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제가 정말 존경하는 선수 쿠도 마사시 시합... 와지마 고이치가 변칙복서라면 쿠도 마사시는 교과서적인 복싱을 했던 선수로 기억합니다. 쿠도는 8형제의 막내로 태어나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체격과 체력이 좋았던 그는 아마추어 레슬링을 접하고 레슬링으로 금의환향하겠다는 꿈을 갖고 레슬링에 매진합니다. 부모의 부담을 덜기 위해 자위대 소속 레슬링부에 입대하여 군사훈련과 레슬링 훈련을 받는 생활을 견뎠습니다. 하지만 뮌헨올림픽 국가대표에서 탈락한 일을 계기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게 됩니다. 빨리 돈을 벌고 싶었던 그는 프로복서의 길을 진지하게 고려하게 됩니다. 자위대 소속 복싱부에서 기본기를 몇개월간 지도받고 사회인 복싱 토너멘트에서 우승한 일을 계기로 그는 자위대를 제대하고 23세의 나이에 수퍼웰터급에서 데뷔합니다. (레슬링 시절 치뤘던 국제경기 경험 때문에 당시 일본에서는 보기 드물게 상대와 글러브를 맞대며 클린파이트를 약속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쿠도 마사시의 복싱은 기본기의 철저한 반복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레슬링으로 길러온 자신의 피지컬을 믿지 않았고 오직 기본기를 충실하게 하지 않으면 KO당한다는 생각으로 늘 손을 올리고 잽으로 거리를 재고 항상 통통 튀면서 라이트를 똑바로 내지르는 견실한 스타일을 익힙니다. 그걸 매 라운드마다 계속 해내는 쿠도의 연습량은 대단하긴 하지만 그 스타일은 난타전에 낭만을 가진 복싱팬들을 만족시키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수퍼웰터급도 일본 국내에서는 비인기 체급이었고 한번도 도쿄에서 활동하지 않았던 지방 출신 복서라서 스폰서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일본 챔피언에 올라도 그는 계속 생활고에 시달렸고 화물차 운전수를 하며 복싱을 병행했습니다. 게다가 지방은 스파링 파트너도 부족했기 때문에 쿠도는 무하마드 알리 같은 유명 선수들의 시합을 라운드별로 보면서 어떤 식으로 움직였나 기억하고, 링 위에서 위대한 복서들의 움직임을 상상하며 끝없이 쉐도복싱을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 무렵에 쿠도는 결혼을 했는데 자기가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복싱관을 형성했습니다. 그에게 복싱은 상대를 때려눕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안전하게 링에서 내려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기본기와 디펜스를 중요시한 그의 스타일은 인기는 없었지만 세계 무대에 나아가서야 비로소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는 WBA 세계챔피언이 되고 1978년에는 The Ring Magazine이 선정하는 '정통(linear) 라이트미들급 챔피언'에까지 선정됩니다. 하지만 그의 전성기인 1978년은 로베르토 두란의 전성기였고 웰터급에서 레너드가 한창 인기몰이를 하던 시절이었으니 일본 국내에서도 업적에 비해 그리 큰 인기를 얻지 못했습니다. 여러모로 시대를 잘못 타고난 셈입니다. 쿠도는 (레너드와 대결하게 되는) 아유브 칼렐레에게 판정패를 당하면서 26세의 나이에 미련없이 은퇴를 선언합니다. 너무 기본기에 매달려서 플러스 알파가 없었던 것이 패인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그의 나이나 체력을 고려하면 충분히 재기해서 더 많이 세계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었음이 분명했지만 쿠도는 "한번이라도 지면 은퇴하기로 아내와 약속했다. 가족에게 짐이 되는 부상 없이 은퇴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말과 함께 두번 다시 복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무라타 료타가 미들급 챔피언으로 있지만 기본기는 쿠도 마시시보다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골로프킨에게 무라타의 "윙키 라이트 가드"가 통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쿠도는 은퇴 후, 복싱으로 번 돈으로 제일 먼저 산 것이 화물차라고 합니다. 화물차 운전수에서 화물차 오너로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인어른의 소개로 이바라키현에서 건축용 목재를 운반하는 사업을 시작합니다. 세계챔피언에 비하면 초라할 수도 있는 직업이지만 쿠도는 "부상 위험 없이 돈을 벌 수 있다"며 긍정적인 마인드의 정점을 찍은 인물다운 멘탈을 보여줍니다. 그냥 돈만 번 게 아니라 점차로 신용을 얻어나가더니 부인과 함께 아예 자신의 건축 자재 회사를 설립합니다. 부인, 아들, 딸이 모두 그 건자재 회사 경영에 참여하는 가족기업이라고 합니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쿠도는 복싱을 지도하고 싶다는 꿈을 위해 체육관을 열었지만 2016년에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이바라키 같은 지방은 아무리 좋은 인재도 프로복서까지 목표로 하는 일이 없어서 자기 나이도 60대에 접어들었고 하니 복싱 지도자의 꿈은 포기하고 손자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다지 가정에 충실하지도 않았고 돈을 더 벌겠다고 한참 늦은 나이에 컴백해서 올드팬들을 뒷목잡게 만드는 unholy한 field도 있지만 제게 쿠도 마사시는 복싱의 본질이 무엇인가 생각해게 해준 인물입니다. 상대를 때려눕히는 게 아니라 자기가 안전하게 링에서 내려와 무사히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서 기본기에 철저히 매달렸던 그의 복싱을 보면 저것이야말로 복싱의 원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그나마 복싱을 배운 경험이 있어서 저렇게 15라운드 내내 통통 뛰어다니는 게 얼마나 힘든지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주호 선수 아들이 제 고등학교 후배라 그 덕분에 주호 선생님과 술을 자주 마셨습니다. 가오만 쩝니다~ 청량리쪽 조폭 동생들이 용돈을 매달 준다는 이야기부터 해서, 본인은 복싱을 했지만 눈이 빨라서 절대 맞지 않는 경기를 한다는 둥, 정말 맞지 않는 복싱을 추구하는 퍼넬 휘태커는 저리가라 입니다.. 그외 서울 상경 후 10대1 싸움부터 해서, 나름 소설책이 10권입니다. 말빨이 세다는 뜻이죠. 결국 이렇게 과거 경기를 찾아본 결과, 휴~~~ 답없네요.
아아 제가 정말 존경하는 선수 쿠도 마사시 시합... 와지마 고이치가 변칙복서라면 쿠도 마사시는 교과서적인 복싱을 했던 선수로 기억합니다.
쿠도는 8형제의 막내로 태어나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체격과 체력이 좋았던 그는 아마추어 레슬링을 접하고 레슬링으로 금의환향하겠다는 꿈을 갖고 레슬링에 매진합니다. 부모의 부담을 덜기 위해 자위대 소속 레슬링부에 입대하여 군사훈련과 레슬링 훈련을 받는 생활을 견뎠습니다. 하지만 뮌헨올림픽 국가대표에서 탈락한 일을 계기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게 됩니다. 빨리 돈을 벌고 싶었던 그는 프로복서의 길을 진지하게 고려하게 됩니다. 자위대 소속 복싱부에서 기본기를 몇개월간 지도받고 사회인 복싱 토너멘트에서 우승한 일을 계기로 그는 자위대를 제대하고 23세의 나이에 수퍼웰터급에서 데뷔합니다. (레슬링 시절 치뤘던 국제경기 경험 때문에 당시 일본에서는 보기 드물게 상대와 글러브를 맞대며 클린파이트를 약속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쿠도 마사시의 복싱은 기본기의 철저한 반복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레슬링으로 길러온 자신의 피지컬을 믿지 않았고 오직 기본기를 충실하게 하지 않으면 KO당한다는 생각으로 늘 손을 올리고 잽으로 거리를 재고 항상 통통 튀면서 라이트를 똑바로 내지르는 견실한 스타일을 익힙니다. 그걸 매 라운드마다 계속 해내는 쿠도의 연습량은 대단하긴 하지만 그 스타일은 난타전에 낭만을 가진 복싱팬들을 만족시키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수퍼웰터급도 일본 국내에서는 비인기 체급이었고 한번도 도쿄에서 활동하지 않았던 지방 출신 복서라서 스폰서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일본 챔피언에 올라도 그는 계속 생활고에 시달렸고 화물차 운전수를 하며 복싱을 병행했습니다. 게다가 지방은 스파링 파트너도 부족했기 때문에 쿠도는 무하마드 알리 같은 유명 선수들의 시합을 라운드별로 보면서 어떤 식으로 움직였나 기억하고, 링 위에서 위대한 복서들의 움직임을 상상하며 끝없이 쉐도복싱을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 무렵에 쿠도는 결혼을 했는데 자기가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복싱관을 형성했습니다. 그에게 복싱은 상대를 때려눕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안전하게 링에서 내려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기본기와 디펜스를 중요시한 그의 스타일은 인기는 없었지만 세계 무대에 나아가서야 비로소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는 WBA 세계챔피언이 되고 1978년에는 The Ring Magazine이 선정하는 '정통(linear) 라이트미들급 챔피언'에까지 선정됩니다. 하지만 그의 전성기인 1978년은 로베르토 두란의 전성기였고 웰터급에서 레너드가 한창 인기몰이를 하던 시절이었으니 일본 국내에서도 업적에 비해 그리 큰 인기를 얻지 못했습니다. 여러모로 시대를 잘못 타고난 셈입니다.
쿠도는 (레너드와 대결하게 되는) 아유브 칼렐레에게 판정패를 당하면서 26세의 나이에 미련없이 은퇴를 선언합니다. 너무 기본기에 매달려서 플러스 알파가 없었던 것이 패인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그의 나이나 체력을 고려하면 충분히 재기해서 더 많이 세계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었음이 분명했지만 쿠도는 "한번이라도 지면 은퇴하기로 아내와 약속했다. 가족에게 짐이 되는 부상 없이 은퇴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말과 함께 두번 다시 복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무라타 료타가 미들급 챔피언으로 있지만 기본기는 쿠도 마시시보다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골로프킨에게 무라타의 "윙키 라이트 가드"가 통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쿠도는 은퇴 후, 복싱으로 번 돈으로 제일 먼저 산 것이 화물차라고 합니다. 화물차 운전수에서 화물차 오너로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인어른의 소개로 이바라키현에서 건축용 목재를 운반하는 사업을 시작합니다. 세계챔피언에 비하면 초라할 수도 있는 직업이지만 쿠도는 "부상 위험 없이 돈을 벌 수 있다"며 긍정적인 마인드의 정점을 찍은 인물다운 멘탈을 보여줍니다. 그냥 돈만 번 게 아니라 점차로 신용을 얻어나가더니 부인과 함께 아예 자신의 건축 자재 회사를 설립합니다. 부인, 아들, 딸이 모두 그 건자재 회사 경영에 참여하는 가족기업이라고 합니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쿠도는 복싱을 지도하고 싶다는 꿈을 위해 체육관을 열었지만 2016년에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이바라키 같은 지방은 아무리 좋은 인재도 프로복서까지 목표로 하는 일이 없어서 자기 나이도 60대에 접어들었고 하니 복싱 지도자의 꿈은 포기하고 손자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다지 가정에 충실하지도 않았고 돈을 더 벌겠다고 한참 늦은 나이에 컴백해서 올드팬들을 뒷목잡게 만드는 unholy한 field도 있지만 제게 쿠도 마사시는 복싱의 본질이 무엇인가 생각해게 해준 인물입니다. 상대를 때려눕히는 게 아니라 자기가 안전하게 링에서 내려와 무사히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서 기본기에 철저히 매달렸던 그의 복싱을 보면 저것이야말로 복싱의 원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그나마 복싱을 배운 경험이 있어서 저렇게 15라운드 내내 통통 뛰어다니는 게 얼마나 힘든지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박식하시네요, 말씀을 들어보니 멋진 복서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주호... 저렇게 주먹이 안나오는 복서도 참 보기 드뭄 ^^
그러니까요 이맨님말씀에저도공감하고동의합니다
주호 선수 아들이 제 고등학교 후배라 그 덕분에 주호 선생님과 술을 자주 마셨습니다.
가오만 쩝니다~ 청량리쪽 조폭 동생들이 용돈을 매달 준다는 이야기부터 해서, 본인은 복싱을 했지만 눈이 빨라서 절대 맞지 않는 경기를 한다는 둥, 정말 맞지 않는 복싱을 추구하는 퍼넬 휘태커는 저리가라 입니다..
그외 서울 상경 후 10대1 싸움부터 해서, 나름 소설책이 10권입니다.
말빨이 세다는 뜻이죠. 결국 이렇게 과거 경기를 찾아본 결과, 휴~~~ 답없네요.
@@helencho3106 근데 주호 저 양반 저희 동네 신길동 사는데, 실제 보면 떡발은 상당합니다.
에디가소 임재근 처럼 티켓값 아까운 경기
귀한 영상이네요 즐감햇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당시 JR 미들이 월매나 허접했길래 저런 복서들이 세계타이틀매치를 허냐 ㅠ
임재근, 주호. 양대 산맥
柳済斗選手が朱虎選手にKO負けして引退したそうですが、当時のボクシングマガジンに全く内容の記載がありません。この試合を観る限りあの強い柳済斗が本当に朱虎にKOされたのか不思議です?知っておられる方どんな内容だったのでしょうか?
구도도 그저 그런 기량인데 주호는 더 답답하게 한 경기! 가드도 없이 들어오는 걸 단 한 대도 못 맞추네! 참 나 ㅋㅋㅋ like 11
아직도 저 경기 생생하게 기억난다. 한국 세계타이틀전 사상 가장 재미없었던 경기였음. 주호는 이기려는 의지도 실력도 없었음. 구도 마사시 역시 B급 챔피언임을 드러낸 유래없는 졸전이었음.
어디 가조 VS 임재근도 재미 없기로 쌍벽이죠
주호 - 구도 마사시
임재근 - 에디 가조
한국 세계타이틀 매치 도전 역사상 최악의 핵노잼 경기.두 경기 모두 주니어 미들. 도대체 링에 왜 올라갔는지 모를 정도로 개한심했던 경기
맞습니다 주먹이 참 안나오는군요 요즈음의 카넬로와 비교됩니다
근데 임재근 선수 영상은 세계타이틀전 말고는 동영상이 없는것 같습니다
혹시 자료 있는분 올려주심 감사하겠습니다
@@withlove7777777 앗 정말 감사합니다
@@tomy708.
임재근 선수의 영상이 있나요?
바보같이 게임했던기억이 있네요 유제두선수를 하게하였으면 좋은결과를 얻을수있을텐데 아쉬운 시합이었다
주호. 권투. 권. 자를. 모른는 자. 어디서 권투 배웠어 에이 퇴 퇴. 요행을 바라는 자세. 복권 같이. 유재두 와 붙을때 소 뒷발에 쥐 잡았지.
韓国の朱い虎、アップライトスタイルから得意のカウンターに繋げられなかっところに敗因が。
주호낚시! 지하터널
3라운드까지 보고 댓글 답니다
유제두 임재근 주호 70년대
동시대에 활약을 한 국민적인
이목을 집중시킨 중량급의 철권
빅3중 주호선수 경기를
볼수있었지만
무리없이 하네요 그래도
감흥은 있네요
더블유비에이주니어미들급타이틀전
구도마사시 15라운드 주호
1978.12.13 오사카부립체육관
선서 나는국권을준수하고국가를보위하며 조국평화통일 국민자유 복리증진에노력하고 조국평화통일을위하여 대통령으로서의직책을 성실히수행할것을 국민앞에엄숙히선서합니다
1978.12.21 대통령 박정희
이기려는 의지가 전혀 없는 선수가 왜 세계타이틀에 도전했을까요?
스파링 파트너도 저렇게 복싱 하면 욕 먹을 것 같음 ㅠㅠㅠㅠ
이런걸 왜 올려 ?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됩니다. 쯧쯧쯧...
저런답답한경기를하는엉성한선수들을올만에보네요.두선수다저울감들오십보백보네요.저런쪽상선수를가장존경한다는사람이올린영상이네요 ㅠㅠ
세상에 저렇게 답답하게 복싱하는 사람 처음보네 ㅎㅎ
그냥 주먼 안낼려고 시합하냐? 꼭 임재근하고 비슷하네 ㅋㅋ
주호 춤추러 나왔냐 권투 그만두고 공사장가서 노가다나해라
손을 먼저 내는 습관을 갖지 않을려면 은퇴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