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2차 대전을 한번에 끝내기 위해 시작된 연합군 최대의 공수부대 작전(결말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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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30 жов 2021
  • 1977년 작 ‘머나먼 다리’입니다
    74년 출판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으며,
    2차대전 ‘마켓가든 작전’을 배경으로 합니다
    ‘마켓가든 작전’은 명작 전쟁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 4화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승전을 영화로 남기는 여타의 전쟁영화와는 달리 가장 안타까운 실패중 하나로 기록되는 작전을 세밀한 고증과 함께 만든 영화이기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명작입니다
    45년 전 영화임에도 CG가 거의 없는 실사로 채워져있어 지금보아도 손색없는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게다가 여타의 영화에서 볼 수 없는 화려한 캐스팅은 3시간여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끝까지 기대와 재미로 채워줍니다
    여담이지만 프로스트 대령이 끝까지 지키려 했던 아른헴 다리는 현재에도 존재하며
    그의 이름을 따 ‘존 프로스트 다리’로도 불립니다
    또한 폴란드의 소사바우스키 소장은
    끝까지 영국 1공수부대를 구조하려 노력했는데요,
    작전이 실패한 뒤 브라우닝 중장과 몽고메리 원수는 작전의 실패를 소사바우스키에게 떠넘기게 됩니다
    그 결과 소사바우스키는 공수여단장에서 물러났고
    48년 퇴역 이후 연금조차 받지 못합니다
    이후 75세까지 영국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
    76세에 안타까운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후 2006년 네덜란드 여왕의 훈장과 2012년 그를 기리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되어
    그의 명예는 뒤늦게 회복 됩니다
    그 외에도 영화 속엔
    많은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들어있습니다
    긴 세월 속에 더욱 빛을 발하는 명작 전쟁영화 ‘머나먼 다리’
    무비도치가 강력 추천합니다
  • Фільми й анімація

КОМЕНТАРІ • 307

  • @movie_dochi
    @movie_dochi  2 роки тому +58

    **재업로드 영상입니다**
    몇 개월 전 제작했다가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어 삭제 후 재업로드 했습니다
    내용의 몇부분이 좀더 간결하게 정리되어 보시기 좋게 제작했으니,
    다시 한번 감상해 보시는 것도 추천 드립니다 ^^

    • @user-in5tr4ff3l
      @user-in5tr4ff3l 2 роки тому

      .

    • @user-mj7ni8mb7x
      @user-mj7ni8mb7x 2 роки тому

      한가지만...
      원작은 소설이 아니라 코넬리어스 라이언이 쓴 2차대전 삼부작의 두번째 서적으로 넌픽션입니다.
      첫번째 서적은 the longest day(한국제목: 지상최대의 작전)로 이 책도 62년에 영화화되었습니다.
      읽어보면 당시까지도 생존하고 있던 대부분의 참전자들, 특히 고급지휘관들의 인터뷰가 많이 남아있어서 사료로서의 값어치가 꽤 큰 서적입니다. 다만 고급지휘관들의 인터뷰와 개인적인 견해들이 많이 반영되었기에 요즘 밝혀진 역사와는 상당히 배치되는 면도 있기에 논란이 있기는 하죠.

  • @Uh_sa_park_91.
    @Uh_sa_park_91. 2 роки тому +70

    몽고메리의 졸렬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화

    • @newton9047
      @newton9047 9 місяців тому +3

      무능+ 졸렬 = 몽고메리

  • @SWATLAPD9701
    @SWATLAPD9701 2 роки тому +52

    재개발지역을 끼고 실체 포격과 폭발시켜 실감을 더하고 박물관에서밖에 보지 못하는 장비들이 즐비하는 영화....
    진짜 명작임 소장가치가 높음

    • @user-zs7eb5uc9r
      @user-zs7eb5uc9r Рік тому +4

      동시에 숀 코넬리, 로렌스 올리비에, 마이클 케인, 로버트 레드포드, 맥시밀리언 쉘, 앤서니 홉킨스, 제임스 칸, 더크 보가드,진해크먼, 에드워드 폭스,하디 크루거, 라이언 오닐등등 초호화배역진 자체였지요. 어떻게 이 많은 스타급 연기자들을 싸그리 모았는지... 출연진만으로도 역대급 작품

  • @bktsys
    @bktsys 2 роки тому +28

    세상에 이런 영화가 77년도 작품이라니... 대단합니다...

  • @jojaehyun3438
    @jojaehyun3438 2 роки тому +24

    배우들의 디테일과 한분한분의 배우들의 존제 자체가 .... 명배우들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으로도 눈 과 마음 과 추억이 즐거운 영화
    - 마지막 대사 "완전한 실패가 아닌 절반의 성공이였다....." - 부하들의 생명 앞에 무책임한 명예욕에 취한 대사가... 참으로 인상적이였죠

  • @twahn7707
    @twahn7707 2 роки тому +132

    최고 윗선이 무능하거나 공훈에 눈이 멀면 현장 실무자들만 죽어나가는건 만고불변의 진리

    • @ConfusedKat
      @ConfusedKat 2 роки тому +8

      윗선이나 중간관리자가 무능하면, 열심히 일하는 실무자들만 이용당하는건 천하만고불변의 진리

    • @berng1213
      @berng1213 2 роки тому +3

      그걸 인사관리하는게 최고지도자동무 예로 요새 노상나와 가이소리 멍멍하는것들처럼 그러것을 뽑으면 그리됨.

    • @user-kp2rj6yv7p
      @user-kp2rj6yv7p 2 роки тому +6

      윤석열의 존재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가족들의 생활과 대한민국이 현 국제상황 속 헤쳐나갈 일들까지 함께..

    • @user-jy9ov7nb5b
      @user-jy9ov7nb5b 2 роки тому

      관리자쪽 일하셨나봐요.
      꿰고계시니요.

  • @GON-lu4me
    @GON-lu4me 2 роки тому +215

    솔직히 2차대전에서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권한이 많았고 그래서 늘 문제를 만들던 사람이 몽고메리 아닌가 함.

    • @kangbkg
      @kangbkg 2 роки тому +9

      ㄹㅇ

    • @rokafis535
      @rokafis535 2 роки тому +24

      몬티가 얼마나 ㄱㅅㄲ 인지는 패튼이랑 갈등만 봐도 잘나와있죠...

    • @nahoy350
      @nahoy350 2 роки тому +26

      자기가 확실히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그 상황이 오면 적을 압도하는 전략적 식격은 높았던 양반.
      근데 마켓가든은 정말 몽고메리 스타일답지 않게 너무 무리했음.

    • @user-ls2lo1ps9b
      @user-ls2lo1ps9b 2 роки тому +57

      마켓가든 작전 실패 원인이 본인인데 현장에서 개고생한 소사보프스키 장군에게 떠넘긴 인간 쓰레기 입니다. 명장이라기 본단 운이 좋은 범장입니다.

    • @user-ls2lo1ps9b
      @user-ls2lo1ps9b 2 роки тому +12

      @김춘추 역사에 if 없지만 독일이 롬멜에게몽고메리 만큼 지원을 해줬다면 지지 않았을것 같습니다.

  • @jollyroger1748
    @jollyroger1748 2 роки тому +23

    라이언일병구하기가 나오기 전까지, 밀덕들에게는 실제 전장의 느낌을 가장 잘 전달하는 영화였지요.
    특히나 공수부대의 강하장면은 CG하나 없는 실제이고, 앞으로도 이 정도의 물량을 투입할 영화는 없을겁니다.
    아른헴대교 에서의 첫 교전 장면도 지금 전쟁영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명장면입니다.

  • @user-fb4dp7uq5l
    @user-fb4dp7uq5l Рік тому +11

    정말 저 시대 전쟁영화에서 실사로 만든 전투씬은 요즘 CG로는 느낄 수 없는 감성이 있었죠.
    이런 명작들을 요즘은 볼수 없다는게 아쉽네요.

  • @user-yf4ph9py4e
    @user-yf4ph9py4e 2 роки тому +58

    전형적인 똥별들의 전공 챙기기와 전후 영향력 확대라는 욕심 아래 이루어진 작전.
    결국 마켓가든작전의 대실패로 나치독일에게 희망만 준, 희대의 삽질. 브라우닝 장군이나 몽고메리 장군 모두 한가닥 했던 장군이었지만 저때는 이미 한물간 이들이었고, 그들의 욕심때문에 희생된 지휘관과 병사들이 안타까울뿐.

    • @user-bx5vs4lc2p
      @user-bx5vs4lc2p 2 роки тому +4

      추가 소사바우스키 장군의 명예는 회복되었지만 아직도 영국 정부는 그것을 부인하는 중.
      몽고메리의 자격에 대한 논란이 충분히 많지만 작전은 필요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음. 하지만 너무 성급히 많은 다리를 점령하려고 함. 한번에 하나씩 작전을 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꺼라는 관측도 존재함.

    • @user-pu9et1rd8e
      @user-pu9et1rd8e 2 роки тому

      영국은 승리도취랑 전통만 너무 중시했음 1차세계대전때도 솜전투로 말아먹어놓고 생각이없음 ㅋㅋ 똥고집만 ㅈㄴ하고 세탁기 ㅈㄴ돌려서 신사의 나라 ㅇㅈ1ㄹ하고있으니 ㅋㅋ

    • @user-eo7qf7gp1n
      @user-eo7qf7gp1n 2 роки тому +3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도 솔직히 물량으로 롬멜 조진거지.. 그것도 아니였으면 ㅋ

    • @user-bx5vs4lc2p
      @user-bx5vs4lc2p 2 роки тому +1

      @@user-eo7qf7gp1n 우리나라가 가성비 따져서 그렇지 중국처럼 물량 운영 못하는 나라도 수두룩함. 보급은 몽고메리가 잘한거 맞음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4 місяці тому +2

      @@user-bx5vs4lc2p 하지만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남에게 뒤집어씌운 것 만으로도
      몽고메리의 인성과 신망은 진짜 형편없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증명한 거지요.
      그러니
      죽어서도
      국립묘지 안장이 아닌
      지 고향 공동묘지에 묻히는 치욕을 당했으니까요.

  • @jakewong6788
    @jakewong6788 2 роки тому +25

    영화의 작품성을 치우고 봐도 출연배우들의 라인업은 전설 그 자체인 작품이죠

    • @user-om4nk3yk5m
      @user-om4nk3yk5m Рік тому

      전설들의 집합체 였죠

    • @user-zs7eb5uc9r
      @user-zs7eb5uc9r Рік тому

      어떻게 이 호화배역진을 다 모은건지 ... 어탠버로 감독의 역량이 정말 대단했다는

  • @user-qx4rb6oq8g
    @user-qx4rb6oq8g 9 місяців тому +7

    😢진해크만의 폴란드 장군은 몽고메리 작전실패를 모두 뒤집어써 불명예 퇴직 후 연금도 못 받고 노동자로 일하다 세상을 떠났고 이후 그의 명예를 다시 되찾게 되었죠

  • @Kei-man
    @Kei-man 2 роки тому +55

    쿠오바디스, 십계, 벤허 등등 처럼 앞으로는 제작이 불가능 할듯한 CG가 아닌 실사판 전쟁영화...
    화려한 캐스팅도 볼만하지만 정말 처음에 공수여단이 수송기와 글라이더를 타고 가는 장면을 최고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용에도 있지만 독일 비트리히 사령관으로 나오는 맥시밀리언셀이 공수여단이 지나가는 하늘을 보면서 했던 말 '웅장하지? 나도 저런 힘을 한번만이라도 가져볼수 있다면...'

    • @franciskim
      @franciskim 2 роки тому +2

      Old man 이구먼 ㅋㅋㅋㅋㅋ

  • @jinchun3971
    @jinchun3971 2 роки тому +2

    편집, 자막, 설명....모두 훌륭햇어요
    감사합니다

  • @klausfeuermann3825
    @klausfeuermann3825 2 роки тому +35

    몽고메리와 처칠의 공수부대판 갈리폴리...자신을 모르고, 적도 모르면 백전백패한다는 교훈...

    • @scz8333
      @scz8333 2 роки тому +7

      1. 2019 마켓가든 75주년, 아른헴 : 3번 동영상은 1954 폴란드 소사보프스키 장군, 영국 숀커네리역 장군 참석.
      ua-cam.com/video/NC3hW508SmI/v-deo.html
      2. 1949 마켓가든 기념식 아른헴, 전투 5년후 실제 작전 수행했던 베테랑들 참석.
      ua-cam.com/video/WHaqLCmza9U/v-deo.html
      3. 1954 마켓가든 기념식 아른헴, 작전 지휘했던 폴란드와 영국 공수부대 장군 참석
      제목 : The "Many" Honour The "Few" - Nijmegen And Arnham (1954)
      ua-cam.com/video/oNYQ0s5VFxo/v-deo.html
      영국 제1공수사단장 Roy Urquhart(숀커너리 역), 폴란드 소사보프스키 장군
      4.1944 마켓가든, 실제 전투 기록 영상
      ua-cam.com/video/3WWE8ZMfLSs/v-deo.html
      5. 2019 마켓가든 75주년 공수강하 4k
      ua-cam.com/video/gt3hmNx0hbw/v-deo.html
      6. 2019 마켓가든 75주년 공수강하
      ua-cam.com/video/2rVRXUmNE30/v-deo.html
      7. 마켓가든 그 때와 지금 : 44년 전투 당시 사진과 그 위치의 현재 사진 비교
      ua-cam.com/video/f2M-onQwmaU/v-deo.html
      8. 2019 마켓가든 75주년 기념 공수작전 낙하부대원들 기내 및 착륙. 기념식 포함
      ua-cam.com/video/qMr7oRB7UsY/v-deo.html
      9.1955 마켓가든 전사자의 아이들 75명, 아빠 잠든 아른헴 전사자 묘역 방문.
      ua-cam.com/video/AmeEV_xTF4w/v-deo.html
      10. 존 프로스트 중령 이름 딴 다리에서 출발, 영국 백파이프 행진 2019년
      ua-cam.com/video/xIf-zJ_E0Us/v-deo.html
      2019 백파이프 연주하면서 존 프로스트 중령 이름 딴 다리 출발 시내 행진하는 모습.
      패배한 전투라고 덮고 넘어가지 않고, 그 패배 속에서 더 빛나는 영웅들을 추모하는 것.
      저 백파이프 연주자 중에는 75년 전 노병인지는 모르겠는데 머리 하얀 노인들도 섞여 있습니다.
      찾게 되면 나중에 추가할 예정인데 폴란드군 역시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별도의 기념비도 있고.
      폴란드군만 참여하는 것이 아닌 영국 공수부대도 폴란드군 기념식에 함께 참여해서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실제 전투로 부터 가장 최근인 1945년 기념 영상도 찾게 되면 첨부하겠습니다. 전에 어디서 보긴 본 것 같은데.
      11. 30군단 아이리시 가드, 좁은 도로 전진 중 독일군 매복에 걸린 전투 분석 : 과거 전투 영상, 기록과 현재 지형 비교.
      ua-cam.com/video/T7UCLf7a-3k/v-deo.html
      매복 공격당해 격파당한 영국군 기갑 차량들 사진, 그 차량에서 숨진 전사자 이름 까지 나오는 분석
      과거 전투 기록 그것도 동영상 포함 많고, 수십년이 지나도 분석하는 민간인들이 있다는 것 부럽죠.
      정부와 군에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의 아마추어들이 이렇게 활동합니다.
      세계를 좌지우지 해봤거나 하고 있는 세력 공동체는 전쟁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그럴지도.
      12. 2014 아른햄 존 프로스트 다리를 방문해 헌화하는 노병들, 전투 70주년 기념식
      ua-cam.com/video/OBH9AA4OTAw/v-deo.html
      9번 동영상은 아른헴에서 전사한 공수부대원들의 아이들이 아빠 묘소를 찾는 영상입니다.
      영국 정부가 제공한 항공기로 네덜란드 방문해 묘소를 찾아 헌화하는 모습.
      전투에는 패해도 전쟁에는 지지않는 역사가 왜 일어났는지 위 동영상들을 보면 느낄겁니다.
      패배한 전투를 그냥 넘기지 않고 기억하는 자들만이 전쟁에서 승리할 자격이 있는 것이죠.
      마켓가든 교전국 피해 (현지 레지스탕스 피해 자료 못 구함)
      독일 : 전사 약 2,000명, 부상 약 8,000명 총 인명피해 약 10,000명 (포로 확인 못함)
      미국 : 전사 + 부상 약 3,600명 (전사 부상 따로 확인 못한, 포로 확인 못함)
      폴란드 : 전사 약 100명, 부상 약 300명 (포로 확인 못함)
      영국 : 총 인명피해 약 14,000명, 영 공수부대 사망 약 1,100명
      전사 마켓작전(공수부대) 약 1100명, 전사 가든작전(30군단) 약 5,400명, 영국 마켓가든 총전사 약 6,500명
      마켓가든 실종 약 850. 포로 약 6400(거의 공수부대), 영국 공수부대 인명피해 총 약 8,000명/투입병력 약 10,000명
      정리하면 대략
      독일측 총 인명피해 약 10,000명
      연합국 총 인명피해 약 18,000명, 독일측 피해의 대략 2배.
      영국 공수부대 피해율은 사상자 포로 도합 80% 에 이를 정도로 공수부대원들은 분투.
      작전계획 수립 단계에서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대패한 상태지만 전선 붕괴로 역전되거나 할 상황은 전혀 아님.
      아른헴 후방으로 영국군 100만, 미군 300만은 여전히 건재하고 마켓가든 공세 실패로 전선이 잠시 정체되는 정도.
      작전이 성공했으면 1944년 종전, 실패하게 되면 45년으로 미뤄지는 정도. 도박할 가치 있었지만 성급 부실했던 작전수행.
      미국이나 영국은 세계대전 상황에서도 이 정도 인명피해 당하면 어마어마한 손실로 여겨집니다.
      바바로사 초기 소련군이 당한 손실은 단일 전투에서도 50만 쉽게 넘어가고 포로 또한 가볍게 수십만이 넘죠.
      소련군이 공세를 취할 때도 전투는 승리해도 보통 독일군 보다 몇 배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세계대전 갈 필요도 없이 한국전쟁 때 우리 국군 전투 피해도 규모가 큰 경우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졸전 패배 없이 멋지게 승리만 하는 군대 없습니다.
      지난 수 백년간 지구상에서 가장 승률 높고, 결정적 승리를 거듭했던 군대 조차도,
      손가락질 당할만한 패배를 수 없이 겪으면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전쟁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패배가 미래의 승리가 될 수 있도록 세월이 흘러도 잊지 않고 기념하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 중요한 이유기도 하죠.
      영국과 영연방의 대규모 삽질 사례인 갈리폴리 상륙 작전은
      영국을 넘어 특히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안잭데이로 그들 전쟁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날로 추념됩니다.
      안잭데이 기념 중 특히 터키의 상륙지점에서 벌어지는 행사는 영-호-뉴-터키 함께 참여합니다.
      갈리폴리 전투는 터키에게도 상징성이 큽니다. 그 전투를 지휘했던 케말 파샤가 그 전투 승리를 기반으로
      패전한 오스만투르크를 대체하는 터키 공화국을 건설하게 되었으니까.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철수한 작전이지만, 호주나 뉴질랜드 입장에서는
      식민지 보호령이 아닌 독립된 군대로 함께 참전한 그들 국가 군대 정체성을 확립한 상징이 된 것이죠.
      아른헴 투입된 공수부대의 80%가 손실된 대패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손실을 당하면서도 전투를 수행한 공수부대원들의 희생은 수치가 아닌 명예입니다.
      물론 조건은 있습니다. 패배로 부터 전훈을 배워야만 하죠. 저들은 철저하게 그런 과정을 수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 @scz8333
      @scz8333 2 роки тому +3

      갈리폴리 영국이 패하고 거기서 철수했지만,
      오스만투르크는 소수의 영국 파견군에게 중동 각지에서 패배하고 최종 항복.
      저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아라비아의 로렌스, 반투르크 아랍반군 봉기를 유도하면서 소수의 영국군 투입으로 승리.
      저 때 사우디아라비아 등 현 아랍 왕국들이 오스만투르크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고, 팔레스타인-시리아-이라크 등은 위임통치령으로
      바뀌면서 오스만투르크는 현 터키 영토로 쪼그라 든 것. 2차대전 후에 위임통치령에서 이스라엘, 시리아, 이라크, 쿠웨이트 등이 독립.
      특히 쿠웨이트는 유전 밀집도가 매우 높은 지역이었는데 영국이 석유 이권 통제를 위해 의도적으로 이라크에서 떼어내 별도록 독립시킴.
      1990년 걸프전 이라크가 쿠웨이트 침공할 때, 애초 쿠웨이트는 이라크의 한 주였다면서 원래 자기 영토 찾겠다면서 침공.
      영국은 삽질해도 어지간해선 전쟁에서 안집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영국 보호령에서 독립국가로 나아간 계기. ANZAC DAY의 시작.
      갈리폴리 상륙지에서 해마다 열리는 기념 행사, 영-호-뉴-터 4개국 공동 행사로 열리며 호주와 뉴질랜드 독립 상징.
      다른 국가였다면 갈리폴리급 대규모 삽질했다면 분명 중동에서 완전 축출되었을 것. 하지만 영국은 정반대.
      갈리폴리 전투를 지휘했던 오스만투르크의 장군이 바로 케말 파샤.
      1차대전 패전 후 오스만투르크 왕정이 붕괴하고, 전쟁 영웅이었던 케말 파샤가 공화정 터키의 지도자가 됨.
      케말 파샤는 1차대전 패전에서 서구화 방식의 근대화를 선택했고, 알파벳 사용과 이슬람의 정치 간섭을 철저히 배제.
      그랬던 터키 공화국이 현 터키 대통령 취임과 함께 다시 이슬람 근본주의로 되돌아가고 있는 중. 이슬람화하는 터키를
      다시 케말파샤의 공화정으로 되돌리려했던 쿠데타 시도가 터키 국민들의 개입으로 실패하기도.
      오스만투르크의 1차대전 패전 트라우마로 인해,
      2차대전 초중반 승승장구하던 독일의 거듭된 동맹 요청에도 끝까지 거부하며 중립.
      갈리폴리에서 영국을 막아냈지만 결국 소수의 영국군에게 중동 지역에서 패배해 제국이 해체된 충격 때문임.
      전함 2척 때문에 1차대전 독일에 줄서고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해체당했다면 좀 이상하죠.
      즉 한 국가의 운명이 좌지우지 되는 상황에서 그 깟 전함 2척으로 결정이 되지는 않았을 것. 다른 더 결정적 요인들이 있는. (1차대전 터지고 영국이 투르크에 인도해야할 전함 2척 자국 함선으로 돌려 투르크가 삐져 독일편에 섰다는 주장.)
      1차대전 직전 독일과 영국의 중동 아프리카 정책이 가장 결정적일 것.
      독일의 3B 영국의 3C 정책. 독일의 베를린-비잔티움-바그다드. 비잔티움이 현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 바그다드는 이라크 영토.
      즉 1차대전 전 독일은 베를린에서 중부 유럽을 관통해 오스만투르크의 수도 및 바그다드 까지 철도 건설로 유혹하며 동맹 설득.
      오스만투르크 입장에선 이집트와 수에즈를 장악하고 오스만투르크를 위협하는 영국을 막기 위해 독일을 선택했을 수도.
      영국에 대한 트라우마는 터키만이 아니라 스페인도 강했죠.
      2차대전 초기 독일이 깃발 날릴 때, 지브롤타 점령을 위한 육상 통로를 내달라는 요청 끝까지 거부.
      독일이 제 아무리 승리하고 잘 나가도, 독일의 승리를 확신할 수 없었기에 독일과의 군사동맹과 침공로 통과 모두 거부.
      이유는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에게 격파된 이후에도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 시기 트라팔가에서 결정적 패배를 당한 충격.
      스페인 프랑코 총통은 중립지킨 행운으로 전후에 전범으로 처리되지 않았고.

    • @scz8333
      @scz8333 2 роки тому +2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정부와 군이 관련된 몇 가지 간단 소개할테니 찾아보고 마켓가든-갈리폴리와 비교해보길.
      자신을 모르면서 적도 몰랐던 경우는 머나먼 다른 나라 아닌 우리 내부에서도 숱하게 찾아 볼 수 있을테니.
      1. 국민방위군 사건
      보충역으로 소집된 국민방위군 약 50만 병력 중, 추정 약 10만 병력이 비전투 손실로
      51년초 한겨울 중공군 남하 당시 후퇴 행군 중에,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은 상상 초월한 사건.
      그것도 전시에 발생한 대규모 국방비리로 식량과 물자가 빼 돌려져 발생한.
      한국전쟁 발발 직전 전쟁 터지면
      점심은 개성, 저녁은 평양이라 자신만만했던 국군 장성들 일부는 전선 붕괴시켰고,
      수천 국군 부상병들이 서울 시내 병원에 흩어진 상태에서,
      대한민국 정부와 군은 국군이 승리하고 있다고 거짓 라디오 방송 틀어놓고 한강다리 끊고 잽싸게 튀어,
      북괴군 진주후에 상당수 부상병들이 처형되었던
      때로 부터 불과 6~7개월 정도 후에 벌어진 대규모 국방비리로 징집된 보충역 장병들이
      추정 10만 병력이 굶어죽거나 얼어죽은.
      마켓가든 인명피해와 비교해보길. 마켓가든 삽질과 질적으로 비교해보길.
      2. 보도연맹 사건
      한국전쟁 직전 해방정국에서 사상투쟁 승리위해
      전향시켰던 좌익인사들, 한국전쟁 터지자마자 대규모 체포 후 선제 예방 학살.
      정확한 희생자 기록은 없고 추정으로 희생자수는 10만 단위.
      일본군의 남경대학살, 관동대지진 후 조선인 학살과 달리 동족을 상대로
      예방 차원에서 저질러진 반인류적 전범행위로 21세기 현재 그런 일 일어나면 인류의 이름으로 전범 처리될 것.
      3. 휴전 직후 귀환한 우리 국군포로들의 심문 과정에서 일부 사망 사건.
      한국전쟁 때 북에 포로가 되었던 우리 국국 포로들 대부분은 남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포로 석방 선언하자, 북은 포로 대다수는 이미 사망했다면서 극히 일부의
      포로들만 남으로 송환 조건으로 자유포로 거부한 북한군 포로와 교환.
      그렇게 어렵게 겨우 살아돌아온 우리 국군포로들은 그리운 가족과 고향으로 간 것이 아닌.
      한국전쟁 기간 중 북괴 포로 수용하던 수용소에 갇혀서 북에서 사상교육 전향한 이후 남으로 파견된
      간첩 여부 심문당해. 일부 국군 포로들은 그 과정에서 사망. 말로만 심문한 것이 아니었으니 저런 일 발생.
      자국 군대로 참전해 적에게 포로가 되었다 겨우 살아돌아온 군인들을
      저렇게 대하는 국가와 군이 과연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는 국가와 군일지 의문이 드는.
      자신을 모르고, 적도 모르면 백전백패한다는 교훈 우리가 더 시급한.
      님이 저 교훈으로 훈수둔 지도자, 국가, 군은 지난 수백년 누적 기록상 인류 최고 승률의 무시무시한 세력.
      냉정히 생각해보길.

    • @Like-thewind-blowing
      @Like-thewind-blowing 2 роки тому

      @@scz8333 님의 식견과 혜안에 존경심이 듭니다~!

    • @bravo.223
      @bravo.223 Рік тому +1

      당시 총리가 갈리폴리에서 아~

  • @liberte94
    @liberte94 2 роки тому +17

    몽고메리가 대전 막바지 개인의 전공과 미군에 승리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공명심에 벌인 지옥의 카니발이라고 밖에 볼 수없었죠.

  • @ilililillli5286
    @ilililillli5286 2 роки тому +47

    곳곳에 강과 늪지대, 숲이 있고 교각과 시가지 마다 독일군으로 가득찬 네덜란드에서 북아프리카식 대규모 쾌속진격을 상상한 몽고메리의 환상적인 전-략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4 місяці тому +3

      전략이 아닌 지랄입니다.
      오죽하면 저 작전을 처음 이야기했을때
      브래들리 원수가
      '술을 한 방울도 못마시는 몽고메리가 만취해서 들어왔어도
      그보다 더 놀라지는 않았을거다.'
      할 정도로
      진짜 몽고메리가 머리가 고장이 난 것이 아니면
      모르핀을 과다투여해서 실성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고 하니...........

  • @user-vw7eg6tl8j
    @user-vw7eg6tl8j 2 роки тому

    덕분에 즐감하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 @yjg0522
    @yjg0522 2 роки тому +16

    진짜...내가 유튜브를 보면서 무비도치를 구독했다는건 너무나 큰 행운이자 행복이네요...ㅠㅠ

  • @user-uf8lc6kg3s
    @user-uf8lc6kg3s 2 роки тому +35

    11:15 목숨걸고 가져오다가 전사했는데 그 보급품은 정말 쓸모없는 베레모....

    • @sooki1
      @sooki1 2 роки тому +4

      씨발 ㅜㅠㅜㅜ

    • @eb_u
      @eb_u 2 роки тому +2

      진짜 지저스 크라이스트 ㅠㅠㅠ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4 місяці тому +2

      @@eb_u 영어에서 신과 에수를 뜻하는 말은
      동시에 욕설
      그것도 지독한 욕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개새끼, 소새끼 이상의
      지독한 욕설이라고...........

  • @boseong09
    @boseong09 2 роки тому +5

    3:36 이 영상을 본 것 같았는데 역시 재편집 하셨군요. 이지중대 언급이 기억났어요 ㅋㅋㅋ

  • @starchickennet
    @starchickennet 2 роки тому +2

    리뷰 초반부터 어디서 봤던건데 했는데 재업로드 영상이였군요 ^^

  • @user-di8ti4tr7i
    @user-di8ti4tr7i 2 роки тому

    재미있는 영화 감사합니다.

  • @user-lu1ej5dg9k
    @user-lu1ej5dg9k 2 роки тому +5

    어쨌든 실제 전쟁처럼 엄청난 영화네요 리뷰만 보는데도 대작이라는것이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 @mikeryu61
    @mikeryu61 2 роки тому +3

    나는 이 영화를 전쟁영화로서 명작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내가 이 영화를 관람했던 것은 1978 년이었고, 아마도 영등포의 경원 극장에서 봤던 것 같습니다. (극장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나는 원래 전쟁 영화 광이었고, 그래서 약간의 기대를 안고 보러 갔다가 엄청난 실망만 안고 돌아왔죠.
    나의 문제점은 내가 처음 전쟁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은 영화가 워털루라는 영화였어요. 이게 소련 영화인데도 한국에서 개봉이 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개봉관이 아닌 재개봉관에서 상영되었습니다. 서방세계에 대한 판권은 컬럼비아 사에서 갖고 있었나 봅니다.
    당시 재개봉관이라고 하더라도 요즘 멀티플렉스 관들의 스크린보다 큽니다.
    1973 년도에 극장에서 본 워털루라는 영화는 신세계였죠.
    제가 분류하는 전쟁영화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전쟁을 다루는 스펙타클한 영화 또 하나는 군인들이 주인공이면서 그들의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전쟁을 통해서 보여주는 영화 이렇게 분류합니다.
    즉, 전쟁영화는 스펙타클한 전쟁영화, 드라마틱한 전쟁 영화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머나먼 다리라는 영화는 전형적인 드라마틱한 전쟁영화죠.
    드라마틱한 전쟁 영화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이라서 전쟁 그 자체에 대한 설명은 무시되기 마련입니다.
    워털루라는 영화를 보면, 거기에 동원된 엑스트라 숫자가 거의 10 만에 육박합니다.
    영화를 찍을 때 수 많은 병사들이 전투하는 장면을 만들 때, 예를 들어서 1 개 사단 1 만명이 상륙을 한다는 장면이라고 하더라도 엑스트라를 약 200 ~ 300 명 쯤만 동원해도 스크린 상에 엄청난 숫자로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가령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오마하 해변을 상륙하는 장면을 보며 해변의 특정 장소에서 수 십명의 병사가 죽거나 다치는데 그 뒤 배경으로도 계속 끝없이 병사들이 해변을 향해 가는 장면들이 보입니다. 프레임으로 다 담을 수 없어서 그렇지, 보는 관객이 느낄 때는 그 프레임의 옆. 앞, 뒤 또 그 너머도 해변이 몇 Km나 이어지기 때문에 만 명 쯤 되는 병사가 상륙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느끼게 하는데 있어서 드라마가 중심이기 때문에 그게 가능하죠.
    그러나 스펙타클한 장면을 찍고 싶은 연출가는 특정 장소 특정장면의 드라마를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사단의 상륙 모습 전체를 조망하여 카메라에 담습니다. 공중이나 먼 산의 정상에서 바라보는 모습들을 담아내죠(당근 드라마는 없습니다.). 이런 스펙타클한 영화를 만드는 것은 그 동원 능력 이상의 능력이 필요한데, 마치 전체 사령관이 전체 작전을 어떻게 끌고 가고 있는가를 연출가가 이해하여야만 가능한 장면입니다. 어떤 부대는 포를 끌어내리고 있으며, 어떤 부대는 옹기종기 모여서 포격을 피해 숨어 있는 보병이며, 어떤 군수담당은 탄약과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드라마틱한 전쟁 영화는 스펙타클한 전쟁영화에 비해서 전쟁성이 많이 떨어집니다.
    전쟁을 하는데 있어서 작전과 전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중에 주인공은 그 중의 어느 한 부분에서 뭔가 드라마틱한 장면을 끼워 놓아야 진정한 전쟁 영화인 것입니다.
    워털루에서 가장 극적인 전쟁 장면이 있는데 이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의 최고 부대는 1만 8 천 명의 기병대입니다. 나폴레옹이 지휘 중 너무 머리가 아파서 잠시 쉬고 있을 때 기병대 장군이 독단으로 돌격을 시킵니다. 영국군의 본진을 향해 진격합니다. 1 만 8 천 기병이 천둥소리를 내며 질주하죠. 그 장관은 잊을 수가 없지요. (진짜로 그 정도되는 숫자가 동원되었습니다.)
    영국군 포병이 포격을 가합니다. 많은 손실을 입지만 그래도 가장 용감한 부대이기때문에 끝까지 돌격합니다. 이제 곧 영국 포병대는 박살이 날 예정입니다. 그런데 영국군 포병대 앞에는 커다란 도랑을 파 놨습니다. 그 도랑은 프랑스 진영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기병대가 도랑을 만나서 엄청난 숫자가 거꾸러집니다. 여기서 또 많은 손실을 봅니다. 그래도 살아남은 많은 숫자의 기병대들이 결국 영국 포병대를 아작내죠.
    그 이후 영국 보병대를 만납니다.
    프랑스 기병들이 쳐들어 오기 때문에 영국군 보병대는 방진 대형을 하고 있습니다. 머스켓 시절 방진대형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위에서 내려다 보면 사각형의 방진을 짭니다. 한 면은 4 줄 정도 되고요, 한 면은 적어도 100 명 이상입니다. 하나의 방진대형에 대략 500 명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방진이 10 개도 넘게 평원에 펼쳐져 있지요.
    넓은 평원에 펼쳐진 영국군 보병 방진대형들 사이 사이로 프랑스 기병대가 쳐들어갑니다. 대략 1 만명 정도입니다.
    이 장면을 어떻게 촬영했을까요? 공중에서 촬영합니다.
    감독이 레디 액션을 외치면서 찍는 영화가 아닙니다. 높은 하늘 위에서 대략 1 만 명이 넘는 푸른 색 프랑스 기병대가 대략 6000 명이 넘는 영국군 보병대와 전투를 하는 이 압권은 제가 영원히 잊지 못하는 장면이죠.
    아무 설명없고, 대사가 없어도 전쟁영화 광으로서 전열 보병 전투 말고 기병 포병 보병의 전투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실제 모습과 똑 같은 모습으로 말이죠.
    소련 영화는 원래 그 전통이 극사실주의로 모든 것을 똑같이 재현한다는 데에 목숨걸고 합니다. 그 점이 정말 좋죠.
    미국이 만든 스펙타클한 영화가 있습니다. 지상 최대의 작전입니다. 이 영화도 스팩타클이 기본이고 각각의 명 배우들이 나오는 특정 장면에만 드라마가 들어 있습니다.
    이 영화도 어마어마한 물량이 투입되어 있고, 수 많은 부대들이 어떤 작전과 전투 교리에 의해서 전투가 이루어지는 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런 영화가 전쟁영화입니다.
    배늗오브브라더스는 분면 중대전투 중대전술 교리를 보여 줄 수 있는 영화인데 그런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밴드오브 브라더스는 그 자체가 아예 영화가 아니고 드라마입니다. 미드라고 하는.
    리들리 스콧이라는 감독이 이런 부분에 대단하신 분인데, 그가 만든 로빈 훗이라는 영화 도입부에서 영국왕이 프랑스 왕의 성을 공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 역시 활과 창과 칼로 싸우던 시대에 성을 어떻게 공략해서 점령하는 지 그 작전을 잘 보여 줍니다.
    그는 킹덤오브헤븐에서 역시 엄청난 공성전 장면을 보여줍니다. 당시에 이슬람의 슐탄이 사용한 공성 작전을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풀메탈 자켁이라는 영화에서 마지막 부분은 분대 전투의 장면을 잘 보여주고 있죠. 스펙타클하지 않더라도 전투, 작전, 교리를 잘 설명해 주는 영화와 그저 총이나 쏘고 돌격하는 이런 무성의한 영화에는 점수를 줄 수가 없어요.
    죄송한 말이지만, 머나먼 다리라는 영화에는 스펙타클한 장면도 공수부대 작전 교리나 독일군이 사용한 기갑 전술같은 것들에 대한 설명도 없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런 것을 잘 모르므로) 적당히 싸우는 장면만 넣은 그런 영화입니다.
    그러니 전쟁영화로서 명작이라는 말에는 동의를 할 수가 없군요.

  • @user-mb3wh8ig7x
    @user-mb3wh8ig7x 2 роки тому +2

    어릴적 티브이 명화에서 주말 재방송으로 몇번을 봤지만 볼때마다 감탄했던 밀리터리에 관심을 갖게 한 영화!~^^

  • @GoodBoy-wd9iy
    @GoodBoy-wd9iy 2 роки тому +8

    병사들의 훈련도가 높아도 나쁜 작전에 투입되면 전투력을 제대로 낼 수 없군요.

  • @donema9958
    @donema9958 2 роки тому +1

    맥주 한 잔 하며 주말을 맞이하기 좋은 무비도치의 영상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5 місяців тому +1

    저 영화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자
    전쟁의 허무함
    그리고
    그런 전쟁에서 명령을 따르다 죽어야하는 군인들의 절망이 잘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공수부대에게 보급을 하는 수송대의 보급품이
    다 독일 진영에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못하던 공수부대원 중
    보급품 컨테이너 하나가
    그래도 가까이 떨어지니까
    그것을 회수하겠다고
    한 병사가 목숨을 걸고 달려가서
    간신히 회수를 해서 본진으로 돌아오다가
    저격수의 총탄에 죽을 때
    그 모습을 처음부터 보던 다른 병사가
    기대감이 넘치는 모습에서
    그 컨테이너 내의 내용물이 뭔지를 확인한 뒤
    순식간에 절망과 분노가 뒤섞인 일그러진 모습으로
    '........하나님 맙소사.....'
    하면서
    고개를 돌려버리는 모습.......
    그리고
    바로 다음에 나오는 장면이
    그 병사가 가져오려다가 결국 못 가져온 보급품 컨테이너의 내용물이
    전투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베레모였다는 것은 진짜.............

  • @threecolor342
    @threecolor342 2 роки тому +5

    17:17 ㅋㅋㅋㅋㅋ (침착한 목소리로) 살인면허가 필요해보입니다.

  • @sinchong8
    @sinchong8 2 роки тому +3

    나 이거 DVD 가지고 있음. 이 영화하고 전쟁과 평화, 벤허, 게티스버그 등등, 이런 영화들은 진짜 보고 보고 또봐도 진정한 명작들이다.

  • @rokafis535
    @rokafis535 2 роки тому +13

    몽고메리가 암만 다른것 잘했어도 이런 삽질과 패튼과의 갈등 등으로 욕처먹는거 보면 세탁한번 잘했다는 생각밖에 안들죠.

    • @LuftUberSoldat
      @LuftUberSoldat 2 роки тому

      애초에 책쓴거밖에 업적이 없음
      1차대전 장수

  • @someguyawe230
    @someguyawe230 2 роки тому +3

    쿡소령 로버트 레드포드 소개도 해주셨음 좋았을 텐데요.. 그래도 '머나먼 다리'를 다룬 영상들 중에 가장 핵심을 잘 뽑아 편집해 주신 것 같습니다 👍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4 місяці тому +1

      그런데 실제로 쿡 소령은 저런 식으로 강을 건너지 않았다는 것이 진실..............

  • @user-yq7yj7mf5o
    @user-yq7yj7mf5o 2 роки тому +1

    80년대부터 tv에서 꾸준히 방송했었죠... 대학생때는 지도 펴 놓구 영화 보기 시작했습니다..

  • @sg-rh5br
    @sg-rh5br 2 роки тому +7

    영국 몽고메리 장군의 최대 실패작전........허황된 마켓가든 작전으로 인해서 소중한 병력 수만명이 사망하고 어마어마한 물자를 허망하게 말아 먹은 작전이다......

    • @scz8333
      @scz8333 2 роки тому +1

      1. 2019 마켓가든 75주년, 아른헴 : 3번 동영상은 1954 폴란드 소사보프스키 장군, 영국 숀커네리역 장군 참석.
      ua-cam.com/video/NC3hW508SmI/v-deo.html
      2. 1949 마켓가든 기념식 아른헴, 전투 5년후 실제 작전 수행했던 베테랑들 참석.
      ua-cam.com/video/WHaqLCmza9U/v-deo.html
      3. 1954 마켓가든 기념식 아른헴, 작전 지휘했던 폴란드와 영국 공수부대 장군 참석
      제목 : The "Many" Honour The "Few" - Nijmegen And Arnham (1954)
      ua-cam.com/video/oNYQ0s5VFxo/v-deo.html
      영국 제1공수사단장 Roy Urquhart(숀커너리 역), 폴란드 소사보프스키 장군
      4.1944 마켓가든, 실제 전투 기록 영상
      ua-cam.com/video/3WWE8ZMfLSs/v-deo.html
      5. 2019 마켓가든 75주년 공수강하 4k
      ua-cam.com/video/gt3hmNx0hbw/v-deo.html
      6. 2019 마켓가든 75주년 공수강하
      ua-cam.com/video/2rVRXUmNE30/v-deo.html
      7. 마켓가든 그 때와 지금 : 44년 전투 당시 사진과 그 위치의 현재 사진 비교
      ua-cam.com/video/f2M-onQwmaU/v-deo.html
      8. 2019 마켓가든 75주년 기념 공수작전 낙하부대원들 기내 및 착륙. 기념식 포함
      ua-cam.com/video/qMr7oRB7UsY/v-deo.html
      9.1955 마켓가든 전사자의 아이들 75명, 아빠 잠든 아른헴 전사자 묘역 방문.
      ua-cam.com/video/AmeEV_xTF4w/v-deo.html
      10. 존 프로스트 중령 이름 딴 다리에서 출발, 영국 백파이프 행진 2019년
      ua-cam.com/video/xIf-zJ_E0Us/v-deo.html
      2019 백파이프 연주하면서 존 프로스트 중령 이름 딴 다리 출발 시내 행진하는 모습.
      패배한 전투라고 덮고 넘어가지 않고, 그 패배 속에서 더 빛나는 영웅들을 추모하는 것.
      저 백파이프 연주자 중에는 75년 전 노병인지는 모르겠는데 머리 하얀 노인들도 섞여 있습니다.
      찾게 되면 나중에 추가할 예정인데 폴란드군 역시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별도의 기념비도 있고.
      폴란드군만 참여하는 것이 아닌 영국 공수부대도 폴란드군 기념식에 함께 참여해서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실제 전투로 부터 가장 최근인 1945년 기념 영상도 찾게 되면 첨부하겠습니다. 전에 어디서 보긴 본 것 같은데.
      11. 30군단 아이리시 가드, 좁은 도로 전진 중 독일군 매복에 걸린 전투 분석 : 과거 전투 영상, 기록과 현재 지형 비교.
      ua-cam.com/video/T7UCLf7a-3k/v-deo.html
      매복 공격당해 격파당한 영국군 기갑 차량들 사진, 그 차량에서 숨진 전사자 이름 까지 나오는 분석
      과거 전투 기록 그것도 동영상 포함 많고, 수십년이 지나도 분석하는 민간인들이 있다는 것 부럽죠.
      정부와 군에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의 아마추어들이 이렇게 활동합니다.
      세계를 좌지우지 해봤거나 하고 있는 세력 공동체는 전쟁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그럴지도.
      12. 2014 아른햄 존 프로스트 다리를 방문해 헌화하는 노병들, 전투 70주년 기념식
      ua-cam.com/video/OBH9AA4OTAw/v-deo.html
      9번 동영상은 아른헴에서 전사한 공수부대원들의 아이들이 아빠 묘소를 찾는 영상입니다.
      영국 정부가 제공한 항공기로 네덜란드 방문해 묘소를 찾아 헌화하는 모습.
      전투에는 패해도 전쟁에는 지지않는 역사가 왜 일어났는지 위 동영상들을 보면 느낄겁니다.
      패배한 전투를 그냥 넘기지 않고 기억하는 자들만이 전쟁에서 승리할 자격이 있는 것이죠.
      마켓가든 교전국 피해 (현지 레지스탕스 피해 자료 못 구함)
      독일 : 전사 약 2,000명, 부상 약 8,000명 총 인명피해 약 10,000명 (포로 확인 못함)
      미국 : 전사 + 부상 약 3,600명 (전사 부상 따로 확인 못한, 포로 확인 못함)
      폴란드 : 전사 약 100명, 부상 약 300명 (포로 확인 못함)
      영국 : 총 인명피해 약 14,000명, 영 공수부대 사망 약 1,100명
      전사 마켓작전(공수부대) 약 1100명, 전사 가든작전(30군단) 약 5,400명, 영국 마켓가든 총전사 약 6,500명
      마켓가든 실종 약 850. 포로 약 6400(거의 공수부대), 영국 공수부대 인명피해 총 약 8,000명/투입병력 약 10,000명
      정리하면 대략
      독일측 총 인명피해 약 10,000명
      연합국 총 인명피해 약 18,000명, 독일측 피해의 대략 2배.
      영국 공수부대 피해율은 사상자 포로 도합 80% 에 이를 정도로 공수부대원들은 분투.
      작전계획 수립 단계에서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대패한 상태지만 전선 붕괴로 역전되거나 할 상황은 전혀 아님.
      아른헴 후방으로 영국군 100만, 미군 300만은 여전히 건재하고 마켓가든 공세 실패로 전선이 잠시 정체되는 정도.
      작전이 성공했으면 1944년 종전, 실패하게 되면 45년으로 미뤄지는 정도. 도박할 가치 있었지만 성급 부실했던 작전수행.
      미국이나 영국은 세계대전 상황에서도 이 정도 인명피해 당하면 어마어마한 손실로 여겨집니다.
      바바로사 초기 소련군이 당한 손실은 단일 전투에서도 50만 쉽게 넘어가고 포로 또한 가볍게 수십만이 넘죠.
      소련군이 공세를 취할 때도 전투는 승리해도 보통 독일군 보다 몇 배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세계대전 갈 필요도 없이 한국전쟁 때 우리 국군 전투 피해도 규모가 큰 경우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졸전 패배 없이 멋지게 승리만 하는 군대 없습니다.
      지난 수 백년간 지구상에서 가장 승률 높고, 결정적 승리를 거듭했던 군대 조차도,
      손가락질 당할만한 패배를 수 없이 겪으면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전쟁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패배가 미래의 승리가 될 수 있도록 세월이 흘러도 잊지 않고 기념하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 중요한 이유기도 하죠.
      영국과 영연방의 대규모 삽질 사례인 갈리폴리 상륙 작전은
      영국을 넘어 특히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안잭데이로 그들 전쟁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날로 추념됩니다.
      안잭데이 기념 중 특히 터키의 상륙지점에서 벌어지는 행사는 영-호-뉴-터키 함께 참여합니다.
      갈리폴리 전투는 터키에게도 상징성이 큽니다. 그 전투를 지휘했던 케말 파샤가 그 전투 승리를 기반으로
      패전한 오스만투르크를 대체하는 터키 공화국을 건설하게 되었으니까.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철수한 작전이지만, 호주나 뉴질랜드 입장에서는
      식민지 보호령이 아닌 독립된 군대로 함께 참전한 그들 국가 군대 정체성을 확립한 상징이 된 것이죠.
      아른헴 투입된 공수부대의 80%가 손실된 대패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손실을 당하면서도 전투를 수행한 공수부대원들의 희생은 수치가 아닌 명예입니다.
      물론 조건은 있습니다. 패배로 부터 전훈을 배워야만 하죠. 저들은 철저하게 그런 과정을 수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 @scz8333
      @scz8333 2 роки тому

      마켓가든 전사자 다시 확인해보길.
      영국군은 사실 어지간해선 잘 죽지 않습니다.
      마켓가든 당시 마켓 영공수부대 전사 1,100명, 가든 영30군단 전사 5,400명.
      마켓가든에서의 모든 연합국 총 인명손실, 즉 영 + 미 + 폴 의 전사 + 행불 + 포로 총합 = 약 18,000명.
      마켓가든 인명피해에서 영 공수부대 포로 약 6,400명.
      마켓가든 실패했지만, 그 실패라는 것도
      독일 본토 침공로 뚫지 못해 44년에 종전되지 않았다는 측면.
      즉 패했다고 전선 붕괴되어 영국군이 다시 영불해협으로 밀려나는 위기 맞이한 것도 아닌.
      영국군 진격이 아른햄에서 멈추고 늘어진 보급 문제로 공세가 몇 개월 후인 45년 초로 늦춰진 정도.
      다른 나라의 대패는 대체로 전선 붕괴를 동반합니다.
      1차대전 영국의 어마무시한 삽질 갈리폴리 상륙 실패, 거기선 철수했지만
      영국군은 팔레스타인 등에 투입되어 오스만투르크를 패배시켰고 결국 투르크는 항복했습니다.
      다른 국가라면 갈리폴리급 패전을 당하면 중동에서 완전 축출되었겠지만 영국은 전혀 달랐죠.
      마켓가든 수만명 사망 전혀 아닙니다.
      사상 최대의 패배를 마켓가든식으로 당하는 국가와 군이라면 무시무시한 것.
      2차대전 영국 사망자, 독일의 폭격으로 사망한 영 본토의 민간인
      사망자 까지 합해도 45만 정도입니다. 민간인 희생자 몇 만 제외하면 영국군 전사자는 더 줄어들죠.
      영국 미국 공습으로 사망한 독일 사망자 수가 대략 60만으로 영국의 전체 사망자 수 보다 많은.
      몽고메리의 최대 실패 작전 맞습니다.
      하지만 최대 실패 작전의 인명 피해가 저 정도면 사실 2차대전에서 명함도 못내밉니다.
      바바로사 초기 소련군은 1개 전투에서 가볍게 수십만 단위 전사 및 포로 또한 여차하면 50만 단위로 발생.
      독일군 역시 전쟁 후반부 소련의 공세인 바그라티온 작전 때 아예 중부 집단군 자체가 소멸해버리고.
      2차대전 직후 터진 한국전쟁에서,
      중공군 남하 당시 소수의 영국군이 보인 전투력과,
      중공군 공세에 전선붕괴 되어버린 우리 국군 전투력은 비교 불가입니다.
      세계대전 아닌 국지전 한국전쟁에서 남북의 민간인 포함한 희생은 2차대전 영국 인명피해 추월하고.
      지난 수백년 단 1번의 예외 미국독립전쟁 제외하면 전쟁에서의 패배가 없는.
      상대적으로 소규모 병력을 투입하면서, 교전국 중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경미한 피해를 당하면서,
      하지만 가장 치명적 결정적 승리를 거듭했던 영국이기에
      ------------------------> 마켓가든이 욕 먹는 것.
      ------------------------> 트라팔가-워털루와 같이 그 뒤 100년의 역사를 결정짓는 전투에 비하면 너무 졸전이라.

    • @scz8333
      @scz8333 2 роки тому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정부와 군이 관련된 몇 가지 간단 소개할테니 찾아보고 마켓가든-갈리폴리와 비교해보길.
      자신을 모르면서 적도 몰랐던 경우는 머나먼 다른 나라 아닌 우리 내부에서도 숱하게 찾아 볼 수 있을테니.
      1. 국민방위군 사건
      보충역으로 소집된 국민방위군 약 50만 병력 중, 추정 약 10만 병력이 비전투 손실로
      51년초 한겨울 중공군 남하 당시 후퇴 행군 중에,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은 상상 초월한 사건.
      그것도 전시에 발생한 대규모 국방비리로 식량과 물자가 빼 돌려져 발생한.
      한국전쟁 발발 직전 전쟁 터지면
      점심은 개성, 저녁은 평양이라고 자신만만했던 국군 장성들 일부는 전선 붕괴당했고,
      수천 국군 부상병들이 서울 시내 병원에 흩어진 상태에서,
      대한민국 정부와 군은 국군이 승리하고 있다고 거짓 라디오 방송 틀어놓고 한강다리 끊고 잽싸게 튀어,
      북괴군 진주후에 상당수 부상병들이 처형되었던
      때로 부터 불과 6~7개월 정도 후에 벌어진 대규모 국방비리로 징집된 보충역 장병들이
      추정 10만 병력이 굶어죽거나 얼어죽은.
      마켓가든 인명피해와 비교해보길. 마켓가든 삽질과 질적으로 비교해보길.
      2. 보도연맹 사건
      한국전쟁 직전 해방 정국에서 사상투쟁 승리위해
      전향시켰던 좌익인사들, 한국전쟁 터지자마자 대규모 체포 후 선제 예방 학살.
      정확한 희생자 기록은 없고 추정으로 희생자수는 10만 단위.
      일본군의 남경대학살, 관동대지진 후 조선인 학살과 달리 동족을 상대로
      예방 차원에서 저질러진 반인류적 전범행위로 21세기 현재 그런 일 일어나면 인류의 이름으로 전범 처리될 것.
      3. 휴전 직후 귀환한 우리 국군포로들의 심문 과정에서 일부 사망 사건.
      한국전쟁 때 북에 포로가 되었던 우리 국국 포로들 대부분은 남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포로 석방 선언하자, 북은 포로 대다수는 이미 사망했다면서 극히 일부의
      포로들만 남으로 송환 조건으로 자유포로 거부한 북한군 포로와 교환.
      그렇게 어렵게 겨우 살아돌아온 우리 국군포로들은 그리운 가족과 고향으로 간 것이 아닌.
      한국전쟁 기간 중 북괴 포로 수용하던 수용소에 갇혀서 북에서 사상교육 전향한 이후 남으로 파견된
      간첩 여부 심문당해. 일부 국군 포로들은 그 과정에서 사망. 말로만 심문한 것이 아니었으니 저런 일 벌어진.
      자국 군대로 참전해 적에게 포로가 되었다 겨우 살아돌아온 군인들을
      저렇게 대하는 국가와 군이 과연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는 국가와 군일지 의문이 드는.

  • @seoulin6925
    @seoulin6925 2 роки тому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좋습 니다!!! GOOD!!!
    고맙습니다!!!THANKs!!!

  • @javrick1
    @javrick1 2 роки тому +3

    이전에 네델란드 아른헴에 갔을때 아른헴다리 옆에 조그만 기념관이 있던데 아른헴 다리는 연합군이 결국 파괴 해버렸고 지금의 아른헴다리는 새로 지은것이라더군요 . 약간 떨어잔 곳에 영국 1공수부대원들 묘지들도 있어서 들려볼만합니다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4 місяці тому +2

    저 작전 때문에
    미 82 공수사단의 모토는
    '뭐든지 할 수 있다!' 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사실........
    공수부대가 맨몸으로 보트를 타고 적진에 상륙작전을 벌인 경우는
    저 상황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하니까 말입니다.
    실제로
    저 나이메겐 도하작전에 투입된 줄리안 쿡 소령(로버트 레드포드) 도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건 말 그대로
    우리보고 맨몸으로 오마하 비치에 상륙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이군.....
    세상에
    공수부대가 보트를 타고 도하작전을 벌인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나 있나?'
    그리고 여담으로
    보트를 타고 갈 때
    줄리안 쿡 소령이 한
    '성모 마리아여. 보살피소서.'
    하는 말은 실제였다고 합니다.
    그 말을 구령삼아서 노를 저어갔다고...........

  • @user-J-dragon
    @user-J-dragon 9 місяців тому +2

    결국 영국은 마켓가든에 갇혀 고사할 위기에 처하고 미군 101 공수사단의 하드캐리로 마켓가든의 미스터 갈리폴리의 실책을 만회했죠

  • @sun-2311
    @sun-2311 2 роки тому

    이것도 한 10번은 본듯 명작입니다

  • @user-py6kd7ft9d
    @user-py6kd7ft9d 2 роки тому +5

    조지클루니가 울고 갈만큼 배우들이 다 잘 생겼네..

  • @threecolor342
    @threecolor342 2 роки тому +3

    12:33 오우 브래드 피트인줄 영화 "라스트 캐슬"에서 장군 역을 맡았던 로버트 레드퍼드군요! 리즈시절 심상치 않았네요

  • @pedrogim6952
    @pedrogim6952 Рік тому +2

    에인트 호벤 아닙니다. '아인트 호벤'입니다.
    서방 연합군이 2차 대전 당시 서유럽(서부전선)에서 완패 할 수 도 있었던 변곡점 중 최대의 변곡점이 된 전투 연합군 지상 최대의 실패작전입니다.
    영국 공수부대를 '붉은 악마(Red Devils)'라고 합니다. 2002월드컵에서 사용한 단어보다도 수십년이나 앞서서 영국공군 공수부대가 사용한 단어이며, 영국군 공수부대가 가질 별칭으로서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 적군인 독일공군 공수부대 팔쉬름예거(Fallschirmjäger:강하엽병)를 지칭하던 푸른악마(grünen Teüfel: 그뤼넨 테위펠)에서 영감을 받은 것 이라고 함
    미,영,소 연합군부대들끼리 자존심을 걸고 경쟁 하듯이 레이스 처럼 펼쳐진 무리한 작전으로 누가 먼저 베를린 점령의 주인공이 될까!!를 두고벌인 이른바''베를린 마라톤''서막은 사막의 여우 롬멜을 이겼다고 기세등등하던(노르망디 상륙 후 굿 우드 작전도 겨우 끝냈던 실력이 형편 없던 내복장군) 내복장군 몽고메리가 아이젠하워 서방 연합군 총사령관에게 입안하고 제안하고
    독일군 포병대의 포탄이 빛 발치는 아른헴 대교를 사이에 둔 라인강을 밤새 맨몸으로 도강한 후 1만명의 병력중 살아남은 7천 여명 중 송장과도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이들속에서 존 프로스트 중령의 부하들은 단1명도 없었고
    존 프로스트 대대의 유일한 생존자는 오직 존 프로스트 중령 단1명뿐

  • @highcollars1
    @highcollars1 Рік тому

    캐스팅대박이네요 러브액추얼리같은

  • @17memphisbelle
    @17memphisbelle 2 роки тому +1

    12:21 로버트 레드포드 젊은 시절 마치 브레드 피트 느낌인데

  • @victorgim4046
    @victorgim4046 2 роки тому +5

    노르망디 상륙작전 어렵게 성공하고 후에 저런 뻘짓 했다는게 참...

  • @Gladiator2020
    @Gladiator2020 2 роки тому

    실화이자 명화중위 명화
    20번도 더봤습니다.

  • @aljja88ify
    @aljja88ify 2 роки тому +2

    45년전 영화임에도 CG가 없는 실사로 채워져 있다니.. 45년전 영화니까 당연히 CG가 없지요

  • @LS-oq3qh
    @LS-oq3qh 2 роки тому +3

    저는 개인적으로 "블랙 호크 다운"을 보면서 영화 이야기 구조나 주제가 "머나먼 다리"하고 굉장히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JW-wq7vq
    @JW-wq7vq 2 роки тому +11

    몽고메리가 기획한 작전인데 패전의 책임은 힘없는 폴란드 장성에 다 뒤집어 씌우는 비겁함..... 복권이 되었다고 하지요

  • @kunqing4350
    @kunqing4350 Рік тому +2

    출연진들 개개인 면면이 다 매이져 영화의 주연급들 배우들이고 그 젊은 시절을 볼 수 있어서 좋은 영화였고 연기들을 정말 잘한다고 느낀 영화여서 굳 !

  • @HUNTELLAR
    @HUNTELLAR 2 роки тому +3

    영국매니아에게 정말 귀중한 자료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4 місяці тому +1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
    다리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영국 공수사단의 잔존 부상병들이 구슬프게 노래를 할 때
    그들을 포로로 잡으러 온 독일군들이
    작은 '다리' 를 건너오는 부분을 보면.............
    이 영화의 제목인 머나먼 다리와 왠지 모르게 맞물린다는 생각이............
    영국군은 너무 먼 다리를 오지 못했지만
    독일군은 진짜 가까운 다리를 건너서 온다는 생각이 들어서............

  • @tjlee9308
    @tjlee9308 2 роки тому

    지금 만들래도 못만드는 영화네요~
    82공수사단 로버트 레드포드 설명이 빠졌네요^^

  • @user-bq5dn1kl6o
    @user-bq5dn1kl6o Рік тому

    이영화를 국도극장에서인가 개봉했을때 봤는데..중딩시절.ㅡ늘 이기는 전쟁영화만 보다가..마지막에 이게 뭐야 진거야..하며 혼란에 빠지게 했던 영화.그때는 어려서 몰랐지만 나중에 전사를 읽고 배우고 나서야 아니 이런 삽질을!

  • @henrytomasino3027
    @henrytomasino3027 2 роки тому

    찐영화네요

  • @haengbok-yee2662
    @haengbok-yee2662 2 роки тому +1

    1일 2영상ㄷㄷ

  • @waveofwind
    @waveofwind 2 роки тому +3

    지금 대한민국 군대는 어떨까요???? 생각해보게 하네요.
    귀중한 인력이 말도 않되는 이유로 쥭어나가는 군대.
    장군전용 샤워기, 식판, 꼴같지도 않은 장교식당이 존재하는군대..... 우리나라 지킬수 있을까요?

  • @naosmana5335
    @naosmana5335 2 роки тому +2

    당대의 대스타들이 힘을 합쳐서 마켓가든 작전과 혐고메리 원수를 신랄하게 까는 영화
    tmi : 이 영화는 1977년에 개봉했는데 몽고메리는 영화 개봉 전 해인 1976년에 천수(?)를 누리고 죽었습니다.
    tmi2 : 이 영화에 참여했던 작곡가는 실제로 마켓 가든 작전에 투입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 @jaehongpark134
    @jaehongpark134 2 роки тому +2

    명작이죠. 그런데 제 어릴적 영화관서 본 기억으로는 프로스트대대와의 협상이 실패한 독일군이 강 건너편서 탱크부대 일제 사격으로 건너편 건물들을 파괴시켜 나가는 장면이 있었는데 비디오본이나 dvd본에서는 분량문제인지 나오질 않더군요. 완전본을 구할수 없을까요? ㅎㅎㅎ

  • @djbae9270
    @djbae9270 2 роки тому +1

    8'30"에 인디아나존스 박사의 친구 마커스 브로디도 출연했네요

  • @user-uq6hn2db5l
    @user-uq6hn2db5l 2 роки тому

    영상 자르실 때 자막 휙휙 지나가는 구간이 너무 많은데 신경 써주실 수 있을까요?

  • @user-hl1iw4nd6f
    @user-hl1iw4nd6f 2 роки тому +2

    사실 노르망디도 저런 삽질 작전이었는데 히틀러가 자빠져 자는 바람에 전차부대를 못 움직여 성공한거임 아니였음 해변에서 다 수장됐음

  • @user-tc5gc6nn4n
    @user-tc5gc6nn4n 11 місяців тому

    명작 중 명작

  • @No_war_let_me_peace
    @No_war_let_me_peace 2 роки тому +21

    몽고메리가 진짜 나쁜놈인게 지가 잘못해놓고 죄없고 만만한 폴란드 장교한테 죄 뒤집어 씌우고 자기는 미꾸라지처럼 피해가는 못된 짓거리를 했지

    • @scz8333
      @scz8333 2 роки тому

      1. 2019 마켓가든 75주년 아른헴 : 3번 동영상엔 폴란드 소사보프스키 장군 및 숀코네리 역 영 장군 참석
      ua-cam.com/video/NC3hW508SmI/v-deo.html
      2. 1949년 마켓가든 5년 후 기념식, 실제 참전했던 베테랑들 모습
      ua-cam.com/video/WHaqLCmza9U/v-deo.html
      3. 1954년 마켓가든 기념식 : 영국 제1공수사단장 Roy Urquhart(숀커너리 역), 폴란드 소사보프스키 장군 참석
      제목 : The "Many" Honour The "Few" - Nijmegen And Arnham (1954)
      ua-cam.com/video/oNYQ0s5VFxo/v-deo.html
      4. 1944년 마켓가든 실제 전투
      ua-cam.com/video/3WWE8ZMfLSs/v-deo.html
      5. 2019년 75주년 기념 공수강하 4k
      ua-cam.com/video/gt3hmNx0hbw/v-deo.html
      6. 마켓가든 44년 그 때와 지금 현장 비교
      ua-cam.com/video/f2M-onQwmaU/v-deo.html
      7. 1955년 마켓가든 전사자 아이들 75명. 아른헴 방문해 아빠 잠든 곳에 헌화
      아른헴에서 전사한 공수부대원들의 아이들이 아빠 묘소를 찾는 영상입니다.
      영국-네덜란드 정부가 제공한 항공기로 네덜란드 방문해 묘소를 찾아 헌화하는 모습.
      전투에는 패해도 전쟁에는 지지않는 역사가 왜 일어났는지 위 동영상들을 보면 느낄겁니다.
      패배한 전투를 그냥 넘기지 않고 기억하는 자들만이 전쟁에서 승리할 자격이 있는 것이죠.
      ua-cam.com/video/AmeEV_xTF4w/v-deo.html
      8. 2019년 프로스트 중령 이름 딴 다리에서 영국 공수부대 노병들 백파이프 행진
      ua-cam.com/video/xIf-zJ_E0Us/v-deo.html
      9. 영 30군단 아이리시 가드, 좁은 도로 전진 중 독일군 매복에 걸린 전투 분석. 실제 전투영상 및 사진과 현재 비교
      ua-cam.com/video/T7UCLf7a-3k/v-deo.html
      매복 공격당해 격파당한 영국군 기갑 차량들 사진, 그 차량에서 숨진 전사자 이름 까지 나오는 분석.
      과거 전투 기록 그것도 동영상 포함 많고, 수십년이 지나도 분석하는 민간인들이 있다는 것 부럽죠.
      정부와 군에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의 아마추어들이 이렇게 활동합니다.
      세계를 좌지우지 해봤거나 하고 있는 세력 공동체는 전쟁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그럴지도.
      마켓가든 교전국 피해 (현지 레지스탕스 피해 자료 못 구함)
      독일 : 전사 약 2,000명, 부상 약 8,000명 총 인명피해 약 10,000명 (포로 확인 못함)
      미국 : 전사 + 부상 약 3,600명 (전사 부상 따로 확인 못한, 포로 확인 못함)
      폴란드 : 전사 약 100명, 부상 약 300명 (포로 확인 못함)
      영국 : 총 인명피해 약 14,000명, 영 공수부대 사망 약 1,100명
      전사 마켓작전(공수부대) 약 1100명, 전사 가든작전(30군단) 약 5,400명, 영국 마켓가든 총전사 약 6,500명
      마켓가든 실종 약 850. 포로 약 6400(거의 공수부대), 영국 공수부대 인명피해 총 약 8,000명/투입병력 약 10,000명
      정리하면 대략
      독일측 총 인명피해 약 10,000명
      연합국 총 인명피해 약 18,000명, 독일측 피해의 대략 2배.
      영국 공수부대 피해율은 사상자 포로 도합 80% 에 이를 정도로 공수부대원들은 분투.
      작전계획 수립 단계에서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대패한 상태지만 전선 붕괴로 역전되거나 할 상황은 전혀 아님.
      아른헴 후방으로 영국군 100만, 미군 300만은 여전히 건재하고 마켓가든 공세 실패로 전선이 잠시 정체되는 정도.
      작전이 성공했으면 1944년 종전, 실패하게 되면 45년으로 미뤄지는 정도. 도박할 가치 있었지만 성급 부실했던 작전수행.
      미국이나 영국은 세계대전 상황에서도 이 정도 인명피해 당하면 어마어마한 손실로 여겨집니다.
      바바로사 초기 소련군이 당한 손실은 단일 전투에서도 50만 쉽게 넘어가고 포로 또한 가볍게 수십만이 넘죠.
      소련군이 공세를 취할 때도 전투는 승리해도 보통 독일군 보다 몇 배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세계대전 갈 필요도 없이 한국전쟁 때 우리 국군 전투 피해도 규모가 큰 경우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졸전 패배 없이 멋지게 승리만 하는 군대 없습니다.
      지난 수 백년간 지구상에서 가장 승률 높고, 결정적 승리를 거듭했던 군대 조차도,
      손가락질 당할만한 패배를 수 없이 겪으면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전쟁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패배가 미래의 승리가 될 수 있도록 세월이 흘러도 잊지 않고 기념하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 중요한 이유기도 하죠.
      영국과 영연방의 대규모 삽질 사례인 갈리폴리 상륙 작전은
      영국을 넘어 특히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안잭데이로 그들 전쟁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날로 추념됩니다.
      안잭데이 기념 중 특히 터키의 상륙지점에서 벌어지는 행사는 영-호-뉴-터키 함께 참여합니다.
      갈리폴리 전투는 터키에게도 상징성이 큽니다. 그 전투를 지휘했던 케말 파샤가 그 전투 승리를 기반으로
      패전한 오스만투르크를 대체하는 터키 공화국을 건설하게 되었으니까.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철수한 작전이지만, 호주나 뉴질랜드 입장에서는
      식민지 보호령이 아닌 독립된 군대로 함께 참전한 그들 국가 군대 정체성을 확립한 상징이 된 것이죠.
      아른헴 투입된 공수부대의 80%가 손실된 대패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손실을 당하면서도 전투를 수행한 공수부대원들의 희생은 수치가 아닌 명예입니다.
      물론 조건은 있습니다. 패배로 부터 전훈을 배워야만 하죠. 저들은 철저하게 그런 과정을 수행하고 있는 중

    • @scz8333
      @scz8333 2 роки тому +1

      1. 2014년 마켓가든 70주년 아른헴 행사 : 폴란드 공수부대 추모전, 폴란드 참전 노병들과 현역 군인들도 참석 (동영상 7개)
      ua-cam.com/video/SbZmAaHnF-I/v-deo.html
      (아래 3번 동영상엔 기념비 옆에서, 소총에 착검한 폴란드 현역 공수부대원들이 군례를 표하고 있음.)
      1944년 소사보프스키 장군이 이끌던 그 폴란드 공수부대, 또는 계승한 부대가 폴란드에 있는 것 같습니다.
      폴란드 공수부대 지휘관이 부대원과 함께 기념 행사에 참석 인터뷰도 하는군요.
      1944년 투입되었던 폴란드 공수부대 노병들과
      가족, 후손들이 영국 공수부대 노병과 대화도 하고. 폴란드인이 제작한 영상 같음.
      영국과 폴란드 공수부대가 당시 강을 건너 후퇴하는 과정도 노병이 보트에 승선 재현하고 있고.
      비록 전투에선 패배했지만, 패배만으로 남기지 않고 참전자들의 용기와 희생을 기리며 거듭나고 있습니다.
      패전을 저렇게 기리기도 어렸습니다. 많은 국가들의 경우 보통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편.
      특히 오늘날 폴란드군에서 마켓가든은 아마도 그들 군 역사에서 가장 명예로운 전투로 여겨질테고.
      2. Remembering The Battle of Arnhem, September 2014 : 위 영상과 같은 해, 70주년 공식 기념행사. (영 폴 네 미 함께)
      ua-cam.com/video/WoV28acPDLU/v-deo.html
      유모차에 탄 증손자녀와 휠체어에 앉은 노병 증조 할아버지가 함께 행사에 참석하는 모습.
      행사 참석자들과 시민들이 따뜻하게 환영하는 모습, 걸을 수 있는 노병은 걷고, 휠체어에 의지한 노병도 있고.
      3. Airborne Commemoration 2016 :
      72주년 기념식, 기념비 쪽에서 본 헌화 모습, 1분45초 이후에 착검한 폴란드 공수부대가 예의를 표하는 장면 잠시 나옴.
      ua-cam.com/video/hBwNjRCrCGM/v-deo.html
      몸이 쇄약한 노병들이 거수 경례 조차 힘들어 하는 모습도 보이고, 손자들을 데리고 함께 헌화하기도 하고.
      할아버지와 함께 저런 행사에 참석한 소년들은 훗날 군인이 될 가능성도 크겠죠.
      4. Oosterbeek 2014 : 2014년 70주년, 네덜란드 지명 딴 이름, 넓은 시야로 바라 본 70주년 기념식 영상.
      7분10초 이후 영국 폴란드 네덜란드 국기 게양식. 동영상 앞 부분엔 현역 폴란드군 기수 입장을 볼 수 있음.
      미국 국기 게양식은 없는 대신, 전투 관련 각국 군부대 기수단 입장할 때 미국 국기가 함께 입장하는 형태로 보임.
      ua-cam.com/video/2lkQAkaeqjs/v-deo.html
      5. Heroes Of Arnhem At The Palace : 버킹검궁에서 열린 아른헴 참전 영국 공수부대 훈장 수여식 및 행진.
      1944년 투입된 영 제1공수 부대원들, 그 위 직급인 브라우닝 장군, 빅토리아 훈장 수여자 등 400명 이상 참석.
      ua-cam.com/video/39yUhZU_vtY/v-deo.html
      6. Major Cain The One Man Tank Destoyer | Medal of Honor Monday : 아른헴 전투, 빅토리아 훈장 수여자.
      5명의 VC 수여자 중에서 유일한 생존자. 독일 전차 격파, 부상당함. 기념 우표 까지 발행되었군요.
      그는 6파운드 대전차포와 피아트 대전차화기를 이용해 적 전차 6대를 무력화시킴, 그 중 4대가 타이거 전차.
      ua-cam.com/video/soEggNTQoQ0/v-deo.html
      7. Victory March Of The 51st Highland Division (1945) | British Pathé
      영 30군단 51 하이랜드 사단, 독일 브레멘하펜에서 victory march : 군단장 호록스 장군, 영화 속 인물과 비슷
      머나먼 다리, 출연 배우들 생김새도 실제 인물들과 비슷 : 영 1공수사단장, 30군단장 등.
      ua-cam.com/video/QcA4ffFNiAk/v-deo.html

    • @scz8333
      @scz8333 2 роки тому

      갈리폴리 영국이 패하고 거기서 철수했지만,
      오스만투르크는 소수의 영국 파견군에게 중동 각지에서 패배하고 최종 항복.
      저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아라비아의 로렌스, 반투르크 아랍반군 봉기를 유도하면서 소수의 영국군 투입으로 승리.
      저 때 사우디아라비아 등 현 아랍 왕국들이 오스만투르크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고, 팔레스타인-시리아-이라크 등은 위임통치령으로
      바뀌면서 오스만투르크는 현 터키 영토로 쪼그라 든 것. 2차대전 후에 위임통치령에서 이스라엘, 시리아, 이라크, 쿠웨이트 등이 독립.
      특히 쿠웨이트는 유전 밀집도가 매우 높은 지역이었는데 영국이 석유 이권 통제를 위해 의도적으로 이라크에서 떼어내 별도록 독립시킴.
      1990년 걸프전 이라크가 쿠웨이트 침공할 때, 애초 쿠웨이트는 이라크의 한 주였다면서 원래 자기 영토 찾겠다면서 침공.
      영국은 삽질해도 어지간해선 전쟁에서 안집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영국 보호령에서 독립국가로 나아간 계기. ANZAC DAY의 시작.
      갈리폴리 상륙지에서 해마다 열리는 기념 행사, 영-호-뉴-터 4개국 공동 행사로 열리며 호주와 뉴질랜드 독립 상징.
      다른 국가였다면 갈리폴리급 대규모 삽질했다면 분명 중동에서 완전 축출되었을 것. 하지만 영국은 정반대.
      갈리폴리 전투를 지휘했던 오스만투르크의 장군이 바로 케말 파샤.
      1차대전 패전 후 오스만투르크 왕정이 붕괴하고, 전쟁 영웅이었던 케말 파샤가 공화정 터키의 지도자가 됨.
      케말 파샤는 1차대전 패전에서 서구화 방식의 근대화를 선택했고, 알파벳 사용과 이슬람의 정치 간섭을 철저히 배제.
      그랬던 터키 공화국이 현 터키 대통령 취임과 함께 다시 이슬람 근본주의로 되돌아가고 있는 중. 이슬람화하는 터키를
      다시 케말파샤의 공화정으로 되돌리려했던 쿠데타 시도가 터키 국민들의 개입으로 실패하기도.
      오스만투르크의 1차대전 패전 트라우마로 인해,
      2차대전 초중반 승승장구하던 독일의 거듭된 동맹 요청에도 끝까지 거부하며 중립.
      갈리폴리에서 영국을 막아냈지만 결국 소수의 영국군에게 중동 지역에서 패배해 제국이 해체된 충격 때문임.
      전함 2척 때문에 1차대전 독일에 줄서고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해체당했다면 좀 이상하죠.
      즉 한 국가의 운명이 좌지우지 되는 상황에서 그 깟 전함 2척으로 결정이 되지는 않았을 것. 다른 더 결정적 요인들이 있는.
      1차대전 직전 독일과 영국의 중동 아프리카 정책이 가장 결정적일 것.
      독일의 3B 영국의 3C 정책. 독일의 베를린-비잔티움-바그다드. 비잔티움이 현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 바그다드는 이라크 영토.
      즉 1차대전 전 독일은 베를린에서 중부 유럽을 관통해 오스만투르크의 수도 및 바그다드 까지 철도 건설로 유혹하며 동맹 설득.
      오스만투르크 입장에선 이집트와 수에즈를 장악하고 오스만투르크를 위협하는 영국을 막기 위해 독일을 선택했을 수도.
      영국에 대한 트라우마는 터키만이 아니라 스페인도 강했죠.
      2차대전 초기 독일이 깃발 날릴 때, 지브롤타 점령을 위한 육상 통로를 내달라는 요청 끝까지 거부.
      독일이 제 아무리 승리하고 잘 나가도, 독일의 승리를 확신할 수 없었기에 독일과의 군사동맹과 침공로 통과 모두 거부.
      이유는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에게 격파된 이후에도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 시기 트라팔가에서 결정적 패배를 당한 충격.
      스페인 프랑코 총통은 중립지킨 행운으로 전후에 전범으로 처리되지 않았고.

    • @scz8333
      @scz8333 2 роки тому +7

      폴란드 관련해서 추가합니다.
      자유폴란드 정부는 1939년 런던에 망명했지만,
      전쟁 승리 후 귀국하지 못하고 끝까지 공산 폴란드 정부와 대립했습니다.
      바웬사의 자유노조가 승리해 민주정부가 들어선 직후,
      런던의 자유폴란드 망명정부의 깃발과 자유폴란드군의 정통성을 전달하고 해산했습니다.
      현재 폴란드 군의 정통성은 소련과 함께 싸웠던 공산 폴란드군이 아닌, 자유폴란드군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철의 장막 붕괴 후 폴란드는 나토에 가입하고
      나토의 군사 훈련에 특히 영국군이 지상군과 공군으로 꽤나 자주 투입되어 훈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게시판에서 많이 언급되는 비운의
      폴란드공수부대 지휘관 소사보프스키 장군 역시 전후 상황 때문에 귀국할 수 없었고,
      그와 자유폴란드군의 희생이 결국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조국에서 인정받고 폴란드의 진정한 영웅이 되었죠.
      물론 대부분은 사망한 이후, 거기다 추가로 폴란드 공산정권이 무너진 이후에나.
      시간이 많이 늦어졌지만 영웅들은 결국 영웅이 됩니다. 안타까운 사연이 더욱 영웅을 부각시키죠.
      공산 폴란드 정부는, 자유폴란드군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독일과 소련이 함께 폴란드를 분할 점령한 이후, 폴란드군 장교단에 대한 대량 학살을 자행한
      소련측에 공산 폴란드 정부는 항의하기는 커녕 진실을 감추기만 했었죠. 공산 폴란드 정부의 위선은
      결국 민주정부 들어선 이후 다 드러나게 되고. 그 사건만으로도 폴란드의 정통성은 자유폴란드 정부에 있고.
      영국항공전, 이태리 전선의 몬태카지노, 아른헴 등이 자유폴란드군이 분전했던 대표적인 전투들이죠.
      거기다 독일 에니그마 암호 해독 최초로 성공한 것도 폴란드였고 폴란드 망명정부가 영국에
      제공한 자료들로 부터 영국의 독일 암호 해독이 시작된 겁니다.
      영국은 폴란드에 큰 빚을 진 셈이죠.
      영국항공전의 유명한 폴란드 공군 에이스는 전후 귀국해
      폴란드 공산정권 하에서 공직을 맡으며 전후 재건에 참였지만, 공산정권으로 부터
      서방 스파이로 몰려 엄청난 고난을 겪기도 했었죠. 그런 이유로 많은 폴란드인들이 귀국할 수 없었습니다.

    • @scz8333
      @scz8333 2 роки тому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정부와 군이 관련된 몇 가지 간단 소개할테니 찾아보고 마켓가든-갈리폴리와 비교해보길.
      자신을 모르면서 적도 몰랐던 경우는 머나먼 다른 나라 아닌 우리 내부에서도 숱하게 찾아 볼 수 있을테니.
      1. 국민방위군 사건
      보충역으로 소집된 국민방위군 약 50만 병력 중, 추정 약 10만 병력이 비전투 손실로
      51년초 한겨울 중공군 남하 당시 후퇴 행군 중에,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은 상상 초월한 사건.
      그것도 전시에 발생한 대규모 국방비리로 식량과 물자가 빼 돌려져 발생한.
      한국전쟁 발발 직전 전쟁 터지면
      점심은 개성, 저녁은 평양이라고 자신만만했던 국군 장성들 일부는 전선 붕괴당했고,
      수천 국군 부상병들이 서울 시내 병원에 흩어진 상태에서,
      대한민국 정부와 군은 국군이 승리하고 있다고 거짓 라디오 방송 틀어놓고 한강다리 끊고 잽싸게 튀어,
      북괴군 진주후에 상당수 부상병들이 처형되었던
      때로 부터 불과 6~7개월 정도 후에 벌어진 대규모 국방비리로 징집된 보충역 장병들이
      추정 10만 병력이 굶어죽거나 얼어죽은.
      마켓가든 인명피해와 비교해보길. 마켓가든 삽질과 질적으로 비교해보길.
      2. 보도연맹 사건
      한국전쟁 직전 해방정국에서 사상투쟁 승리위해
      전향시켰던 좌익인사들, 한국전쟁 터지자마자 대규모 체포 후 선제 예방 학살.
      정확한 희생자 기록은 없고 추정으로 희생자수는 10만 단위.
      일본군의 남경대학살, 관동대지진 후 조선인 학살과 달리 동족을 상대로
      예방 차원에서 저질러진 반인류적 전범행위로 21세기 현재 그런 일 일어나면 인류의 이름으로 전범 처리될 것.
      3. 휴전 직후 귀환한 우리 국군포로들의 심문 과정에서 일부 사망 사건.
      한국전쟁 때 북에 포로가 되었던 우리 국국 포로들 대부분은 남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포로 석방 선언하자, 북은 포로 대다수는 이미 사망했다면서 극히 일부의
      포로들만 남으로 송환 조건으로 자유포로 거부한 북한군 포로와 교환.
      그렇게 어렵게 겨우 살아돌아온 우리 국군포로들은 그리운 가족과 고향으로 간 것이 아닌.
      한국전쟁 기간 중 북괴 포로 수용하던 수용소에 갇혀서 북에서 사상교육 전향한 이후 남으로 파견된
      간첩 여부 심문당해. 일부 국군 포로들은 그 과정에서 사망. 말로만 심문한 것이 아니었으니 저런 일 발생.
      자국 군대로 참전해 적에게 포로가 되었다 겨우 살아돌아온 군인들을
      저렇게 대하는 국가와 군이 과연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는 국가와 군일지 의문이 드는.

  • @xenic1331
    @xenic1331 2 роки тому +1

    소련과 독일점령 경쟁 없었으면 이런일 없었지. 말로만 연합군이지 그 당시 소련은 믿지 못할 존재. 82, 101 airbonre은 정말 총알받이였지. 두어번 이 부대 근무하는 미군들 술집에서 봤는데 눈빛 포스 장난 없었죠

  • @user-fy1fr5ft8y
    @user-fy1fr5ft8y 11 місяців тому

    소련 영화 유럽의 해방이라고 한번 리뷰해주시길^^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4 місяці тому +1

    이 영화를 보면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전방과 후방간의 보급로 확보와 통신연결이 중요하다는 것을 제대로 알려준다고나 할까요?
    통신이 개판이니
    보급
    그것도 공수부대의 보급은 하늘에서 떨어트리는 보급품에 좌우되는데
    통신 부분이 엉망이니
    아군에게 갈 보급품이 다 독일군 수중에 떨어지는 웃기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원래 착륙지점이 독일군 수중에 떨어져서
    바로 새 착륙지점을 통신으로 알려야 하지만
    통신이 개판이라 알리지 못해서
    영국군은
    처음 착륙지점으로 지정된 곳에 떨어트리기만 하고
    실제 영국 공수부대는 지상에 불을 피우는 식으로 신호를 보냈지만
    상층부는
    그것이 독일의 교란책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원래 지정된 곳에 투하하라는 명령을 내려서
    오히려
    공수부대의 보급품은 전부 독일군이 챙겼다고 합니다.)
    실제로
    마켓가든 작전에 투입된 독일 측 참전군인은
    이런 말까지 했다고.......
    '우리는 미국 전투식량으로
    그동안 제대로 먹지 못해서 굷주린 배를 배불리 채우면서
    영국제 초콜릿으로 입가심까지 한 뒤에
    미국 전투식량과 같이 보급된
    럭키 스트라이트
    미국 담배도 원없이 마음껏 피우면서
    영국제 기관단총과 탄약으로
    영국군을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 @navy475
    @navy475 Рік тому +3

    사실상 2차대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슬슬 끝물을 향해갈즘 작품중에서 거진 마지막 대규모 스케일 영화라 당대 내노라 하는 스타들이 아 씨 함 참여해봐 하면서
    캐스팅이 ㄹㅇ역대급인 영화

  • @user-pn4rz8qk5w
    @user-pn4rz8qk5w 2 роки тому +2

    몽고메리 혼자 승리했다고 자위한 전투였죠.

  • @AntiCommentUnit
    @AntiCommentUnit Рік тому +1

    이 영화, 초딩 때 극장가서 봤음. 그 전투의 의미를 최근에 깨달음.

  • @workerkim173
    @workerkim173 Рік тому

    패튼이 코미디를 보듯 비웃거나 빡친 나머지 뒤엎어버릴 그 작전.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4 місяці тому +1

    그런데 저 1.5km 거리를 못가서
    모든 것이 끝났다는 부분은 실제였습니다.
    진짜 그 거리를 돌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켓가든 작전은
    2차대전 역사상 연합군 최대의 대실패이자
    독일군이 진짜 무서운 군대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줬다고나 할까요?
    덧붙여서
    몽고메리가 명장이 아닌 졸장도 못되는 얼간이라는 것도 제대로 알려져서
    저 작전 이후에는
    몽고메리의 명성과 인성이 완전히 바닥으로 추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패튼에게는 놀림거리로 남게 되었다고............

  • @user-hb8jx1tv2j
    @user-hb8jx1tv2j 2 роки тому +1

    상관의 고집과 아집때문에 병사들은 제집을 못간다.

  • @idontcare5800
    @idontcare5800 2 роки тому

    90년대 중반에 출시되었던 LD(Laser Disk)판을 보았던 기억이 있네요. ㅎ

  • @songyobkimi2222
    @songyobkimi2222 2 роки тому +1

    14:48
    죽기전에 한탄하는것 같아서 조낸 웃기내요.

  • @user-yq7yj7mf5o
    @user-yq7yj7mf5o 2 роки тому +1

    82사단의 사단장은 모리스 가빈이 아니라 제임스 가빈입니다.

  • @zini777
    @zini777 2 роки тому

    로버트 레드포드는 왜 자막 안띄어 주나요...ㅠㅠ

  • @oa505
    @oa505 2 роки тому +2

    중간에 로버트 레드포드 아닌가요?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4 місяці тому +1

    그리고 이 영화에서
    교신이 개판이라는 것이 제대로 보여지는데
    현대전의 기븐 원칙인
    전방과 후방의 원할한 보급로 구축과
    통신망 확보가
    전투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것 자체를 무시했다는 거 자체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연합군이 너무 멍청하게 행동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 @user-jn4kn7lr9f
    @user-jn4kn7lr9f 2 роки тому +1

    윗대가리의 작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회사도 윗대가리 잘못하면 현장 직윈들만 죽어가지

  • @user-fs5dw4ur8u
    @user-fs5dw4ur8u 2 роки тому

    대전기 탱크인척하는 레오1이 인상적이었어요

  • @user-rj4hh2sv4i
    @user-rj4hh2sv4i 2 роки тому

    아니 왜 로버트 레드포드,는 캐스팅 소개에서 빠져 있나요? ㅠㅠ

  • @user-lf8wv3kq8u
    @user-lf8wv3kq8u 2 роки тому

    실제 아른헴 다리의 공수사단은 모두 전사했다고 하네요..

  • @franciskim
    @franciskim 2 роки тому

    이영화 파일 다운로드도 가능하고 dvd 블루레이도 많은데 왜 못본다고 할까?
    억수로 좋은 명작 맞다

  • @MrBrianJung
    @MrBrianJung 2 роки тому +1

    몽고메리가 연합군 공수전력을 말려버린 작전

  • @user-mq7rh4eg6q
    @user-mq7rh4eg6q 2 роки тому

    인리스티드 에서 나온 505공수여단도 있네요

  • @user-vz8pr4mv4h
    @user-vz8pr4mv4h 2 роки тому +1

    독일의 크레타 섬 전투의 계보를 그대로 이어간 작전...

  • @user-xi8ci6zv7s
    @user-xi8ci6zv7s 2 роки тому

    로버트 레드포드도 여러번 나오는데 왜 소개 안해주시죠?

  • @user-ls2lo1ps9b
    @user-ls2lo1ps9b 2 роки тому

    출연진이 정말 지상 최대의 작전 만큼 엄청나고 저에게 영국 레드 데블스 공수 부대와 자유 폴란드군을 좋아 하게 해준 영화 입니다. 지금 가장 좋아하는 군복이 데니슨 스모크 입니다!!! 쓰레기 같은 몽고메리가 본인이 성공 불가능한 작전을 무리하게 실행 시키고 작전 실패 원인을 현장에서 영국 공수 부대 구하기 위해서 개고생한 소사보프스키 장군과 폴란드군에게 떠넘겼죠 ㅠㅠ 몽고메리 정말 운이 엄청나게 좋았던 범장입니다. 명장이라고 하기엔 군인으로써도 인간으로 써도 많은 부분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 @user-we6ml5ts3e
    @user-we6ml5ts3e Рік тому

    초대 받지 않는 손님 성모님께 자비를 구하고, 아들을 바치고 나면 길이 없어~!

  • @mondoorian6982
    @mondoorian6982 4 місяці тому

    2015년도였던가? 이 영화에 나오는 아른헴 갔었는데 마침 마켓가든 작전 70주년 기념식이 열린다고 영국에서 공수부대 출신 노인들이 군복입고 많이 왔더라는. 2차 대전 복장에 당시 사용하던 군용 집차와 오토바이 몰고 다니고. 거기 가면 공수박물관이란 곳도 있어 영국군의 활약을 기리는 곳도 있음.

  • @ganekim
    @ganekim 2 роки тому

    탱크가 왜 저렇게 멋있을까 셔먼말고

  • @hellpoome
    @hellpoome 2 роки тому +3

    저 당시(1977년)의 007 제임스 본드로 활약했었던 로져 무어도 섭외했었다는데 자기가 단독주연이 아니면 안 하겠다고 해서 파토가 났다죠? 그렇게 튕기다가 "17인의 프로페셔날"인가? 라는 영화에 출연해서(단독주연도 아니고) 작전도중 상부의 작전포기로 대 실패한 후 딱 션 코넬리가 브라우닝을 대면한 마지막 장면같은 상황이 벌어졌는데 로져 무어는 그 자리에서 상관을 총으로 쏴 죽였죠 ㅋㅋㅋ
    아니 이런 출연진도 많은 대작영화에서 어떻게 단독주연을 할 생각을 했었는지 ㅋㅋㅋ
    그리고 82공수의 도하부대 소령으로 나왔던 로버트 레드포드도 그 적은 분량을 400만 딸라나 받고 찍었다더군요(지금이야 껌값이지만 그 당시엔 너무 심하게 큰 금액, 더더군다나 헐리우드의 거품을 비판하면서 후에 마이너의 산실인 선댄스 영화제를 출범시켰던 놈이 돈은 오지게 밝힌다고 비판받았다죠 ㅋㅋㅋ).

    • @user-ht8pn6dv9j
      @user-ht8pn6dv9j 9 місяців тому +1

      엔 로저 무어 안나왔습니다. (독일군 비트리히 장군 역할 막시밀리안 셸이 주연 가운데 하나)
      묘사로는 에서 배신자 '에드워드'경 (스튜어트 그레인저 - 주인공 용병부대 파견해놓고 적군이랑 새롭게 거래했음)을 혼자 살아서 귀국한 '숀 (로저 무어)'이 처단한 장면이 생각나네요.

    • @hellpoome
      @hellpoome 9 місяців тому

      @@user-ht8pn6dv9j 제목이 "17인..."인 줄 알았는데 "지옥의 특전대" 였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탈출 마지막 장면에서 로져 무어가 수송기를 몰고 탈출하는데 조종석 페달을 밟으면서 이륙할때 발에 총을 맞아서 피를 흘리던 장면이 생각나네요...이것도 아닌가요? ㅋㅋㅋㅋㅋ
      진짜 마지막 장면은 션 코넬리의 쏴 죽여버리고 싶은 속마음을 로저 무어가 비록 다른 영화지만 대신해서 쏴 죽여줬다고 느껴질 정도였었죠 ^^
      암튼 말씀 감사합니다 ^^

    • @user-ht8pn6dv9j
      @user-ht8pn6dv9j 9 місяців тому

      @@hellpoome
      제 실수, 저땐 로저 무어 중심으로 생각하면서 기억이 저렇게 났습니다! 실제론 숀도 귀국했지만 배신자를 처단한 건 '앨런 (리처드 버튼)'이었어요: 숀이 태워다줘서 런던에서 에드워드 경과 담판을 지었지요.
      숀이 발에 총을??? 그건 다시 봐야 알겠고, 그 때 부상당한 '레이퍼 (리처드 해리스)'를 본인 부탁으로 앨런이 죽여주고서 비행기가 뜬게 기억나요.
      (뮤지컬 의 역사를 아는 본인에겐 '67년 영화판 아서 왕{ = 해리스}이 '60년 브로드웨이 초연 때 아서 왕{버튼}을 위해 희생하는 걸로도 보였습니다. ㅎㅎㅎ)

  • @user-lf5rx8cf2b
    @user-lf5rx8cf2b 2 роки тому

    1일 영상 뭐야~~~~

  • @RoomCorner_KAMPFER
    @RoomCorner_KAMPFER 2 роки тому +7

    그리고 레알찐인건 대부분 배우들 및 스텝들이 2대전 참전용사들도 있엇다는게....(독일군 배우도 마찬가지인게 ㅎㅎ)
    그리고 마켓가든 작전에서 연합군이 진이유가 독일엔 이미 레오파르트1이 있었... 읍읍읍!!!

    • @Kuaumidess
      @Kuaumidess 2 роки тому

      영화가 1977년인데..배우및 스테프들이 2차대전 참전용사라...?ㅎ그럼 그분들은 도데체가 10살때 징집되셨는지요..??

    • @Kuaumidess
      @Kuaumidess 2 роки тому

      @@user-zj9ol3ms5k 마이클케인님은 6.25참전용사분은맞지만 2차대전참전은안하셨죠ㅎㅎ @정회동 잘못된 정보 빨리 내리세요 수정을 하시든

    • @Kuaumidess
      @Kuaumidess 2 роки тому

      @@user-zj9ol3ms5k 그니까 님말데로 한국전쟁 참전하셨잖아요~마이클케인님은, 제가 언제 2차대전참전했다고 님한테 뭐라했습디까?

  • @worldhousing
    @worldhousing Рік тому

    작전 전에 적지에 기갑부대가 있는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 그대로 껍질뿐인 기갑부대 엿고 이 부대가 아른헴 다리로 진입하다 프로스트 대대에게 선봉대가 절멸할정도로 당시 서부전선의 독일군 기갑병력은 안습 이었습니다. 노르망디에서 녹아내렷고 , 팔레즈 포위전에서 바퀴달린 물건은 다 파괴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밴드오브브라더스에선 티이거 전차가 크롬웰전차와 셔먼을 작살내는걸로 나왔는데 당시 독일군 해당부대의 전차는 4호전차로 기록되어있습니다. 게다가 독일전차 두대는 바로 반격당해 파괴됩니다. 대다수 연합군 보병들은 독일전차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죠.

  • @33.666
    @33.666 2 роки тому

    14:37 능욕 ㅋㅋㅋㅋㅋㅋ

  • @user-hh5qs2lx4m
    @user-hh5qs2lx4m 2 роки тому

    다시 뜨기전에 좋아요좀

  • @user-uz4qr8bn8u
    @user-uz4qr8bn8u 2 роки тому +1

    17:15 숀 코네리 007 제임스 본드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