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전사기록에 보면 신민양요를 "Little battle" "작은 전투"라고 기록하고 있음. 전쟁도 아니고 반나절만에 끝난 작은 소요(전투)정도로 생각했다는 것임. 마군 전사자 3명도 1명은 이미 배에서부터 병을 얻어 아프던 병사가 마침 전투기간중에 죽은것이고, 1명은 미군 오발사고로 죽은거고, 마지막 1명만이 조선군 시신 수습하는 과정에서 죽은척하던 조선군의 칼에 전사한게 유일한 미군측 피해임. 당시 강화도 수병은 흥선대원군이 엄청 정성들여 육성한 조선의 특전사같은 정예부대였음. 그런 정예부대를 반나절만에 미군포격으로 다 잃은것임. 미군기록에 "저들은(조선군) 죽을줄 알면서도 매우 맹렬하게 우리에게 돌진하여 왔다. 우리에게 돌을 던지고 흙을 던지고, 스스로 목을 베거나 물에 빠져 죽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음. 조선의 너무나 무능하고 미개했던 봉건 관료들 때문에 저들은 개죽음을 당했던것임.
선무당이 사람잡는 다고 대원군은 면제갑옷이라는 방탄조끼를 만들었는데 문제는 방탄은 되는데 불이붙는 다는것이며 만일 면제갑옷에 고백반처리를 했다면 막을수 있었던 문제였으며 임진왜란때 황진이 만들었다는 날틀을 만든다고 새깃털을 모으기도 했는데 날틀.....네 비행기 입니다 대원군은 거의꿈에 살았다는것 같네요.나라에 제정에 풍족함은 교역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쇄국함으로 부국강병을 생각함은 연목구어 나무위에서 물고기를 잡으려 하는것과 같았습니다 즉 대원군때는 국고에 쌀이 있었는데 명성황후때는 사치하느라 국고가 비였다는 매천야록이 얼마나 양반들이 국부에 무지햇는지 알수있으며 사실 그시절 조선에 파견나온 선교사들에 내용을보면 조선은 재정이 넉넉하고 무섭게 발전하고 있으나 귀족들이 무능하다고 하였습니다 즉 발전하면 다스릴 능력이 안되니 나라를 팔아버린 노론 도당에 악의축들인것입니다.
동생 어재순은 민간인으로서, 참전했다기 보다 공적인 명분이나 이유를 찾아볼 수 없는백의종군을 한거죠... 다만 사적으로 형인 어재연 장군이 전사하면 뒷수습을 하기위해 갔다가 함께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어재연장군의 아들들에게 음직을 내려주라는 기록이 있으니 대가 끊겼다는 얘기는 소설.. 아들이 참전하고 전사했다는 얘기는 역사기록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허구입니다.
@@nettorre6610 오래전에 본 거라 기억이 정확치는 않네요 다만 동생에게 대가 끊길것을 염려하여 관여함을 만류했다는 부분은 정확히 기억이 나고요 아들 부분은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 집안의 대가 끊긴걸로 제 기억에는 남아있네요. 안따까운 마음에 적었습니다...ㅜ 정확한 설명 감사합니다
@@Pugandus 경부고속도로는 왜 건설해야 하는지 물으면 안되나? 저당시에 당신이 생각하는 근대화는 뭔 자본으로 한대요? 군인들 봉급도 못줘서 군란이 나는 재정이 바닥인 나라인데 공장도 짓고 도로도 닦고 철도도 부설해야 할텐데 말입니다요 운영과 일은 글도 모르고 셈도 할 줄 모르는 상민이 하려나? 서당다니는 양반이 하려나? 아니면 노비들이 하려나? 진짜 웃기고 자빠지셨습니다.
당시 돌아가신 조상들에 그저 명복을... 미국에 강제 개항 당했다 한들 그나물에 그밥 비슷할겁니다. 어차피 먹힐 판세였지요 당시 조선은~ 누구한테 먹히냐가 문제였지! 지금 그리고 후세에도 계속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지만 역사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아 유감이네요. 제 자녀조차 저 보다 모를 정도니까요 보여주신 자료가 놀랍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신미양요사건이 당시 조선을 변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 변화의 첫시작이 제생각에는 영어공부 열풍인거 같더군요 미국과 통상수역을 하려면 당연히 통역관이 필요했었고 영어를 할줄아는 통역관이 조선에서는 아무도 없었다고 합디다. 그때문에 고종황제가 배제학당을 개설해서 신분에 상관없이 영어교육을 받게 했었다고 하더군요 그후에는 보빙사를 꾸려 미국으로 방문을 시키구요
1882년 갑신정변 실패후, 미국으로 망명했던 서재필이 나중에 갑신정변 실패이유를 단 한마디로 정의했음. " 조선의 미개함" 이게 이유였음. 뭘 해도 수준이하였고 국민의식 자체가 미개했음. 뭘 해도 안되는 거였음. 왕이나 양반 귀족 사대부 지배계층이나, 일반백성이나 그냥 그 자체로 미개했기 때문임. 개혁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준이 아니였음. 초등학생한테 미분적분 가르쳐봤자 소귀에 경읽기 까막눈들이였음. 바깥세상 문명을 보고 이해한 소수의 엘리트로 조선을 바꾸는건 불가능했음.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성공할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이미 일본은 조선보다 최소 300년 앞서서 서양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공부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임. 중화중심 세계관에서 벗어나 있었음 일본은..
미국 영국 일본은 조선왕에게 왕권을 제한하고 입헌군주제로 민주주의 정치를 하라고 권유했지...고종을 쌩까 독재 러시아 짜르 해먹으려고 러시아를 끌어들이다가 러일전쟁이 발생 결국 외교권 회수당하고 IMF쳐 맞고 나라와 백성을 닛본에 팔아넘기지.....학살 같은 개솔 좌익역사관은 쓰레기임.
잘 만드셨네요..하지만 몇가지 바로 잡을게 있는거 같습니다. *로저스 소장은 어느 분이 이미 지적하셨고 *8:10 포격으로 파괴된 초지돈대-- 여기는 돈대가 아니고 초지진입니다. 뒤에 나오는" 초지돈대를 점령한 미군"도 역시 돈대가 아니고 초지진입니다. 다 도망가고 텅텅 비어있는 해안초소(초지돈대)는 거들떠도 안보고 바로 200여 미터 후방에 있던 본진(초지鎭)을 접수한 겁니다. 이 본진의 정문이 바로 뒤에 나오는 초지진 진사 장면이고 앞 사진들은 이 본진 내부에 있는 불랑기포진지의 모습입니다. 초지진이라는 군부대의 정문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등나무가든이라는 음식점이 있습니다. 해안초소에 불과한 초지돈대는 복원이 되어 있고 초지진은 복원이 안되어 있으나 뜬금없이 간판만 세워놨습니다.. *8:50 덕진진 해안에서 경비서는 미군들-- 여기는 덕진진이 아니고 물치도 해변입니다. 내가 강화사람이라서 덕진진이나 덕포진, 손돌묘 일대 지형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물치도에 가면 지금도 저 바위를 볼 수 있습니다. 건너편에 영종도가 보이네요.. *9:44 광성보 안에 전시된 조선시대 대포-- 정확히는 "광성돈대 안"입니다. 광성보는 실체가 없고 존재했던 위치만 있습니다. 강화에는진(鎭)과 보(堡), 외성(外城) 그리고 돈대(墩臺)를 구분 못하는 병이 있거든요.. 참고로 사진에 세 개의 포 中 오른쪽 홍이포는 조선군이 제식무기로 사용한 적이 없는 무기입니다. 병자호란 때 청군이 강화도에 상륙할 때 우리를 공격했던 적군의 무기입니다. *10:55 콜로라도 함상의 帥자기 6월 11일-- 6월11일은 미군상륙 이틀째로 광성보 전투가 벌어지던 날이구요 저 사진은 물치도로 물러나 있던 6월 21일 로저스 제독의 지시로 촬영했다고 틸튼 대위의 서한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자기 사진은, 자료를 다시 보니 깃발 포획한 상황 설명과 로저스 사령관이 사진 찍으라고 했다는 말 사이에 '오늘Today'이 있는데 그걸 (아뿔싸!) 그냥 지나쳤네요🥴 덕진진 해안 사진은, 강화도에서 펴낸 자료집을 따랐는데....물론 그런 자료집에도 오류가 종종 있고, 틀렸다는 걸 제가 확실히 알면 제가 아는 정보로 고치는데, 강화도쪽 지형은 잘 모르니 자료집 설명을 따랐습니다. 그래도 현지분 말씀이 마..맞..맞겠죠😥 대포 전시해놓은 건, 꼭 신미양요 관련이라기보다는 조선시대 이런 화포를 사용했다,라는 의미 같습니다. 그런데 홍이포는 병자호란 이후에 조선에서도 도입했다는데, 아닌가요? 제가 군사니 무기니 이런 쪽은 당최 몰라서👉👈 세세한 코멘트 감사합니다^^
@@koreangeographic3860 홍이포는 1653년(효종4년) 하멜이 타고 오다 난파된 스페르베르호에서 건져낸 오리지널 네델란드제 홍이포 12~16문이 강화도나 남한산성에 보관된 적이 있는데 나중에 다 고철로 썼습니다. 1731년(영조7년)에 훈련도감에서 시제품 2문을 제작한 적이 있는데 그것 뿐입니다. 이후 제식화된 적이 없습니다. 강화군에서 발간한 신미양요 사진집 덕진진 전투편 표제에 물치도 해변 사진을 넣었지요? 그래서 덕진진해변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 잘못된 사진 배치입니다. 그리고 덕진진 전투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군청 차원에서 만드는 자료도 공부하지 않으면 이 모양이 됩니다. 옛날 사진을 고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압니다. 그래서 대한여지도님의 콘텐츠가 소중하고 빛이 난다고 봅니다. 좋은 자료가 많아서 구독 누르고 공부 좀 해야겠습니다. 2024년 새해에도 건승하십시요
@@firelin5896 중국인이 조선 본토가 미국이라고 하나요? 간도협약 무효 시나 신라 지나 차이나는 같은말 ㅡ 다음 검색 훈민정음 해례본에 중국은 천자국 조선황제가 계신곳 기재? 조선 중국 명나라 청나라는 같은나라 우리나라? 칭기스칸 발해왕가의 후손임을 잊지않다 ㅡ 다음 검색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이 만든 지도라고 영상에서 설명했습니다^^ 이 지도를 미군이 구해서 사용한 겁니다. 강화해협이 좁고 길쭉해서 외국인들이 River라고 표기한 듯합니다. 그리고 서울이랑 연결된 물길이라 Seoul River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지도를 보면 얼핏 한강이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물이 섞이는 강과 바다를 무자르듯 구분할 순 없겠지만, '한강' 길이를 재는 기준은 발원지인 태백 검룡소에서 김포 월곶면 유도까지입니다.
군왕이든 관리든 기득권 지키려 경제나 민의는 무시한 결과 외세에 경쟁할 힘을 갖추지 못해 저 지경이 된 것이지요. 자고로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는 사회를 통찰하는 관심과 거시적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내 나라다 하고 쥐어 흔들려 하질 말고 국민 전체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 자세가 없다면 발전도 없겠지요. 지금 대한민국의 부와 권력이 소위 일부에 집중되어 있으니 갈수록 나라가 피폐해지겠지요. 지금부터라도 능력 안 되는 사람들 정치인 나서지 좀 말고 행정 각부처 장관 자리들도 대통령이 자리 주려 한다고 깜 안되면서덥썩 받으려 하지들 좀 말면 좋겠습니다 정치인이나 장관 중 안목이 범인 만도 못한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자리들은 연습이 허용되지 않는 자리 아닌가요. 준비된 자들이 좀 적재적소에 등용되고 당선들 되었음 좋겠습니다
노노~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규)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조약입니다. 조약 1조1항이 " 조선은 자주독립국 이다"를 명시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당시 조선은 청나라의 종속국 이였는데, 종속국 조선이 일본과 이런 조약을 맺어도 종주국 청나라는 찍소리도 못했어요~ 다만 1882년 미국과 조미수호조약을 체결할때, 절치부심하던 청나라 이홍장이가 조약문 전문을 다 써주고 미국과 조선이 수호조약을 맺는데, 청나라가 (조선에 대한) 종주국 자격으로 같이 참석을 하려고 해서, 미국측 대표 슈펠트제독이 엄청 반발을 해서 불발되었어요~~ 당시 조선측 대표 신헌은 청나라 군함에 올라 이홍장이 써준 조약문 전문을 받아들고, 서쪽을 향해(황제가 있는방향) 삼배고두례 청나라식 절을 올리고 조약문을 받았습니다.
미국은 우리를 미개인 취급했는데 우리쪽에선 미국의 압도적인 문명 차이를 끝까지 인정안하고 오랑케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씁쓸하다
반만년 유구하고도 찬란한 역사의 우리 자랑스런 대한민국 화이팅♥
@@josammosa98고작 반만년(5,000 년 미만)??? ㅋㅋㅋ 역사 공부 좀 더 하면 8,000 년!
미군 전사기록에 보면 신민양요를 "Little battle" "작은 전투"라고 기록하고 있음.
전쟁도 아니고 반나절만에 끝난 작은 소요(전투)정도로 생각했다는 것임.
마군 전사자 3명도
1명은 이미 배에서부터 병을 얻어 아프던 병사가 마침 전투기간중에 죽은것이고,
1명은 미군 오발사고로 죽은거고,
마지막 1명만이 조선군 시신 수습하는 과정에서 죽은척하던 조선군의 칼에 전사한게 유일한 미군측 피해임.
당시 강화도 수병은 흥선대원군이 엄청 정성들여 육성한 조선의 특전사같은 정예부대였음.
그런 정예부대를 반나절만에 미군포격으로 다 잃은것임.
미군기록에
"저들은(조선군) 죽을줄 알면서도 매우 맹렬하게 우리에게 돌진하여 왔다. 우리에게 돌을 던지고 흙을 던지고, 스스로 목을 베거나 물에 빠져 죽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음.
조선의 너무나 무능하고 미개했던 봉건 관료들 때문에 저들은 개죽음을 당했던것임.
무능력한 조정때문에 백성들만 죽어나가는구나
임진란 병자호란 미국에서 일어남 ㅡ 다음 검색
미국은 조선땅 증거 메이저리그 대표단 미국 경성 방문 ㅡ 다음 검색
조선이 1883년 멕시코 달러를 발행했다 ㅡ 다음 검색
그 배안에 일본관료가 타고 있었음 그리고 그당시 아시아에서 미국 영국을 상대로 이길수 있는 나라가 있었음?
하는 짓거리보니 지금의 윤석열하고 똑같은데?
저때 당했으면 정신좀 차리지 정신승리하다가 4년뒤 일본배 한척에게 발려서 군인들 또 때죽음...
반만년 유구하고도 찬란한 역사의 우리 자랑스런 대한민국 화이팅♥
정신못차리고 여기저기 돈쓰다가 망함
이런 자료가 있었다니. 놀랍습니다.❤
신미양요를 잊은 사람들은 쉽게 사대주의 숭미주의로 빠지게 됩니다. 이 영상을 계기로 한국 근 현대사를 다시 공부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조선이 1883년 멕시코 달러를 발행했다 ㅡ 다음 검색
@@yong-gilchoi8614동감합니다. 저 사진들과 해설집을 40여 년 전부터 봐왔기에 친미지만 절대 숭미하지는 않습니다.
너무 슬프네요 ~
좋은정보 역사자료 감사합니다.
역사공부 다시해야겠어요 이런자료 너무 좋아요 굿
감사합니다^^
조선이 1883년 멕시코 달러를 발행했다 ㅡ 다음 검색
가짜력사 에 대가리가 찌든 민족은 미래가 없다.
반만년 유구하고도 찬란한 역사의 우리 자랑스런 대한민국 화이팅♥
@@josammosa98 대한민국은 반만년이 아니고 1948년 건국되었음..
정말 좋은 컨텐츠 잘 봤습니다~
선무당이 사람잡는 다고 대원군은 면제갑옷이라는 방탄조끼를 만들었는데 문제는 방탄은 되는데 불이붙는 다는것이며 만일 면제갑옷에 고백반처리를 했다면 막을수 있었던 문제였으며 임진왜란때 황진이 만들었다는 날틀을 만든다고 새깃털을 모으기도 했는데 날틀.....네 비행기 입니다 대원군은 거의꿈에 살았다는것 같네요.나라에 제정에 풍족함은 교역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쇄국함으로 부국강병을 생각함은 연목구어 나무위에서 물고기를 잡으려 하는것과 같았습니다 즉 대원군때는 국고에 쌀이 있었는데 명성황후때는 사치하느라 국고가 비였다는 매천야록이 얼마나 양반들이 국부에 무지햇는지 알수있으며 사실 그시절 조선에 파견나온 선교사들에 내용을보면 조선은 재정이 넉넉하고 무섭게 발전하고 있으나 귀족들이 무능하다고 하였습니다 즉 발전하면 다스릴 능력이 안되니 나라를 팔아버린 노론 도당에 악의축들인것입니다.
지금이나 저때나 정치하는놈들이 무능함.
위정자들에 대한 분노와 함께 이땅을 지키느라 목숨을 바친 선조들 생각에 가슴이 아프네요. 어재연장군은 동생도 전쟁에 나가느라 그 집안 대가 끊겼다는....동생이 전쟁에 나가는 걸 만류했다는데 결국 나가게 되었다네요. 어재연 장군의 아들또한 전쟁에 참여해 전사했다는...
동생 어재순은 민간인으로서, 참전했다기 보다 공적인 명분이나 이유를 찾아볼 수 없는백의종군을 한거죠... 다만 사적으로 형인 어재연 장군이 전사하면 뒷수습을 하기위해 갔다가 함께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어재연장군의 아들들에게 음직을 내려주라는 기록이 있으니 대가 끊겼다는 얘기는 소설.. 아들이 참전하고 전사했다는 얘기는 역사기록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허구입니다.
@@nettorre6610 오래전에 본 거라 기억이 정확치는 않네요 다만 동생에게 대가 끊길것을 염려하여 관여함을 만류했다는 부분은 정확히 기억이 나고요 아들 부분은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 집안의 대가 끊긴걸로 제 기억에는 남아있네요. 안따까운 마음에 적었습니다...ㅜ 정확한 설명 감사합니다
우물안 개구리
쇄국 정책...
임진왜란 이후 멈춰있던 조선,
너무 잘 만드셨어요
사진자료와 함께 설명해주어서 공부도 되고 흥미롭네요.
조작 자료
@@Jeong-eun 근거를 대고
조선이 1883년 멕시코 달러를 발행했다 ㅡ 다음 검색
와우! 진짜 가나타났다😊 역사공부 제대로했습니다.
댓글 달아준 현지인 님 지식도 대단해요 👍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도 가짜가 많음을 느낌니다.
저때 개항을 바로 해서 근대화를 시작해야했는데
뭐 팔거나 있었나?
근대화는 뭐 갖고 한대요?
당시 미국 식민지 내지 영국 식민지들 어떤가 상태보고 얘기해라 서양이 지나간 자리는 착취뿐임 근대화 없어
동양인을 몽키라고 생각하는 놈들에게 뭘 바라노
당신도 똑같은 사람이네요 경부고속도로를 왜건설해야되는지 물어던 인간들 @@홍영식-b9y
그러면 미국식민지배후 51번째 주로 편입 ㅋㅋㅋ
@@Pugandus 경부고속도로는 왜 건설해야 하는지 물으면 안되나?
저당시에 당신이 생각하는 근대화는 뭔 자본으로 한대요? 군인들 봉급도 못줘서 군란이 나는 재정이 바닥인 나라인데
공장도 짓고 도로도 닦고 철도도 부설해야 할텐데 말입니다요
운영과 일은 글도 모르고 셈도 할 줄 모르는 상민이 하려나? 서당다니는 양반이 하려나? 아니면 노비들이 하려나?
진짜 웃기고 자빠지셨습니다.
강화도에 상륙 공격하는 미해병의 모습은 사진이 아니고 종군화가의 그림입니다.
흥선대원군 참 역사에 큰 획을 남겼네요. 쇄국정책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발상인지?
공산주의 발상지 중궤 부러운 흥선 쇄국
지금 북한이랑 똑같음..문잠그고 노예들 세뇌시켜서 자기들만 대대손손 잘먹고 잘살기
저 때 미국과 통상하고 정신 차렸으면, 일제 강점기도 없을 수 도 있었겠지요
후에미국과일본이맺은데쓰라카프트조약맫을때미국은내가필리핀먹을게일본넌조선먹어라라고햇어요그후로일본식민지가됫죠미국은우리를우습게여겻죠😢
@@황현구-w4h 우습게 여길만하긴했음 ㅋㅋ
힘이없어도 더럽게 없었던 조선
더러운조선 어찌 천년전 신라보다 못하냐
우물안의 개구리 하늘은 엽전만 했다
미군이 가져간 어재연 장군 수자기는 지난 2007년에 되돌아왔죠.
그때 개항을해서 신문물 받아들이고 군대를 신식화 했었더라면 한반도는 달라졌을텐데..
미국이 남북전쟁을 막 치룬 군사강대국이었는데 상대가 될 리는 없겠죠.
한가지 드는 의문은 저렇게 일을 벌려 놓고도 협상 안한다니까 얌전히 돌아간 이유가 궁금하네요. 조선에 그렇게까지 관심은 없었던 것일까…
네
관심없었음..그냥 아마존에 사는 미개한 부족중 하나로 생각
소설을 쓰네요
이미 1845년도에 청나라가 열강 14개국에 잡아먹혔어요
뭔 말이 틀린다고 헛소리하는지
열강 14국이 북경을 점려안것이 1846년입니다
조선과 국경이 붙었는데 침략이란 말까지 필요할까요
당시 돌아가신 조상들에 그저 명복을... 미국에 강제 개항 당했다 한들 그나물에 그밥 비슷할겁니다. 어차피 먹힐 판세였지요 당시 조선은~ 누구한테 먹히냐가 문제였지! 지금 그리고 후세에도 계속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지만 역사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아 유감이네요. 제 자녀조차 저 보다 모를 정도니까요 보여주신 자료가 놀랍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물안 개구리였던 조선 저떄 깃발 돌려 달라는건 국제전에 대해도 몰라도 너무 모르고 부끄러운줄 모르는거죠 패전한 놈이 깃발 뻇긴건 부끄러워서 말도 못하는게 당연한 건데 문화재 침탈로 인식하는 사람들 수준은 진자 어이털림
황현 메천야록에 따르면 미해군은 수자기 뿐 아니라 어재연 장군의 목을 베어 가져갔다고 한다.
아마도 적장 수급을 베어 가져가야 승리의 증거도 되고 큰 포상도 나올테니 그런 듯..실제로도 포상을 받았고..
이걸 보고 분개하기 보다 우리 사극이 얼마나 판타지 국뽕인지, 우리가 왜 드리마나 영화로 역사를 배우면 안되는지 좀 깨우치기를…
서로 보완이되는거지요. 무조건 좋거나 나쁜게 있겠소?
영화나 드라마는 작가와 PD의 역사관과 매출!!~ 돈!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신미양요는...그냥 웃긴 단어네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네요.
유럽이 그린 동아시아 지도가 조선이 그린 국도보다도 더 정확하네…
제가 알기로는 이 신미양요 때 찍은 사진들이 우리나라 국내에서 찍힌 최초의 사진들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앞뒤 꽉막힌 조선 관료들 보면 숨이 막힌다. 미국도 대화가 안 되는 벽창호 같은 인간들을 보고 혀를 내두르고 갔을 듯
당시 미국이 청나라처럼 맘먹고 대규모 병력을 끌고 왔으면 조선을 강제개항과 함께 멸망했을지도 모르겠다.
잘 봤습니다..
이 신미양요사건이 당시 조선을 변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 변화의 첫시작이 제생각에는 영어공부 열풍인거 같더군요
미국과 통상수역을 하려면 당연히 통역관이 필요했었고
영어를 할줄아는 통역관이
조선에서는 아무도 없었다고 합디다.
그때문에 고종황제가 배제학당을 개설해서 신분에 상관없이 영어교육을 받게 했었다고 하더군요
그후에는 보빙사를 꾸려 미국으로 방문을 시키구요
350대 3이면 교전비 100:1이 넘네.
전쟁이 아니라 동학전쟁 우금치 전투 같이 그냥 일방적인 학살이었네.
미국 기록에선 그냥 작은 전투라고 표현하죠 ㅋㅋ 우리나라만 역사책으로 배우는 신미양요 ㅋㅋ
@@big_2440그것도 왜곡조작 정신승리 소설로 배움ㅎ
프랑스 미국 둘다 합쳐도 3천명도 안되는데 지다니 역시 장거리 대포와 소총 장전 바로쏘는 신형탄 앞에서는 ㅠㅠㅠ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애라이~~
이때 미국은 남북전쟁 거치면서 무기와 전술이 다른 차원에 도달해 있을 때인데... 노예도 해방시키던 때라, 대화했으면 나중에 일본한테 그 치욕은 안 당했을 건데...그런 걸 알 수 없었던 지배층이 앞에 지옥이 기다리는데 앞만보고 달렸구나...
Good information!!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이 당시 조선이 미국과 국교 맺고 교류 했다면 어떠했을까요
모르긴 해도 그때 보다 좋은 방향으로 풀릴수도 있었겠죠
미국,영국은 좋았고
프랑스는 더러웠을듯
1871년 개항했으면 서방진영편으로 5만이상 육군으로 1.요하 동쪽 일부 2.길림성 3.흑룡강성 4.연해주는 호령했겠지요.
인구 4천만정도로 일본과 국력이 비슷했을듯 합니다.
1882년 갑신정변 실패후, 미국으로 망명했던 서재필이 나중에 갑신정변 실패이유를 단 한마디로 정의했음.
" 조선의 미개함" 이게 이유였음.
뭘 해도 수준이하였고 국민의식 자체가 미개했음. 뭘 해도 안되는 거였음.
왕이나 양반 귀족 사대부 지배계층이나,
일반백성이나 그냥 그 자체로 미개했기 때문임.
개혁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준이 아니였음.
초등학생한테 미분적분 가르쳐봤자 소귀에 경읽기 까막눈들이였음.
바깥세상 문명을 보고 이해한 소수의 엘리트로 조선을 바꾸는건 불가능했음.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성공할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이미 일본은 조선보다 최소 300년 앞서서 서양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공부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임.
중화중심 세계관에서 벗어나 있었음 일본은..
임진란 병자호란 미국에서 일어남 ㅡ 다음 검색
미국은 조선땅 증거 메이저리그 대표단 미국 경성 방문 ㅡ 다음 검색
조선이 1883년 멕시코 달러를 발행했다 ㅡ 다음 검색
미국 영국 일본은 조선왕에게 왕권을 제한하고 입헌군주제로 민주주의 정치를 하라고 권유했지...고종을 쌩까 독재 러시아 짜르 해먹으려고 러시아를 끌어들이다가 러일전쟁이 발생 결국 외교권 회수당하고 IMF쳐 맞고 나라와 백성을 닛본에 팔아넘기지.....학살 같은 개솔 좌익역사관은 쓰레기임.
세계를 흐름을 알고 나라를 개방만 했어도
조선의 패망과 지금의 한반도가 없었을 걸
152년전 일이네요 ...
지도자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 한지 역사가 말을 해주죠..
보는내내 미스터션샤인이 생각났습니다 역사에 대해 너무 무지했던거 같습니다😢 좀더 우리역사에 보편적인 지식이 넓어지길 바라겠습니다
미스터썬? 우리역사? 가짜력사 에 대가리가 찌든 민족은 미래가 없다.
미스터선싸인인지 뭔지는 완전 망상, 공상이야. 코웃음만 연속 나오게 만드는 막장 드라마!!!🙃
@@gilmore7091 더러운 댓글 좀 치워줄래?
@@mvsvhitc 싫어, 씨뱅아!!!🙃
난 당시 동양인이 미국 장교가 된다는 설정 자체가 어이없어서 패스함
요즘은 큰일이다 다들 역사를 드라마로 배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중국을 조선시대 내내 사대한 나라가 멀 할 수가 있었겠음?
그곳에 살던사람도 아닌데 개척하러 와서 어찌 순식간에 지도를 만들어 내서 이름까지 붙였을까요
차라리 저때 개항당하는게 나았을 지도 윤요호 사건 겪느니
저때 죽은 미군은 1명 조선군은 수백명..사망 ㅠㅠ
잘 만드셨네요..하지만 몇가지 바로 잡을게 있는거 같습니다.
*로저스 소장은 어느 분이 이미 지적하셨고
*8:10 포격으로 파괴된 초지돈대-- 여기는 돈대가 아니고 초지진입니다. 뒤에 나오는" 초지돈대를 점령한 미군"도 역시 돈대가 아니고 초지진입니다. 다 도망가고 텅텅 비어있는 해안초소(초지돈대)는 거들떠도 안보고 바로 200여 미터 후방에 있던 본진(초지鎭)을 접수한 겁니다. 이 본진의 정문이 바로 뒤에 나오는 초지진 진사 장면이고 앞 사진들은 이 본진 내부에 있는 불랑기포진지의 모습입니다. 초지진이라는 군부대의 정문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등나무가든이라는 음식점이 있습니다. 해안초소에 불과한 초지돈대는 복원이 되어 있고 초지진은 복원이 안되어 있으나 뜬금없이 간판만 세워놨습니다..
*8:50 덕진진 해안에서 경비서는 미군들-- 여기는 덕진진이 아니고 물치도 해변입니다. 내가 강화사람이라서 덕진진이나 덕포진, 손돌묘 일대 지형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물치도에 가면 지금도 저 바위를 볼 수 있습니다. 건너편에 영종도가 보이네요..
*9:44 광성보 안에 전시된 조선시대 대포-- 정확히는 "광성돈대 안"입니다. 광성보는 실체가 없고 존재했던 위치만 있습니다. 강화에는진(鎭)과 보(堡), 외성(外城) 그리고 돈대(墩臺)를 구분 못하는 병이 있거든요..
참고로 사진에 세 개의 포 中 오른쪽 홍이포는 조선군이 제식무기로 사용한 적이 없는 무기입니다. 병자호란 때 청군이 강화도에 상륙할 때 우리를 공격했던 적군의 무기입니다.
*10:55 콜로라도 함상의 帥자기 6월 11일-- 6월11일은 미군상륙 이틀째로 광성보 전투가 벌어지던 날이구요 저 사진은 물치도로 물러나 있던 6월 21일 로저스 제독의 지시로 촬영했다고 틸튼 대위의 서한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자기 사진은, 자료를 다시 보니 깃발 포획한 상황 설명과 로저스 사령관이 사진 찍으라고 했다는 말 사이에 '오늘Today'이 있는데 그걸 (아뿔싸!) 그냥 지나쳤네요🥴
덕진진 해안 사진은, 강화도에서 펴낸 자료집을 따랐는데....물론 그런 자료집에도 오류가 종종 있고, 틀렸다는 걸 제가 확실히 알면 제가 아는 정보로 고치는데, 강화도쪽 지형은 잘 모르니 자료집 설명을 따랐습니다.
그래도 현지분 말씀이 마..맞..맞겠죠😥
대포 전시해놓은 건, 꼭 신미양요 관련이라기보다는 조선시대 이런 화포를 사용했다,라는 의미 같습니다.
그런데 홍이포는 병자호란 이후에 조선에서도 도입했다는데, 아닌가요?
제가 군사니 무기니 이런 쪽은 당최 몰라서👉👈
세세한 코멘트 감사합니다^^
@@koreangeographic3860 홍이포는 1653년(효종4년) 하멜이 타고 오다 난파된 스페르베르호에서 건져낸 오리지널 네델란드제 홍이포 12~16문이 강화도나 남한산성에 보관된 적이 있는데 나중에 다 고철로 썼습니다. 1731년(영조7년)에 훈련도감에서 시제품 2문을 제작한 적이 있는데 그것 뿐입니다. 이후 제식화된 적이 없습니다.
강화군에서 발간한 신미양요 사진집 덕진진 전투편 표제에 물치도 해변 사진을 넣었지요? 그래서 덕진진해변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 잘못된 사진 배치입니다. 그리고 덕진진 전투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군청 차원에서 만드는 자료도 공부하지 않으면 이 모양이 됩니다.
옛날 사진을 고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압니다. 그래서 대한여지도님의 콘텐츠가 소중하고 빛이 난다고 봅니다. 좋은 자료가 많아서 구독 누르고 공부 좀 해야겠습니다. 2024년 새해에도 건승하십시요
@@nettorre6610 아, 그렇군요.
군청 자료뿐 아니라 국가기록원 자료도 찾다보면 잘못 올라온(무성의하게 대충 올렸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네요) 게 꽤 보이긴 합니다ㅜㅜ
자세한 설명👍👍👍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당시엔 어쩔수 없는 선택이다 약육강식의 식민지 쟁탈 시기에 아무대책없이 개항 했어도 마친가지 결과다 그냥 역사의 흐름이 그런것을 어쩌겠어 .. 나라를 지키시다가 순국한 저 병인년의 조상님들 감사합니다 꾸벅
8:18 사진 가운데 보면 면제배갑 입고 전사한 조선군이 있네요
병인양요를 겪고나서 개량한 갑옷이라고 하죠.
이 면제배갑이 처음으로 실전투입된 게 신미양요였는데, 방탄 기능은 꽤 좋았다고 합니다.
@@koreangeographic3860
한지를 여러겹 겹쳐서 말린거라 방탄기능은 어느정도 있었을지 모르겠는데,
미군 포격에 불이붙어서 병사들이 타죽었다죠~~
오히려 안입는만 못했다는 말도 있더군요~~
조선이 1883년 멕시코 달러를 발행했다 ㅡ 다음 검색
@@정신교육대중국인이세요?
@@firelin5896
중국인이 조선 본토가 미국이라고 하나요?
간도협약 무효 시나 신라 지나 차이나는 같은말 ㅡ 다음 검색
훈민정음 해례본에 중국은 천자국 조선황제가 계신곳 기재?
조선 중국 명나라 청나라는 같은나라 우리나라?
칭기스칸 발해왕가의 후손임을 잊지않다 ㅡ 다음 검색
3:33 에 나오는 지도는 무슨지도인가요? THE SEOUL RIVER라고 되어있네요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이 만든 지도라고 영상에서 설명했습니다^^
이 지도를 미군이 구해서 사용한 겁니다.
강화해협이 좁고 길쭉해서 외국인들이 River라고 표기한 듯합니다.
그리고 서울이랑 연결된 물길이라 Seoul River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지도를 보면 얼핏 한강이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물이 섞이는 강과 바다를 무자르듯 구분할 순 없겠지만,
'한강' 길이를 재는 기준은 발원지인 태백 검룡소에서 김포 월곶면 유도까지입니다.
이게 사진이 남아있다니..
1:00 지도에 일본해 킹받네 진짜 ㅋㅋㅋㅋㅋㅋ 사진자료 다른걸로 못바꿉니까?
차라리 저때 통상하면서 조건으로 당시 미군을 지금의 주한미군처럼 조선에 상시 배치할것 이라는 것을 내걸었으면 청나라 따위 우습게 무시가능했을듯
이때 개항이 되어 버렸어야 하는데 안타 깝네요
01:01 쯤에 지도에 동해가 Japan Sea ??? 그리고 독도는 Liancourt 라고 되어있습니다.
저 때 근대화 추진했어도 결국 서구나 일본에 먹혔을 운명 지정학 숙명론을 이해하면 어떻게 하든 조선반도는 열강들에게 먹힐수 밖에 없는 운명이고 앞으로도 반복될것
전혀 불쌍하지않은 한심한 구한말 조선..
일본보다 늦더라도 신미양요때 문호를 개방하고선진기술을 전수받고 발전시켯더라면 나라 뺏기는 불행은 없엇을것을 ㅠㅠ
평시 무장하지 안으면 당할수있는 일 // 미국 수정헌법에 있는 무장할 권리
한민족과 미국이 싸운 유일한..
나라를 개방하면 왕족의 계승이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쇄국정치 때문에 고구려의 옛땅 회복을 못했다.
누구잘못?
저때는. 미국을. 상대로. 맞다이. 깟다는. 😅
무기차이가 너무 난것도 있고 미군은 겟뻘에 포를 끌고 상육하는 장난아닌 짓까지 했음
무기도 없어
훈련도 없어
군기도 없어
노무자만 못해
붙었다하먼 전원몰살
조선 망했다.당근
망할놈의 조선
군대도 있으나 마나
비참하다.꼴 좋다
차라리 신미양요 이후 미국과 먼저 수교를 맺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물론 역사에서 만약이란 없지만
신미양요의 우리 조선군 분투하는 군인정신❤❤❤
사진배경은 한반도 서해안 강화도주변이 아니고 현재 미국 지역입니다
국방을 소홀히 하면 겪게되는 사건임..........................하루에 저리 빼았기는............조선
군왕이든 관리든 기득권 지키려 경제나 민의는 무시한 결과 외세에 경쟁할 힘을 갖추지 못해 저 지경이 된 것이지요. 자고로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는 사회를 통찰하는 관심과 거시적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내 나라다 하고 쥐어 흔들려 하질 말고 국민 전체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 자세가 없다면 발전도 없겠지요. 지금 대한민국의 부와 권력이 소위 일부에 집중되어 있으니 갈수록 나라가 피폐해지겠지요. 지금부터라도 능력 안 되는 사람들 정치인 나서지 좀 말고 행정 각부처 장관 자리들도 대통령이 자리 주려 한다고 깜 안되면서덥썩 받으려 하지들 좀 말면 좋겠습니다 정치인이나 장관 중 안목이 범인 만도 못한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자리들은 연습이 허용되지 않는 자리 아닌가요. 준비된 자들이 좀 적재적소에 등용되고 당선들 되었음 좋겠습니다
흥선대원군이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못본거지
수자기 불태워 없애라. 저거 뭐 좋다고 저래 크게 전시해 놓노?
아하!
이래서 정치가 중요한 것이다... 봉건주의, 왕정주의, 대를 잇는 쓰레기같은 정치가 대부분의 양민을 학살시켰고, 나라의 발전또한 저해 시켰기에 진정한 역적이다.
학창시절에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로 서양을 격퇴했다고 배웠으나, 화력의 압도적차이로 사상자가 거의 100대1 수준인데 격퇴했다는건 정신승리다. 그냥 별볼일없는 아프가니스탄수준 나라라서 흥미를 잃고 떠나간게 맞을것.
저건 미국 개항시킬려고 온게 아니구 우리나라에서 하도 개방안하고 개기니까 멀 먹을게 그리 많나 찔러본겁니다 찔러보니 발끈하니 거기에 진짜 머가 있구나 하고 일으킨 전쟁도 아닌 침락이죠
사진만 나온게 아닌데...
어재연 장수는 저 당시에 사령관이라고 참수 되었다고 함.....(미군은 인디언 수장들도 경고목적으로 참수했음)😢
💚💚💚
반갑고 감사합니다
사진에 해설이 잘못된곳이있네요 예)물치도에서 영종도를 보고있는것을 강화로 로제스제독을 소령으로...
로저스 소령은 소장인데 실수를 했군요^^
그리고 물치도에서 영종도 보는 사진은, 마주보이는 곳이 영종도가 아닌 강화도라는 말씀인가요?
영종도입니다 저도 강화인줄알았는데 1년전 교육중에 알게되었고 멀리큰 나무가 2그루가 보이는데 아직남아있어요
조선이 1883년 멕시코 달러를 발행했다 ㅡ 다음 검색
맘대로 네임드하는거 구엽네
저때 미국과 잘 했더라면, 한국이 강대국이 되었을텐데.... 그때나 지금이나... 조선인이나 한국인이나. 진취적인 기상이나 호연지기가 전혀 없는 멍청한 욕심쟁이들이 정치를 해서 기회를 날리고 고통을 자초하죠.
역사자료 레퍼런스
돌로 대나무로
몰살이다.
그때 일본처럼 미국에 져서 미국에 의해 개방됐으면 일본애들이 깝짝대고 조선을 먹어버리지 못했을텐데...아쉬운 사건
반만년 유구하고도 찬란한 역사의 우리 자랑스런 대한민국 화이팅♥
어제의 적이 오늘은 주인이 되었고
오늘의 주인이 내일은 노예가 되리니~
저때도 멍청한 한 사람때문에
그꼬라지 나서 결국 역사속으로 영원히 사라진거지 ㅉ ㅉ
지금 정치인판이나 저때나 똑같은건 사실
만약에 우리의 선조들이 일본보다 먼저 개방을 하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였다면 일제식민지 한반도분단 한국전쟁은 없었을것이다.
뭘로?
뭔 발달한 산업이 있나? 식량이 넉넉한가?
개방만 하면 외국이 자동으로 발전시켜 주는 줄 아는 모양이네
일본은 임진왜란 때 그 막대한 전비를 어떻게 마련했겠습니까?
걔들은 그 이전부터 선진국이었어요
세상물정보는건 구한말 때와 바뀌는게 없네
공짜는 없다요~받아들이는게 있다면 당시 초선진국인 미국,영국,프랑스 등등은 훨씬 더 많은 걸 요구했지. 근데 안 받아들이고 닫는 것도 하이 리스크… 결국 교훈은 힘의 논리에서 압도적으로 위에 있는 국가여야만 함
그럼 미국의 식민지가 됐겠지. 필리핀보다 못한 대접 받으며
일본만큼 돈도 없고 저당시 조선인들 위생개념도 없었는데??? 조선인망상 보소
에도시대 일본 gdp가 이미 탑급에 들어가 있었슴
먼저 개방 한다 해도 뭐가 달라졌겠스
교과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
그걸 진짜라고 믿으면
패권의 역사만 보일뿐
양반들 때문에 천민백성들이 죽었다 지금의 저출산 문제이다
지금도 별차이가 없다.
낙후된 무기에 집 지키는 개취급 받는 군인들.. 미해병 3명 사상. 조선군 전멸.
나라 왕이 무능하니 국민만 죽어나가는구나.
저때 근대화 찬스였음
군대도 없고
무기도 없고
망해도 싸다.싸
누가 진짜 오랑캐지?
워메 임진왜란때 활약하던 수군은 어대로간겨?
판옥선과함께 수장된겨? 한산 노량 명량은 걍 소설였나보네 이
저때도 쥐뿔도 없으면서 무슨 배짱
우린선비사상이 문제
조선인나라는 몇몇 소수 왕들 제외하고 왕들이 문제
강화도 조약은 중국황제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것임...운요호사건 따위로 개항할 조선이 아님...중국(상국)의 명령을 받들어 모신 것 뿐임.
노노~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규)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조약입니다.
조약 1조1항이 " 조선은 자주독립국 이다"를 명시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당시 조선은 청나라의 종속국 이였는데, 종속국 조선이 일본과 이런 조약을 맺어도 종주국 청나라는 찍소리도 못했어요~
다만 1882년 미국과 조미수호조약을 체결할때, 절치부심하던 청나라 이홍장이가 조약문 전문을 다 써주고 미국과 조선이 수호조약을 맺는데, 청나라가 (조선에 대한) 종주국 자격으로 같이 참석을 하려고 해서, 미국측 대표 슈펠트제독이 엄청 반발을 해서 불발되었어요~~
당시 조선측 대표 신헌은 청나라 군함에 올라 이홍장이 써준 조약문 전문을 받아들고, 서쪽을 향해(황제가 있는방향) 삼배고두례 청나라식 절을 올리고 조약문을 받았습니다.
조선이 1883년 멕시코 달러를 발행했다 ㅡ 다음 검색
@@정신교육대 다음은 중꿔인들이 장악하고 있음...너 중꿔인???
@@HotSoil510
넌 반찬 한가지만 먹나?
간도협약 무효 시나 신라 지나 차이나는 같은말 ㅡ 다음 검색
@@HotSoil510
조선왕조실록 원본의 실체 ㅡ 다음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