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전쟁과 흥선대원군 경복궁 중건 사이 의외의 관계 [Lost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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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22 вер 2024
  • 아편전쟁과 흥선대원군 경복궁 중건 사이 의외의 관계를 다룬 내용입니다.
    여러분이 베푸신 구독과 좋아요는 해외유출문화재 환수운동으로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흥선대원군 #경복궁 #아편전쟁

КОМЕНТАРІ • 17

  • @마스터마구니-m1q
    @마스터마구니-m1q 4 роки тому +4

    아편전쟁과 문명충돌, 그리고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새롭게 역사가 다가오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세계에 대한 정보 수집이 청나라에만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 @수집쟁이드라하카
    @수집쟁이드라하카 4 місяці тому

    다양한 정보, 깊은 분석, 그리고 그를 통해 당시 시대를 알수 있는
    매우 흥미로우며 재미있는,
    특히나 영상에 나오는 다양한 유물, 유적, 그림등등이
    너무 유익한 채널이라 봅니다
    솔직히 다음 영상은 없을까................
    하면서 목 빠지게 기다리긴 하는데
    혹 건강에 이상이 생긴것이나 본업 때문에 짬이 나지 아노는 거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습니다
    어디 다치거나 큰 문제가 있는게 아닐테니까요
    그러니 생존보고라도 어떻게 좀...................

  • @음사랑-p7o
    @음사랑-p7o 4 роки тому +1

    답답한 조선! 나 아주 어렸을적 제사때나 명절때 집안 어른들(할배들 ) 뒷방 모여앉아 하는 얘기 가만 들어보면 조상 산소는 어디에 어찌 써야되며 이장은 또 언제 어찌해야 되며... 이런 얘기만 주구장창 했었음. 한번도 미래에 대한 자식교육이나 집안의 어떤 문제 들 의논하는걸 듣고 본적이 없음. 난 학교도 다니기 전이였는데 그런게 굉장히 경멸스러웠음. 그 어릴때부터 어른들이 너무 무능력하게 보이고 믿고 따를게 없다고 생각했음. 진짜 조선의 축소판이였지. 멀 지향하는지 삶의 질을 점점더 나쁘게만 만드는 어른들이였음. 조선시대남자들 다 그런식이니까 망할수 밖에.

  • @ydw0425
    @ydw0425 4 роки тому +1

    정말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음악하는 사람이지만 영상에 음악(브금)이 없으니까 더 좋네요. 어울리지 않는 배경음악이 삽입되는 것보다 훨씬 깔끔하고 좋은 것 같아요 ㅎ

  • @777-b1f
    @777-b1f 4 роки тому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소누-w8p
    @소누-w8p 4 роки тому +2

    솔직히 조선이 1840년에 현실인식을 했던들 무엇이 변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 드네요.
    조선은 팽창성이 너무 약해 이미 당대 일본의 한 번 정도도 못 되는 재정이었다는데 사실은 해당 정보를 접하고도 외면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지 않았을까요.
    많은 한국사 관련한 사람들이 압도적인 자본축적의 차이에 주목하기 보다는 이때 잘 대비했더라면 하는 마음으로 약간은 안일한 귀감으로 저 시기를 보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잘 준비했던들 일본에게 나라가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을까도 의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전면적인 전쟁도 없었던 패망이었죠.
    오히려 결과론에 불과할디 모르지만 성리학을 고집하던 저 폐쇄성이 지금의 불완전하게나마 독립적인 국민국가 의식을 함양하는 데에 더 기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 @jino78
      @jino78 4 роки тому +1

      1840년대부터 해외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면 크게 달라졌겠죠

  • @정재성-c1l
    @정재성-c1l 3 роки тому

    그리고 분명 아편전쟁은 쇄국정책에 적잖은 영향을 끼칩니다. 마약팔아먹고 상대국가를 맨붕에 빠지게 하는데 제정신 박혔다면 누가 그런 것들과 거래를 하려고 할까요?
    서구중심근대화가 무조건 선이라는 시각부터 고쳐야 합니다.

  • @소누-w8p
    @소누-w8p 4 роки тому +1

    조선의 노비 제도를 객관적으로 조명하는 영상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정재성-c1l
    @정재성-c1l 4 роки тому

    일본역시 조선이나 중국처럼 유교적 관료통치체제가 철저하게 정비되어 있었다면 쉽사리 개화하기는 곤란했슬것입니다.

  • @정재성-c1l
    @정재성-c1l 3 роки тому

    일본의 근대화를 에도시대 상업번성으로 연결시키는 발상에 대해서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1. 17세기 이후 네덜란드와 교역을 했고 서구로부터 각종 과학등학문의 전래에 대해서 당시 서구가 아직 문명적으로 동양을 앞서갔다라고 볼수 있는지?
    2. 서양문물이 전래되었다라고는 하지만 임진왜란시 일본 군사무기분야관련해서 조총을 제외하고 대항해시대에 발달해가던 함선기술을 보유했나? 대포중심 포병전력이 발달했나?
    서양에서 전래된 무기라는 불랑기 홍이포를 보유했나? 이런 무기기반이 제대로 준비가 안됬기에 결국 전쟁후기로 가면서 조선군에 밀리게 된것입니다.
    3. 에도시대 동경의 인구가 100만을 육박했고 지역 경제가 어마어마했다라고 하지만 당시 경제발달이 전 일본국민 전반의 생활상을 모두 대변하는것인가?
    대도시의 조닌계층을 가지고 다수의 일반 다이묘들의 지배하에 하층농민들의 생활상까지 그러했다라고 단정짓는것 자체가 엄청난 오류입니다.
    4.에도시대 경제적 번성을 인정한다손치더라도 겐로쿠시대를 지나면서 경기침체가 이어집니다. 이런상태에서 에도시대 상업번성을 근대화에 연결시키려고 할 경우 본격적인 근대화시기에 당장에 서구와 산업경쟁력을 보유할수 있었슬까요?
    5. 일본이 대외적으로 깨여있었다면 왜 1854년 미국에 의해서 강제개항을 당해야 하는지? 그 전에 알아서 자발적으로 서구국가와 근대적 개항 교류를 시작했서야 합니다.

  • @정재성-c1l
    @정재성-c1l 3 роки тому

    17세기에 설령 조선이 서구와 직접교류를 했다고 한들 조선에 무슨 이익이 생길까요? 그리고 당시 서양과 교류의 양적인 측면을 따진다면 일본보다 청나라가 월등히 더 많습니다. 하지만 청나라가 서양과 교류해서 어떤 경제적으로 큰 영향이 있었는지? 결국 조선과 일본은 각자 처한 환경이 다르기에 서양국가와의 교류에 대한 영향력이 동일할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 @정재성-c1l
    @정재성-c1l 3 роки тому

    일본 근대화성공을 운운하지만 만일 일본이 아편무역을 당했다면 어찌되었슬까요? 여러가지 각도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할 사회적 토대를 에도시대부터 쌓아왔다라고 하는데 우선 근대화라는 것이 그저 상공업 산업분야만을 가지고 가능한것인지부터가 엄청난 어폐입니다.
    산업혁명과 더불어 근대적 정치개혁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에도시대에 무슨 근대적 정치개혁이 이루어졌나요? 시민의식성장이 이루어졌나요?
    차라리 시민의식성장은 조선이 일본보다 더 진보적인 수준이었습니다. 19세기 홍경래의 난부터 시작해서 삼정의 문란까지 이런 현상을 왕조말기적 현상으로만 바라보지말고 봉건체제에 대한 민중의 저항의식으로 바라본다면 되려 19세기 민중의식수준은 일본보다 조선이 훨씬 선진적인수준입니다.

  • @냐냐냐냐-u6n
    @냐냐냐냐-u6n 4 роки тому

    6:36 해태와 관악산 화기는 말그대로 썰입니다. 그것도 근거가 희박한 썰입니다. 해태는 원래 광화문 앞에 있지 않았습니다. 광화문에서 4,50미터쯤 떨어진, 육조거리의 사헌부 앞에 있었습니다. 해태는 사헌부를 상징하는 동물입니다.(법과 정의를 지키는 동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