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은 연의에서 와룡과 봉추로 그럴싸하게 언급은 됬지만 실제 능력은 제갈량에게 몰빵되어 적벽대전의 연환계 이후 별다른 언급도 없다가 서촉정벌때 낙봉파에서 죽을때나언급되었던 정말 안타까운 인물이었던것 같습니다..-_-.. 이만한 인물을 제갈량 뛰워주기에 희생시키다니 휴 -ㅅ-.. 정말 방통이 이릉대전까지만 살아있었어도 동오정벌까진 몰라도 형주까지는 되찾고 이후 역사의 향방이 많이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안타깝네요 정말 -_-..
청화수님 항상 재미나게 보고 있습니다. 청화수님의 영상을 보면,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역사도 자세하게 알게되어 정말 좋네요. ㅎㅎ 청화수님!! 혹시 시간될 때 백제 성왕과 신라 진흥황 시기에 한강의 소유권을 두고 벌였던 전쟁에 대해서 다루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이 시기에 나제동맹이 깨지고, 신라의 전성기가 시작되는 중요한 대목임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 많이 다루지 않더라구요. 꼭 청화수님의 탁월한 식견이 담긴, 백제와 신라의 한강쟁탈전에 관한 영상을 보고 싶네요.
@@bob-l5l8b 그당시 위도 세대교체 이루어지면서 기존 장수들이 은퇴해서 그런듯.조진,조휴세대로 교체됐고 진군,사마의가 이끌던 시기인데.. 진군,사마의야 구품중정 이끌던 사대부계층 핵심 세력이니 네임밸류가 크게 떨어진다는 느낌은 안 들던데 조진,조휴부턴 뭔가 조진,조휴가 생각보다 빨리죽어서 제갈량이 북벌하기 굉장히 좋은 상태로 만들어 지니까 위나라가 수세에 몰리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듯.사실 사마의 죽고 사마소 죽기전까지가 위,진 통합 전성기일듯.사마염 동오 정벌은 오나라 내부분열로 무너지는 경향이 커서 딱히 뭐가 더 낫다라는 느낌은 들지 않음.
청화수 님, 나는 유비가 이릉대전을 일으킨 진짜 이유가 알고싶습니다... 내가보기엔 유비는 분명, 관우의 죽음 만의 이유로, 그 큰 전쟁을 일으킨것 같진않다고봅니다.... 이 이유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것 같습니다... 유비가 이릉대전 일으킨 진짜 이유 를 알고싶습니다...
형주를 뺏기면 북벌이 힘들어서 그렇지 않을까요? 촉에서 위나라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크게 두가지 길이 있는데 무도 천수 장안을 통해서 가는 루트(후에 제갈량이 진격하려 했던 길)과 형주땅의 양양 허창 루트 두가지 길이 있는데 만약 양양 허창루트가 막힌다면 무도 천수 장안 루트 하나만 남는데 그러면 진격작전이 제약이 많이 걸리죠. 그리고 촉군은 땅 자체는 넓지만 한계가 명확히 있고 촉+형주 가 되야 자원 인력에서 그나마 위에 대항할 국력이 갖춰지는거죠. 실제로 형주를 뺏기고 촉은 사천성 에서 고사당하죠.
그냥 관우의 죽음은 핑계였고, 이번 기회에 합법적으로 형주를 점거 할 생각이였던거 같음. 관공 어찌 목만 오셨소 사건 이후로 조조가 죽고, 조비로 대가 넘어갔고, 오나라는 형주를 점거 했지만 아직 그 기반을 확실히 다지지 못햇던 상황. 이 상황에서 촉이 군사를 일으켜도 위는 세대 교체 이후 왕권이 잡히지 않았고 백제성에서 이릉으로 침공 해도 위에서 내려오는 병력은 상용 방향뿐이니 군을 급하게 돌릴 수도 있었고, 그 당시 익주의 군세도 오보다 훨씬 강력하고 수도 많다고 했을테니 오나라가 그걸 막으려면 총력을 다할텐데 위가 도와줄 이유가 전혀 없엇고(가만히 있다가 합비를 통해 강남 정벌을 해도 될정도니) 거기에 여몽까지 병사? 충분히 비벼볼만 아니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덤볐을듯.
제 생각입니다. 당시 위는 조조가 죽은 후 조비가 대를 이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유비 나이도 60이 넘은 때였습니다. 관우의 복수도 있었겠지만 융중대의 실현을 위해서는 형주가 가장 필요했기에 이릉전을 일으켰다고 봅니다. 위나라가 조조사후 수습의 문제가 있기에 형주를 실력으로 유비가 취한다면 다시금 형주괸리가 용이해질거란 판단이 있었을 겁니다. 또한 형주는 유비가 꾀나 오랫동안 기거했던 지역이기에 형주 호족들도 민심도 유비가 점령한다면 유비에 호응할거란 자신감도 있었을겁니다. 조조가 없는 시기였기에 유비가 과감하게 결단한 거라고 전 생각합니다. 만약 관우가 죽었더라도 계속 조조가 살아있는 상태였다면 이릉전투는 일으키지 못했을겁니다.
제일 좋아하는 사원에 대해서 얘기 들려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좋아요 구독 박고 갑니다^^
매번 잘보고갑니다 즐겁게 하루 잘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
일단 좋아요부터 누르고 있습니다
지금은 바빠서 나중에 볼건데
야튼 자주봐서 너무좋아요
넘넘좋아요
자주 올려줘서 고맙습니다 🙏
이번에도 유익한 영상 정말 감사합니다. 항상 큰 도서관같은 이 채널에서 저는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꾸준히 이전 영상들도 틈틈이 챙겨 보고 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이릉대전 이야기 나오면 아쉬움에 꼭 찾게되는 인물이 법정 그리고 방통이죠 ㅜㅜ 너무나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 ^_^
적벽은 곽가 ..ㅎ
영상 감사합니다. 청화수님
방통 ! 잘 보고 듣겠습니다. 🙏
촉 정벌 1등 공신 방통/한중 공방전 에서 승리를 이끈 법정...이 두명이 일찍 사망 안 했다면...관우/장비/유비가 그리 허망하게 죽지 안 았을 텐데..
그후 제갈공명 혼자 고분분투 했으니..
ㄹㅇ 있었으면 형주지키고 장안 먹었을 수도...ㄷㄷ
유비가 촉정벌 1등공신으로 임명한건 제갈량 장비 법정 아니던가요?
@@songland7837 ㄴㄴ 제갈량한거 많았습니다
방통에 대해서 몰랐던것을 많이 알았습니다... 청화수 님 얘기들어보니, 그 당시 방통 을 옆에서 보는것 같습니다... 청화수 님 의 이야기가
너무 재밌고 리얼합니다..
드디어 제가 요청한 방통이야기가 ㅠㅠㅠㅠ
개 아깝네 진짜.. 제갈량보다 북벌은 더 잘했을 인물인데ㅜㅠ 화살이 닿는 거리에 있었다는것만 봐도 옳다고 생각하면 자기 몸 별로 안돌보고 돌격하는 스타일이었는듯
@정승환 낙봉파는 창작입니다;; 실제론 낙성전투해서 공성하다가 화살맞고 죽죠.. 전쟁에선 흔히 일어날수 있는일. 다만 이것도 다르게 생각하면 공성시에 문관이 너무 앞에 나서다가 화살맞고 죽는건 의욕과다라고 볼 수도 있겠다마는
@정승환나관중의 창작임.
청화수 선생 님 강의 들으며 집콕 잘 견딥니다~♡
진삼7 맹장전에서 IF에서 방통 살려 놓고 은근히 눈물겹더라. 진짜 이렇게라도 살았어야 했는데..하는 생각이 들었고.
청화수님 장료도 부탁드립니다 삼국지내 최애캐릭이라...해주리라 믿겠습니다!!
자기전에 듣고자서 너무좋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한 활동 해주세요^^
수양대군을 왕으로 만든 한명회하고, 방통은 매우 비슷하죠
초반에는 인정받지 못하다가 주변 지인의 소개로 진정한 주군을 만나고, 두뇌가 명석하여 권모술수에 매우 능하죠
제갈량이 가지지 못한 다른 스타일의 뛰어난 인재인데 너무 일찍 죽어서 안타깝습니다
저도요 ㅠ ㅡㅠ
방통의 계책을 유비가 받아들였다면, 삼국지 판도가 바뀌었겠네요
방통 일대기 : 제갈량과 법정과 함께 싸우며 전법에 맹렬한불길 끼워주면 2.5만딜에 가까운 딜량으로 역상성인 방패병을 잡아버린다
낙봉파라니! 하늘도 내 묏자리를 봐 놨구나
비장한 표정으로 가던 방통과..
방통이 죽고나서 유비가 "낙봉파~ 낙봉파!"
하며 애통해 하는 장면에서
나도 한마음으로 울었다ㅠㅠ
선생님 징기즈칸 시리즈도 항상 재미있게 잘보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투형 모사 이 사람하고 방통하고 법정이 오래살았으면 촉의 미래는 확실히 달라졌을것
제갈량은 와룡 방통은 봉추 사마휘는 수경........ 방통의 숙부 방덕공이 만들어 붙힌 별명.....................
방통은 연의에서 와룡과 봉추로
그럴싸하게 언급은 됬지만
실제 능력은 제갈량에게 몰빵되어
적벽대전의 연환계 이후 별다른
언급도 없다가 서촉정벌때 낙봉파에서
죽을때나언급되었던 정말 안타까운
인물이었던것 같습니다..-_-..
이만한 인물을 제갈량 뛰워주기에
희생시키다니 휴 -ㅅ-..
정말 방통이 이릉대전까지만 살아있었어도
동오정벌까진 몰라도 형주까지는 되찾고
이후 역사의 향방이 많이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안타깝네요 정말 -_-..
@아싸라비용 네, 윗글은 연의이야기만 한겁니다. :)
하긴 그렇겠네요, 형주를 잃고 수군전력도 전무했으니
이릉을 넘었다 하더라도 형주탈환까진 불가능했을듯 싶네요.
방통이 살아 있었다면 제갈량이 형주에 계속 남아 있었을 것이고 형주를 안 빼앗겼을 수도 있습니다
좋은 내용 항상 감사합니다
~~!!~~ 항상 기다리고 있어요오오오~~!!!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ㅋㅋ방통이 제갈량과는 성격이 다르네요 재밌습니다
방통이 손권 밑에 계속 있었으면 수명이 더 짧았겠네요,
육손 저승 길동무 됐을듯...😅😅😅
너무 단명한 책사네요
잘듣겠습니다!!
청화수님 항상 재미나게 보고 있습니다. 청화수님의 영상을 보면,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역사도 자세하게 알게되어 정말 좋네요. ㅎㅎ
청화수님!! 혹시 시간될 때 백제 성왕과 신라 진흥황 시기에 한강의 소유권을 두고 벌였던 전쟁에 대해서 다루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이 시기에 나제동맹이 깨지고, 신라의 전성기가 시작되는 중요한 대목임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 많이 다루지 않더라구요.
꼭 청화수님의 탁월한 식견이 담긴, 백제와 신라의 한강쟁탈전에 관한 영상을 보고 싶네요.
일본 전국시대 이야기를 청화수님 관점에서 너무 듣고싶어요
22222222222
와룡과 봉추를 얻으면 천하를 얻을 것이다.
청화수 채널에서만 알수 있는 방통의 이야기군요
삼국지 인물 자주 다뤄 줬으면 하는 의견을 남겨봅니다
감사합니다.
법정이 유장 밑에 있을때 계책내고 제대로 대응했으면 방통vs법정 싸움도 볼만했을듯
드디어 방통을 하시네요... 잘 시청하겠습니다....
상책/중책/하책을 낸 것은
중책을 선택하게끔 만들기 위함이 아닐까 합니다. 중책을 상책으로 말했으면 간택하지 않았을 거니까요ㅋㅋㅋ중고나라식 네고랑 비슷한 원리랄까요ㅎㅎ
방통이 요절하지 않았다면 제갈량 관우 장비등이 있었던 형주는 튼실 했을테고 이릉싸움은 없었겠죠. 방통의 죽음은 촉의 한계였어요.
대단하십니다.
방통 죽음은 너무 안타까움..진짜 이릉에서 촉한 에이스들 증발하는 일은 없었을텐데..
그전에 형주를 안 잃었을지도..
아싸라비용 이거야말로 가정이지만 만약 방통이 안죽고 제갈량이 형주에 그대로 남겨져서 관우가 북벌할때 뒤를 지켰더라면 형주를 잃는 일은 없었겠죠. 남아서 형주를 지켰던게 미방 부사인인 것만 보아도 촉한 인재풀의 아쉬움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는...
@아싸라비용 근데 막상 제갈량 북벌때 보면 조비대에 위나라보면 그닥 쎄보인다기보단 촉이 약해보이는 느낌
@@bob-l5l8b 그당시 위도 세대교체 이루어지면서 기존 장수들이 은퇴해서 그런듯.조진,조휴세대로 교체됐고 진군,사마의가 이끌던 시기인데.. 진군,사마의야 구품중정 이끌던 사대부계층 핵심 세력이니 네임밸류가 크게 떨어진다는 느낌은 안 들던데 조진,조휴부턴 뭔가 조진,조휴가 생각보다 빨리죽어서 제갈량이 북벌하기 굉장히 좋은 상태로 만들어 지니까 위나라가 수세에 몰리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듯.사실 사마의 죽고 사마소 죽기전까지가 위,진 통합 전성기일듯.사마염 동오 정벌은 오나라 내부분열로 무너지는 경향이 커서 딱히 뭐가 더 낫다라는 느낌은 들지 않음.
@아싸라비용 위촉오가 7:1:2 정도랬는데 미화된거지 위나라한테는 반란군정도 아니였을까요?
역시 화수형!
방통 아쉽네요 10년만 더살앗다면.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삼국지이야기
사마휘가 전과목 가르쳤군ㅋㅋ
청화수 님, 나는 유비가 이릉대전을 일으킨 진짜 이유가 알고싶습니다... 내가보기엔 유비는 분명, 관우의 죽음 만의 이유로, 그 큰 전쟁을 일으킨것 같진않다고봅니다.... 이 이유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것 같습니다... 유비가 이릉대전 일으킨 진짜 이유 를 알고싶습니다...
저두요!!
형주를 뺏기면 북벌이 힘들어서 그렇지 않을까요? 촉에서 위나라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크게 두가지 길이 있는데 무도 천수 장안을 통해서 가는 루트(후에 제갈량이 진격하려 했던 길)과 형주땅의 양양 허창 루트 두가지 길이 있는데 만약 양양 허창루트가 막힌다면 무도 천수 장안 루트 하나만 남는데 그러면 진격작전이 제약이 많이 걸리죠. 그리고 촉군은 땅 자체는 넓지만 한계가 명확히 있고 촉+형주 가 되야 자원 인력에서 그나마 위에 대항할 국력이 갖춰지는거죠. 실제로 형주를 뺏기고 촉은 사천성 에서 고사당하죠.
나이 더먹기 전에 뭐라도 해야하니 전쟁한거아닌가
그냥 관우의 죽음은 핑계였고, 이번 기회에 합법적으로 형주를 점거 할 생각이였던거 같음. 관공 어찌 목만 오셨소 사건 이후로 조조가 죽고, 조비로 대가 넘어갔고, 오나라는 형주를 점거 했지만 아직 그 기반을 확실히 다지지 못햇던 상황. 이 상황에서 촉이 군사를 일으켜도 위는 세대 교체 이후 왕권이 잡히지 않았고 백제성에서 이릉으로 침공 해도 위에서 내려오는 병력은 상용 방향뿐이니 군을 급하게 돌릴 수도 있었고, 그 당시 익주의 군세도 오보다 훨씬 강력하고 수도 많다고 했을테니 오나라가 그걸 막으려면 총력을 다할텐데 위가 도와줄 이유가 전혀 없엇고(가만히 있다가 합비를 통해 강남 정벌을 해도 될정도니) 거기에 여몽까지 병사? 충분히 비벼볼만 아니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덤볐을듯.
제 생각입니다. 당시 위는 조조가 죽은 후 조비가 대를 이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유비 나이도 60이 넘은 때였습니다. 관우의 복수도 있었겠지만 융중대의 실현을 위해서는 형주가 가장 필요했기에 이릉전을 일으켰다고 봅니다. 위나라가 조조사후 수습의 문제가 있기에 형주를 실력으로 유비가 취한다면 다시금 형주괸리가 용이해질거란 판단이 있었을 겁니다. 또한 형주는 유비가 꾀나 오랫동안 기거했던 지역이기에 형주 호족들도 민심도 유비가 점령한다면 유비에 호응할거란 자신감도 있었을겁니다. 조조가 없는 시기였기에 유비가 과감하게 결단한 거라고 전 생각합니다. 만약 관우가 죽었더라도 계속 조조가 살아있는 상태였다면 이릉전투는 일으키지 못했을겁니다.
진수의 평가를 보니 방통이 엄청난 사람이었네요. 아쉽습니다.
청화수 평역 삼국지 듣고싶어요
개꿀잼 잘보겠읍니다,,
방통이 죽지않고 익주에 있고
공명이 형주에 계속 남았더라면?
유비도 제갈량을 얻어 배가 불러 있는데 처음 본 방통을 중용 할리가....서서때도서서 하나 얻었다고 제갈량을 잊어버렸죠...이게 조조랑 틀린점이고 크게 되지 못한 인물이죠
방통이 개인적으로 더 좋았음... 겉에 비해 주머니에 칼을 지닌 사람이랄까
방통의 전투력이 조금만 더 높았어도
상 계책을 취했더라면 살아 있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
유비가 유비했다.
오오 잘 보고 가요
가장 좋은 계책은 인의때멩 못하겠다 해놓고 그러닠ㅋㅋㅋ
사마사도 해주실수 있나요?
조조였음 연회장때 목쳤다 ㅋㅋㅋㅋ
유비놈이 1을써서 해결할것을 3을 소비해서 일하게 만드니 방통도 빡쳤을듯...
처음에 유장을 잡자는 말을 들었으면 군사 시간 소모하지않고 해결되었을것을...
그럴거면 조조 섬기면 되지 조조같은놈 안섬기는 이유기도 한데
이걸보면 이말년삼국지가 병맛같지만 생각외로 고증이 장난이 아니네.. 수경선생 입시학원 기똥차다 진짜
대중들에 대한 삼국지의 인식은 이제 이말년삼국지 전과 후로 나뉜다고 볼수 있다 ㅋ
수경선생 사기꾼으로 나오는데 ㅋㅋㅋ
영천 하니까, 대구 옆에 있는 영천 이란 조그만 도시가 생각나네요...
촉을 방통이 세웠네.
삼국지 이야기 많이해주세용 ㅎㅎ
현덕은 와룡과 봉추 둘 다 얻었음에도 천하를 평안케 하지 못하였네...
귀큰놈은 항상 내로남불이지
오홍홍 좋아용!
대단한지식이오
저는 공명이 방통을 제거한거로 알았읍니다.
글구 서서가 유비한테 방통과 공명 둘중에 한명이라도 얻으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을 주고 조조의 꽤임에 알고도 ...
우직한 모범생 스타일의 행정 전문가 제갈량, 조금 성급하지만 번뜩이는 두뇌를 가진 방통. 방통이 더 오래 살았다면 이 둘, 그리고 유선의 막강시너지로 촉나라의 앞날이 달라졌을것 같다.
방통이 오래 살았다면... 이것보다는 손견과 손책이 오래 살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더 큽니다.
그랬다면 주유도 일찍 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신통방통.
간만이네유
유비 능구렁이ㅋㅋ
화살하나가 방통을 죽임으로서 이후 역사를 크고 작게 바뀌게 만들기도 했을듯..
손제리 한테 저랬다간 목날라갔다 방통 조조는 애매하고
조조는 오히려 수용했을거라봅니다.
@@baraj4734위나라는 인재풀이 워낙 좋아서 힘들거라 봅니다. 서서 또한 지방 태수로 마감했을 정도니까요
방통 답답하네 ㅋㅋㅋ 역시 많은 머리좋은 사람들은 유연하지 못해
거참 신통방통하네~
진짜 아까움 살았음 통일은 촉 이함 단 성질이 괴팍해서ㅠㅠ
진짜아깝 낙봉파에서 살았음 중국이 이리되진않음
솔직히 ㅂrㅂrㅌIㅂI가 왠만한 인터넷방송보다 더 대단해
오늘 ㅌ
낙봉파!!!!!!
ㅂrㅂrㅌIㅂI 홍보좀 그만해라 ㅡㅡ 그래서 어디다 검색한다고?
방통은 영리하고 추진력있고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하는 그런 인물인듯
유비는 끝까지 가면쓰고 사람좋은 척 연기하는게 좀 역겹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