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맞아요. 아이러니하게도 식민지와 근대화의 모든 것은 인천에서 시작되었죠. 하다못해 서구의 문물은 개항초기만이 아니라 1980년대 말까지도 인천을 통해 들어와 명동과 종로로 넘어갔엇지요. 그리고, 5월 3일 저도 그 자리에 있었어요. 학교는 서울쪽이었지만, 원래 고등학교까지 인천이었던지라. 고등학교 친구들 만나고 있다가 커피숍 아래에 시위대가 지나가길래 내려가 참여를 하였던 기억이...
북침으로 남침 유도한것은 이승만과 미국이다 ㅡ 다음 검색 훈민정음 해례본에 중국은 천자국 조선황제가 계신곳이라고 기록. 1922년 12월 9일 동아일보에 미이져리그 대표단 기차로 남대문 역에 도착 경성에 들어왔다 보도? 미국에서 남대문까지 기차타고 올수있나요? 이성계부터 조선 본토는 미국.. 1930년대 까지 3개주는 우리말 사용 ㅡ 다음 검색
1:23 --- 지도에서 보이는 월미도는 1920년대말 ~1930년대까지도 모래사장으로 된 해변가가 있었고, 지금의 자유공원이 있는 응봉산에서 내려다보는 월미도의 해변가는 소박하고 지극히 아름다웠는데 응봉산 아래 지금의 신포동 다운타운가에는 한국최초의 서구식 건물과 상점. 식당들이 있어서 당대 내놓으라하는 신문물 리더들은 응봉산 다운타운가로 몰려 들어와 문화와 예술을 논하곤 하였죠. 여기로 들어온 신문물은 서울(경성)의 번화가인 종로로 넘어갔고, 하다못해, 진달래꽃의 시인 김소월은 응봉산 어느 술집에 놀러왔다가 , 야경에 비치는 월미도 해변가를 노래한 시도 지었고. 밤 김소월(金素月) 홀로 잠들기가 참말 외로와요 밤에는 사무치도록 그리워와요 이리도 무던히 아주 얼굴조차 잊힐듯해요. 벌써 해가 지고 어둡는데요 이곳은 인천에 제물포, 이름난 곳 부슬부슬 오는 비에 밤이 더디고 바다바람이 춥기만 합니다. 다만 고요히 누어 들으며 다만 고요히 누어 들으면 하이얗게 밀려드는 봄밀물이 눈앞을 가로막고 흐느낄 뿐이야요.
평생을 인천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 참 귀한 자료를 봤네요.
자유공원에서 뛰어놀고 답동성당에서 결혼하고 송도에서 애들 키우며 살고 있는 사람으로
아직까지 많은 곳이 남아있어 영상의 장소들을 알아 볼 수 있어 그나마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인천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셨군요^^
시청 감사합니다.
현재 인천에 살고있는데 귀한 자료 잘봤읍니다. 답동 성당도 얼마전에 진입로쪽을 공원식으로 새롭게 만들어 쾌적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존스턴 별장이랑 답동성당, 대불호텔 사진까지.. 귀한 사진입니다.
대한민국을 구해준 작전이군요,,고맙습니다😂
인천 연안부두 포장마차에서 아나고회 먹던 생각이 나네요~~이런 귀한 자료들 너무 소중하네요~~
귀한영상
자유와 정의를 위해 피 흘려 싸워주신 모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공산주의 전체주의자들과의 기나긴 전쟁을 우리의 승리로 끝맺음 해야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계라는둥 무시도 당하고 하지만 인천은 대한민국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없어선 안 되는 곳이다. 국토수복 산업화 심지어 1987 민주항쟁의 도화선도 1986 5.3 인천 주안 민주항쟁이었음.
네 맞아요. 아이러니하게도 식민지와 근대화의 모든 것은 인천에서 시작되었죠.
하다못해 서구의 문물은 개항초기만이 아니라 1980년대 말까지도 인천을 통해 들어와 명동과 종로로 넘어갔엇지요.
그리고,
5월 3일 저도 그 자리에 있었어요. 학교는 서울쪽이었지만, 원래 고등학교까지 인천이었던지라.
고등학교 친구들 만나고 있다가 커피숍 아래에 시위대가 지나가길래 내려가 참여를 하였던 기억이...
북침으로 남침 유도한것은 이승만과 미국이다 ㅡ 다음 검색
훈민정음 해례본에
중국은 천자국 조선황제가 계신곳이라고 기록.
1922년 12월 9일
동아일보에
미이져리그 대표단 기차로 남대문 역에 도착 경성에 들어왔다 보도?
미국에서 남대문까지 기차타고 올수있나요?
이성계부터 조선 본토는 미국..
1930년대 까지 3개주는 우리말 사용 ㅡ 다음 검색
0:24 - 와 6:31 --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는 몇몇 건물들이 보이네요.
1:23 --- 지도에서 보이는 월미도는 1920년대말 ~1930년대까지도 모래사장으로 된 해변가가 있었고, 지금의 자유공원이 있는 응봉산에서
내려다보는 월미도의 해변가는 소박하고 지극히 아름다웠는데
응봉산 아래 지금의 신포동 다운타운가에는 한국최초의 서구식 건물과 상점. 식당들이 있어서
당대 내놓으라하는 신문물 리더들은 응봉산 다운타운가로 몰려 들어와 문화와 예술을 논하곤 하였죠.
여기로 들어온 신문물은 서울(경성)의 번화가인 종로로 넘어갔고,
하다못해, 진달래꽃의 시인 김소월은 응봉산 어느 술집에 놀러왔다가 , 야경에 비치는 월미도 해변가를 노래한 시도 지었고.
밤
김소월(金素月)
홀로 잠들기가 참말 외로와요
밤에는 사무치도록 그리워와요
이리도 무던히
아주 얼굴조차 잊힐듯해요.
벌써 해가 지고 어둡는데요
이곳은 인천에 제물포, 이름난 곳
부슬부슬 오는 비에 밤이 더디고
바다바람이 춥기만 합니다.
다만 고요히 누어 들으며
다만 고요히 누어 들으면
하이얗게 밀려드는 봄밀물이
눈앞을 가로막고 흐느낄 뿐이야요.
현재는 2024년
불과 74년전..1950년 인천상륙작전
74년전이면 웬만한 사람에게는 '역사' 아닐까 싶네요^^
아버님도 어딘가 계실텐데 ㅜㅜ
감사합니다
그러고보니 개항장 세곳중 부산만 빼고 전쟁때 전부 초토화됐네요
역사의 순간이구나...맥아더가 아니였다면..지금은 최고존엄 밑에서 수첩을 손에들고..열심 밭아쓰고 초등 여아한테 거수 경례하고 ㅎㅎㅎ..
초등 여아한테 보여주기 위해 펴지지도 않는 낙하산 매고 뛰어내리기
맥아더 ㅋㅋ 맥아더가 뭐 그리 큰일했다고. 그때 싸웠던 진짜군인들 덕이지
@@stern121 부서니 으응파트너 범죄명은 머 한일은 있고??~
@@stern121군인이 아무리 많아도 훌륭한 전략가가 없다면 오합지졸입니다...맥아더가 없었다면 일본 어느구석에 망명정부나 세우고 제주도에 옹기종기 모여 있겠지요,....과소평가하면 안됩니다..
@@stern121 인터넷이라고 많이 까불고 다니네
1빠!!!!!
한미연합군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