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반응│참 보기 힘든 대만 언론들의 역대급 한국 칭찬 릴레이│한국이 대만내 일본 흔적 지우고있다│아시아를 넘어 세계정복 중인 한국문화의 힘│중국어로[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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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30 лис 2021
  • 대만에서 일본문화는 자국문화보다 더 강한 힘을 갖고 있으며
    대만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성장과정에서 일본애니, 일본게임, 일드, J-POP을 즐기고 거리낌 없이 받아들입니다.
    ​​
    하지만 대만에서일본이 누렸던 이러한 영광은 이제 과거의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18일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은 권역별 한국 연상 이미지를 통해
    2015년 한국에 대한 이미지에 북한과 한국전쟁이 상위권을 기록한 반면
    2020년에는 이러한 이미지는 5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대신 K-POP이 1위, 그리고 한식과 IT제품이 각각 2,3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만에서도 지난 10월 진행된 한 설문조사에서
    대만의 젊은층 90% 이상이 한국의 대중문화를 즐기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대만내 이러한 분위기가 몇 년 동안 지속되자 대만 언론들도
    이제 일본문화의 시대는 저물고 한국의 대중문화가 아시아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소식들을 올해 하반기부터계속 전하고 있습니다.
    ​​
    #대만반응 #한국문화 #일본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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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ЕНТАРІ • 1,2 тис.

  • @SKHong-sk7hong
    @SKHong-sk7hong 2 роки тому +256

    대만 따위의 칭찬 반갑지 않음...."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의도가 있는 립서비스 일뿐
    언제 등에 칼 찌를지 모름
    중국 대만 일본 베트남은 믿는 게 아님

  • @user-ko3eu8mb6d
    @user-ko3eu8mb6d 2 роки тому +747

    대만의 30대 이상은 한국을 싫어하지만 미만은 한국을 좋아한다는 말을 한 대만연예인도 있죠. 그런데 이건 아셔야 합니다. 대만 선거철이 되면 한국을 잘까야 당선된다는걸.

    • @user-oh1rq8bx3r
      @user-oh1rq8bx3r 2 роки тому +122

      일본+중국인이죠

    • @chongranleekim8042
      @chongranleekim8042 2 роки тому +31

      오래가지 못할껄요.

    • @sunflower4812
      @sunflower4812 2 роки тому +23

      지금의 십대들이 주류인 시대가 되면 좀 나아지겠죠.

    • @cool-s9t
      @cool-s9t 2 роки тому +14

      @김찬우 왜케 ㅂㄷㅂㄷ거리누..

    • @user-vj1mm2bb4h
      @user-vj1mm2bb4h 2 роки тому +30

      @@user-oh1rq8bx3r 맞는말같아요~ 대만가서느낀건
      좀 못사는 일본?

  • @cleango3824
    @cleango3824 2 роки тому +78

    대만 저러는거야 뭐 중국이랑 지금 간당간당 하니까 아군 만들려고 저러는거지 혐한이 정책인 나라인데 호감 가질 필요는 없음

    • @moclykim8220
      @moclykim8220 2 роки тому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user-rx7ym3ns9z
      @user-rx7ym3ns9z 2 роки тому

      맞습니다 다만 꼭 호감은 아니라도 똑같이 혐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만 젊은 사람들도 정치적인건 알건알겠죠 거긴 일본이 아니니까요.

  • @user-do1tu7uy7q
    @user-do1tu7uy7q 2 роки тому +218

    사람의 본성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본성을 숨길뿐이지

    • @KangMinA4127
      @KangMinA4127 2 роки тому +3

      정답 ~ 대만은 아직도 일본을 좋아해요 ㅋ

  • @user-je7cl6zu6k
    @user-je7cl6zu6k 2 роки тому +67

    의미 없다
    관심꺼라
    우리가 좀 틈을 보이면 기어오르며 혐한 하겠지

    • @moclykim8220
      @moclykim8220 2 роки тому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user-rx7ym3ns9z
      @user-rx7ym3ns9z 2 роки тому

      그렇죠 상대가 미워한다고 우리도 미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도 감정적으로 대하기보단 실리를 추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user-rtsd655
    @user-rtsd655 2 роки тому +139

    대만댓글보니까 노예근성이 어마어마 하네 식민지한 국가를 아무리 발전시켜줬다해도 저건 그냥 뼈속까지 노예근성임

    • @moclykim8220
      @moclykim8220 2 роки тому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user-cx6nu9ju5t
      @user-cx6nu9ju5t 2 роки тому +2

      @@moclykim8220 낭자군이나 마비키,란보도리가 뭔진 알음?

  • @teetee4368
    @teetee4368 2 роки тому +598

    대만이 우리가 별볼일 없을때 수십년동안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나라 혐오하고 조롱하며 일본과 앞장서 혐한한 나라라는 걸 잊지말아야함. 우리는 철저하게 국익에 맞게 저들과 교류하고 절대 국익이 없으면 단 하나도 도와주면 안됨.

    • @user-ie4sc9jr9v
      @user-ie4sc9jr9v 2 роки тому +41

      맞음..중.일.베.대 절대 믿으면 안되는 족속들

    • @user-nr3fl7iu6q
      @user-nr3fl7iu6q 2 роки тому +6

      믿고 안믿고의 시대는 지낫다 살아 남느냐 뒤 쳐지느냐 그게 문제이지

    • @CHAEDONGYOUN
      @CHAEDONGYOUN 2 роки тому +7

      역사를 알면....우리가 아무 잘못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 @user-xm7sj1gq9c
      @user-xm7sj1gq9c 2 роки тому +18

      @@CHAEDONGYOUN 어떤 역사요?

    • @user-ho7jg8lm1l
      @user-ho7jg8lm1l 2 роки тому +12

      그렇죠 대만도 중국인데 다를리가 없죠

  • @user-hs2rf8vl4d
    @user-hs2rf8vl4d 2 роки тому +115

    다른건 몰라도 중,일,대만,배트남은 버려.. 호구처럼 또 당하지말고.. 우린 우리가 할일하면 되는겨~~ 좋으면 잘 보고 듣는거니까..

    • @user-rb5rl8ub3e
      @user-rb5rl8ub3e 2 роки тому +4

      100프로 동의...

    • @moclykim8220
      @moclykim8220 2 роки тому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user-rx7ym3ns9z
      @user-rx7ym3ns9z 2 роки тому

      버리고 자시고가 없음 지금 시대는 나라의 국경이 사라지는 시대임 혐오를 퍼트리기보단 서로를 이해하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중점을 두는 시대지
      한국이 뒤늦게 여러나라들의 지지를 받는 이유는 빠른 성장과 문화 뿐만이 아니라 한국이 용서하고자 했기 때문임

    • @youngchae7468
      @youngchae7468 2 роки тому

      밖에서 외교관이 열심히 관계회복에 힘쓰느데 안방에 앉아 그냥댓글로 문지러 버리는 놈들.언제가 우리에게 무기를 팔수있는 나라들이다 홀대 하지말고 맏형처럼 감싸안아야 우리가 동남아 맏형이돼지.

    • @mail7936
      @mail7936 2 роки тому

      인도네시아도 추가

  • @randy14041
    @randy14041 2 роки тому +195

    대만 흣..머지않아 또 한국 욕하기로 바뀔것..중국인의 국민성은 바뀌지 않는다...

  • @user-px8gt1bb4i
    @user-px8gt1bb4i 2 роки тому +217

    대만은 항상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대만 & 중국 전쟁 전선에 우리를 끌어 들리려 한다..
    거리를 항상 두어야 한다...제 2의 일본이다.

    • @lky8802
      @lky8802 2 роки тому +5

      그렇지도 않음 대만해협은 우리 수출입물량 통행로임 여기 막히면 우리도 결국 중국 북한에게 굴종해야될지도 몰름

    • @linemaster6090
      @linemaster6090 2 роки тому +4

      대만은 나중에 본토수복하면 청나라 영토 명분으로 반드시 한반도 노릴겁니다. 백두산도 인정 안한게 대만

    • @lky8802
      @lky8802 2 роки тому +4

      @@linemaster6090 대만이 본토수복??웃고갑니다 오히려 중국공산당이 한반도 침략할 확률이 더 높내요 그래도 대만은 자유민주국가라 선빵때리는국가는 아닙니다 항상 문제는 권위주의 또는 공산당체제의 국가가 일으켜왔죠...

    • @user-ie4sc9jr9v
      @user-ie4sc9jr9v 2 роки тому +2

      중.일.베.대 절대 믿지마라

    • @user-ie4sc9jr9v
      @user-ie4sc9jr9v 2 роки тому

      @@linemaster6090 주

  • @user-od8cc8qq5y
    @user-od8cc8qq5y 2 роки тому +408

    그전까지 한국 깔때는 언제고 뭔가 아쉬울때만 칭찬 릴레이 혐한 세력도 전쟁 위기감을 느꼈나ㅎ
    대만을 믿으면 안되고 중국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는게 좋타고 본다.

    • @hblood78
      @hblood78 2 роки тому +36

      섬이나 대륙이나 똑같은 ㅉㄲ. 특히 섬은 친일하는 ㅉㄲ.

    • @CHAEDONGYOUN
      @CHAEDONGYOUN 2 роки тому +5

      역사를 알아야...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독립을 보장받아준 정부는 대만의 국민당정부, 장개석이가 했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시 미국 다음으로 국가로써 인정하고 외교를 맺은 나라는 중화민국, 즉 대만이죠.
      한국이 경제발전 할 때 미국 다음으로 무상차관을 해 준 나라 대만..
      90년대 대만 정부는 외교관계를 끊더라도 최소한 알려달라고 했는데, 노태우 정부는 당일 통보, 당일에 대사를 추방했죠.
      대만입장에서는 최악의 외교 단절 사례였죠.
      그래서 50대 이상 대만 사람들은 한국을 매우 싫어했죠.

    • @CHAEDONGYOUN
      @CHAEDONGYOUN 2 роки тому +2

      물론 지금은 대부분의 대만 사람들이 한국에 호의적입니다...ㅎㅎ

    • @CHAEDONGYOUN
      @CHAEDONGYOUN 2 роки тому +2

      @@hblood78 대만이 친일하는 이유 역시...역사를 아시면 이해가 될거에요..ㅎㅎㅎ 대만 섬은 청나라때 부터 수탈의 대상이었을 뿐 도로, 공공시설 등 개발은 하나도 안했죠. 일제 식민치하에서는 비록 일본이 수탈을 위해서라지만, 도로, 철도, 학교 등 기본 공공시설을 다 만들어줬어요.
      이후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대만을 통치할 때는 본토에서 따라온 소수의 사람들과 원래 살던 대만 사람들을 차별했죠. 다수의 대만 사람들 입장에서는 차라리 일제시대때가 나았다는 의식이 자리 잡혔죠. 228이라는 사건도 있었고요.
      그래서....민주세력이라는 현 대만의 정부(민진당)는 친일 색체가 강하죠. 독재를 했던 국민당 정부는 또 결이 좀 달라요. ㅎ

    • @user-ho7jg8lm1l
      @user-ho7jg8lm1l 2 роки тому +4

      중국침공 직전이니 지들편을 만드려는 속셈 아닐까요..

  • @horizon8392
    @horizon8392 2 роки тому +50

    대만이나 일본이나~ 평소 혐한하면서 필요하면 찾고 존나 뻔뻔해 ㅎ

  • @CocoPhamHannie
    @CocoPhamHannie 2 роки тому +79

    우리가 타이완 넘바완 해줄때도 대만은 태극기 불태우고 존나 한혐이 일본보다 심했었음 ㅋㅋ 최근 몇년 사이에 갑자기 확 바뀐 거 같네.. 싫어하던 이유도 우리가 지네랑 수고 끊어서라는데 중국이 자기네랑 수교하려면 대만이랑 손 끊어라해서 미국 일본 등등 다른 나라 다 수고 단절하고 우리가 거의 맨 마지막에 했는데도 우리한테만 ㅈㄹ..했었지.... 만만하기도하고 지네랑 비슷한 정도의 경제력이었는데 높아지니까 자격지심 이런 거도 작용했을 거고..ㅋㅋ
    요즘에야 저러는 거 반갑긴 하다만 우리만 존나 싫어하던 거 생각하면 빡치기도 하고 ㅋㅋ

    • @user-rx7ym3ns9z
      @user-rx7ym3ns9z 2 роки тому

      솔직히 타이완넘버완도 핵쓰는 중국유저들을 놀리기 위해서였지 대만을 칭찬하기위해서 그런건 아니었죠.
      제 생각엔 대만이 우릴 미워한다고 똑같이 대만을 미워할 필요는 없다고봅니다.
      우리도 우리의 허물이 있듯이 그들도 그들의 허물이 있는거죠 결국은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친하게 지낸다면 이젠 경쟁상대가 아니라 친구가 되겠죠.

    • @user-vs1uq5ll8m
      @user-vs1uq5ll8m 2 роки тому

      뭐 그당시엔 만만했죠. 이제와 상황파악 하는거고

  • @se21kim
    @se21kim 2 роки тому +24

    맨날 원수보듯 욕하다가..갑작스레 칭찬한다고 뭐..맨날 욕먹든 사람이 감동할까요?
    그냥 어리둥절한 마음에 어디까지 하는지 지켜보자는 마음으로 쳐다보겠지요..

  • @exellent4986
    @exellent4986 2 роки тому +17

    일제가 한국에 인프라를 깔았다고 해도 수탈이 목적이며 6. 25 전쟁으로 인해 거의 다 파괴 됐죠.

  • @camilus_kim
    @camilus_kim 2 роки тому +173

    대만 코로나 전에 자주 갔었는데 젊은 사람들 얘기고 40대 이상은 완전히 달라요.
    젊은 친구들이야 같은 젊은 친구들만 만나니 못 느끼겠지만 나같이 나이 있는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만 만나니 변화가 전혀 안 느껴집니다.
    대만 사람들과 불쾌한 일화가 한두 개가 아님. 일본 사람은 그래도 다테마에 때문에 불쾌할 일은 없는데 대만은 전혀 다르죠.

    • @NellKune
      @NellKune 2 роки тому +3

      그 불편한 일이 무엇이였는지 여쩌봐도 되나요?

    • @user-zu1mv1lw8x
      @user-zu1mv1lw8x 2 роки тому +1

      @@NellKune
      1992년 대만단교, 중국수교
      전 40대인데 당시 대만이 한국에 많이 섭섭해했었고 대사관에서 대만국기가 내려올때 대만인, 대만화교들이 그 앞에서 서럽게 울었었고 당시 대만현지방송은 그걸 하루 종일 방송했었죠.
      당시 대만수교국이 거의 3세계 국가이고 쓸만한 나라가 한국이였는데 나이가 있는 대만분들은 그 느낌이 있어서 일겁니다.

    • @user-in8xc2oj7l
      @user-in8xc2oj7l 2 роки тому +50

      @@user-zu1mv1lw8x 그건 대만의 비겁한 변명이죠. 88올림픽보다 훨씬 전부터 한국 폄하해왔는데 그저 열등감 때문에 저리 비틀려있는거임.

    • @le6356
      @le6356 2 роки тому +13

      @@user-zu1mv1lw8x 근데 입장바꿔도 똑같은 처지가 될텐데 그렇게 한국을 이해못해주나;;...

    • @maiyo07kewpie23
      @maiyo07kewpie23 2 роки тому +11

      그러니까요 젊은 사람들은 아무리 얘기해도 말이안통하더라고 한국이 엄청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더라구요 대만에 혐한은 다른 레벨, 완전 대놓고함 일본이랑 틀리게 얼굴에대고, 기분 나쁘게 완전 무시함

  • @user-pc8ze6ps4l
    @user-pc8ze6ps4l 2 роки тому +40

    혐한의 나라 하던데로 해라 ..간사하긴

    • @asdfghjklking2857
      @asdfghjklking2857 2 роки тому

      나라도 아님요ㅋㅋ국제사회에서 지위는 북한만도 못함

  • @JDKIM-cg5ox
    @JDKIM-cg5ox 2 роки тому +109

    암만그래도 대만니들이 과거에 한짓안잊어 한나라의 장관이 한국인칼로 찌르싶다고 인터뷰하는수준이니...
    우리한테 관심표하지마라

    • @mika1469
      @mika1469 2 роки тому +7

      단세포인것까지 일본어들 따라하는 수준.

    • @user-rx7ym3ns9z
      @user-rx7ym3ns9z 2 роки тому

      솔직하게 기분은 나쁘지만 저건 저들의 허물이죠.
      반대로 친해지고나면 저칼이 우리의 적을 향할 수도 있는거구요.
      우리도 우릴 미워한다고 항상 감정적으로 모든 나라들을 대하기보단 서로간에 오해가 있다면 풀고 잘잘못을 용서하는게 한국의 국익을 위해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이로운길이 아닐까 합니다.
      전세계에서 이제서야 뒤늦게라도 한국을 지지해주는건 한국의 경제성장도 문화의 힘도 있지만 한국이 결국은 용서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 @user-oh1rq8bx3r
    @user-oh1rq8bx3r 2 роки тому +183

    얼마전까지만해도 혐한하던 제2의 일본인 대만이 아쉬운게 있거나 세계이목이 우리에게 향하고 칭찬과 시선이 달라지니 저리 나오는거죠

    • @user-ie4sc9jr9v
      @user-ie4sc9jr9v 2 роки тому +4

      중.일.베.대 절대 믿어선 안 됨

    • @le6356
      @le6356 2 роки тому +1

      @@user-ie4sc9jr9v 어짜피 대만도 똑같은 중국인인데 중,일,베로 하죠

    • @moclykim8220
      @moclykim8220 2 роки тому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askseeknknock
      @askseeknknock 2 роки тому +1

      맞아요 절대 공감
      미국과 유럽같은, 자기들은 꿈도 못꾸는 나라에서 문화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니 분하지만 마지 못해 인정하는 그런 느낌ㅋ

  • @user-jc7pq9qn2p
    @user-jc7pq9qn2p 2 роки тому +51

    그냥 살던대로 살아
    니들이 중국인이든 일본인이든 혐한에 가담한 과거는 지워지지 않으니까...
    한국 드라마 몇편보고 음악 좀 듣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냐

    • @user-rx7ym3ns9z
      @user-rx7ym3ns9z 2 роки тому

      저는 과거엔 서로에 대한 무지에서 감정이 생겨났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문화가 성장하면서 한국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여러나라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혐오는 서로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생기게 하겠지요.
      우리가 진짜 한국을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도 용서의 마음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user-ox2ti9uy7x
    @user-ox2ti9uy7x 2 роки тому +83

    에전엔 글케 일본밑에 달라붙어서 이유없이 울나라 까고 일본 찬양하더니 한류가 세계적으로 뜨니 요즘 울나라에 달라붙어서 한국찬양하던데 ..그 유명한 대만 한류까기 연예인들도 갑자기 돌변해서 한류 칭찬하던데 .. 이래서 대만 더 찌질해보임

    • @user-ie4sc9jr9v
      @user-ie4sc9jr9v 2 роки тому +4

      절대 중.일.베.대 믿으면 큰 일 난다

    • @askseeknknock
      @askseeknknock 2 роки тому +2

      특히 그 주걸륜이라는 놈 ^^

    • @user-rx7ym3ns9z
      @user-rx7ym3ns9z 2 роки тому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나라 또한 마찬가지겠죠.
      사람들은 안바뀐다고 하지만 전세계는 계속해서 변해왔고 결국 한국도 성장의 기회가 오게된거구요.
      우리도 감정적으론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는것에 기분이 상할 순 있으나 앞으로 인생을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 우리 한국을 위해 서로간의 오해를 풀고
      이제는 용서합시다 우리

  • @ayrtonsenna2184
    @ayrtonsenna2184 2 роки тому +25

    대만 그냥 일본 좋아해. 질척대지마. 하던대로 그냥 일본 애니나 주구장창 좋아해.
    동남아 에휴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우리는 간신배들을 제일 싫어해.
    이번 사태에 우리 끌어들이지마. 너희가 좋아하는 미국과 일본하고 알아서 해.

    • @user-rx7ym3ns9z
      @user-rx7ym3ns9z 2 роки тому +1

      대만이 일본을 좋아한다고 우리의 적일 필요는 없죠ㅋ
      우리도 감정적으로 보기보단 오해가 있다면 풀고 서로 수용할건 수용하는게 한국에 국익에 있어서 훨씬 이로운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 @user-tc7gr9sg8w
    @user-tc7gr9sg8w 2 роки тому +96

    한국이 잘나갈수록 일본의 열등감은 높아지고 험한이 드세어지는데 그게 오히려 부메랑이되어 일본을 칠것이다...

    • @KangMinA4127
      @KangMinA4127 2 роки тому +6

      @@user-rj4hc6qi7c 정답

    • @le6356
      @le6356 2 роки тому +5

      @@user-rj4hc6qi7c 이게 현실적인 정답임 ㅋㅋ
      일본만큼 혐한새력이 득실거리는곳이 대만 ㅇㅇ
      말그대로 문화를 좋아하는거지 한국을 좋아하는게 아님 ㅋㅋㅋ

    • @moclykim8220
      @moclykim8220 2 роки тому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during3552
    @during3552 2 роки тому +11

    일본 베트남 대만 중국 아무도믿지마라 우리는 힘을키워 앞으로전진한다

  • @user-ih7rb9eo6e
    @user-ih7rb9eo6e 2 роки тому +115

    쟤들은 마인드가 거의 일본인인데 흔적 지우기 정도로는 안 될걸.

    • @moclykim8220
      @moclykim8220 2 роки тому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user-cj1vf8rs7e
    @user-cj1vf8rs7e 2 роки тому +20

    일본과 대만이 한국에 혐한짓 한거보면 저 둘은 절대 문화강국이 못된다고 단언한다
    저급한 혐한짓이나 하고는
    고급 문화를 창조할수 있겠나
    아직도 혐한은 여전하고 뿌리가 깊다
    미래를 내다본다면 형한같은거
    하지말고 그 힘을 자기들의 실력 향상에 쏫아야지
    남아도는 힘을 혐한짓에나 다 쏫아 부으니 문화 강국이 될수있겠나
    저급한 짓을 하면서 희열이나 느끼는것들이다

    • @moclykim8220
      @moclykim8220 2 роки тому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user-rx7ym3ns9z
      @user-rx7ym3ns9z 2 роки тому

      맞습니다 우리도 당연히 기분은 나쁘겠지만 상대가 혐오한다고 똑같이 혐오할게 아니라 세계를 향해 장사를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먼저 성장해서 그때가서 손내밀고 친해지면 되죠 그렇게 생각하면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전혀 없는거 같아요

  • @user-hs9cq4yd6c
    @user-hs9cq4yd6c 2 роки тому +34

    과거에 일본은 총칼로 점령 했고
    우린 즐거움으로 덮어 버렸다.
    즐기는놈을 누가 이겨

  • @user-nf3fi6uv9j
    @user-nf3fi6uv9j 2 роки тому +20

    저들은 네덜란드 포르투갈 에서
    일본이 해방시켰다 생각하는걸까
    대만을 믿는것은 일본을 믿는것이다

    • @user-ie4sc9jr9v
      @user-ie4sc9jr9v 2 роки тому

      이 님 말씀 한번 잘 하시네..그러나 더 정확한 건 특히 중.일.베.대 넘들은 절대 믿지말자 이다

  • @203orion
    @203orion 2 роки тому +106

    지금이야 한국의 문화가 잘 나가니까 대만이 저러는거지.. 한국의 문화가 시들해질때면 대만은 언제든지 한국을 헐뜯을거임. 제네들은 안 변함.. 그래서 대만이 저래 한국에 관심가지는거 그닥 좋아 보이지 않음.. 그냥 관심 좀 안 가졌으면 좋겠음.

    • @user-rb5rl8ub3e
      @user-rb5rl8ub3e 2 роки тому +9

      100프로 동의...중국뿌리 인간들은 믿으면 절대 안됨.

    • @hjlee7914
      @hjlee7914 2 роки тому +1

      스스로 자뻑안하고 비관적이진 않으나 비판적인 시각으로 자국문화를 바라보면서 계속 새로운 시도를 요구한다면 쇠퇴하진 않을거라 봄. 단지 우리가 지금 좀 잘나간다고 취해있는 사람들이 조금 걱정임. 몇몇 소수의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선전하는건 사실이지만 그게 국민전체의 수준을 결정하는건 아니니까... 그러나 동기부여만큼은 정말 엄청난 값어치라고 생각함. 어려운 시기에 박찬호, 박새리가 그 스타트를 끊었고 쉬지않고 이런 동기부여할수 있는 인물들이 나온다는건 한국의 복임. BTS도 그중 하나고...
      그게 된다면 우리가 관심을 갖든 안갖든 그게 중요한게 아님. 우리는 우리할거 하면 되는거고 좋아하든지 말든지 신경 쓸필요조차 없는거라 생각함.

    • @user-rx7ym3ns9z
      @user-rx7ym3ns9z 2 роки тому

      그렇기에 한국이 잘나갈때 친해지면 되는거죠.
      사람도 세상은 안변한다고 하지만 사실 전세계는 계속해서 변하고있습니다 한국도 많이 변했고 저도 많이 변했죠 10년전에 저는 지금의 저랑은 다른 사람이니까요.
      지금은 대만이 우릴 미워하고있지만 반대로 오해가 풀리고 친해질 여지도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나라는 국익이 우선이겠지만요.
      우리도 항상 감정적으로 대하기보단 앞으로 인생을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 용서합시다 우리

    • @203orion
      @203orion 2 роки тому +3

      @@user-rx7ym3ns9z 누구마음대로 그런말을 함부로 하는지... 최근에 한국이 일본을 앞서간다고 하니 대만에선 얼마나 눈물을 흘리는 기사를 써대고 있는지나 알고 댓글을 다는건지? 엽겨운 소리 작작 하세요.

    • @user-lj3cb8gd4k
      @user-lj3cb8gd4k Рік тому

      보는 관점이 다르군요. 저는 돈 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 @user-lb8bb7zv8y
    @user-lb8bb7zv8y 2 роки тому +38

    한족 중국역사를 살펴보면,,,
    침략자에게 순응하며 복종하는 착한 민족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 @moclykim8220
      @moclykim8220 2 роки тому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user-lb8bb7zv8y
      @user-lb8bb7zv8y 2 роки тому +1

      @@moclykim8220 내용이..
      쓸때없이 너무 길지요.

  • @lotus614
    @lotus614 2 роки тому +10

    10년 전 대만 갔을 때 눈을 씻고 봐도
    삼성대리점, 현대자동차, LG대리점.
    안 보였고
    거의 일본차들만 보였음.
    지금은 좀 생겼나 모르겠네.

  • @JKJ0509
    @JKJ0509 2 роки тому +31

    한류 현상에 대해 이제는 어리둥절해 하거나 믿기 힘들다는 인식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원래 모습이 발현되고 있다고 인식해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는 일제 식민 사관과 중화 사대 사관에 의해 우리 민족의 역사가 한반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배웠기 때문에 한류열풍에 대해 어리둥절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역사는 대륙사와 해양사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좁은 반도에 갇힌채 외세의 침략만 당한 것이 아니라 넓은 대륙과 바다를 지배했습니다.
    고조선의 강역은 중국의 동부 지역, 내몽골 지역, 발해만 지역, 만주 지역, 한반도를 포괄했습니다. 고조선의 유물인 고인돌과 비파형 동검의 분포 범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만주 지역과 내몽골, 발해만 지역을, 백제가 중국의 동부지역과 남부지역, 한반도의 서쪽 지역, 일본을 장악했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 모본왕 본기] 2년(49)
    [후한서] [광무제 본기] 25년(49)
    [후한서] [동이열전]
    [삼국사기] [고구려 태조왕 본기] 3년(55)
    고구려 1대 태왕 추모왕(주몽)의 연호는 ‘다물’입니다. 다물은 옛 땅을 되찾는것을 뜻하는 ‘다시 무르다, 되물리다’입니다. 즉 고구려는 고조선의 땅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서쪽을 공략했습니다.
    모본왕때 고구려가 후한을 공격한 지역은 북경을 포함한 화북 지역입니다. 그런데 요동태수가 화친을 청했다는 것은 후한이 전쟁에서 지고 항복한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동태수입니다.
    고구려가 후한의 화북 지역을 공격했을때 고구려의 맞상대가 요동태수였다는 것은 그 지역이 요동지역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즉 고대의 요동은 북경 인근 지역이었던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인식하는 요동은 요나라때부터 굳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고구려는 모본왕때 후한의 요동을 공격해서 요서 지역까지 차지했고, 태조왕때 요서에 10개의 성을 쌓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고구려는 요동 지역을 두고 중국과 1진 1퇴를 반복하다가 광개토태왕때 요동을 완전히 장악합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을때 수당군이 집결한 지역은 북경 근처의 탁군입니다. 그런데 왜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한국 군대가 북한으로 처들어간다면 어디서 군대가 집결하겠습니까? 당연히 휴전선 근처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겠죠? 하지만 목포나 부산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 고구려와 수당과의 국경이 북경 근처였기 때문에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고대 요동의 위치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역과 달라집니다. 북경 근처에 있는 난하가 고대의 요하였고 난하의 동쪽이 요동, 서쪽이 요서였던 것입니다.
    [삼국사기] [최치원 열전]
    [삼국사기] [백제 동성왕 본기] 10년(488)
    [자치통감] 영명 6년(488)
    [남제서]
    [남제서] [백제전]
    동성왕이 위나라 군사를 물리치는데 공을 세운 백제 장수들에게 관직을 수여하고 이를 남제에 통보한 국서가 나온다. 그 중 한 구절은 라는 것이다. 면중왕에서 도한왕으로 승진시켰다는 것으로 백제 황제 수하에 서열에 따른 여러 왕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로 승진시켰다고 [남제서]는 말하고 있다.
    [송서] [백제전]
    [송서]에는 백제 개로왕 여경이 송나라에 라고 요청했다는 기사가 있다. 그러나 요청했다는 것은 윤색이고, 사실은 통보한 것이다. 흉노는 황제인 대칸이 중앙을 다스리고, 우현왕과 좌현왕이 좌우 강역을 다스렸는데, 대륙과 반도와 해양에 걸친 대제국 백제도 넓은 강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백제 임금 아래 우현왕과 좌현왕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중국에도 알려져 있어서 [양서] [백제 열전]에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구당서] [백제전]에는 라고 해서 백제왕이 거주하는 왕성이 둘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동왕성은 한반도, 서왕성은 대륙에 있었을 것이다. 백제는 요서와 일본은 물론 각지에 담로(후국)를 갖고 있던 황제국이었다.
    [통전] [백제전]
    요서군과 진평군이 오늘날의 유성, 북평(북경) 사이라고 위치까지 표시해 놓음
    [양서] [백제전]
    여기에서 백제가 도읍을 대륙에서 반도로 옮긴 것인지는 연구가 필요해 보임
    [북사] [백제전]에는 라고 되어있고, [주서] [백제전]에는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 백제 본국이 중국의 왼쪽에 있을 수 없으므로 중국 내부에 백제의 영토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남제서] [백제전]에 의하면 백제 장군들이 북위와 싸워 승리한 후 남제가 광양, 조선, 대방, 광릉, 청하, 성양의 태수직을 백제 장군들에게 제수했다. 물론 실제로는 동성왕이 제수한 후 남제에 통보한 것이다. 광양은 현재의 하북성 융화로서 난하 상류 유역이고, 광릉은 현재의 강소성 양주 지역이며, 청하는 현재 산동성 익도이다. 그리고 하남성에는 아직도 백제라는 지명이 여러 곳에 존재한다.
    [수서]에는 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백제가 동아시아 국제 해상 교역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중국 북부 요서 지방과 남부 광서성 장족 자치구에는 라는 지명과 한반도 관련 유물들이 존재한다.
    베트남 인접 지역 광서성 장족 자치주 옹영현에는 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그리고 전라도에서만 보이는 맷돌, 외다리 방아, 서낭당 등이 있다. 안에는 가 있다. 라는 지명은 과거 군사적 목적의 성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이곳에 백제성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광서성 장족 자치주 남령으로부터 3시간이나 걸리는 산촌에는 라는 지명이 아직도 사용된다. 그런데 그 곳 주민들은 를 가 아니라 로 발음한다. 즉 백제는 고조선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 중국 대륙의 북부 요서부터 동부와 남부 광서성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담로국을 설치한 것이다. 고구려에는 다물(담울=담으로 친 울타리, 즉 고구려 성을 뜻함)정신이 있었다면, 백제에는 담로가 있었던 것이다.

    • @JKJ0509
      @JKJ0509 2 роки тому +7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 중앙 연구원, 동북아 역사 재단, 국립 중앙 박물관 등 역사를 다루는 모든 국가 기관은 100% 식민 사학자들이 장악하고 있음
      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대학교에 있는 역사학과 교수들도 거의 대부분이 식민 사학자들임
      그리고 정치인들은 우리 역사에 대해 무지하고 관심도 없음
      따라서 국민들이 깨어나야 역사를 복원할 수 있음

    • @user-nu5og6no8p
      @user-nu5og6no8p 2 роки тому +4

      대단하시내요. 혹시 역사 학자신가요? 글 잘읽었읍니다. 마음 한켠이 웅장해지내요

    • @jangwuino.1278
      @jangwuino.1278 2 роки тому +4

      대단하십니다.
      이런 우리민족 역사를 친일 매국교수들은 얘기 안하겠지요.
      감사드립니다.

  • @kbikyj2023love
    @kbikyj2023love 2 роки тому +5

    힘이 강하면 다 허리를 숙이는게 세상의 진리.
    그러니까 힘을 더 키우면 다 해결된다

  • @hitpreidot8850
    @hitpreidot8850 2 роки тому +25

    이런 문화강국 한국에서 슬슬 역사왜곡 드라마가 판치기 시작했지.. 조선구마사, 철인왕후... 그리고 설강화..
    중국돈 먹고 역사왜곡 된 드라마를 한국에서 제작하고 인기많은 스타가 이런 드라마에 출연하고 그걸 외국 팬들이 본다

  • @user-vx2jq6rj2o
    @user-vx2jq6rj2o 2 роки тому +13

    대만인들 90% 이상이 두얼굴 가진 사람들이다.. 일본은 남들 보는데에선 덜하지 대만은 받을거 다 받고 한번 돌아서면 누가 옆에있던 도와준 사람 통수 제대로 친다..이거 만든 유트버 대만에서 돈받고 이거 제작했나보다

    • @user-rx7ym3ns9z
      @user-rx7ym3ns9z 2 роки тому

      제 생각엔 애초에 수천만 인구를 같은 성격의 사람으로 보는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한국에 항상 말하는듯 국민성이란 이름의 편견을 만드는거죠 사실 알고보면 한국사람들은 성격은 다다르잖아요?
      어차피 모든 나라들은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국익에 따라 행동하고 많은 나라들이 한국을 좋은 이미지로 보기시작했다는건 그만큼 한국의 힘이 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한국을 미워한다고하여 똑같이 혐오하고 배척할것이 아니라 먼저 손내밀고 먼저 이해하려고 든다면 한국은 지금보다더 부강하고 멋진 나라가 될거라 생각합니다.
      용서합시다 이젠

  • @user-sf4kv7bb1f
    @user-sf4kv7bb1f 2 роки тому +65

    ➡️ 중요한건 일반 대중 대만인들의 의식변화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정체성및 사회를 이끄는 기성세대.정치세력들의 근본적 변화가 보다 중요합니다 그들의 움직임을 주의깊게 지켜봐야할 아직은 유보적인 단계입니다 워낙 친일적인 정치
    세력들이 주류사회인 국가이기에 섣부른
    판단은 오산 입니다

    • @moclykim8220
      @moclykim8220 2 роки тому +2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user-cx6nu9ju5t
      @user-cx6nu9ju5t 2 роки тому

      @@moclykim8220 가라유카상,마비키,란보도리

    • @user-rx7ym3ns9z
      @user-rx7ym3ns9z 2 роки тому +1

      일본이랑 친하게 지낸다고 우리의 적이라는건 스스로 적을 만드는짓이라고 봅니다.
      대만이 물론 현재는 한국을 미워하지만 오해가 풀리고 반대로 친해지게된다면 한국과 대만 양쪽에게 더 좋은 일이겠죠 우리도 무조건적으로 감정적으로 대하기보단 서로간의 오해를 풀고 앞으로 나아가는게 중요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 미래를 살아갈 내 아이들을 위해서요.
      사람들은 세상이 안바뀐다고 하지만 분명히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용서합시다 우리

  • @artk6912
    @artk6912 2 роки тому +59

    그냥 한국문화가 우세해서 현재 분위기 이렇다는 기사말고
    그들이 한국을 어떻게 질투하고, 오해해왔는지..일어난 사실을 많이 알려주는 제대로된 기사들이 많이 보도되어지기를

    • @moclykim8220
      @moclykim8220 2 роки тому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user-rx7ym3ns9z
      @user-rx7ym3ns9z 2 роки тому +2

      @@user-rj4hc6qi7c 대만사람들이 무릎꿇고 사과까지 할필요가 뭐가 있나요 한국도 뭣모르고 다른나라 욕하는 애들 많던데요.
      상대가 미워한다고 우리가 미워할 필요가 뭐가있겠습니까 우릴 미워한다면 우리가 손을 내밀어 주면 되는거죠ㅋㅋ
      어차피 모든 나라의 방향성은 국익을 위해서 움직입니다 그리고 국민들의 여론이 바뀌면 정치인들도 투표를 얻기위해 손바닥 뒤집듯이 전환을 하죠.
      한국은 많은 고통속에 살았지만 이제야 우리의 시간이 오게됬고 우린 우리의 결과를 보여주면 됩니다 경제성장이나 문화뿐 아니라 그외에도 많은 나라들이 뒤늦게나마 한국을 지지해주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이 용서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랍니다.

  • @user-yr5hj3hy4z
    @user-yr5hj3hy4z 2 роки тому +17

    2차대전때 그냥지나가는 길목에 있던 나라라 일제강점기라해도 크게 억압받았던 나라가아니다. 대만은. . 그냥 우리나라 폄훼하는 나라일뿐. 작은중국스러은나라.

    • @moclykim8220
      @moclykim8220 2 роки тому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user-gs4th5qz2r
    @user-gs4th5qz2r 2 роки тому +159

    이렇게 각국의 대중들에게 한류가 자리잡히면 외교에서도 강력한 힘을 갖게됩니다~
    자국내 정치에서 일본처럼 혐한해봤자 선거에서 득될게 없게될것 ㅎㅎ

    • @moclykim8220
      @moclykim8220 2 роки тому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moclykim8220
      @moclykim8220 2 роки тому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user-rx7ym3ns9z
      @user-rx7ym3ns9z 2 роки тому

      맞는 말씀입니다 상대가 혐오한다고 우리도 감정적으로 다가갈 필요는 없죠ㅋ

  • @user-uk8gd6zu8s
    @user-uk8gd6zu8s 2 роки тому +1

    1등!
    많이 보구 배웁니다.
    차가운 날씨..감기 조심하세요.

  • @user-og7ox8ow9h
    @user-og7ox8ow9h 2 роки тому +39

    대만 가면 주제도 모르고 한국인을 대놓고 차별하던데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한국인들 너무 답답하다.

  • @user-bh6zs6ec9o
    @user-bh6zs6ec9o 2 роки тому +8

    1. 문화의 흐름은 中共처럼 정치적 강권이나 민족감정을 부채질해서 역전시킬 수 있는 게 아닙니다.
    2. 한국문화가 각광을 받으니 기쁜 일이지만, 한국은 5백 년 이상 중국과의 문화교류에서 자신의 발전 방향을 찾아냈었고, 20 세기 전반부는 일본을 후반 부에는 미국과 서유럽을 바쁘게 배웠습니다. 언제든 우리가 매너리즘에 빠지는 순간 세계의 관심은 한국 문화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갈 수 있습니다.
    3. 中共이 대만을 무력침공하는 순간 티베트 신쟝은 독립선언할 것이고, 몽골은 내몽골을 통합하며 그들의 뒤를 미국이 지원하여, 중공은 해체되고 중국이 민주국가로 변모하여 15억 中国人民이 자유와 민주를 누리기 기대합니다.

  • @user-kf2yr1jk8i
    @user-kf2yr1jk8i 2 роки тому +22

    대만으로 여행을 갔을 때가 생각나네요.
    일본으로 여행을 간건지 대만으로 여행을 간건지 ㅋㅋㅋ

    • @moclykim8220
      @moclykim8220 2 роки тому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user-kz3wf9uy6b
      @user-kz3wf9uy6b 2 роки тому

      ㅎㅎ 격하게 공감!

  • @BR-vy6vx
    @BR-vy6vx 2 роки тому +4

    호감 가지지 마세요 저희끼리 잘 살았으면 해요

  • @jasonshin5497
    @jasonshin5497 2 роки тому +75

    대만이 일본을 청산한들 우리를 좋아한들 우리가 굳이 대만에 관심 가져야할 이유가 없음 .... 그렇게 혐한 하고 일본 좋아하다가 손바닥 뒤집듯이 또 우리나라 칭찬한다고 ??? 이해가 안되는 사람들임 .... 언제 또 바뀔지 모르는 믿을수 없는 사람들임...

    • @moclykim8220
      @moclykim8220 2 роки тому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frostfire311
    @frostfire311 2 роки тому +6

    당장 몇년전만 생각해보면 우리도 엄청 무지했었었음. 특히 게임 중심 남초 사이트에서는 한류는 미디어 공작이고 아시아에서만 인기 있다면서 후려치는게 일상이였었음.(아시아에서 인기 있다는게 얼마나 대단한건지 인지조차 못하는 사대주의 능지처참).
    거기다가 게임이랑 매출 비교하면서 한류나 케이팝 병신이라고 까던 글이 매주마다 일상으로 올려오면서 후려치기 바빴었고. 소프트파워가 뭔지 모르니 한류랑 게임이랑 비교질하면서 아이돌은 가수가 아니다 거리면서 온종일 후려치다가 bts가 조단위 경제효과 나온다는 기사 나오기 시작하니까 그때서야 싹 다 버러우 타더라.
    지금도 중국게임 롤 하는 사람이랑 bts랑 비교질 하면서 후려치는 병자들이 가끔씩 출몰하긴함. 느그 중공겜 롤은 느그들이나 실컷하세요 ^^

    • @good6241
      @good6241 2 роки тому

      걔들 군대감ㅅㄱ

  • @sodam74434
    @sodam74434 Рік тому +1

    영상 잘 봤습니다~

  • @kloudjung7975
    @kloudjung7975 2 роки тому +424

    무력이 아닌 문화로 아시아를 지배하는 우리나라 자랑스럽습니다.

    • @S.G_OH
      @S.G_OH 2 роки тому +13

      멋진 평가네요

    • @user-no3jl8sc6i
      @user-no3jl8sc6i 2 роки тому +5

      지배라는 말보다는 확산 이 어울릴듯

    • @aphextriplet.
      @aphextriplet. 2 роки тому +3

      무력도 만만찮게 강력하지요, 그저 과시만 하지 않을 뿐

    • @user-ew5mj8pu6n
      @user-ew5mj8pu6n 2 роки тому +7

      @@user-rj4hc6qi7c 우리가 대만을 언제 사대했음? 중국 일본보다 더 노관심인 나라가 대만인데.

    • @moclykim8220
      @moclykim8220 2 роки тому +1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minkookdaehan1385
    @minkookdaehan1385 2 роки тому +57

    우리 한국인들은 타고난 재능도 많은데, 노력을 엄청합니다.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한국인들을 이길 수 있는 인간들은 지구상에 없습니다.

    • @user-rx7ym3ns9z
      @user-rx7ym3ns9z 2 роки тому

      누가 더 우월하고 자시고는 없습니다.
      한국이 성장할 수 있던것도 단지 상황과 시기가 맞아떨어졌을 뿐이죠.
      항상 겸손하게 계속해서 성장하고 밀고나가야지 선민의식에 빠진다면 한국은 다시 추락할거라고 봅니다.

    • @darkdeadwalker7857
      @darkdeadwalker7857 2 роки тому

      그런 거만함과 오만함 때문에 한국도 망할뻔한거 모르오? 1997년 IMF사태로 한국 경제가 폭망하고
      대기업들이 줄도산하고 그때 자동차 업계에서 잘 달리던 대우도 망했죠~
      IMF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국민들 입장에서는 정부랑 대기업 잘못이라 그러고~ 정부에서는 국민들
      잘못이라 그러고~ 뭐 서로 책임 떠넘기기~ 어쨌든 뭐 나도 자세한 원인은 모르겠지만~ 그냥 대기업
      부채가 심각해지고 외환이 다 해외로 빠져나가고 국민들의 무분별한 외제 사랑~ 그리고 한국 국내로
      여행온 외국인들 수 보다 한국에서 해외로 여행 나가는 한국인들 수가 더 많음~ 정말 심각했죠~
      그때 재기불능으로 자살한 사람들 엄청 많았음~
      제가 알기론 90년대 대한민국은 꾀나 잘살고 행복한 나라였던걸로 알고 있는데 97년도 국가부도위기가
      오다니...... 그래서 IMF이후로 대한민국 국민들이 열심히 살기 시작했죠~ 국산 애용하고 아나바다 행사도
      하고(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고), 전국적으로 금모으기 운동도 하고 국민들이 모두 같이 나라
      살리는 일을 했죠~ 회사 마다 늦게까지 야근하면서 노력했었죠~ 한국 정부에서도 정신 차리고 일단
      대기업들 위주로 나라를 재기시키고 중소기업들 지원 포기...... 그리고 국내 달러 유통시키고~ 2년후인가?
      IMF한테 빌린 돈 모두 상환 했음~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또 그때 처럼 자만심과 오만함으로 살면
      경제위기 또 옵니다~

  • @HonKoo-tz7cp
    @HonKoo-tz7cp 2 роки тому +129

    아직도 완전히 올라선게 아닌듯하다.절정이 아니라 시작이라 더 흥미롭다.

  • @mojinggg
    @mojinggg 2 роки тому +2

    한국은 대만 일본을 신경쓴 적이 없는데 말이죠!

  • @arvo7091
    @arvo7091 2 роки тому +2

    12월에 선보일 한국드라마 예고편을 보여주는 넷플릭스 대만 채널에 며칠전 우연히 들어갔는데..70퍼센트가 드라마 조롱하는 댓글이었음..

  • @user-db7yx7gy4w
    @user-db7yx7gy4w 2 роки тому +5

    섬사람이 원래 대륙과 공동체의식이 없음.. 그냥 자기네들 잘살게 해주면 그 사람들을 따름.. 게다가 대만은 대륙에서 수탈 착취만 당해왔던터라...일본에 넘어간건 주인만 바뀌었을뿐..근데 주인들이 잘해주네..그러니 좋아한거임... 이건 마치 고려시대 고려조정에 착취수탈만 당하던 제주가 원나라가 탐라총관부로 100년을 자치하면서 제주를 잘살게 해줘 그당시 제주도민들이 원나라를 좋아하고 고국이라 생각한거와 비슷..

  • @user-ow6lc7ve3c
    @user-ow6lc7ve3c 2 роки тому +7

    우리나라가 대만에게 미움을 받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인위적으로 혐한붐이 조성된 측면이 강함. 대만과 단교했다는 이유로 싫어할 거면 일본도 싫어했어야지.

    • @user-rx7ym3ns9z
      @user-rx7ym3ns9z 2 роки тому +1

      뭐나름의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죠 우리가 먼저 용서합시다 까짓거ㅋㅋ

  • @user-gv3zx7ju7w
    @user-gv3zx7ju7w 2 роки тому +2

    조승연 작가님이 비정상 회담에서 합병과 지배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 한적이 있는데 한국은 합병을 당하는 상황이라 민족 말살에 가까운 일을 당했고 그 때문에 원한이 많은 것이고, 대만의 경우 지배니까 원한이 깊지 않게 되지요. 특히 지배 기간이 짧은데 비해서 중국에서 독립할수 있었다는 것에 오히려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게 되서 일본을 찬양하고 한국을 욕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던게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가 달라지는 모습은 단지 유행을 따르는것이지 언젠가 또 같은 방식으로 손바닥 뒤집듯 태도가 달라질것이라 생각될수 밖에 없네요.

  • @wizard082
    @wizard082 2 роки тому +1

    이건 추천 무조건 눌러야한다 팩트.!

  • @dewamataa
    @dewamataa 2 роки тому +43

    대만은 딱 지금정도의 관심도나 거리감이 좋은거같네요
    굳이 더 가까워질 이유도 필요성도 딱히...

    • @sfuji790
      @sfuji790 2 роки тому +3

      공감요! 일본 중국 대만 베트남은 거리두기해야함! 언제또 뒤통수칠지 모르는종족들이라..

    • @s.koreaman1933
      @s.koreaman1933 2 роки тому +3

      @@sfuji790 잠수함,전투기 문제로 인도네시아도 추가요.

    • @le6356
      @le6356 2 роки тому +1

      @@s.koreaman1933 근데 그건 국민이랑은 관련이 없잖아요..
      한류 소비국가 탑3안에 인니는 꼭 들어가요 없으면 안됨
      거기다 시장규모도 어마어마해서..

    • @moclykim8220
      @moclykim8220 2 роки тому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user-pf3fp7hi3g
    @user-pf3fp7hi3g 2 роки тому +20

    전쟁나면 도와줄 아군이 절실하니까 밑밥 열심히 까는거지 저게 진짜 한국 칭찬하는게 아님. 저기 국민성은 일본+중국인 나라임. 한 마디로 얇팍한 나라임

    • @user-rx7ym3ns9z
      @user-rx7ym3ns9z 2 роки тому

      제 생각엔 국민성이랑 단어자체가 말이 안되는듯 그냥 세상에 부정적인 노이즈따위 신경쓰지말고 우리 앞가림이나 잘하면 됩니다

  • @csb0177
    @csb0177 Місяць тому

    잘보고 갑니다 홧팅하세요.

    • @china_news
      @china_news  Місяць тому

      치명적인 불독 님 오래된 영상인데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화이팅 입니다!!

  • @user-uc2cx1bw2b
    @user-uc2cx1bw2b 2 роки тому +9

    50년 지배받았는데 거부반응이 없다는 자체가 국민성이 동화가 잘되는 민족인가요?
    이해가 안되네요.ㅠㅠ
    악랄한 일본이 대만한테만 잘해줬을리 없는것 같은데요~~

    • @user-xk5ou9fj6g
      @user-xk5ou9fj6g 2 роки тому

      놀랍게도 식민지에 대한 대처가 달랐습니다.
      일본은 대만과 달리 우리에게는 동화되길 바랐습니다.
      문화를 말살하고 완전한 일본으로 만들길 원했거든요

  • @lunakim3238
    @lunakim3238 2 роки тому +9

    대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솔까 대만이랑 홍콩이랑 마카오랑 개헷갈려

  • @user-wq3ck7xy8b
    @user-wq3ck7xy8b 2 роки тому +56

    믿지못하나라 대만!

  • @user-jj9ki9kq4k
    @user-jj9ki9kq4k 2 роки тому +1

    대만과 한국과. 연합국가를. 만듭시다...👍👍👍👍👍👍👍👍

  • @user-vy9ui7ke4j
    @user-vy9ui7ke4j 2 роки тому +154

    일본이 대만에 인프라를 구축해주어 일본에 호감이 아니구요! 대만은 독립국 시절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미 수백년 전부터 유럽이나 명청등에 계속 선수만 교체 해가면서 계속 쭉 식민지 였습니다
    마지막에 들어온게 일본이구요! 대만 입장에서는 걍 지배자만 바뀐거고 한국처럼 극심한 독립 투쟁도 없었고 그런점에서 다른거죠

    • @rou2wo125
      @rou2wo125 2 роки тому +13

      맞아요. 이게 정답

    • @transcontinental4664
      @transcontinental4664 2 роки тому +5

      잘 보셨습니다.

    • @user-cm2fb8vr8o
      @user-cm2fb8vr8o 2 роки тому +11

      대만이 국가의 모습을 갖춘것이 장개석이 들어온 이후부터죠 그전까지는 국가가 아니였음

    • @joonlacas3261
      @joonlacas3261 2 роки тому +19

      그걸 영상 게시자가 모를까요? 모든 식민지배자가 수탈만 해 가다가.. 일본이라는 나라는 그나마 철도 도로 전기등 인프라 시설을 갖춰주었다는 이야기지요. 물론 그건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본인들의 전쟁준비를 위한 것이지만... 대만 원주민입장에서는 모든 약탈자중 일본이 가장 나았다는 것인데... 참 불쌍하지요. 10대 때린 놈보다... 10대 때리고 반창고라도 발라준 놈이 낫다는 것이니..

    • @JKJ0509
      @JKJ0509 2 роки тому +6

      담로의 어원은 고구려의 이라고 본다. 고구려가 고조선의 옛 땅을 회복한다는 의미의 에서 온 말이다. 동북아 최강국 고구려는 광대한 영토를 지키기 위해 곳곳에 성을 짓는데 그것을 즉 라고 한다. 현재 벽이나 울타리와 같은 이라는 뜻으로 단어가 남아있다. 따라서 백제 역시 고구려의 다물 정신과 마찬가지로 을 같이 사용했다. 백제의 역시 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아시아의 기록과 지명에서 다물은 담울, 담우로, 담라, 담로, 담, 담수, 담물 등 여러 가지로 존재한다. 제주도의 옛 이름인 도 담로에서 온 것이므로 백제의 담로국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대마도도 로 바뀐 백제의 담로국이다. 대마도 주민의 유전자는 오히려 한반도 사람들의 것과 같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 류큐제도 오키나와에는 이 있다. 남송 때의 조여괄이 지은 [제번지]에는 류큐제도의 이시가키시마에 이라는 지명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는 의 음을 한자인 자로 적은 것이다. 따라서 은 이라는 뜻이다. 즉 이다.
      [북사] [백제전]에는 라고 되어있고, [주서] [백제전]에는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 백제 본국이 중국의 왼쪽에 있을 수 없으므로 중국 내부에 백제의 영토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남제서] [백제전]에 의하면 백제 장군들이 북위와 싸워 승리한 후 남제가 광양, 조선, 대방, 광릉, 청하, 성양의 태수직을 백제 장군들에게 제수했다. 물론 실제로는 동성왕이 제수한 후 남제에 통보한 것이다. 광양은 현재의 하북성 융화로서 난하 상류 유역이고, 광릉은 현재의 강소성 양주 지역이며, 청하는 현재 산동성 익도이다. 그리고 하남성에는 아직도 백제라는 지명이 여러 곳에 존재한다.
      [북제서]에 의하면 571년 북제의 후주가 백제 위덕왕에게 ‘사지절도독동청주자사’라는 직을 제수했다. 또한 [삼국사기]에 의하면 570년(위덕왕 17년) 북제의 후주가 백제 위덕왕을 ‘사지절시중거기대장군대방군공백제왕’으로 삼는다. 그리고 571년(위덕왕18년) 북제의 후주가 다시 백제 위덕왕을 ‘사지절도독동청주제군사동청주자사’로 삼았다.
      [독사방여기요]에 의하면 동청주의 치소는 불기성으로서 즉묵에서 서남쪽으로 50리에 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동청주는 현재의 청도(칭다오)이다. 따라서 북제가 백제왕에게 동청주자사직을 준것은 백제의 청도(칭다오)에 대한 지배를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광동성 혜주 혜양현에 담수항, 담물터가 있으며, 광동성 서쪽 뇌주에 담수채, 담물울이 있으며 해암도 바로 앞이다. 광동성 흠주, 광주만은 과거 담수만, 담물만으로 불리웠다.
      [수서]에는 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백제가 동아시아 국제 해상 교역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중국 북부 요서 지방과 남부 광서성 장족 자치구에는 라는 지명과 한반도 관련 유물들이 존재한다.
      베트남 인접 지역 광서성 장족 자치주 옹영현에는 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그리고 전라도에서만 보이는 맷돌, 외다리 방아, 서낭당 등이 있다. 안에는 가 있다. 라는 지명은 과거 군사적 목적의 성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이곳에 백제성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광서성 장족 자치주 남령으로부터 3시간이나 걸리는 산촌에는 라는 지명이 아직도 사용된다. 그런데 그 곳 주민들은 를 가 아니라 로 발음한다. 즉 고대 백제는 중국 대륙의 북부 요서부터 동부와 남부 광서성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담로국을 설치한 것이다.
      대만은 원래 담모라국 혹은 탐모라국이다. [수서] [백제전]에 라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 대만은 남북 386km(965리), 동서 144km(360여리)이며 사슴항구라고 불리는 이란 항구가 있다. 그리고 명나라 때부터 대만 토착민들이 사슴 가죽을 복건성에 내다 팔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대만에는 여전히 라는 지명이 있다. 역시 담로계 지명이다.
      [동서양고]에 필리핀 밀안항 남쪽에 이 있다고 적혀 있으며 현재 이곳은 필리핀 루론섬 서북쪽의 유감항의 남쪽으로 추정한다. 는 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므로 은 라는 뜻이다. 즉 담로항이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중부 아로국에도 담수항이 있었다. 원나라 [도이지락]에는 으로, 명나라 마환의 [영애승람]과 공진의 [서양 번국지]에는 으로 기록되어 있다. 담수항과 담양, 담안은 모두 같다.
      [순풍상송]에는 라고 적혀있다. 이곳은 카리만탄으로 추정된다. 은 으로 읽을 수 있는 담로계 땅 이름이다.
      베트남의 은 과 발음이 유사한 전형적인 담로계 지명이다. [명사]에서는 태국을 섬라(siam)라고 지칭한다. [순풍상송]에는 부터 까지의 항로에 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Siam과 섬라 역시 나 에서 변한 것이다.
      [동서양고]에 주석을 붙인 [풍토기]에 근거하여 을 캄보디아의 로 본다. [일본서기]에는 라고 적혀있다. 말레이시아 은 과거 으로 불리었다. 남송 때 조여괄의 [제번지]에 이 처음 기록되며, 원나라 때 왕대연의 [도이지락]에도 이라는 지명이 있다. 정광유와 서성모의 [중국역사지도]에는 이 말레이 반도 동남쪽의 큰 섬 이라고 언급한다. 은 마을을 의미한다. 단마령의 는 한자 이다. 또한 는 또는 로 읽을 수 있다. 따라서 가 되므로 담로계 지명임을 알 수 있다.
      ‘티모르’라는 지명은 를 뜻하는 와 발음이 같을 뿐만 아니라 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와 백제인들이 와서 담로를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백제 항해술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까지 갈 수 있다면 당연히 티모르도 충분히 갈 수 있다. [순풍상송]에는 석관산(실론, 스리랑카) 북쪽에 석성초라는 곳을 라고 기록하고 있다. 수(물 수)와 마(말 마)는 모두 을 훈독한 것이니 , 즉 이다.
      [도이지락]에는 싱가포르를 과거에 이라고 불렀다고 적혀있고, 명나라 모원의의 [무비지], [동서양고], [순풍상송]은 모두 을 이라 기록하고 있다. 은 영어로 Tamasek이나 Tumusik이라고 적는데, 당나라 중엽부터 싱가포르를 왕래했던 아라비아 상인들이 그곳을 타누마(Tanuma) 또는 티유마(Tiyuma)라고 부른 것을 볼 때 당나라 이전부터 이미 이 존재한 것이 분명하다.
      백제는 일본, 중국, 대만, 그리고 동남아시아에 여러 개의 담로를 설치하고 예상보다 막강한 교역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횡포에 가까운 전권을 종종 행사했다. [일본서기]에는 라고 적혀 있다.

  • @stillhot4737
    @stillhot4737 2 роки тому +235

    목소리도 좋고,
    내용도 지나친 국뽕만이 아니라,
    다양한 자료 등을 수집해 만드는 노고가 느껴집니다.
    오늘도 좋아요 꾹!

    • @le6356
      @le6356 2 роки тому +1

      @@user-rj4hc6qi7c 동경대 성폭행사건 진짜 심각한데 어떻게 이 소식을 다루는 언론들이 하나도 없을까요... 대단하다 대한민국 🤦

    • @moclykim8220
      @moclykim8220 2 роки тому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china_news
      @china_news  2 роки тому

      still hot님 응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늘 팩트에 입각해서 좋은 소식 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 @user-ne2ke5gr8l
      @user-ne2ke5gr8l Рік тому

      ​@@le6356ㅂ

  • @user-fn7go6jt5j
    @user-fn7go6jt5j 2 роки тому +6

    한국하고 스포츠경기할때 태극기 대신에 개그림 넣은거 기억나는군요ㅋ 대만 혐한도 장난아닌데ㅋ

  • @user-xj5xt5ni1c
    @user-xj5xt5ni1c 2 роки тому

    언제나 훌륭헌국뽕? 헤 헤 좋은영상감사합니다

  • @masterzeus9188
    @masterzeus9188 2 роки тому +24

    대만은 배은망덕 1위국입니다,,,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이는 그 다음이다

    • @user-qf7qz8wy5e
      @user-qf7qz8wy5e 2 роки тому

      @@jjlee5629 인도네시아 kf21전투기 분담금 아직도 안주고있어서 빡쳐서 넣으신듯ㅋㅋ돈도 안주고 기술이전 개소리하고있어서요

    • @youngchae7468
      @youngchae7468 2 роки тому +1

      대만에게 그렇게 하면 안돼죠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게 임시정부를 제공했고 조선족에게 차별도 많이 안했는데...

  • @NewYorkNYKer
    @NewYorkNYKer 2 роки тому +4

    아직은 그냥맘대로하라해라.
    시간지나면 중국인 습성이 나온다.
    절대 못믿을 나라
    일본 대만 베트남

  • @user-cq6fd2sr3r
    @user-cq6fd2sr3r 2 роки тому +103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대만은 일본이 점령하기 이전에도 타민족에게 지배당하던 민족이기때문에
    어차피 누가 지배하던 신경쓰지 않는것 뿐입니다.
    이런 대만을
    한국과 비교하는 그자체가 말이 않되는 웃기는 이야기 입니다...

    • @user-lo6bo1mo6c
      @user-lo6bo1mo6c 2 роки тому +3

      반일선동에 낚여 사는 것도 딱한 사람이지요 ^^

    • @001airpos8
      @001airpos8 2 роки тому +5

      쉽게 말해서 빵셔틀 찐따 호르몬이네요 오늘은a일찐한테 삥뜯기다 b일진한테 빵사오는 역할에 충실한 한심한 민족이네요 왜 내가 이딴짓을 왜당하는지도 모른채로요

    • @user-ek9xx4et7i
      @user-ek9xx4et7i 2 роки тому +17

      @@user-lo6bo1mo6c 친일선동보단 반일선동이 나은듯

    • @user-tt6mi6uz2f
      @user-tt6mi6uz2f 2 роки тому +15

      @@user-lo6bo1mo6c 일뽕 종족주의 미래가 없지... ㅋㅋㅋㅋ 😆

    • @hostkbg
      @hostkbg 2 роки тому +6

      아닌데요. 일본에게 지배당할때를 회상하며 그리워 하던 대만입니다.

  • @user-qu6cr8ug1z
    @user-qu6cr8ug1z 2 роки тому +2

    👍🤗😜😊😁😄👍🏻

  • @조선닌자핫토리
    @조선닌자핫토리 2 роки тому +5

    대만이나 일본이나 연예계에서 조폭부터 쫒아내야 됨.

  • @user-ce9fs9fi1e
    @user-ce9fs9fi1e 2 роки тому +3

    중국 타이완전쟁에 한국이 참전하면 이익은 일본이 보게된다.

  • @user-wj6qv2uy3k
    @user-wj6qv2uy3k 2 роки тому +16

    일본이나 대만이나 속성은 비슷함 대만은 힘이 없어서 일본처럼 안할 뿐

  • @udod342
    @udod342 2 роки тому +15

    대만아 중국이랑 1:1로 싸워서 이기길바래~ 멀리서 tv보며 응원할께~ 화이팅!

    • @joshua-hl2ro
      @joshua-hl2ro 2 роки тому +1

      중국아 대만 지워버려

  • @jonathanchung6942
    @jonathanchung6942 2 роки тому +2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거리를두고 봐야할 이웃.

  • @shbae41
    @shbae41 2 роки тому +6

    대만에 문화라는 게 있기나 한거냐.........

  • @user-jv4uw1vv7z
    @user-jv4uw1vv7z 2 роки тому +7

    대만이 한국에 호감을 가지게됐다니 좋은 일이긴하나... 솔직히 말하자면 혐한하든 호감을갖든 별 관심없어요.
    중공이 쳐들어오니 도와달라는 둥 그런소리만 하지말아주세요.

    • @user-ie4sc9jr9v
      @user-ie4sc9jr9v 2 роки тому

      그 호감속에 칼이 들어 있소.조심해야하지.중.일.베.대 질대 믿지말자

  • @billy112
    @billy112 2 роки тому

    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한국 좋아하셨습니다~~ 한국인인 나에게 친절했고 한국 좋아한다고 말하셨음

  • @blacksheep6435
    @blacksheep6435 2 роки тому

    그렇군요

  • @user-zp9gn4px8r
    @user-zp9gn4px8r 2 роки тому +4

    그 민족성이 어디갈까ᆢ
    절대 중국이든 대만이든 믿으면 안됨
    그렇게 욕할때는 언제고ᆢ

    • @user-rx7ym3ns9z
      @user-rx7ym3ns9z 2 роки тому

      제 생각에 민족성은 우리의 단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민족성은 편견을 만들어내는 단어이자 프레임 씌우기일뿐이죠
      모든 사람이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데요

  • @user-wd3df2yq5t
    @user-wd3df2yq5t 2 роки тому +6

    친일 행각을 하는 대만을 ㅋㅋ 협한을 안한다는게 말이 안되잖아요

    • @user-rx7ym3ns9z
      @user-rx7ym3ns9z 2 роки тому

      저는 반대로 생각해요 친일하는게 우리의 적이라면 우리나란 너무 많은 적을 굳이 만드는 꼴이죠.
      차라리 더 친하게 지내고 우리의 좋은 영향력을 세계에 끼친다면 역으로 한국의 이미지가 바뀌게 될거라 생각합니다.
      상대가 미워한다고 우리도 감정적으로 대할 필요가 전혀 없는거죱ㅋ

  • @user-xy2ql5ke3q
    @user-xy2ql5ke3q 2 роки тому

    터와이쓰...ㅋㅋㅋ 잘 봤어요

  • @user-yf3qz7ig8i
    @user-yf3qz7ig8i 2 роки тому

    똑 같은디 ㅎㅎ

  • @chilee8798
    @chilee8798 2 роки тому +3

    여행가면 좋은데 확실히 이야기 해보면 또래인 30대들은 우호적이면서 적대적? 시기가 말에서 묻어남

  • @coolenjoynet
    @coolenjoynet 2 роки тому +3

    드디어 일본에게 얻어먹을게 떨어지니
    자연적의 흐름을 타고 한국을 좋아하는군

  • @user-tl6yj7vk8e
    @user-tl6yj7vk8e 2 роки тому

    좋아요 구둑 하고 갑니다

  • @dorigom1561
    @dorigom1561 2 роки тому +1

    쉽게 변하면 역시 쉽게 변하게 되징. 의리도 뭐도 없어. 그러고보면 러시아 힘들때 삼성 엘지 등 남은후 주구장창 한국 좋아하는 러시아가 호감임.

  • @breezingsun3507
    @breezingsun3507 2 роки тому +4

    정작 자국에서는 아이돌, 드라마, 영화, 에능에 열광하는 사람이 생각 외로 많이 없다는 현실.

  • @user-jo9rd6ug8z
    @user-jo9rd6ug8z 2 роки тому +25

    나의 둘째딸이 영어회화를 배우라고 했더니 왜 영어를 꼭 배워야하느냐고 외국사람들이 한국말을 배우면 된다고 해서 너희들이 우리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어 선진국이 되면 한글을 배우겠지 했는데 그 말이 현실이 되었네요. 참고로 둘째딸이 40세입니다. 문화로 세계를 정복하고 있는 한국. BTS가 신기록을 세우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화이팅.

  • @user-wn9cb4sg5n
    @user-wn9cb4sg5n Рік тому +1

    대만도 험한을 계속해온 전력이있는 나라인대 다급하니까 한국에 호평을 하는게 낮뜨겁지 않을까...

  • @user-mm1wt7kx3k
    @user-mm1wt7kx3k 2 роки тому

    잘보고갑니다

  • @lettlemonsterh8201
    @lettlemonsterh8201 2 роки тому +17

    대만은 식민지가 아니라 작은 일본였죠.그러니,대만도 뒷통수 섬나라죠.

    • @moclykim8220
      @moclykim8220 2 роки тому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lettlemonsterh8201
      @lettlemonsterh8201 2 роки тому

      @@moclykim8220 한일 합방?
      풉!
      더 읽을꺼도 없군요.

  • @user-bi2lk6fu9g
    @user-bi2lk6fu9g 2 роки тому +21

    스스로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도울 필요가 없음

  • @wizard082
    @wizard082 2 роки тому +1

    한국은 천재가 노력하면 아무도 이길수 없다.
    이게 한국이다.! 자원1도 없는 나라가 사람이 자원이다.!

  • @quentin7474
    @quentin7474 2 роки тому +2

    반장님. 오늘 추웠네요.
    오미크론 조심하기!
    중국 상하이 김연경선수 이슈 영상 걸기
    오늘 이밤이 반장님의 밤이 되시길

    • @china_news
      @china_news  2 роки тому

      산호세님 응원 감사합니다. 날이 추워졌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그리고 김연경 선수 스토리는 고민해보겠습니다.

  • @jannabity
    @jannabity 2 роки тому +5

    아무리 인프라를 구축해줘도 그렇지... 자기 나라를 50년동안 통치하던 딴나라를 어떻게 좋아할수가 있지?
    일본이 대만에겐 우리에게 했던 드러운짓을 안하고 진짜 호감정치를 했었나?
    아니면 일본이 진짜 막 퍼주면서 엄청 대만 개발을 위해 발벗고 나섰었나?
    아니면 대만이란 나라는 그냥 자존심이 우리만큼 없는건가..?

    • @transcontinental4664
      @transcontinental4664 2 роки тому

      명이나 청, 그리고 마지막에 들어온 국민당에 비하면 일본은 양반이었죠.

    • @user-rx7ym3ns9z
      @user-rx7ym3ns9z 2 роки тому

      전세계는 사실 감정보단 국익에 따라 움직입니다. 일본에 얻어낼 것들이 있었던거죠 일본도 그걸 알기에 서로를 이용하는거구요.

  • @user-fw9nj7wq7z
    @user-fw9nj7wq7z 2 роки тому +5

    대만이 급하기는 급한가보네ㅋㅋㅋㅋ 급하게 일본 손절 하는거보니ㅋㅋㅋ 어이가없다ㅋㅋㅋㅋㅋㅋ 14년 펩시 바퀴벌레 대만짓이라는거 잊지말고 대한민국 국기 불지르는것도 대만이라는거 근30년동안 뒤에서 은근 괴롭혀온 국가가 대만이라는거 잊지말자 아무리 한국에게 좋은감정 보인다해도 그거다 연기다 중국피가있는 대만이다 잊지말자

    • @user-rx7ym3ns9z
      @user-rx7ym3ns9z 2 роки тому

      제 생각엔 오히려 이참에 친하게 지내는게 국익에 더 도움이 되는게 아닐까 합니다.
      결국은 모든 나라는 사실 자신들의 국익에 따라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죠.
      문화이 힘이 중요한건 나라의 이익과 상관없이 국민들이 호감을 갖는다는 겁니다 지금 전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고 한국의 상황을 이해해주려고 하는데 차라리 지금은 밀어내기보단 수용하고 받아들이는게 맞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용서하는거죠

  • @user-tz3cx6si8r
    @user-tz3cx6si8r Рік тому

    대만인들!!! 한국에 대해서 관심 꺼!!!

  • @chj950
    @chj950 Рік тому

    앞으로의 시대는 전기차 인공지능 증강현실 로봇 사물인터넷 나노기술 우주산업 등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다ᆢ우리는 그시대의 중심에 서서 미래를 선도하는나라가 꼭 되기를 우리 모두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