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저 집에 실제 가주했고, 제가 나주시에 매각한 직전 소유자 입니다 아래 댓글보니 아주 잘 설명한 댓글이 있더라구요. 굳이 보충 설명 할 필요는 없기에.... 저희 형제들 소중한 추억과 기억이 있는 집 입니다. 나주시가 철거한 것 같은데 정원에 굴둑이 있어 등나무가 굴둑을 타고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날땐 정말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매워지고 없지만 지하수가 나와 작은 연못도 있어 낚시해서 고기도 넣어뒀던 기억이 있네요. 저희도 모두 수도권에 거주하여 어머님이 아프시고 관리가 어려웠는데, 지역 사학자들의 건의로 나주시에 매각하게 되었습니다. 지붕의 기와도 일본에서 직접 공수해본 거라 들었고, 예전 아버님 살아계실땐 일본 관광객과 국내 사학과 학생들도 단체로 찾아오곤 했다고 하더군요. 어버지에게 처음 이 집을 지은 손주가 찾아왔다는 얘기도 들었고, 일본 신문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친구가 유튜브 보다 니네 집을 유튜브에 소개한다고 하길래 들렀습니다 잠시나마 추억에 잠기는 시간 이었습니다
아니..이렇게 귀하신분이..정말 오래전에 올린 영상인데 이렇게 댓글을 달아주셔서 정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저희도 이곳의 소유주분이 정말 굉장히 궁금했는데 소중한 추억 이야기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이야..저희도 정말 감개무량하네요 ㅎㅎㅎ 이런 소중한 공간을 나주시에서 아무쪼록 잘 관리해줬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처음 보신 부분은 창고예요. 현관에 들어와 첫 다다미 부분은 엎드려 절하며 손님 맞이하는 전통일본식 현관 입니다. 일본식 정원 너무 아무 것도 없네요. 향 나무 하나, 작은 돌탑 정도 밖에 없고 회양목도 뒤에 심은 듯 휑 합니다. 돌들도 거의 없는 편,누군가 다 들고 갔네요. 사실 해방되자, 주위 분들 일본인들 집에 쳐 들어 가서 다 가져가서 팔았어요.
외할아버지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에 살 때 울 엄마 친할머니를 위해 온돌방을 하나 마련했더니 동네 일본 할머니들에게 인기 짱이었다는 일화를 들었는데, 일본식 방은 여름엔 좋을지 몰라도 겨울엔 역시 따뜻한 방에 지지는게 최고! 우리 온돌은 언제나 세계 어딜가나 각광 받네요! 울 한옥 최고~!!!^^
@@수수꽃다리-p9b 장마철에 온돌방 사용 안 해 보셨네요~ 엄첨 뽀송뽀송하고 공기도 끈적이질 않아요^^ 사방으로 문 열어 놓으면 덥다는 느낌없어요. 몸에 달라 붙는 느낌 자체가 없어요. 다다미방은 냄새도 많고 바닥밑이 썩는줄도 몰라서 호흡기쪽 알러지를 달고 산답니다. 우리 온돌방은 건강쪽으로는 탑 입니다~^^ 선조님들 덕분에 사계절을 지혜롭게 잘 사는거 같아요. 감사 또 감솨 ~^^
옛날에 어렸을때 서울 충정로에 살때 일본식 가옥에 살았어요. 이렇게 큰집은 아니었지만 이층집이었는데 이층은 다다미로 되어 있어서 겨울엔 무척 추웠고 방이 두개 있었는데 석유난로를 계속 때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층은 미닫이 문으로 나뉘었고 벽장도 있었어요. 근데 일층은 한국식 온돌로 개조를 해서 무척 따뜻한 바닥에서 지냈답니다. 희안한건 우리 일본식 집도 문이 두개였어요. 골목을 끼고 하나가 있었고 조금 큰길로 대문이 나있었어요. 부엌은 약간 밑으로 내려앉아서 방으로 불이 들어갈수 있도록한 구조였어요. 나이가 들어도 옛날에 살던 집들이 새록새록 기억이 나네요. 미국에 사는데 한식집에 살던걸 몸이 기억하나봐요. 차가운 바닥이 싫어서 여름에도 슬리퍼를 신고 살고 카페트를 뜯어내고 마루바닥을 깔고 산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른이 넘도록 서울에서만 살다가 외국생활 하다가 미국에서 산게 벌써 십몇년됬는데 한국에 돌아가 서울이 아닌 시골에 살고 싶어요. 오지 유튭보면 한국이 참 그립습니다.
이 집은 일제시대 대지주 구로즈미가 살던 집입니다 원래 이 집주위에 엄청난 숲과 땅이 있었지요 해방후 보육원으로 사용되다 80년대 개인이 사서 살다가 몇년전 나주시에서 매입해서 보수한 다음 근대문화유산으로 개발한 건물입니다 정원은 일본식 정원으로 원래 연못도 있고 궁궐 굴뚝같은 굴뚝이 있고 탑도 있었는데 이제는 없어졌네요 기와도 한국에는 없는 청기와입니다 아마 일본에서 가져와 수리했을거예요
건물 보니까 현대 들어와서 몇번 개정 보수를 한 것인데 일제 강점기 시절 학교와 교사들 사옥으로 사용한 관사 형태의 적산 가옥이네요. 마당에 터도 넓은 것이 그 자리에 과거엔 다른 일본 학교 (강습소라고 부르던..) 가 있었을듯 합니다. 그게 아니면 나주에 거주하는 일본인 고급관료거나 상업인의 관사로 지어졌거나 ... 앞 마당에 정원이 있었다면 일본인 지주(부호)의 관사로 지어진 것이구요. 왼쪽의 건물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형태는 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용 양식으로 보이거든요. 나주는 목포 건너편이라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건물들이 많았습니다. 목포항은 (과거엔 나주항이나 영산항) 신라 삼국시대 말기부터 고려시대 . 조서시대 , 일제 강점기 시절까지 전라도 지역에서 나오는 농산물과 산에서 나오는 나물. 약초 . 그리고 강진. 보성 . 순천 지역에서 나오는 자기와 도기. 옹기 등 최첨단 신소재 산업품과 합천, 고령 등지로부터 나오는 철기류까지 수도에 거주하고 있는 왕과 고급 관료들에게 공납하던 항구엿죠. 일제 강점기때에는 지금의 목포가 한반도내 6대 도시안에 들 정도로 교역이 많았던 곳입니다. 193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은 황국 신민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조선어를 못쓰게 하고 일본어를 사용케 하고. 나아가 일본 제국주의 신민이 되도록 교육하는 학교 형태의 강습소를 많이 지었답니다. 당시에 한국의 7대도시는 경성(서울). 제물포(인천) . 평양. 원산. 군산,. 목포, 부산 이었죠. 일본은 조선의 서울과 군산에 내륙 전초 기지국으로서 일본의 수도를 서울로 옮기고, 제 2의 수도로서 군산(김제) 를 포함한 새만금에 세울려고 하엿죠. 정감록에 한양에서 김제 지역으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일본은 한반도를 점령한 후 장기적인 계획하에 일본의 수도인 동경을 아예 서울로 옮길 생각이었죠. 그래서, 동경에도 없는 유럽식 신식 건물과 일본식으로 겸합한 실험적 건축물들을 서울과 인천에 많이 지었죠. 그래서 시베리아를 침략하기 위한 전초 기지 도시로 원산. 청진, 그리고 두만강 유역의 나진 (선봉) 을.. 만주를 침략하기 위한 전초기지로서 평양과 신의주를 제 1 수도로 한양(경성)을.. 제물포(인천) 는 수도의 관문이자 중국 내륙을 드나드는 전초기지로.. 그리고 전시에는 제2의 수도로서 군산을 사용할 계획이었고, 나아가서 군산,김제의 바다를 메꾸어 새만금이라는 미래 계획 도시를 세워 군산은 제2위 피난 수도이자. 군사도시. 산업도시의 성격을 지닌 복합광역도시를 건설할 계획이었고.. 목포,나주는 한반도내의 토산품을 모아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공납 교역의 도시로.. 마산과 부산은 한반도의 물품을 일본에 실어 나르는 관문 도시로서 사용할 계획이었던지라 이 곳들에 일본 적산 가옥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중국 내륙을 지배 하기 이전에 실험적인 국가를 만든 것이 만주국이었습니다. 그리고 댓글들 보니 일본 다다미식 가옥이 요름엔 시원하다는 내용이 있던데, 장마철과 겨울에는 엄청 습기 차고 추워요, 한국의 과거 온돌 시스템이 한반도나 일본 열도에는 최고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조선의 온돌 시스템을 우습게 여기고 유럽식 건축물을 엄청 동경하는 나라엿습니다. 마치 합리주의적인양 가장을 하고는 어설픈 지식으로 일본의 문화를 선호하는 의식이 내면에 많은 분들인듯합니다. 전형적인 친일의 1단계 증상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나 할아버지 말로는 일제 시절에 살기 좋았다. 일본이 강제로 한 것이 없다라고 하는 사람은 뼈속까지 친일노예의 전형성을 보입니다. 이 집이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을 보여주는 증거물인데 뭔 개헛소리들 하냐.
적산가옥 책임 목수로 전면 해체보수 해 보았는데 너무 허접(기둥 굵기가 10cm×10cm)하고 너무 허술해 겨울엔 얼어죽기 딱 좋은 구조입니다. 아마도 일본 지형?(지진 )과 해양성기후에 습한 걸 감안 한 건축 구조가 아닐까요? 아뭏튼지 한국 지형과 기후에 전혀 맞지 않는 건축물입니다.
일본 전통가옥은 목재로지은 서양식 경량목구조 방식입니다. 다시말해 다른 목구조(한옥)보다 건축비용이 적게들고 실내개조,확장성,개조는 쉽지만 명칭이 말해주듯 그 건축구조를 살펴보면 간단한 뼈대에 경량식이나 난방,단열이 취약하고 구조강도를 볼때 집이 매우 약함. 서양식 경량목구조로 2층까지는 가능하나 3층이상은 버티기 힘든 구조.... 쉽게말해 간이식 주택에 가까움. 비용이 엄청드는 한옥에는 비빌수도없는 목재료, 목구조의 건축방식임. 쉽게 간단하게 지어살려면 좋지만.... 비용을 아끼지않고 집을 제대로 지어 살려고하는 사람들은 일본식 가옥에선 안살죠. 서민주택정도랄까...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전통한옥은 비용도 많이들며 공을 엄청들인...... 개인주택이 아니라 여러친족과 관련자들이 함께살던 공동주택입니다. 그래서, 안채,사랑채,행랑채, 등등 여러채(집)으로 이루어진 사대부 양반귀족 가족,친지들이 살던 고급목조공동주택 입니다. 서민백성들이 살던곳은 지붕을 초가로 올린 초가집이 개인주택으로 양반귀족들의 고급목조기와 공동주택과 더불어 한옥을 이루고 살았지요. 근대로 들어와 사대부양반귀족들의 한옥기와집은 근대,현대에 맞게 담장이 없어지며 사각형모양의 가운데 아주작은 마당공간이있는 근대,현대 한옥으로 축소개량됩니다. 공동주택이 개인주택으로 바뀐것이고......초가집(목구조한옥)에서 기와집(양반귀족들의집)으로 현대로 오면서 바뀐것이죠.
@@LifestyleA703 일본은 갈대가 많아서 지붕을 올릴 때도 갈대를 많이 쓰고, 다다미도 갈대로 한다고 들었는데요. 그리고 고구마 줄기는 말리는 질겨지긴해도 긴줄기는 원줄기라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또 다다미 두께또한 꽤 있는데 그게 가늠할까요? 고구마 줄기가 얼마나 많아야 할까요?
1960년대 말에 첫 직장에 얼본인 간부들이 거주하던 얼본식 주택들이 남아있어 상당기간 사용관리한 적이 있습니다. 얼본 집들은 주로 목조주택이라 화재대비로 옥외에 방화수 통이 꼭 있었습니다. 천정은 높아도 출입문의 높이는 규격으로 6자 1.8m입니다. 옛날에는 충분했었지만 지금 한국인의 키가 커져서 님도 머리를 구부려야 출입이 되는 것을 보니 금석지감이 느껴집니다. 거실에 있는 벽장 한쪽 모서리에는 신주(神柱)라고 극진하게 닦아대며 모시던 기둥이 있었습니다. 지금 소개하시는 주택은 완전 일식은 아니고 양식이 믹스된 형태로 보입니다. 정원의 나무는 전지하여 다듬고 손대는 것이 우리 한식의 크는대로 손을 덜 대는 식과는 대조되지요. 오랫만에 좋은 구경했네요. ^^
저도 어릴 때인 1960년대 서울 서촌의 일본집에 살았던 추억이 새롭습니다. 거실 다다미방 한쪽에 신주가 있었는데, 그 신주라는 단어를 잊어서 늘 궁금했는데, 지금 알게 되어 고맙네요. 오시레도 있었고. 미닫이 현관문 열고 들어서면 긴 복도가 있고 양 옆으로 거실방과 각 방들과 부엌이 있었고, 방마다 앞에는 툇마루가 있었네요. 정원도 좋았고. 그립네요.
적산가옥유래입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 소유집이나 일본관공서 성격의 건물이 해방되자 일본인들이 돌아오겠다면서 몸만 빠져나간 건물입니다. 그렇지만 일본인들이 귀국하고 빈집이 되자 아무나 들어가서 살거나 빈집 상태에서 해방후 일본인 소유부동산은 국유화합니다.어쨋든 일본인 소유 건물에 들어가 살던 사람이나 다른 경로로 불하를 받은 사람들이 소유권등기를 나중에 하게 됩니다. 땅은 모두 국유화되었습니다.농지와 임야는 모두 국유화되었지만 건물 대지는 적산가옥 불하할 때 소유권 이전이 함께 됩니다.그래서 지금 적산가옥은 건물 대지 모두 개인소유권입니다. 건물은 이 영상의 건물처럼 불하되어 민간인 소유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물이 상당 수 있습니다.이 건물도 리모델링 전에는 개인소유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70년부터 6년간 적산가옥에 살았었네요 연탄아궁이부엌과 방이 온돌이었던 것 보면 중간에 개조를 했었던걸까요 아니면 한옥 절충식이었나? 다락 이층은 무지 넓었는데 마루바닥이 낡아서 삐걱거려 거의 사용을 안했던 기억이 나요 긴 복도와 격자무늬 창이 많아서 외관이 예쁜 집이였죠. 그 곳 유년기 추억의 집은 모두 헐리고 지금은 큰 도로와 빌딩이 들어섰더군요
일본 집을보니 어렸을때 나주역부근 연탄공장옆에 일본집에서 살았던 기억이 나는군요 엉청 큰정원과 엄청깊은 우물과 집이 작은 복도로 둘러 싸여 있던 생각이 납니다 도로 건너편에 세무서가 있었던 생각도 나고 나주 일본집이 지금도 남아있을까요? 지금도 남아있다면 가보고 싶은곳 추억의 집 입니다
9:20 벽장이 일본식이 아닐듯합니다. 제가 살던집은 100년도 더 된 한옥에 살았었읍니다. 소싯적에 안방 아르목에 무언가 밟고 올라가서 어느 나무 함에 있던 족보를 본적도있었지요. 즉, 벽장은 우리나라 건물 구조중 하니입니다. 일본인이 아니면 정확한 정보를 전해주세요.
안녕하세요...저 집에 실제 가주했고, 제가 나주시에 매각한 직전 소유자 입니다
아래 댓글보니 아주 잘 설명한 댓글이 있더라구요. 굳이 보충 설명 할 필요는 없기에.... 저희 형제들 소중한 추억과 기억이 있는 집 입니다. 나주시가 철거한 것 같은데 정원에 굴둑이 있어 등나무가 굴둑을 타고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날땐 정말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매워지고 없지만 지하수가 나와 작은 연못도 있어 낚시해서 고기도 넣어뒀던 기억이 있네요.
저희도 모두 수도권에 거주하여 어머님이 아프시고 관리가 어려웠는데, 지역 사학자들의 건의로 나주시에 매각하게 되었습니다. 지붕의 기와도 일본에서 직접 공수해본 거라 들었고, 예전 아버님 살아계실땐 일본 관광객과 국내 사학과 학생들도 단체로 찾아오곤 했다고 하더군요. 어버지에게 처음 이 집을 지은 손주가 찾아왔다는 얘기도 들었고, 일본 신문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친구가 유튜브 보다 니네 집을 유튜브에 소개한다고 하길래 들렀습니다
잠시나마 추억에 잠기는 시간 이었습니다
아니..이렇게 귀하신분이..정말 오래전에 올린 영상인데 이렇게 댓글을 달아주셔서 정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저희도 이곳의 소유주분이 정말 굉장히 궁금했는데 소중한 추억 이야기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이야..저희도 정말 감개무량하네요 ㅎㅎㅎ 이런 소중한 공간을 나주시에서 아무쪼록 잘 관리해줬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어마어마하게 좋은 집에 사셨네요.
구조가 일본식 맞네요
여름에 잠시 머물렀는데 습한온도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계단도 가파른것이 불편했거든요.
미세먼지가 없어서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곧 쏟아질거 같아서 한참을 올려다본적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네요
처음 보신 부분은 창고예요. 현관에 들어와 첫 다다미 부분은 엎드려 절하며 손님 맞이하는 전통일본식 현관 입니다.
일본식 정원 너무 아무 것도 없네요. 향 나무 하나, 작은 돌탑 정도 밖에 없고 회양목도 뒤에 심은 듯 휑 합니다.
돌들도 거의 없는 편,누군가 다 들고 갔네요.
사실 해방되자, 주위 분들 일본인들 집에 쳐 들어 가서 다 가져가서 팔았어요.
저희 할아버지 영산포에서 독립운동하시다가 옥고를 치르셨지요. 독립후 나주시에서 독립운동하신 분들 모셔서 저런 집들과 상가 및 사업체를 고르라고 하셨는데 할아버지께서는 이런걸 바라고 독립운동한거 아니라며 호통치고 나오셨다는 얘기를 항상 말씀 하셨는데. .... 이 영상을 보니 할아버지 보고싶네요. 고생만 하신 할머니도.. ㅠ
멋있네요 할아버지
천국가셔서 잘 살고 계실겁니다 독립운동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후손들이 뿌듯하잖아요 기개가 있으실듯. 행복하십시요
할아버지께서 훌륭하신 분이네요
할아버지 인품이 보이네요
자랑스러워 하셔도 됩니다
구라가 술술
북해도에서도 살아봤고 도쿄에서도 살아봤는데 차라리 북해도는 난로가 있어서 살만했는데 도쿄에서는 온돌이 어찌나 그리운지..진짜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시스템입니다
일본식 주택이면 리모델링으로 단열을 다시 다 해야 그나마 겨울에 춥진 않을듯...
개인적으로 한옥이 훨씬 예쁘고 운치있는듯...
그렇죠 한국 난방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모를까 한국인들은 온돌없이는 못살죠ㅎㅎ
외할아버지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에
살 때 울 엄마 친할머니를 위해 온돌방을 하나 마련했더니 동네 일본 할머니들에게
인기 짱이었다는 일화를 들었는데,
일본식 방은 여름엔 좋을지 몰라도
겨울엔 역시 따뜻한 방에 지지는게 최고!
우리 온돌은 언제나 세계 어딜가나
각광 받네요!
울 한옥 최고~!!!^^
일본은 습기가 많아서 다다미가 좋지요 ㅎㅎㅎㅎ
우리 나라도 장마철에는 다다미가 좋은데 겨울은 아니지요^^
@@수수꽃다리-p9b
장마철에 온돌방 사용 안 해 보셨네요~
엄첨 뽀송뽀송하고 공기도 끈적이질 않아요^^
사방으로 문 열어 놓으면 덥다는 느낌없어요.
몸에 달라 붙는 느낌 자체가 없어요.
다다미방은 냄새도 많고 바닥밑이 썩는줄도 몰라서 호흡기쪽 알러지를 달고 산답니다.
우리 온돌방은 건강쪽으로는 탑 입니다~^^
선조님들 덕분에 사계절을 지혜롭게 잘 사는거 같아요.
감사 또 감솨 ~^^
요즘 일본 신축주택에 온돌시공 많이 한답니다. 다만, 온수가 도는 시스템이 아니라 전기발열이란게 안습.
일제 시대 no
일제 강점기 라고합디다
@@수수꽃다리-p9b 전통한옥은 불 안 때도 장마철에 습기 없습니다.습기가 없는 이유는 방바닥과 벽 ,천장이 모두 습기를 흡수하는 흙 미장이기 때문입니다.한옥 모양인 신축이 장마철에 습기로 벽에 물이 맺힌다면 방바닥과 벽체를 시멘트를 섞어 미장을 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어렸을때 서울 충정로에 살때 일본식 가옥에 살았어요. 이렇게 큰집은 아니었지만 이층집이었는데 이층은 다다미로 되어 있어서 겨울엔 무척 추웠고 방이 두개 있었는데 석유난로를 계속 때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층은 미닫이 문으로 나뉘었고 벽장도 있었어요. 근데 일층은 한국식 온돌로 개조를 해서 무척 따뜻한 바닥에서 지냈답니다. 희안한건 우리 일본식 집도 문이 두개였어요. 골목을 끼고 하나가 있었고 조금 큰길로 대문이 나있었어요. 부엌은 약간 밑으로 내려앉아서 방으로 불이 들어갈수 있도록한 구조였어요. 나이가 들어도 옛날에 살던 집들이 새록새록 기억이 나네요. 미국에 사는데 한식집에 살던걸 몸이 기억하나봐요. 차가운 바닥이 싫어서 여름에도 슬리퍼를 신고 살고 카페트를 뜯어내고 마루바닥을 깔고 산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른이 넘도록 서울에서만 살다가 외국생활 하다가 미국에서 산게 벌써 십몇년됬는데 한국에 돌아가 서울이 아닌 시골에 살고 싶어요. 오지 유튭보면 한국이 참 그립습니다.
82년도 부산 토성동 일본식2층집 무지 많았음 나도 살았고 구석진곳 2층으로 오르는 나무계단 2층방 다다미에 커다란벽장 구조가 거의 비슷 하내요 예전 추억이 새롯 새롯
일본식 가옥 겨울에 좀 춥지요 외벽도 얇고 단열이 잘안되고 바닥엔 짚으로 엮은 다다미가 바닥은 그리 차진않지만 난방이 시원찮아 별로였어요 예전에 잠시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집은 일제시대 대지주 구로즈미가 살던 집입니다 원래 이 집주위에 엄청난 숲과 땅이 있었지요 해방후 보육원으로 사용되다 80년대 개인이 사서 살다가 몇년전 나주시에서 매입해서 보수한 다음 근대문화유산으로 개발한 건물입니다
정원은 일본식 정원으로 원래 연못도 있고 궁궐 굴뚝같은 굴뚝이 있고 탑도 있었는데 이제는 없어졌네요
기와도 한국에는 없는 청기와입니다 아마 일본에서 가져와 수리했을거예요
저 큰집을 지을때 누가지어 줬는지 일본놈들 데려다 짓지는 않았을거구 조선사람들 강제 동원해서 지은거 아닌가 싶네요 불쌍한 조선인들 저집을 지으면서 얼마나 고생했을지 생각하면 일본놈들 정말 싫다
아~~그랫군요~
자세한설명 감사~
귣
@@lark9056 알기로는 건축재료와 기술자 일본인이었다고 합니다
@@lark9056 일제때도 사람사는 세상이엿다 잼민아 니가 생각하는것처럼 살기힘들지 않았음
일본사는 사람인데 저런 일본집 대충 보기에는 이쁘고 특이할지 몰라도
직접 살아보면 실용성 제로에 너무 춥고 방음 1도 안됩니다.
진짜 한국집이 튼튼하고 따뜻하고 단열 잘되고 공간 구분 잘되고 최고에요.
ㅎㅎ 맞아요 옆집 소리가 다들여서
민망할때도 많았어요.
촬영중에 전투기소리가 두번정도 들리네요. 집이 어마어마하네요. 집 넓으면 고생. 지금 펜트하우스 사는데 더 큰집은 원치않아요.
물딍크 맞아요
우리들도 어릴적 외부에
저런 물탱크가 있었어요
어릴때 부산에 살때 일본식 집이었는데 바닥이 짚으로 된 다다미가 깔려있고 겨울이면 방에 석탄 난로가 있어서 좀 춥게 살았던 기억이 있다. 정원이 예뻐서 낮은 나무들도 있었고 ...
좋은 집이었네요... 정원도 있었고...
문이 많고 방 칸수가많아서 어느분이 매입하여 카페로 사용하면 제격일것같네요 감사합니다
저 당시에 나주를 시골이라고 하기엔
전라도가 전주, 나주를 합친말이고
조선말까지는 광주보다 컸던 도시입니다.
군산에는 일본인 가옥이 많고 오픈해서 행사를 하는곳도 있고 구경 할수 있습니다.
목포에도 있구요.
나주 여행 갔을때 안을 못봤는데 덕분에 구경 잘했습니다~^^
건물 보니까 현대 들어와서 몇번 개정 보수를 한 것인데 일제 강점기 시절 학교와 교사들 사옥으로 사용한 관사 형태의 적산 가옥이네요.
마당에 터도 넓은 것이 그 자리에 과거엔 다른 일본 학교 (강습소라고 부르던..) 가 있었을듯 합니다.
그게 아니면 나주에 거주하는 일본인 고급관료거나 상업인의 관사로 지어졌거나 ...
앞 마당에 정원이 있었다면 일본인 지주(부호)의 관사로 지어진 것이구요.
왼쪽의 건물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형태는 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용 양식으로 보이거든요.
나주는 목포 건너편이라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건물들이 많았습니다.
목포항은 (과거엔 나주항이나 영산항) 신라 삼국시대 말기부터 고려시대 . 조서시대 , 일제 강점기 시절까지
전라도 지역에서 나오는 농산물과 산에서 나오는 나물. 약초 .
그리고 강진. 보성 . 순천 지역에서 나오는 자기와 도기. 옹기 등 최첨단 신소재 산업품과 합천, 고령 등지로부터 나오는 철기류까지
수도에 거주하고 있는 왕과 고급 관료들에게 공납하던 항구엿죠.
일제 강점기때에는 지금의 목포가 한반도내 6대 도시안에 들 정도로 교역이 많았던 곳입니다.
193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은 황국 신민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조선어를 못쓰게 하고 일본어를 사용케 하고.
나아가 일본 제국주의 신민이 되도록 교육하는 학교 형태의 강습소를 많이 지었답니다.
당시에 한국의 7대도시는 경성(서울). 제물포(인천) . 평양. 원산. 군산,. 목포, 부산 이었죠.
일본은 조선의 서울과 군산에 내륙 전초 기지국으로서 일본의 수도를 서울로 옮기고, 제 2의 수도로서 군산(김제) 를 포함한 새만금에 세울려고 하엿죠.
정감록에 한양에서 김제 지역으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일본은 한반도를 점령한 후 장기적인 계획하에 일본의 수도인 동경을 아예 서울로 옮길 생각이었죠.
그래서, 동경에도 없는 유럽식 신식 건물과 일본식으로 겸합한 실험적 건축물들을 서울과 인천에 많이 지었죠.
그래서 시베리아를 침략하기 위한 전초 기지 도시로 원산. 청진, 그리고 두만강 유역의 나진 (선봉) 을..
만주를 침략하기 위한 전초기지로서 평양과 신의주를
제 1 수도로 한양(경성)을.. 제물포(인천) 는 수도의 관문이자 중국 내륙을 드나드는 전초기지로..
그리고 전시에는 제2의 수도로서 군산을 사용할 계획이었고, 나아가서
군산,김제의 바다를 메꾸어 새만금이라는 미래 계획 도시를 세워 군산은 제2위 피난 수도이자. 군사도시. 산업도시의 성격을 지닌 복합광역도시를 건설할 계획이었고..
목포,나주는 한반도내의 토산품을 모아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공납 교역의 도시로..
마산과 부산은 한반도의 물품을 일본에 실어 나르는 관문 도시로서 사용할 계획이었던지라
이 곳들에 일본 적산 가옥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중국 내륙을 지배 하기 이전에 실험적인 국가를 만든 것이 만주국이었습니다.
그리고 댓글들 보니 일본 다다미식 가옥이 요름엔 시원하다는 내용이 있던데,
장마철과 겨울에는 엄청 습기 차고 추워요,
한국의 과거 온돌 시스템이 한반도나 일본 열도에는 최고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조선의 온돌 시스템을 우습게 여기고 유럽식 건축물을 엄청 동경하는 나라엿습니다.
마치 합리주의적인양 가장을 하고는 어설픈 지식으로 일본의 문화를 선호하는 의식이 내면에 많은 분들인듯합니다.
전형적인 친일의 1단계 증상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나 할아버지 말로는 일제 시절에 살기 좋았다.
일본이 강제로 한 것이 없다라고 하는 사람은 뼈속까지 친일노예의 전형성을 보입니다.
이 집이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을 보여주는 증거물인데 뭔 개헛소리들 하냐.
가장 큰 문제는 난방 아닐까요, 겨울엔 정말 견디기 어려운 일본식 건축의 커다란 단점아닐까 생각되네요. 예전에 일본에서 8년쯤 살았는데 겨울에 난방때문에 고생했던 생각이 나네요!!!
바닥 난 방 온돌 시공을 다시 해야 할 듯..!
추위는적응이 안 되는게 사람임~!
일본집에서 살아본사람의 찐후기임
저 일본식 집을 한국에 짓으면 동상걸림 그냥 🤦 박물관으로 사용하시길
@@banaori33 '
집은 이쁜데 바닥난방은 시공따로 해야겠어요ㅜㅜ
dong ho shin 추운지방東北地方그리고.北海道처럼난방을잘하면.무지따뜻함.
적산가옥 책임 목수로 전면 해체보수 해 보았는데 너무 허접(기둥 굵기가 10cm×10cm)하고 너무 허술해 겨울엔 얼어죽기 딱 좋은 구조입니다.
아마도 일본 지형?(지진 )과 해양성기후에 습한 걸 감안 한 건축 구조가 아닐까요?
아뭏튼지
한국 지형과 기후에 전혀 맞지 않는 건축물입니다.
일본 전통가옥은 목재로지은 서양식 경량목구조 방식입니다.
다시말해 다른 목구조(한옥)보다 건축비용이 적게들고 실내개조,확장성,개조는 쉽지만
명칭이 말해주듯 그 건축구조를 살펴보면 간단한 뼈대에 경량식이나
난방,단열이 취약하고 구조강도를 볼때 집이 매우 약함.
서양식 경량목구조로 2층까지는 가능하나 3층이상은 버티기 힘든 구조....
쉽게말해 간이식 주택에 가까움.
비용이 엄청드는 한옥에는 비빌수도없는 목재료, 목구조의 건축방식임.
쉽게 간단하게 지어살려면 좋지만....
비용을 아끼지않고 집을 제대로 지어 살려고하는 사람들은 일본식 가옥에선 안살죠. 서민주택정도랄까...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전통한옥은 비용도 많이들며 공을 엄청들인......
개인주택이 아니라 여러친족과 관련자들이 함께살던 공동주택입니다.
그래서, 안채,사랑채,행랑채, 등등 여러채(집)으로 이루어진
사대부 양반귀족 가족,친지들이 살던 고급목조공동주택 입니다.
서민백성들이 살던곳은
지붕을 초가로 올린 초가집이 개인주택으로
양반귀족들의 고급목조기와 공동주택과 더불어 한옥을 이루고 살았지요.
근대로 들어와 사대부양반귀족들의 한옥기와집은 근대,현대에 맞게
담장이 없어지며 사각형모양의 가운데 아주작은 마당공간이있는 근대,현대 한옥으로 축소개량됩니다.
공동주택이 개인주택으로 바뀐것이고......초가집(목구조한옥)에서 기와집(양반귀족들의집)으로 현대로 오면서 바뀐것이죠.
겨울에 얼어죽을 가능성....
99% ....
화제예방을 위해서
방화사(모래) 또는 방화수(물)
담는통 입니다.
일본인들의 전통 가옥 형식을 그대로 옮겨둔것 같습니다.
말투가 특이하네요
겨울에 추울것 같군요 많이
일본은 워낙 습한 날씨때문에 목조구조에 다다미 방식인데 여름에는 그렇다치더라도 겨울에 넘 추워 한국인은 견딜 수 없는듯,,울나라엔 넘 안좋은 구조형태에여 소개해준 집도 일본정통식은 아니구 서양식접목 많이 변경된 형태네요 여튼 잘 봣습니다
습구조라 다다미 쓰는게 아니구 전쟁시에 응급 식량으로 다다미를 집에 쓰는 역사 입니다..고구마 줄기라...
@@LifestyleA703
전쟁시에 다다미가 응급식량?
무슨 도움이 되나요?
고구마 줄기?
@@채정연-s6g 네.고구마 줄기라 응급시에 식량이 됩니다
@@LifestyleA703
일본은 갈대가 많아서 지붕을 올릴 때도 갈대를 많이 쓰고, 다다미도 갈대로 한다고 들었는데요.
그리고
고구마 줄기는 말리는 질겨지긴해도 긴줄기는 원줄기라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또 다다미 두께또한 꽤 있는데 그게 가늠할까요?
고구마 줄기가 얼마나 많아야 할까요?
@@채정연-s6g 네..일본 역사에 나오는 것 입니다..고구마는 줄기식물이라 엄청나게 많이 나옵니다. 고구마밭 하나면 한집 다다미 충분합니다. 해서 오키나와 고구마가 유명합니다
어려서 적산가옥에서 살아봤는데. 춥다.
1960년대 말에 첫 직장에 얼본인 간부들이 거주하던 얼본식 주택들이 남아있어 상당기간 사용관리한 적이 있습니다. 얼본 집들은 주로 목조주택이라 화재대비로 옥외에 방화수 통이 꼭 있었습니다. 천정은 높아도 출입문의 높이는 규격으로 6자 1.8m입니다. 옛날에는 충분했었지만 지금 한국인의 키가 커져서 님도 머리를 구부려야 출입이 되는 것을 보니 금석지감이 느껴집니다. 거실에 있는 벽장 한쪽 모서리에는 신주(神柱)라고 극진하게 닦아대며 모시던 기둥이 있었습니다. 지금 소개하시는 주택은 완전 일식은 아니고 양식이 믹스된 형태로 보입니다. 정원의 나무는 전지하여 다듬고 손대는 것이 우리 한식의 크는대로 손을 덜 대는 식과는 대조되지요. 오랫만에 좋은 구경했네요. ^^
저도 어릴 때인 1960년대 서울 서촌의 일본집에 살았던 추억이 새롭습니다. 거실 다다미방 한쪽에 신주가 있었는데, 그 신주라는 단어를 잊어서 늘 궁금했는데, 지금 알게 되어 고맙네요. 오시레도 있었고. 미닫이 현관문 열고 들어서면 긴 복도가 있고 양 옆으로 거실방과 각 방들과 부엌이 있었고, 방마다 앞에는 툇마루가 있었네요. 정원도 좋았고. 그립네요.
촘촘한 창살의 미닫이 문들. 욕실, 소변기 공간, 대변기 공간이 다 따로 구분되었는데, 요즘에야 알고 보니 그게 바로 일본주택 화장실의 전통이라더군요.
첫 직장이 어떤 직장인지 궁금한데 알려주실 수 있나요? 그런 일에 관심이 있어서요
@@Bee-ssan 광산입니다. 국영기업이었지요. 직급 따라서 소장사택이 42평, 부소장급이 30평 남짓, 과장급 20평, 계장급 16평, 평사원이 12평 쯤, 노무반장이 9평, 일반 광부는 6평 정도로 방 하나 부엌 하나...
엄마가 일본에서 태어나셨는데 고향에 갔을때 어려서 저물탱크가 있다고 했는데 정말 있더라구요.
불이났을때 불을 끄려고 뮬탱크를 세멘트로 만들어 놨더라구요.
적산가옥 앞에 적산가옥의 유래와 그 당시의 역사를 간략히 세워놓으면 좋을거 같네요.
적산가옥유래입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 소유집이나 일본관공서 성격의 건물이 해방되자 일본인들이 돌아오겠다면서 몸만 빠져나간 건물입니다.
그렇지만 일본인들이 귀국하고 빈집이 되자 아무나 들어가서 살거나 빈집 상태에서 해방후 일본인 소유부동산은 국유화합니다.어쨋든 일본인 소유 건물에 들어가 살던 사람이나 다른 경로로 불하를 받은 사람들이 소유권등기를 나중에 하게 됩니다.
땅은 모두 국유화되었습니다.농지와 임야는 모두 국유화되었지만 건물 대지는 적산가옥 불하할 때 소유권 이전이 함께 됩니다.그래서 지금 적산가옥은 건물 대지 모두 개인소유권입니다.
건물은 이 영상의 건물처럼 불하되어 민간인 소유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물이 상당 수 있습니다.이 건물도 리모델링 전에는 개인소유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외국 집 마음대로 지을수 있네요. 미국에서는 외국 스타일 집 지을려고 신청을하면 안전 문제때문에 그러는지 어쩌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까다로워서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미국땅에선 한옥같은건 보고 죽자해도 없습니다.
이주택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집입니다.당시 면에서 큰 부자들만 이런 집 지었습니다.거의 100년전 또는 100년 이상된 집입니다.새집처럼 보이는 것은 관광용으로 대수리를 한 때문입니다.
미국 조지아주에 전북대에서 한옥 단지 조성할 거라고 합니다. 1채 우선 짓고 있다는데 2월쯤에 준공 예정이라고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차질이 있을 수 도 있겠네요.
저희. 아빠. 고향 이렇게. 영상 으로. 보니. 좋네요
돌아가신. 아빠가. 보고싶네요
4:44 저 어릴적 시골 동네에 저런 구조의 소방수 보관대가 있었어요. 화재시 불을 끄기 위한 시설이었는데 간혹 어린 아이가 빠져 죽는 사망사고도 생겨 나중엔 물을 다 빼놓더리고요.
와우~~여기 어딘지 알아요~~~영상으로 보니 좋네요
미적감각이 있네요
창틀도 그렇고 색상조화도 멋져요
어렸을때 살던 집이 일본식 집이었어요.
다디미집
부산 대신동에도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었다고 하더라구요.
지금은 허물고 2층 집이지만요
너무 문이많구 답답하네요. 심풀성이없서,지저분한것같아요. 그집에서 살고싶지안네요!
ㅎ 저는 부민동에 살았는데..옛법원근처에 일본식집이 많았지요..^^
맞아요 어릴적 대신동에 살았는데 친구몇몇이 일본식집이 있이라 숨바꼭질 하기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부산은 대부분이 일본식으로 상가주택도 지어냈죠.
대신동 저희 친정고모가 지금도 사십니다
부산 대신동 괴정 쌔리골 사하 신평
지명이 넘 그립네요
어렸을때 친구집이 일본집이라 숨바꼭질 하기 너무 좋았는데 한편으론 무섭기도. 왜냐면 숨겨진 공간이 너무 많아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느낌. 비 오는 날은 더 무서워요 😂
ㅣㅣ
맞아요 수납벽장이 곳곳에 많아서 한국처럼 옷장을 별도로 가지는 경우가 많지 않죠.... 뭔가 어두우면서 반질반질하게 나무결이 보이도록 윤이 나는 바닥이며 난간도..계단이 너무 가파른데다 워낙에나 꼼꼼하게 왁스질을 해 놔서 방심하면 미끄러지기 딱 알맞죠.
음흉한 민족이네요
ㅎㅎ
말씀하시는분 웃음 소리는 좋은데
너무 자주 듣다보니까
영상 끝나면 웃음소리만 남네요 8)
춥겠네요. 침실은 방음부스 건식온돌 설치하면 괜찮을 것 같네요.
겨울에 엄청 추워보임
워낙 지진이나 공격에 불날까 두려워서 저런 방화수통을 두군데는 뒀는데ᆢ
저런 복도구조를 좋아하는분들이 있구나 집적살다보다 어둡고 습해지는데 대청마루있고 넓은게 좋은 이유가 있지
내가 어릴적 우리가족이 세들어살던 주택의 주인집이 일본식주택 이였는데.... 겨울에 많이 추워서 집둘레 4면 전체에
샷시 설치해서 유리창으로 빙 둘러쌓았었죠. 찬바람 못들어오게..... .
겨울엔 닫아서 외풍 차단하고 여름엔 열어놓으면 바람이 잘통해 시원해서 괜찮았던 기억이 납니다.
영산포는 20년이 지나도 변함이없네…ㅋㅋㅋ 영상보니깐 옛추억들이 생각나네요 초중고 다 거기서 나왔는데 ㅋ
옛날 증조할아버지 집하고 완전 똑 같아요. 하지만 요즘 시각에서 보면 정말 구조가 않좋은 집인 것은 확실합니다.
"안 좋은~~"이면 쉽고 맞는데 왜
"않좋은~~" 이라고 어렵게 써가지고 틀리심?
뒷마당쪽에 네모시멘트시설은 우물물로 사용하는곳이었을듯하네요~ 쓰레기를 태우는 소각장 같기도하구요~ 옛한옥도 벽장(이불보관)이 항상있었는데, 본적 없으신가봐요. 원래, 나무욕조였던것을
바꾸어놓고사용한듯~
응급 방화수 통입니다.(목조건물인 관계로)
쓰래기통은 벌래 불러오고 악취가 나지요.
지브리 애니에 나오는 일본집 장면들을 액자로 만들어 걸어두고
카페로 변경하여 사용하면 정말 좋을 듯ㅎㅎ
의미 공연장도 참 터 활용이 좋습니다.
우리시골동네도일식집이있었는데~유리문이참많고~집에우물~목욕탕은꼭있더라고요~근대겨울에는넘춥다는것~^
일본집은 보일러 온돌이 없어서 너무 추워요
보기는 좋은데 겨울에 넘 추울거 같고 구조가 복잡하다고 해야되나. . 외관은 멋지긴하네요
군산도 실내 들어가는데요.. 확인하고 얘기합시다..
어릴때 자주 보던 집 스타일 이네요
요새는 저런집 거의 없지요
옛날에 일본 가옥 환상있었는데 보기엔 이쁜데 살기엔좀 불편할것같더라고요 ㅋㅋ
한 때 우리 땅에서 우리 것을 착취하여 큰 세도를 누렸던 흔적을 느낍니다. 나라를 잃었던 아픈 과거도 우리 역사의 일부이니 지우지 마시고 잘 보존하셔서 후세에 귀감이 되는
장소로 계속 남아있길 바랍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귀감 노노 교훈
역사공부나 제대로하고 떠들길~~
한국 한옥도 되게 추워요~~~~
저는 한옥만 봐도 가슴이 뜁니다. 그리고 적산가옥도 왠지 좋습니다~^^
이런 집 여름에는 에어컨 없어도 시원합니다.단열이 안되고 문이 많아 겨울에는 방에서 두꺼운 잠바 입고 있어야 합니다.아파트처럼 난방하려면 난방비만 최소 50만원 이상입니다.일본 사람들은 방에다 화로를 두고 불쬐며 살았습니다.
@@민법읽기 / 한국도 온돌 역사는깊지만,,, 온돌난방 문화는조선 후기에는 들어와야 보급 됩니다,,,
기와집+벽돌집+온돌난방이 널리 보급 되지 못했던 이유중 1가지가,,,
산림훼손이 너무 심해서 법으로 규제하다가,, 소빙하기때 경신기근으로 너무많이 굶어죽고 얼어죽은 뒤에야 온돌 문화가 정착 된겁니다
한국도 화로불 있잖아요? 그게 난방을 안하고 살때의 문화 입니다,,, 밤중에 밤,고구마 구워먹을려고 만든게 아니죠
1970년부터 6년간 적산가옥에 살았었네요
연탄아궁이부엌과 방이 온돌이었던 것 보면 중간에 개조를 했었던걸까요 아니면 한옥 절충식이었나?
다락 이층은 무지 넓었는데 마루바닥이 낡아서 삐걱거려 거의 사용을 안했던 기억이 나요
긴 복도와 격자무늬 창이 많아서 외관이 예쁜 집이였죠. 그 곳 유년기 추억의 집은 모두 헐리고 지금은 큰 도로와 빌딩이 들어섰더군요
적산가옥 일본인들이 귀국한 후 한국인에게 불하되어 개조되어 온돌 설치한 것입니다.원래 일본인들은 온돌 설치 안 하고 방안에 화로를 두고 살았습니다.화로 두어도 가스 중독 안되는 이유는 문틈이 많아 환기가 잘되어서 입니다.
네 아주멋있는 역사에옛 스런모습으로 좋은 건출물 입니다..!!!
집 은 역시 한옥 이 최고 입니다.
아이들 숨박곡질 놀이장소로 좋을듯 하고
1층 온돌,2층 다다미방 이면 어떠할지>...
각 나라 나름
어? 저희 외갓집도 나주인데 ㅎㅎ 일본인이 지었던 집이였어요 ㅎㅎㅎ 저 집은 리모델링 한거 같은데 ㅎㅎ 무튼 겨울에 살짝 추운거 맞아요,,
빗물을 모아서 화단에 뿌릴려고 만든 것 같아요
거기 거리가 원래 일본인들의 거리였습니다. 그 거리에서 장군의 아들이라는 영화도 촬영을 했답니다. 노인 할머니가 살고 계셨는데 나주시에 팔고 이사하셨습니다. 제가 그곳에 살 때만 하더라도 일본사람들이 와서 보고 가곤했답니다. 지금 보니까 그동안 많이 단장해놓았네요
하늘에서 비행기소리가 끊임없이 장난 아니네요. 소음공해로 이사 나간듯.
방어진의 일본인거주지 집과
비슷한집이군요.
물통은 맞는데 거것은 방화수를 담아두는것입니다.그당시 소화기는 없었으니 집집마다 방화수를 두고있었어요.
일본지주가옥을 정말 소상한 설명과 함께 멋진 영상으로 담아주셨네요.
잘 보고 갑니다.
이집 옆 조금만 걸어가면 영산포 문화관있고 그 근방이 전부 일본식 집이었지요. 그래서 예전에 장군의 아들 영화도 찍었지요. 죽전골목이라고 해서 한국인들은 죽과 전을 팔아 생계를 잇던 골목이 있습니다. 그몊 홍어거리.와 내륙 의 유일한 등대가 있지요
여긴 공포영화가 딱이네요 미로같은게.. 집은 환하지만..
한국의 시골 집은 한식이 좋죠!^^ 일본에서도 상류층집이네요~ 이런 집이 남아 있다니..ㅋ
물탱크를 단꼬라고 했는데 일본말인가본데 우리 어린때 동네에는 흔하게 있었지요
저 집은 보존가치가 충분히 있네요
한번가보고 싶은데 주소가 없네요 올려주심 좋겠네요
이런집은 개인소유인가요?
아니면 군소유인가요?
판매로 내놓으신건가요?
매물인가요?
일본집에 살아보면
겨울에 정말 정말
시원하다
일본 집을보니 어렸을때 나주역부근
연탄공장옆에 일본집에서 살았던 기억이 나는군요
엉청 큰정원과 엄청깊은 우물과 집이 작은 복도로 둘러 싸여 있던 생각이 납니다
도로 건너편에 세무서가 있었던 생각도 나고 나주 일본집이 지금도 남아있을까요?
지금도 남아있다면 가보고 싶은곳 추억의 집 입니다
부산영도 적산가옥(일본집)의 집에서 어릴적살았는데 새롭습니다(다다미방) 그추억에 젖어봅니다 50년전
지금은 60대중반인 저도 어릴때 부산 토성동의 일본식 가옥에 살았어요. 가운데 길게 복도식으로 된가옥..바닥은 짚으로된 다다미방..
서구쪽으로도 일본식 가옥 흔히 볼수 있었던것 같아요.
내고향?~좋긴하네요👍👍👍~👏👏👏ㅡ겨울은추어서~~
너무 재밌네요
일본엔. 도쿄 복판에도 그런집 많아요. 담이없죠 ? 저희동네도 저런집 아주 많아요. 한국식으로 뒤에.철문은 고친거네요. 일본은 기본 집 담을 나무나 조경으로 해놓는 곳이.많습니다.
당시 영산포는 배가 들어오는 번화한 도시였어요. 일본지주가 왜 시골에 집짓겠어요. 지역차별에 수도권과밀에 저출산으로 시골된거지
저도 어릴 적 적산가옥에서 살았던 기억 있어서 직접
찾아가서 보고 싶네요
콘텐츠는 좋은데 좀더 깊이 있는 내용
예를 들면 창살 무늬라든지 방 배치라든지 방의 용도 그 집의 역사 등 부탁드립니다
동의합니다. 전문성을 보강하면 더욱 좋을 것같습니다. 전문가를 섭외해서.... 아쉽습니다.
부수고 다시 지어야겠다..예쁜 한옥으로...
이상하게 저집에서는 살고싶지 않네요
맞아요
허물고싶네요
물탱크는..화재진압용.물탱크...목조건물이라서..
지금 우리집도 처음살땐 다디미방 여름엔좋은데 한국사람은 온들이라 다걷어냈죠
일본집 너무너무 추워요~~~~ ㅋㅋ
여름에 일본집에대해서 잘 모르고 나무집 계약했다가 겨울되서 얼어죽을뻔 했어요. ㅋㅋㅋㅋ
화장실 가면 얼어죽는.... ㅋㅋㅋ
방음 전혀 안됌.
실제로 일본에서 영상 10도에 집에서 동사한 사람 심심찮게 나오죠
일본집은 다다미가 항상 청소하기 힘들었어요
다다미에 벌레가 있어요
내고향 영산포... 반가운 영상이네요...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눈호강하고갑니다
즐건하루되세요 ☘ ☘ ☘
뭐니뭐니해도 한옥이 젤 아름답고 과학적이죠
외국인이 한옥에 푹빠져 지워서 살 정도죠
히료쓰가옥 정말 흔치않은데...장단점이 분명해서...멋지긴하네요
일제시대 세워진 집 인가요?
9:20 벽장이 일본식이 아닐듯합니다.
제가 살던집은 100년도 더 된 한옥에 살았었읍니다.
소싯적에 안방 아르목에 무언가 밟고 올라가서 어느 나무 함에 있던 족보를 본적도있었지요.
즉, 벽장은 우리나라 건물 구조중 하니입니다.
일본인이 아니면 정확한 정보를 전해주세요.
덧붙이면...
동내에 아주 부자가 살았답니다.
제가 살던집 길건나 아래는 큰 마눌.
경사가진 윗쪽은 세번재 마눌집
일본집에는 벽장 없습니다.
자기가 살겠다고 지은 집은 거주 기간이 최대 30년임..그후론 자식이 가지고 있다.손자뻘 에 가서는 매매가됨.애지중지 정성 쏟아도 결국 매물로 나오니 괜한정성..
시에서운영하는건데.매물로 나온건가요?.그냥.카페구경인거죠?^^재밌는집구조네요:)
잘 지었네요...부러울 정도 입니다...
일본 지주집이라면 알만하네 ~
남(우리나라 사람)의 피 눈물로 만들어진 집 굳이 감탄이 나오나요.
속 쓰리고 돌덩이를 안고 있는 기분이네요~
항상 좋은 느낌으로 힐링했는데 오늘 설명은 정말 별루네요.😤
@@김태균-p7p 있는걸 그대로 보고 내 느낌을 표현도 못합니까,,, 이런 방송을 보고 그런 맘을 가지는 님이 안타까울 따름 입니다,,그냥 님 생긱대로 쭉 그리 살면 됩니다..
@@김태균-p7p 한국교육이 얼마나 편향적 사상을 주입했는지
일본에 일자만 불러도 일베라며 쌩난리면서 북한김정일 찬양하는 소리
는 전혀 문제삼지 않는데
그게 정상인가 과거가 지금우리를 괴롭히냐
언제라도 쳐내려올 미래가 불안한나라에 살면서~
생각좀 하고살길~~
@@choibyeongwoog988
맞는 소리 ~~~
내 느낌 내 표현임 ~^^
딱 해 마시길 ~~^^
내 나라 구석 구석
시골집이며 순박하고도 무서움 많이 타는 젊은 청년들 오지탐험대 보며 쭉 이리 살겨~
@@시슬레-j7m
무슨 교육까지 들 먹이샴.
그 교육 안 받고 살았남??
북한은 집안싸움~
일본은 뼈 속까지 왠쑤라~~~
생각이라 ??
무슨 생각 친일생각☠~
🐶 ㅈ ㄹ
식당하면 좋겠네요, 일반 가정생활은 불편해보여요,튼튼히 잘 지엇다는 생각들어요.경치도 좋구요,
까페하고 있다네요.
@@골든레이디-d7d 아.
세멘 사각으로 된 용도는 쓰레기나 어떤것을 태웠던 기억이 나요 저도 일본집에 살았을 때 장작을 모으턴가 태운것을 모아 꽃밭에 거름을 주던 기억이 나네요
언제나 멋진 집들 잘 보고 갑니다. 시골에는 여러 종류의 집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네요. 부산 근교에도 있음 좋겠어요.
부산도 있습니다
초량인가? 약간 높은지대에
남성여고인가? 정문앞에 친구네집이
적산가옥 딱저랬어요 인상에 남은건
푸세식 화장실이 복도끝에 집안에 있어
신기했어요 어린시절 화장실은 좀 멀었죠
부산에도 옛날에는 일본식집 많았어요. 토서동 대신동등.. 지금은 오래되어 사라졌겠지만..
부산 수정동에 가면 일본식 주택을 시에서 매립해서 카페로 활용 하는곳이 있습니다
아들과 함께 여행삼아 가보고 어린시절의 추억과 정취를 많이 느끼고 왔습니다
참고!로 저는 60년생 입니다~^^*
물탱크 주방 안에도 저런식으로 되어있고 밖에도 수도 세면을 물탱크에요 다디미도 생각나고 일본집은 문이 많아요 4방면 다 문이에요. 옛적 저희집 같네요
물탱크보다 단무지만드는 콩크리트통 아닐지요
적산가옥이네요.
좋아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