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 장군 427주기 시민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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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3 гру 2024
  • #최호장군 #추모제 #군산문화원 427주기 시민추모제 군산 발산리 충의사에서 봉제
    최호(湖) 장군은 중종 31년(1536년)에 경주 최씨 최치원(崔致遠)의 15대 손 최한정 (崔漢) 장군의 4남으로 현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 원발산에서 태어났으며 선조 7년(1574 년)에 무과 병과에 급제하였고 선조 9년에는 무과 중시갑과에 장원 급제한 뛰어난 무장이었다.
    무과 급제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까지 18년간 서북 변경을 지키는 국방의 중임을 맡았으며, 여진족(族)의 대 이민정책(對 移民政策)으로 강경책과 회유책을 조화있게 써서 변 경 수호에 공을 세운 지장(智將)이었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는 15만 대군의 압도적인 왜군의 공세에 선 조의 의주(義州) 서천(西遷)한 위급한 전황에서 임금을 호위했고 함경남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로 소수의 병력으로 함경도 일대를 장악한 왜군의 정예부대 진격을 차단하고 혼란시켰을 뿐만 아니라 타격을 주어 의주를 지키는 국권 수호의 큰 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선조 30년: 1597년) 때에는 충청도 수군절도사(忠淸道 水軍節度使)로 이 몽학(李夢鶴)의 난 평정에 공을 세웠고, 그 후 원균 통제사가 이끄는 연합 함대의 부산 해전 에서는 선봉장으로 선전하였으며 칠천량 해전(漆川梁 海戰)에서는 적의 대함대의 야습에 분전, 적의 주력함대에 타격을 주었으나 중과부적으로 왜군의 집중포화를 받아 62세에 장렬히 순국 하신 뛰어난 전형적인 무장이며, 살신구국의 명장이었다.
    본 최호 장군의 사당은 장군이 순국 후 132년이 지난 1729년(영조 5)에 건립되었고 장 군의 유지에는 무과에 급제한 교지를 비롯하여 1596년 선조가 하사한 삼인보검이 보존되 어 있다.
    선조 37년(1604년), 공신 책록시 청난공신(淸難功臣) 이등공신(二等功臣)으로 책록되 었고 자헌대부(正品), 병조판서(正品), 의금부사(正品)로 추증되었으며, 계성군(係城君)으로 봉군(封君), 시호는 충원공(忠元公)이며 사당은 충의사(忠義祠)로 명하였다.

КОМЕНТАРІ • 2

  • @TV-215
    @TV-215 3 місяці тому +2

    더운 날씨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촬영에, 편집에, 정말 대단하십니다.
    영상도 좋고 편집도 너무 좋고 깔끔 합니다.
    군산에 역사를 쓰시는
    신상철 회장님 !
    쵝오이십니다~~

    • @forstep1
      @forstep1  3 місяці тому +1

      늘 감사합니다❤
      그런데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