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로 본 고려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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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7 лют 2025
  • 사마천사기에 나와있는 기주로 고려영토를 찾아 보았습니다.

КОМЕНТАРІ • 123

  • @구라왕-z2x
    @구라왕-z2x 2 місяці тому +56

    우리후손들이 올바른 역사를 배울 그날까지 ❤❤❤

  • @nadong4014
    @nadong4014 2 місяці тому +27

    오늘 내용 아주 좋습니다. 훌륭하시네요

  • @three.empires
    @three.empires 2 місяці тому +54

    태행산맥(요)과 황하 사이에 집중되어 나타나는 지명 기록!
    구글 지도와 사기를 비교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역사 History 님의 설명을 보니,
    황하와 태행산맥 사이의 지역(요서지역)에서 고구려와 화하족이 치열하게 영토전쟁을 한 것이 눈 앞에서 펼쳐집니다.
    오늘도 좋은 방송 감사합니다 ❤🎉😊

    • @father-v9d
      @father-v9d 2 місяці тому +5

      그렇네요

    • @다린_Love
      @다린_Love 2 місяці тому +1

      저 땅도 통일후 되찾아야할 땅이에요

  • @멋진자연-d8i
    @멋진자연-d8i 2 місяці тому +12

    우리역사 영상 잘보았읍니다 고맙습니다 👍💙

  • @뿐이-q1o
    @뿐이-q1o 2 місяці тому +14

    수고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영상잘보았읍니다 👍

  • @arcyoon
    @arcyoon 2 місяці тому +49

    영락궁의 위치가 처음엔 참 생뚱맞은 느낌이었는데...점차 있을 만한 곳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 @shh3543
      @shh3543 Місяць тому

      근래에 들어 뜬금 없이 고구리의 역사를 화하족의 역사라고 우기고 공정을 해야 할 이유였네요.

  • @골골딸랑이
    @골골딸랑이 2 місяці тому +17

    처음엔 김해평야를 맨날 지나가다가 삼국시대때 막연히 백제하고 신락가 군사끼리 충돌해서 목숨걸고 씬윘겠지 지나다니가다도 왜 전쟁흔적 즉 화살촉이나 유골 갑옷갑은게 발굴되었다는 기록은 안나오고
    전부 박물관에는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밖에 없어서
    참 이상하자 생각했었죠

  • @김재현-z6r2e
    @김재현-z6r2e 2 місяці тому +55

    빼도박도 못하는 사실.

  • @이장이래요약초산행멧
    @이장이래요약초산행멧 2 місяці тому +49

    와~저도 사마천 사기를 신뢰하지 않았는데 지형지물은 믿을만 하네요. 오늘도 유익한 내용 감사합니다.
    산서성=기주, 하북성=유주

  • @SamuelSmith1221
    @SamuelSmith1221 2 місяці тому +19

    역시 지도를 보면서 여러 지역 방위가 딱딱 맞는 곳이 정확한 위치네.. 결국 황하 문명 자체가 우리 문명이네..

  • @지혁-x2u
    @지혁-x2u 2 місяці тому +9

    좋은 사료와 해석 감사합니다~

  • @구리의후예
    @구리의후예 Місяць тому +5

    안녕하세요 영상 좀 빌려갔는데 ... 허락없이 빌려가서 죄송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이형-z2x
    @이형-z2x 2 місяці тому +5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 @arcyoon
    @arcyoon 2 місяці тому +39

    저러니 백만을 동원해 처들어오는 것이지 한반도에 찌그러져 있었으면 백만을 이끌고 올 턱이 없음.

    • @father-v9d
      @father-v9d 2 місяці тому +11

      맞습니다

    • @패미박멸
      @패미박멸 2 місяці тому +9

      백만 이끌고 갈려다 왕이 신하들에게 쳐맞거나 죽임을 당할지 모르죠. 왕이 왕다워야 신하도 신하 노릇을 하는거죠.

    • @있다-s2d
      @있다-s2d 2 місяці тому +10

      지당하신 말씀 입니다,
      현지보급품 약탈하는 고기동 위주의 초원기마병 제외하고,
      산악지형이많은 한반도 만주 원정은 행군하다가 자멸 합죠

    • @hishot1078
      @hishot1078 2 місяці тому +4

      당장 사서에 고구리/백제 백만군대라 적혀있는데 그 병력 운용하려면 반도로는 택도 없지요.

  • @booksbogo
    @booksbogo 2 місяці тому +35

  • @carlysu37
    @carlysu37 2 місяці тому +23

    삼국사, 고려사도 모두 부인하고, 이웃한 화하족, 거란 요, 여진 금이 남긴 기록도 부인하고, 오로지 조선사 편수회가 짜깁기한게 사실이라 우기는걸 보면 어처구니가 없죠
    그렇게 따지는 유물, 유적은 어디에 있는지 확실치도 않은데… 맥락은 다르나 역사는 부인하고, 종교는 믿고.

  • @rlslvlrm
    @rlslvlrm 2 місяці тому +7

    기주를 황하를 따라 지정한 부분이 너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네요. 그 당시에도 반드시 이렇게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

  • @father-v9d
    @father-v9d 2 місяці тому +16

    역사적 진실을 알려주는 방송 좋아요 감사합니다 ❤

  • @실크로드다시보기
    @실크로드다시보기 2 місяці тому +12

    눈이멀었다
    시청해주세요

  • @ryumyungryeol6401
    @ryumyungryeol6401 2 місяці тому +17

    훌륭한 영상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kun-wonpark6756
    @kun-wonpark6756 2 місяці тому +8

    이때까지 우리는 조선 이전의 역사는 거의 모르는데 아는 척 하며 살아 왔다는 걸 이렇게 공부하며 배웁니다. 아무리 사마천이 역사 왜곡의 마스터라 해도 모든 역사를 날 조 할 수 없었겠죠. 꼭 죽기전에 고조선, 부여, 고구리, 백제, 신라, 고리의 바른 역사를 알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도 고맙습니다 ^^

  • @g0nny383
    @g0nny383 Місяць тому +3

    옳바른 해석입니다. 기주와 유주는 산서성과 하북성사이에 있는 매우 중요한 지역입니다ㅡ 특히 유주는 대륙나라들과 고구리의 경계가 되는 지역이죠ㅡ

  • @ernieelseungsu
    @ernieelseungsu 2 місяці тому +23

    기가막힙니다 완벽한 해석!!! 👍

  • @Mucho-x2e
    @Mucho-x2e 2 місяці тому +3

    수고많으십니다

  • @윤현월-x9s
    @윤현월-x9s 2 місяці тому +24

    고려사는 알 수 없는 기록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 중 하나도 아래의 기록입니다.
    1343년 05월 18일 원이 송·요·금의 역사기록을 요구하다
    임오 원(元)에서 직성사인(直省舍人) 실덕(實德)을 보내와서 송(宋)·요(遼)·금(金) 3국의 사적(事蹟)을 요구하였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고려가 송나라 요나라(거란) 금나라 3국의 사서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역사학자들은 저 역사서를 어떻게 어떠한 과정에서 무슨 이유로 고려가 보관을 하고 있다가 원나라가 달라고 하니까 그때서야 원나라에 가져다 주었는지도 제대로 밝혀내야 할 것입니다.
    고대 동아시아 모든 전쟁은 저 역사서 따먹기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습니다.
    고조선의 제후국이 모두 78개국이였다는 기록이 고려사에도 나와 있습니다.
    "조선(朝鮮)의 시기에 나라가 조각조각 나뉘어 78개에 이르렀으니, 약한 것은 강한 것에 먹혀 합쳐져 삼웅(三雄)이 되었으나 전쟁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성조(聖祖)께서 흥하심에, 하늘의 전쟁이 가리키는 곳마다 여러 도적 무리들이 평정되었으며, 김부(金傅)가 손님이 되고 견훤(甄萱)에 조정에 왔으며 신검(神劒)이 머리를 바쳐 일통을 이루시니, 자손이 서로 계승하여 457년이나 되었습니다. "
    고려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한나라에 의해 조선이 망하고 저 78개의 나라로 다시 찢어졌다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웅의 시대를 지나 고려로 일통이 되었다가 현재의 한반도에 이성계에 의해 다시 조선이 세워지고 부활하는지에 대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고려사를 읽어보면 고려의 왕은 언제나 송나라 요나라 금나라의 황제들에게 머리만 조아리는 아주 조그마한 나라라고 고려사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저 송요금의 3국의 역사서들을 가지고 있었는지 참으로 미스테리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저는 몽골의 역사를 들여다 보다가 위왕(魏王)의 존재가 대대로 송나라 왕족들이 세습한 것이고, 이들의 통치구역이 청해성 위구르 사하 지역있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참으로 미스테리한 역사입니다.
    송나라 역사를 중국사에서 들여다보면 그들은 5대10국의 역사를 통일한 후주가 영토를 통일한 이후 송나라 황제에게 머리숙이고 갖다 바치면서 북송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일까요? 전쟁에서 단 한번도 이겨본적도 없는 송나라가 중원을 통일하는 스토리가 이렇습니다.
    그런데 고려사를 세번만 읽어 보면 이 송나라의 영토와 고려의 영토는 거의 완벽하게 겹친다는 사실을 알 수도 있습니다.
    경주라는 지명은 고려의 왕건이 삼국을 통일하고 신라의 왕도를 경주로 이름을 바꾸고 신라의 왕족들에게 식읍으로 내렸다는 역사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경주의 역사는 935년 이후에 고려의 왕건이 명명한 도시지, 경주라는 도시가 원래부터 신라의 황도의 이름이 아니였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고려사를 다시 들여다 봐도 고려의 개경은 지금의 중국의 난징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를 뒷받침하는 고지도가 나타났는데 그게 바로 이 천하고금대총편람도라는 아래의 고지도입니다. 이 지도엔 중앙(중원의 한 복판)에 경주가 그려져 있습니다.
    고려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1500여년(신라 1천년+ 고려 500년)동안 중원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던 고대 한국의 역사가 어떻게 한반도로 축소되어 이전되었는지를 자세히 알려주는 그러한 사서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고려의 개경이 어떻게 어떤 시기에 어떠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지금의 한반도 개성으로 들어왔는지도 자세히 알려주는게 우리의 고려사이기도 합니다.
    museum.seoul.go.kr/archive/archiveNew/NR_archiveView.do?ctgryId=CTGRY782&type=C&upperNodeId=CTGRY782&fileSn=300&fileId=H-TRNS-72611-782

    • @윤현월-x9s
      @윤현월-x9s 2 місяці тому

      고려가 어떻게 송요금의 사서를 손에 넣을 수 있었을까? 사실은 그에 대한 해답도 고려사에 추정할만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려사를 다들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았거나 건성으로 보았거나 그 중요성을 간과했거나 그랬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에 대한 질문도 해답도 고려사 본문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고려사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읽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 @텐버거-w4l
    @텐버거-w4l 2 місяці тому +29

    반박불가!👍👍

  • @shh3543
    @shh3543 Місяць тому +3

    중국의 성씨중 가장 많은 왕씨들......
    고리 황제의 성씨인 왕씨가 왜 반도보다 대륙에 많을까를 생각해보면 고리의 본토는 대륙이었던거죠.
    우리가 중국인의 대명사로 부르는 왕서방의 조상은 고리의 본토가 있었던 대륙에 잔류한 고리의 유민 즉 우리와 같은 동이족이었던 겁니다.

  • @데빌-p7m
    @데빌-p7m 2 місяці тому +9

    훌륭하고 논리적이고 이해하기 쉽고 완전 공감가는 설명입니다
    우리역사 히스토리 나날이 발전 하십시요~

  • @erickkim9135
    @erickkim9135 2 місяці тому +11

    과학적 접근이네요. 좋네요. 강단사학자들은 뇌피셜 이야기는 이제 그만

  • @waitgold1234
    @waitgold1234 2 місяці тому +3

    ❤❤❤ 대박

  • @min-sf6fc
    @min-sf6fc Місяць тому +3

    모든 것이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지네요. 중국이 우리의 고대사의 지명을 베껴서 저 지명을 만든 것이 아닌 이상 저곳이 바로 우리 역사서의 지역이겠죠.

  • @Jangjaehun
    @Jangjaehun 2 місяці тому +15

    정말 좋은 내용입니다.
    이상한 애들이 깝쭉거리면서 산옮길까 걱정되는군요.

  • @jonggu-lyuun
    @jonggu-lyuun 2 місяці тому +8

    👍

  • @이일강-l8s
    @이일강-l8s 2 місяці тому +7

    하동, 하서는 황하를 기준으로 하죠. 그러면 서하군은 어디일까요 ?

    • @Ourhistory2023
      @Ourhistory2023  2 місяці тому +6

      서쪽 황하죠 청해 동남쪽에 서하 지명있어요
      감사합니다 💕

  • @립필-m3u
    @립필-m3u 2 місяці тому +10

    적어도 요.금. 원. 청 등 북방민족의 역사는 우리 역사에 편입시켜야 한다.

    • @hishot1078
      @hishot1078 2 місяці тому

      수나라 당나라로 대표되는 선비족도 조(선) (선)비 동이족의 역사입니다.

    • @쭌-e4w
      @쭌-e4w 2 місяці тому

      @@hishot1078동이족이라 하면안됩니다 그건 그들이ㅣ시선에서 부르는것이지

    • @hishot1078
      @hishot1078 2 місяці тому

      @@쭌-e4w 어짜피 동이라는 뜻 자체가 좋은 뜻이고, 거란이 고려와 대화하면서 "동이의 예"를 언급하는 것을 보아 동이들도 동이로 불렀지 않나요.

    • @쭌-e4w
      @쭌-e4w 2 місяці тому

      @ 아니죠 동녘(동) 오랑캐(이) 를 써서 자신들 기준 우리를 동쪽의 오랑캐로 부르는말이 동이 입니다

    • @쭌-e4w
      @쭌-e4w 2 місяці тому

      @@hishot1078 거란기준 우리는 동이가 아니죠 그 역사서들은 화하의시점에 다시쓰여진것들이니

  • @chaahn7648
    @chaahn7648 2 місяці тому +5

    원래 아쉬운것들이 구라를 말한다 : 동북공정... 팩트는 현 중국땅의 절반은 잃어버린 우리땅이다

  • @mozartlim
    @mozartlim 2 місяці тому +10

    👍 감사합니다

  • @실크로드다시보기
    @실크로드다시보기 2 місяці тому +7

    장수.기수.중요하지요

  • @송현직-k9g
    @송현직-k9g 2 місяці тому +5

    고구려 일식최적지가 최신자료로는 몽골쪽임

  • @not_easy.
    @not_easy. 2 місяці тому +6

    월남 '하노이'도 '河內'
    하노이는 한자로 하내(河內) 즉, ‘강 안쪽의 도시’ 또는 ‘강 사이의 도시’라는 뜻이다.
    -백과사전-
    😅

  • @jongmunwoo7655
    @jongmunwoo7655 2 місяці тому +7

    감사합니다 선생님 ❤❤

  • @구리의후예
    @구리의후예 Місяць тому +3

    오오

  • @Noone-w6f
    @Noone-w6f 2 місяці тому +17

    식민 빠빠라? ㅋㅋㅋㅋ 말 어울리는데요 더 한말 찾고 싶다.. 식민사학자 🐦 들!! 항상 듣고 응원할게요

  • @거친바다-b1u
    @거친바다-b1u 2 місяці тому +7

    영상잘봤습니다

  • @문기강-v2i
    @문기강-v2i 2 місяці тому +13

    조선족 김호림 씨가 현장답사로 쓴 책, 고구려가 왜 북경에 있을까를 보면 북경이 고구려 땅이었다는 것인데 강단 사학자들은 확인조차 하지 않고 부정하고 있읍니다. 우리 조상의 영토른 멋대로 포기하는 거죠. 참으로 한심한 작자들입니다.

    • @GOYO-YIYE
      @GOYO-YIYE 2 місяці тому +3

      조선족인데도 불구하고 대단하신분이죠.

    • @종달이-y5e
      @종달이-y5e 2 місяці тому +1

      역사도 모르는 조상들한테 부끄러운 후손임

    • @MX_Korea
      @MX_Korea 2 місяці тому +4

      ​@@GOYO-YIYE 말이 이상하시네요.
      조선족이였음에도? 그들은 우리 민족입니다.
      님 같은 분들 때문에라도 조선족은 더 중국인이 되려고 할 겁니다.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면 절대 조선족 배척 안 합니다.

  • @성승렬-d7v
    @성승렬-d7v 2 місяці тому +28

    이게 우리역사지
    과학적이고

  • @Lookhischiu375
    @Lookhischiu375 2 місяці тому +9

    우리나라 역사해석을 보면 국민을 무식대중으로 이해하기에 방위 지도 논리가 완전 무개념으로 해석해 놓았고 그것을 그대로 믿고 이해했던 저의 모습이 부끄러웠네요.논리없는 역사해석 내용을 암기했고 무논리무개념을 역사학자들은 억지로 믿게 어줍지않는 논리로 대단한 논리인양 포장해서 우리역사를 한반도에 때려 넣었습니다.
    지금은 여러 역사채널중 책보고님 채널이 가장 논리적이고 합당한 해석으로 많은 의문이 풀렸고 우리역사채널을 통해서도 다시한번
    여러의문들이 풀려가네요.
    사람의 뇌구조가 이상하지 않는 이상 논리적체계의 설명 없으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 구조로 되어있다.그래서 우리역사 채널과 책보고 채널이 이해가 잘 갑니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한번 우리역사에 대해 의문을 가졌으면 하고 우리역사 채널 책보고 채널이 교육기관에 널리 퍼지길 바랍니다.

    • @carlysu37
      @carlysu37 2 місяці тому +6

      역사는 왜나 어떻게는 없고 “무조건 외우기”만 있는 앵무새 교육이었어요. 로마노프 왕조의 피터 대제 위인전을 보면 그 당시 전투나 전쟁, 위업을 상세하게 풀어 놓고 있는데. 우리네는 시험에 뭐 나오니 외워라고 했거든요

  • @mayday1044
    @mayday1044 2 місяці тому +5

    황하 평주땅의 갈석산을지나 발해로흘러간다~
    갈석산이 하북 황하옆에 있내

  • @있다-s2d
    @있다-s2d 2 місяці тому +11

    백제,
    하남 위례성
    황하남쪽 위례성
    이단어가 위치를 가르키는 거였네요,
    하북 고구려 하남 백제 딱 들어맞네

  • @임성순-y7m
    @임성순-y7m 2 місяці тому +5

    지리의 변화를 함께 연구하여 참고하면 더욱 좋은 설명이 될것입니다
    특히 하천은 변합니다

  • @나경일-x5s
    @나경일-x5s 2 місяці тому +11

    응원합니다.

  • @질문빌런-f5i
    @질문빌런-f5i 2 місяці тому +4

    근데 요탑이 요나라가 건설했다는 사료가 있나요. 예전에 본거같은데

  • @wyntfix
    @wyntfix 2 місяці тому +5

    송나라 문인들의 외교 보고서나 역사 기록등에는 고려를 만리지국이라 표현함. 조선에서는 명나라를 만리지국이라 부름.

  • @윤현월-x9s
    @윤현월-x9s 2 місяці тому +10

    선생 역사 해석이 물이 오르고 있네요.

  • @pes9867-6
    @pes9867-6 2 місяці тому +3

    사기가 웬지 믿음이 적어서
    이릉을 변호했다가
    궁형에 징역에 잠실형을
    당하고는 변했나
    구글 지도가 참으로 쓸만 하네요

  • @boxerchoi6756
    @boxerchoi6756 2 місяці тому +9

    응원합니다~

  • @정재문-l2e
    @정재문-l2e 2 місяці тому +8

    후한 13주 중에서 기주가 산서성 남부와 하북성 일부(기주의 중심지가 하북 업성), 유주는 하북성 석가장시 서북부와 산서성 일부, 병주는 산서성 중부, 청주는 하북성 동쪽이었다고 보면 될까요?
    그리고 익주는 사천성 지역이었던 건 알겠는데 그 남만도 사천성 남쪽에 있었다고 봐야 하나요?
    또한 양주는 강서성 파양호까지가 그 영역이었죠. 손견이 죽고 갑자기 그 아들 손책이 강소성까지 간 게 이상하지요.
    교주는 형주와 양주가 겹치는 지역이었고 남해는 둥팅호를 가리켰다네요. 그당시 둥팅호는 엄청 큰 호수였답니다.

  • @AlexLee-ob5uf
    @AlexLee-ob5uf 2 місяці тому +6

    섬서성에도 기산,호구,양산이 있고 화주 또한 섬서성에 있었습니다.

  • @KOR.USA-fb6ul
    @KOR.USA-fb6ul 2 місяці тому +12

    🎉

  • @kor1213
    @kor1213 2 місяці тому +12

    장꼬르드의 역사는 딱 70년 입니다.

  • @hyeoksimonoh
    @hyeoksimonoh 2 місяці тому +2

    청주도 기주만큼 우리 역사에서 비중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서 청주는 땅이 기름지고 호걸들도 많아 변란 가능성이 있고 변덕이 심하다고 표현합니다. 왕건이 즉위한지 2년째 개경을 수도로 정하고 궁궐을 짓기 시작했고, 성(개경?서경?청주?) 건설에 반발하는 청주의 민심을 수습하려고 행차하여 위무합니다. 청주인들은 왕건보다 궁예를 선호하는 건지...청주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개경과 철원이 위치한 듯*통설로는 919년(태조2년) 철원에서 개경으로 천도했다고 설명하지만 1년안에 궁궐을 에워싼 성벽도 완공할 수 있었는지 의문. 궁전부터 완성시킨 다음 천도를 감행했을까. 삼국사기에 의하면 안시성 전투에서 당나라가 공성용으로 만든 토산(土山)은 인력 50만, 공사기간이 2개월이었습니다. 후백제와의 전쟁을 앞두고 내정이 불안정하고 기초공사를 위해 기본틀을 잡는다는 개념으로 석성(石城)보다 토성(土城)을 먼저 건설했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더군요. 황토로 된 흙벽돌로 도성(都城)의 성벽을 쌓았다는 게 신빙성이 있는건지??
    중국측 기록은 오대십국시대 청주가 후당, 후진의 청주절도사 대주자사(代州刺史) 한왕(韓王) 왕건립(태조 왕건?) 봉토라고 설명합니다.
    구당서(지리지)는 靑州, 송사(宋史)는 淸州를 설명하는데 한자가 조금 다르고 위치도 다릅니다. 학자들은 구당서의 청주는 산동성 북부까지 포함하는 지역, 송사의 청주는 하북성 창주(滄州)지역이라고 해석합니다.
    청나라의 지도에서 산동의 청주부(靑州府)가 있고, 하북의 창주 옆에도 청주를 함께 표기한 걸 보면 청주의 치소를 이전한 건지 아니면 청나라 때 청주의 범위(관할지)가 하북성 남부와 산동성 북부를 의미하는 듯 합니다.
    왕건립이 산서성 요주의 유사 출신이라고 하고, 후진의 군주가 동평왕(東平王)이던 왕건립에게 한왕이라는 작위를 또 주고, 산서성의 요주와 심주까지 관할하도록 했다는 기록을 읽어보면 왠지 왕건의 고려를 의식하여 오대왕조에서 산서지역을 완충지대로 삼아 전선을 옮기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한나라 초기에 한고조가 묵특선우와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한왕(韓王) 신(회음후 한신과 동명이인) 임지를 태원에서 마읍(삭주시)으로 이전시켰습니다. 초한전쟁 종전 후 제후들의 분봉으로 태원군(太原郡)을 한국(韓國)으로 승격시켰으나 흉노 토벌을 위해 한왕 신의 도읍지를 진양(태원)에서 전국시대 대(代)나라의 영토인 마읍으로 옮긴 것은 한왕을 대왕(代王)으로 '좌천'시킨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韓)은 한(漢)과 달리 중원 왕조의 국호가 된 적이 없지만 춘추오패 중 하나인 진(晉)나라에서 갈라져 나왔고 산동성의 동평에서 산서성의 태원, 요주, 심주, 삭주까지 일개 제후국이라도 활동범위가 오히려 방대합니다.
    조조의 청주병에 관해 삼국지에서 조조의 사병이나 근위병처럼 묘사해 정규군인 것 같지만 원래 황건적이어서 조직력이 다소 미흡한 민병대 혹은 게릴라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더군요. 병력이 30만이라는데 청주군(靑州軍)에서 배출한 명장이 한 명도 없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북해국에서 공융을 포위한 황건적의 두목 관해(유비가 보낸 관우에게 패하여 전사함)는 청주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이 아닌 것 같음.
    장각(태평도를 창시한 종교지도자)이 주도한 초기의 황건적에 비하면 군세가 100만에 이르러 규모가 컸습니다. 농사도 짓고 싸움도 하는 차경차전(且耕且戰) 정책으로 세력이 급성장해(조조의 둔전제는 청주 황건군에서 유래??) 청주, 연주, 기주 3주를 종횡무진으로 활보했습니다. 지세(地勢)가 좋으니 야심찬 군벌이라면 청주를 근거지로 삼을만 했습니다. 명성에 걸맞지 않게 청주 황건적을 통솔하는 무장들, 군사 지도자 이름도 상세한 기록이 없다는 게 미스터리.
    오래전 반삼국지와 비슷한 건지 무슨 역사소설에서 청주 황건적은 오합지졸일 뿐...청주군의 핵심세력은 백제(부여) 혹은 백제의 거수국이나 완충국, 예족, 맥족, 말갈(마한?) 간단히 말해 동이족 일부가 중원의 혼란을 틈타 영토, 인구 등 이권을 노리고 조조의 용병으로 가세했다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삼국지 관련 사이트에서 누군가 댓글로 관도대전에서 원소가 패한 이유 중 하나인 발석차(벽력거)를 만든 기술자들 대부분 백제인 아니면 신라인이었고, 철기 제조술이 탁월했던 부여의 영향을 받아 백의(흰옷)을 선호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삼국연의에서 유엽이 벽력거를 제조, 심배가 쌓은 토산을 파괴함) 수백년 동안 부여의 유민들이 한나라 땅으로 이주한 적이 없었을까. 후한말기 백제 해적(?)이 한반도에서 산동반도로 건너와 대륙 동부 연안에 식민지(담로)를 세웠다는 설도 있었습니다.
    삼국지 오한선비동이전에서 영웅기를 인용하여 업군에 도성을 둔 원소(발해태수와 기주목冀州牧을 역임)가 오환족을 중용하여 북쪽으로 험윤(흉노?선비?) 동쪽으로 예맥(고구려?백제?)을 방비했다고 기술합니다.'北捍玁狁 東拒濊貊 世守北陲 爲百姓保障'
    원소는 예맥을 험윤과 똑같이 중원을 위협할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존재라고 인식한 모양입니다. 통설상 한반도의 예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면 기마민족 오환족은 배도 잘 다루어 발해만이나 황해를 지킬 수 있는 해군력을 보유했다는 건지...오환족의 수장 구력거는 청주, 서주, 기주, 유주 4주를 침공했습니다. 손권이 동천왕을 흉노의 선우라고 불렀듯이 고구려가 흉노(험윤?)의 옛 땅을 점유했거나 흉노의 백성들이 고구려 땅으로 이주했을 수도 있습니다.
    조조의 30만 청주군에 유명한 장수가 없었던 이유 blog.naver.com/lawmin0100/222138347684
    청주병(靑州兵): 오직 조조만 따른다. shanghaicrab.tistory.com/16156551

  • @yeonggeunlee4238
    @yeonggeunlee4238 2 місяці тому +7

    ❤❤❤❤❤

  • @이일강-l8s
    @이일강-l8s 2 місяці тому +6

    하이고~ 우공의 기주는 하나라 이리두 유적과 관련있어요.
    낙양 동쪽에 이리두가 있습니다. 거기가 기주예요. 아~주 작습니다. 이름이 같다고 시대마다 같은 위치가 아닙니다.
    그러니 우공의 갈석산과 진시황의 갈석산은 전혀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 @이일강-l8s
      @이일강-l8s 2 місяці тому

      @@mindcalm 중국이 제시한 근거가 그곳이 양하지간 기주다. 이런 주장을 옮겨왔어요.
      아직 결론은 안났지요.

  • @ILovekorea365
    @ILovekorea365 2 місяці тому +5

    중국이 아니고, 중원으로 해석.
    좋아요 😊

  • @천군만마
    @천군만마 2 місяці тому +3

    눈이멀었다 입니다 히스토리님 영상자료 사용해서 영상 만들어 되나요??

    • @Ourhistory2023
      @Ourhistory2023  2 місяці тому +2

      네 영상 그대로 올리시면 안되고 영상을 조금 편집을 하셔야
      유톱 정책에 안걸려요
      영상 사용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

    • @천군만마
      @천군만마 2 місяці тому +2

      @@Ourhistory2023 네 당연하죠. ^^사진자료
      영상으로 올릴려구요 ^^감사합니다

    • @Ourhistory2023
      @Ourhistory2023  2 місяці тому +2

      네^^

  • @kdsbsb
    @kdsbsb 2 місяці тому +6

    5:19 맹문 밑에 한성이 있네요? 한민족할 때 韓자를 사용하는...여기는 그러면 백제의 한성일까요?

    • @Ourhistory2023
      @Ourhistory2023  2 місяці тому +9

      나라이름 한韓 아주 오래전부터 써왔던 한자에요
      삼한의 한韓뿐이 아니라 성씨로도 사용되었지요 3천년전에요
      백제의 한성은 韓 이 한자가 아니라 漢 일겁니다
      감사합니다 💕

    • @AlexLee-ob5uf
      @AlexLee-ob5uf 2 місяці тому

      잠부론에서 한후에 대한 서술이 있는데 ..그곳이 섬서성 한성이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한후는 위만에게 패하여 도망간 기준의 후손입니다. 《潜夫论•三十五卷•志氏姓》【漢】王 符/撰
      昔周宣王亦有韓侯,其國也近燕,故詩云:“普彼韓城,燕師所完。”其後韓西亦姓韓,為魏滿所伐,遷居海中〔二五〕。

    • @hishot1078
      @hishot1078 2 місяці тому

      ​@@AlexLee-ob5uf 반도 평양석 석각 / 서울 진흥태왕비, 사서를 보면 평양이 한성이고 서울이 남천입니다. 즉 한반도가 낙랑국이었다는 소리입니다.

  • @정도정진
    @정도정진 2 місяці тому +10

    💯

  • @간장맛초코렛
    @간장맛초코렛 13 днів тому

    ㅋㅋㅋㅋㅋㅋ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ㅋㅋㅋㅋ
    유투브 검색하다가 떠서 배잡고 웃다갑니다
    단단히 미친 환빠시네

  • @user-konti-l2020
    @user-konti-l2020 2 місяці тому +4

    수경주도에 심수 오른쪽에 고려수 .태원 오른쪽에 흑수 , 심수의 왼쪽에도 흑수 ...

  • @강신보-c6y
    @강신보-c6y 2 місяці тому +6

    고조선 고구려 고려...
    다~ 시안지역을 기점으로 돌려봐야 합니다
    고구려는 기주에 속했다
    이게 정설이고..
    그 고구려에서, 서남이 백제이고 동남이
    신라입니다
    고려는 시안지역을 서경으로(고구려),
    낙양지역을 동경으로(신라),
    양주 지역을 낭경으로(백제),
    숭산의 남쪽 개경을 수도로 삼한통일을
    이룩 한겁니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후당(後唐) 때에는 왕건(王建)이 고씨를 대신하여 신라(新羅)·백제(百濟)의 땅을 겸병하고 송악(松岳)으로 옮겨 동경(東京)이라고 하고 평양을 서경(西京)으로 삼았다
    고려 발해 유민기사.
    신라(新羅)를 동주(東州) 낙랑부(樂浪府)로 삼아 동경(東京), 백제(百濟)를 금주(金州) 금마군(金馬郡)으로 삼아 남경(南京), 평양(平壤)을 진주(鎭州)로 삼아 서경(西京)이라고 불렀는데 서경(西京)이 제일 번성하였다.
    송사고려전

  • @2f5lofbread57
    @2f5lofbread57 2 місяці тому +4

    사기친사마천

  • @himchage
    @himchage 2 місяці тому +5

    [청정심 박치우]
    "한겨레역사힘차게"
    : 자주적 한겨레 역사관 , 한겨레의 역사 외 세계사 포함 , 국수주의 배격 ,
    동서양 사상과 문화
    역사는 겨레의 정신이다
    바른 정신을 가져야 사람이 바르게 살아가는 것처럼 바른 역사를 가져야 겨레가 바르게 살아간다
    한겨레의 말과 글과 역사는 반드시 공부해야 하고 평생 공부해야 한다

  • @jjyyhh610
    @jjyyhh610 2 місяці тому +4

    👏 👏 👏

  • @쭌-e4w
    @쭌-e4w 2 місяці тому +4

    귀주는 중국의 구이저우성 아닌가요

    • @Ourhistory2023
      @Ourhistory2023  2 місяці тому +4

      기주 를 설명한것입니다
      귀주성을 말한것은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

    • @쭌-e4w
      @쭌-e4w 2 місяці тому +3

      @ 네네 기주와 귀주 다르군요

  • @킴C-k4j
    @킴C-k4j 2 місяці тому +3

    사마천이 생존시에는 고구려가 없었는데?

    • @Ourhistory2023
      @Ourhistory2023  2 місяці тому +4

      기주를 설명한거에요
      사마천이 고려 말을했다고하는것이 아니라
      송나라에서 고려를 말했지요
      감사합니다 💕

  • @hanhan4980
    @hanhan4980 2 місяці тому +5

    감사합니다.
    쌍성이 동계면 서쪽은 북경쪽 초딩도 아는 동서남북
    군역과 요역 및 국방의 지역별 분담체계를 규정한 공민왕 5년의 개혁교서 고려사 원문이미지
    지 권제36
    날짜 | 1356년 06월 미상
    습속이 그러한 것이니 마땅히 동계(東界)와 교주도(交州道)의 군사는 쌍성(雙城)을 지키게 하고, 북계(北界)와 서해도(西海道)는 압록강을
    .

  • @amazigh1980
    @amazigh1980 2 місяці тому +4

    합리적인 분석입니다.

  • @새천지-t3t
    @새천지-t3t 2 місяці тому +4

    역사를 바르게 알자,
    역사상 중국은 한국의 일부였다.
    동이족을 알면 역사를 알수 있다.
    중국은 진시황릉을 공개하라, 진시황릉의 병마상들의 머리 모습은 와 상투 머리 모양을 하고 있을까 ?

  • @송민종-c2z
    @송민종-c2z 2 місяці тому +4

    남북통일 되어서 찾아와야 할 영토

  • @ymkk1747
    @ymkk1747 2 місяці тому +4

    ❤❤❤❤❤❤❤

  • @ILovekorea365
    @ILovekorea365 2 місяці тому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