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 마시고 머리로 억지로 믿으려 하지 마세요. 낙담 마시고 기도하며 말씀 읽으며 예배하며 기다리세요. 살아 계심을 반드시 체험하게 됩니다. 놀라운 일들이... 자기 생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반드시 삶 가운데 일어납니다. 체험했고 체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속된 삶이란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요.
세상에 있던 나를 성령님이 만나 주셨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선물 받았을 때, 일부러 라도 내가 교회 분위기에 내 감정에 착각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해 보았습니다. 의심을 해 본 이유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더 확실히 하기위함 이기도 했습니다. 새벽 기도 가면서 오늘은 무슨 기도를 할 까 잠시 생각도 했는데 설교 말씀에 끝나고 기도하는 순간 회개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나님 저는 죄인 입니다 . 지금까지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죄를 용서 해 주세요"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습니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죄가 바로 불신앙 이구나. 오늘 말씀을 들으니 의심해 보길 참 잘했네요 ~
제가 지금 그시기인것 같아요. 어렸을때부터 교회를 가고 떠낫다가 다시 돌아오고 하나님을 더 알고싶은 마음에 일도 그만두고 신학교를 갔었는데 정말 교만한 마음으로 갔던자신이 보이고, 인격적으로 만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세상에 치여 하루하루 살다보니 그마음이 어려울땐 그 마음이 있다가도 금방식고, 왜 나는 하나님을 믿으려고하는건지 모르겠어요. 내 안에 하나님을 못 만나게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어떻게해야 하나님을 온전히 믿게되는지 너무 모르겠어요. 내 열심으로는 안돼는걸 아는데, 어떻게해야할지 모르겠어요
Faith and Character go together! Amen! Pastor Cho and Pastor Ahn, bless you & your family! Thank you so much for your message as always, based on truth, grace, humility and love!
자유의지의 결단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는 주장은, 사실은 자신의 믿음이 종교 안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타락한 아담(Adam) 안에서 존재 자체가 "죄된 생명"으로 태어난 인간이, 자유의지의 결단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는 주장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자유의지에 대한 빛 비춤이 없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엉뚱한 주장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 . . . . . . . . . . . . . . 성경이 말하는 자유의지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창2:16) "임의로 먹되.." 여기서 말하는 "임의로"(freely)가 곧, "자유의지"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성경이 말하는 "자유의지"와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의지"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Of every tree of the garden thou mayest freely eat.." 임의로 먹기는 먹되, "Of every tree of the garden", 곧 동산의 각종 나무 "중에서.." 이다. COVID-19으로 인한 지금과 같은 시기의 말로 한다면, 각종 색깔의 마스크 중에서 마음에 드는 색깔을 골라서 쓰되, 절대로 벗지는 마라. 마스크를 벗으면 반드시 코로나에 걸리리라! 이렇게 "명령"하신 것이 성경이 말하는 "자유의지"이다. .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7) 그러나 첫 사람 아담(Adam)과 그 아내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의지"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은,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말았다. 이것이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자유의지"와 "타락", 곧 "죄"(sin, 하마르티아)의 관계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의지"는 "각종 나무 중.에.서." 만을 포함하는 것이지, 먹지 말라고 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우리는 분명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 아담(Adam)의 불순종으로 인해 결국 사람은 타락을 했고, 그나마 하나님께서 아담(Adam)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는 타락으로 인해 이제 그 기회마저 잃고 말았다. (이것이 믿음이 우리의 선택이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경이 말하는 "자유의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수준의 것이 아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담을 그릇인 "혼적 존재"로 만든 사람을, 그 창조의 목적에서 벗어나게 하는 그런 "자유의지"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겠는가?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의지"는 나 스스로가 타락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 성경이 계시하는 "자유의지"는 아담(Adam)으로 말미암아 이미 타락해버린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차원의 것이 결코 아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셨지만(창1:28), 정작 사람의 마음은 잃을 수도 있다! 오직 사람의 마음만은 강요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Adam)은 결국.. 연(kite)이 하늘에 뜨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줄에 매달려 있어야만 한다. 연(kite)은 연줄로 인해서만 하늘을 날 수가 있다. 그런데 연줄을 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연줄이 없이도 내가 "선택"만 하면 하늘을 날 수 있다고 하는 것..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의지"는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 . . . . . . . . . . . . . .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조금 어렵네요. 그러면 자유의지는 하나님을 섬기는데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건가요? 육신적인 생각과 의지를 꺽고 하나님께로 향하고자 즉, 날마다 나를 죽이고 포기하는 것은 자유의지로 결정하는것이 아닌가요? 물론, 나를 죽이는것이 내힘으로는 할수없고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는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나를 내려놓고 포기하기로 결정할때ㅡ자유의지로ㅡ 성령님이 도우시는게 아닌가요? 반박하는것이 아니고 진심, 혼동스러워서 여쭙니다.
@@소망이기쁨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6:5) 하나님의 은혜로 타락한 아담(Adam) 안에서 태어난 우리의 본질이 이러함을 먼저 뼈저리게 통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미 타락해버린 아담(Adam) 안에서 태어난 우리에게는 자유의지에 의한 그 어떤 선택도 단지 "죄"(sin)일 뿐임도 함께.. "네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네 죄악이 관영한들 하나님께 무슨 관계가 있겠으며 네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네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네 악은 너와 같은 사람이나 해할 따름이요 네 의는 인생이나 유익하게 할 뿐이니라"(욥35:6-8) 짜면 짤수록 나에게 나오는 것은 죄와 사망뿐이라는 것이,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인간의 본질입니다.
@@소망이기쁨이 십자가 우편 강도가 쉽게 구원받았을까? 십자가의 우편에 있었던 강도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일단은 구원을 받을 만한 성경 지식은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강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는데 십자가에 달렸다라고 고백하였다. 그 시대 대부분 유대인들은 이렇게 못 깨달았다. 심지어는 제자들조차도 이렇게 생각지 못한 이들이 있었을지 모른다. 왜 그런가? 헷갈렸었다. 자신이 따르는 선생이 죽어 버리니 의심이 들어왔다. 죽으면 안 될것 같은데 죄를 지으셨나? 이렇게 생각하고 혼돈이 와 버린 것일 수 있다. 혼돈이 오지 않았으면 왜 도망갔겠는가? 자신도 당당히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죽게되자 다 흩어져 버렸다. 혼돈이 오지 않았으면 십자가 앞까지 계속 갔을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 우편의 강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는데 십자가에 달렸다고 하였다. 아마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아무 관심도 없는데 그런 고백을 했을 리가 없다. 계속 듣고 있었던 것이다. 강도는 감옥에 갇히면서,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올 때, 회개하였을 것이다. 회개하다 보니 죄의식이 깊어지면서 밝아지는 측면이 있었을 것이고, 성경이 깨달아 지는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 십자가의 자리에서 예수님은 죄가 없다라고 한 사람도 선포한 이가 없었다. 전 유대 나라에 예수님은 죄가 없다 라고 선포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데 강도가 선포하였다.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구원이라는 것이 그냥 죽을 때 말 몇마디 영접기도 따라했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죽을 때 예수님 영접하면 천국 간다고들 한다. 그것이 옛날 중세 시대에 구원을 가지고 장사했던 면죄부와 뭐가 다른가. 오늘날도 여전히 횡행한다. 누가 면죄부를 주는가? 종교 지도자들이 준다.예배당 문턱만 들어오면 천국행 티켓을 준다. 증서는 발행하지 않아도 증서 이상의 확신을 갖게 만들어 버린다. 아무도 예수님을 향해 죄가 없다 라고 하지 않는데 십자가 우편의 강도가 고백하였고 주위 사람들이 듣고 성경에 기록한 것이다.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다. 제대로 죄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는 극형이었다. 형벌 중에 최고의 형벌이었다. 자신이 최고의 극형을 당한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다. 제대로 양심이 회복이 되고있고, 제대로 회개가 되고 있고, 아무도 생각지 못하고 있던 것을 선포하고 있었다. 그가운데 이 사람은 구원의 열망을 가지게 되었다.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간구하였다. 예수님께서 '네가 오늘 나와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구원 받았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철저히 회개한 것이 분명하다. 이미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계속 회개를 해 오는 과정 중에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혼자 있었으면 구원을 받지 못했을 텐데 예수님을 만나면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뭔가 깨달음이 오고, 회개를 해오고 있었는데 자신의 죄의식이 더 깊어진 것이다. 구원 시 큰 죄인 의식이 필요하다. 자신은 극형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는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라고 하였던 고백과 맞먹는 회개이다. 또한 뭔가 확실하게 믿음이 온 것이다.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고백은 믿음 안에서의 선포이다. 강도는 소문으로만 예수님을 듣고 예수님의 행적을 잘 보지는 않았는데도 3년 동안 따라다닌 제자들보다 더 큰 믿음이 나왔다. 죄가 없다라고 믿었다면 다 도망갔겠는가. 뭔가 의심이 들어오고 죄로 인해 사형 받는다라고 생각한 측면이 있었기에 도망간 것이다. 반면 강도는 자기 옆에 자기처럼 처량하게 죽어가고 있는 이를 구원자로 믿은 것이다. 이게 절대 쉽지 않다. 만약 우편 강도가 목숨이 더 연장이 되었다면 구원받은 자의 행위로 나아갔을 것이다. 행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옆의 강도에게 비방하지 말라고 권면하였다. 강도질로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처지에 옆의 강도를 전도하는 것이다. 더 이상 비방하고 판단하지 말고 죄를 짓지 말고 너도 구원 받으라 했을 것이다. 십자가 우편의 강도의 구원이 쉽게 된것이 아니라 다 구원의 원리 원칙에 입각해서 받은 구원인 것이다. 십자가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진지하고 절박하게 회개하였다. 거기서 설렁설렁 여유있게 회개하였겠는가. 유대인 출신으로서 충분히 성경을 봐 왔기에 여러 깨달음이 올 수 있었고, 믿을 수 없는 중에 믿는 믿음을 보였고. 인류 가운데 전무후무한 전도자 예수님이 기가막히게 함께 하셨다.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으시기에 어떻게 시기와 우연이 맞아 기회를 얻은 것이다. 드라마틱하게 구원받았다. 근데 이처럼 기적적인 구원을 바래야 겠는가? 저런 상황이 오는 게 쉽지 않고 왔다해도 자신에게서 그런 고백이 나오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구원의 길을 제시받았으니 매일 저러한 데로 나아가야한다. 구원은 미뤄놓을 것이 아니다. 교회 오래 다녔는데 그래도 하나님이 구원시켜 주겠지 라고 요행을 바래서는 안 된다. 자기 딴의 자비를 기대하는 것은 구원 받는 데 도움이 안된다. 하나님은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지옥 보낼 수 밖에 없는 재판장이시다. 그것은 에누리가 없다. 교회에서 오랫동안 봉사하고, 출석하고, 오랫동안 성경 읽었으니까 봐주면서 구원을 준다? 그런 구원은 없다. 교회에서 권사라는 직분을 받았으니, 목사니까 구원 시켜준다? 그런 구원은 없다. 오히려 목사가 더 많이 지옥간다고 하였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였다'고 항변하지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라'라는 판결만 있을 뿐이다. 목사라는 위치가 죄를 짓기에 더 좋은 위치이다. 물론, 일반 교인들도 지옥을 당연히 많이 간다. 구원을 이룰 믿음, 구원에 이르는 회개, 구원에 이른 자의 행위를 갖춰야 구원 받는 것이다. 강도도 그렇다.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있는데 그 부끄러운 십자가 형틀에서 전도하고 있다. 조롱과 멸시를 받는 상황에서 전하고 있는 것이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을 가졌고, 구원받을 만한 회개를 하였고, 구원 받을 만한 행위를 가졌다는 증거이다.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지옥 보낼 만한 이유가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네가 오늘나와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고 판결하신 것이다. 십자가 우편의 강도를 볼 때마다 기본적으로 무시하고 들어가지 않았는가? 이렇게 불쌍하게 마지막에 겨우 목숨을 건졌나 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 부러운 것이 아니라 안됐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나의 주제를 모르니까 십자가 우편 강도를 부러워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강도 짓을 하기는 했지만 뭔가 일반적인 강도와는 다르다. 생활고나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강도가 되었을 수 있다. 몰린 상황 가운데 강도짓을 하다 잡혀 죽게 됬다는 것 뿐이지 십자가 우편 강도의 삶과 자신의 삶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 위기를 참지 못하고 욱하는 마음에 범죄자가 되었지만 똑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생이 더 연장이 되었다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처럼 살아갈 사람이다. 십자가 우편의 강도만 보아도 믿음과 회개와 행위의 3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박자가 맞아야 한다.
서두르지 마시고 머리로 억지로 믿으려 하지 마세요. 낙담 마시고 기도하며 말씀 읽으며 예배하며 기다리세요. 살아 계심을 반드시 체험하게 됩니다. 놀라운 일들이... 자기 생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반드시 삶 가운데 일어납니다. 체험했고 체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속된 삶이란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요.
아멘!
아멘 예배하며 기다리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아멘!
아멘
주님을 올바르게 알게해주심 감사드리고 불교 믿다 주님을 안 세월이 있지만 제 자신이 먼저였던 세월 회개하며 주님안계신 오십중반 이지만 삶은 고아가되는 그심정입니다 이시간 담대한 믿음주시길 예수님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목사님 감사드려요 그런데 전 여전히 주님께 마음중심 못드리고 사람보게됨을 고쳐나아갈수있게 이 시간기도 드립니다 아멘
이거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자기가 살아온 인생을볼때
도저히 신의힘이 아녔담 죽었을고비를 넘겼다는걸 깨달았을때
정말 오싹하면서
신은계시구나하며 성경책이 눈에들어오고 말씀도 들려와지더라구요~~~넘 그크신사랑에 감사할다름입니다
때가되면 저절로 옵니다
정직한 질문을 정직하게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 아멘
아멘! 💙❤️💖
● 큰 길을 만드시는 주님, 큰 기적을 행하시는 주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어둠 속에 빛이 되시는 하나님
그분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Way maker, miracle worker , promise keeper, light in the darkness ~~
@@ela6364 Amen~♥
아멘입니다
아멘 🙏
말씀감사합니다
🙏 아멘
들으며 많은 깨달음과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
믿음은 주시는 분과 받는 자와의 인격적 관계의 표현입니다. 아멘
아멘 아멘
연약한 믿음도 하나님 보시기엔 귀하게 여겨주실겁니다
하나님의 열심 이란 찬양이 생각나네요
안보고믿는믿음이 복되다고하셨습니다!오직 주성령하나님의은혜입니다!!아멘!!
영적체험 없어도 꾸준하게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은 변화지 않더라고요.
아버지 우리 아들도 그리 만나주소서.
ㅓ
ㅓㅓㅓ
ㅓ
ㅓㅓ
ㅓㅓ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에이멘
아멘
은혜로운 말씀 감사합니다。
목사님두분 너무 멋지세요👍👍
주님을 올바르게 알게해주셔ㅅ
믿음의 통로! 아멘!!
세상에 있던 나를 성령님이 만나 주셨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선물 받았을 때,
일부러 라도 내가 교회 분위기에 내 감정에 착각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해 보았습니다.
의심을 해 본 이유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더 확실히 하기위함 이기도 했습니다.
새벽 기도 가면서
오늘은 무슨 기도를 할 까 잠시 생각도 했는데
설교 말씀에 끝나고 기도하는 순간 회개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나님 저는 죄인 입니다 . 지금까지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죄를 용서 해 주세요"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습니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죄가 바로 불신앙 이구나.
오늘 말씀을 들으니 의심해 보길 참 잘했네요 ~
제가 지금 그시기인것 같아요. 어렸을때부터 교회를 가고 떠낫다가 다시 돌아오고 하나님을 더 알고싶은 마음에 일도 그만두고 신학교를 갔었는데 정말 교만한 마음으로 갔던자신이 보이고, 인격적으로 만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세상에 치여 하루하루 살다보니 그마음이 어려울땐 그 마음이 있다가도 금방식고, 왜 나는 하나님을 믿으려고하는건지 모르겠어요. 내 안에 하나님을 못 만나게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어떻게해야 하나님을 온전히 믿게되는지 너무 모르겠어요. 내 열심으로는 안돼는걸 아는데, 어떻게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믿음은 결단이다!
Faith and Character go together! Amen! Pastor Cho and Pastor Ahn, bless you & your family! Thank you so much for your message as always, based on truth, grace, humility and love!
감사합니다
아멘 할렐루야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막연하게 믿고 따라가니 힘들었는데 모든사람이 믿을만한 증거 예수님이 부활하신것이 역사적인
사실을 보니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확실하게 믿게
되었어요.
보이지않지만 지금 함께
계시더라구요~~
4:40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 하실때마다 놀라워요 우연이 어닌 기도룰 했으니 들어주신 거잖아요
그런즉 어떤 어려운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있겠구나 믿고 참고 기다려야겠네요
예수님이 장님에대해 하나님의 하시는일을 나타내시려고 장님으로 태어났다 하심같이
인트로 피아노 너무 좋네요 ~~
혹시 무슨곡인지 알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극적으로 만난사람들의 얘기를 자꾸들어내는 것은 안타까운일 입니다 종교방송이 상업방송과 다르지않다는 생각 저 만하는것인지
자유의지의 결단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는 주장은, 사실은 자신의 믿음이 종교 안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타락한 아담(Adam) 안에서 존재 자체가 "죄된 생명"으로 태어난 인간이, 자유의지의 결단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는 주장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자유의지에 대한 빛 비춤이 없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엉뚱한 주장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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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자유의지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창2:16)
"임의로 먹되.."
여기서 말하는 "임의로"(freely)가 곧, "자유의지"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성경이 말하는 "자유의지"와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의지"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Of every tree of the garden thou mayest freely eat.."
임의로 먹기는 먹되, "Of every tree of the garden", 곧 동산의 각종 나무 "중에서.." 이다.
COVID-19으로 인한 지금과 같은 시기의 말로 한다면, 각종 색깔의 마스크 중에서 마음에 드는 색깔을 골라서 쓰되, 절대로 벗지는 마라. 마스크를 벗으면 반드시 코로나에 걸리리라!
이렇게 "명령"하신 것이 성경이 말하는 "자유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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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7)
그러나 첫 사람 아담(Adam)과 그 아내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의지"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은,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말았다.
이것이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자유의지"와 "타락", 곧 "죄"(sin, 하마르티아)의 관계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의지"는 "각종 나무 중.에.서." 만을 포함하는 것이지, 먹지 말라고 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우리는 분명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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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Adam)의 불순종으로 인해 결국 사람은 타락을 했고, 그나마 하나님께서 아담(Adam)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는 타락으로 인해 이제 그 기회마저 잃고 말았다. (이것이 믿음이 우리의 선택이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경이 말하는 "자유의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수준의 것이 아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담을 그릇인 "혼적 존재"로 만든 사람을, 그 창조의 목적에서 벗어나게 하는 그런 "자유의지"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겠는가?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의지"는 나 스스로가 타락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
성경이 계시하는 "자유의지"는 아담(Adam)으로 말미암아 이미 타락해버린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차원의 것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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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셨지만(창1:28), 정작 사람의 마음은 잃을 수도 있다!
오직 사람의 마음만은 강요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Adam)은 결국..
연(kite)이 하늘에 뜨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줄에 매달려 있어야만 한다.
연(kite)은 연줄로 인해서만 하늘을 날 수가 있다.
그런데 연줄을 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연줄이 없이도 내가 "선택"만 하면 하늘을 날 수 있다고 하는 것..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의지"는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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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조금 어렵네요.
그러면 자유의지는 하나님을 섬기는데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건가요?
육신적인 생각과 의지를 꺽고 하나님께로 향하고자
즉, 날마다 나를 죽이고 포기하는 것은 자유의지로 결정하는것이 아닌가요?
물론, 나를 죽이는것이 내힘으로는 할수없고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는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나를 내려놓고 포기하기로 결정할때ㅡ자유의지로ㅡ
성령님이 도우시는게 아닌가요?
반박하는것이 아니고 진심, 혼동스러워서 여쭙니다.
@@소망이기쁨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6:5)
하나님의 은혜로 타락한 아담(Adam) 안에서 태어난 우리의 본질이 이러함을 먼저 뼈저리게 통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미 타락해버린 아담(Adam) 안에서 태어난 우리에게는 자유의지에 의한 그 어떤 선택도 단지 "죄"(sin)일 뿐임도 함께..
"네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네 죄악이 관영한들 하나님께 무슨 관계가 있겠으며
네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네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네 악은 너와 같은 사람이나 해할 따름이요 네 의는 인생이나 유익하게 할 뿐이니라"(욥35:6-8)
짜면 짤수록 나에게 나오는 것은 죄와 사망뿐이라는 것이,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인간의 본질입니다.
네~맞습니다.
제 모습을 보더라도 로마서 1장 말씀같이 죄지을 생각만 하게되는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관계에서
요한복음1:12와 구원받은 강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겁니까?
예수님의 보혈로 믿는자들의 자유의지가
회복되어 순간순간 성령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기로 결단하는것이 아닌가요?
@@소망이기쁨이
십자가 우편 강도가 쉽게 구원받았을까?
십자가의 우편에 있었던 강도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일단은 구원을 받을 만한 성경 지식은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강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는데 십자가에 달렸다라고 고백하였다. 그 시대 대부분 유대인들은 이렇게 못 깨달았다. 심지어는 제자들조차도 이렇게 생각지 못한 이들이 있었을지 모른다. 왜 그런가? 헷갈렸었다. 자신이 따르는 선생이 죽어 버리니 의심이 들어왔다. 죽으면 안 될것 같은데 죄를 지으셨나? 이렇게 생각하고 혼돈이 와 버린 것일 수 있다. 혼돈이 오지 않았으면 왜 도망갔겠는가? 자신도 당당히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죽게되자 다 흩어져 버렸다. 혼돈이 오지 않았으면 십자가 앞까지 계속 갔을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 우편의 강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는데 십자가에 달렸다고 하였다. 아마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아무 관심도 없는데 그런 고백을 했을 리가 없다. 계속 듣고 있었던 것이다. 강도는 감옥에 갇히면서,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올 때, 회개하였을 것이다. 회개하다 보니 죄의식이 깊어지면서 밝아지는 측면이 있었을 것이고, 성경이 깨달아 지는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 십자가의 자리에서 예수님은 죄가 없다라고 한 사람도 선포한 이가 없었다. 전 유대 나라에 예수님은 죄가 없다 라고 선포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데 강도가 선포하였다.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구원이라는 것이 그냥 죽을 때 말 몇마디 영접기도 따라했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죽을 때 예수님 영접하면 천국 간다고들 한다. 그것이 옛날 중세 시대에 구원을 가지고 장사했던 면죄부와 뭐가 다른가. 오늘날도 여전히 횡행한다. 누가 면죄부를 주는가? 종교 지도자들이 준다.예배당 문턱만 들어오면 천국행 티켓을 준다. 증서는 발행하지 않아도 증서 이상의 확신을 갖게 만들어 버린다.
아무도 예수님을 향해 죄가 없다 라고 하지 않는데 십자가 우편의 강도가 고백하였고 주위 사람들이 듣고 성경에 기록한 것이다.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다. 제대로 죄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는 극형이었다. 형벌 중에 최고의 형벌이었다. 자신이 최고의 극형을 당한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다. 제대로 양심이 회복이 되고있고, 제대로 회개가 되고 있고, 아무도 생각지 못하고 있던 것을 선포하고 있었다. 그가운데 이 사람은 구원의 열망을 가지게 되었다.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간구하였다. 예수님께서 '네가 오늘 나와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구원 받았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철저히 회개한 것이 분명하다. 이미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계속 회개를 해 오는 과정 중에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혼자 있었으면 구원을 받지 못했을 텐데 예수님을 만나면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뭔가 깨달음이 오고, 회개를 해오고 있었는데 자신의 죄의식이 더 깊어진 것이다.
구원 시 큰 죄인 의식이 필요하다. 자신은 극형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는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라고 하였던 고백과 맞먹는 회개이다. 또한 뭔가 확실하게 믿음이 온 것이다.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고백은 믿음 안에서의 선포이다. 강도는 소문으로만 예수님을 듣고 예수님의 행적을 잘 보지는 않았는데도 3년 동안 따라다닌 제자들보다 더 큰 믿음이 나왔다. 죄가 없다라고 믿었다면 다 도망갔겠는가. 뭔가 의심이 들어오고 죄로 인해 사형 받는다라고 생각한 측면이 있었기에 도망간 것이다. 반면 강도는 자기 옆에 자기처럼 처량하게 죽어가고 있는 이를 구원자로 믿은 것이다. 이게 절대 쉽지 않다. 만약 우편 강도가 목숨이 더 연장이 되었다면 구원받은 자의 행위로 나아갔을 것이다. 행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옆의 강도에게 비방하지 말라고 권면하였다. 강도질로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처지에 옆의 강도를 전도하는 것이다. 더 이상 비방하고 판단하지 말고 죄를 짓지 말고 너도 구원 받으라 했을 것이다. 십자가 우편의 강도의 구원이 쉽게 된것이 아니라 다 구원의 원리 원칙에 입각해서 받은 구원인 것이다.
십자가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진지하고 절박하게 회개하였다. 거기서 설렁설렁 여유있게 회개하였겠는가. 유대인 출신으로서 충분히 성경을 봐 왔기에 여러 깨달음이 올 수 있었고, 믿을 수 없는 중에 믿는 믿음을 보였고. 인류 가운데 전무후무한 전도자 예수님이 기가막히게 함께 하셨다.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으시기에 어떻게 시기와 우연이 맞아 기회를 얻은 것이다. 드라마틱하게 구원받았다. 근데 이처럼 기적적인 구원을 바래야 겠는가? 저런 상황이 오는 게 쉽지 않고 왔다해도 자신에게서 그런 고백이 나오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구원의 길을 제시받았으니 매일 저러한 데로 나아가야한다. 구원은 미뤄놓을 것이 아니다.
교회 오래 다녔는데 그래도 하나님이 구원시켜 주겠지 라고 요행을 바래서는 안 된다. 자기 딴의 자비를 기대하는 것은 구원 받는 데 도움이 안된다. 하나님은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지옥 보낼 수 밖에 없는 재판장이시다. 그것은 에누리가 없다. 교회에서 오랫동안 봉사하고, 출석하고, 오랫동안 성경 읽었으니까 봐주면서 구원을 준다? 그런 구원은 없다. 교회에서 권사라는 직분을 받았으니, 목사니까 구원 시켜준다? 그런 구원은 없다. 오히려 목사가 더 많이 지옥간다고 하였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였다'고 항변하지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라'라는 판결만 있을 뿐이다. 목사라는 위치가 죄를 짓기에 더 좋은 위치이다. 물론, 일반 교인들도 지옥을 당연히 많이 간다.
구원을 이룰 믿음, 구원에 이르는 회개, 구원에 이른 자의 행위를 갖춰야 구원 받는 것이다. 강도도 그렇다.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있는데 그 부끄러운 십자가 형틀에서 전도하고 있다. 조롱과 멸시를 받는 상황에서 전하고 있는 것이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을 가졌고, 구원받을 만한 회개를 하였고, 구원 받을 만한 행위를 가졌다는 증거이다.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지옥 보낼 만한 이유가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네가 오늘나와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고 판결하신 것이다. 십자가 우편의 강도를 볼 때마다 기본적으로 무시하고 들어가지 않았는가? 이렇게 불쌍하게 마지막에 겨우 목숨을 건졌나 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 부러운 것이 아니라 안됐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나의 주제를 모르니까 십자가 우편 강도를 부러워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강도 짓을 하기는 했지만 뭔가 일반적인 강도와는 다르다. 생활고나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강도가 되었을 수 있다. 몰린 상황 가운데 강도짓을 하다 잡혀 죽게 됬다는 것 뿐이지 십자가 우편 강도의 삶과 자신의 삶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 위기를 참지 못하고 욱하는 마음에 범죄자가 되었지만 똑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생이 더 연장이 되었다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처럼 살아갈 사람이다. 십자가 우편의 강도만 보아도 믿음과 회개와 행위의 3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박자가 맞아야 한다.
@@빌라델비아선교회-v4x
감사합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