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8장 18-22절 설교 /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 제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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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30 вер 2024
  •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 옆에 둘러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건너편으로 가자고 말씀하셨다.
    19. 율법학자 한 사람이 다가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나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20.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21. 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하였다. "주님,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2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죽은 사람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이 치르게 두어라."
    [NIV]
    18. When Jesus saw the crowd around him, he gave orders to cross to the other side of the lake.
    19. Then a teacher of the law came to him and said, "Teacher, I will follow you wherever you go."
    20. Jesus replied, "Foxes have holes and birds of the air have nests, but the Son of Man has no place to lay his head."
    21. Another disciple said to him, "Lord, first let me go and bury my father."
    22. But Jesus told him, "Follow me, and let the dead bury their own dead."
    =====8:18 무리가 에워쌈을 보시고 - 마가는 여기에 '그 날 저물 때에'란 말을 명기해 놓고 있다(막 4:35). 아마 이때는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신 지(14, 15절) 얼마 지나지 않 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때 사람들은 예수의 병고치는 이적을 보고는 떼를 지어 그에 게로 모여들었던 것 같다. 물론 그중에서는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무리 중에 자기도 끼워달라고 간구하는 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한편 예수께서는 에워싼 군중들을 피하여 건너편으로 떠나고자 하셨는데 이는 아마 수면을 취할 시간을 가지기도 해야 했던 것 으로 볼 수 있다. 그와 더불어 예수는 제자들을 개인적으로 교육시키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무리를 떠나 제자 훈련의 시간을 가지고자 하셨던 것 같다. 저편으로 - 예수는 지금 디베랴 바다, 즉 갈릴리 바다의 북서부에 위치한 가버나움 에 계신다. 그렇다면 저편이라고 하는 곳은 아마 디베랴 바다 동부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8: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 복음서에서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흔히 예수의 적대자 들로 등장한다. 그러나 본문의 이 서기관은 예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해 예수를 뒤따르 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아마 이 사람은 어떤 세속적인 이익을 위해 예수의 제자가 되 고자 하였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서기관이라는 직책이 백성의 선생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예수를 '선생님'이라고 호칭한 데서도 암시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마 태복음에는 서기관들을 긍정적인 양상으로 언급하고 있는 곳이 더러 있다(13:52; 23:8 - 10, 34). 여하튼 본문에 언급된 '서기관'은 끝내 예수의 제자로 부름받은 것을 알 수 있다(21절).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R. Walker) 서기관이라는 신분상의 장애 요인 때문에 '나를 좇으라'는 말도 듣지 못했고 제자로도 부름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하 지만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로 인해 받아 들여질 수 없다. (1) 일상의 생 활을 포기한 전적 헌신자만이 제자라고 할 수 없다. 단순히 예수를 믿고 따른 자도 제 자인 것이다. (2) 21절에는 '제자 중의 한 사람인 또 하나'(Another man, one his disciples)가 아니라 본절의 서기관과 연결하여 '제자 중에 또 하나'(Another of his disciples)라고 기록되었다. 이에 대한 헬라어 원문의 해석은 21절 주석을 참조하라. (3) 예수께로 아무 주저없이 나아왔을 뿐 아니라 예수를 '선생님' 이라 부르고, 또 어 디든 따르겠다는 헌신의 의지를 보인 서기관의 태도는 제자로 부름받기에 충분한 것이 다. (4) 예수께서 두번째 사람에게만 '너는 나를 좇으라'(21절) 한 것은 그 사람이 서 기관보다 제자로 더 적합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삶이 즉시 예수를 좇지 않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결단을 촉구한 말씀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그 서기관은 분명 예수의 제자로 부름받았음에 틀림없다. 선생님이여(* , 디다스카레) - 이는 교사 또는 가르치는 자(teacher)라는 뜻으로 서기관이 예수의 가르침에 압도되었음을 나타내는 말인 동시 에 예수의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했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 이는 그가 예수의 제자되기를 원한다는 표현이 다. 특히 '좇으리이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콜루데오'(* )는 '따 르다', '닮다'는 뜻으로 예수를 따르는 일이, 곧 그분의 삶을 좇아가고 인격과 모습 닮기를 노력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즉 그는 절대 순복(obedience)의 자세로 예수를 따 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에 언급하는 예수의 대답을 보면 예수의 제자가 되어 주 를 따르는 일에는 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함께 한다는 사실을 그가 인식치 못하고 있었 음을 암시한고 있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예수를 따르려면 온갖 박해와 고통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야 함을 배워야 할 것이다
    =====8:20 여우도 굴이 있고 거처가 있으되 - 어떤 학자들은 이구절을 두고 예수께서 제자되 길 원하는 서기관의 요청을 거절한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제자됨을 거 절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고 제자가 될 경우 자기 부정, 희생, 봉사, 고난 등이 뒤 따름을 깨우쳐 주고자 하였던 것으로 이해함이 좋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 '굴'은 몸을 숨길만한 장소(굴)를, '거처'는 둥지가 아닌 단지 새가 밤을 지새울 수 있는 나뭇가지 등의 임시 처소를 의미한다(McNeile). 결국 이 말은 아주 빈약한 거주지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심지어 하찮은 짐승들 조차도 비록 엉성하나마 보금자리가 있 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주인이고 창조자이신 그리스도가 자신의 세계에 와서 안식처 없는 나그네, 사람들의 거주지에서 내쫓김을 당한 방랑자가 되었다는 이 역설적인 사 실을 극명하게 나타내주고 있는 구절이다. 오직 인자는 - '다윗의 아들'이란 칭호가 유대적 정통성을 강조한 것이고 '하나님 의 아들'이 예수의 신성을 밝힌 칭호라면, '인자'란 칭호는 구약 선지자들에 따르면 종말에 이르러 (단 7:13, 14)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실 자로 인식되었고, 바로 이 용어를 예수께서는 자신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하셨다. 자 칭(自稱)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모두 세 번 밖에 사용되지 않았 다(행 7:56; 계 1:13; 14:14). 이 인자라는 칭호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가 하나 님과의 특수한 관계를 내포하고 있는 것과 대칭을 이루어, 사람과의 특수한 관계를 내 포하고 있는 칭호인 것이다(눅 22:69, 70). 특히 본문에 언급된 '인자'는 단순히 거처 할 곳조차 없는 바로 '나'라는 말로도 대치시킬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 '인자'는 예 수께서 당신의 인성(人性)을 강조 하고 앞으로 당신의 당하실 고난을 묵시적(黙示的) 으로 나타내 보이고 있다. 여하튼 본문에서의 인자란 칭호를 살펴볼 때 예수께서는 인 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이상과 같이 거처도 없는 가난한 삶을 기꺼이 감당하고 있는 초월적 사랑을 지니신 분임을 알 수 있다. '인자'에 대한 자세한 내용 은 눅 5:24 주석을 참조하라. 머리 둘 곳이 없다 - 이는 머리 놓을 곳, 즉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그곳에서 휴 식을 취할 만한 소유나 집 조차 없을 만큼 가난하고 피곤하다는 뜻이다. 실로 이러한 절대적 가난을 통해 예수께서는 온 인류에게 충만한 안식과 풍요한 부(富)를 제공해 주신 것이다(고후 8:9).
    =====8:21 제자 중에 또 하나가(* , 헤테로스 데 톤 마데톤) - 이 어구는 19절에 어급된 서기관 역시 예수의 제자에 속한 자였음을 암 시해 준다. 즉 '또 하나'란 말의 원어 '헤테로스'(* , another)는 신약 성경에서 '알로스'(* , 다른 하나의, 같은 부류 내의 또 하나의)와 같은 의 미로 쓰이는데, 이는 분명, 앞절의 서기관 외에 또 하나의 제자란 의미를 가지고 있 다. 여기서 '제자'란 자신의 전(全) 삶을 예수께 헌신하고 다른 모든 생활을 모두 다 내팽개치는 사람만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라 예수께 신앙을 고백하고 그분의 가르침 을 따르는 자를 의미하는 것(요 6:66)으로 볼 수 있다(19절). 왜냐하면 제자로 지칭 되고 있는 이 사람은 자기 부친을 먼저 장사(葬事)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으며, 이런 요청이 거절당하기 이전에 이미 제자로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께 질문을 던진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 곧 서기관은 예수의 제자가 아니고 다름 한 사람 곧 제자로 지칭되고 있는 이 사람만이 예수의 제자였다고 단정지을 수 없으므로 둘 다 예수의 제자에 속했던 자들로 보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주여 나로 먼저 - 이 두번째 사람은 예수께로 소명받은 제자가 추구해야 할 우선 순위를 혼동하고 있었다. 그는 두 가지 욕망, 곧 예수를 따르고 싶은 열정과 자시의 의무를 등한히 하고 싶지 않은 소망 가운데서 망설이고 있었다. 실로 앞절의 서기관은 열정적이고 지나치게 자신의 믿음을 표현한 반면 이 삶은 매우 소심한 신앙 태도를 보 였다. 진정 그는 제자의 길이 차선(次善)의 신앙으로써가 아닌 최선의 신앙으로써 상 황을 초월하여 예수를 좇는 것임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내 부친을 장사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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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6월 24일 월요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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