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사진 잘 보았습니다. 저는 사진에 보이는 농장다리 근처의 동명동에서 1972년 가을 출생해 사진에 보이는 서석국민학교 다니고 충장로 금남로 전남대 조선대 지원동 산수동 지산동 법원 계림동 등의 거리를 걸으며 청년시절까지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 영상 사진에는 없지만 광주 사직공원 입구 (파출소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좌측 공터에 적어도 1979년(혹은 1980년)까지 조랑말 짐수레가 많이 모여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1978년에 광주시내(동구 동명동)에서 우리집 이사할 때 이삿짐으로 작은 트럭 1대, 조랑말 짐마차 2대가 동원됐고 저와 동생, 시골 외가에서 데려온 강아지(이름 :쫑, 당시 수캐이름=쫑, 암캐 이름=메리..이던 시절임), 부모님은 이삿짐 다 떠난 후 택시(포니1)를 타고 이사할 집(동구 금동)까지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 사직공원 입구 좌측 공터에 그 조랑말 짐수레가 모여있는걸 자주 봤기 때문에 적어도 1979 혹은 1980년까지 조랑말 짐수레가 광주시내에서 운송수단으로 존재 및 활용되었다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광주 사직공원에는 커다란 야외수영장도 있었고 동물원 입구의 거대한 비둘기집과 아메리칸 들소가 뿌리는 지독한 오줌, 늑대와 진돗개가 인상적이던 사직 동물원도 있었으며 아주 낡은 대관람차와 회전목마, 재래식 궁도장(할아버지들이 전통 활을 쏨), (신호대라는 새 가지를 뽑던, 뽑은 신호대는 가운데의 흰 줄기를 뽑으면 칼과 칼집처럼 분리됨. 신호대 뽑으면 잠시 시시한 칼🔪싸움 놀이함. ) 대나무와 (도토리 줍던) 도토리나무 숲, (낡아빠진 디즈니 동화책을 모조리 읽던, 입구의 비포장 부분 흙에 땅강아지와 쥐며느리가 유난히 많던)사직도서관, 공원 진입로에 늘어선 행상 (리어카의 커다란 둥근 유리통에서 오렌지색 쥬스가 솟구치던 쥬스장사, 해삼 한마리에 100원 받고 썰어서 초고추장과 함께 팔던 해삼장사, 삶은 고동과 번데기를 깔데기처럼 만 🎉 신문지에 담아 팔던 할머니들, 50원 받고 도시락통에 담긴 점괘카드를 십자새(인터넷에 찾아보니 십자매라 하네요)가 뽑도록 시키는 할아버지들)들이 생각납니다. 그들 대부분은 당시 내 부모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보였으므로 아마도 고인이 되셨을 것 같네요....😢😂 1980년 까지는 광주시내 동네마다 밥 구걸하는 거지, 불구자, 각설이도 살았고요. 천변 다리밑이나 야산에는 거적 깔고 움막지어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새벽에는 땡그랑 땡그랑 작은 종 울리며 지니가는 두부장사의 손수레(새마을운동 노래 틀며 지나가는 쓰레기차), 저녁에는 동네를 돌아다니며"뻐~~~언 데기"를 외치던 번데기 청년 행상, "찹살~~떠 억" 외치단 모찌 아저씨 소 천엽과 소간을 바구니에 넣어 머리에 이고 다니며 팔던 아주머니... 난 그때 유치원생이거나 국딩 저학년이었고 지금은 오십하나의 초로에 선 중년...기억 속에 스쳐가던 그 분들은 다들 지금 뭘 하고 사실런지.
0:17 이 로터리가 한국 왠만한 도시에 다 있어 서울에도 돌아가는 삼각지로터리 있었지? 내가 고딩 3년 매일 거기를 버스를 타고 지나갔는데 엊그제 생가나서 사진을 보니 엄청 멋있게 지엇었더라구 난 한번도 삼각지 로터리가 멋다는 생각안들었고 너무 낡고 약해 보인다는생각만 했는데 아마도 미국 서울 삼각지는 엄청 멋있게 지은 것 같았어. 미국이 우리 고향 ㅎㅎ 아, 로터리 이야기 한 이유는 이것이 오스만제국 즉 대한제국 도로 시스템의 특징 같다는 거지!
즐감했습니다..가곡 배경음악이 너무 좋았습니다
귀한 사진 잘 보았습니다.
저는 사진에 보이는 농장다리 근처의 동명동에서 1972년 가을 출생해 사진에 보이는 서석국민학교 다니고 충장로 금남로 전남대 조선대 지원동 산수동 지산동 법원 계림동 등의 거리를 걸으며 청년시절까지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 영상 사진에는 없지만
광주 사직공원 입구 (파출소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좌측 공터에 적어도 1979년(혹은 1980년)까지 조랑말 짐수레가 많이 모여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1978년에 광주시내(동구 동명동)에서 우리집 이사할 때 이삿짐으로 작은 트럭 1대, 조랑말 짐마차 2대가 동원됐고
저와 동생, 시골 외가에서 데려온 강아지(이름 :쫑, 당시 수캐이름=쫑, 암캐 이름=메리..이던 시절임), 부모님은 이삿짐 다 떠난 후 택시(포니1)를 타고 이사할 집(동구 금동)까지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 사직공원 입구 좌측 공터에 그 조랑말 짐수레가 모여있는걸 자주 봤기 때문에 적어도 1979 혹은 1980년까지 조랑말 짐수레가 광주시내에서 운송수단으로 존재 및 활용되었다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광주 사직공원에는 커다란 야외수영장도 있었고 동물원 입구의 거대한 비둘기집과 아메리칸 들소가 뿌리는 지독한 오줌, 늑대와 진돗개가 인상적이던 사직 동물원도 있었으며
아주 낡은 대관람차와 회전목마, 재래식 궁도장(할아버지들이 전통 활을 쏨), (신호대라는 새 가지를 뽑던, 뽑은 신호대는 가운데의 흰 줄기를 뽑으면 칼과 칼집처럼 분리됨. 신호대 뽑으면 잠시 시시한 칼🔪싸움 놀이함. ) 대나무와 (도토리 줍던) 도토리나무 숲, (낡아빠진 디즈니 동화책을 모조리 읽던, 입구의 비포장 부분 흙에 땅강아지와 쥐며느리가 유난히 많던)사직도서관, 공원 진입로에 늘어선 행상 (리어카의 커다란 둥근 유리통에서 오렌지색 쥬스가 솟구치던 쥬스장사, 해삼 한마리에 100원 받고 썰어서 초고추장과 함께 팔던 해삼장사, 삶은 고동과 번데기를 깔데기처럼 만 🎉 신문지에 담아 팔던 할머니들, 50원 받고 도시락통에 담긴 점괘카드를 십자새(인터넷에 찾아보니 십자매라 하네요)가 뽑도록 시키는 할아버지들)들이 생각납니다.
그들 대부분은 당시 내 부모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보였으므로 아마도 고인이 되셨을 것 같네요....😢😂
1980년 까지는 광주시내 동네마다 밥 구걸하는 거지, 불구자, 각설이도 살았고요. 천변 다리밑이나 야산에는 거적 깔고 움막지어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새벽에는 땡그랑 땡그랑 작은 종 울리며 지니가는 두부장사의 손수레(새마을운동 노래 틀며 지나가는 쓰레기차), 저녁에는 동네를 돌아다니며"뻐~~~언 데기"를 외치던 번데기 청년 행상, "찹살~~떠 억" 외치단 모찌 아저씨 소 천엽과 소간을 바구니에 넣어 머리에 이고 다니며 팔던 아주머니...
난 그때 유치원생이거나 국딩 저학년이었고 지금은 오십하나의 초로에 선 중년...기억 속에 스쳐가던 그 분들은 다들 지금 뭘 하고 사실런지.
추억이 새록새록
0:17 이 로터리가 한국 왠만한 도시에 다 있어
서울에도 돌아가는 삼각지로터리 있었지? 내가 고딩 3년 매일 거기를 버스를 타고 지나갔는데 엊그제 생가나서 사진을 보니 엄청 멋있게 지엇었더라구
난 한번도 삼각지 로터리가 멋다는 생각안들었고 너무 낡고 약해 보인다는생각만 했는데 아마도 미국 서울 삼각지는 엄청 멋있게 지은 것 같았어. 미국이 우리 고향 ㅎㅎ
아, 로터리 이야기 한 이유는 이것이 오스만제국 즉 대한제국 도로 시스템의 특징 같다는 거지!
감사합니다
달마 혈리표 본 극장 모래 숨어들어가 본 극장..추억은 방울방울..
사진이 년도별로 순차적으로 나오면 좋았을듯...너무 뒤죽박죽나오니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