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죽 댐은 완전히 물길을 막는게 아니라 어느정도 물길의 속도를 늦추는 형식이었을겁니다. 불가능하니까요 그러다가 거란군이 도강하는 타이밍에 맞춰 댐을 터트려서 물살이 거세지도록 하는 용도였을것으로 봅니다. 그정도만 되어도 거란군의 도강의 난이도가 높아지고 이때 기습을 하면 큰 효과를 보았을것 같습니다.
정말 뚝을 만들어 수공을 했다면 생각해볼 수 있는 효과가 몇가지 있는데 첫째로 수심이 깊었다면 도하를 위한 부교를 제거하는게 있을것이고 둘째로 하천 주변을 진흙탕으로 만들어서 기병의 기동력을 제한하는 것이 있을것이며 셋째로 겨울이니 동상 같은 비전투손실을 노리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물로 상대병력 반을 쓸어버리는 것은 소설이나 만화에서만 나오는 장면이니까요.
한반도 겨울에 물도 없을텐데 약간의 물을 완전히 막아 거란군이 물이 없다고 생각하고 건너는 중에 발목 높이 정도까지 물이 내려오면 한겨울에 물에 발을 담궜다가 빼면 얼어서 발이 날아갈텐데 당장 전투에는 별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유의미한 부상병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긴한데 그래봐야 100여명 다칠텐데 노력대비 너무 성과가 없을텐데 과연 이런 강물을 막는 개고생을 했을지 의문이 든다
고려가 청야전술이 발전할수밖에 없는 이유는 거란제국은 당시 약탈을 세계에서 가장 잘했던 특수부대들이 있었고, 애초에 거란제국의 기병대들 자체가 약탈에 특화된 강력한 기병대였기 때문에 거란제국이 침략해오면 요새나 성 안으로 주민들을 대피시킨 후 성 밖의 마을들을 파괴시키고 우물에 독을 타는 등으로 항쟁했죠. 즉, 적군에게 내어주느니 그냥 우리가 파괴하겠다는 진짜 극단적인 전술이었음. 적군이 돌아가도 이미 도시들과 마을들이 초토화가 되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반란으로 이어질수도있는 위험한 전술이기도 했음.
귀주대첩에 대승을 해도 거라하고 고려의 관계는 바뀌지 않았죠 고려가 거란을 상국으로 대접하는 형태로 여전했지만 강동6주 반환이나 왕의 친조를 요구는 고려한테 무리한 요구는 절대로 일절하지 않았죠 이전쟁은 거란입장에서 엄청난 타격이었던것이 송나라하고 여러전선에서 싸우건 경험많고 뛰어난 거란장수들 대부분이 귀주대첩으로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히는등 엄청난 타격이었죠
해석과 위치 비정 잘못됐습니다. 압강을 압록강으로 바꾸어 반도로 집어넣었네요, 고리 서경은 북경이었고, 그 지역에 압강이라는 지명이 있어요. 강감찬도 강한찬으로 읽어야합니다. 한자를 보시면 됩니다. 산지가 70%인 반도에 기마민족이 그 대군을 이끌고 저런 좁은곳을 진군하지 않아요. 자원도 딱히 있는 지역도 아니니까요.
고려시대때 서희가 되찾은 강동6주는 압록강 북쪽입니다 ‘강동’의 뜻은 강의 동쪽을 뜻합니다 즉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는 영토를 되찾아서 강동6주를 설치한 것입니다 만약 강동6주가 평안도라면 강남6주가 되어야 합니다 압록강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서쪽 영토가 지금의 요하 동쪽 철령까지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동쪽 영토가 두만강 북쪽 688리 지점인 공험진까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기술되어있는 고려의 영토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그대로 베낀것입니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신석호입니다 이들은 친일파 역사학자들인데 해방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었기 때문에 다 제거되거나 납북되어서 남한의 역사학계는 이들 식민사학자들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해서 왜곡된 우리 역사를 가르쳤고 그들의 제자들도 식민사학을 배워서 또다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의 제자들은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배워온 것입니다 원나라가 무너진 후 명나라가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땅으로 편입시키겠다고 고려에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에는 철령이 함경도 안변이라고 기술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고려는 그 땅을 지키려면 어디로 군대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함경도이겠죠? 그런데 왜 요동정벌군을 보냈겠습니까? 철령이 요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자 당시 고려 북쪽 지방의 수령들이었던 조휘와 탁청 등이 그 지역을 갖다 바치고 투항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는 고려의 북쪽 영토를 직속령으로 편입시키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나라가 쇠약해지자 공민왕이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해 인당과 유인우로 하여금 군사를 몰아 쌍성총관부를 점령케 합니다 이때 인당은 압록강을 건넜고, 유인우는 두만강을 건넜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쌍성총관부가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 교과서에는 쌍성총관부가 함경도 지역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완전히 왜곡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민왕이 북방 영토를 회복한 후 원나라가 북쪽으로 물러나자 명나라가 고려의 북방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고려에서는 우왕과 최영이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조민수로 하여금 요동을 정벌토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화도 회군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태종때 명나라와 국경을 합의했는데 고려시대때의 우리 영토였던 철령과 공험진까지를 조선의 북방 영토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을 북방으로 보내 4군 6진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이 현재 우리가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즉 4군 6진이 간도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들, 그리고 역사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일제의 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왜곡된 우리 역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땅에 한사군(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의 사마정은 [사기 하본기]의 주석서인 [사기색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귀주대첩은 사천, 노량 해전과 닮아있다. 사천해전은 물때가 맞지 않아 뒤로 배를 물렸다가 다시 물때가 되어 사천 포구의 왜적을 거북선을 먼저 침투 시켜 무찔렀다. 궤멸적 타격을 입히지 않으면 재침의 우려가 있기에 순천의 고니시를 철저히 고립시켰고, 구원을 온 시마즈군을 죽음으로써 물리쳤던 노량해전..
맥락이 안맞죠 ㅋㅋㅋ 한반도에 어거지로 쳐넣을려니 저렇게 되는겁니다 몽진을 나주로 갔는데 길이 너무 멀고 강이 많아 추격을 못했다는데 북방에서 개경까지를 저당시 기병으로 한달이면 충분한 거리임 개경에서 나주면 비교적 북방에 비해 산지도 없고 평야라 더 빨리가는데 왜 추격을 못했는지 의문점 생기는데 지금 사학에선 이걸 말 못함 ㅋㅋㅋ
소배압은 생각보다 무능한 장수입니다. 소배압이 이런저런 전투에서 이겼다고 대단할거라 생각하고... 소배압을 엄청난 장군이라 해야 승리가 더 짜릿하기는 하겠죠. 아무리 거란이 흥하고 고려가 약했다지만 보급도 없이 일직선으로 속도전을 한게 결정적 판단 미스. 거란 최정예 기병 10만을 이렇게 몰살당하게 한 장수로써 무능 자체라고 봐야 합니다.
발해가 강성할 때 신라는 안남(=베트남) 지경에 치우쳐 있다가 고려에 병합되었다는 기록이 만주원류고에 나옵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고려의 영토가 베트남 국경까지라는 것인데. 우리가 배우는 역사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만주원류고만 봐도 백제 신라 고려의 역사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금방 알 수 있읍니다. 우리의 참 역사를 위해 만주원류고를 한 번 방송해주세요.
900년전이나 지금이나 영웅도 있었고 잘처먹고 지만 잘살려는 간신배가 분명있었을텐데 현재도 현역에서 목숨걸고 병사들은 나라를 지키는데 야당이나 여당이나 실세나 유지할려고 하고 어떡하면 잘먹 고 잘살까 상대여당 야당을 어떻게 짓누를까 국민들은 힘들든 말든 관심없고 900년전이나 지금이나 인간들이 어쩌면 이리도 똑같냐. 돈있고 권력에 취한자는 믿을 것이 못된다
두고두고 생각해도 정말 조상님들은..존경합니다..대한민국은 징짜..너무 힘들게 지켜온 나라
야율융서가 직접 설명하니 귀에 팍팍 와 닿는다.
야율베어 님 방송나오는거 너무 좋다. 앞으로도 더 자주 좀 보고싶다.
야율베어ㅋㅋㅋ이씨ㅋㅋㅋㅋ
벡터야율
벡터맨 베어
야율융서야 바보야
거란 성종 야율 베어 ㅋㅋㅋ ㅋㅋㅋㅋ
잘 싸우고 잘지켜주신 고려 백성분들 감사합니다
거란황제 께서 나오셨네요
반갑습니다
거란주 방송폼 미쳤네 ㅎㄷㄷ
어?
아율융서 닮아서 계속 보는데
ㅎㅎㅎㅎ😅 아율융서네
승승장구 하세요 너무 조아요
야율융서갸 출연하니 더 몰입이 되네요
강감찬장군은.
천상에
.문곡성이.인간계로.환생한분.이시기에.하늘의.신명께서.도와.바람의.방향을.바꿔주심이라.❤❤❤
아니 오디오로 듣다가 익숙한 목소리라 설마하고 폰을 들었더니 진짜 야율벡터님이네 ㅋㅋㅋㅋ
뭐야 보다보니깐 거란황제님 앉아있었네 ㅋㅋㅋㅋㅋ
소가죽 댐은
완전히 물길을 막는게 아니라
어느정도 물길의 속도를 늦추는 형식이었을겁니다.
불가능하니까요
그러다가 거란군이 도강하는 타이밍에 맞춰
댐을 터트려서
물살이 거세지도록 하는 용도였을것으로 봅니다.
그정도만 되어도 거란군의 도강의 난이도가 높아지고
이때 기습을 하면 큰 효과를 보았을것 같습니다.
사실 거란 침공한게 양력으로 1월인데. 삽교천이 얼마나 큰 하천인지 모르겠지만 그당시 하천은 얼어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 뚝을 만들어 수공을 했다면 생각해볼 수 있는 효과가 몇가지 있는데 첫째로 수심이 깊었다면 도하를 위한 부교를 제거하는게 있을것이고 둘째로 하천 주변을 진흙탕으로 만들어서 기병의 기동력을 제한하는 것이 있을것이며 셋째로 겨울이니 동상 같은 비전투손실을 노리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물로 상대병력 반을 쓸어버리는 것은 소설이나 만화에서만 나오는 장면이니까요.
한반도 겨울에 물도 없을텐데
약간의 물을 완전히 막아 거란군이 물이 없다고 생각하고 건너는 중에
발목 높이 정도까지 물이 내려오면
한겨울에 물에 발을 담궜다가 빼면 얼어서 발이 날아갈텐데
당장 전투에는 별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유의미한 부상병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긴한데
그래봐야 100여명 다칠텐데 노력대비 너무 성과가 없을텐데 과연 이런 강물을 막는 개고생을 했을지 의문이 든다
광역 장판 슬로우와 약혼란 ㅋㅋㅋㅋ
물이 ㅋㅋ 상당히 무겁습니다. 영상 그림처럼 못막아요
@@hggh3659 1월달이라고 항상 추웠을꺼란 보장도없고..무엇보다 애초에 강이 얼어있었다면 어떤 바보가 댐?을 만들겠어요? 어째거나 물이 있었으니 가죽이던 거적떼기던 막었던거겠지.ㅋㅋ
김한민 감독님이 강감찬 장군의 도 영화로 만들어주시면 좋겠네요. 강감찬 장군뿐만 아니라 양규 장군도 영화 전반부에 나오면 좋겠고요. 영화제목은 라는 두 글자가 좋을 것 같네요. 강감찬 장군과 양규 장군 두 분은 반드시 재조명되어야 하는 분들입니다. ^^
빽터맨 베어폼 미쳤다❤❤
앗 역사돋보기형님이다
거란주가 여기까지 내려오다니
야율정재베어 덩치폼 목소리 미쳤다
벌거벗은세계사, 제작진 피디님께 부탁드립니다,회차 1편 2편..분류좀 표시해주세요, 예) 고려거란전쟁 이야기 1편..2편..표시좀해주세요..감사합니다..
👍👍👍👍
진짜 저런 시대에 살고 있다면 너무 힘들었을꺼 같다
지금이나 저때나
@@LokkoJin 저때 사람들한테 그런 배부른 소리 하면 맞아죽음
@@LokkoJin계속 인생 삐딱하게 살아
@@이상호-y9t 응 투표권없는 잼민이는 자라
@@LokkoJin 한심
야율융서 본인이 와서 듣고 잇음 ㄷㄷㄷㄷ
롹치고 최수종과전쟁이다 알긋나?
선조들 감사합니다.😊
고려는 제4대왕 광종이 칭제건원한이후 자주황제국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동북아최강국 거란-요나라를 꺾음으로써 명실상부한 황제국이 되었다
고려가 청야전술이 발전할수밖에 없는 이유는 거란제국은 당시 약탈을 세계에서 가장 잘했던 특수부대들이 있었고, 애초에 거란제국의 기병대들 자체가 약탈에 특화된 강력한 기병대였기 때문에 거란제국이 침략해오면 요새나 성 안으로 주민들을 대피시킨 후 성 밖의 마을들을 파괴시키고 우물에 독을 타는 등으로 항쟁했죠. 즉, 적군에게 내어주느니 그냥 우리가 파괴하겠다는 진짜 극단적인 전술이었음. 적군이 돌아가도 이미 도시들과 마을들이 초토화가 되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반란으로 이어질수도있는 위험한 전술이기도 했음.
귀주대첩에 대승을 해도 거라하고 고려의 관계는 바뀌지 않았죠 고려가 거란을 상국으로 대접하는 형태로 여전했지만 강동6주 반환이나 왕의 친조를 요구는 고려한테 무리한 요구는 절대로 일절하지 않았죠 이전쟁은 거란입장에서 엄청난 타격이었던것이 송나라하고 여러전선에서 싸우건 경험많고 뛰어난 거란장수들 대부분이 귀주대첩으로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히는등 엄청난 타격이었죠
융서형 앞에서 융서형 얘기중
귀주대첩은 대륙 귀주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한반도 귀주는 1921년에 생긴지명입니다.
그당시 정말 우리 선조님고맙습니다 1차전에 서희 2차전양규 3차전강감찬 우리도 저북쪽 오랑케땅 언젠가는 되찾는 날이오기를 대 고구려 영토 부활
솔직히 거란군을 상대로 문관 출신이 대회전을 전개 한다는 건 진짜 오늘 둘 중 하나는 죽자는 건곤일척의 승부다 마음이 뭉클해진다
양규장군도 문과 출신입니다
@@모두중하나 강감찬 이야기 하는데 난독이 있는 듯 하네요
@@yjon고려시대에는 무관을 업신여기는 풍토가 심했습니다. 나라에서 인재를 등용하는 시험도 문관만 뽑았지 무관을 뽑는 시험은 따로 존재하지 않다가 고려 말기에 생겼다고 합니다. 아마 무관이라는 정식직책이 없어서 그랬다는말을 양규장군을 예로들어서 말하지않았나 싶네요
군사 수도 2배라서 자신감이 있었던거 같습니다. ㅎ
전쟁 경험이 없어서 무식하게 정면승부했나?
저당시 기술로... 소가죽으로... 수공이 정말가능하리라 보는거요? 알만한 사람들이 참 희한한 일이네...
가능은 하지! 고려시대가 무슨 석기 시대인줄 아나보네...
@@우렁이-t7j토목공학 전공한 사람이면 이게 얼마나 개소리인지 알 수 있음
물길을 늦추는 용도로 사용 되었고 도하를 방해 하려고 사용한 전술이지 강을 아에 막아 수장 시키려던건 아니었음 아마 소가죽 만으로 강을 막지는 않았을듯
귀주대첩에서 승리하고나서,
고려는 역관광으로 영토를 넓혔으면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그것도 무리라면 전쟁배상금이라도 받았더라면...
3차가 아니라 6차전쟁이라고 해야합니다. 그래야 왜 개경 직공을 하는 것인지 맥락이 있지요
순간 야율베어인줄... 찰떡이노 ㅋ
야율베어 연기 잘하더라
역시 수종이형
개경에서의 청야전술로 배고픔과 강행군으로 지칠대로 지친 거란군 특히 말이 너무나도 지쳤기에 패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해석과 위치 비정 잘못됐습니다.
압강을 압록강으로 바꾸어 반도로 집어넣었네요,
고리 서경은 북경이었고, 그 지역에 압강이라는 지명이 있어요.
강감찬도 강한찬으로 읽어야합니다. 한자를 보시면 됩니다.
산지가 70%인 반도에 기마민족이 그 대군을 이끌고 저런 좁은곳을 진군하지 않아요.
자원도 딱히 있는 지역도 아니니까요.
앗. 야율융서님 출연!!
흥화진에서 수몰당해서 죽은 병사가 15000정도였는데 3차 전쟁이 10만델고 왔는데 1.5만이면 적은수는 아니지 않나요?
고려가 승전국으로서 전쟁배상금 무지하게 많이 받을수도 있었을텐데
고려시대때 서희가 되찾은 강동6주는 압록강 북쪽입니다 ‘강동’의 뜻은 강의 동쪽을 뜻합니다 즉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는 영토를 되찾아서 강동6주를 설치한 것입니다 만약 강동6주가 평안도라면 강남6주가 되어야 합니다 압록강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서쪽 영토가 지금의 요하 동쪽 철령까지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동쪽 영토가 두만강 북쪽 688리 지점인 공험진까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기술되어있는 고려의 영토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그대로 베낀것입니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신석호입니다 이들은 친일파 역사학자들인데 해방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었기 때문에 다 제거되거나 납북되어서 남한의 역사학계는 이들 식민사학자들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해서 왜곡된 우리 역사를 가르쳤고 그들의 제자들도 식민사학을 배워서 또다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의 제자들은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배워온 것입니다
원나라가 무너진 후 명나라가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땅으로 편입시키겠다고 고려에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에는 철령이 함경도 안변이라고 기술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고려는 그 땅을 지키려면 어디로 군대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함경도이겠죠? 그런데 왜 요동정벌군을 보냈겠습니까? 철령이 요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자 당시 고려 북쪽 지방의 수령들이었던 조휘와 탁청 등이 그 지역을 갖다 바치고 투항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는 고려의 북쪽 영토를 직속령으로 편입시키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나라가 쇠약해지자 공민왕이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해 인당과 유인우로 하여금 군사를 몰아 쌍성총관부를 점령케 합니다 이때 인당은 압록강을 건넜고, 유인우는 두만강을 건넜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쌍성총관부가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 교과서에는 쌍성총관부가 함경도 지역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완전히 왜곡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민왕이 북방 영토를 회복한 후 원나라가 북쪽으로 물러나자 명나라가 고려의 북방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고려에서는 우왕과 최영이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조민수로 하여금 요동을 정벌토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화도 회군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태종때 명나라와 국경을 합의했는데 고려시대때의 우리 영토였던 철령과 공험진까지를 조선의 북방 영토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을 북방으로 보내 4군 6진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이 현재 우리가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즉 4군 6진이 간도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들, 그리고 역사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일제의 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왜곡된 우리 역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땅에 한사군(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의 사마정은 [사기 하본기]의 주석서인 [사기색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심오한 내용이네요..😊
훌륭한 글입니다.
야율융서 백터맨 베어였구나 어디서 봤더라 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주대첩은 사천, 노량 해전과 닮아있다.
사천해전은 물때가 맞지 않아 뒤로 배를 물렸다가 다시 물때가 되어 사천 포구의 왜적을 거북선을 먼저 침투 시켜 무찔렀다.
궤멸적 타격을 입히지 않으면 재침의 우려가 있기에 순천의 고니시를 철저히 고립시켰고, 구원을 온 시마즈군을 죽음으로써 물리쳤던 노량해전..
고려는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언급이 없네
수공은 잘못된 기록일 가능성이 늪다고 하네요 이때 1~2월 사이라는겁니다
그것도 임용한의 추측입니다. 고대기술을 알수가 없는데 임용한이 섣불리 판단한거에요
@@으린이-t5w고대기술이 어느정도인지 몰라도 지금도 어려운걸 하진 못했을겁니다. 토목공학 석사인 이세환도 못한다고 했어요
이익주는역사에서 보니, 고려사와 요사 모두에 수공 이야기가 있었다고 하네요. 믿는 게 좋겠다는 의견.
귀주대첩 거란 피해는 나오는데 고려 피해는 얼마나 됩니까?
베어형 얍츠가이!
3차 침공을 6차 침공이라고도 하죠
뭔 교양프로가 어떻게랑 어떡해도 구분을 못 하냐
역사돋보기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시요 소가몇마리를 잡아야하며
재밌는 전쟁역사를 자장가로 만들다니...
근데 수몰 작전은 당시 기술 상 불가능하다고 하던데 토목공학과 사람이 이건 거의 20세기에 와야 가능한거라고 못 박음. 이 영상은 너무 초보자 레벨인데 좀 중간레벨로 이해하고 싶으시면 토크멘터리 전쟁사 고려거란전쟁 보세요 훨씬 디테일함
수몰이 아니라 물길을 늦추고 한번에 터트려 도하를 방해 하려던 전술임 수몰이라 생각하니 불가능 하다는 말이 나오는거지 실제로 거란군이 도하 하던 부근은 물이 깊은 곳이 아니었음
짐이 나오다니!
양쪽 군대(약 20만)가 전투를 할 공간이 북한지역이 있을까요? 10만 병력이 전투할 공간?
귀주 있습니다. 내레 북한 있을때 많이 가본 장소, 넓은 평양지에 아주 좋은 장소라오
30만 모아놓으면 얼마 안됨. 맨날 광화문에서 시위할 때가 100만이 넘음
고려는 시작과 끝이 전쟁
거란용사 벡터맨!
역사돋보기?
소가죽으로 댐만들었다에서 웃고갑니다 이프로그램은 도대체 정체성이 뭔지 모르겠음 세계사라고 타이틀 달아놓고 크브스 대하사극에 냉큼 올라타네
소가죽 맞지않음???
소가죽 맞는데??
소가죽으로 물을 어케 틀어막어 ㅋㅋ 그 물의 무게를 저시대에 소가죽으로 어케막음. 지금도 못막겠다
@@성이름-x5n8g 잉?? ㅋㅋ 니가 뭔데 역사서에 적힌걸 부정하려고함??? ㅋㅋㅋㅋㅋㅋ
둑에대한내용은 아직도 논란이 있는부분 아닌가요?
본인이 등판했네 ㅋㅋㅋㅋ 야율형ㅋㅋㅋ
고려는 황제국이었다 황제국인 나라가 한반도에 국한되는 좁은 땅덩어리를 갖고 있었다는 것 부터 어불성설이다 지금 우리가 배우는 고려 이전역사는 식민사관이다 고려를 비롯한 이전 삼국시대 영토는 모두 한반도를 포함해서 중국대륙까지 뻗어 있었음이 자명하다
수공은 없었던 걸로 역사가들이 말합니다.
겨울에 댐을 막아 했다는게 말이 됨?
지금의 기술로도 어렵겠다
대회전은 거란의 특기인데
그러니까 어떻게 이겼냐고~
아무런 답도 말해주지 못하네
드라마 제목이 고려거란전쟁인데 드라마에서 보여지지 않은 수공 같은 부분을 넣고 고려궐안전쟁 회차를 뺐어야지... 그리고 3차 고거전만을 기다려달라더니 대차게 우천취소 작가랑 피디가 미치지않고서야
아니 솔직히 국왕이 수도를 ㅜ불태울지 누가알았겠어
설쌤한테 길들여져서 그런가 이분 강의는 ebs 틀어놓은것 같이 졸리네
살수대첩이랑 귀주대첩은 댐 막은거는 구라지...... 그 많은 양의 물의 무게를 도대체 나뭇가지랑 소가죽으로 어케 막음ㅋㅋ
소가죽?? 어이가없네....
지도에 나온 귀주가 그 귀주가맞냐??? 당시 지역들간의 묘사랑 지도랑 전혀 맥락이 안맞는데.....
구주성, 현재 구성역이 맞을겁니다.
맥락이 안맞죠 ㅋㅋㅋ 한반도에 어거지로 쳐넣을려니 저렇게 되는겁니다 몽진을 나주로 갔는데 길이 너무 멀고 강이 많아 추격을 못했다는데 북방에서 개경까지를 저당시 기병으로 한달이면 충분한 거리임 개경에서 나주면 비교적 북방에 비해 산지도 없고 평야라 더 빨리가는데 왜 추격을 못했는지 의문점 생기는데 지금 사학에선 이걸 말 못함 ㅋㅋㅋ
한국역사상 어쩌면 송나라도 굴복한 거란을꺽고 몽골침략전까지 역사상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소리 칠수있는 강대국이 되었던 시대였을듯. 그뒤 또 썩어가긴 했지만..
조선 선조가 고려 현종 발가락 때만큼만 닮았더라면...
소배압은 생각보다 무능한 장수입니다.
소배압이 이런저런 전투에서 이겼다고 대단할거라 생각하고...
소배압을 엄청난 장군이라 해야 승리가 더 짜릿하기는 하겠죠.
아무리 거란이 흥하고 고려가 약했다지만 보급도 없이 일직선으로 속도전을 한게 결정적 판단 미스.
거란 최정예 기병 10만을 이렇게 몰살당하게 한 장수로써 무능 자체라고 봐야 합니다.
잠깐 본인이 나와서 설명하네
이상한 분이네...
강감찬이 문과라고 강조하네...
뭔 역사학자가 이런 소릴...
이보세요
양규장군도 문과 출신입니다.
당시는 문과 무과의 경계가 없었습니다.
오희려 문과 출신이 지휘관이 많이 됐습니다.
덕장 지장 맹장 중...
즉 지장이죠 !!!
@iilililiililililililililil1396문무 구별은 지금 시대에나 익숙하지, 병법이나 군사는 엄연한 인문학 영역입니다. 말타기, 활쏘기는 사대부들의 필수 공부인 육예에 속했죠. 조선만 해도 김종서, 권율, 김시민은 문관이었고, 의병장인 고경명, 곽재우, 조헌은 선비에 가깝지 않습니까.
그때 당시 고려는 문관도 칼질하고 말타기는 필수 였음
수공은 역사적 기록은 없는걸로 아는데 무었이 맞는지 모르겠네요.
거란 이 피해국 같음 ㅋ 고려의 혀드리블보이스피싱에다 가스라이팅 까지 계속 고려에 당함 ㅋㅋㅋㅋ
야율융서도 전쟁군주가 되야할 상황이 아니고 안정적인 태평성대에태어났으면분명성군이되었을텐데 ㅋㅋㅋㅋ😅
야율배압 콤비 좀 활용 잘해주시지😊
소가죽으로 뚝을 만든다고?요쯤세상도 힘듭니다 어떻게 고려시대에 소 가죽으로 땜같은 뚝을 어찌 만듭니까?
타초곡은 약탈을 하는 부대..
문과는 그 사대 발음으로 문꽈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문과임
소가죽으로 댐을 얼마나 큰걸 만들어야 수공을 할까요? 지금 귀주대첩에서 수공은 다 아닐거라고 하는데... 저렇게 강을 막아 수공할만한 강이 우리나라에 있기는 하나요? 참...
그러게요.. 토전사만 봐도 임용한박사님과 샤를세환이 수공은 불가능하다고, 현대 기술로도 불가능하다합니다. 아마도 강을 도하할때 공격을 해서 퇴각하기 어려운상황에서 승리를 이룬게 가장 현실성있다고하네요
@@dklee3497 임용한도 주관적인 생각이 들어간거죠. '고대기술로는 불가능했을거다' 임용한의 생각이 100프로 맞지 않습니다.
역사 전문가 맞나요?
한반도에서 겨울에 말라빠진 강물을 소가죽으로 막아서 터트린들
물이 얼마나 모여서 내려간다고 그걸로 군대가 죽냐
역사 사료 그대로 읽을 거면 설민석 불러와서 재미있게라도 하던가
전문가적 견해는 1도 보여주지 않을거면 왜 나간거야
실제는 도하를 방해하기 위한 목적 수장은 개소리임
드라마는 개졸작임 유목군대인데 보병만 잔뜩 나옴
바람의 방향이 바뀌지 않았으면 고려가 졌을려나?
고려가 왕이라고? 조선이 왕이지
"책보고" 검색 ㄱㄱ
수전은 거짓말이라는게 정설인데 무슨 ㅋㅋㅋ
발해가 강성할 때 신라는 안남(=베트남) 지경에 치우쳐 있다가 고려에 병합되었다는 기록이 만주원류고에 나옵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고려의 영토가 베트남 국경까지라는 것인데. 우리가 배우는 역사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만주원류고만 봐도 백제 신라 고려의 역사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금방 알 수 있읍니다. 우리의 참 역사를 위해 만주원류고를 한 번 방송해주세요.
그저 환빠
당대 송나라도 금나라도~
고려에 함부로 못대했죠~
그나저나 거란족은 고구려, 고려에 아주 기세등등 까불다가~
본전도 못 찾은 2번 호구된 뼈아픈 민족~!
더욱이 인과응보로 천벌을 받았는지 지금은 자취도 없어졌죠. 자신을 기억해 줄 후손이 사라진 것이 패전보다 더 큰 불운인 듯합니다.
소가죽 논쟁은 그만 하시길...둑을 막고 터트리는데 소가죽은 그리 많이 필요 없었을거라 생각됩니다 모래 모아다가 구덩이 만들고 물부은담 손가락 하나로 한부분만 파주거나 막고 있던 손 하나 치우면 모래 둑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그런 원리 아니였을까요?
젅쟁이아닌 큰난이 일어난역사
고려영토가 더 넓은데 ㅡㅡ
고려 영토 지도가 맘에 안드네요 ㅠ
드라마가 다 망치고있어 보니까 어린애들도 부모님이랑 잘보던데
아령하세요 역사돋뽀기입니다
900년전이나 지금이나
영웅도 있었고
잘처먹고 지만 잘살려는
간신배가 분명있었을텐데
현재도
현역에서 목숨걸고
병사들은 나라를 지키는데
야당이나 여당이나
실세나
유지할려고 하고
어떡하면 잘먹 고 잘살까
상대여당 야당을 어떻게 짓누를까
국민들은 힘들든 말든 관심없고
900년전이나 지금이나
인간들이 어쩌면 이리도 똑같냐.
돈있고 권력에 취한자는 믿을 것이 못된다
전문가좀 써라. 역사는. 무슨 한국사 강사수준의 강사네 ㅜㅜ
지도에 나오는 압록강 위치, 서경 위치도 다 틀렸음. 당시 서경은 지금의 중국 베이징 위치이며, 압록강 또한 중국 대륙에 위치한 압록강이 따로 있는데, 이곳이라고 봐야 타당함.
도대체 왜 나오는지 이해가 않감
아직도 수공을 이야기 하는군
야율베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