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me fan here in South Korea. I was a junior in college when I first saw Love Letter. 27 years has passed, but I can still vividly remember the indescribable feelings (sorrow, nostalgia, etc) that I felt at the ending scene. It is so good to see Ms. Miki Sakai after so many years. Greetings from Seoul
번역5: Q&A 35:30 질문자: 4월이야기 후에 한 대담집 "매직 런처(?)"라는 책에서, 러브레터는 감독이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전력을 담아 만든 작품이며, 오겡끼데스까 씬도 감독이 자신이 죽으면 어떤 식으로 반응할까 하는 것을 생각하며 찍었다고 읽었습니다. 이렇게 실험적으로 찍은 장면들이 더 있을까요? 남: 그러네요... 꽤 무모한 것은 있었네요. 와타나베 히로코랑 후지이 이츠키가 교차하는 씬. 닮은 여자 찾는 게... 화장시켜서 더 닮게 하여... 지금이면 합성이면 되지만... 라이브로 했기에... 상당히 무모했네요. 하지만 하고 싶었었어요, 라이브로. 교차로도 멈춰있었고. 도중에 경찰이 왔어요 (웃음). 도중에 중단했지요. 지방 공공기관의 허가를 받았지만, 시민이 클레임을 넣으면 경찰은 항상 찾아왔습니다. 다 들어가지 못해서 잘라버린 씬이 상당히 많았어요. 지금까지 잊기 어려운 게, 엄청 시간을 들여서, 후지이가 열로 쓰러지려 할 때, 밖에서 부감으로 집 전체를 찍은 씬이 있었어요. 엄청나게 시간을 들여서 작업한 장면이었네요. 단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여: 그 고생을 했는데. 남: 최종적으로는 두 시간 반 정도가 됐네요. 이런 말하면 "감독판을 주세요!"하는 요청이 들어오지만,(웃음) 당시에는 지금과 달랐어요. 촬영 필름을 물리적으로 자르면서 작업했기 때문에, 없어요. 디지털이 아니라. 필름 사이사이를 잘라서 버리는 방식으로 편집했기 때문에. 두시간 정도로 편집하는 건 정말 어려웠네요. 지금껏 "음~"하는 석연찮음이 있네요. 미호짱이랑 토요카와상(와타나베와 그 남친) 다투는 씬이 있었는데, 그 후에 그럼 같이 오타루 가보자, 하는. 거기가 정말 좋았어요. 연기가. 그런데 그런 씬은 숨돌릴 틈이 필요해서, 원래 꽤나 시간을 들였었는데, 그것도 무리해서 구겨넣을 수밖에 없게 돼서, 빨리감기처럼 진행되었어요. 원래 장면을 알고 있으면 더욱 "이야, 이 장면은, 음, 더 이렇게...주저함이라든가 다양한 것들이 있었는데 그게 못 담겼구나..."하는 느낌이... 그런 분함이 생기는 씬이었어요. 여: 그런 필름 조각은 폐기하는 건가요? 남: 파편은 남아있을지도 몰라도... 당시엔 필름을 잘라서 필름 두 장을 겹쳐서 풀로 붙여야 했어요. 한 면을 지워서 투명하게 만든 다음에 붙였어요. 한 필름은 살아있지만 한 필름은 죽어버리는 거죠. 러브레터의 경우는 시네스코프로 제작하여, 필름을 풀로 사용했어요. 뭔가 시네스코프는 굉장히 아슬아슬하게 제작했어요(감독도 공정이 기억이 잘 안 나는듯)... 어딘가 조금은 남아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지금은... 얼마 전에 토오에이 영화사에 가서 필름을 돌려보려 했는데 기계 자체가 없어졌더군요. 그 당시도 이미 시네스코프 자체가 사용되지 않는 시대였어요. 촬영기기가 옆으로 길어서 그에 따라 이래저래 비용도 늘어나서. 전후부터 60년대까진 영화계의 황금기였어요. 셋트도 호화로웠고. 전쟁에 졌는데 어찌된 영문일까 싶지만. 돈이 있는 데는 있었어요. 70년대에는 텔레비전이란 새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영화사들이 추락하면서 점점.. (시대별 영화계, 촬영 기기, 기법 얘기가 쭉 이어진다. 촬영감독 시마다가 를 끝으로 세상을 뜬 후 장면의 분위기뿐 아니라 촬영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와이 감독은 조용한 편이라, 누군가 분위기 메이커 역을 하지 않을까나, 하고 기대했는데 없었다.)
번역8: 1:03:30 질문자4: 내일 30이 되는데요, 10대, 20대에 해야 할 일들은 종종 들었는데, 30대에는 뭘 하면 될까요. 두 분이 30대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그리고 30대때 뭘 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남: 개인적으로 30대는 어느순간 찾아와버렸단 느낌. 소설이라든가 각본은 썼지만 자신은 없고. 언젠가 해외에서 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영어회화를 공부하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각본 워크숍도 했었고. 여러 분께서 각본을 보내서 피드백을 부탁받기도 했고. 읽는 게 고충이라 친구들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10년 정도 했던가. 참가자들의 열기가 사라져서 중단하기도 하고. 가장 좋았던 것은 자신이 배울 수 있었던 거예요. 이 각본 이상한데, 그 무엇이 이상한지 설명을 해야 하는데 자신도 몰랐어요. 이걸 언어화해서 피드백하는 과정에서, 아, 각본이란 이런 거구나, 스토리텔링이란 이런 거구나, 결국 저 자신이 가장 많이 배웠어요. 전 제대로 스토리를 배운 게 아니라 영화를 찍다보니 스토리를 만들게 되었었기 때문에... 처음엔 뮤직 비디오 프로덕션에서 시작했는데, 왜 그쪽으로 갔냐면, 영화계가 무섭다는 인상이 있어서. 그래서 뮤직비디오 하면서 영화를 만들게 될 경우의 스태프를 모았어요. 그래서 촬영감독 시마다 등을 준비해뒀어요. 저는 영화를 준비했다기보다 그 무서운 업계에서 의뢰가 들어오면 어떻게 대처하지, 하고 걱정하고 있던 것 같아요. 와버렸다~!란 느낌으로. 다행이다, 일단 쓸만한 스태프는 모아뒀고, 라는 느낌. 그런데 긴장은 없었네요. 학생때 찍었었고, 촬영쪽에서도 일해왔으니까. 릴랙스했었네요. 미키씨는 여: 결혼이라든가 출산이라든가, 그런 인생 이벤트가 있었네요. 15세에 데뷔래 15년 흘러. 배우 일은 좋지만 아기가 생기니까 아이를 돌보게 되었지요. 복귀가 가능할까, 빨리 복귀하고 싶다, 하는 공포는 있었습니다만 1년 지나서 복귀는 했지만 애를 돌봐야 하니까, 지금까진 자기중심이었던 게 아기중심이 되었어요. 그게 익숙해지게 되었어요. 하고싶었던 일도 거절하기도 하고. 많이 배우게 되었어요. 하나의 인간을 제로부터 성장시키는... 지금은 배움이라고 말하지만, 당시엔 필사적이라 머릿속이 카오스였습니다. 30대 전반은 그렇게 보냈네요. 그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40대도 없었을 거고, 여배우니까 모든 경험은 전부 결국 아웃풋할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게 30대였습니다. 전 계획성도 뭣도 없는데, 그때그때 여러 일들이 발생하기도 하고, 혹은 쌓아왔던 것이 변화해버리는 일들이 발생하기도 해요. 인생 계획대로 안 돼요. 지금 이와이 감독도 계시지만, 언젠가 다시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기초를 쌓는 느낌으로 세월을 보냈어요. 언제 기회가 와도 어떻겐가 대처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나가면 되지 않으려나~하는 느낌이네요. 그런 30대였습니다. 남: 같은 느낌의 30대였네요, 무식하게. 제가 주의하려고 하는 건, 인간은 지금 현재밖에 살 수 없다는 거예요. 쓸데없는 잣대로 재려고 할 필요가 없달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지금의 잣대로 재려고 하면 초라한 것밖에 느끼지 못하죠. 역시 오늘 하루가 가장... 진짜 시간은 지금, 이 시간밖에 사람은 살 수 없다고 생각하면.. 오늘 하루를 여러분과 보냈다는 것은 정말... 정말 굉장한 끝맺음 멘트네요. (웃음) 장대한 맺음말이 됐네요. 남: 다시 미키씨와 오랜만에 다시 현장에서.. 여: 네! 꼭 그러고 싶어요. 남: 힘내겠습니다. 제가 힘내야죠. 여: 저도 힘내겠습니다! 남: 하지만 정말... 아이도 기르면서.. 일요일도 라디오를 하고 있고,,, 매일 노력하는구나 하고 감동받고 있습니다. .... 꼭 나중에 현장에 와 주세요. 여: 예!
@@magicmix88 댓글 감사합니다! 봐주신 분이 계셨네요 ㅎㅎ 사실 싱크로 맞게 영상에 바로 자막을 넣고 싶었는데 감독님이 시청자가 자막을 넣을 수 있게 설정을 해두지 않으신 것 같아요. 혹시 또 러브레터 관련 영상에 번역을 넣게 되면 알려드릴게요. 그리고 이전에 감독이 러브레터 촬영지에 가서 찍은 브이로그(?) 꼭 보시면 좋겠어요(거긴 다른 분이 내용 올려두셨어요)
번역6: 48:35 여: 러브레터 하면 역시 "오겡키데스카"라는 대사가 언급되는데, 해외에서도 모두 이 대사를 하면서 말을 걸어와요. 남: 한국이라든가. 여: 한국이라든가. 타이완이라든가 중국이라든가. 타이완 비행기를 탔을 때, 저를 알아봤어요. "러브레터"와 "오겡키데스카"란 대사를 세트로 언급하며 말을 걸었어요. 배우죠? 라는 느낌으로. 미국에서도 한국분이 갑자기 말을 걸어와서, "오겡키데스카?"하고 말을 걸어와요. 그 대사가, 장면 자체도 인상적인 데다, 아마 말하기 쉬운 걸까나? 어쨌든 러브레터란 제목과 오겡키데스카를 세트로 말을 걸어요. 그게 너무 기뻤어요. 외국에서 러브레터의 이야기를 듣는 게. "보고 있어. 타이완 ,홍콩에선 2년 동안 개봉하고 있다"라든가. 필사적으로 말을 해 와서. 감독도 그렇지 않아요? 외국에서. 남: 그러네요. 덕분에. 최초엔 홍콩과 타이완에서 상영됐어요. 중국이라든가 한국에선 상영이 안 되었어요. 국가적인.. 이런저런 게 있어서. 해적판으로 퍼졌달까. (당시 한국은 일본 컨텐츠 수입 금지. 해적판으로 알려지고, 정식 상영되고 나서도 200만 관객 돌파). 4월 이야기가최초로 상영되었어요. 당시 "러브레터 보신 분 계신가요?"하니까 98%가 손을 들었어요. 여: 기뻐라! 남: 아직 상영되지 않았었어요. 여: 아... 모두들 역시.. 그런 식으로... 남: 비디오테이프로... 그 후 한국이 정식으로 상영해서.. 엄청난 관객이 밀려와서.. 당시 일본 영화 중 1위가 됐죠 (역자 주: 실미도였나가 상영될 때까지 국적 불문하고 한국에서 관객수 1위였던 것으로 기억함). 52:00 남: 쭉 기록이 깨지지 않고 유지되다가... 지금은 모르겠네요. (1-너의 이름은 2 - 하울 3- 센과 치히로 4 - 러브레터. 러브레터는 해적판으로 본 사람도 많고, 그뿐 아니라 지금도 매년 재개봉을 하고 있습니다) 오타루에도 줄곧 관광객이... 그렇게 될줄은 몰랐어요. 덕분에 저도 한국과 중국과 교류할 기회가 생겨서. 여러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몇년 전에는 제가 중국에서 "~"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어요. 러브레터를 만들 당시 전 31~32였을까요. 당시엔 머리카락이 짧았어요. 아까 말한 의상팀 인원이, 머리카락 좀 정리해드릴까요, 하더니 점점 올라와서... 그렇게 짧았던 것은 그때뿐이었어요. 대학교 졸업하고 이후는 줄곧 장발이라. 헤어 담당자가 아니었으니까. 의상팀이니까. 저도 혼동했었어요. "잘라본 적 있어요?"," 별로 없네요~".
번역7: 55:00 질문자2: 별 거 없는 일상중에서.. 훌쩍...죄송합니다.. 별 거 없는 일상중에서 행복이 있다든가, 있을만한 일이 아니지만, 그렇지만 보고있는 중,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겠다, 하고 믿어버리기도 하고, 이뤄질 수 없는 사람과의 교제라든가. 4월 이야기처럼. 절대 조화되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 뒤섞인다든가. 그런 점이 굉장히 좋달까, 기적처럼 느껴져서. 극장을 나오니 전차 안도 반짝반짝거려 보여서.. 마음이 찡-하기도 하고 일상이 기적처럼 보이게 되었습니다만, 감독은 영화를 만들때 어떤 것을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남: 그렇게 느끼신다고 하니 저도 울컥합니다만. 제 안에도 여러 원체험(창작자의 영감이 되는 체험)이 있어서 영화를 찍기 시작한 것은 18살 때였나였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18년간, 반짝반짝까지는 아니더라도, 길을 걸으며, 봄이 찾아오는 모양이라든가 그런 것에 민감한 어린애였어요. 사춘기에 일순 시간의 흐름이라든가 계절이라든가를 음악, 그림, 영상이라든가 사진이라든가 어떤 형태로 만들 수 없을까 하고 고민하며, 고교 시절 미술부에 들어가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대학도 유화쪽으로 들어갔습니다만, 미술 교육자쪽으로. 입학 전에 영화연구부에 들어가서 필름도 돌리기 시작해서. 점점 머리 안의 것들을 아웃풋해나가기 시작했달까. 그런 대학시절이 있었어요. 프로가 되고 나니 그런 것을 추구하는 것은 별로 없어지고 재미있는가 어떤가로 기획이 통과되기 때문에 그것만... 다만 운좋게 뮤직비디오 등을 찍는 일을 많이 맡게 되어서. 그쪽은 추상적인 세계를 그리기 쉬운 곳이어서... 제 안의 5%, 10%를 표현할 수 있다면 만족이려나, 하다가 현재까지 이르른 느낌. 만약 100%로 표현한다면 아무도 이해 못할, 재미 없는 작품이 될 거예요. 59:15 질문자3: 최초로 서로를 봤을 때의 인상이 궁금합니다. 여: 저는, 나이차가 꽤 되지만, 굉장히 친절한 오빠라고 느꼈어요. 감독이란 벽이 있지만, 그런 벽 없이 말을 걸어주셔서, 굉장히 좋은 오빠. 동년배의 친구들 중 하나 같은 느낌. 감독이니 굉장한 지위였던 셈인데, 저희를 편하게 해주려고 배려해주셔서... 즐거운 기억뿐이에요. 남: 나카야마의 중학생 시절이란 설정이었기에, 정한 후에 주위의 프로듀서들이 "글쎄, 닮았나?"하고 물었어요. "아니, 닮았잖아요"했지요. 얘가 아니면 싫어요, 하는 느낌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서. 굉장히 귀여웠고. 유일무이한 존재랄까.
번역2: 9:00 남: 지금까지 불가사의한 게, 10월 중순부터 12월 5일까지 촬영을 하였는데, 원래 눈이 안 오는 계절에, 드물게 조금 조금 눈이 내렸는데, 그게 기묘하게도 눈이 필요한 장면에 딱 맞춰서 내렸어요. 정말 기적의 스케줄이었어요.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거지? 하고 생각했어요. 눈이 없는 장면은 또 눈이 등장하면 곤란한데요, 배우들이 다 오타루에 있는 게 아니고 도쿄에서 스케줄에 따라 오기 때문에, 오늘은 눈이 오니까 눈이 오는 장면을 촬영하자!라고 하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눈 안 오니까 눈 안 오는 장면 하자!도 안 되고요. 그러니까... 여: 눈이 필요한 때는 눈이 와주는... 정말 기적이네요. 남: 그리고 큰 눈이 올 때도 마침 교실 장면 촬영하는 날이라든가. 학급 위원 선거 장면은 사실 밤에 촬영했어요. 밖에 눈보라가 치고 있었어요. 여: 맞아요~ 완전 대낮으로 보이지만 말이죠. 남: 촬영 중간중간 창문 틈으로 밖 보면서 여: 굉장해~! 남: 아, 저기 사람 있다! 라든가. 여: 대낮 효과를 내야 하니까 조명 담당자가 창문 밖에서 거대한 조명을 비췄죠. 눈보라가 불고 있고, 조명을 들고 있는 담당자님이 있고, 그걸 창문 사이로 내다 보면서... 남: 눈보라 속에서 일을 해주신 조명 담당자님들 여: 그런 노력 덕에 낮이 창조되었죠 남: 추웠는지 더웠는지 지금도 수수께끼 여: 그러네요! 조명은 뜨거우니까... 남: 사실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더웠다든가... 쾌적했는지도. 여: 딱 적당했는지도요. 11:56 남: 그 장면엔 엑스트라들이 등장했는데, 제가 한 명에게 후지이를 돌아보면서, "아, 얘 울고 있어!"하고 말하라고 시키니까, 그 사람이 굉장이 놀랐어요. "에 제가 해요? 저 22살인데요." 왜 22살짜리가 끼어있는거지 하니까, "이 엑스트라들 데리고 온 인력업체 담당자입니다. 사람이 모자라 앉아있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대로 굉장히 잘 해주었어요. 여: 22살이지만.. 남: 어른인 게 탄로나지 않고. 그 장면에 있던 몇 명인가가 나중에 어른이 돼서 "사실 저 이 장면에 있었어요"라고 저한테 말해주었어요. 여: 그렇군요! 그립네요 교실 뒤에서 카메라가 옆으로 이동하면서 찍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것도 밤에 찍었고, 벽을 부쉈어요. 카메라 자리가 없어서, 교실 벽을 부숴서. 목조건물의, 오래된, 폐교된 학교. (역자: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일본 여행을 갔는데 러브레터처럼 목조로 된 학교를 못 보아 아쉬웠는데, 이미 당시에도 목조 건물은 폐교가 되어있었군요) 남: 로케 선정 중에, 어디를 부숴도 좋습니다, 라고 언질을 받았어요. "못 부숴요, 이런 멋진 학교!" 그런데 촬영감독이 카메라 이렇게 움직이고 싶은데, 이 벽 방해되네~! 하면서, 체인톱을 가져와서... 여: 엄청난 소리가 나더니, 연기자 아이들이, "굉장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벽을 부수고 있어! 빨리 와봐!"하고 부르러 와서, 가 보니까, 이미 벽에 구멍이 뚫려있었어요. 밤에 벌어진 일입니다. 남: 그 장면을 마지막에 찍었죠. 교실에서 싸움하는 씬까지를 일단 다 찍고, 이제 괜찮겠지 싶을 때 부쉈지요. 칠판에 正자를 적는 여자 아이의 정면에서 촬영을 시작하고 그 주위를 우회하면서 촬영하는.. 그런 장면이 필요한데 여자아이와 칠판 사이에 커다란 카메라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그리고 카메라맨이 크레인에 앉아서 돌아야 하기 때문에 크레인 자리도 확보해야 했고.. 반대쪽까지 가면 칠판은 이미 부서져있는 상황. 여: 활기차게 했었네요 남: 그리고 의외로 추웠지요. 자전거 주차장 씬에서.. 여: 추웠어요 남: 오타루에서 출발해서, 토마꼬마이라는, 고교인가 중학교인가의 자전거 주차장을 빌렸죠. 오타루도 춥지만, 눈이 많이 내려서, 기온은 그다지 내려가지 않죠. 그런데 동쪽 바다 쪽은 스케이트 등이 번창했어요. 서쪽은 스키인데. 즉, 더 추운 거죠. 방한복을 입어도. 그런데 영화상으로는 겨울이 아니에요. 의상도 얇고.
번역4: 28:30 남: 사실 언덕 전체를 매끈하게 할 수가 없었어요. 아무리 작업해도 한 군데만큼은 울퉁불퉁하게 남았죠. 그래서 미키씨에서 거기서 턴을 해달라고 요구했지요. 여: 에! 그랬어요? 남: 예, 그 울퉁불퉁한 부분이 없었으면 그냥 쭉 미끄러질 뿐인 씬이었지요. 그 멋진 턴은 사실 궁여지책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이상 내려갈 수가 없었던 거지요. 여: 그랬군요!ㅎㅎ 29:30 남: 언덕 너머에서 미키씨가 등장하려고 대기할 때, 촬영 감독이 렌즈를 보면서, 눈이 내리는 게 아니라 눈이 회오리치는 걸 보고, 뭐야 이거, 하며, 지금이야, 하고 큐 사인을 보냈어요. 그러니까 이 장면이 찍힌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에요. 이런 기적의 연속으로 괜찮은 걸까, 하는. 오타루의 신일까, 카무이(아이누의 신)일까, 향나무에게 수호받으며 만든 듯한... 그런 미신은 믿지 않는 편이지만, 그때만큼은.. 신비함을 느끼지 않을수가 없었어요 여: 감독이, 제가 몇 번이고 실패하니까, 당시 저는 야키니쿠(고기)를 좋아했는데, 갑자기 멀리서 "미키! 야키니쿠!"라고 소리지르는 거예요. "에? 야키니쿠?" 그 한 발로 성공했어요. 성공할 수밖에 없어~하면서. 남: 촬영 현장 자체가 영화 같았아요. 여: 맞아요. 카메라 한 대가 더 있었더라면. 남: 러브레터 메이킹 자체로 한 편의 영화가 되지 않으려나. 32:24 남: 미키씨의 경우는 본인은 아니고 그림으로 마지막에 한 번 등장하잖아요? 여: 아 그러네요 남: 서두를 떼었습니다(이야기 물꼬를 텄습니다). 여: 아, 감사합니다(주섬주섬). 맞아, 이야기에 열중하느라... 저, 마지막은 그림으로 나오잖아요. (환호) 30년간 보관해왔어요.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에요. 영화 관계자가 아닌 분들에게는. 당시 촬영 종료하면서, 감독에게 받았어요. 지금껏 피로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오늘은 특별히 여러분께...(역자: 너무 부럽다. 러브레터는 일본에서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한국과 중국에서 흥행했기 때문에 가치도 엄청날 듯) 남: 후지이 이츠키 집의 코타츠에 들어가 앉아 그렸던 기억이 있네요. 오늘 하루만 빌릴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볼 수 있게 전시하고 싶네요. 여: 예, 물론. 이쪽 면이 메인이지만 뒤에는 이름과 대여일, 반납일까지 적혀있어요. 남: 엄청난 녀석이 왔다. 여: 그러네요. 러브레터에 감독의 여러 소도구가 있는데.. 남: 최고가 왔네요. 제가 그린 거지만 (웃음).
번역1: 남: 여기 와서 러브레터 촬영했던 카메라랑 같은 모델을 발견했는데 깜빡 커버를 열어버렸다. 옛날 카메라라서 빛이 들어가면 안 되는데. (이제 완전 옛시대가 돼버렸다) 여: 순식간에 30년 지났네요. 고2였는데. 러브레터 오디션 일화: 여: 저는 나카야마 미호의 팬이었고, 그 때문에 배우가 되기로 했어요. 그래서 매니저는 이 영화에 미호가 등장한단 걸 비밀로 했어요. 긴장할까 봐. 그리고 오디션 직전에 알려줬어요. 그 편이 더 긴장되는데! 서너 명의 남자들이 앞에 앉아서 오디션을 진행했어요. 남: 그랬었나? 여: 3행 정도의 대사를 읽는 오디션이었어요. 남: 그랬었나? 여: 매니저는 직전에 저에게 (너무 긴장한 것 같아) "화장실 갔다오지 않을래?"하고 시간을 줬다. 근데 그걸 눈치 못채고 "아뇨, 안 마려운데요"했다. (그냥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난 시즈오카 출신인데요, 그냥 고향 얘기 등을 얘기했어요. 오디션이란 기분은 거의 없었어요. 그냥 대화 기억하시나요? 기억 안 나시죠? 5:44 남: 아뇨... 기억 납니다. 뭐랄까, 보자마자, 아, 이 아이다, 이 아이로 하자, 라고 바로 결정했기 때문에... 여: 아, 그랬어요? 에! 남: 일반 공고를 했기 때문에 엄청난 수의 지원자가 왔어요. 그 후에도 오디션은 쭉 이어지는 예정이었는데.. 이 아이로 하고 싶어요, 라고 말하니까, 모두들, "에? 그럼 이후의 오디션은 어쩌고?"했죠. 일단 이 아이가 좋겠는데, 하고 생각하니까, 저는 '그래도 만일을 위해도 다른 후보도'하고 생각하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그걸로 결정돼버렸어요. 오디션 이틀만에 결정했어요. 여: 그런... 전 굉장히 럭키... 남: 아니요, 이쪽이야말로. 본 순간에 아, 난 럭키다, 라고 생각했어요. 7:40 그때 (사카이 양은) 음악활동을 메인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 ㅎㅎ, 아이돌을... 남: 주말, 일요일이 되면 아이돌 영업... 뭔지 아시려나 여: 맞아요, 영업활동이라고 해서 다양한 지방에 가서 노래 부르기도 하고 라디오에 출연하기도 하고 남: 그리고 백화점 옥상이라든가 여: 맞아요, 당시엔 백화점에서 노래 부른다든가 생방송 라디오에 나간다든가.. 그래서 주말엔 오타루(러브레터 촬영지)에서 다시 (시즈오카로)돌아오지 않으면 안 됐지요...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헷갈리게 돼요. 아침에 일어나면 여기가 어디지? 하는 현상이... 몇번이나 오타루를 왕복하면서 촬영을 했습니다. (역자주:네이버 도전만화에 아마추어 웹툰을 업로드한 적이 있습니다만, 러브레터의 일부를 오마주(베낌)한 장면이 있습니다. 제목은 . 4부 6화에. 혹시 관심 있으실지 몰라(저는 아마추어 팬픽을 챙겨보기에) 정보 남겨두고 갑니다.)
번역3: 18:22 남: 대사를 말하면, 특히 밤에는, 하얀 입김이 조명에 부각돼버리기 때문에, 그걸 어떻겐가 해결해야 했어요. 여: 맞아요 ㅋㅋ 남: 입 안에 차가운 걸 넣자고 했지요 여: 추운데 말이죠. 남: 얼음을 넣으면 불쌍하니까, 딸기맛 샤베트를 넣게 했지요. "달다, 달다(입 벌려)" 하면서. "차갑다고!" 여: 덜덜 떨면서 입 안까지도 얼리지 않으면 안 됐지요... 그런데 대사를 제대로 말할 수가 없어요. 혀가 곱아서. 그래도 맛있는 거는 먹으면서..ㅎㅎ 그렇게 하얀 입김도 가능한 한 처리하여.. 남: 지금 같으면 편집으로 지울 수 있지요 여: 그러네요. 남: 당시는 거의 수작업이었지요. 여: 저는 스케이트 타듯 단화(학생 구두) 신고 미끄러지는...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촬영 굉장했어요. 그 전날은 눈이 안 왔고, 그날 아침에 대설이 와서, 남: 밤부터 와서 아침까지. 그게 촬영 마지막이었어요. 그 장면 어떻게 찍어야 하지 줄곧 고민했어요. 다른 어딘가에 그런 지형을 만드는 것도 고려했는데, 그것 안 됐고. 여러 군데서 이 때의 에피소드를 언급했는데요, 그 전날밤,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후지이를 업고 병원까지 가는 밤길 씬에서, 점점 폭설이 내리기 시작해서 현장에 제설차가 있었어요. 아, 아니다, 장면을 만드는 데 필요해서 제설차가 있었구나. 제설차가 지나쳐버리는데 "태워줘"라고 하는 장면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진짜로 폭설이 내리면서 제설차에게 가끔 제설작업을 부탁했지요. 그런데 현장에서 걸어다니다 휘청거렸어요. 제설차 넉가래가 지난 옆에 언덕이 생기는데 그 끝이 엄청 미끄러웠어요. 뭐지 이거? 엄청난걸. 거기서 아이디어가 떠올랐지요. 제설차 기사님한테, 넉가래를 반 뼘 정도 띄운 상태로 쭉 가면 쭉 이런 부분이 이어지게 되나요? 물었죠. "위험하지만 가능해요" 내일 아침 여덟시까지 여기로 와주시겠어요? 했지요. 촬영은 아침까지 이어졌고, 목욕탕에 잠시 들렀다가, 잠 한숨도 안 자고, 아침 촬영지에 갔지요. 제설차에게 언덕을 왔다갔다하길 부탁했지요. 발자국을 남기면 안 되기 때문에 (안 내리고) 그대로 돌아가셨지요. 여: 그렇게 스케이트장이 생긴 거군요. 미끌미끌한. 그렇지만- 구두 신고 스케이트는 정말 어려워요. 몇번이나 했죠. 연습했죠. 달려와서 쭉~. 달리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구두니까. 도중에 균형이 무너지니까 몇번이나 도전해서. 감독은 모를지도 모르지만, 당시 검은 의상이었고, 미끄러지면, 스커트가 바람에 펄럭거려요. 처음 연습 때는 스커트가 나부끼지 않았어요. 감독이 그걸 의상팀에 언급한 것 같앴어요. 의상팀이 절 불러서, 대기실에 갔더니, "거기 서 있어봐. 괜찮을 거니까"라고 하더라고요. "괜찮을 거라니, 뭐가? 에?"하고 생각했더니, 갑자기 가위로 의상을 등 뒤에서 주욱~갈라버렸어요. 옷 통이 크지 않으니까 나부끼지 않은 거예요. 그 장면, 코트를 입고 있는데, 코트 안에 입고 있는 건, 등을 갈라버린 옷이었어요. 남: 그건 몰랐다. 여: 그렇죠? 오늘 꼭 말해야지 하고 벼르고 왔어요 ㅎㅎ 남: 그런 비화가. 여: 코트 안은 어떠해도 좋으니까, 다른 천으로 가른 천 사이를 땜빵했어요. 꿰매기도 하고 테이프로 붙이기도 하고. 진짜 놀랐어요. 서 있는 상태로 그냥. 그런 연유로 스커트가 나부낍니다. (1분 정도 의상 담당자의 순발력에 대해 얘기)
@@알료샤 시간이 없어서 지금 보지 못하고, 첫 10분 정도만 보았는데, 사카이 미키(우측. 후지이 이츠키의 아역)가 오디션에 왔던 얘기를 하네요. 사카이 미키는 어른 후지이 이츠키(나카하마 미호)의 팬이었기 때문에, 긴장할까 봐 매니저가 이 영화에 미호가 공동출연하는 걸 비밀로 하다가 오디션 직전에 알려줬다, 자신은 배우라기보다 아이돌이었다(요즘 아이돌과 달리 백화점 옥상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백화점 상품 영업하는 딴따라 같은 느낌이었다,) 등의 얘기를 합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오디션 거의 초장에 사카이 미키와 대화를 나누고 "이 사람이다, 후지이는" 하고 결정했는데, 배우가 결정이 됐는데도 남은 오디션 참가자들을 돌려보낼 수도 없었기에 오디션을 끝까지 보는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등을 얘기하네요.
@@알료샤 이 인터뷰 전에 반년정도 전인가, 감독이 러브레터 촬영지를 돌아보는 짧은 다큐가 1, 2 부 있으니 꼭 보시길. 원래 소녀 후지이가 아버지 장례식 후로 스키 타듯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장면이 있는데, 원래 그곳은 눈이 거의 오지 않는 지역이다, 스크립트에는 일단 눈 내리는 설정으로 했지만 줄곧 기다려도 눈이 안 내려 장면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마지막날 새벽 눈이 내려 그런 장면이 되었다(실제로 영화에서 미끄러져 내려올 때는 눈이 흩날리는데 잠자리를 볼 때는 눈이 안 내립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매우 드물게 여우가 등장하여 스텝들을 놀라게 하고 사라졌다, 정말 여우에 홀린 듯한 촬영이었다 등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어떤 분이 댓글로 번역도 남겨놓았으니 보시길 권합니다!!!
ラブレターは青春そのもので、VHSは擦り切れるほど毎夜寝る前に再生してたし、DVDが出たら買って観てたし、誇張なしで何百回再生したかわからないくらい10代から20代にかけて自分と共にあった作品でした。いまになって岩井監督と酒井さんの対談が見れるなんて感慨深いです。今夜久しぶりにラブレター観ようと思います。素敵な時間を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The same fan here in South Korea. I was a junior in college when I first saw Love Letter. 27 years has passed, but I can still vividly remember the indescribable feelings (sorrow, nostalgia, etc) that I felt at the ending scene.
It is so good to see Ms. Miki Sakai after so many years.
Greetings from Seoul
@@chanjupark9283 I am happy to have someone with whom I can share emotions beyond national borders. Thank you for your comment.
@@chanjupark9283
I am happy to have someone with whom I can share emotions beyond national borders. Thank you for your comment.
ラブレターは本当名作、最後のシーンが本当に素晴らしい。
素敵な企画を有難うございます。大好きな作品の話がきけて感激しかありません。
この映画を観て銭函を散策し、その後銭函に移住しました。それくらい好きな映画。
ラストレターの森七菜さんが神木隆之介さんに振られて目に涙を浮かべるシーンが酒井美紀さんそっくりでビックリするとともに、だから森七菜さんが選ばれたのかと納得してしまいました。
こんな素晴らしい映像が!!!!私の人生で最大の影響を与えた素晴らしい映画を作ってくれた皆さんに感謝します
번역5:
Q&A
35:30
질문자: 4월이야기 후에 한 대담집 "매직 런처(?)"라는 책에서, 러브레터는 감독이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전력을 담아 만든 작품이며, 오겡끼데스까 씬도 감독이 자신이 죽으면 어떤 식으로 반응할까 하는 것을 생각하며 찍었다고 읽었습니다. 이렇게 실험적으로 찍은 장면들이 더 있을까요?
남: 그러네요... 꽤 무모한 것은 있었네요. 와타나베 히로코랑 후지이 이츠키가 교차하는 씬. 닮은 여자 찾는 게... 화장시켜서 더 닮게 하여... 지금이면 합성이면 되지만... 라이브로 했기에... 상당히 무모했네요. 하지만 하고 싶었었어요, 라이브로. 교차로도 멈춰있었고. 도중에 경찰이 왔어요 (웃음). 도중에 중단했지요. 지방 공공기관의 허가를 받았지만, 시민이 클레임을 넣으면 경찰은 항상 찾아왔습니다.
다 들어가지 못해서 잘라버린 씬이 상당히 많았어요. 지금까지 잊기 어려운 게, 엄청 시간을 들여서, 후지이가 열로 쓰러지려 할 때, 밖에서 부감으로 집 전체를 찍은 씬이 있었어요. 엄청나게 시간을 들여서 작업한 장면이었네요. 단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여: 그 고생을 했는데.
남: 최종적으로는 두 시간 반 정도가 됐네요.
이런 말하면 "감독판을 주세요!"하는 요청이 들어오지만,(웃음) 당시에는 지금과 달랐어요. 촬영 필름을 물리적으로 자르면서 작업했기 때문에, 없어요. 디지털이 아니라. 필름 사이사이를 잘라서 버리는 방식으로 편집했기 때문에. 두시간 정도로 편집하는 건 정말 어려웠네요. 지금껏 "음~"하는 석연찮음이 있네요.
미호짱이랑 토요카와상(와타나베와 그 남친) 다투는 씬이 있었는데, 그 후에 그럼 같이 오타루 가보자, 하는. 거기가 정말 좋았어요. 연기가. 그런데 그런 씬은 숨돌릴 틈이 필요해서, 원래 꽤나 시간을 들였었는데, 그것도 무리해서 구겨넣을 수밖에 없게 돼서, 빨리감기처럼 진행되었어요. 원래 장면을 알고 있으면 더욱 "이야, 이 장면은, 음, 더 이렇게...주저함이라든가 다양한 것들이 있었는데 그게 못 담겼구나..."하는 느낌이... 그런 분함이 생기는 씬이었어요.
여: 그런 필름 조각은 폐기하는 건가요?
남: 파편은 남아있을지도 몰라도... 당시엔 필름을 잘라서 필름 두 장을 겹쳐서 풀로 붙여야 했어요. 한 면을 지워서 투명하게 만든 다음에 붙였어요. 한 필름은 살아있지만 한 필름은 죽어버리는 거죠. 러브레터의 경우는 시네스코프로 제작하여, 필름을 풀로 사용했어요. 뭔가 시네스코프는 굉장히 아슬아슬하게 제작했어요(감독도 공정이 기억이 잘 안 나는듯)... 어딘가 조금은 남아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지금은... 얼마 전에 토오에이 영화사에 가서 필름을 돌려보려 했는데 기계 자체가 없어졌더군요.
그 당시도 이미 시네스코프 자체가 사용되지 않는 시대였어요.
촬영기기가 옆으로 길어서 그에 따라 이래저래 비용도 늘어나서.
전후부터 60년대까진 영화계의 황금기였어요. 셋트도 호화로웠고. 전쟁에 졌는데 어찌된 영문일까 싶지만. 돈이 있는 데는 있었어요. 70년대에는 텔레비전이란 새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영화사들이 추락하면서 점점..
(시대별 영화계, 촬영 기기, 기법 얘기가 쭉 이어진다.
촬영감독 시마다가 를 끝으로 세상을 뜬 후 장면의 분위기뿐 아니라 촬영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와이 감독은 조용한 편이라, 누군가 분위기 메이커 역을 하지 않을까나, 하고 기대했는데 없었다.)
何かの映画を観に行ったときたまたま「Love Letter」の予告編を見て“これはもしかしたら自分の人生にとってかけがえのない体験になるかも!?”と感じてしまいました。公開後シネスイッチ銀座だったかな?に遠方から脚を運ぶと劇場まで何百メートルと続く長蛇の列で、仕方なく諦めて帰りました(後で中山美穂さんの舞台挨拶があった為だと知りました)🥲
後日改めて観に行ったのですが冒頭のシーンからトンカチで頭を殴られたかのような衝撃を受け、ラストシーンの後も暫く立ち上がれないくらいの感動を覚えた記憶があります。
それ以来29年間この作品は邦洋画問わず私のベスト・ムービーとしてその地位が揺らぐ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
来年は遂に公開から30周年目ですね!是非その残ってるかも知れない?未公開シーン等が拝めたらと期待しております😁
昨日あそこに行って来る途中ちょうどアップロードされてとても嬉しかったです。 お待ちしておりましたが、トーク映像をアップしていただき、誠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まだ見る前なのに、とてもわくわくして胸が熱くなります。
諦めたシーンのフィルムだけ集めて、それだけの特典映像観てみたいなぁ😮ラブレター懐かしいなぁ😊何百回観たか分からない作品😊雪のシーンがほんと綺麗ですき^_^篠田さんの撮影技法すごくステキで印象的だった😊クラス員選挙の教室のシーンで、黒板側からの教室内広角撮影と後方のロッカー側からの教室内広角撮影がありましたが、あれって二つの教室を使って撮影してたのかなぁ🤔黒板側の壁を壊した教室と、ロッカー側の壁を壊した教室を交互に撮影したりしてたのかなぁって感じていました🎥
それから大好きな女優酒井美紀さんが成人式のとき同じ会場にいて、あの日雪❄️だったからよく覚えてるけど、酒井美紀さんと同い年ってのが嬉しかったなぁ
会場におりました。
素敵なイベントを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번역8:
1:03:30
질문자4: 내일 30이 되는데요, 10대, 20대에 해야 할 일들은 종종 들었는데, 30대에는 뭘 하면 될까요. 두 분이 30대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그리고 30대때 뭘 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남: 개인적으로 30대는 어느순간 찾아와버렸단 느낌. 소설이라든가 각본은 썼지만 자신은 없고. 언젠가 해외에서 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영어회화를 공부하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각본 워크숍도 했었고. 여러 분께서 각본을 보내서 피드백을 부탁받기도 했고. 읽는 게 고충이라 친구들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10년 정도 했던가. 참가자들의 열기가 사라져서 중단하기도 하고.
가장 좋았던 것은 자신이 배울 수 있었던 거예요. 이 각본 이상한데, 그 무엇이 이상한지 설명을 해야 하는데 자신도 몰랐어요. 이걸 언어화해서 피드백하는 과정에서, 아, 각본이란 이런 거구나, 스토리텔링이란 이런 거구나, 결국 저 자신이 가장 많이 배웠어요. 전 제대로 스토리를 배운 게 아니라 영화를 찍다보니 스토리를 만들게 되었었기 때문에...
처음엔 뮤직 비디오 프로덕션에서 시작했는데, 왜 그쪽으로 갔냐면, 영화계가 무섭다는 인상이 있어서.
그래서 뮤직비디오 하면서 영화를 만들게 될 경우의 스태프를 모았어요. 그래서 촬영감독 시마다 등을 준비해뒀어요. 저는 영화를 준비했다기보다 그 무서운 업계에서 의뢰가 들어오면 어떻게 대처하지, 하고 걱정하고 있던 것 같아요. 와버렸다~!란 느낌으로. 다행이다, 일단 쓸만한 스태프는 모아뒀고, 라는 느낌.
그런데 긴장은 없었네요. 학생때 찍었었고, 촬영쪽에서도 일해왔으니까. 릴랙스했었네요. 미키씨는
여: 결혼이라든가 출산이라든가, 그런 인생 이벤트가 있었네요. 15세에 데뷔래 15년 흘러. 배우 일은 좋지만 아기가 생기니까 아이를 돌보게 되었지요. 복귀가 가능할까, 빨리 복귀하고 싶다, 하는 공포는 있었습니다만 1년 지나서 복귀는 했지만 애를 돌봐야 하니까, 지금까진 자기중심이었던 게 아기중심이 되었어요. 그게 익숙해지게 되었어요. 하고싶었던 일도 거절하기도 하고. 많이 배우게 되었어요. 하나의 인간을 제로부터 성장시키는... 지금은 배움이라고 말하지만, 당시엔 필사적이라 머릿속이 카오스였습니다. 30대 전반은 그렇게 보냈네요.
그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40대도 없었을 거고, 여배우니까 모든 경험은 전부 결국 아웃풋할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게 30대였습니다.
전 계획성도 뭣도 없는데, 그때그때 여러 일들이 발생하기도 하고, 혹은 쌓아왔던 것이 변화해버리는 일들이 발생하기도 해요. 인생 계획대로 안 돼요. 지금 이와이 감독도 계시지만, 언젠가 다시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기초를 쌓는 느낌으로 세월을 보냈어요. 언제 기회가 와도 어떻겐가 대처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나가면 되지 않으려나~하는 느낌이네요. 그런 30대였습니다.
남: 같은 느낌의 30대였네요, 무식하게.
제가 주의하려고 하는 건, 인간은 지금 현재밖에 살 수 없다는 거예요. 쓸데없는 잣대로 재려고 할 필요가 없달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지금의 잣대로 재려고 하면 초라한 것밖에 느끼지 못하죠. 역시 오늘 하루가 가장... 진짜 시간은 지금, 이 시간밖에 사람은 살 수 없다고 생각하면.. 오늘 하루를 여러분과 보냈다는 것은 정말... 정말 굉장한 끝맺음 멘트네요. (웃음) 장대한 맺음말이 됐네요.
남: 다시 미키씨와 오랜만에 다시 현장에서..
여: 네! 꼭 그러고 싶어요.
남: 힘내겠습니다. 제가 힘내야죠.
여: 저도 힘내겠습니다!
남: 하지만 정말... 아이도 기르면서.. 일요일도 라디오를 하고 있고,,, 매일 노력하는구나 하고 감동받고 있습니다. .... 꼭 나중에 현장에 와 주세요.
여: 예!
번역 정말 감사합니다 영상 떴을 때 어떤 내용인지 정말 궁금했는데 이렇게 해소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또 흥미로운 영상 올라오면 번역.. 염치없지만 올려주시길 바래봅니다
@@magicmix88 댓글 감사합니다! 봐주신 분이 계셨네요 ㅎㅎ 사실 싱크로 맞게 영상에 바로 자막을 넣고 싶었는데 감독님이 시청자가 자막을 넣을 수 있게 설정을 해두지 않으신 것 같아요. 혹시 또 러브레터 관련 영상에 번역을 넣게 되면 알려드릴게요. 그리고 이전에 감독이 러브레터 촬영지에 가서 찍은 브이로그(?) 꼭 보시면 좋겠어요(거긴 다른 분이 내용 올려두셨어요)
번역6:
48:35
여: 러브레터 하면 역시 "오겡키데스카"라는 대사가 언급되는데, 해외에서도 모두 이 대사를 하면서 말을 걸어와요.
남: 한국이라든가.
여: 한국이라든가. 타이완이라든가 중국이라든가.
타이완 비행기를 탔을 때, 저를 알아봤어요. "러브레터"와 "오겡키데스카"란 대사를 세트로 언급하며 말을 걸었어요. 배우죠? 라는 느낌으로. 미국에서도 한국분이 갑자기 말을 걸어와서, "오겡키데스카?"하고 말을 걸어와요. 그 대사가, 장면 자체도 인상적인 데다, 아마 말하기 쉬운 걸까나? 어쨌든 러브레터란 제목과 오겡키데스카를 세트로 말을 걸어요. 그게 너무 기뻤어요. 외국에서 러브레터의 이야기를 듣는 게.
"보고 있어. 타이완 ,홍콩에선 2년 동안 개봉하고 있다"라든가. 필사적으로 말을 해 와서. 감독도 그렇지 않아요? 외국에서.
남: 그러네요. 덕분에. 최초엔 홍콩과 타이완에서 상영됐어요. 중국이라든가 한국에선 상영이 안 되었어요. 국가적인.. 이런저런 게 있어서.
해적판으로 퍼졌달까. (당시 한국은 일본 컨텐츠 수입 금지. 해적판으로 알려지고, 정식 상영되고 나서도 200만 관객 돌파). 4월 이야기가최초로 상영되었어요. 당시 "러브레터 보신 분 계신가요?"하니까 98%가 손을 들었어요.
여: 기뻐라!
남: 아직 상영되지 않았었어요.
여: 아... 모두들 역시.. 그런 식으로...
남: 비디오테이프로... 그 후 한국이 정식으로 상영해서.. 엄청난 관객이 밀려와서.. 당시 일본 영화 중 1위가 됐죠 (역자 주: 실미도였나가 상영될 때까지 국적 불문하고 한국에서 관객수 1위였던 것으로 기억함).
52:00
남: 쭉 기록이 깨지지 않고 유지되다가... 지금은 모르겠네요. (1-너의 이름은 2 - 하울 3- 센과 치히로 4 - 러브레터. 러브레터는 해적판으로 본 사람도 많고, 그뿐 아니라 지금도 매년 재개봉을 하고 있습니다) 오타루에도 줄곧 관광객이... 그렇게 될줄은 몰랐어요. 덕분에 저도 한국과 중국과 교류할 기회가 생겨서. 여러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몇년 전에는 제가 중국에서 "~"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어요. 러브레터를 만들 당시 전 31~32였을까요.
당시엔 머리카락이 짧았어요. 아까 말한 의상팀 인원이, 머리카락 좀 정리해드릴까요, 하더니 점점 올라와서... 그렇게 짧았던 것은 그때뿐이었어요. 대학교 졸업하고 이후는 줄곧 장발이라. 헤어 담당자가 아니었으니까. 의상팀이니까. 저도 혼동했었어요. "잘라본 적 있어요?"," 별로 없네요~".
번역7:
55:00
질문자2: 별 거 없는 일상중에서.. 훌쩍...죄송합니다..
별 거 없는 일상중에서 행복이 있다든가, 있을만한 일이 아니지만, 그렇지만 보고있는 중,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겠다, 하고 믿어버리기도 하고, 이뤄질 수 없는 사람과의 교제라든가. 4월 이야기처럼. 절대 조화되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 뒤섞인다든가. 그런 점이 굉장히 좋달까, 기적처럼 느껴져서. 극장을 나오니 전차 안도 반짝반짝거려 보여서.. 마음이 찡-하기도 하고 일상이 기적처럼 보이게 되었습니다만, 감독은 영화를 만들때 어떤 것을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남: 그렇게 느끼신다고 하니 저도 울컥합니다만.
제 안에도 여러 원체험(창작자의 영감이 되는 체험)이 있어서 영화를 찍기 시작한 것은 18살 때였나였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18년간, 반짝반짝까지는 아니더라도, 길을 걸으며, 봄이 찾아오는 모양이라든가 그런 것에 민감한 어린애였어요. 사춘기에 일순 시간의 흐름이라든가 계절이라든가를 음악, 그림, 영상이라든가 사진이라든가 어떤 형태로 만들 수 없을까 하고 고민하며, 고교 시절 미술부에 들어가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대학도 유화쪽으로 들어갔습니다만, 미술 교육자쪽으로. 입학 전에 영화연구부에 들어가서 필름도 돌리기 시작해서. 점점 머리 안의 것들을 아웃풋해나가기 시작했달까. 그런 대학시절이 있었어요. 프로가 되고 나니 그런 것을 추구하는 것은 별로 없어지고 재미있는가 어떤가로 기획이 통과되기 때문에 그것만... 다만 운좋게 뮤직비디오 등을 찍는 일을 많이 맡게 되어서. 그쪽은 추상적인 세계를 그리기 쉬운 곳이어서... 제 안의 5%, 10%를 표현할 수 있다면 만족이려나, 하다가 현재까지 이르른 느낌. 만약 100%로 표현한다면 아무도 이해 못할, 재미 없는 작품이 될 거예요.
59:15
질문자3: 최초로 서로를 봤을 때의 인상이 궁금합니다.
여: 저는, 나이차가 꽤 되지만, 굉장히 친절한 오빠라고 느꼈어요. 감독이란 벽이 있지만, 그런 벽 없이 말을 걸어주셔서, 굉장히 좋은 오빠. 동년배의 친구들 중 하나 같은 느낌. 감독이니 굉장한 지위였던 셈인데, 저희를 편하게 해주려고 배려해주셔서... 즐거운 기억뿐이에요.
남: 나카야마의 중학생 시절이란 설정이었기에, 정한 후에 주위의 프로듀서들이 "글쎄, 닮았나?"하고 물었어요. "아니, 닮았잖아요"했지요. 얘가 아니면 싫어요, 하는 느낌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서. 굉장히 귀여웠고. 유일무이한 존재랄까.
번역2:
9:00
남: 지금까지 불가사의한 게, 10월 중순부터 12월 5일까지 촬영을 하였는데, 원래 눈이 안 오는 계절에, 드물게 조금 조금 눈이 내렸는데, 그게 기묘하게도 눈이 필요한 장면에 딱 맞춰서 내렸어요. 정말 기적의 스케줄이었어요.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거지? 하고 생각했어요. 눈이 없는 장면은 또 눈이 등장하면 곤란한데요, 배우들이 다 오타루에 있는 게 아니고 도쿄에서 스케줄에 따라 오기 때문에, 오늘은 눈이 오니까 눈이 오는 장면을 촬영하자!라고 하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눈 안 오니까 눈 안 오는 장면 하자!도 안 되고요. 그러니까...
여: 눈이 필요한 때는 눈이 와주는... 정말 기적이네요.
남: 그리고 큰 눈이 올 때도 마침 교실 장면 촬영하는 날이라든가.
학급 위원 선거 장면은 사실 밤에 촬영했어요. 밖에 눈보라가 치고 있었어요.
여: 맞아요~ 완전 대낮으로 보이지만 말이죠.
남: 촬영 중간중간 창문 틈으로 밖 보면서
여: 굉장해~!
남: 아, 저기 사람 있다! 라든가.
여: 대낮 효과를 내야 하니까 조명 담당자가 창문 밖에서 거대한 조명을 비췄죠. 눈보라가 불고 있고, 조명을 들고 있는 담당자님이 있고, 그걸 창문 사이로 내다 보면서...
남: 눈보라 속에서 일을 해주신 조명 담당자님들
여: 그런 노력 덕에 낮이 창조되었죠
남: 추웠는지 더웠는지 지금도 수수께끼
여: 그러네요! 조명은 뜨거우니까...
남: 사실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더웠다든가...
쾌적했는지도.
여: 딱 적당했는지도요.
11:56
남: 그 장면엔 엑스트라들이 등장했는데, 제가 한 명에게 후지이를 돌아보면서, "아, 얘 울고 있어!"하고 말하라고 시키니까, 그 사람이 굉장이 놀랐어요. "에 제가 해요? 저 22살인데요." 왜 22살짜리가 끼어있는거지 하니까, "이 엑스트라들 데리고 온 인력업체 담당자입니다. 사람이 모자라 앉아있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대로 굉장히 잘 해주었어요.
여: 22살이지만..
남: 어른인 게 탄로나지 않고.
그 장면에 있던 몇 명인가가 나중에 어른이 돼서 "사실 저 이 장면에 있었어요"라고 저한테 말해주었어요.
여: 그렇군요! 그립네요
교실 뒤에서 카메라가 옆으로 이동하면서 찍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것도 밤에 찍었고, 벽을 부쉈어요. 카메라 자리가 없어서, 교실 벽을 부숴서. 목조건물의, 오래된, 폐교된 학교. (역자: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일본 여행을 갔는데 러브레터처럼 목조로 된 학교를 못 보아 아쉬웠는데, 이미 당시에도 목조 건물은 폐교가 되어있었군요)
남: 로케 선정 중에, 어디를 부숴도 좋습니다, 라고 언질을 받았어요. "못 부숴요, 이런 멋진 학교!" 그런데 촬영감독이 카메라 이렇게 움직이고 싶은데, 이 벽 방해되네~! 하면서, 체인톱을 가져와서...
여: 엄청난 소리가 나더니, 연기자 아이들이, "굉장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벽을 부수고 있어! 빨리 와봐!"하고 부르러 와서, 가 보니까, 이미 벽에 구멍이 뚫려있었어요. 밤에 벌어진 일입니다.
남: 그 장면을 마지막에 찍었죠. 교실에서 싸움하는 씬까지를 일단 다 찍고, 이제 괜찮겠지 싶을 때 부쉈지요. 칠판에 正자를 적는 여자 아이의 정면에서 촬영을 시작하고 그 주위를 우회하면서 촬영하는.. 그런 장면이 필요한데 여자아이와 칠판 사이에 커다란 카메라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그리고 카메라맨이 크레인에 앉아서 돌아야 하기 때문에 크레인 자리도 확보해야 했고.. 반대쪽까지 가면 칠판은 이미 부서져있는 상황.
여: 활기차게 했었네요
남: 그리고 의외로 추웠지요. 자전거 주차장 씬에서..
여: 추웠어요
남: 오타루에서 출발해서, 토마꼬마이라는, 고교인가 중학교인가의 자전거 주차장을 빌렸죠.
오타루도 춥지만, 눈이 많이 내려서, 기온은 그다지 내려가지 않죠. 그런데 동쪽 바다 쪽은 스케이트 등이 번창했어요. 서쪽은 스키인데. 즉, 더 추운 거죠. 방한복을 입어도. 그런데 영화상으로는 겨울이 아니에요. 의상도 얇고.
52:00
1位は君の名は、2位はハウルの動く城、3位は千と千尋の神隠し、4位がラブレターでございます。アニメを除くと1位。海賊版で見た数(当時は日本映画は違法でした)とかネットサービスまで含めると多分まだ1位だと思います。ラブレターは今も毎年上映されています。
번역4:
28:30
남: 사실 언덕 전체를 매끈하게 할 수가 없었어요. 아무리 작업해도 한 군데만큼은 울퉁불퉁하게 남았죠. 그래서 미키씨에서 거기서 턴을 해달라고 요구했지요.
여: 에! 그랬어요?
남: 예, 그 울퉁불퉁한 부분이 없었으면 그냥 쭉 미끄러질 뿐인 씬이었지요. 그 멋진 턴은 사실 궁여지책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이상 내려갈 수가 없었던 거지요.
여: 그랬군요!ㅎㅎ
29:30
남: 언덕 너머에서 미키씨가 등장하려고 대기할 때, 촬영 감독이 렌즈를 보면서, 눈이 내리는 게 아니라 눈이 회오리치는 걸 보고, 뭐야 이거, 하며, 지금이야, 하고 큐 사인을 보냈어요. 그러니까 이 장면이 찍힌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에요. 이런 기적의 연속으로 괜찮은 걸까, 하는. 오타루의 신일까, 카무이(아이누의 신)일까, 향나무에게 수호받으며 만든 듯한... 그런 미신은 믿지 않는 편이지만, 그때만큼은.. 신비함을 느끼지 않을수가 없었어요
여: 감독이, 제가 몇 번이고 실패하니까, 당시 저는 야키니쿠(고기)를 좋아했는데, 갑자기 멀리서 "미키! 야키니쿠!"라고 소리지르는 거예요. "에? 야키니쿠?" 그 한 발로 성공했어요. 성공할 수밖에 없어~하면서.
남: 촬영 현장 자체가 영화 같았아요.
여: 맞아요. 카메라 한 대가 더 있었더라면.
남: 러브레터 메이킹 자체로 한 편의 영화가 되지 않으려나.
32:24
남: 미키씨의 경우는 본인은 아니고 그림으로 마지막에 한 번 등장하잖아요?
여: 아 그러네요
남: 서두를 떼었습니다(이야기 물꼬를 텄습니다).
여: 아, 감사합니다(주섬주섬). 맞아, 이야기에 열중하느라... 저, 마지막은 그림으로 나오잖아요. (환호)
30년간 보관해왔어요.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에요. 영화 관계자가 아닌 분들에게는. 당시 촬영 종료하면서, 감독에게 받았어요. 지금껏 피로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오늘은 특별히 여러분께...(역자: 너무 부럽다. 러브레터는 일본에서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한국과 중국에서 흥행했기 때문에 가치도 엄청날 듯)
남: 후지이 이츠키 집의 코타츠에 들어가 앉아 그렸던 기억이 있네요.
오늘 하루만 빌릴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볼 수 있게 전시하고 싶네요.
여: 예, 물론. 이쪽 면이 메인이지만 뒤에는 이름과 대여일, 반납일까지 적혀있어요.
남: 엄청난 녀석이 왔다.
여: 그러네요. 러브레터에 감독의 여러 소도구가 있는데..
남: 최고가 왔네요. 제가 그린 거지만 (웃음).
번역1:
남: 여기 와서 러브레터 촬영했던 카메라랑 같은 모델을 발견했는데 깜빡 커버를 열어버렸다. 옛날 카메라라서 빛이 들어가면 안 되는데. (이제 완전 옛시대가 돼버렸다)
여: 순식간에 30년 지났네요. 고2였는데.
러브레터 오디션 일화:
여: 저는 나카야마 미호의 팬이었고, 그 때문에 배우가 되기로 했어요. 그래서 매니저는 이 영화에 미호가 등장한단 걸 비밀로 했어요. 긴장할까 봐. 그리고 오디션 직전에 알려줬어요. 그 편이 더 긴장되는데!
서너 명의 남자들이 앞에 앉아서 오디션을 진행했어요.
남: 그랬었나?
여: 3행 정도의 대사를 읽는 오디션이었어요.
남: 그랬었나?
여: 매니저는 직전에 저에게 (너무 긴장한 것 같아) "화장실 갔다오지 않을래?"하고 시간을 줬다. 근데 그걸 눈치 못채고 "아뇨, 안 마려운데요"했다. (그냥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난 시즈오카 출신인데요, 그냥 고향 얘기 등을 얘기했어요. 오디션이란 기분은 거의 없었어요. 그냥 대화 기억하시나요? 기억 안 나시죠?
5:44
남: 아뇨... 기억 납니다. 뭐랄까, 보자마자, 아, 이 아이다, 이 아이로 하자, 라고 바로 결정했기 때문에...
여: 아, 그랬어요? 에!
남: 일반 공고를 했기 때문에 엄청난 수의 지원자가 왔어요. 그 후에도 오디션은 쭉 이어지는 예정이었는데.. 이 아이로 하고 싶어요, 라고 말하니까, 모두들, "에? 그럼 이후의 오디션은 어쩌고?"했죠. 일단 이 아이가 좋겠는데, 하고 생각하니까, 저는 '그래도 만일을 위해도 다른 후보도'하고 생각하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그걸로 결정돼버렸어요. 오디션 이틀만에 결정했어요.
여: 그런... 전 굉장히 럭키...
남: 아니요, 이쪽이야말로. 본 순간에 아, 난 럭키다, 라고 생각했어요.
7:40
그때 (사카이 양은) 음악활동을 메인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 ㅎㅎ, 아이돌을...
남: 주말, 일요일이 되면 아이돌 영업... 뭔지 아시려나
여: 맞아요, 영업활동이라고 해서 다양한 지방에 가서 노래 부르기도 하고 라디오에 출연하기도 하고
남: 그리고 백화점 옥상이라든가
여: 맞아요, 당시엔 백화점에서 노래 부른다든가 생방송 라디오에 나간다든가.. 그래서 주말엔 오타루(러브레터 촬영지)에서 다시 (시즈오카로)돌아오지 않으면 안 됐지요...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헷갈리게 돼요. 아침에 일어나면 여기가 어디지? 하는 현상이... 몇번이나 오타루를 왕복하면서 촬영을 했습니다.
(역자주:네이버 도전만화에 아마추어 웹툰을 업로드한 적이 있습니다만, 러브레터의 일부를 오마주(베낌)한 장면이 있습니다. 제목은 . 4부 6화에. 혹시 관심 있으실지 몰라(저는 아마추어 팬픽을 챙겨보기에) 정보 남겨두고 갑니다.)
たくさんのエピソード、感激です。
韓国ではラブレターのような日本映画を二度と見ることができそうにないと賛嘆するファンが多いです。
篠田昇撮影監督のような天才が岩井俊二監督と息を合わせるなら、もし可能かどうか分かりませんが。
なんと29年間、ラブレターのように美しい純情詩編を見られなかったというのは、悲しいながらも驚くべきことです。
酒井美紀は、日本の美少女に対する幻想を植え付けた名優です
当日会場にいました。いろんな話が聞けて、また初公開の図書カードも見せていただけるなど、充実した時間でした。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ちなみに、最初のほうで話されていた感光してしまったフィルムは救えたのでしょうか。あればぜひ、見せていただきたいです。
え、変わらなさすぎ!すごい。
번역3:
18:22
남: 대사를 말하면, 특히 밤에는, 하얀 입김이 조명에 부각돼버리기 때문에, 그걸 어떻겐가 해결해야 했어요.
여: 맞아요 ㅋㅋ
남: 입 안에 차가운 걸 넣자고 했지요
여: 추운데 말이죠.
남: 얼음을 넣으면 불쌍하니까, 딸기맛 샤베트를 넣게 했지요. "달다, 달다(입 벌려)" 하면서. "차갑다고!"
여: 덜덜 떨면서 입 안까지도 얼리지 않으면 안 됐지요... 그런데 대사를 제대로 말할 수가 없어요. 혀가 곱아서. 그래도 맛있는 거는 먹으면서..ㅎㅎ 그렇게 하얀 입김도 가능한 한 처리하여..
남: 지금 같으면 편집으로 지울 수 있지요
여: 그러네요.
남: 당시는 거의 수작업이었지요.
여: 저는 스케이트 타듯 단화(학생 구두) 신고 미끄러지는...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촬영 굉장했어요. 그 전날은 눈이 안 왔고, 그날 아침에 대설이 와서,
남: 밤부터 와서 아침까지. 그게 촬영 마지막이었어요. 그 장면 어떻게 찍어야 하지 줄곧 고민했어요. 다른 어딘가에 그런 지형을 만드는 것도 고려했는데, 그것 안 됐고. 여러 군데서 이 때의 에피소드를 언급했는데요, 그 전날밤,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후지이를 업고 병원까지 가는 밤길 씬에서, 점점 폭설이 내리기 시작해서 현장에 제설차가 있었어요. 아, 아니다, 장면을 만드는 데 필요해서 제설차가 있었구나. 제설차가 지나쳐버리는데 "태워줘"라고 하는 장면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진짜로 폭설이 내리면서 제설차에게 가끔 제설작업을 부탁했지요. 그런데 현장에서 걸어다니다 휘청거렸어요. 제설차 넉가래가 지난 옆에 언덕이 생기는데 그 끝이 엄청 미끄러웠어요. 뭐지 이거? 엄청난걸. 거기서 아이디어가 떠올랐지요. 제설차 기사님한테, 넉가래를 반 뼘 정도 띄운 상태로 쭉 가면 쭉 이런 부분이 이어지게 되나요? 물었죠. "위험하지만 가능해요" 내일 아침 여덟시까지 여기로 와주시겠어요? 했지요.
촬영은 아침까지 이어졌고, 목욕탕에 잠시 들렀다가, 잠 한숨도 안 자고, 아침 촬영지에 갔지요. 제설차에게 언덕을 왔다갔다하길 부탁했지요. 발자국을 남기면 안 되기 때문에 (안 내리고) 그대로 돌아가셨지요.
여: 그렇게 스케이트장이 생긴 거군요. 미끌미끌한.
그렇지만- 구두 신고 스케이트는 정말 어려워요. 몇번이나 했죠. 연습했죠. 달려와서 쭉~. 달리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구두니까. 도중에 균형이 무너지니까 몇번이나 도전해서. 감독은 모를지도 모르지만, 당시 검은 의상이었고, 미끄러지면, 스커트가 바람에 펄럭거려요. 처음 연습 때는 스커트가 나부끼지 않았어요. 감독이 그걸 의상팀에 언급한 것 같앴어요. 의상팀이 절 불러서, 대기실에 갔더니, "거기 서 있어봐. 괜찮을 거니까"라고 하더라고요. "괜찮을 거라니, 뭐가? 에?"하고 생각했더니, 갑자기 가위로 의상을 등 뒤에서 주욱~갈라버렸어요. 옷 통이 크지 않으니까 나부끼지 않은 거예요. 그 장면, 코트를 입고 있는데, 코트 안에 입고 있는 건, 등을 갈라버린 옷이었어요.
남: 그건 몰랐다.
여: 그렇죠? 오늘 꼭 말해야지 하고 벼르고 왔어요 ㅎㅎ
남: 그런 비화가.
여: 코트 안은 어떠해도 좋으니까, 다른 천으로 가른 천 사이를 땜빵했어요. 꿰매기도 하고 테이프로 붙이기도 하고. 진짜 놀랐어요. 서 있는 상태로 그냥. 그런 연유로 스커트가 나부낍니다.
(1분 정도 의상 담당자의 순발력에 대해 얘기)
あの貸出カード、レプリカが欲しい・・・。
私もたくさん聞いてみたいことがある!!!
行けなかったので、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篠田さんがNK特機にいらしてカメラテストをしたとき、カッコいいオープンカーで来ていたのを思い出しました。
本当にカッコいい方でした。
喜欢你的电影
もしご存じの方がいらっしゃいましたら、お聞きしたいですね。 ラブレターでオープニングシーンの場所がスキー場というのはわかりますが、スーパークレーンを使ったのか、それとも近くの建物の屋上にクレーンを設置して撮ったのか気になります。
32:30
종이 뒤를 꼭 확인하세요
대충 무슨 얘기하는지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알료샤 위의 댓글은 영화의 도서 카드를 얘기하는 농담인 듯합니다.
@@알료샤 시간이 없어서 지금 보지 못하고, 첫 10분 정도만 보았는데, 사카이 미키(우측. 후지이 이츠키의 아역)가 오디션에 왔던 얘기를 하네요. 사카이 미키는 어른 후지이 이츠키(나카하마 미호)의 팬이었기 때문에, 긴장할까 봐 매니저가 이 영화에 미호가 공동출연하는 걸 비밀로 하다가 오디션 직전에 알려줬다, 자신은 배우라기보다 아이돌이었다(요즘 아이돌과 달리 백화점 옥상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백화점 상품 영업하는 딴따라 같은 느낌이었다,) 등의 얘기를 합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오디션 거의 초장에 사카이 미키와 대화를 나누고 "이 사람이다, 후지이는" 하고 결정했는데, 배우가 결정이 됐는데도 남은 오디션 참가자들을 돌려보낼 수도 없었기에 오디션을 끝까지 보는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등을 얘기하네요.
@@알료샤 이 인터뷰 전에 반년정도 전인가, 감독이 러브레터 촬영지를 돌아보는 짧은 다큐가 1, 2 부 있으니 꼭 보시길. 원래 소녀 후지이가 아버지 장례식 후로 스키 타듯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장면이 있는데, 원래 그곳은 눈이 거의 오지 않는 지역이다, 스크립트에는 일단 눈 내리는 설정으로 했지만 줄곧 기다려도 눈이 안 내려 장면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마지막날 새벽 눈이 내려 그런 장면이 되었다(실제로 영화에서 미끄러져 내려올 때는 눈이 흩날리는데 잠자리를 볼 때는 눈이 안 내립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매우 드물게 여우가 등장하여 스텝들을 놀라게 하고 사라졌다, 정말 여우에 홀린 듯한 촬영이었다 등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어떤 분이 댓글로 번역도 남겨놓았으니 보시길 권합니다!!!
@@알료샤 정말로 여담이지만 아마추어 웹툰(네이버 도전만화) 라는 제목의 작품 4부 6화에, 러브레터의 한 장면을 베낀(오마주한) 장면이 있습니다. 이곳의 댓글을 읽는 누군가는 관심이 있으실지도...
切ったフィルムを何とかつないで、今の技術でディレクターズカット版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