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늘그니’ 래퍼 김찬 | 70대 래퍼의 랩으로 새긴 삶과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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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18 гру 2023
  • 심장 뛰는 비트 위에 라임 맞춘 메시지는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 초 출생자)에게는 음악인 동시에 대화이자 문화다. 거침없는 래핑(rapping), 트렌디한 훅까지 덧대진 힙합 음악에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건 돌직구로 날아오는 메시지가 공감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힙합 문화는 젊은 세대의 전유물일까. 이 물음에 당당하게 “노(No)”라고 답하는 1950년대생 래퍼가 있다. 랩네임 ‘김찬늘그니’, 래퍼 김찬(70)이다.
    랩이 젊은 세대의 전유물이라고?
    최근 서울 양천구의 한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빨간 모자를 뒤집어쓴 채 헤드폰을 끼고 프로듀서와 진지하게 의견을 조율하는 김찬의 모습이 보였다.
    “이 부분에선 딜리버리(가사 전달)를 급하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호흡을 거칠게 뱉는 것 자체가 랩의 일부가 될 수 있으니까요.”(정민혁 프로듀서) “오케이. 가봅시다. 얼마나 좋을까 부러워 연봉 1억. 한 만큼 버는 게 세상의 이치 일 속에 파묻혀 헉헉. 월세 걱정 없고 한 턱 두 턱 내잖아 척척.”(김찬)
    어깨를 들썩이며 비트에 맞춰 능숙하게 랩을 뱉어내는 모습이 모자와 헤드폰 사이로 새어 나온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대비를 이루며 탄성을 자아냈다. 70세 래퍼, 그 출발선은 어디였을까.
    “죽을 생각으로 텅 빈 방에 앉아 멍하니 있는데 홀로 남겨질 딸이 떠오르더군요. 다시 이를 악물었어요. 미안함과 고마움이 켜켜이 쌓여온 시간이 10년이 넘어갈 때쯤 딸에게 어떻게 마음을 전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텔레비전에서 한 가수의 랩 하는 모습을 봤죠. 이거다 싶었습니다.”
    비바람 같은 삶, 보낸 이와 만난 이
    김찬의 래핑은 생의 굴곡을 재치있게 풀어내는 펀치 라인 가사가 묵직한 읊조림, 거칠게 토해내는 샤우팅과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70년을 걸어온 그의 이야기에는 도전과 이별, 아픔과 희망이 용광로 속 쇳물처럼 녹아있었다.
    20대를 오롯이 은행원으로 보낸 뒤 포장 용기 회사를 차리고 중국 진출의 꿈을 이루기 위해 베이징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만 해도 청년 김찬의 인생엔 탄탄대로가 기다리는 듯했다. 하지만 맨땅에 헤딩하듯 6년여를 보낸 그에게 찾아온 건 사랑하는 가족과의 헤어짐이었다. 2년간의 암 투병 끝에 아내를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고, 그 슬픔을 채 묻기도 전에 하나뿐인 아들을 땅 아래에 또 묻어야 했다.
    ‘슬픔은 낙엽처럼 사부작 말리고/ 인생을 단풍처럼 붉게 물들이고/ 구름에 달 가듯 저 하늘을 보고/ 잠시 쉬다가 그저 걸어간다’(‘풍우(風雨)’ 중에서)
    그의 노래 가사처럼 비바람이 휘몰아친 인생에 남겨진 건 중학생 딸과 자신뿐이었다. 주변인들의 시선은 버겁기만 했다. 삶의 끈을 붙들 힘조차 없을 때 한 사람이 김찬의 삶에 들어왔다. 부부로서의 두 번째 인연, 황유선 중심교회 목사다.
    김찬은 “아들까지 잃은 뒤 처음 교회에 갔는데 사실 1년 동안 예배 시간에 거의 코 골며 자는 수준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땐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친 거였는데 돌아보면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해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억장이 무너져도 솟아날 랩이 있다.
    10년 만에 딸에게 마음을 전할 도구를 찾은 김찬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랩에 관한 건 뭐든 찾아 독학했다. 엑셀 파일에 표를 만들어 네 마디에 맞춰 가사를 써넣고 강조하고 싶은 글자엔 빨간색을 칠했다. 아내가 사역하는 개척교회 빈 예배당을 연습실 삼아 끊임없이 랩을 뱉어냈지만 좀처럼 꼬인 혀는 풀리지 않았다.
    랩 선생님을 찾아 헤맨 끝에 운명의 짝을 만났다. 대한민국 비트박스 대회 최연소 우승자이자 래퍼인 정민혁 프로듀서다. 70세 래퍼와 35세 프로듀서의 궁합은 경이로웠다. 김찬이 일기장 꺼내듯 삶을 풀어내면 정 프로듀서가 비트를 만들고, 비트에 어울리는 랩메이킹과 플로우를 함께 찾아 나섰다. 정 프로듀서는 “활동 중인 현역 래퍼들도 두세 시간 녹음하면 녹초가 되는데 아버님은 7시간 녹음해도 끄떡없을 만큼 불굴의 의지를 타고 났다”며 웃었다.
    ‘너’를 뜻하는 중국어 ‘니’에 그리움의 정서를 담아 ‘늘 너를 그리워한다’는 랩네임 ‘김찬늘그니’로 활동명을 정하고 이제 조금 랩이 입에 붙었다 싶었을 때쯤 17㎜짜리 암덩이가 발견됐다. 절망에 무릎 꿇을 법도 하지만 김찬늘그니는 당차게 일어섰다. 그러곤 살면서 마주하는 역경을 주제로 세대를 가리지 않는 공감을 노래하겠노라며 지난 1월 첫 싱글 ‘나 암에 걸렸어’를 발표했다. 두 달 후엔 ‘억장이 무너져’를 잇따라 발매하며 열정을 과시했다.
    아내 황 목사의 제안으로 로마서와 잠언을 모티브로 한 래핑을 준비하고 있다는 김찬늘그니는 사업으로는 열어젖히지 못했던 중국 무대에서의 활동을 목표로 스튜디오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인간 김찬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칠십대 사춘기 래퍼’입니다. 랩이라는 세계를 만나고 가사에 생각들을 정리해 가면서 저 자신을 새로 규정해가고 있어요. 찬송가가 그 중심이 돼줍니다. 말로 하는 설교, 글로 쓰인 성경을 접할 때와 달리 찬송가를 들으면 가슴에 확 새겨집니다. 가슴에 새긴 메시지를 무대 위 랩으로 새겨야죠. 하하.”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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