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과 미군은 왜 서울 탈환에 13일이나 걸렸는가? 13:30 북한군과의 치열했던 서울탈환 시가전 장면. 미 해병대와 국군 해병대는 바로 이렇게 싸웠습니다. 실사와 재현이 교차 편집되는 이 장면. 바로 이것이 채널의 강점입니다. 이 장면은 서울에서 벌어진 치열한 시가전이 어땠는지와 함께 구독자 여러분께 생생한 전투느낌을 느끼게 해줄 것입니다.
@@djcjfisjsq 인천상륙작전 후 서울 탈환전을 보면 보병이 전차와 함께 들어가서 시가전을 벌이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원래 미국의 방식은 이렇지 않았습니다, 미군은 항상 융단폭격과 포격으로 한참을 때린 후 보병이 나중에 들어가는 방식인데 서울 탈환전은 이것을 생략한 채 해병대가 투입되어 치열한 시가전을 벌이게 됩니다. 이 컨텐츠는 바로 그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944년 8월의 팔레즈 포켓 전투. 서부전선의 독일기갑부대가 완전 포위당한 상태였고 몽고메리가 포위망을 봉쇄하면 끝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몽고메리는 포위망을 닫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패튼 장군은 자신이 직접 포위망을 닫게 해달라고 브래들리에게 요청합니다. ua-cam.com/video/1kym_Rya7a4/v-deo.html (독일 최정예 기갑부대는 내가 잡는다! 조지패튼이 생각했던 전략은?) 하지만 패튼의 상관이었던 브래들리는 끝내 결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오인사격으로 이미 들어와 있는 영국군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합참의장이 된 6.25전쟁에서도 브래들리의 캐릭터는 변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응원의 말씀 감사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4개의 주제별로 나눠서 다뤘습니다. 트루먼 대통령은 중공군 개입 이전부터 맥아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트루먼조차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맥아더 원수, 당신만이 해낼 수 있는 위업이었다"는 축전을 보냈습니다. 트루먼은 맥아더가 영토를 내주면서 시간을 벌었다는 것도 그때야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트루먼은 북한군에게 연패를 거듭했을 때 도대체 장군에게 전략이 있는거냐? 물어봤기 때문입니다. ua-cam.com/video/xUL4p5z4zEc/v-deo.html (맥아더와 트루먼은 중공군 개입을 몰랐을까?) 에 그 부분이 나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이 축전의 내용을 보면 이때가 맥아더 인생 최고 영광의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실 한니발이 알프스 산맥을 넘어서 로마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갈겼을 때의 충격과 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이 거의 동급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다들 미친 작전이라고 웃어넘길 정도로 무모하면서도 성공가능성 자체가 거의 희박한 작전을 기가 막히게 성공시켰다는 점이랄까요? 그레서 제2차 포에니 전쟁 때도 로마는 말 그대로 카르타고에게 거의 막바지 급으로 밀렸고 북한도 말 그대로 백두산까지 밀렸으니까 말입니다.
좋은의견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바로 그 주제에 대한 컨텐츠를 유튜브의 그 어떤 채널보다도 많이 다뤘습니다. 트루먼은 사실 굉장히 다혈질이었습니다. 중공군 개입 이후 미군이 엄청나게 죽어나갈 때 트루먼은 실수로 핵사용을 언론에서 언급했습니다. ua-cam.com/video/UTFDTuj6tQc/v-deo.html (트루먼이 핵을 사용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 실제로 초반에는 맥아더의 말대로 할 생각도 있었습니다만 미국에게 가장 중요했던 유럽의 동맹국들이 한사코 전쟁확대를 반대했습니다. 당시 유럽국가들은 "왜 엉뚱하게 중국하고 싸우는데 힘을 소모하는가?" "소련이 그틈에 서유럽을 노리면 어떻할것인가?" 이렇게 유럽국가들은 트루먼을 극구 말렸고 영국 수상 애틀리는 아예 트루먼을 찾아와 중공과 전면전을 안하겠다고 약속까지 받아냈습니다.
맥아더 원수의 선견지명이 역시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군산에 상륙 해봐야 인천상륙작전 만큼 메리트가 없었을 겁니다 독소전 에서 와 마찬가지로 현장 지휘관이 상황을 제일 잘 아는건 확실한 거 같습니다. 과감하게 밀어부친 덕분에 전세를 완전히 역전 할 수 있었죠. 역시 군대는 보급이 생명이라는걸 확인하네요 잘 봤습니다 만물상자님
맥아더가 분석한 말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노동자는 굶주리며 일할 수 있지만 군인은 굶주리며 싸울 수 없다! 김일성과 북한군 지휘부도 불과 6년전에 벌어졌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철저히 분석했다고 합니다. 언제나 미국이 상륙할 때는 폭격과 포격이 이루어졌고 노르망디 때는 파드 칼레에 상륙할 것처럼 연막작전을 썼다는 사실 말입니다.
민주당 좌익들이 가장 증오하고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맥아더 동상에 불을 지르거 철거 시도를 여러 번 했었죠. 맥아더만 아니었어도 자기네 북한 공산 인민군이 적화 공산화 통일을 성공시켰을 것이고 자신들은 인공기를 흔들며 김일성 만세를 외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좌익진영 입장에선 너무나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고 원수같은 존재겠죠.
맥아더 원수가 진심으로 존경받는 단 하나의 이유이자 군인의 진정한 가치가 뭔지를 보여주는 단 하나의 작전........ 군인은 과정이 아닌 결과로 모든 것을 증명한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나 할까요? 실제로도 인천상륙작전을 듣고 미국 내에서조차도 제2의 키에프 상륙작전이 될 거리라고 조롱했을 정도로 인천상륙작전은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미친 행동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적의 허를 제대로 찌르는 완벽한 역공격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진짜 멋진 상륙작전이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역사를 바꾼 3대 상륙작전 중 하나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았으니까 말입니다.
이 컨텐츠에서는 단순하게 인천상륙작전의 전개과정만 다루지 않았습니다. 1944년 6월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1950년 9월의 인천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채널에서는 6.25전쟁 뿐 아니라 2차대전에 대해서도 매우 많은 컨텐츠에서 다뤘기에 이것은 채널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 전개입니다. 그리고 처절했던 서울 시가전 전투 상황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도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김일성과 북한군 최고 지휘부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특징을 연구하며 대비했습니다. 그들로서는 정말 최선을 다해 상륙에 대비했던 것입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트루먼은 맥아더에게 축사를 보냈는데 그 내용이 무척 감동적입니다. 맥아더가 했던 전략을 한마디로 요약해주는 내용이기에 그 내용을 공개할 것입니다. 끝까지 보신다면 분명 뜨거운 감동이 밀려올 것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인천상륙작전이 정해진 회의가 있었습니다. 그 어떤 채널에서도 이 회의 내용을 다룬 컨텐츠는 없을 것입니다. 1950년 8월 말, 맥아더 장군이 있던 일본 도쿄에는 미군 최고 지휘부의 장군들이 모두 모여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인천상륙작전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찬성자는 단 한명. 바로 맥아더였습니다. ua-cam.com/video/Ebzp6ZFQ7mg/v-deo.html (인천상륙작전이 결정된 작전회의) 이 또한 감격스러울 것입니다.
이 컨텐츠에서 충분히 설명드렸지만 서울탈환 관련 다큐영상을 보면 미군이 늘 하던 방식대로 사전포격과 폭격 후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이것을 생략한 채 탱크와 보병으로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생각보다 인천 점령 후 서울 탈환 전투가 시간도 많이 걸렸고 생각보다 인명피해도 많이 발생했습니다. 14:51 미 해병대 제1연대장 풀러대령은 잔적소탕은 한국군 해병대가 맡을 것이므로 저격병과 박격포로 저항하는 북한군은 우회하라고 지시합니다. 이 역시 미군이 서울을 탈환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음을 잘 보여줍니다.
북한군은 9월 이미 공세종말점에 도달해있었죠.... 그러나 김일성이 무리하게 최후의 발악을 하다가... 인천상륙작전을 허용하는 결과를 낳았죠... 요즘 우크라이나 군을 보면...소련군의 공세종말점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듭니다. 곧 겨울이오면 러시아의 무시무시한 반격이 있을듯 합니다. ㅎㅎ
물론, 전쟁 그자체의 위험으로 피해도 컸지만 이 정도면 미군도 인내심이 있는건가? 어찌되든 정치적인 여러 계산과 개인의 야심을 넘어 세계 역사에 중요한 작전임은 분명합니다. 더불어, 아무리 맥아더의 문제가 있어도 근본적으로 군국주의자면서 군대에 아주 무지한 김씨왕조의 시조의 능력도 눈여겨볼만합니다. 아무리 부하들 좋고, 그들이 있어서 지휘자가 능력 낮아도 된다해도 북한은 그 정도가 심했고 민심수습에서도 중공보다 못했죠. 오만과 능력부족이 북한의 패배를 부른겁니다 그래도 여러모로 전쟁이 정치 연속성인점과 정치적 요소, 눈앞의 이익과 유혹도 고려해야죠. 해병대에 근본적으로 싫어했던 트루먼이나 북한의 부담등등... 전쟁사가 힘드네요
ua-cam.com/video/1kym_Rya7a4/v-deo.html (독일 최정예 기갑부대는 내가 잡는다! 조지패튼이 생각했던 전략은?) 1944년 8월의 팔레즈 포켓 전투. 독일 기갑부대 전체가 연합군 포위망 안에 갇힌 상황. 브래들리와 패튼의 사료에 기록된 대화가 너무나 인상적입니다. 브래들리: 조지, 자네만 빨리 진격하면 뭐하나? 자네와 영국군의 전투 지경선이 겹칠 수 있어. 패튼: 이것은 지휘관에게 1세기에 한벌 올까말까한 기회란 말이야! 브래들리: 내말 좀 듣게., 조지, 오인사격 받으면 어쩌려고 그래? 패튼: 빌어먹을, 몬티의 전투지경선 따위는 신경쓰지말고 포위망 닫아! 하지만 패튼은 끝내 명령을 어기지 못합니다. 부하의 구타문제로 전투일선에서 물러났던 트라우마 때문이었습니다.
시간 상 북괴가 서울에서 15일을 버티는 동안 북괴의 낙동강 전선 병력이나 군산 상륙 방어군들을 철수 시키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을까요? 질 때 지더라도 북괴군에게 그 15일은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을 텐데요. 1. 퇴각전은 장난이 아니다. 국군과 미군의 낙동강 방어군을 상대하며 정상적인 전력유지 하며 퇴각하는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2. 북괴군이 결국 상륙군을 밀어낼 것이라 오판했다. 3. 15일만에 낙동강 공략군을 한반도 38선 인근까지 빼는건 시간상으로도 안되는 일이다.
서울 탈환이 13일 이상 걸리는 동안 낙동강까지 내려가 있던 북한군은 전멸을 모면하고 탈출에 성공한 인원이 3만명 정도로 나와 있습니다. 방호산의 6사단 같은 경우도 백두대간을 타고 38선 이북으로 가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살아남은 병력은 모두 빨치산이 됩니다. 후방이 차단당했는데도 3만이나 살아서 도망간 것은 나름 선전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아. 사실상 최정예였던 방호산 군 뿐 아니라 철수 병력 3만 (약 15%) 철수면 성공한 철수라고 봐야되는 거군요. 거기에... 38선 돌파를 할지를 결정할 시간도 대략 3일 정도 있었으니... (사실상 전쟁의 결정권은 유엔군[미군]이 하는 거였을 테니까요.) 설명감사합니다.
일전에 방호산의 6사단에 대해 다룬적이 있었습니다. ua-cam.com/video/9mSJBKL8zY8/v-deo.html (신출귀몰한 전법을 구사하는 방호산 동지는 반드시 부산에 입성할 것이다) 방호산이 호남의 항구를 다 점령하느라 시간을 보내지 말고 그냥 빨리 부산으로 내달렸다면 한국은 그때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호산이 참 대단하긴 하더군요. 그 와중에 부대 편제를 유지한 채 무사히 북한으로 귀환했으니 말입니다.
의문점을 갖고 계신 그 주제에 대한 컨텐츠도 여럿 나갔습니다. 결론적으로 중공군 참전을 정말로 몰랐고 예상치 못했습니다. 맥아더, 트루먼, 미 CIA, 국방부 모두가 예상 못했습니다. 심지어 맥아더는 유엔군 마지막 정찰을 자신이 직접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중공군은 단 한명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것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ua-cam.com/video/Tby-BzmHlnU/v-deo.html (김일성은 당장 항복하라! 그러나 맥아더가 예상하지 못했던 한가지 사실은?) 이 컨텐츠에서는 유튜브 채널 중엔 거의 처음으로 맥아더가 너무나 공군력을 신봉했음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북한땅은 공군력이 100% 통하는 지역이 아니라는 것을 중공군에게 당한 후 알게 됩니다.
미군이 인천상륙 작전 성공후 38선 도착즈음 중화인민공화국은 인도대사를. 통하여 미군이 38선을 넘으면 중국 군이. 참천하고 한국군 단독으로 넘으면 중국은 관여하지. 안는다고 정식므로 통보하였다는 외교 문서가 있는데 중국인민해방군 참전을 몰랐다고 잡아때는 말씀... 좀더 연구. 필요합니다
정확한 사료를 보고 말씀드립니다! 맥아더에 압도되어 일선의 그 누구도 보고할 생각도 못했다고 합니다. 트루먼조차도 맥아더에게 설설기는데 누가 맥아더에게 이건 아닌것 같습니다. 라고 했겠습니까? 그리고 당시 미국의 정보라인의 전체 분위기는 중공이 참전하지 못할거라고 봤습니다. 워커장군조차도 청천강에서 방어라인을 좀 굳히고 올라가는게 낮지 않을까? 라고 생각은 했으나 직접 정식건의는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상륙작전이라고 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기적이었습니다. 실제로 맥아더는 더 빨리 북한을 끝장내기 위해 원산 상륙작전을 1950년 10월 2일부터 진행합니다. 그러나 원산상륙작전은 실패작이었습니다. 북한은 원산 상륙에 대비하여 기뢰를 잔뜩 깔아놨고 맥아더는 일본 소해부대까지 동원하여 기뢰를 해체한 끝에 간신히 상륙합니다만 너무 늦게 상륙이 완료되는 바람에 기습의 효과를 잃게 됩니다.
16:09 에 나오는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트루먼 대통령이 보낸 축전이 모든 것을 작전을 잘 요약해줍니다. 이미 트루먼은 이때부터 맥아더와는 그렇게 친근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루먼은 이런 축전을 보낼 정도로 대단한 승리였습니다. "전력을 집중하기 위해 시간을 벌었던 지연전술, 그런 후 서울 해방을 위한 빛나는 기동! 오직 맥아더 원수 당신만이 해낼 수 있는 위업이었소!"
최근 사료에 기반한 관련 컨텐츠가 또 있습니다. 트루먼은 역시 선거가 중요한 정치인 다웠습니다. 중공군 개입 소식을 들은 트루먼이 난감했던 그 역사적인 이유를 아실 수 있습니다. ua-cam.com/video/hYHYz4M3oz0/v-deo.html (압록강까지 올라간 미군과 국군, 그런데 왜 한반도 통일은 실패했을까?)
39도선 문제에 대해 채널의 다른 컨텐츠에서 심도있게 다뤘습니다. ua-cam.com/video/qoyXMNwQlMI/v-deo.html 한반도를 분단시킨 38선. 원래는 39도선이 될 뻔했다.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말씀하신대로 38선은 원래는 39도선으로 그어질 뻔했습니다. 미국의 똑똑한 전략기획단 대령들이 향후 방어를 위해서는 폭이 좁은 평양-원산라인을 경계로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38선으로 그어진 어이없는 역사적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그것에 대한 내용입니다.
말씀하신 것을 이 컨텐츠에서도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맥아더는 서울 중심부에 대한 융단 폭격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할 수가 없었겠죠. 나름 한국을 배려한 조치였습니다. 전쟁이 복잡해보여도 최고 지휘부 몇몇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법입니다.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상당수 있었고 경복궁 등 문화재도 있었으니까요.
브래들리는 당시에도 여러 비판과 논쟁에 직면했던 인물입니다. 우유부단한 면이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팔레즈 포위전에서 독일기갑부대를 완전히 몰살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결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ua-cam.com/video/1kym_Rya7a4/v-deo.html 독일 최정예 기갑부대는 내가 잡는다! 패튼이 생각했던 전략은? | 1부 한국 전쟁기간에는 합참의장으로서 미군 서열 1위였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보입니다. 이미 이 당시에 두 사람 사이는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중공군 참전 이후 맥아더가 트루먼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미 맥아더는 중공군 참전 이전부터 몇번이나 트루먼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고 오히려 맥아더가 맘대로 하면 트루먼이 사후승인을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당시에도 트루먼 정부는 서울을 한국정부가 아닌 UN 관할에 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맥아더는 이 말을 보기좋게 무시하고 이승만에게 서울을 바로 인계하게 됩니다. ua-cam.com/video/5ksHNvFPPVs/v-deo.html (맥아더와 이승만의 약속 1부) 에서 이 사실을 다뤘습니다!
구체적으로 브래들리의 우유부단이 발휘되었던 유명한 일이 있습니다. 바로 2차대전 당시 팔레즈 포위전입니다. ua-cam.com/video/1kym_Rya7a4/v-deo.html (독일 최정예 기갑부대는 내가 잡는다! 조지패튼이 생각했던 전략은?) 조지패튼이 미군이 주축이 되어 포위망을 닫자고 했을 때 결단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구타사건으로 조지패튼이 물러나기 전에는 패튼이 상관이었다는 점입니다. 또한 6.25전쟁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브래들리와 맥아더의 전략대결에 대한 컨텐츠도있습니다. ua-cam.com/video/PMYsfcjP2bU/v-deo.html
아이젠하워는 리더십이 있는 인물이지만 다분히 정치적인 인물입니다. 채널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한국방문을 했던 때를 다뤘습니다. ua-cam.com/video/hlM8-bvp0pU/v-deo.html 이승만과 밴 플리트는 아이젠하워가 군인 출신이므로 지루한 고지전이 아니라 대대적 공세를 취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트루먼과 똑같은 행동을 취합니다. 이 컨텐츠 후반부에 브래들리가 맥아더에게 하는 말을 보면 패튼에게 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브래들리는 맥아더의 한참 후배였고 계급도 대장에 불과했습니다. "아니 대체 왜 그렇게 인천을 고집하는거요?" "낙동강 전선이 뚫리기 직전이오!"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만 미국은 가진 힘의 100%를 6.25전쟁에 투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반면 북한군은 죽기 살기로 덤벼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봐야 했습니다. 성공한 상륙작전이 우리에게 많이 부각되어서 그렇지 사실 상륙작전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 좋은 예가 원산상륙작전입니다. 원산 상륙작전은 북한군이 미리 예상하고 기뢰를 잔뜩 깔아뒀기에 빠른 시간 내 상륙이 실패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또한 바늘 구멍에 실을 꿰듯이 단 하나의 단계라도 미스가 났다면 실패로 끝났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북한군 지휘부가 제대로 판단하여 인천항에 기뢰라도 잔뜩 깔아뒀다면 실패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죽고 사는 문제 + 탈환할지 못 할지도 모르는 때에 고작 문화재 때문에 폭격하지 않고 희생 감수하며 조여 들어갔다고요? 13:05 저 부분은 맥아더가 문화 유산 유실을 우려해서 조여들어갔다 라고 설명돼있지 않아서 채널 주인님 개인의 생각인 줄 알았습니다
덕수궁, 경복궁, 중앙청이란 문화재도 중요하지만 한국은 동맹국이기도 합니다. 맥아더 입장에선 서울 시민들의 민심도 중요했습니다. 맥아더를 비롯한 미군 지휘부가 신경썼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승만 대통령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맥아더와 이승만은 꽤 오랜 시간동안 인연을 이어온 사이였습니다. ua-cam.com/video/5ksHNvFPPVs/v-deo.html (맥아더와 이승만은 절친이었다) 요즘 뜨고 있는 위 컨텐츠를 참고바랍니다.
응원의 말씀 감사합니다. 채널의 6.25전쟁 재생목록에만도 30개가 넘는 6.25전쟁 컨텐츠가 있습니다. 내용은 물론이고 참고화면까지 고증에 맞춰 이해를 돕는 컨텐츠로 가득합니다. 미국의 트루먼은 왜 핵폭탄 이야길 먼저 꺼내고도 끝내 사용을 못했는지? 맥아더 장군과 이승만 대통령의 감격적인 서울환도식 이야기, 중공군은 대체 어떻게 숨어들어왔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모두 있습니다.
일본군 자원들이 서해 지리에 훤했고 맥아더가 그들의 의견을 상당 부분 수렴했다고 함 미국이 한국전쟁에 일본을 활용했다? 미국 정부의 극비문서를 통해 알아 본 미국과 일본의 관계 ua-cam.com/video/7D0qSSkfVVc/v-deo.htmlsi=BQdzGsA-Bu_mRO-m
브래들리가 쫄보같다는 말은 시청자의 댓글 내용이었는데요. 채널에서 그 얘기에 동조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그 말은 한국사람만 모르지 미국 내에서도 나온 얘기입니다. ua-cam.com/video/1kym_Rya7a4/v-deo.html (조지패튼의 전략). 이 컨텐츠는 2차대전 당시 팔레즈 포위전투를 다루고 있는데 당시 패튼은 서부전선의 독일 기갑부대 전체를 전멸시킬 기회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패튼의 상급자였던 브래들리는 영국군과 오인사격이 나면 아군끼리 희생이 생긴다며 포위망을 닫으려는 패튼을 뜯어말렸습니다. 여기서 살아나간 독일 기갑부대는 벌지전투에서 미군을 더 많이 살상하게 됩니다. ua-cam.com/video/PMYsfcjP2bU/v-deo.html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미국의 대전략! 맥아더vs브래들리) 6.25전쟁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브래들리. 당시 브래들리는 중국보다 소련이 더 문제라며 유럽만을 중시했습니다. 결국 통일이 되지 않고 제한전이 되도록 일조를 했던 인물이 바로 브래들리였습니다.
채병덕 총참모장은 전투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없는 장교가 맞습니다. 그는 일본군 장교시절 부평의 조병창에서 복무한.... 보급과 행정에 유능한 장교였죠. 이런 사람을 작전지휘를 해야하는 위치에 앉힌건 이승만이었으니 결론적으로 이승만이 잘못한겁니다. 채병덕은 전투 지휘관으로서는 무능했지만 어쨌거나 해임된 이후 마산지역 전투에서 적과 전투중 전사했으니 군인으로서 명예로운 죽음이었고 본인의 책임은 다했다 볼 수 있습니다. 정말 무책임한건 대통령 이승만과 국방장관 신성모였죠
역설적으로 인천 상륙 작전에 투입된 군단급 전력을 투입해서 낙동강 전선부터 차근 차근 올라갔다면 50년 그 혹한의 시기를 38선 이남에서 작전을 치루면서 51년 봄에 38선을 돌파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중공군에게 당한 전력 손실을 최소화시키면서.. 결론적으로 인천상륙작전은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선 그 이상의 성과를 이루지 못한 작전!
군산에 상륙하는 바보도 있겠는가?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그렇겠지만 당시 맥아더를 뺀 미군 지휘부 전체는 인천에 상륙하는 것이 바보고 군산에 상륙해서 워커장군을 도와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ua-cam.com/video/Ebzp6ZFQ7mg/v-deo.html 인천상륙작전이 결정된 작전회의 (찬성 맥아더 1명, 반대 9명)
국군과 미군은 왜 서울 탈환에 13일이나 걸렸는가?
13:30 북한군과의 치열했던 서울탈환 시가전 장면.
미 해병대와 국군 해병대는 바로 이렇게 싸웠습니다. 실사와 재현이 교차 편집되는 이 장면.
바로 이것이 채널의 강점입니다.
이 장면은 서울에서 벌어진 치열한 시가전이 어땠는지와 함께 구독자 여러분께 생생한 전투느낌을 느끼게 해줄 것입니다.
만물상자님 폭격기보다는 잔투기가 더 효율적인가요? 폭격기는 다피해버리니까
@@djcjfisjsq 인천상륙작전 후 서울 탈환전을 보면 보병이 전차와 함께 들어가서 시가전을 벌이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원래 미국의 방식은 이렇지 않았습니다,
미군은 항상 융단폭격과 포격으로 한참을 때린 후 보병이 나중에 들어가는 방식인데
서울 탈환전은 이것을 생략한 채 해병대가 투입되어 치열한 시가전을 벌이게 됩니다.
이 컨텐츠는 바로 그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화면이죠, 북한군 기관총 사격장면
222²22²2²
한국을 사랑하는 맥아더가 서울의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영옥 대령을 읽어보면 김대령이 이태리 피사를 탈환할 때 피사의 유적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포격을 않고 독일군을 속여서 무혈로 철수시킨 전례도 있습니다
감동 만땅입니다! 맥아더 원수님 감사합니다!
맥아더 원수와
유엔군
미국민에게
눈물겹도록
감사합니다
공산당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지켜주심에..
감사합니다 잊지않겠습니다
맥아더 장군의
전술은
신의
2수였습니다
왜 핵사용을 안했을까
@@나무-z8u 미친넘!
고마운 매아더와 알몬드 장군님들 다른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전쟁사 최고의 채널 인정입니다
한국 의 이런 역사 를 어린 한국 인 들을 위해서 자주 유튜브에 올려 주셔서 모든 한국인 들이 잊지 않게 해야 합니다
맥아더 원수 vs 북한 지휘부 인천상륙작전 이야기네요 만물상자님
맥아더 대원수 만만세
너무 재미있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정말 브래들리는 쫄보 같네요 승리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군요
1944년 8월의 팔레즈 포켓 전투.
서부전선의 독일기갑부대가 완전 포위당한 상태였고 몽고메리가 포위망을 봉쇄하면 끝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몽고메리는 포위망을 닫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패튼 장군은 자신이 직접 포위망을 닫게 해달라고 브래들리에게 요청합니다.
ua-cam.com/video/1kym_Rya7a4/v-deo.html (독일 최정예 기갑부대는 내가 잡는다! 조지패튼이 생각했던 전략은?)
하지만 패튼의 상관이었던 브래들리는 끝내 결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오인사격으로 이미 들어와 있는 영국군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합참의장이 된 6.25전쟁에서도 브래들리의 캐릭터는 변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쫄보 합참의장에 쫄보 대통령이 6.25통일의 기회를 날려버렸네요
제가 이 채널을 구독하고 영상을 챙겨보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맥아더라는 사람의 한반도에서 성공과 실패 명과 암 이 채널에서 모두 찾을 순 없지만 많은 부분을 공부하는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매번 감사히 잘 보고있습니다.
이 컨텐츠를 제작하며 2차대전 프랑스처럼
서울 시내에 무차별 폭격이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만물상자님 맥아더 지휘부 vs 북한 지휘부의 대결이네요 2차대전 연합군 지휘부 vs 나치 지휘부 대결이네요😂
너무 재밌어요.. 나래이션 목소리도 너무 좋고요..😂😅❤
응원의 말씀 감사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4개의 주제별로 나눠서 다뤘습니다.
트루먼 대통령은 중공군 개입 이전부터 맥아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트루먼조차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맥아더 원수, 당신만이 해낼 수 있는 위업이었다"는 축전을 보냈습니다.
트루먼은 맥아더가 영토를 내주면서 시간을 벌었다는 것도 그때야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트루먼은 북한군에게 연패를 거듭했을 때 도대체 장군에게 전략이 있는거냐? 물어봤기 때문입니다.
ua-cam.com/video/xUL4p5z4zEc/v-deo.html (맥아더와 트루먼은 중공군 개입을 몰랐을까?) 에 그 부분이 나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이 축전의 내용을 보면 이때가 맥아더 인생 최고 영광의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영상 해설
*감사합니다*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양동작전으로서
10대 후반의 고교생 학도병들이 투입되어 큰 희생을 치렀던 장사상륙작전도 잊지맙시다.
동감.. 실제로 낙동강 전투를 방어하기 위해 희생이 컸습니다..
감사히 잘 봤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
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지금 자유를 누리는건 한국을 지켜낸 모든 영웅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ㅎㅎ 오늘도 좋은 동영상과군사정보&군사지식&군사무기정보&군사무기 개발역사&전쟁역사 속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 잘보고갑니다 만물상자 TV [전쟁의신]운영자님 오늘도 좋은 하루 잘보내세요 화이팅입니다 ^^🥰🥰👍👍
사실 한니발이
알프스 산맥을 넘어서 로마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갈겼을 때의 충격과
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이 거의 동급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다들 미친 작전이라고 웃어넘길 정도로
무모하면서도 성공가능성 자체가
거의 희박한 작전을
기가 막히게 성공시켰다는 점이랄까요?
그레서
제2차 포에니 전쟁 때도
로마는 말 그대로 카르타고에게 거의 막바지 급으로 밀렸고
북한도
말 그대로
백두산까지 밀렸으니까 말입니다.
심지어 인천상륙작전 날짜까지 정해졌는데도 작전이 취소될 판이었습니다.
그것은 한 인물 때문이었는데 이 작전이 시행된 것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
대부분 우리가 알지 못했던 비하인드 스토리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러모로 그 후 아쉬운 부분들이 많지만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은 ㄹㅇ 구원의 단비였죠 ㅋㅋ 이거 시도 안하거나 실패했으면 낙동강 방어선도 결국 붕괴되고 적화통일되었을 겁니다 ㅜㅜ
트루먼은 3차 세계대전이 두려운 나머지 너무 소극적인 전쟁을 한게
좋은의견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바로 그 주제에 대한 컨텐츠를 유튜브의 그 어떤 채널보다도 많이 다뤘습니다.
트루먼은 사실 굉장히 다혈질이었습니다.
중공군 개입 이후 미군이 엄청나게 죽어나갈 때 트루먼은 실수로 핵사용을 언론에서 언급했습니다.
ua-cam.com/video/UTFDTuj6tQc/v-deo.html (트루먼이 핵을 사용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
실제로 초반에는 맥아더의 말대로 할 생각도 있었습니다만
미국에게 가장 중요했던 유럽의 동맹국들이 한사코 전쟁확대를 반대했습니다.
당시 유럽국가들은 "왜 엉뚱하게 중국하고 싸우는데 힘을 소모하는가?" "소련이 그틈에 서유럽을 노리면 어떻할것인가?"
이렇게 유럽국가들은 트루먼을 극구 말렸고 영국 수상 애틀리는 아예 트루먼을 찾아와 중공과 전면전을 안하겠다고 약속까지 받아냈습니다.
서울을 보호해주셨네요 감동과 감시합니다
서울에 무차별 폭격을 진행했다면
경복궁, 덕수궁 등이 모두 남아나질 못했을 것입니다.
맥아더 원수의 선견지명이 역시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군산에 상륙 해봐야 인천상륙작전 만큼 메리트가 없었을 겁니다 독소전 에서 와 마찬가지로 현장 지휘관이 상황을 제일 잘 아는건 확실한 거 같습니다. 과감하게 밀어부친 덕분에 전세를 완전히 역전 할 수 있었죠.
역시 군대는 보급이 생명이라는걸 확인하네요
잘 봤습니다 만물상자님
노동자는 밥을 굻으면서 일할 수 있지만
군인은 굶으면서 싸울 수 없다! 게임만 해봐도 아는 진실이네요.
생각해보니 군산이나 원산등이 피격 당한다해서 낙동강 공략군이 공황상태로 철수했을까 싶긴 하네요.
군산에서 낙동강 전선 후방이나 대전 등 보급 핵심까지 가는
지형적 시간이나
원산에서 북괴의 수도 평양을 치기에는 백두대간을 넘어가야 했으니...
차라리 양동이었던 장사상륙작전이 위치상 더 합리적 선택이었을지도...
@@옼케발 원산에서 평양 가려면 험한 낭림산맥의 마식령 넘고 신계곡산용암대지 거쳐 방원령도 넘어야 하죠
맥아더가 성격이 지랄맞아서 그렇치 수재인건 틀림이 없어요.. 전쟁의 신..😮
좋은 영상감사합니다. 낙동강에 몰빵된 인민군을 인천으로 쉽게 우회공격 한게 인천상륙작전인줄 알았어요
노르망디와 비교해서 설명해 주시니까 한방에 이해되네요
다음에 친구들 만나면 아는척 오지게 해야겠어요
맥아더가 분석한 말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노동자는 굶주리며 일할 수 있지만 군인은 굶주리며 싸울 수 없다!
김일성과 북한군 지휘부도 불과 6년전에 벌어졌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철저히 분석했다고 합니다.
언제나 미국이 상륙할 때는 폭격과 포격이 이루어졌고
노르망디 때는 파드 칼레에 상륙할 것처럼 연막작전을 썼다는 사실 말입니다.
유익한 영상 잘보았습니다.
맥아더가 울 나라를 구한 영웅임을 알았습니다
모두가 영웅입니다.
민주당 좌익들이 가장 증오하고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맥아더 동상에 불을 지르거 철거 시도를 여러 번 했었죠. 맥아더만 아니었어도 자기네 북한 공산 인민군이 적화 공산화 통일을 성공시켰을 것이고 자신들은 인공기를 흔들며 김일성 만세를 외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좌익진영 입장에선 너무나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고 원수같은 존재겠죠.
니 몇살이고????
@@나무-z8u
그거는만주폭격을
트루먼이승인해주지않아서임
어쨋든자기나라도아닌
다른나라에와서싸워준
사람을그딴식으로폄하하지마라
헛소리좀그만하고
@@정창화-l3t아직도 맥아더가 은인인줄 아네 아이구야 좀 알고 떠들자
만물상자님 항상 정성이 담긴 영상들을
감사히 시청하고 있습니다.
혹시 언젠가 전쟁사 관련해 책을 쓰실 계획은 없으신지요
기회가 닿으면 말입니다.
맥아더 원수가 진심으로 존경받는 단 하나의 이유이자
군인의 진정한 가치가 뭔지를 보여주는
단 하나의 작전........
군인은 과정이 아닌 결과로
모든 것을 증명한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나 할까요?
실제로도
인천상륙작전을 듣고
미국 내에서조차도
제2의 키에프 상륙작전이 될 거리라고 조롱했을 정도로
인천상륙작전은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미친 행동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적의 허를 제대로 찌르는
완벽한 역공격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진짜 멋진 상륙작전이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역사를 바꾼 3대 상륙작전 중 하나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았으니까 말입니다.
이 컨텐츠에서는 단순하게 인천상륙작전의 전개과정만 다루지 않았습니다.
1944년 6월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1950년 9월의 인천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채널에서는 6.25전쟁 뿐 아니라 2차대전에 대해서도 매우 많은 컨텐츠에서 다뤘기에
이것은 채널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 전개입니다.
그리고 처절했던 서울 시가전 전투 상황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도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김일성과 북한군 최고 지휘부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특징을 연구하며 대비했습니다.
그들로서는 정말 최선을 다해 상륙에 대비했던 것입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트루먼은 맥아더에게 축사를 보냈는데 그 내용이 무척 감동적입니다.
맥아더가 했던 전략을 한마디로 요약해주는 내용이기에 그 내용을 공개할 것입니다.
끝까지 보신다면 분명 뜨거운 감동이 밀려올 것입니다.
맥아더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공산치하...
@@나무-z8u
그렇지?.. 300만명을 굶겨 죽이는 지구상의 제일 악질 공산당 김씨왕조의 적화통일이 안된거 ... 아깝지?
역시
@@나무-z8u 맥아더가 아니라 중국이 통일기회를 날렸지
이미 공산치하
알고는 있는 역사이지만 다시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네요 이작전에 우리 국군
영웅분들의 큰 도움이 있었다는것도 잊지마시길 바랍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인천상륙작전이 정해진 회의가 있었습니다.
그 어떤 채널에서도 이 회의 내용을 다룬 컨텐츠는 없을 것입니다.
1950년 8월 말, 맥아더 장군이 있던 일본 도쿄에는
미군 최고 지휘부의 장군들이 모두 모여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인천상륙작전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찬성자는 단 한명. 바로 맥아더였습니다.
ua-cam.com/video/Ebzp6ZFQ7mg/v-deo.html (인천상륙작전이 결정된 작전회의)
이 또한 감격스러울 것입니다.
당신들이 계셨기에 지금에 우리가 있읍니다 감사합니다..
인천상륙작전의 맥아더 장군과 6.25 전쟁에 참전을 결정한 트루먼 대통령과 유엔군의 깃발 아래 참전한 미국과 영국, 터키, 에디오피아 등 참전군인들과 국가들에게 대한민국은 지구가 멸망할때까지 그 은혜에 항상 감사해야 한다.
지금의 우리나라를 있게해준 맥아더 장군님과 싸워주신 미군, 한국군에게 감사합니다.😂
다음 컨텐츠는 정말로 감동적인 컨텐츠가 나갈 예정입니다.
이 사실은 역사적 사료로 검증된 팩트입니다.
그 때도 꼭 시청 부탁드립니다.
맥아더원수의 인천상륙은 한국을 사랑한 하늘이 도운 것이었다. 이후 장진호반에서는 중공게릴라가 산악지형을 차지하고 매복하여 미군은 녹고 미해병1사단은 어렵게 후퇴해야 했는데... 이 때 맥아더원수는 인사관리에 소홀함을 보인다.
노르망디처럼 콘크리트 벙커가 있는것도 아니고 조악한 참호선 몇개로 미군의 상륙을 저지하는건 불가능하지요
무슨 소리요! 미리 상륙 지점을 알았으면 게임 셋
그 상륙지점 함포에 다 쓸림@@sungminkim6309
B29로 일주일 동안 폭격 했으면 바로 탈환했겠지만 서울이 불바다가 됐을거고 시민도 엄청 죽었을텐데 시가전으로 탈환하느라 미군과 한국군이 많이 피해를 당했겠네요.
이 컨텐츠에서 충분히 설명드렸지만
서울탈환 관련 다큐영상을 보면 미군이 늘 하던 방식대로 사전포격과 폭격 후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이것을 생략한 채 탱크와 보병으로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생각보다 인천 점령 후 서울 탈환 전투가 시간도 많이 걸렸고 생각보다 인명피해도 많이 발생했습니다.
14:51 미 해병대 제1연대장 풀러대령은 잔적소탕은 한국군 해병대가 맡을 것이므로
저격병과 박격포로 저항하는 북한군은 우회하라고 지시합니다.
이 역시 미군이 서울을 탈환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음을 잘 보여줍니다.
맥아더 대원수
북한군은 9월 이미 공세종말점에 도달해있었죠....
그러나 김일성이 무리하게 최후의 발악을 하다가...
인천상륙작전을 허용하는 결과를 낳았죠...
요즘 우크라이나 군을 보면...소련군의 공세종말점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듭니다.
곧 겨울이오면 러시아의 무시무시한 반격이 있을듯 합니다. ㅎㅎ
물론, 전쟁 그자체의 위험으로 피해도 컸지만 이 정도면 미군도 인내심이 있는건가? 어찌되든 정치적인 여러 계산과 개인의 야심을 넘어 세계 역사에 중요한 작전임은 분명합니다.
더불어, 아무리 맥아더의 문제가 있어도 근본적으로 군국주의자면서 군대에 아주 무지한 김씨왕조의 시조의 능력도 눈여겨볼만합니다. 아무리 부하들 좋고, 그들이 있어서 지휘자가 능력 낮아도 된다해도 북한은 그 정도가 심했고 민심수습에서도 중공보다 못했죠. 오만과 능력부족이 북한의 패배를 부른겁니다
그래도 여러모로 전쟁이 정치 연속성인점과 정치적 요소, 눈앞의 이익과 유혹도 고려해야죠. 해병대에 근본적으로 싫어했던 트루먼이나 북한의 부담등등... 전쟁사가 힘드네요
감사합니다. 맥아더. 미국.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응원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맥아더 장군의 훌륭한 전략과 전술,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의 리더쉽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자유를 누릴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유익한 정보 도움많이 되었습니다.^^
브래들리는 쫄보 맞음 어떻게 장군이 됐는지 신기할 따름
ua-cam.com/video/1kym_Rya7a4/v-deo.html (독일 최정예 기갑부대는 내가 잡는다! 조지패튼이 생각했던 전략은?)
1944년 8월의 팔레즈 포켓 전투.
독일 기갑부대 전체가 연합군 포위망 안에 갇힌 상황.
브래들리와 패튼의 사료에 기록된 대화가 너무나 인상적입니다.
브래들리: 조지, 자네만 빨리 진격하면 뭐하나? 자네와 영국군의 전투 지경선이 겹칠 수 있어.
패튼: 이것은 지휘관에게 1세기에 한벌 올까말까한 기회란 말이야!
브래들리: 내말 좀 듣게., 조지, 오인사격 받으면 어쩌려고 그래?
패튼: 빌어먹을, 몬티의 전투지경선 따위는 신경쓰지말고 포위망 닫아!
하지만 패튼은 끝내 명령을 어기지 못합니다.
부하의 구타문제로 전투일선에서 물러났던 트라우마 때문이었습니다.
전쟁의 판도를 바꾼 인천상륙작전
역사가 증명하듯 전략을 기획실행시에는 자기말잘듯는 측근만으로는 한계다
당시 실전경험풍부한 팔로군 무정등의 의견도 경청했다면 어떠했을까 역사적교훈이다
그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이 존재함을 과시합니다
시간 상 북괴가 서울에서 15일을 버티는 동안
북괴의 낙동강 전선 병력이나 군산 상륙 방어군들을 철수 시키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을까요?
질 때 지더라도 북괴군에게 그 15일은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을 텐데요.
1. 퇴각전은 장난이 아니다. 국군과 미군의 낙동강 방어군을 상대하며 정상적인 전력유지 하며 퇴각하는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2. 북괴군이 결국 상륙군을 밀어낼 것이라 오판했다.
3. 15일만에 낙동강 공략군을 한반도 38선 인근까지 빼는건 시간상으로도 안되는 일이다.
서울 탈환이 13일 이상 걸리는 동안
낙동강까지 내려가 있던 북한군은 전멸을 모면하고 탈출에 성공한 인원이 3만명 정도로 나와 있습니다.
방호산의 6사단 같은 경우도 백두대간을 타고 38선 이북으로 가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살아남은 병력은 모두 빨치산이 됩니다.
후방이 차단당했는데도 3만이나 살아서 도망간 것은 나름 선전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아. 사실상 최정예였던 방호산 군 뿐 아니라 철수 병력 3만 (약 15%) 철수면 성공한 철수라고 봐야되는 거군요.
거기에... 38선 돌파를 할지를 결정할 시간도 대략 3일 정도 있었으니... (사실상 전쟁의 결정권은 유엔군[미군]이 하는 거였을 테니까요.)
설명감사합니다.
일전에 방호산의 6사단에 대해 다룬적이 있었습니다.
ua-cam.com/video/9mSJBKL8zY8/v-deo.html (신출귀몰한 전법을 구사하는 방호산 동지는 반드시 부산에 입성할 것이다)
방호산이 호남의 항구를 다 점령하느라 시간을 보내지 말고 그냥 빨리 부산으로 내달렸다면 한국은 그때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호산이 참 대단하긴 하더군요.
그 와중에 부대 편제를 유지한 채 무사히 북한으로 귀환했으니 말입니다.
2024, 6, 5, 13:30
잘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뛰어난 사람이 왜 중공군 대비를 그리 못하다가 한반도를 핵전쟁에 집어넣을려고 했을까.
의문점을 갖고 계신 그 주제에 대한 컨텐츠도 여럿 나갔습니다.
결론적으로 중공군 참전을 정말로 몰랐고 예상치 못했습니다. 맥아더, 트루먼, 미 CIA, 국방부 모두가 예상 못했습니다.
심지어 맥아더는 유엔군 마지막 정찰을 자신이 직접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중공군은 단 한명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것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ua-cam.com/video/Tby-BzmHlnU/v-deo.html (김일성은 당장 항복하라! 그러나 맥아더가 예상하지 못했던 한가지 사실은?)
이 컨텐츠에서는 유튜브 채널 중엔 거의 처음으로 맥아더가 너무나 공군력을 신봉했음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북한땅은 공군력이 100% 통하는 지역이 아니라는 것을 중공군에게 당한 후 알게 됩니다.
미군이 인천상륙 작전 성공후 38선 도착즈음 중화인민공화국은 인도대사를. 통하여 미군이 38선을 넘으면 중국 군이. 참천하고 한국군 단독으로 넘으면 중국은 관여하지. 안는다고 정식므로 통보하였다는 외교 문서가 있는데 중국인민해방군 참전을 몰랐다고 잡아때는 말씀...
좀더 연구. 필요합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일선보고 무시했다는 이야기가있던데요
정확한 사료를 보고 말씀드립니다!
맥아더에 압도되어 일선의 그 누구도 보고할 생각도 못했다고 합니다.
트루먼조차도 맥아더에게 설설기는데 누가 맥아더에게 이건 아닌것 같습니다. 라고 했겠습니까?
그리고 당시 미국의 정보라인의 전체 분위기는
중공이 참전하지 못할거라고 봤습니다.
워커장군조차도 청천강에서 방어라인을 좀 굳히고 올라가는게 낮지 않을까? 라고 생각은 했으나
직접 정식건의는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그러면 지휘관 으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이 결여 되어있는 장군이라는 소리 아닌가요? 정치권만이 아니라 부하도 의견을 말을 못한다? 대체 그런 지휘관이...
인천상륙작전 성공한 건 정말 신의 한수이자 천운의 구사일생이었죠 ㅋㅋ 다만 서울 탈환에 13일이나 걸려 그 사이 북괴군이 후퇴해 병력을 보존하고 재정비할 여유를 줘서 평양 탈환에도 시간이 걸렸고 추후 중공군이 참전할 시간을 벌어준 걸 생각하면 너무나 아쉽죠 ㅠㅠ
미국은 6.25때 핵폭탄 일천발을 북한에 투하했으면 미군 사상자 없이 일주일만에 전쟁이 끝났을 텐데...너무 인적 피해가 컸습니다.
미국이 그렇게 많은 핵탄두가 없었음
그렇지만! 핵폭탄 일천발의 휴유증으로 한국은 ㅈ되었을 것 같다!
그러면 애끚은 북한동포는? 그리고 한반도는 완전 방사능오염투성이로 폐허가 될터인데? 한심한 인간!
적이라도 너무 인명을 중시하는 미국의 위정자들 때문에 미군의 희생도 컸습니다
6.25전쟁의 최대 실수는 트루먼이 만주에 핵폭탄 투하를 주장한 맥아더 장군을 해임한것. 트로먼은 3차대전이 일어날까봐 겁먹은 쫄보 대통령이었습니다!
저런 맥아더원수를 모욕하는 인간들이 정말 대한민국의 국민이 맞는가?
10:54 9월공세가 사실상 북한판 벌지전투라고 할수 있나요 북한 단독 공세작전이
벌지전투와 비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1950년 9월 당시에도 북한군 공세가 꽤나 거셌던 것은 분명합니다.
미국이 무기판매라도 했었으면 좋았을텐데.....
6사단 사령부 직활부대 사병출신인 제가 봤을때는 만약 맥아더장군님이 인천상륙 동시에 원산도 상륙을 하셨음 어떠셨을까 하는 생각이드네요^^
상륙작전이라고 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기적이었습니다.
실제로 맥아더는 더 빨리 북한을 끝장내기 위해 원산 상륙작전을 1950년 10월 2일부터 진행합니다.
그러나 원산상륙작전은 실패작이었습니다.
북한은 원산 상륙에 대비하여 기뢰를 잔뜩 깔아놨고 맥아더는 일본 소해부대까지 동원하여
기뢰를 해체한 끝에 간신히 상륙합니다만 너무 늦게 상륙이 완료되는 바람에 기습의 효과를 잃게 됩니다.
멋지다. 인천상륙작전.
16:09 에 나오는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트루먼 대통령이 보낸 축전이 모든 것을 작전을 잘 요약해줍니다.
이미 트루먼은 이때부터 맥아더와는 그렇게 친근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루먼은 이런 축전을 보낼 정도로 대단한 승리였습니다.
"전력을 집중하기 위해 시간을 벌었던 지연전술,
그런 후 서울 해방을 위한 빛나는 기동!
오직 맥아더 원수 당신만이 해낼 수 있는 위업이었소!"
625는 뭔가 엄청 오래전 같진 않고 2차대전은 엄청 옛날 같은데 거의 같은 시기 전장이라는게 뭔가 신기해요 김일성 젊었을땐 나치독일이 전쟁 준비하던 시기였을거고 2차대전 뛰던 브래들리 맥아더도 625에 참전하고
2차대전 때 활약했던 사람들은 고스란히 6.25전쟁에 나타납니다.
브래들리와 콜린스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유럽전선에서 함께 싸웠던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5년 후인 6.25전쟁 때는 둘 다 합참의장과 육군참모총장이 되어
한반도의 운명을 좌지우지했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
Thank you very much ~~~👍🇰🇷.
아! 낙동강 전투를 영화로 만들면 1000만명 이상 관객 동원을 한다
중앙청 태극기 올리는 사진은 예전 교과서에도 실렸던 것으로 기억을....
도대체 양질의 자료는 어떻게 구하시는지 대단하다는 말씀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확한 사료에 근거해 내용을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고증에 맞는 영상과 그림으로 여러분의 확실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브래들리 스트라이크여단 장갑차가 브래들리 장군에서 가져온거 였군요
채널에서 브래들리 장군에 대해서도 간략히 다룬 바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미 합참의장이었던 인물입니다.
ua-cam.com/video/PMYsfcjP2bU/v-deo.html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미국의 대전략! 맥아더vs브래들리 과연 누가 옳았을까?
영상 중간중간에 나오는 전쟁게임 영상이 나오는데 게임 이름이 먼가요
시간대를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맥아더 장군님, 고맙습니다!!
제한전을 고집했던 트루먼 겁쟁이 때문에 남한과 맥아더는 희생당한 것이다!
최근 사료에 기반한 관련 컨텐츠가 또 있습니다.
트루먼은 역시 선거가 중요한 정치인 다웠습니다.
중공군 개입 소식을 들은 트루먼이 난감했던
그 역사적인 이유를 아실 수 있습니다.
ua-cam.com/video/hYHYz4M3oz0/v-deo.html
(압록강까지 올라간 미군과 국군, 그런데 왜 한반도 통일은 실패했을까?)
39도선에서 휴전됐으면 인구 6천 5백만에 gdp 2조 5천억불 이탈리아 제치는
39도선 문제에 대해 채널의 다른 컨텐츠에서 심도있게 다뤘습니다.
ua-cam.com/video/qoyXMNwQlMI/v-deo.html 한반도를 분단시킨 38선. 원래는 39도선이 될 뻔했다.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말씀하신대로 38선은 원래는 39도선으로 그어질 뻔했습니다.
미국의 똑똑한 전략기획단 대령들이 향후 방어를 위해서는 폭이 좁은 평양-원산라인을 경계로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38선으로 그어진 어이없는 역사적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그것에 대한 내용입니다.
브래들리 장갑차를 워커 장갑차로 네임 변경 해야긋다
민간인과 문화재가 많아서 외곽만 항공지원 사격한것 아닌징ᆢㄷ
말씀하신 것을 이 컨텐츠에서도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맥아더는 서울 중심부에 대한 융단 폭격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할 수가 없었겠죠.
나름 한국을 배려한 조치였습니다. 전쟁이 복잡해보여도 최고 지휘부 몇몇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법입니다.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상당수 있었고 경복궁 등 문화재도 있었으니까요.
브래들리:상 사기꾼 같다... 얌채
브래들리는 당시에도 여러 비판과 논쟁에 직면했던 인물입니다.
우유부단한 면이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팔레즈 포위전에서 독일기갑부대를 완전히 몰살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결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ua-cam.com/video/1kym_Rya7a4/v-deo.html
독일 최정예 기갑부대는 내가 잡는다! 패튼이 생각했던 전략은? | 1부
한국 전쟁기간에는 합참의장으로서 미군 서열 1위였습니다.
트루먼의 축전내용이 내용 그대로 읽히기 보다는...맥아더 너 잘 났다로...해석된다는...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보입니다.
이미 이 당시에 두 사람 사이는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중공군 참전 이후 맥아더가 트루먼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미 맥아더는 중공군 참전 이전부터 몇번이나 트루먼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고
오히려 맥아더가 맘대로 하면 트루먼이 사후승인을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당시에도 트루먼 정부는 서울을 한국정부가 아닌 UN 관할에 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맥아더는 이 말을 보기좋게 무시하고 이승만에게 서울을 바로 인계하게 됩니다.
ua-cam.com/video/5ksHNvFPPVs/v-deo.html (맥아더와 이승만의 약속 1부) 에서 이 사실을 다뤘습니다!
어마무시한 미공군력이 북한군 보급선을 쉼없이 강타하고 있는 데... 북한군이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온 게 신기한 거죠. 북한군은 주간작전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어요
압도력인 화력으로 낙동강주변의 북한군을 착실하게 섬멸하는 편이 더 나았습니다.
그때당시에 북한이 그정도로 강한군대였죠 1970년대까지만해도 북한이 남한보다 잘살았고 강했었으니까요
재밌긴 히ㅣㅏㄴㄷ데 왜 말 끝을 계속 흐려요…?
최악중 최고의 결과을 만들어낸 맥아더 원수
공산국가들의 공통된 군사전력의약점은
해군이다ㅡ러시아도 그렇고
중국은. 아예 해군은물통이다
북한이만약에625때. 해군의전력이강했더라면 낙동강전투같은 배열식전투는 없었을지도모른다
우리도돛단배밖에는없었으니까ㅡ
말씀하신 공산국가와 해양국가의 차이.
그 차이가 한반도와 일본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관련 컨텐츠가 있습니다.
ua-cam.com/video/W7nb6U3D7Bc/v-deo.html (한반도와 일본의 운명을 바꿔버렸던 미국과 소련의 군사적 차이는?)
6.25전쟁은 소련 정치장군,스티코프와 팽덕훼에+중공군/조선족출신 치러졌고 김일성은 지휘하지 않았고 별 역할이 없었음
1950년 8월에
미국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으면,
지금 남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고로 은혜를 알자?
브래들리는 유럽전선에서도 동플레이를 한 유명한 똥별입니다
구체적으로 브래들리의 우유부단이 발휘되었던 유명한 일이 있습니다.
바로 2차대전 당시 팔레즈 포위전입니다.
ua-cam.com/video/1kym_Rya7a4/v-deo.html (독일 최정예 기갑부대는 내가 잡는다! 조지패튼이 생각했던 전략은?)
조지패튼이 미군이 주축이 되어 포위망을 닫자고 했을 때 결단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구타사건으로 조지패튼이 물러나기 전에는 패튼이 상관이었다는 점입니다.
또한 6.25전쟁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브래들리와
맥아더의 전략대결에 대한 컨텐츠도있습니다. ua-cam.com/video/PMYsfcjP2bU/v-deo.html
@@만물상자TV전쟁의신
정말 브래들리는 생긴대로 행동햇는데
참 한심한 것이 미국도 우리처럼 일(싸움) 잘하는 패튼이 밀리고 어물거리는 똥별이 먼저 출세를 하더군요.
우리일이 아니더라도 정말 이 대목에서는 화가 납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젠하워도 똥별 같아보입니다.
아이젠하워는 리더십이 있는 인물이지만 다분히 정치적인 인물입니다.
채널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한국방문을 했던 때를 다뤘습니다.
ua-cam.com/video/hlM8-bvp0pU/v-deo.html
이승만과 밴 플리트는 아이젠하워가 군인 출신이므로
지루한 고지전이 아니라 대대적 공세를 취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트루먼과 똑같은 행동을 취합니다.
이 컨텐츠 후반부에 브래들리가 맥아더에게 하는 말을 보면 패튼에게 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브래들리는 맥아더의 한참 후배였고 계급도 대장에 불과했습니다.
"아니 대체 왜 그렇게 인천을 고집하는거요?"
"낙동강 전선이 뚫리기 직전이오!"
맥아더보다
워커장군이 더 은인이지
않나?
그래놓고 바로 자기부하챙기려고 돌아이짓을 해서 전쟁승리를 놓친 맥아저씨
이런데도 북한이 좋다는
뭐 국력이 비슷해야 두뇌싸움이지
미국의 국력이면 원숭이가 지휘해도
이겨야 정상이지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만
미국은 가진 힘의 100%를 6.25전쟁에 투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반면 북한군은 죽기 살기로 덤벼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봐야 했습니다.
성공한 상륙작전이 우리에게 많이 부각되어서 그렇지 사실 상륙작전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 좋은 예가 원산상륙작전입니다.
원산 상륙작전은 북한군이 미리 예상하고 기뢰를 잔뜩 깔아뒀기에 빠른 시간 내 상륙이 실패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또한 바늘 구멍에 실을 꿰듯이 단 하나의 단계라도 미스가 났다면 실패로 끝났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북한군 지휘부가 제대로 판단하여 인천항에 기뢰라도 잔뜩 깔아뒀다면 실패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당연한 말씀 아닐가요?
전투기나 항모를 무한대로 찍어낼수있는 나라랑
소총도 못만드는ㅈ나라 싸움인데
공중 폭격으로 서울에 있는 북한군 청소하고 들어갔다면 더 빨리 탈환하고 미군 희생도 줄일 수 있었는데
왜 폭격+포격을 하지 않고 조금씩 천천히 조여 들어갔나요?
12:31~16:59 (서울을 보호하며 싸웠던 서울 탈환작전) 부분에
아예 따로 소제목까지 빼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다시 그 부분 영상을 돌려봐도
" 폭격 하지않고 서울을 탈환했다 "
라고만 나와있고 폭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영상에 없는데요?
@q1vo5uq6c 이 컨텐츠는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책 2권 이상의 엑기스가 모두 들어간 컨텐츠입니다.
13:05에 나오잖습니까?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시기 바랍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죽고 사는 문제 + 탈환할지 못 할지도 모르는 때에
고작 문화재 때문에 폭격하지 않고 희생 감수하며 조여 들어갔다고요?
13:05 저 부분은 맥아더가 문화 유산 유실을 우려해서 조여들어갔다 라고 설명돼있지 않아서 채널 주인님 개인의 생각인 줄 알았습니다
덕수궁, 경복궁, 중앙청이란 문화재도 중요하지만
한국은 동맹국이기도 합니다. 맥아더 입장에선 서울 시민들의 민심도 중요했습니다.
맥아더를 비롯한 미군 지휘부가 신경썼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승만 대통령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맥아더와 이승만은 꽤 오랜 시간동안 인연을 이어온 사이였습니다.
ua-cam.com/video/5ksHNvFPPVs/v-deo.html (맥아더와 이승만은 절친이었다)
요즘 뜨고 있는 위 컨텐츠를 참고바랍니다.
어디에서 많이 듣던 분의 목소리인데 감이 안오군요. 오랜만의 좋은 채널을 발견했군요. 앞으로도 좋은 내용 많이 부탁합니다.
응원의 말씀 감사합니다.
채널의 6.25전쟁 재생목록에만도 30개가 넘는 6.25전쟁 컨텐츠가 있습니다.
내용은 물론이고 참고화면까지 고증에 맞춰 이해를 돕는 컨텐츠로 가득합니다.
미국의 트루먼은 왜 핵폭탄 이야길 먼저 꺼내고도 끝내 사용을 못했는지?
맥아더 장군과 이승만 대통령의 감격적인 서울환도식 이야기,
중공군은 대체 어떻게 숨어들어왔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모두 있습니다.
오랜만의 x
오랜만에 o
@@김무준-e9c 앗땃따 글을 빨리쓰다가 가끔퇴고하다보면 그럴수 있답니다.
하지만 지적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런데 유튜브 끝날때 나오는 음악이 어~허! 얼라리 꼴라리야! 어~히.. 이케 들리는건 내귀가 잘못된건가
일본군 자원들이 서해 지리에 훤했고 맥아더가 그들의 의견을 상당 부분 수렴했다고 함
미국이 한국전쟁에 일본을 활용했다? 미국 정부의 극비문서를 통해 알아 본 미국과 일본의 관계
ua-cam.com/video/7D0qSSkfVVc/v-deo.htmlsi=BQdzGsA-Bu_mRO-m
진행을 시간을 너무 끄는 느낌이네요
아마도 인천상륙작전 비사의 내용 중
구독자 여러분께 특히 강조하기 위한 부분이었을 것입니다.
잘 보고있다가 브래들리가 쫄보였다는 말에 그냥 지나갑니다.
너무 애같은 발상이네요.
브래들리가 쫄보같다는 말은 시청자의 댓글 내용이었는데요.
채널에서 그 얘기에 동조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그 말은 한국사람만 모르지 미국 내에서도 나온 얘기입니다.
ua-cam.com/video/1kym_Rya7a4/v-deo.html (조지패튼의 전략).
이 컨텐츠는 2차대전 당시 팔레즈 포위전투를 다루고 있는데
당시 패튼은 서부전선의 독일 기갑부대 전체를 전멸시킬 기회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패튼의 상급자였던 브래들리는 영국군과 오인사격이 나면 아군끼리 희생이 생긴다며
포위망을 닫으려는 패튼을 뜯어말렸습니다.
여기서 살아나간 독일 기갑부대는 벌지전투에서 미군을 더 많이 살상하게 됩니다.
ua-cam.com/video/PMYsfcjP2bU/v-deo.html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미국의 대전략! 맥아더vs브래들리)
6.25전쟁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브래들리.
당시 브래들리는 중국보다 소련이 더 문제라며 유럽만을 중시했습니다.
결국 통일이 되지 않고 제한전이 되도록 일조를 했던 인물이 바로 브래들리였습니다.
채병덕 총참모장은 전투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없는 장교가 맞습니다.
그는 일본군 장교시절 부평의 조병창에서 복무한.... 보급과 행정에 유능한 장교였죠.
이런 사람을 작전지휘를 해야하는 위치에 앉힌건 이승만이었으니 결론적으로 이승만이 잘못한겁니다.
채병덕은 전투 지휘관으로서는 무능했지만 어쨌거나 해임된 이후 마산지역 전투에서 적과 전투중 전사했으니 군인으로서 명예로운 죽음이었고 본인의 책임은 다했다 볼 수 있습니다.
정말 무책임한건 대통령 이승만과 국방장관 신성모였죠
한국의 독립은 쟁취가 아닌 선물이라는 인식부터 무지몽매한 국민들에게 일깨워야합니다
김일성의 사상은 어제나 군사지휘관은 자기대원들의 앞장에서 돌진하는것이다..
조국해방전쟁시기 그는 호위군관을 데리고 전선을 향해달렸다..전선앞에 경비초소가 사령관님. 여기는 촤전선입니다. ..
그러자 김일성은 말했다.
촤전선은 나에게로.
저는 해병장교출신으로 맥아더와 이승만을 우습게 보는사람입니다😅 맘물상자님덕에 인천상륙관해서 이 두사람을 보는시각은 바꾸려합니다. 맥아더 장군이 마닐라에서 중화기를 못쓰게 했던 그 배려심이 진짜배려였음을 알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역설적으로 인천 상륙 작전에 투입된 군단급 전력을 투입해서 낙동강 전선부터 차근 차근 올라갔다면 50년 그 혹한의 시기를 38선 이남에서 작전을 치루면서 51년 봄에 38선을 돌파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중공군에게 당한 전력 손실을 최소화시키면서.. 결론적으로 인천상륙작전은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선 그 이상의 성과를 이루지 못한 작전!
벡선엽 장군 만이 미군에게 인정 박을 만큼 잘 싸웠지 광복군 장교들은 다들 능력이 없었지 친일 논란 하기 선진 군사 시스템을 어디서 배울수가 있는 지를 생각 해봐라
매아더 =맥안돼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이가 없다. 북괴의 대한민국 침공의 전략은 모두 소련에서 만들것을 다 알고 있다. 김일성, 김책, 최용건은 대규모 전쟁을 해 본적이 없어. 두뇌 싸움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이 컨텐츠에서도 그 부분을 묘사했습니다. 07:30
맥아더가 직접 참모들에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북한군 지휘부는 대규모 전투를 지휘해본 적이 처음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게릴라 전투만 해본 사람들이다.
김일성 최용건 따위가 사관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2차대전 때 사령관도 아니었고 전략 분야는 약한 것이 당연하죠.
군산, 삼척에 상륙하는 바보도 있겠느가? 일생이, 택동이도 확신하고있었지.인천에 상륙해 서울로 쳐들어올걸로, 전술아 아나라 상식의 수준이었지.닉동강에선 9.10일 인민군은 모든 전력(보급과 탄약) 이 소진되어 실패를 예감하고있었지.
군산에 상륙하는 바보도 있겠는가?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그렇겠지만
당시 맥아더를 뺀 미군 지휘부 전체는 인천에 상륙하는 것이 바보고
군산에 상륙해서 워커장군을 도와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ua-cam.com/video/Ebzp6ZFQ7mg/v-deo.html
인천상륙작전이 결정된 작전회의 (찬성 맥아더 1명, 반대 9명)
삼척은 몰라도 군산에 상륙하는건 일반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군산에 상륙하면 곡창지대인 호남도 수확기 전에 탈환해서 북한의 보급에 지장을 주고
낙동강의 워커 장군과 북한군을 좌우에서 협공해 포위망을 풀수 있었습니다. 다만 인천상륙처럼 하이리턴은 불가능하겠죠
조조의말
吾平生慣斷人糧道
내가 평생에 적의 보급로 차단이 전문이다
찌질이 트루먼이 계관시인처럼 시를쓰고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