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 진실] 10. 황룡국(燕)이 된 신라(1) ; 신라는 연나라의 도피처(최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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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27 жов 2024

КОМЕНТАРІ • 303

  • @큰산-f9f
    @큰산-f9f 3 роки тому +37

    지금 까지 강단사학자들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도 제대로 안 보고 연구도 안했다는 것이 진짜 한심하구나
    정부 차원에서 정리하기를 바란다

  • @uiinkim6030
    @uiinkim6030 4 роки тому +19

    진짜 지지 안할 수 없는 사학자 시네요. 지지합니다. 말씀하신 내용이 가설이지만우리나라 사학자 중에 이런 분 보기 드문 듯.

  • @류병균
    @류병균 Рік тому +13

    알만한 사람들이 고대사를 말하면서 자꾸 중국, 중국 하는데, 중국은 20세기에 생겨 난 나라입니다. 그 시대에는 중국이라는 국가는 없었습니다.

    • @Lee-rx3jn
      @Lee-rx3jn 2 місяці тому

      그러면 한국은 있었나요 중국은 = 북연 북위 수당 송제양진 전부를 통털어 지칭하는 거고 한국사하면 고구려 백제 신라 통칭하는 거지요 명칭의 포괄적 접근

    • @careinfo956
      @careinfo956 2 місяці тому

      한족과 선비 조선족이 있었을뿐

    • @sajongsong5507
      @sajongsong5507 2 місяці тому

      한국이나 중국 전부다 100년도안된국가입니다. 다만조상의얼을받았으니 그뿌리전쟁입니다 끝까지싸워봅시다 그러면결론은언젠가 납니다.

  • @라크메-z2i
    @라크메-z2i 4 роки тому +17

    스펙타클하고 멋지네요! 한반도에 참 막강한 세력이 뿌리를 내렸네요. 우리 조상님들 참 자랑스럽습니다.
    이리떼라...왠지 멋진 표현입니다...
    절대 약한민족이 아니라서 기쁩니다.👏👏👏👏👏👏👏👏
    박,석,김이 다 이민족(선비족)인가요?
    박씨,석씨의 기원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세요.

    • @강대봉-e9d
      @강대봉-e9d 3 роки тому +3

      네안다르탈인 유전자도 1~4% 섞여있다고 합니다^^
      지구상에 '이민족'이란 없지 않을까요? ^^
      가끔 뉴스에, 친형제끼리도 부모 장례식장에서 부의금 갈라치기를 놓고 칼부림 부리듯, 역사를 이민족, 우리 민족 나누는 게 좀 거시기하지 않을까요?^^

  • @두두리둠둠
    @두두리둠둠 4 роки тому +24

    이리떼, 흑룡, 황룡 등의 은유적 표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분석하신 점에 대하여 찬사를 보냅니다.

  • @물개작두
    @물개작두 3 роки тому +7

    앞뒤가 딱 딱 들어 맞네요. 신기해하며 강의 듣고 있습니다.

  • @thesanctuary225
    @thesanctuary225 4 роки тому +21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원래 신라의 정통왕가인 경주김씨 왕족은 불교를 숭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천손민족사상"이 있었기 때문에 천제를 지내고 하늘을 숭상하였죠.
    법흥왕 때부터 불교를 받아들여 석가모니 부처를 신앙하기 시작했는데 확실히 경주김씨의 종교관은 아니었습니다.
    가야김씨도 마찬가지죠.
    경주김씨와 가야김씨는 형제지간이니까 둘 다 천손사상이 있습니다.
    불교가 아닌 고대의 "신교"사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 @juluart2
      @juluart2 Рік тому

      그렇게 이해 하면 안되고. 종교가고대국가일수록 신권이 왕권보다 강하거나 동등하다고 볼수 있는데. 불교를 전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동안 기득권을 가진 신권세력을 제압하고 왕권을 강화했다고 보셔야 합니다.

    • @thesanctuary225
      @thesanctuary225 Рік тому

      @@juluart2 음... 국사 선생님과 똑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 @juluart2
      @juluart2 Рік тому

      @@thesanctuary225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군주가 국교를 바꿀수 있었습니다. 유럽엔 중세까지도 그러하였죠. 황제가 종교까지 컨트롤할수 있는 권위까지 가지려고 하였고요. 그옛날 고대시대 지식도 부족하고 경험도 부족한 사람들에게 신은 절대적이었을거고. 왕도 그힘에 편승하려 했을겁니다. 하지만 기간이 오래되면 그신권을 가진 세력들은 기득권화되고 오히려 왕권에 위협이 되었을겁니다. 그래서 이미 힘이 있는 왕이 새로운 종교를 가져오면서 그세력을 숙청했다고 봐야죠. 어떤 종교를 믿던 민족이 이동해서 10-20년만에 백성의 저항없이 종교를 바꾼다는건 현재도 불가능한일입니다.

    • @vanillaflavur7126
      @vanillaflavur7126 Рік тому

      일리 있어 보입니다. 신라에서는 유독 불교 공인이 순탄치 않아서 이차돈이 순교도 하고 그랬죠... 고구려, 백제에 불교 들어갈 땐 그렇지 않았던 거 같은데

    • @olivetree7366
      @olivetree7366 5 місяців тому

      아마 조로아스터교이었을가능성

  • @안관혁-q4y
    @안관혁-q4y 4 роки тому +23

    이 당시 일본은 제철 기술도 없었던 지역입니다.
    백제는 근초고왕의 단계를 지난 시기의 국가였고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도 백제와 상당한 전쟁을 하던 수준이었는데..
    모용씨의 세력이 일부 이동했다고 하여 이렇게 짧은 기간에 국가의 판도 및 국제적 역학관계까지 변화시켰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습니다.
    또한 고구려가 자신들에게 위험이 되고 신라와 백제까지도 연합시킬 수 있는 모용 세력을 그대로 방치한다는 것도 선뜻 이해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삼국간의 내용을 삼국사기의 은유적 내용을 분석하여 설명하신 부분이 공부하는데 참고가 많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marklee3985
      @marklee3985 4 роки тому +3

      안관혁 폭 넓은 지식 ㅇㅇ

    • @PrettyT-rex
      @PrettyT-rex 3 роки тому +3

      맞음ㅋㅋㅋㅋ삼국이 치열하게 싸웠던 5~7세기에 뜬금없이 외부세력이 유입되어 지배세력이 바뀔 수가있나?
      그랬다면 문헌이나 유물이 안남을 수가 없음.

    • @김재진-g1g
      @김재진-g1g Рік тому

      @@PrettyT-rex 중국 역사서에는 내물왕의 성을 모씨라 하였다
      법흥왕도 모씨라 하였고,
      백제는 근개루왕부터 모씨라 봐야 한다
      근초고왕도 쿠데타로 이전 왕족을 죽이고 왕이 되엇다
      근,,, 이라 붙이는 것은 이전 왕과 혈연관게가 없어서
      수백년전의 왕의 자손이라고 뻥칠때 사용한다

    • @griffithbalt9632
      @griffithbalt9632 Рік тому

      가야계가 많이 넘어갔음
      제철기술이 가장 뛰어났던 가야계가 넘어가서 중심세력이 됨
      신라도 가야를 복속시키고 급성장하게 되고

    • @vanillaflavur7126
      @vanillaflavur7126 Рік тому +2

      북연에도 고구려 유민이 흘러 들어 갔다가 어떤 유력 가문의 양자가 된다든가 해서, 이후 자신이 속해 있던 세력의 정변 등으로 왕이 된 사례가 있습니다.
      북연에서도 고구려인이 왕이 될 수 있었다면 선비족도 백제나 신라에서 왕이 될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더욱이 고구려와 선비 사이에는 말도 통했다고 하는데

  • @쥬얼리-x4y
    @쥬얼리-x4y Рік тому +1

    고맙습니다 .......... !!!! ^^*

  • @김용덕-d1k
    @김용덕-d1k Рік тому +5

    연나라는 반도신라가 아닌 대륙신라인들이 세운 나라라고 봐야 맞는것이죠

  • @garion3344
    @garion3344 3 роки тому +12

    이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니 우리역사의 진실과 마주한 기분이네요 어찌보면 불편한 역사일 수 잇으나 진실을 외면할 수 없겠네요
    앞으로도 더 많은 역사 사실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임장택-k2d
    @임장택-k2d 2 роки тому +8

    와~~ 역사퍼즐 맞추기! 초기 신라 역사가 급변하는 이유가 너무 이상하였는데 이제 알게 되었네요. 대단하십니다.

  • @CHUNHOJUN
    @CHUNHOJUN Рік тому +8

    결국 강의를 듣고나서 보니 만주,요동,요서,내몽고,북경,산동반도까지 전부 회복해야할 고토네요.

    • @slee-01
      @slee-01 Рік тому

      고토회복이란 말을 하지 마세요.

    • @MrSmash-g8y
      @MrSmash-g8y 5 місяців тому

      점령하면 일본 중국 대만 러시아가 가만히 있을까? 자기 나라쪽으로 진격하는데

    • @MrSmash-g8y
      @MrSmash-g8y 5 місяців тому

      그 때도 사람들이 지금의 한민족이라 생각?

  • @enola215
    @enola215 3 роки тому +19

    역사의 맥을 잡으려는 노력에 응원합니다 ~♥

  • @im991135
    @im991135 3 роки тому +9

    선비족 흉노족은 우리민족을 구성하는 대표 종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민족의 dna가 고아시아계 북방계 남방계가 합쳐진 결과임을 생각한다면 선비족도 우리 민족을 구성하는 한 부류로 판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 @im991135
      @im991135 3 роки тому +1

      그런데 왜 북부여계 모씨라고 하시나요? 북연세력이 북부여계인가요?

  • @michaels3520
    @michaels3520 2 роки тому +2

    저도 20세무렵에
    이런저런 휘황찬란한 별명들이 좀 있었는데,
    그 중에 라는 별명도 있었습니다.
    그냥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지어 낸 별명인줄 알고 있었는데,
    어쩌면 옛날의 유래를 아는 사람들이
    붙여 준 별명일 수 있었다는 생각이
    지금에야 드는군요.
    제비가 한자로
    이런 글자죠.. ㅎㅎ

  • @xoxcqt
    @xoxcqt 3 роки тому +4

    많은 것을 알게되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 @독기-e9p
    @독기-e9p 3 роки тому +30

    근데 저 당시 중국이라는 말을 썼을까요? 연나라가 중국인건가요? 그냥 연나라 아닐까요? 지금의 중국의 자국의 역사로 만든것 뿐이지. 지금의 중국하고는 다른것 아닌지 ?

    • @Kkkkkkk-ej2zo
      @Kkkkkkk-ej2zo 3 роки тому +12

      중국 연나라라는 말은 중국의 입장이지 그냥 연나라. 그리고 중국식 호칭 왕 이라는 말도옳지 않음 중원식 호칭이라고 해야

    • @박한웅-x8w
      @박한웅-x8w Рік тому +7

      대륙 신라를 염두에 두셨은면

    • @계림군파경주김씨수경
      @계림군파경주김씨수경 Рік тому

      어떻게 역사를 그렇게 간단하게. 왜곡했을지. ㅡㅡㅡ모든역사를 사실데로. 전파해야지요ㅡㅡ

    • @marudi701
      @marudi701 6 місяців тому +2

      중국은 우리가 붙인 명칭 입니다. 우리가 다스렸던 땅 중에서 가운데 위치한 땅 아닐까요? 이상 개인적 생각.

    • @이상모-n9l
      @이상모-n9l 5 місяців тому +1

      ​@@marudi701모택동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줄여서중국이라고부름
      중국이전엔
      진나라에서딴
      지나라부른게
      차이나이다

  • @JUDYJJANG
    @JUDYJJANG 3 роки тому +18

    10:11 10:54 북연이 신라로 넘어왔다는 말씀이
    이덕일 선생님이 말씀하신 내용 중에, 진성여왕이 최치원을 통해 당나라에 국서 보낸 내용에 "우리 나라는 옛날 고죽국 땅입니다"
    고죽국은 하북성일대라고 말씀하시는데, 두분 말씀이 딱 떨어지네요.
    ua-cam.com/video/pblTMPF7l3o/v-deo.html

  • @예언자-d5t
    @예언자-d5t Рік тому +4

    신라 김씨가 스스로 흉노의 후예라고 했는데, 우리나라 Y-dna 하플로 분포를 보면 확실히 김씨 중에 흉노의 피가 상당한 수준으로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Y-dna 에는 C 타입이 평균 15% 정도 되는데, 유독 김씨 에서는 25%나 된다! 이것은 신라 김씨가 흉노의 후예라는 명백한 증거라고 본다!
    흉노의 본거지가 몽골 지방으로 몽골의 주요 하플로가 C 타입이다!

  • @임진영-m3o
    @임진영-m3o 5 місяців тому +1

    강력한 추천 정성스럽게 드립니다.

  • @김용덕-d1k
    @김용덕-d1k Рік тому +2

    이리떼를 불길한 징조라하는것은 아니라봅니다.
    이리는 우리 선조의 토템이었으니까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이리와는 큰차이를 갖는다는것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 @dri13829
    @dri13829 4 роки тому +7

    근데 마지막의 두가지 기사인 책봉명에 대한 기사와 수서의 기사로 따지면 이후에 백제의 무령왕, 성왕, 무왕, 의자왕으로 이어지는 시기의 백제와 왜의 관계와는 모순이 된다고 봅니다.
    만약 수서의 내용대로 왜를 큰나라로 여겼다면 어째서 백제나 신라에서 이후에 선진기술을 가진 기술자들이 넘어오는 게 아니라 열도로 넘어가서 기술을 전파 했으며 각종 학문을 전수해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동아시아의 역사를 보면 문물의 전수는 큰나라라고 자인 하는 나라에서의 하사품으로서의 전수나 소국들이 자신들의 종주국으로 여기는 나라나 큰나라라고 여기는 나라에 요청하는 경우가 자주 보이는데 이러한 관계로 보면 백제와 신라가 왜를 큰나라로 섬겼다는 말 자체가 맞지가 않다고 봅니다.
    또한, 수서가 쓰여진 시기가 당 태종이라는 것으로 보아 당나라의 지배계층 또한 선비족 계통의 출신이라는 점에서 과거 선비족이 남하했던 지역 중 새롭게 중앙정부를 연 왜를 띄워주는 것으로 신라와 백제를 고구려의 영향력이 아닌 본인들의 영향력 아래 두는 것으로 동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사전작업이라고 생각됩니다.

  • @베드로-b2z
    @베드로-b2z 2 роки тому +4

    부여 가야계가 열도에 건너간 시기는 1세기 부터 기마를 앞세워 열도를 평정해 갔다.
    히미코 여왕은 김수로 왕의 딸로 마한의 일부였고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의 각축장이였던 열도를 평정 하였고 가야계가 정권을 잡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일본 최대의 닌토쿠 왕릉을 만들 었으며 가야의 유물이 왕릉 복원 공사 시 대량 출토가 되었다.
    당시는 신정 일치 국가 였으며 차츰 왕권과 신권으로 분활되고 왕권이 강해져 신권의 반발로 열도가 혼란해 졌다.
    이에 가야계 왕권 세력은 동족인 백제와 연맹하여 신권 세력들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 했다.
    차츰 백제계가 왕위를 이어가는 기간이 많아 졌고 가야계는 국정을 맏게 되었으며 모노노베 가문을 위시한 신권계는 신사를 전국에 만들어 명맥을 이어 가게 되었다.
    현 일왕가는 부여 가야 백제 왕족의 후예이다.

  • @주진수-c1y
    @주진수-c1y 2 місяці тому

    편협한 생각도
    역사적 팩트도
    아무도 알수없는 오래된 고대사이지만
    전 이선생님의 추론에 많은 진실이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한국의 고대사를 다 정의할수있겠습니까
    다양한 의견에 격려하고
    다수가 집단 지성으로 진실을 찾아가겠죠
    용기있게 힘든 내용 정리하시는 이선생님께 꾸벅 인사한번 드립니다

  • @배준호-f2g
    @배준호-f2g 4 роки тому +26

    선비.여진.예.맥족.발해.숙신.전부 우리와 같은 형제국 입니다.

    • @PrettyT-rex
      @PrettyT-rex 3 роки тому

      형제의 기준이 뭐야ㅋㅋㅋㅋ한족도 월족도 우리 형제임

    • @배준호-f2g
      @배준호-f2g 3 роки тому +2

      @@PrettyT-rex 형제에기준,같은말.같은풍속.등등

    • @PrettyT-rex
      @PrettyT-rex 3 роки тому +1

      @@배준호-f2g 그럼 예맥 빼곤 다 형제가 아닌데

    • @Werner4voss
      @Werner4voss 3 роки тому

      @@PrettyT-rex 환빠한텐 설득이 안됨ㅋㅋ

    • @Werner4voss
      @Werner4voss 3 роки тому

      @@ykpark5289 걍 중국 동쪽에 있는 오랑캐들을 편의상 동이라 부른거지 '동이족'이란 민족은 없음

  • @heesuryu9983
    @heesuryu9983 Місяць тому +2

    선생님 말씀이 맞을 려면
    신라는 중국 대륙에 있어야
    설명이 가능할거 같은데요. .

  • @dongyulee2095
    @dongyulee2095 3 роки тому +3

    감사합니다.
    새로운 것을 알았습니다.

  • @marudi701
    @marudi701 6 місяців тому +1

    수천년 나라를 잃지 않은것은 바로 중국을 지배 했던 민족의 땅이라서 감히 멸할 수 없었다는 증거라고 생각 됩니다.

  • @k천사-i4n
    @k천사-i4n 23 дні тому +1

    최치원은
    한반도에 없었다

  • @arcyoon
    @arcyoon 3 роки тому +6

    열도 구주는 삼국 분국들이 있었던 지역으로 여러 유적으로도 검증된 내용같습니다.

  • @협곡왕김캐리
    @협곡왕김캐리 Рік тому +1

    책보고님 유튜브에서 왜=일본이 아닌 현중국남부지역세력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이기훈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3 роки тому +1

    중국 기록에 보면, 진나라 사람들이 도망와서, 마한왕이 동쪽의 땅을 내어 주며 살게 했다는데, 그래서 진한 이라고 부르고.
    그런데 왕은 대대로 마한 사람이 하고, 신라사람은 왕을 못했다고 써있는데. 일본서기에 희한한 기록이 369년에 마한을 정벌하고 백제에 마한을 넘겨줬다고 했고. 더욱 이상한건 내물왕 (356-402) 때부터, 마립간 이라는 칭호를 쓰기 시작했다는 점.
    다시말해 마립간 = 마한. 마한이 멸망당하면서, 신라는 졸지에 독립국이 되었고, 그래서 상국의 왕이 쓰던 칭호를 스스로 칭할수 있게 되었다는 소리.

  • @치우칸-r9k
    @치우칸-r9k 3 роки тому +5

    구글 위키피아에 나와 있네요 법흥왕의 성이 모씨가 맞네요

  • @김재진-g1g
    @김재진-g1g Рік тому +1

    이리떼는
    장수왕이 풍양을 죽인 후에 ,
    백제와 신라로 도망친
    북연 투항세력, 즉 모용씨 선비족들이다.
    432년 북연 장수왕에 투항, 450년 시림에 이리떼 451년 한강에 흑룡

  • @김만주로
    @김만주로 3 роки тому +2

    북부여가 멸망하때 고구려를비롯하여 여러세력으로 분열되니다 우리가교과서에서 배운 현요하이동 동부여 비류 옥저낙랑백제신라등 하지만요하이서는 나오지않은데 비리국 양맥국 황룡국 구나국 개마국 자몽국등 마이나옴니다 황룡국은 연나라전에 있는나라고 고구려에흡수됨 김성겸의 고구리창세기에 상세히나옴

  • @hamlee280
    @hamlee280 4 роки тому +10

    강의 감사 합니다. 다른 각도로 우리 역사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 갖게되었습니다, 강의중 컴푸터 크릭이 너무 의미없이많아 (이부분은이미 highlight된부분) 보는사람들이불편을 느낌니다.

  • @syjeong4627
    @syjeong4627 3 роки тому +3

    설총은 페르시아, 이란 쪽이라고도 하는 얘기도 있는데... 참말이지 고대사는 관계가 ^^아리송 하네요...

  • @착하게살자-d9j
    @착하게살자-d9j Рік тому +1

    옛날 사람인데 최치원 선생님이라 부르니 정말 어색합니다.

    • @marudi701
      @marudi701 6 місяців тому

      뭐라 부를까요?

  • @jorbajung6109
    @jorbajung6109 4 роки тому +9

    좋은 강의 잘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장에드
    @장에드 3 роки тому +3

    최치원의 계원필경을 보면 아부로 점철된 글이 답니다. 그가 왜 훌륭하다는지 모르겠네요.

  •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3 роки тому +5

    진시황의 노역을 피해 진나라 사람들이 신라로 도망왔다는 더 이른 기록을 최치원이 다시 말한것 아닌가?
    진나라 라고 해봐야, 결론적으로 만리장성 공사장에서 도망온 것이니, 만리장성에 가장 가까운 연나라를 말한것이고.
    훗날 선비족이 점령한 연나라를 말한것 같지는 않은데.

    • @amazigh1980
      @amazigh1980 6 місяців тому

      당시에는 만리장성이 없었습니다. 만리장성은 명나라때 완공되었습니다.

  • @김준모-x6y
    @김준모-x6y 4 роки тому +4

    만주원류고의 신라는
    계림에 있었다고 하면
    그리 먼거리도 아니지요

  • @MrLonagain
    @MrLonagain 4 роки тому +10

    북연 100만명이 고구려와 한반도로 유입된다는 얘기에 잠이 확 깹니다.
    그 정도면 세계사적 이동 아닌가요?
    100만명에 대한 추정의 근거가 약하면 그 이후의 모든 내용이 소설이 되어 버립니다.

    • @안관혁-q4y
      @안관혁-q4y 4 роки тому +2

      풍발의 아들, 북연 풍홍이 장수왕에게 투항했다는 기사가 있는데.. 100만명 기록은 확인이 안됩니다.

    • @dri13829
      @dri13829 4 роки тому +1

      100만이면 그 당시에 국가 하나의 모든 인원이 이동한 수준인데 그런 이동에 대한 실질적 근거가 없을 수가 없죠.
      그보다 훨씬 적은 수가 이동한 유대인의 바빌론 유수나 기타 집시의 이동 및 기마 민족들의 이동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남아 있는데 그보다 훨씬 많은 백만의 이동 근거가 없다는 건 말이 안되죠....

  • @jungkyume
    @jungkyume 4 роки тому +2

    잘 보고갑니다. 5:05 이리때면은 몽골계일 수 있겠네요. 아니면 진짜 늑대난동이거나요 ㅋ

  • @damdoekk-px9ep
    @damdoekk-px9ep 5 місяців тому

    상하이 ,강소성 소주에 모용 지명 , 안휘성 합비에 모용성 모용산장 등이 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신라가 강성할 때 그 지역을 관할 했고 , 그 지역들에서 , 모용세력이 자신의 흔적을 신라인으로서 살면서 남긴 것으로 보면 편합니다.

  • @바다-n3y
    @바다-n3y 3 роки тому +3

    우리 위대한 대한민국 전 삼국시대에서 신라+고구려+백제등 나라가 있기에 저도 갑자기 전세계에서 유명한 신라호텔을 생각이 나서 특별히 제가 제일 존경하는 레데 이부진사장님을 생각나서 이번 코로나에서도 계속해서 승리의 길로 나아가기를 기원합니다!

  • @hitaroad5131
    @hitaroad5131 3 роки тому +2

    임신한 문주왕의 부인을 왜로 데리고 간것은 인질이 아니라 난을 피하고 또 원래 친정이 있는 왜국땅으로 해산겸 해서 곤지를 따라간것으로 보입니다.여자는 해산을 앞두고는 거의 친정으로 간다고 생각합니다만.

  • @임장택-k2d
    @임장택-k2d 2 роки тому

    그렇다면... 백제가 근초고왕? 이후 중국(북위?, 연나라?) 지역에서 전쟁을 치른 것은 시기적으로 4~5세기경인걸로 아는데 시기적으로 안 맞지만 혹시 모용씨들의 고토회복 전쟁과는 관련이 없을까요?

  • @배준호-f2g
    @배준호-f2g 4 роки тому +7

    의사도.통했구요
    서희장군이 싸우지않코 우리땅을 차지한것도.의사가통해서 입니다.지금같아도.중국이링.말로 대화됩니까

  • @서은열-b8v
    @서은열-b8v Рік тому +1

    마립간은 '마리(머리/우두머리)칸'이고, 함안 아라가야 의 주산인 마리산 은 머리산(우두머리)산 아닐까요??

  • @안녕하세요-j1t4z
    @안녕하세요-j1t4z 4 роки тому +7

    올려주신 훌륭한 강의를 잘 보고 있습니다.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에 대해서도 강의를 부탁드립니다.

    • @이기훈-i8v
      @이기훈-i8v 4 роки тому +1

      네, 이전에 만들었던 영상
      '백제의 중국정벌 배경 ua-cam.com/video/FPNoZZi_ODs/v-deo.html 보시면 어느 정도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특히 3분14초 부분에 설명돼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j1t4z
      @안녕하세요-j1t4z 4 роки тому

      감사합니다 영상을 잘 보았습니다

  • @skyroomkh
    @skyroomkh 3 роки тому +5

    삼국사기는 고려시대 사대사상이 많이 가입되었습니다 신라의 고대사는 삼국사기보다 부도지가 더 맞다고 보여집니다

  • @arcyoon
    @arcyoon 3 роки тому +3

    대륙에 있었을 북위와 싸워 휩쓸었다는 백제 모대왕도 그럼 북연 계통으로 봐야 하나요?

    • @문창훈-w5e
      @문창훈-w5e 2 місяці тому +1

      동성왕은 북연대리전을 북위한
      한것입니다
      동성왕이 확실히
      황룡국 북연세력맞네요!

  • @김문주-h6q
    @김문주-h6q 3 роки тому +1

    도피처가 맞죠 고구려 투항 했다가 장수왕에게 안되니 신라 백제로 피신하고 세력 키워 일본 왜 나라까지 정복 하는거죠

  • @ysj2755
    @ysj2755 4 роки тому +14

    중원에 있었었다는 (연나라)이유로 한반도 주변의 국가들보다 (고구려)문화적으로 앞섰다고 확신하는 것은 오만과 편견과 사대주의 사고 아닌가요 ? 중국의 황하문명이 동아시아 문명의 시원이라 했지만 그 주장 이전부터 한국의 민족사학계(재야사학자 포함)에서는 끊임없이 우리 한민족의 삼성인 환인 환웅 단군등 일반년의 역사가 존재한 한민족의 역사가 만주지역에 존재했다라고 했지만 일본식민사학계 와 자존감이 1도 없이 이를 찌질하게 추종하세력인 한국 주류강단 식민사학계 및 중공의 사학계는 미친사람들 취급했죠😤 하지만 요하문명이 세상밖으로 나온 뒤 중공, 일본식민사학계 입장이 어땠죠 또 한국 식민사학계는 어땠고요 😝 말 안해도 아시죠 사학자들로써 정치적 하수인이 되여 양심에 구멍난 그들의 거짓으로 일관된 역사 왜곡 논리들을😡 바로 동아시아의 시원 문명이 중원의 황하문명이 아닌 그들 한족들이 야만인 취급한 즉 , 한민족의 선대민족들이며 우리 민족 사료에 엄연히 존재하는(삼성기 상,하 ) 환인시기, 환웅배달시기 ,단군시기에 이룩한 문명(신석기시기 ~청동기시기 흥륭하,홍산,우하량 문화 등)인 것이죠 그러므로 동아시아 문화 전파의 시원은 당연히 중국 중원 황하문명의 선대문명이며 동북아시아 동이의 선대민족 문명인 요하문명이죠 즉 , 상나라의 발전된 문화 역시도 이미 발전된 시원문화인 요하 문명권의 문화를 중원으로 가지고 내려가 새월이 흐르며 발전된 모습이며 시기적으로 이 상나라를 개창한 대상들은 요하문명권의 꽃인 홍산문화의 주인인 환웅배달국과 그 뒤를 이은 단군조선에서 정치적 또는 부족적 갈등 등 여러 이해관계로 인해 집권세력과의 대결구도로 인한 파생된 다른 분파의 부족들이 단군조선 영지를 떠나 서쪽으로 가며 한 일파가 난하(유수,요수)의 하류 서쪽지역에 남아 고죽국을 이루고 나머지 일파는 황하지역으로 내려가 상나라를 창건한 것이겠죠, 그러므로 일방적으로 중원의 우수한 문화가 동이쪽으로 들어왔다고 단정하고 동이지역을 발전시켰다는 더나가 동이의 국가들을 고대국가로 발전시켰다는 등의 견해는 왜곡된 고정관념의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용부 선비족인 전연 후연 북연등 연나라의 문화가 중원에서 왔다하여 고구려보다 우수한 문화를 가졌다 ?)아직 사료에 근거한 확실한 단군조선의 존재를 입증 할 유적이나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하여 한국의 사료에 나오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는 사학자들이 더 없었으면 합니다 요하문명 자체가 그 좋은 예이며 아직도 그 실체를 다 벋겨 내지 못했고 발굴할 유적과 그 분포 지역도 더 무수히 많아 시간과 돈의 싸움이라는 애기가 나오죠, 아마도 단군조선의 실체가 없다 시대적 배경에 의한 꾸며낸 신화다 등 섣부른 판다을 내리는 자들은 어쩌면 단군조선의 실체가 드러나면 절대로 안되는 이유가 있는 한국내 속물 사학자들의 이해타산의 밥그릇 지키기 개념의 인식이겠죠 주류 강단 사학자들이라면 단 한올의 가능성의 여지만 있어도 연구하려는 자세가 필요한게 현 한국사의 목마른 현실인데 껍대기만 사학과 교수고 연구는 하지않고 과거의 자료들로만 짜집기하고 선대의 연구 논문들을 재탕해서 끼리끼리 학위 주고 받고 수십년동안 획기적인 논문하나 나오지않는 한국의 주류강단사학 연구비만 퉁치는 이런 쓰레기 식민사학 추종 집단들이 한국의 주류사학계라니 황당합니다

    • @문창훈-w5e
      @문창훈-w5e 2 місяці тому

      그 인간들이 그렇게
      나오는 이유 말못할
      이유는 뭔가 궁금함니다
      그들도 양심의 가책은 받고 있을텐데
      오래사는것 보면
      철면피가 따로 없을듯합니다

  • @검마르-i7o
    @검마르-i7o 3 роки тому +5

    자료원문과같이 해석해주심 어떨까요
    객관적인 표현이 필요한듯

  • @삐까쮸-z9x
    @삐까쮸-z9x 4 роки тому +2

    👍🏻

  • @olivetree7366
    @olivetree7366 5 місяців тому +1

    신,지나라는 말이 진나라에서 왔다는게 말이 안됨 진은 겨우 50년남짓이고 신라는 천년. 상식적으로 어느쪽이 신? 지나도 금(gold/김)의 한문발음 진에서 왔다고 사려됨

  • @강경석-c1u
    @강경석-c1u 2 місяці тому

    고구려 연나라 등 시기에는 중국이라는 명칭이 고구려일지도 모르죠 북위가 얼마나 존재했죠 얼마안있다 망한나라를 중국(중심국) 이라 말하기 어려울듯요

  • @박경옥-f9s
    @박경옥-f9s 4 роки тому +1

    제가경주김씨입니다
    울진에서 비가발견되였습니다 신라왕선조가 모씨로나오는데
    저는경주김씨가 연나라후손이라고 생각 합니다
    연나라모씨들이 신라로 이주했다면 경주김씨선조는 모씨가맞다고
    생가하는되요
    연나라모용씨 신라김씨관계 아시는분 설명좀 해주세요 부탁드립입니다.

  • @dmamirine7781
    @dmamirine7781 2 роки тому +1

    왜 그리 서로 싸우고 했던게 이해가 살짝 되네요

  • @heywoo12
    @heywoo12 3 роки тому +10

    동성왕이 모대왕이라고 불려서 모씨, 나아가 모용씨라면 동생인 무령왕은 사마왕이라 불렸으니 사씨인가요?

  • @임장택-k2d
    @임장택-k2d 2 роки тому

    역사적 해석이 전혀 다르지만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네요. 이 부분도 퍼즐이 맞춰졌네요.

  • @jac256
    @jac256 2 роки тому +2

    이리때는? 흉노. 돌궐족 건국신화고.
    로마건국자들의 건국신화

  • @younghwanson5226
    @younghwanson5226 10 місяців тому

    신라 인은 고조선사람 병동할수없고 마한이 12국을 마한사람 즉 아들에 막긴것이다 중국사서 타인은 왕이 될수없다고했다 그중에 사라국이 모량리 대부 요 구혜마 촌장 503년 동시 건설 법흫왕 이불교승인 했다고 삼국사기 말했음니다 이 선생님 참고바라며 감사합니다

  • @thesanctuary225
    @thesanctuary225 4 роки тому +11

    자꾸 흉노와 선비족을 동일시 하시는데...
    혈연적으로 가까운가요?
    흉노족이 강성할 때 선비족은 숨소리도 크게 못내고 흥안령 산속에 숨어 살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리고 참 미스테리가... 진시황이 흉노계 사람이라면 왜 북적(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만리장성을 쌓았을까요?
    한나라때 흉노족이 강성하였지만 한나라를 멸하고 중원을 차지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만리장성 때문이라고 보는데...

    • @baksangsu1
      @baksangsu1 4 роки тому +6

      원래 가까운 놈들끼리 싸움니다 생판모르는 사람잡고 묻지마 폭행은 잘 안 일어나죠

    • @물개작두
      @물개작두 4 роки тому +1

      예전 강의를 보시면 은나라가 망하면서 동쪽 오랑케에 해당하는 무리들이 기자를 따라서 한반도를 지나 일본까지 밀려 넘어갔다고 합니다. 다 섞인거죠.

    •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3 роки тому +1

      중국 왕조들이 여러 다른 유목민들을 같은 이름으로 뭉뚱그려 불렀던게 문제죠.
      진시황은 상나라때 서쪽으로 쫒겨난 하나라의 유민들 이라는 설이 있고, 그래서 서융 이란 거죠.
      흉노족은 고대 그리스 기록에 나오는 스키타이족이 동진 하면서, 주변의 여러 민족들과 이합집산 해서
      중국 북쪽에 나타났을땐, 완전 인종과 언어가 다른 민족이 되었죠. 그러니 진시황과 흉노족은 완전 다른 민족.
      또, 선비족은 고조선의 옛 땅에서 홀연히 나타난 민족으로, 이름 자체가 조선의 비왕의 민족이란 소리고.
      문제는 동북쪽 부족들만 원래 선비족인데, 아무 상관없는 서북쪽 유목민들 까지 죄다 선비족으로 뭉뚱그려 불러서, 후세 학자들이 헤깔릴수 밖에 없는거죠.

    • @griffithbalt9632
      @griffithbalt9632 Рік тому

      흉노한테 개박살나서 요동으로 건너가서 세력을 모은게 선비족인데
      같은 족속은 100프로 아니고
      선비족은 기록에 동호로 기록되는데 (동이족과 같은말임)
      흉노를 동이족이라고 하지 않음
      민족 자체가 다름

  • @썬샤인77
    @썬샤인77 4 роки тому +1

    그럼.. 북연을 보고 사람들이 부르는 통일무렵 요동에서 경주로 내려온 대륙신라라 하는건가요??

  • @arcyoon
    @arcyoon 3 роки тому +3

    한반도에서 전투력이 있었던 왜가 열도로 가서 말도 마구도 없이 퇴보했다는 것은 앞뒤가...한반도 열도선조를 왜로 부르지 말던가 열도의 왜 명칭을 한참 후대로 밀던가 해야 하지 않나요?...

  • @viewtheviewers4804
    @viewtheviewers4804 Рік тому

    책신청 했습니다. 지평이 180도 바뀔 것 같습니다

  • @SeonghuanCynn
    @SeonghuanCynn 5 місяців тому

    새로운 시각이군요😂

  • @행복가치
    @행복가치 4 роки тому +17

    이리때가 왜?
    신라와 가야에 왜가 있었다?
    강단사학자였군...

    • @kdsbsb
      @kdsbsb 3 роки тому +3

      강단사학자였군요...이 체널 주인.

    • @옥동자-f3l
      @옥동자-f3l 3 роки тому +3

      이리는 늑대를 말하는 것으로
      몽골의 시조가 늑대라고합니다.
      몽골흉노선비족은 늑대를 숭배합니다.
      이리라는 것은 선비족의 침략을 말합니다

  • @볼리베어펫마법사
    @볼리베어펫마법사 4 роки тому +1

    재밌내여

  • @모루한55대
    @모루한55대 Рік тому

    북연 세력이 신라의 쿠르간 스타일 묘 (적석목관묘) 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선비세력의 영역에서는 이런 무덤과 유물이 나온적 없다. 아마도 그전에 (4세기중반) 선비족의 고구려 침략시 선비세력에 의해 끌려온 서방 쿠르간 유목세력의 일파가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동으로 피신하다가 동해를 만나 남쪽으로 이동하여 신라로 들어왔을 것이다.

  • @park8451
    @park8451 3 роки тому +3

    환국ㆍ신시배달ㆍ고조선ㆍ부여ㅡ삼한ㆍ고려ㆍ조선ㆍ대한민국ㆍ

  • @younghwanson5226
    @younghwanson5226 10 місяців тому

    마립간 503 사라국 였다 마한 가능성 법흥왕 부터 신라국 설교 감사함니다

  • @삼세번-z7o
    @삼세번-z7o 8 місяців тому

    음! 그렇군요. 강남간 제비는 언제 돌아올려나?,,옛 속담들이 그냥 생긴 것이 결코 아닌 것 같음

  • @매카시-r6f
    @매카시-r6f 4 роки тому +3

    황룡사 9층석탑과 연결이 되네요

  • @책읽는라디오-w4d
    @책읽는라디오-w4d 4 роки тому +4

    모용선비예맥족,탁발선비예맥족... 은 같은 고구려 의 방계 혈족으로 알고 있습니다.

    • @kdsbsb
      @kdsbsb 3 роки тому +5

      북연이랑 고구려랑 말이 통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이덕일이라는 재야 사학자 분이 말하시더군요. 중국 놈들이 오랑케라고 지칭했던 부족들 중에 우리랑 혈연적으로 친척인 부족들이 많을 것 같네요. 동이족의 일부로

  • @고양이맛집
    @고양이맛집 Місяць тому

    전형적인 반도사관에 근거한 가설이네요 말씀하신 왜는 열도의 일본과 다릅니다 다시 연구하세요

  • @떠나는배
    @떠나는배 2 роки тому +1

    곤지가 일본서기에서는 누구로 나오는지?

  • @김용덕-d1k
    @김용덕-d1k Рік тому

    한나라를 중국이라고 표현하는것은 잘못이죠.
    제대로 표현한다면 고대 중국이라 해야죠.
    우리의 고조선이나고구리를 한국이라 하나요.
    아니죠.
    고대한국이라 해야 하드시 말입니다

  • @김홍일-p3j
    @김홍일-p3j 3 роки тому +5

    한반도를 고대사에 넣고는 절대 알아낼수없다다

  • @한국인-l1m
    @한국인-l1m 2 роки тому +2

    모씨(곤지)가 북연이라고 했다가 북부여 출신이라고 했다가 헷갈리는군요.
    곤지세력이 일본 중부에서 서부의 왜까지 정벌하고 왜왕이 되었다는건가요?
    제가 알기로는 곤지는 일본에 정벌갔다가 백제가 위기에 처하여 귀국했다가 외척인 해씨세력에 죽은걸로 아는데.

  • @면장tv
    @면장tv Рік тому +1

    연이 신라였다고 보이네요

  • @김씨-d3g
    @김씨-d3g 4 роки тому +6

    고구려 백제 신라는 중국에 있었다

    • @안관혁-q4y
      @안관혁-q4y 4 роки тому +6

      사료에서 사실로 확인됩니다.

  • @user999hui
    @user999hui Рік тому

    이리떼는 늑대나 코요테 부족이라고 봅니다. 터키와 투르크계, 미국 원주민 중에 늑대, 이리 상징을 삼는 애들이 있죠.

  • @삶바른
    @삶바른 Рік тому

    0:40 연나라 이주민, 신라 유민, 내력.

  • @juluart2
    @juluart2 Рік тому

    1.모용씨가 신라와 백제로 오면서 왕칭호를 썻다
    2. 모용씨계가 왜를 함락했다
    그런데 일본은 왕이라는 칭호를 왜 안쓴건지?
    흥미로운 강의라 잘들었지만 강의에 모순이 많은듯하네요.

  • @johnk2149
    @johnk2149 4 роки тому +3

    진한이.경주 (또는 한반도)라는 근거가 있나요 ?

    • @PrettyT-rex
      @PrettyT-rex 3 роки тому

      문헌과 유물이 증명합니다. 아니라는 근거 있음?ㅋ

  • @김윤상실버스푼
    @김윤상실버스푼 3 роки тому

    연나라 후손하면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 생각이 ㅋ

  • @라크메-z2i
    @라크메-z2i 4 роки тому +3

    일본도 저 때 개박살났구나.ㅋㅋㅋ

  • @Mr.surplusage
    @Mr.surplusage Рік тому

    곤지가 그러면 선비족 계열인데 갑자기 북부여라고 바뀌는 건 착각인가요?

  • @likewind194
    @likewind194 4 роки тому +6

    내용은 좋은데 ~ 중언부언~ ㅠ 주장이나 추정시 사료를 원본으로 제시해 주시고 좀더 축약해서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바람의검객-b5f
    @바람의검객-b5f 3 роки тому +1

    재미있는 주장입니다.

  • @아라바바
    @아라바바 4 роки тому +3

    그럼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5세기 지배층 분묘에서 후연이나 북연의 선비계 유물이 발굴되어야 하는데... 보고된 유물이 없는 걸로 아는데...요, 센세?
    그리고 최치원이 일컬은 연은 5호16국의 연이 아니라 춘추전국시대의 연일 가능성이 큼. 연의 진개가 조선을 침공했을 때 북경 근처에 살았던 조선사람이 쫒겨들어간 곳이 삼한.

    • @yikihoon
      @yikihoon  4 роки тому +3

      네, 관심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전국 연이 조선을 칠 때(BC3세기) 북방 조선 유민이 진한으로 이주한 사실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연나라 사람과 적대적이었던 조선 사람들(기자조선)이 연나라 유민을 진한으로 받아줄 리 없습니다. 다만, 이후 진시황의 폭정으로 진나라 사람들이 요동에서 진한으로 도피하거나, 진시황의 정복전쟁 때 연제조 사람들이 위만세력(요동지역)에 모여든 사실은 있습니다.

    • @아라바바
      @아라바바 4 роки тому +2

      @@yikihoon 최치원이 말한 '연인'은 연나라 사람이 아니라 연나라 땅에 살았던 사람이라고 해석하는 게 맞다고 보는데요?
      북경 근처는... 상나라 망하고 기자가 찾아간 고죽국이 있던 자리이고, 연나라 진개의 침공 후 만번한을 조선과의 경계로 삼기 전까진 엄연히 조선 땅이었죠. 그래서 '탁'이란 지명을 강조하는 것이고, 연나라라 칭하는 대신 사로국이라 부르며 새로운 나라 새로운 벌판임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요?
      또한 선비족들이 나라 이름을 '연'이라고 칭한 것도 전국시대의 연나라를 계승한다는 의미 보다는 옛 연나라 땅에 세운 나라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
      그리고 최치원이 진한인 전체를 '연인'으로 일컬음이지 일부 지배층을 일컬어 말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제 말씀의 요지는 최치원이 말한 '연인'에서 '연'은 국명 보다는 지명이란 뜻 입니다.

    • @yikihoon
      @yikihoon  4 роки тому +2

      네 그럴 개연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치원과 전국연 사이에는 1200년의 시대적 간극이 있고 그 사이에 진한에 연나라가 신라에 유입됐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따라서 최치원이 탁수를 언급한것은 비교적 최근의 사실을 기록한 것이지 1200년전 사실을 갑자기 언급한건 아니라고 봅니다 뭐 제 견해가 틀렸을수도 있지만요 2편을 만들고 있으니 그내용도 시청해 보시면 좋을거 같아요 아무튼 우리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반갑고 고맙습니다

    • @밴담제레미
      @밴담제레미 4 роки тому

      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46792.html 김해의 한 고분에서 4~5세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선비족 유물이 발견된적 있습니다 관련기사 링크입니다.

    • @아라바바
      @아라바바 4 роки тому

      @@yoshitsune1184 황남 대총의 금관이 삼연의 풍씨 묘장 벽화에 그려져 있다면... 북연의 왕족들이 신라 금관을 썼다는 건데...그럼 연관관계가 확인이 되겠지만... 풍소불 벽화를 제가 확인할 수가 없어서...
      그럼 5세기의 백제와 가야의 금동관도 같은 북연 계통이란 말씀인가요? 이 선생님은 백제 가야 신라 일본까지 북연의 지배세력이 정복했다고 하니... 다 같은 계통으로 지배세력의 고분 출토물이 동일하다는 소린가요? ㅋㅋㅋ 제가 알기론 다 따로국밥이던데요?

  • @김영화-c6g
    @김영화-c6g 2 роки тому +1

    감사합니다~~저는 경순왕의 38대손으로 알고살아왔는데 훈족(흉노족의 왕자 가 중국 에잡혀 왕의 말을 관리하다가 성실이 인정되어 권력을 가졌을때~?암튼 신라를 정복하고 무열왕이 되었고 ~~들었습니다~~친정 아버지가 항상 유목민ㆍ기마민족의 피가 있다는말을 듣고 자랐었는데 훈족(흉노족 이야기는 안해주셨었지만 )역사 강의를 듣으면서 너무 재미있습니다~~사실은 노아홍수이후 각지로 흩어진 8식구船(대홍수때 배에탓던 8명 과 모든종류의 씨를 퍼트릴 동물들과)즉 노아부부와 세아들부부ᆢ인 셈부부 ㆍ야벳부부ㆍ함부부)의 후손들이 하나님 경외하는신앙을 지키는족과 점점 자기들이 만든 신을숭배하는 족들과 더욱갈라지고 싸우고 퍼지고 그런것 같습니다

    • @김경환-q8d
      @김경환-q8d Рік тому

      노아 홍수 이후 셈족은 벨렉과 욕단으로 나뉘어집니다.
      벨렉은 서쪽으로 가서 수메르가 되고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에서 다시 하란을 거쳐 가나안으로 이주해 야곱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됩니다.
      한편 욕단은 동쪽 스발성으로 나아갔다고 하는데 스발은 새벌, 새땅, 동쪽 땅으로서 환웅족(환웅과 무리3000)이 됩니다. 둘다 언어가 SOV 어순의 교착어입니다.
      야곱은 돌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으며, 모세는 시내산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우리도 돌로 제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를 드렸고 환웅천왕은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神市를 열었습니다.

  • @suhminsuk
    @suhminsuk Рік тому +1

    왜 이야기는 좀 똑바로 설명합시다

  • @MrSmash-g8y
    @MrSmash-g8y 5 місяців тому

    늑대숭배=투르크(아쉬나족)

  • @김재진-g1g
    @김재진-g1g 3 роки тому

    연인 장비 상산 조자룡
    황룡사가 그 황룡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