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와 혼례 때만 맛볼 수 있었던 국수! 밀이 귀하던 옛날 잔치국수는 대표적 양반음식이었다. [한국인의밥상 KBS 20130107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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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іковано 26 лис 2024
- ■ 밥보다 국시다 - 대구 사람들의 국수 사랑
국수기행의 첫 여정은 국수문화가 가장 화려하게 꽃핀 제면문화의 본고장, 경상도로 떠났다..중 1인당 건면 소비량이 전국 최고로 손꼽히는 곳이 대구! 대구 최고의 명물로 손꼽히는 서문시장 국수거리에는 300여개의 국수가게들이 점심시간이면 문전성시를 이룬다.
밀가루 반죽을 수천 수백번 치대로 밀고 썰어 정성으로 만드는 대구식 칼국수인 누른국수가 그 주인공! 어머니가 국수를 밀던 날이면 온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아이들은 국시꼬랭이를 구워먹느라 온종일 아궁이 앞을 떠나지 못했다.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따끈한 칼국수 한 그릇에 이 겨울 얼어 붙은 몸과 마음에 온기가 돈다.
■ 왜 대구 사람들은 국수를 좋아할까?
일제강점기 전국 물산이 생산유통되는 거점도시였던 대구는 빠르게 서양문물이 유입되었던 도시였다. 제분, 제면기계가 가장 도입됐던 곳 역시 대구였다.
1933년 최초의 국수공장인 ‘풍국면’과 삼성의 모태가 된 삼성상회의 주력상품이었던 ‘별표국수’등 여러 국수공장들이 대구지역에 자리를 잡았고, 80년대 말까지 전국 국수생산량의 절반이상을 차지해온 국수의 본고장이다.당시만해도 동네마다 크고 작은 국수공장들 하나 쯤은 있었다. 어느새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대구에서도 이제 몇 개 남지 않은 옛 국수공장. 어머니에 이어 2대째 국수공장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이기수씨. 하루종일 국수기계를 돌리며 자식 넷을 키워낸 어머니에게 국수는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존재이고, 아들에겐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추억이다.
■ 국수는 양반음식이었다? - 길고 오래된 국수 이야기
국수의 대명사는 잔치국수. 가장 빠르고 쉽게 그리고 저렴하게 먹을수 있는 대표적인 서민음식이다. 그런데, 잔치국수는 사실 선택받은 사람만 먹을수 있었던 귀한 양반음식이었다!
밀이 귀하던 옛날, 국수는 제사와 혼례 등 큰일을 치를때라야 맛볼수 있었던 귀한 음식. 밀가루 대신 고기나 곡물등 다양한 방법으로 면을 만들기도 했다.
양반문화가 뿌리깊게 자리잡은 안동의 한 종가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내림국수인 건진국수가 있다. 맑게 끓인 양지머리 육수와 가늘게 썰어 끓인후 찬물에 헹구어낸 쫄깃한 면발, 그리고 음양의 조화가 담긴 오방색 고명까지, 귀한 손님을 위해 차려내던 종부의 정성어린 국수 한그릇! 그속에 담긴 오래된 국수의 역사를 살펴본다.
■ 경상도 국시, 근현대사의 아픔을 품다
국수가 서민음식이자, 가난한 사람들의 귀한 한끼가 될수 있었던건 1950년 한국전쟁 이후부터.
전쟁의 소용돌이는 숱한 사람들의 삶을 뿌리채 흔들어 놓았고, 폐허속에서 맨몸으로 전쟁보다 혹독한 가난과 싸워야 했던 사람들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되어준 것은 바로 국수였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마지막 보루였던 부산.
전쟁후 수많은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도때기 시장이라 불렸던 국제시장에는 당시 피난민문화가 만들어낸 부산의 별미, 당면국수가 있다. 국제시장옆 깡통시장이라 불렸던 부평시장에는 북에 고향을 두고 피난내려와 자리를 잡은 신의섭씨 3남매가 60년째 시장 한귀퉁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고 있다.
어린시절 고향에서 즐겨 먹던 메밀국수의 맛을 잊지 못하는 3남매는 고향이 그리울때면 찾는 음식이 있다. 바로 밀면! 밀가루로 만든 경상도식 냉면인 밀면은 전쟁이 만들어낸 또하나의 별미국수다.
전쟁과 가난, 지우고 싶은 기억들을 끌어 안은채 온힘을 다해 살아온 사람들..
서로의 따뜻한 온기를 나누며 함께 먹는 국수 한 그릇에는 우리의 지난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국인의 밥상 (목요일 저녁 7시 40분 KBS1)
“국수기행 1부 - 국시 한 그릇 묵고 가이소” (2013년 1월 7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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