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책임 자유란 무엇인가? 철학적 사변을 논하자는게 아니라, 현재 나자신의 상황을 알아보자는 말이다. 즉, 지금 여기에서의 나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인식하는 바탕 위에서 자유의 본질에 접근해보자는 것이다. 내가 이 하찮은 글을 늘어 놓고 있는 현재가 지금이고, 우리은하권 태양계 지구성 아세아주 대한민국 경상북도 안동시가 여기에 해당한다. 나는 62년생이고, 남성이고, 기혼에 자식을 슬하에 둔데다 고령의 노모가 생존해 있고, 삶의 과정은 평범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용렬하다고 해야만 진실에 근접할 정도로 비천한 존재다. 이게 객관적 실체에 충실한 나에 대한 진술이다. 바로 이, 특정된 나라는 존재가 자유를 이야기해보겠다. 먼저 나는 자유란 지극히 관념적이고도 동태적 용어의 의미를 스스로 말미암음이라고 정의(定義)한다. 철학이나 정치학 또는 국어학 수준의 학술적 토론이나 논리전개를 하자는게 아니라, 전술한 나라는 특정한 실존적 한 인간이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몸부림으로서의 자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학문적 접근이나 비판은 사양한다. 자유란 스스로 말미암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개 국민으로서의 모든 의무를 이행해 온 나에게 자유는 있는가? 스스로 말미암는다는게 뭔가?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할게 전혀 없다. 가장 기본적이고 따라서 상식적인 것을 상정해보자. 우리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 아침에 일어나면 먹고 씻고 무언가 공부나 일을 하고 자식을 걱정하고 영화관이나 시장 또는 공원을 가고 또는 부모님이나 친구에게 안부를 전하고 음악을 듣거나 자전거를 타다가 밤이면 가족들과 함께 잠에 든다. 여기에 내가 성인이 되기 이전의 시간들과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아야하는 전제와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일개 국민으로서 법률준수라는 사회적 계약의 이행의무를 제외하면 사실상 나의 행동이나 생각을 제약하거나 구속하는 그 무엇도 있어선 안된다. 내가 어떤 사유를 하고, 어떤 행위를 하던지간에 그 어떠한 방식으로든 나의 자유의지가 아닌 것을 강요 받는다면, 나는 분명히 자유의 상태가 아닌게 확실하다. 한 마디로 자유를 자유스럽지 몾하게 하는 모든 것은 강제이고 폭력인 것이다. 그것이 비록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법률의 형태를 띠고 나타날지라도 위헌의 소지가 있거나,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징벌적 과세라던가,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규제나 정책일지라도 그것은 이미 폭력인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지금 여기 대한민국은 특정지역과 출신배경을 공유하는 사이비민족주의권력에 의해 폭력이 버젓이 합법의 탈을 쓰고, 너무도 당당하게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비자유의 전체주의국가임이 명백하다. 내가 이러한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는 당위성의 근거는 우리 집 앞을 흘러가는 낙동강변의 모래알 숫자 보다 많다. 그 실예를 열거해보자.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고, 없는 죄도 조작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멀쩡한 기간시설이나 산업설비도 너무도 희박한 사고가능성만으로 폐기하거나, 효율적 대안도 없이 정지 시키거나 철회해, 그 발생된 피해를 국민에게 부담토록 강요했다. 경제의 작동원리를 무시하고, 도덕적경제정책을 무지막지하게 밀어부쳐, 그 부작용을 극대화 시켜, 온 국민들에게 고통을 강요했다. 감당할 수 없는 갖가지 과도한 세금을 갈취하여, 자기편들 끼리 갈라서 먹었다. 자기편이 아닌 모든 국민들은 적폐라는 낙인을 찍고, 모멸과 조롱으로 박해를 그치지 않았다. 국가의 재정을 마구 풀어서 자기편의 숫자를 늘리고, 또 그 유지를 위하여 더더욱 세금을 늘리는 무한반복 가렴주구의 학정이 지속했다. 국가경영에 대한 외교 및 안보에 대한 비전, 즉, 국가대전략도 없이 환상외교와 굴종안보는 우리의 국가나 기업의 비용을 증가시켜 경쟁력을 하락으로 유도하여, 결국은 산업의 공동화를 이룩하였다. 당연히 실업자는 증가하고, 특히 청년들의 실업은 결혼기피와 출산을 기피하게 조장하여, 민족의 멸종을 촉진하는 지경에 도달했다. 여기에 무엇을 더 열거하랴! 국가의 존망이 풍전등화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의회나 언론을 가장한 선동꾼 및 법조계, 문화계 등 사회전반에 깊이 뿌리를 내린 국가파괴세력들이 온갖 나팔수를 동원해 자화자찬으로 날을 새고, 순진한 국민들을 세뇌하고, 또한 이에 속지 않는 사람들은 시위나 학문적비판을 가장한 무시무시한 해결사행동대원들을 투입하여 탄압 및 제거하는 공포통치를 계속하고 있다. 그 뿐이랴? 이토록 자유는 자유롭지 몾한지가 이미 오래건만, 이젠 훨씬 더 고성능에 고사양인 풀옵션 한정판 세습독재자를 숭상하며 국가전복을 기도하고 있다. 이에 나는 감히 천명한다. 이제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고. 여기는 21세기의 낙동강전선이라고. 스텐드 오어 다이! 이것은 6. 25전쟁 중, 낙동강전선 최후의 보루에서 미국의 제8군 사령관 워커중장이 토해낸 결사방어의 결의에 찬 사자후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그 책임 조차도 나의 자유로운 영혼이 선택한 것일 땐 두렵지 않다. 얼마 후엔 결전의 날이다. 나는 자유를 선택하련다. 여기는 낙동강이다! 스탠드 오어 다이! 涯黎
정말 좋은 방송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
❤
미국은 무기의 최첨단교체기에 이르러 새로운 체제로 나가게 되고 중국은 2000년대초의 기술도 완성하지 못한 상태가 되는군요.
미국은 중국에게 따라와보라고 군비경쟁을 촉발한다면 중국은 좌절하거나 무리한 경쟁에 뛰어들겠지요. 미국은 상황을 보면서 중국을 요리하겠군요.
귀중한 말씀 고맙습니다 늘사랑합니다
선생님 존경합니다
건강하시고 좋은방송 오래오래 해주세요~
🇰🇷🇺🇲🇰🇷🇺🇲🇰🇷🇺🇲🇮🇱🇰🇷🇺🇲🇮🇱🙏🙏🙏
항상 응원 합니다.
열권상층 15,000km??이상 체공을 하면
당근 맞출 수도 없는 B-21 무습군요 ^^
컥 그런. 말씀 한 적 없는데요..그런 이야기 나와요?
B-2가 18000미터를 비행을 하죠.
자유의 책임
자유란 무엇인가? 철학적 사변을 논하자는게 아니라, 현재 나자신의 상황을 알아보자는 말이다. 즉, 지금 여기에서의 나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인식하는 바탕 위에서 자유의 본질에 접근해보자는 것이다.
내가 이 하찮은 글을 늘어 놓고 있는 현재가 지금이고, 우리은하권 태양계 지구성 아세아주 대한민국 경상북도 안동시가 여기에 해당한다. 나는 62년생이고, 남성이고, 기혼에 자식을 슬하에 둔데다 고령의 노모가 생존해 있고, 삶의 과정은 평범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용렬하다고 해야만 진실에 근접할 정도로 비천한 존재다. 이게 객관적 실체에 충실한 나에 대한 진술이다.
바로 이, 특정된 나라는 존재가 자유를 이야기해보겠다.
먼저 나는 자유란 지극히 관념적이고도 동태적 용어의 의미를 스스로 말미암음이라고 정의(定義)한다. 철학이나 정치학 또는 국어학 수준의 학술적 토론이나 논리전개를 하자는게 아니라, 전술한 나라는 특정한 실존적 한 인간이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몸부림으로서의 자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학문적 접근이나 비판은 사양한다.
자유란 스스로 말미암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개 국민으로서의 모든 의무를 이행해 온 나에게 자유는 있는가?
스스로 말미암는다는게 뭔가?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할게 전혀 없다. 가장 기본적이고 따라서 상식적인 것을 상정해보자.
우리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
아침에 일어나면 먹고 씻고 무언가 공부나 일을 하고 자식을 걱정하고 영화관이나 시장 또는 공원을 가고 또는 부모님이나 친구에게 안부를 전하고 음악을 듣거나 자전거를 타다가 밤이면 가족들과 함께 잠에 든다. 여기에 내가 성인이 되기 이전의 시간들과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아야하는 전제와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일개 국민으로서 법률준수라는 사회적 계약의 이행의무를 제외하면 사실상 나의 행동이나 생각을 제약하거나 구속하는 그 무엇도 있어선 안된다.
내가 어떤 사유를 하고, 어떤 행위를 하던지간에 그 어떠한 방식으로든 나의 자유의지가 아닌 것을 강요 받는다면, 나는 분명히 자유의 상태가 아닌게 확실하다.
한 마디로 자유를 자유스럽지 몾하게 하는 모든 것은 강제이고 폭력인 것이다.
그것이 비록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법률의 형태를 띠고 나타날지라도 위헌의 소지가 있거나,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징벌적 과세라던가,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규제나 정책일지라도 그것은 이미 폭력인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지금 여기 대한민국은 특정지역과 출신배경을 공유하는 사이비민족주의권력에 의해 폭력이 버젓이 합법의 탈을 쓰고, 너무도 당당하게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비자유의 전체주의국가임이 명백하다.
내가 이러한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는 당위성의 근거는 우리 집 앞을 흘러가는 낙동강변의 모래알 숫자 보다 많다.
그 실예를 열거해보자.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고, 없는 죄도 조작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멀쩡한 기간시설이나 산업설비도 너무도 희박한 사고가능성만으로 폐기하거나, 효율적 대안도 없이 정지 시키거나 철회해, 그 발생된 피해를 국민에게 부담토록 강요했다.
경제의 작동원리를 무시하고, 도덕적경제정책을 무지막지하게 밀어부쳐, 그 부작용을 극대화 시켜, 온 국민들에게 고통을 강요했다.
감당할 수 없는 갖가지 과도한 세금을 갈취하여, 자기편들 끼리 갈라서 먹었다.
자기편이 아닌 모든 국민들은 적폐라는 낙인을 찍고, 모멸과 조롱으로 박해를 그치지 않았다.
국가의 재정을 마구 풀어서 자기편의 숫자를 늘리고, 또 그 유지를 위하여 더더욱 세금을 늘리는 무한반복 가렴주구의 학정이 지속했다.
국가경영에 대한 외교 및 안보에 대한 비전, 즉, 국가대전략도 없이 환상외교와 굴종안보는 우리의 국가나 기업의 비용을 증가시켜 경쟁력을 하락으로 유도하여, 결국은 산업의 공동화를 이룩하였다.
당연히 실업자는 증가하고, 특히 청년들의 실업은 결혼기피와 출산을 기피하게 조장하여, 민족의 멸종을 촉진하는 지경에 도달했다.
여기에 무엇을 더 열거하랴!
국가의 존망이 풍전등화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의회나 언론을 가장한 선동꾼 및 법조계, 문화계 등 사회전반에 깊이 뿌리를 내린 국가파괴세력들이 온갖 나팔수를 동원해 자화자찬으로 날을 새고, 순진한 국민들을 세뇌하고, 또한 이에 속지 않는 사람들은 시위나 학문적비판을 가장한 무시무시한 해결사행동대원들을 투입하여 탄압 및 제거하는 공포통치를 계속하고 있다.
그 뿐이랴?
이토록 자유는 자유롭지 몾한지가 이미 오래건만, 이젠 훨씬 더 고성능에 고사양인 풀옵션 한정판 세습독재자를 숭상하며 국가전복을 기도하고 있다.
이에 나는 감히 천명한다.
이제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고.
여기는 21세기의 낙동강전선이라고.
스텐드 오어 다이!
이것은 6. 25전쟁 중, 낙동강전선 최후의 보루에서 미국의 제8군 사령관 워커중장이 토해낸 결사방어의 결의에 찬 사자후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그 책임 조차도 나의 자유로운 영혼이 선택한 것일 땐 두렵지 않다.
얼마 후엔 결전의 날이다.
나는 자유를 선택하련다.
여기는 낙동강이다!
스탠드 오어 다이!
涯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