못하게 함.
이런 상황이어서 소대장 왕따는 당연시 여기던 시절.
우리 소대장도 94년 여름에 12시간 탈영을 했었음. 그때 제가 해안 소초 상황병이었는데 소대장 찾느라 해안가및 부대 주변 야산 싹다 수색함.
여기 술먹고 취해있는 소대장(rotc) 찾아 왔고 제가 그때 당시에 상병이긴 했지만 위로 고참이 1년 넘게 차이나는 부대여서 싹다 제대한 상황.
솔직히 큰 문제(왕따)는 없었지만 제 생각에 혼자 다수의 병을 케어 하는 스트레스가 엄청 컸던거같음. 우리 소대장은 중위 달고 두번째 소대장으로 온거라 짬밥 인정도 돼었고 해서 친하게 지냈는데 ...
그 후로 전 육화교로 4주인가 훈련 갔고 그때 53사단 무장 탈영이 발생. 그후 부대 복귀 하니 해안 소초에 국방부 별 하나씩 모든 소초에 일주일 넘게 같이 생활하였다고함. 그때 대대장 연대장 잠을 못 잤다 라고 하데요.
하여튼 우리 소대장은 어깨에 힘이 뿡뿡 들어 갔는데... 솔직 그것도 한달을 못가더라구요. 해안 소초 소대장은 잠을 잘수 없는 구조라.. 취침 시간이 제대로 확보가 안돼니.. 일반 병은 오침을 하는데 소대장은 그때 못 자고 밤에는 병이 모두 근무 나가는 상황이라 잠 못자고.. 완전 피로 만빵인 상태. 하지만 그때는 페이퍼 work같은건 없었음. 하여튼 그후 중대장이 디스크로 후송 돼고. 우리 소대장이 중대장 역활을 하였음. 탈영을 했던 소대장 이었지만 전 말년까지 친하게 지냄. 중대장 역활까지 해서 엄청 존중도 더 해줌.. 하여튼 지금 생각 해보면 그때 그시절이 그립네요. 전 제대하고 4개월 후 우리 소초 해안으로 내려 갈때 쯤 놀러가봄.
소대장을 바뀌었지만.. 우리 소대원이랑 소초 에게 한잔 맛있게 했죠.. 해안소초의 문제는 술...이 가장 큰 문제 였던거 같음. 근무지 나가서 새벽 3시 넘으면 한잔 하는 문화가 가장 소대장의 스트레스가 아닐까 생각됨.
저때 뉴스에서나온 북한측 군사관련된 사람이 한말이
"전쟁이 한번 나면 북조선이나 남조선 둘다 싹다 불바다가 됩니다" 라고
들었어요
내가 존경하는 인물이 제주도지사를 엮임한 신구범. 그는 육사 4년때 자퇴한 이력. 매우 아쉽다. 그가 졸업 후 중령만 되었어도 차기 육군참모차장, 내무부 장관을 했을 터. 경쟁자 우근민(학사. 소령 전역)은 온갖 우씨-채용비리 등을 저지른 속이 시커먼 자. 지도자, 권력가는 고도의 윤리의식이 있어야 한다. 위기시 남다른 통솔력, 판단력으로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남다른 인격 요구됨.
20:30 저 땐 얄상했네...
개그맨 서경석 육사50기 신입생 가입교 중도 탈락. 공부는 잘 해도 의지가 약한...저는 공군출신으로 공사출신들 어느 정도 안다. 대게는 조종사였는데 조종사가 아닌 자들이 줄자로 잰 듯 정확한 걸 추구/집착한다. 생도 생활의 고역은 매일 아침 식사 후 소화시킬 여력 없는 필기시험 문제...수학 싫어 하는 자 생도 생활 버티기 힘들다. 허화평(육사17기) 수석은 도미시절 "왜 한국의 수학교육이 잘못된 방식인지 알겠더라." "미국은 속도전이 아닌 문제 풀이 과정을 면밀히 조사하여 점수를 매긴다. 누가 제한 시간내 많이 푸냐가 아니라 누가 독창적 / 창의적 풀이로 답을 결정했는가." 커닝구 하지 않고 성실히 시험에 임하는 소탈한 자세를 본다. 결국 강대국 미국은 정직-성실을 최고 덕목으로 한국은 "더 빨리, 더 많이"를 추구하다 보니 필요한 인재들이 사관학교 보다는 3사 / 갑종 출신에서 나오더라.
같이 임관해야 동기지 자퇴한 애가 무슨 동기임...
신의
한수......^^
서경석이 똑똑하고 인품괜찮고...근데 군대 동기들이 사단장이라고... 군에 있었으면 사단장 되었을까? 그건 안해봐서 알수가 없는거지... 사업했던사람이 다 정주영 이병철된건 아니듯이...공무원진급하려면 무슨날마다 비싼 양주 선물하고,그런건 요즘은 없어졌으려나? 그러고도 힘든게 조직생활이란게 본인 잘한다고 본인이 이끄는 전체가 잘해지는건 아니라서... 연대장인데 사병들 쿠타라든지, 성폭력이라든지... 생기면 좌천에 진급대상 제외...빽없으면 별다는거... 요즘은 아그러길 바라지만...
솔직히 별은 몰라도 최소 연대장은 확정에 서경석 인품과 노력이면 군인 연예인 아니었어도 뭘해도 성공했을듯
진짜 사나이 유격편 장혁들어오고할때
갠적으로 서경석님 카메라 없어도 웃으면서 뛰면서 훈련 받으러 다님 ㄹㅇ
다른 사람들은 뺑끼치는거 봄
가짜사는 어느정도 설정도 있고 그런것도 있었음
엄청 대단한분
역시 사람 인성은 타고남!!
95년군번으로 소대장길들이기 전투화조
소대기지개 식기조 물조 온갖 폐습과 구타
가혹행위 썰많습니다ㅎ
93 군번인데 이등병시절 GOP에서병장왕고가 쏘가리(소위)에게 밥주지 말라고 해서 당시 소초장(소위)이 참다못해 사단장에게 직접 보고해서 소초가 해체된적이 있었습니다. ㅎㅎ
당시 소위 소대장과 이등병이었던 저는 동질감을 많이 느꼈지요 ㅎㅎ
공관병 근무시절 비서실장 부관 분들이 보통 38기 ~~~44기 였지요 중위시절 44기 포스타 하니 세월이 참 ~~~ 조카도 힘든부대 보낸분이 저 아들부대 전화한통
걸어주시는 의리가 ~~~~
화종이형 소령계급장 달고 대대장 부임했을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사단장이라니,
자유는 존중하지만 책임은 저야지
영화 🎥: 62년간의 미꾸라지떼의 습격
C20 LANY 20th Century Plus
The ENTERTAINMENT USA 🇺🇸 🤣
8:00 1994년이면 나름 선진병영.. 이 안됐겠구나 ㅋㅋ
2010년에도 요즘 병사니, 선진 병영이니 하던말 떠돌았으니까 ㅋㅋㅋㅋ ㅜㅜ
와 그러면 이번에 병 위로시설에서 개인 종교모임하면서 16첩 반상 받아먹은 9사단장과 동기일수도 있는건가요?
제가 중사진급후 얼마후 제나이 동갑벌인 육사50기 전입왔었죠...우리 부대는 임무상 초임소위들이 소대장직으로 안오고 거의 야전에서 1년간 소대장직을 수행하던 중위급 장교들이 소대장으로 전입오는데 육사는 소위부터 전입오더군요... 아마 짬이 있어 병사들 지휘 장악하는데 별 문제 없을거...? 아니면 소위 시작부터 특수지근무 인사고과를 반영하기위한 또다른 이유?도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데 암튼 큰 별탈없이 소대장직 잘 하시고 부사관들과도 잘 지네었죠... 지금도 생각나고 연락하며 지네는 예비역 육사50기 현역장성 51기분 있습니다... ^-^
94년 7월 김일성사망때 부대에 따라서일지 모르지만 당시 말년휴가및 진급휴가자들 제 주위에는 휴가복귀 명령 없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92년 5월 군번입니다.
92년 8월 군번입니다. 저도 2차휴가 때 김일성 사망 소식을 듣고 바로 부대로 연락해서 조치내용을 듣고 즉시 연락받을 수 있는곳과 전화번호 알려주고 대기만 하고 있었죠.부대복귀는 없었습니다.
김영삼대통령당선되고 유일무이하게 해병대 사령관 비해사출신인 전도봉장군이 사령관이 되었죠 동향출신이라
진짜사나이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서경석 김수로.
이런 컨텐츠 오랜만이군요 간만에 주제가 바뀌었네요
전시 작전권도 찾아야 된다고 애기해야 합니다
그당시 군대전체가 하극상은 아니고 53
사단 후방부대에 한해서 그렇겠죠. 병들도. 짭밥이 많으니 중위. 중사급에서. 소위. 하사 교육 시킵니다.
병들도. 짭밥이 많으니 중위. 중사급에서. 소위. 하사 교육 시킵니다. 자체가 문제
일성이 요단강 가기 얼마 전인 6월23일에 슈퍼특명으로 제대했음.....🙂🙃
허구한날 요즘 애들 군기강 해이다 핸드폰이나 보는 군대다 뭐라하는데
정작 그거 욕하는 세대는 하극상 밥먹듯이 하고 폭행 부조리를 당연한듯이 하던 세대임 ㅋㅋㅋ
현역으로나 갔으면 다행이지 ㅋㅋ
대부분 방위, 면제출신일텐데
군사쿠테타 일으킨세대 ㅋㅋㅋㅋ
진짜 사나이 좀 전에
무릎팍에 나와서 썰 풀어서
그거 기억하는 사람들은 서경석 육사 출신인 거 알았을 겁니다
하나회 청산했으면 군인처우를 더욱 좋게 개선해야 하는데, 군인처우는 그때부터 열악해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융실명제 했다고 자화자찬하면서 대한민국 경제는 IMF사태 맞게 한 멍청한 김영삼 대통령이었다. 퇴임후에는 돈을 조금 줘서 사람을 만나러 다닐 수 없다고 불평했다고 한다. 김영삼대통령은 대통령연금이 적다고 투덜거리던 사람이었다. 정치인들이 군사정권에 대해 반감이 많은 것은 이해하지만, 수십년이 지나도록 왜 점점 군인처우는 나빠지고 있는 지 모르겠다. 90년대 불바다란 말이 나왔을때 김영삼대통령이 전쟁은 절대 안된다고 해서 전쟁을 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암튼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할 수 없는 김영삼대통령이다.
내가94년 군번인데 소위한테는 안그러구 하사 한테는 좀 그랬슴다. 군26개월 ... 저때 말들 많았슴
94년 그거 문제아니구 김일성 죽구 가을에 불바다 사건있었을때 후방에 전쟁난다구 7일 비상 걸렸슴 김일성 죽었을떄도 비상 안걸림 후방에는
대전사람입니다.. 네에??
멋진 사나이
서경석
은행강도는 49기 하기룡. 육사임
서울대 법대 위탁교육중 육사가서. 소총가지고 나와서 은행강도
특중이 몸이 비대해져서 다소 건강이 염려되네요.
가끔 만나서 술 한잔합니다
94년 3월7일 입소 했는데, 훈련소에서는 전쟁 나는 줄 알았다. 비상훈련만 5번 했다.
그러다가 그래 7월에 북한 김일성 사망사건으로 비상 걸리고.
부대 TV로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보았다.
역사적 변동을 겪은 한많은 72년생들.
8:10 아오 또 스윗 4050이네 ㅋㅋㅋ
93년도 전역 군번입니다 우리때도 신입 하사오면 많이 패가 기를 죽엿습니다 경례는 아예 안하고 일병부터는 말을 존중하게 만들엇습니다 처음 자대왔을땐 중사하고 말놓는 병장도 봣습니다
참... 이게 자랑거리는 아닌데...
저때도 다른 의미로 당나라 군대였음. 지금 애들한테 뭐라 할 수준이 아님
이때 부터 부사관한테도 집총거수를 했습니다
아무리 mz세대가 폰쓰고그래도 소대장길들이기같은 개짓거리는 안한다 ㅋㅋ
못하지 나때야 군생활 2년2개월씩했으니 병장나이24이고 초입간부들오면 23~24이니 가능했지 지금은 병장도 22정도 아닌가?
MZ라 안 하는게 아니고, 못하는거임.
@@DanJJSTChoi병장이 22살이면 어린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