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I: 로마, 유럽 중세시대 동전들은 다 하나같이 동전 옆면이 정상인게 없는데 왜냐하면 그때도 꼼수로 동전의 가장자리를 갈아서 금/은을 모왔다. 그래서 뉴턴이 동전 옆면에 홈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더 이상 동전을 갈아네는 짓을 구별하기 시작하니 동전 갈아내는 짓을 더 이상 못하게 되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화폐를 주도적으로 쓴 국가는 중국이랑 로마같은 제국이나 중세 서양 길드 정도 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화폐가 의미 있는 건 화폐를 받쳐 줄 충분한 자본력이 있어야 쓰일 수 있는 보증서 같은 건데 그 정도의 보증을 하려면 거대 제국이나 돈의 흐름이 중요한 길드 정도지요. 물론 흉년 한번 들면 돈대신 현물로 거래하는 건 제국도 마찬가지 였고요. 산업혁명 이후 식료품이나 공산품의 가치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쌀이나 무명으로 거래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지만 200년 전만 해도 상평통보 보단 쌀이나 면포가 화폐였죠. 남미의 경우 자국 화폐는 똥취급에 달러만 받으려고 하고 90년도 러시아 경제가 무너졌을 때 화폐 대신 물물교환을 했거든요.
영상에서 더 이야기 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써봅니다. 당백전이나 당오전 같은 고액화폐를 발행해냄으로써 인플레가 유발된 사례 이후에도, 백동화를 전적으로 발행해서 세수와 상거래에 있어서 유통시키려고 하는 정책을 남발하는 과정에서 대량의 인플레이션이 유발되기도 했습니다. (당대에 있어서 연회나 사적인 용도로 재정을 찔끔거리며 쓰지만 않았어도, 만성적인 재정 부족은 나타나지 않았을 터였습니다. 각 부처도 예산을 실정과 현실에 맞지않게 물쓰듯 돈을 요구하고 소모하니 이는 가속화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궁내부가 탁지부의 예산을 마음대로 책정하여 써버리는 사례도 나오곤 하던 때이기도 합니다.) 특히 1900년대 들어서부터는 백동화를 위조하는 게 화폐주조비용과 액면가 사이의 차익이 커짐에 따라서 위폐를 남발하는 자들에겐 쏠쏠한 사업으로서 자리메김 했지요. 더군다나 그 당시에 있어서는 대한제국 정부 입장에서 구멍난 재정을 충당하고, 전적으로 백동화를 유통시키기 위해서 은본위제의 기준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백동화를 발행해냈는데, 그 과정에서 관서나 여타 부처들이 폐화를 찍어내 남용하는 건 물론, 화폐주형을 심지어는 다른 사적 집단이나 개인에게 빌려주는 경우도 흔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럼에 따라서 나타나는 백동화의 종류만 해도 그 당시로서는 네 종류 였는데, 종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1.정부 백동화 2. 2급위조동전 3. 3급위조동전 4.밤에만 통용되는 돈 이에 관해서 여러 국가의 대사들로부터 탄원이나 청원이 단시일 내로 다차례 날아오곤 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위폐를 유통시키는 것을 단속하고, 실형을 선고하는 등의 방식으로 조선내에서 위폐가 남발되는 사태를 진정시켜 보려고 했습니다. 제일은행을 세운 시부사와 에이이치 남작은 제일 은행 어음을 사용케해보려고도 했으나, 이를 궁내부 대신이었던 이용익이 강제로 틀어막았지요. (물론 이는 당대 조선반도에 진출한 여러 일본인이 운영하는 가게나 사업체들이 있을 터인데, 조선화폐의가치가 겉잡을 수 없이 급락해간다면, 조선내 자국민들의 경제적 소득과 상황을 보전치 못할 가능성이 농후했으니,이는 곧 조선을 우선 정치적으로 지배하기에 앞서 경제적으로 먼저 종속시켜 다루기 쉽게 하려는 계획이 어긋날 수도 있었던 부분입니다.) 이렇듯 대한제국 때의 재정과 그에 따른 통화문제가 심각했으니, 일본은 첫번째로 협약을 체결할 때, 재정고문을 파견했고, 그 길로 화폐정리를 단행할 수 있었지요. 백동화의 교환에 있어서 가치를 달리 설정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 백동화의 위조가 심각한 수준으로 이뤄져 왔기 때문에 차등을 든 것으로 보여집니다. 대한제국의 재정과 통화문제에 대해서는 앵거스 해밀턴이 쓴 (1904), 그리고 얼레인 아일랜드의 (1926)를 보시면 될 듯합니다.
할배들 말 들어보면 70년대까지도 지방은 쌀이나 곡식으로 물물교환도 흔햇어. 이병철 자서전 보면 6070년대엔 은행 대출 받다는 개념 자체가 없엇기에 은행돈을 자기돈 쓰듯 사용햇다고 하고..사실상 화폐, 금융이라는 개념이 일반 시민들에게 까지 본격적으로 인식된건 80년쯤 부터라고 봐야지..
오히려 조선은 위조 화폐보단 기껏 화폐를 만들어논 걸 녹여 놋그릇 만들어대던게 더 큰 문제였..... 동이 거의 전량 수입이다 보니 동이 들어가는 놋그릇 자체가 일종의 부의 상징이었는데, 동전을 통해 동을 확보할 수 있다는게 알려져서 놋그릇을 원하던 사람들이 죄다 동전을 녹여서 기껏 유통시킨 동전이 줄어 다시 물물교환을 시작하게 됨....
인사동에서 실제 과거 엽전을 파는 곳이 있는데, 그동안엔 늘 상평통보만 한닢씩 사오다가 예전에 우연히 거기서 청나라 동전을(도광제 시기 동전인 도광통보) 발견해서 얼른 사왔던게 생각나네요 ㅋㅋ 청나라 동전이 왜 인사동에서 팔리고 있었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가 이 영상에서 언급했던 내용들(청전의 조선 유통)을 조금 미리 알게 됐었죠...
와, 이 주제는 조선시대에 위조 화폐가 있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일 것 같아요. 역사와 경제에 관련된 내용을 다루는 댓글은 조선시대에 화폐의 발행과 위조에 대한 역사적 배경, 그리고 이에 따른 사건들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나눌 것입니다. 댓글에서는 시청자들이 이 주제에 대한 조선시대 화폐의 발전과 위조에 대한 관련 정보, 그리고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조선시대의 화폐 시스템과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에 대한 토론이 될 것 같아서 읽는 재미가 더해질 것 같아요. 조선시대 화폐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흥미로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건 인플레가 갈때까지 가서 생긴 문제인걸로 압니다. 인플레 이전엔 상평통보의 가치가 훨씬 높았는데 어떤 멍청이가 그걸 녹이나요... 그냥 그돈으로 놋그릇을 사지. 인플레가 심해져 화폐의 가치를 상실하니 차라리 물건을 만드는게 낫다고 생각하는거죠. 정부입장에선 어찌됐건 발행한 화폐인데 화폐로서 쓰이질 않으니 골치인거죠.
대신 답해드리자면 현대 기술론 반대편까지 파는게 불가능합니다. 지각(우리가 밟는 단단한 땅)을 다 뚫기도 힘들고, 뚫더라도 맨틀부분은 마치 요플레같은 유동성을 가진 고체여서 뚫는다는 개념이 불가능하고, 온도도 매우 높아서(쉽게 생각하시면 마그마같은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맨틀을 뚫는것도 불가능 합니다.
세금을 쌀로 받아서 화폐경제가 활발하지 못했음. 중국은 장거정 이후 은으로만 받았는데 우리나라는 대동법 정착되고 쌀로만 받음. 그리고 자원적으로 동전을 유통하자니 동이 부족하고 은은 좀 나는데 은 많다고 하면 은본위제 이후로 은에 미친 중국이 조공으로 바치라고 하니까 걍 현물거래 위주로 거래한 거임. 우리나라가 연은분리법 개발해놓고 일본이 돈 벌게 된 이유가 은 만들어봤자 중국한테 삥뜯겨서임....
역사 배워보면 알지만 한반도의 화폐의 도입은 꾸준히 중앙정부에 의해 시도되었으나 성공한 적이 없음. 대한민국 까지 와서는 애먹지 않고 당연히 화폐가 쓰이는걸 보면 그 이전에는 경제구조 본판 자체가 성공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봐야함. 도입실패한 화폐니까 위조로 인해 얻게 되는 이득도 적고, 위조도 잘 안했을거임.
뉴턴:위조지폐 잡기 귀찮.. 그치만 긁어모아 녹여서 복제하는놈등은 잡았..
톱니모양이 긁어내는거 방지도 있지만 위조 방지 역할도 있었다네요. 아무래도 톱니가 있다보면 똑같이 복제하기가 더 어려우니까 그렇겠죠?
@@ns. 그걸 다 세고 다 파내서 만들어내는 장인들은 위조할 이유가 없으니...
@@ns. 주조로는 약간 모양이 이상해지거나 하는데 여기서 톱니까지 생긴다면 기술적으로 대량생산할 환경이 안된다면 상당히 어렵긴 했죠.
그 반대 아닌가요
위조범들은 다 잡아서 떼돈 벌었는데 녹여서 은 파는 사람들만 못 잡은
@@minhyeokkim1949 야밤의 공대생 만화에서 봤는데 기억이 안나서 헷갈려요
TMI: 로마, 유럽 중세시대 동전들은 다 하나같이 동전 옆면이 정상인게 없는데 왜냐하면 그때도 꼼수로 동전의 가장자리를 갈아서 금/은을 모왔다. 그래서 뉴턴이 동전 옆면에 홈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더 이상 동전을 갈아네는 짓을 구별하기 시작하니 동전 갈아내는 짓을 더 이상 못하게 되었다.
근데 그짓을 한 놈이 또 있음
금화 / 은화의 경우 녹여서 틀에 부으면 그만한 가치를 하나....
멀다면 먼 일이고, 최근이면 최근이지만
10원짜리 구권을 전부 모은 다음
녹여서 구리 괴를 만들어 유통하던 일당들을 검거했던 사건이 있었죠...
모왔다 (x)
모았기 때문이다 (o)
@@alphado_dev 알파도 (X) 알파고 (o)
@@BraveEcho 10원 구권은 액면가보다 제작비가 더 들어서 가능했던 것 같음
산업혁명 이전까지 화폐를 주도적으로 쓴 국가는 중국이랑 로마같은 제국이나 중세 서양 길드 정도 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화폐가 의미 있는 건 화폐를 받쳐 줄 충분한 자본력이 있어야 쓰일 수 있는 보증서 같은 건데 그 정도의 보증을 하려면 거대 제국이나 돈의 흐름이 중요한 길드 정도지요.
물론 흉년 한번 들면 돈대신 현물로 거래하는 건 제국도 마찬가지 였고요.
산업혁명 이후 식료품이나 공산품의 가치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쌀이나 무명으로 거래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지만 200년 전만 해도 상평통보 보단 쌀이나 면포가 화폐였죠.
남미의 경우 자국 화폐는 똥취급에 달러만 받으려고 하고 90년도 러시아 경제가 무너졌을 때 화폐 대신 물물교환을 했거든요.
화폐 하나 만드는 비용이 실제 가격보다 많이 들어가야.. 위폐가 안 생기죠.
심지어 중국도 비싼 화폐는 금, 은으로 대체했습니다. 조선은 그런 노력조차 안하고 발행했으니.. 화폐가 제구실을 못하죠.
@@클램프-j4f만드는 비용이 화폐가치보다 높으면 화폐 녹여서 팔겠죠ㅇㅅㅇ
옛날에는 화폐가 발행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가 신뢰도였죠...
그야 지금은 나라에서 그 가치를 보증하지만 옛날에는 나라가 계속 멸망해버리니...
그래서 중세 화폐도 금이나 은같은 귀한 걸로 하는 금본위제를 기반으로 깔고 들어갔습니다
여기선 안 나왔는데 상품 화폐였던 면의 가치가 하락한것도 인플레이션에 한 몫했습니다 청으로부터 영국산 면이 수입되었고 당연히 화폐의 한 축인 면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재정에도 변동을 주죠
영상에서 더 이야기 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써봅니다.
당백전이나 당오전 같은 고액화폐를 발행해냄으로써 인플레가 유발된 사례 이후에도,
백동화를 전적으로 발행해서 세수와 상거래에 있어서 유통시키려고 하는 정책을 남발하는 과정에서 대량의 인플레이션이 유발되기도 했습니다.
(당대에 있어서 연회나 사적인 용도로 재정을 찔끔거리며 쓰지만 않았어도, 만성적인 재정 부족은 나타나지 않았을 터였습니다.
각 부처도 예산을 실정과 현실에 맞지않게 물쓰듯 돈을 요구하고 소모하니 이는 가속화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궁내부가 탁지부의 예산을 마음대로 책정하여 써버리는 사례도 나오곤 하던 때이기도 합니다.)
특히 1900년대 들어서부터는 백동화를 위조하는 게 화폐주조비용과 액면가 사이의 차익이 커짐에 따라서 위폐를 남발하는 자들에겐 쏠쏠한 사업으로서 자리메김 했지요.
더군다나 그 당시에 있어서는 대한제국 정부 입장에서 구멍난 재정을 충당하고,
전적으로 백동화를 유통시키기 위해서 은본위제의 기준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백동화를 발행해냈는데,
그 과정에서 관서나 여타 부처들이 폐화를 찍어내 남용하는 건 물론, 화폐주형을 심지어는 다른 사적 집단이나 개인에게 빌려주는 경우도 흔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럼에 따라서 나타나는 백동화의 종류만 해도 그 당시로서는 네 종류 였는데,
종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1.정부 백동화 2. 2급위조동전 3. 3급위조동전
4.밤에만 통용되는 돈
이에 관해서 여러 국가의 대사들로부터
탄원이나 청원이 단시일 내로 다차례 날아오곤 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위폐를 유통시키는 것을 단속하고, 실형을 선고하는 등의 방식으로 조선내에서 위폐가 남발되는 사태를 진정시켜 보려고 했습니다.
제일은행을 세운 시부사와 에이이치 남작은 제일 은행 어음을 사용케해보려고도 했으나,
이를 궁내부 대신이었던 이용익이 강제로 틀어막았지요.
(물론 이는 당대 조선반도에 진출한 여러 일본인이 운영하는 가게나 사업체들이 있을 터인데, 조선화폐의가치가 겉잡을 수 없이 급락해간다면, 조선내 자국민들의 경제적 소득과 상황을 보전치 못할 가능성이 농후했으니,이는 곧 조선을 우선 정치적으로 지배하기에 앞서 경제적으로 먼저 종속시켜 다루기 쉽게 하려는 계획이 어긋날 수도 있었던 부분입니다.)
이렇듯 대한제국 때의 재정과 그에 따른 통화문제가 심각했으니,
일본은 첫번째로 협약을 체결할 때,
재정고문을 파견했고,
그 길로 화폐정리를 단행할 수 있었지요.
백동화의 교환에 있어서 가치를 달리 설정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 백동화의 위조가 심각한 수준으로 이뤄져 왔기 때문에 차등을 든 것으로 보여집니다.
대한제국의 재정과 통화문제에 대해서는
앵거스 해밀턴이 쓴 (1904),
그리고 얼레인 아일랜드의 (1926)를 보시면 될 듯합니다.
이미 19세기 말에는 화폐에 특수기술이 들어가서... 위폐 만들기가 엄청 어려웠는데..
흥선 대원군이 쇄국해주시는 덕분에.. 조선만 위폐가 쉬운 화폐를 쓰고 있었음..
간단 요약. 당백,당오,청전에서 교훈 얻는거 없이 은본위제 흐름을 무시하고 백동화 삽질에 가치차이, 통화량 증가로 위조업자 성행. 일본에서는 제일은행 어음(제일은행 담보 화폐)를 해결책을 제시했으나 거절당하고 을사조약 이후 메가타의 조치로 백동화 싹 강제정리되고 제일은행 화폐가 조선에 퍼짐.
고마워요 스피드웨건
한글날기념 조선시대화폐얘기 굿
당백전이 실패한 다른 이유…
세금 낼 때 안 받아 줬습니다.
정부가 만들었지만 정부도 안 받는 돈을 누가 쓰겠습니까?
어제 지하철에서 사물궁이 잡학지식님 나오던데 ㅋㅋ
할배들 말 들어보면 70년대까지도 지방은 쌀이나 곡식으로 물물교환도 흔햇어.
이병철 자서전 보면 6070년대엔 은행 대출 받다는 개념 자체가 없엇기에 은행돈을 자기돈 쓰듯 사용햇다고 하고..사실상 화폐, 금융이라는 개념이 일반 시민들에게 까지 본격적으로 인식된건 80년쯤 부터라고 봐야지..
고종실록 24권, 고종 24년 3월 29일 정사
설사 깊은 산골에 사는 아낙네나 어린아이라도 1문(文)의 상평통보를 보면 반드시 지극한 보배라고 하는데, 이것은 익숙히 보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조선은 위조 화폐보단 기껏 화폐를 만들어논 걸 녹여 놋그릇 만들어대던게 더 큰 문제였.....
동이 거의 전량 수입이다 보니 동이 들어가는 놋그릇 자체가 일종의 부의 상징이었는데, 동전을 통해 동을 확보할 수 있다는게 알려져서 놋그릇을 원하던 사람들이 죄다 동전을 녹여서 기껏 유통시킨 동전이 줄어 다시 물물교환을 시작하게 됨....
연가시가 어떻게 곤충들의 몸를 조종하는지 궁굼해요
내가 곤충이되고 곤충이 내가되는 물아일체의 경지!!
에그박사한테 물어봐
@@Bgdeeew13r45 장자 연전연승!
재밌다
와 이거 진짜 궁금했는데
조선의 위조 화폐 관련한 에피소드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도 제법 있었던 걸로 기억함,
당백전의 유통시작은 1866년 11월
당백전의 주조중단은 1867년 5월
당백전의 유통금지는 1868년 5월입니다
어느시대건 사람들 생각이 비슷하네..
녹여서 만들기 조차 귀찮고 어려워서 그냥 안했을거 같아요. ^^;;; 영상 재미있었습니다.
어느 시대 건, 꼭 있는 사람들!
화폐는 문명국가 테크의 완성형으로 국가 자체의 신뢰도와 강력한 행정력이 깔려있지 않으면 시도 조차 할수 없는 제도임.
당장 짐바브웨만 봐도 국가 신뢰도와 행정력이 곱창났을때 화폐가 어떻게 되는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음.
위조화폐는 화폐란 개념이 생기고 난 이후로 한번도 없어진적이 없는듯..
얼른 인스타도 돌아와요!
탄산음료를 빨리 삼키면 이가 덜 상하는지에 대해 취재해주시면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 비교하자면 조폐공사가 화폐 발행 기술과 전용용지를 독점하니 다른 곳에선 위폐를 만들 수 없었고 오히려 조폐 공사 자체 비리가 제일 큰 문제였던거군요.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의 비리가 진짜 문제였군요
왜 육회랑 연어를 같이 파는지도 궁금해요.
많은 음식중에 왜 하필 육회랑 연어인지!
비는 구름에 일정량의 수분이 모이면 내리는걸로 알고있는데 왜 얇은비 굵은비 등 비의 종류가 생기고 굵기가 다른걸까요?
눈도 마찬가지로 함박눈 가랑눈 진눈깨비 등 종류가 나눠지는 이유가 뭘까요?
엽전도 쉽게 찍어냈을것 같긴 한데...
인사동에서 실제 과거 엽전을 파는 곳이 있는데, 그동안엔 늘 상평통보만 한닢씩 사오다가 예전에 우연히 거기서 청나라 동전을(도광제 시기 동전인 도광통보) 발견해서 얼른 사왔던게 생각나네요 ㅋㅋ
청나라 동전이 왜 인사동에서 팔리고 있었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가 이 영상에서 언급했던 내용들(청전의 조선 유통)을 조금 미리 알게 됐었죠...
와, 이 주제는 조선시대에 위조 화폐가 있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일 것 같아요. 역사와 경제에 관련된 내용을 다루는 댓글은 조선시대에 화폐의 발행과 위조에 대한 역사적 배경, 그리고 이에 따른 사건들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나눌 것입니다. 댓글에서는 시청자들이 이 주제에 대한 조선시대 화폐의 발전과 위조에 대한 관련 정보, 그리고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조선시대의 화폐 시스템과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에 대한 토론이 될 것 같아서 읽는 재미가 더해질 것 같아요. 조선시대 화폐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흥미로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로 원나라에서는 위조지폐 발행시 처형시키겠다는 문구를 지폐 한 구석에 기재해놨습니다... ㄷㄷㄷ
good
위조화폐만으로도 끌리는 주제인데 조선시대의 위조화폐라고?
이거이거 못 참습니다
아예 나중엔 비싼 구리로 상평통보 만들어주면 고마운일이라 묵인하는 경우가 많았다네요
역시 사람 욕심은 ...
오히려 상평통보를 녹여 놋그릇을 만드는 문제가 더 심하지 않았나요?
그건 인플레가 갈때까지 가서 생긴
문제인걸로 압니다.
인플레 이전엔 상평통보의 가치가 훨씬
높았는데 어떤 멍청이가 그걸 녹이나요...
그냥 그돈으로 놋그릇을 사지.
인플레가 심해져 화폐의 가치를 상실하니
차라리 물건을 만드는게 낫다고 생각하는거죠.
정부입장에선 어찌됐건 발행한 화폐인데
화폐로서 쓰이질 않으니 골치인거죠.
하잉🥰🤗🥰🤗
4:32 동전가치가 높아서 동전이 국외로 유출되면 인플레이션이 아니고 디플레이션이 오는거아님?
어디서나 문제가 있네요
악화가 양화를 밀어낸다는 통칭 그레샴의 법칙이 조선시대에도 적용된게 주목할만하네요.
4:50 80년동안 8배 올랐으면... 물가상승률 연 2%네?
사물궁이님 영상처럼 제작하려면 어떤 프로그램을 배워야하나요?
애프터이펙트랑 일러스트 배우셔야 할 것 같네요.
@@사물궁이 감사합니다!
캐치미 이프유캔 보면 미국은 대단한걸 보여주죠 ㅋㅋㅋㅋㅋ
그 영화 내용의 상당수는 허구 입니다.
안 궁금했는대 궁금해 지는 마법...
사물궁이님! 진짜 궁금한거있는데 지상에서 반대편땅 이 보일정도로 땅을 엄청판다음에 그 아래로 떨어지면 어떻게되나요? 중력때문에 어떤일이발생하는지 궁금해요!
대신 답해드리자면 현대 기술론 반대편까지 파는게 불가능합니다.
지각(우리가 밟는 단단한 땅)을 다 뚫기도 힘들고, 뚫더라도 맨틀부분은 마치 요플레같은 유동성을 가진 고체여서 뚫는다는 개념이 불가능하고, 온도도 매우 높아서(쉽게 생각하시면 마그마같은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맨틀을 뚫는것도 불가능 합니다.
설령 뚫었다 하더라도 엄청난 기압과 온도 때문에 절반도 못지나가서 쪄죽을 겁니다...
@@루트비히_카를 아 감사합니다!
왔다리 갔다리 합니다
가운데가 중력이 제일 쎄서 끝에서 끝으로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에는 중앙에 가만히 있습니당
어디 물리 문제에서 본것같은데... 용수철처럼 왔다갔다 진동한다고 하네요
애초에 가치가 별볼일 없으니 위조조차 하지 않았군요 ㅜㅜㅜ
동전은
너무 가치가높으면 만들어쓰고
너무 가치가없으면 녹여서팔고
종이화폐는 국가가 보증을 설수있는가가 가장크고
암호화폐는 제대로 된 화폐가 아니고
다음화폐는 뭐가나올지 궁금하네요
이젠 화폐가 거진 필요없죠.
요즘 젊은 사람들중 현금 들고 다니는
비중이 얼마나 될까요~
하다못해 초등학생도 카카오뱅크 계좌는 기본~
스마트폰으로 QR결제하면 그만이죠.
지금의 현금은 단점만 존재하죠.
@@뽀얀허벅지 일단 가상계좌도 편의성에 차이가 있을뿐 종이화폐의 연장선이라 보는게 맞지않을까요?
@@뽀얀허벅지 형태만 바꼈을뿐 전자화폐라 해서 엄연히 화폐입니다.
암호화폐가 제대로 된 화폐가 아니란 것도 발행주체의 신뢰에 관한 문제같네요
암호화페도 은행에서 발행해주면 가능한 일임 예를들어 은행에 10원을 주면 10코인을 주는 방식
통장의 역할을 대신한다 볼수 있고 개인정보도 확실히 보호 받지만 범죄나 탈세의 위험이 있어 사용하진 않을듯
2:44
세금을 쌀로 받아서 화폐경제가 활발하지 못했음. 중국은 장거정 이후 은으로만 받았는데 우리나라는 대동법 정착되고 쌀로만 받음. 그리고 자원적으로 동전을 유통하자니 동이 부족하고 은은 좀 나는데 은 많다고 하면 은본위제 이후로 은에 미친 중국이 조공으로 바치라고 하니까 걍 현물거래 위주로 거래한 거임. 우리나라가 연은분리법 개발해놓고 일본이 돈 벌게 된 이유가 은 만들어봤자 중국한테 삥뜯겨서임....
진짜 유사국가네 ㅋㅋ
2:49 TMI:소달구지는 사형주만 탄다
보통 저런건 만드는게 돈 더들어서 안만들었던데
위조화폐는 설악산에도 전해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음.
어떤곳에서 봤는데 위조하는게 더 비싸서 안했다고하던데요?
저런 위조화폐를 사주전 (私鑄錢) (사적으로 주조한 돈)이라고 불렀다고 하더군요.
영상 제작을 어떻게 하는지 또 녹음은 어떻게 하는지 자료 수집은 어떤 식으로 하는지 궁금한데 영상 만들어 주세요!!
그때도 인플레이션이…있었군요……
ㄷㄷ
왜 유리에 입김을 불고 닦으면 잘 닦일까? 해주세요
오
왜 눈을 찡그리면 잘보일까요
ua-cam.com/video/caN97mztbng/v-deo.html
이미 다룬 주제입니다!
"갑자기 멍을 때리는 이유가 뭘까?"
조선 시대에 우리 나라에서 당연히 동이 나왔겠지 하고 위조 화폐를 엄청 찍어댔을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ㅎ
역사 배워보면 알지만 한반도의 화폐의 도입은 꾸준히 중앙정부에 의해 시도되었으나 성공한 적이 없음. 대한민국 까지 와서는 애먹지 않고 당연히 화폐가 쓰이는걸 보면 그 이전에는 경제구조 본판 자체가 성공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봐야함. 도입실패한 화폐니까 위조로 인해 얻게 되는 이득도 적고, 위조도 잘 안했을거임.
슬프면 왜 목이 메이는지 궁금해용
참 여러모로 조선은 참담한 나라였네
왜 몇백억 몇천억 들이는 영화들에 옥에티가 있는건지 궁금해요
0:40 아하! 옛날에는 쌀, 한우, 소금 복제 기술이 존재했군요! ㄴㅇㄱ
?????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으로 일본식민지로 가는 원인만 제공한줄 알았더니.. 화폐개혁도 못하는.. 천하의 민폐덩어리였네.
🤔
ㅢ?
흥선대원군 커여워
돈으로 살수있는 사회가 아닌데 돈을 위조를 왜 함 ㅋㅋ 농본주의 라서 돈으로 물건을 사는것보다 관 직 인맥으로 물건을 얻는 시대임 절대 돈으로 물건을 못삼 닭 한마리도 사는것보다 뀡을 잡아서 닭하고 교환하는게 더 편함
지금의 종이돈:지폐
구한말 인플레이션 설명하시면서 고종 때 왕가생활비명목으로 동전 미친듯이 찍어냈던 얘기는 안하시네요.
ㅘ!
잇엇죠
ㅋㅋ 예나 지금이나 ㅋㅋ
그래서 조선 왜저렇게생김
ㅋ
위조화폐를 만들려해도 가치가 있어야지인가 ㅋㅋㅋㅋㅋ
.
짐바브웨 달러를 위조해봤자 인가
좀... 미안하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도야지들)
이런것 때문에 아무리 중국이 싫어도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이랑 상호 원만한 관계를 유지 해야하는건데.. 지금 일방적으로 중국을 적대하고 있으니 큰일이네
개인적으로 나는 한글날 특집을 위한 단어 뜻 정확히 알기를 원했는데...
애송이, 후레자식, 참신하다, 영특하다, 신선하다 등등...
그런 좀 특별한 내용을 원했었는데...
그런건 중립성 위반할 수 있는 부분이어서 하기가 어렵습니다.
요즘은 약간이라도 중립성을 위반하면 불편러들이 들어와서 ㅈㄹㅈㄹ하기
때문이에요.
한글날 특집으로 니가 알아봐라.
해주면 좋은거고 아니면 마는거지 뭘 시부렁대고있냐
@@Ycmjg37143 그렇군요...
OK, 알겠습니다.
어차피 한글이랑 별 상관없이 나온 말일듯
제발 한"글"과 한국"말"을 구분좀 해주세요.... 님이 말하는건 "말" 이고 한글은 걍 "글" 입니다
있었겠지...요즘 너무 뻔한것만 한다
위조할 가치 자체가 없었던 걸까?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