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밁았다가 비왔다가, 맑은데 구름 많았다가 없어졌다가... 무슨 영국 날씨 비슷한 느낌이 있더라고요. 와서 알게된게 더 많습니다. 정말 직업적으로 하려면 이래서 답사가 필요하구나 라는 생각이 드네요. 답사 후 자료 보강, 그리고 재방문을 통해 스토리라인 완성. 츠루오카를 또 갈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아한대에서 아열대까지 있는 나라라서, 건물에서도 그 다양성이 존재하니 봅니다. 에도시대 쇼나이 낚시문화에서 배틀물의 뿌리도 보이는군요. 😀 영상에 클로즈업은 못했습니다만, 번주가 쓰던 낚싯대, 누구누구가 쓰던 낚싰대 등등... 낚싯대에 본인들 이름이 새겨져 있는걸 보고 참 일본스럽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구 80만의 사가현의 23만의 사가시에 국립대 의대가 있는 나라...구제국대학 의대가 있는 후쿠오카시, 구관립대학 의대가 있는 나가사키, 구마모토까지 신칸센도 아닌 특급열차로 1시간 안에 갈 수 있는 도시인데도 정원 100명의 국립대 의대를 굳이 만든 다나카 수상이 어떤 면에선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요즘입니다. 인구는 적어도 면적은 몇배나 큰 도호쿠까지 1현 1의대인건 주민들은 불만이겠지만요.
히로시마에 가시는군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다녀와 정신 없기도했고 제대로 그 기록을 정리하지 않아서 기억 속에 별로 남아있는게 없네요. 일본을 영상 기록으로 남기려고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드론 촬영+카메라 영상 공부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썼는데, 사실 조금 더 일찍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지금껏 다녔던 일본 여기저기를 제대로 자료화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죠. 언제 그곳들을 또 다시 가볼 수 있을까.... 무한할 것만 같던 시간이 40대 후반이 되어가다보니 너무도 짧고 유한하다는걸 사무치게 느끼고 있습니다. 나는 유한해도 자료는 무한할텐데 왜 하루라도 더 빨리 자료화한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으니 남은 인생이라도 열심히 벌고, 열심히 왔다갔다 하고 열심히 기록하려 합니다. 카고시마에 다녀오셔서 사진 주셨을 때 처럼, 많은 내용 잘 기록해서 조심히 다녀오세요 !! 일본은 점점 한국에 대한 관심과 데이터가 쌓여가는데, 우리는 반대라고 하더라고요. 석호님도 많은 일본 관심 분야 잘 정리하셔서 유튜브든 책이든...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가 된건 얼마 안되었죠. 경찰이 왕을 지키기 위한 군대에서 19세기 초가 되어서야 분리되었고 범죄자 수사와 검거가 지금도 알파이자 오메가니까 거칠 수 밖에 없죠. 그리고 최초의 일본 경찰은 유신 후 프랑스 경찰을 연구해 만들었다고 하니 고압적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요새 고베제강 도요타 등의 기업범죄로 일본의 장인정신이나 일본제품의 신뢰도가 떨어졌다고 하던데 에도라고 달랐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일반 쵸닌들이야 물건 잘못 만들고 서비스 개판으로 했다간 경을 치니 조심했겠지만, 어용상인들 얘네는 다이묘한테 오까시 밑에 오오반 깔아서 뇌물 건네고 이리저리 번의 돈을 빼먹거나 진상품을 제외한 일반 납품은 불량을 많이 섞지 않았을까요?남명예 말고도 남는게 많은 장사니 어용에 목숨걸지 않았나 싶네요. 1차 세계대전 때도 유럽에다 일본기업들이 군납을 개판으로 했다는데, 에도시대에 하던 버릇 못고치고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정치권과 결탁만 하면 못된 짓 저지르는 게 아닐까요. 다른 나라들도 다했던 거겠지만 일본이 그러니 놀라서 말입니다. 그리고 사무라이들의 부업에 낚시도 포함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육식을 금지 내지 자제해온 일본의 역사적 맥락에서 생선요리가 발달했고, 다이묘들 정원 꾸미기도 흔했으니 식용이나 관상용의 목적으로 생선을 잡아 팔아서 가계에 보탬이 되는게 늘 가계가 불안했던 사무라이들에게 당연히 손댈만한 일이지 않을까 싶어서요.
충분히 개연성은 있을 것 같습니다. 정도의 차이일뿐, 사람사는 사회에서는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요. 다만, 로컬 어용상인이 되기위해 무엇인가를 제조해 판매할 정도면 그 지역 나카마 조합에 속해 있을 것이고, 에도시대 때부터 업무 분업이 발달해 왔고 납품처가 최종 책임 관계에 있기 때문에 어설픈 상품을 납픔하고 싶어도 어려운 구조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분업의 누군가가 일을 대충하면 그 일에 관여한 분업조합의 모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죠. 개인의견입니다만, 일찍부터 자리잡은 전문 영역의 분업 구조가 일본적 책임의 전형으로 자리잡았고, 그게 품질과도 연결된 걸로 보입니다. 이 모습은 오히려 도쿄 오오타구(大田区)에 밀집한 소규모 기계 공장의 분업형태에서 에도시대의 원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직원 10명의 공장에서 1/100밀리미터의 세계를 가공하는 항공우주부품이 만들어지니까요. 가공은 누구, 절삭은 누구, 나사조임은 누구, 용접은 누구.... 지금도 분업을 통해 최종 완성품을 만들어 냅니다. 고배제강, 도요타의 비리 뿐만 아니죠. 일본 사회도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다만 그 정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은 것은 확실합니다. 인구비율로 따지는 사기범죄가 우리나라가 일본의 200배가 넘으니까요. 일본에서도 한국인 점주에게 피해본 한국인 알바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진짜 모노즈쿠리의 정수는 대기업이 아닌 마치코오바(町工場)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낚시를 생계로 했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접해보지는 못쇘습니다. 에도의 고케닌들이 생계를 위해 금붕어를 키워 팔기는 했지만요. 다만 어업이라는 것이 본업을 마치고 하기에는 농업이나, 우산 만들기, 새장 만들기 등과는 다르게 여러모로 쉽지 읺아 보이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고기잡이에 나서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안녕하세용. 2년 전부터 항상 잘 챙겨보고 있습니다, 깊이있는 컨텐츠 감사합니다. 저도 보다 더 깊이있게 일본사 공부도 하고 싶고, 일본 가서도 써먹고 싶어서 일본어를 공부해보려 하는데, 로망스님께서는 어떤 식으로 공부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사무라이로망스님도 신장의야망으로 일본어를 습득하신건가요?
히라가나는 초등학생 때 외웠습니다. 중학교 때 신장의 야망2를 하면서 자연스레 사람 이름 읽는 방법을 체득했고, 고등학생 때 요시카와 에이지의 쇼군이라는 대하소설을 만나면서 "친일" 행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 때 타케우치 치아키라는 토야마의 소녀와 자필편지를 주고받으며 펜팔을 시작했죠. 계속 혼자 하다가 대학생이 된 후 휴학하고 어학연수를 6개월 정도 다녀왔습니다. 그 뒤에도 일본어 공부라기 보다는 일본이라는 나라, 일본 역사, 한일 관계 등등... 아, 일본 여자 포함해서... 30년 넘게 단 하루도 일본을 머리에서 지운 날은 없었습니다. 일본어 공부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한국인이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임은 분명하고 input 비례해 output이 나오는 언어이기도 합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시고, 일본을 일본어로 즐기시기를 기대합니다. 이제 50이 다되어 갑니다만... 제 지난 인생은 일본 때문에 정신적으로 정말 풍요로웠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무언가를 수십 년간 놓지 않고 계속할 수 있을 정도로 무한의 콘텐츠가 제공되는 나라이니까요. 제가 기록하고 싶은 일본 지역을 리스트업 한 후, 죽기 전에 다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슬퍼지더라고요. 무한할 것 같던 인생은 너무 짧게 지나가는 점에 불과하니까요. 길어야 10년, 15년이겠죠. 저에게 남은 시간도... 요즘 일본어 배우는 인구가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일본을 탐구하면 인생이 즐거워 집니다. 절대 놓지 말고 당장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사무라이로망스님덕에 이런 좋은곳도 구경해서 좋네요😊 역사이야기도 새롭게 알고^^
감사합니다 🤗
늘 유익하게 보고있습니다. 저도 역덕, 일덕을 자처하면서도 일본여행 가면 늘 비누나라가서 몸씻고 헬스클럽가서 땀을 흘리는 것에만 서두르고😂 그흔한 오사카성 한번 안 올라가 봤네요. 참 부끄럽습니다. 형님덕분에 역사 답사여행 하고있네요. 늘 감사합니다.
비누번(藩)이야 말로 궁극의 역사 아니겠습니까. 비누에 대한 이해 없이 일본 문화를 말할 수 없지요. 👍👍👍
가보고싶은곳인데 경치가 정말 이쁘네요
뭔가... 밁았다가 비왔다가, 맑은데 구름 많았다가 없어졌다가... 무슨 영국 날씨 비슷한 느낌이 있더라고요. 와서 알게된게 더 많습니다. 정말 직업적으로 하려면 이래서 답사가 필요하구나 라는 생각이 드네요. 답사 후 자료 보강, 그리고 재방문을 통해 스토리라인 완성.
츠루오카를 또 갈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쇼군의 치세 아래에서도, 각 지방에서 빚어낸 고유한 특색이 어우러지는 독특한 문화적 바탕은
일본이란 국가의 독특한 매력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에게만 특별함이 있는 매력이지요. 보통 한국인에게는 지루한 도시인 나고야. 우리애개는 보물단지...
좋은 영상 늘 감사합니다^^
항상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제 나이보다 5살 어려보이시는 로망스님, 이번 영상도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 어려보인다니 선방했네요...
마지막 타임랩스까지 감동적이네요..
저 타임랩스는 고프로 버튼 잘못클릭(의도치 않게 타임랩스 설정)+차에서 내릴 때 끄는 것 까먹음.. 의 콤비로 우연히 탄생했습니다.
의도했더리면 제가 핬다갔다 안했을건데 말이죠.
감사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진짜 같이 따라가고 싶습니다😊😊
일단 시간이 없어서 점심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먹습니다. 저녁에는 피곤해서 아무거나 근처에서 먹거나 마트에서 사시미랑 맥주 한 캔 사서 숙소에서 먹습니다. 이 루틴을 1주일간 반복하다 집에 옵니다.
생각보다 재미 없을 겁니다. ㅋ
목조 서양식 건물인데 더운 나가사키와는 다른 구조가 인상적이네요. 에도시대 낚시문화에서 볼 수 있는 일본 만화 배틀물의 뿌리^^
아한대에서 아열대까지 있는 나라라서, 건물에서도 그 다양성이 존재하니 봅니다. 에도시대 쇼나이 낚시문화에서 배틀물의 뿌리도 보이는군요. 😀
영상에 클로즈업은 못했습니다만, 번주가 쓰던 낚싯대, 누구누구가 쓰던 낚싰대 등등... 낚싯대에 본인들 이름이 새겨져 있는걸 보고 참 일본스럽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구 80만의 사가현의 23만의 사가시에 국립대 의대가 있는 나라...구제국대학 의대가 있는 후쿠오카시, 구관립대학 의대가 있는 나가사키, 구마모토까지 신칸센도 아닌 특급열차로 1시간 안에 갈 수 있는 도시인데도 정원 100명의 국립대 의대를 굳이 만든 다나카 수상이 어떤 면에선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요즘입니다. 인구는 적어도 면적은 몇배나 큰 도호쿠까지 1현 1의대인건 주민들은 불만이겠지만요.
오늘도 영상 감사히 보았습니다. 곧 여행으로 히로시마에 잠시 다녀오는데, 영상을 보며 뭔가 고양감이 드는군요~
히로시마에 가시는군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다녀와 정신 없기도했고 제대로 그 기록을 정리하지 않아서 기억 속에 별로 남아있는게 없네요.
일본을 영상 기록으로 남기려고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드론 촬영+카메라 영상 공부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썼는데, 사실 조금 더 일찍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지금껏 다녔던 일본 여기저기를 제대로 자료화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죠. 언제 그곳들을 또 다시 가볼 수 있을까....
무한할 것만 같던 시간이 40대 후반이 되어가다보니 너무도 짧고 유한하다는걸 사무치게 느끼고 있습니다. 나는 유한해도 자료는 무한할텐데 왜 하루라도 더 빨리 자료화한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으니 남은 인생이라도 열심히 벌고, 열심히 왔다갔다 하고 열심히 기록하려 합니다.
카고시마에 다녀오셔서 사진 주셨을 때 처럼, 많은 내용 잘 기록해서 조심히 다녀오세요 !!
일본은 점점 한국에 대한 관심과 데이터가 쌓여가는데, 우리는 반대라고 하더라고요. 석호님도 많은 일본 관심 분야 잘 정리하셔서 유튜브든 책이든...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일본문화 소개할때 쓸데없이 역사와 문화 배우는곳에 일제감정기나 임진왜란만 외치는 역사학자들보다 로망스님이 더 똑똑하세요 언제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남의 눈을 유독 의식하는 한국인 정서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징징거리는걸 싫어해서 제 영상에 그런 부분이 반영되어 있다고도 보입니다.
아카몬 넘어 내부 장소들 자세히 찍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설명까지 곁들어주시니 너무 재미있어요!!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레저스포츠들이 기원을 군인들이 하던 일들에서 찾을 수 있지만 특이하게 장내번사들은 낚시도 연무(鍊武)의 일종으로 행하였군요.
낚시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았겠네요... 현대에도 마누라가 싫어하는 남편의 취미 부동의 1위가 낚시이니.
축구보다 낚시가 순위가 높나요?? 허허.. 전 둘 다 안좋아해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나 봅니다.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가 된건 얼마 안되었죠. 경찰이 왕을 지키기 위한 군대에서 19세기 초가 되어서야 분리되었고 범죄자 수사와 검거가 지금도 알파이자 오메가니까 거칠 수 밖에 없죠. 그리고 최초의 일본 경찰은 유신 후 프랑스 경찰을 연구해 만들었다고 하니 고압적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요새 고베제강 도요타 등의 기업범죄로 일본의 장인정신이나 일본제품의 신뢰도가 떨어졌다고 하던데 에도라고 달랐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일반 쵸닌들이야 물건 잘못 만들고 서비스 개판으로 했다간 경을 치니 조심했겠지만, 어용상인들 얘네는 다이묘한테 오까시 밑에 오오반 깔아서 뇌물 건네고 이리저리 번의 돈을 빼먹거나 진상품을 제외한 일반 납품은 불량을 많이 섞지 않았을까요?남명예 말고도 남는게 많은 장사니 어용에 목숨걸지 않았나 싶네요. 1차 세계대전 때도 유럽에다 일본기업들이 군납을 개판으로 했다는데, 에도시대에 하던 버릇 못고치고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정치권과 결탁만 하면 못된 짓 저지르는 게 아닐까요. 다른 나라들도 다했던 거겠지만 일본이 그러니 놀라서 말입니다.
그리고 사무라이들의 부업에 낚시도 포함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육식을 금지 내지 자제해온 일본의 역사적 맥락에서 생선요리가 발달했고, 다이묘들 정원 꾸미기도 흔했으니 식용이나 관상용의 목적으로 생선을 잡아 팔아서 가계에 보탬이 되는게 늘 가계가 불안했던 사무라이들에게 당연히 손댈만한 일이지 않을까 싶어서요.
충분히 개연성은 있을 것 같습니다. 정도의 차이일뿐, 사람사는 사회에서는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요.
다만, 로컬 어용상인이 되기위해 무엇인가를 제조해 판매할 정도면 그 지역 나카마 조합에 속해 있을 것이고, 에도시대 때부터 업무 분업이 발달해 왔고 납품처가 최종 책임 관계에 있기 때문에 어설픈 상품을 납픔하고 싶어도 어려운 구조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분업의 누군가가 일을 대충하면 그 일에 관여한 분업조합의 모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죠.
개인의견입니다만, 일찍부터 자리잡은 전문 영역의 분업 구조가 일본적 책임의 전형으로 자리잡았고, 그게 품질과도 연결된 걸로 보입니다.
이 모습은 오히려 도쿄 오오타구(大田区)에 밀집한 소규모 기계 공장의 분업형태에서 에도시대의 원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직원 10명의 공장에서 1/100밀리미터의 세계를 가공하는 항공우주부품이 만들어지니까요. 가공은 누구, 절삭은 누구, 나사조임은 누구, 용접은 누구.... 지금도 분업을 통해 최종 완성품을 만들어 냅니다.
고배제강, 도요타의 비리 뿐만 아니죠. 일본 사회도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다만 그 정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은 것은 확실합니다. 인구비율로 따지는 사기범죄가 우리나라가 일본의 200배가 넘으니까요.
일본에서도 한국인 점주에게 피해본 한국인 알바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진짜 모노즈쿠리의 정수는 대기업이 아닌 마치코오바(町工場)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낚시를 생계로 했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접해보지는 못쇘습니다. 에도의 고케닌들이 생계를 위해 금붕어를 키워 팔기는 했지만요.
다만 어업이라는 것이 본업을 마치고 하기에는 농업이나, 우산 만들기, 새장 만들기 등과는 다르게 여러모로 쉽지 읺아 보이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고기잡이에 나서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samurairomance 우산만들기 ㅋㅋㅋㅋㅋ
낭인 사무라이 영화에 꼭 나오는...
안녕하세용. 2년 전부터 항상 잘 챙겨보고 있습니다, 깊이있는 컨텐츠 감사합니다. 저도 보다 더 깊이있게 일본사 공부도 하고 싶고, 일본 가서도 써먹고 싶어서 일본어를 공부해보려 하는데, 로망스님께서는 어떤 식으로 공부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사무라이로망스님도 신장의야망으로 일본어를 습득하신건가요?
히라가나는 초등학생 때 외웠습니다. 중학교 때 신장의 야망2를 하면서 자연스레 사람 이름 읽는 방법을 체득했고, 고등학생 때 요시카와 에이지의 쇼군이라는 대하소설을 만나면서 "친일" 행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 때 타케우치 치아키라는 토야마의 소녀와 자필편지를 주고받으며 펜팔을 시작했죠. 계속 혼자 하다가 대학생이 된 후 휴학하고 어학연수를 6개월 정도 다녀왔습니다.
그 뒤에도 일본어 공부라기 보다는 일본이라는 나라, 일본 역사, 한일 관계 등등... 아, 일본 여자 포함해서... 30년 넘게 단 하루도 일본을 머리에서 지운 날은 없었습니다.
일본어 공부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한국인이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임은 분명하고 input 비례해 output이 나오는 언어이기도 합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시고, 일본을 일본어로 즐기시기를 기대합니다.
이제 50이 다되어 갑니다만... 제 지난 인생은 일본 때문에 정신적으로 정말 풍요로웠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무언가를 수십 년간 놓지 않고 계속할 수 있을 정도로 무한의 콘텐츠가 제공되는 나라이니까요.
제가 기록하고 싶은 일본 지역을 리스트업 한 후, 죽기 전에 다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슬퍼지더라고요. 무한할 것 같던 인생은 너무 짧게 지나가는 점에 불과하니까요.
길어야 10년, 15년이겠죠. 저에게 남은 시간도...
요즘 일본어 배우는 인구가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일본을 탐구하면 인생이 즐거워 집니다. 절대 놓지 말고 당장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samurairomance저도 일본인 특유의 세계관이나 문화, 구미열강 속에서 동양국가 중 유일하게 열강으로 우뚝 선 열정의 역사가 너무 부럽고 멋져 즐기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해보려고 합니다 동기부여 감사합니다😊😊😊😅
장인들의 도구 작품들, 민가모양은 눈많은 산간지방의 가쇼gasso, 즉 두손을 합장 스타일의 3ㅡ5층 3세대가 함께 사는 상부 다락방에 여름에 누에쳐서 부업하던 곳인 듯해요
쇼나이 말고도 다른 번을
쇼나이번 아직 안끝났습니다. 두 편 더 남았습니다. 인내심을 가지시고...
@@samurairomance쇼나이에 볼 게많군요!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