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 소장님의 참역사강의를 우리의 자라나는 어린 학생들이 많이 듣고 시청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의 잘못된 역사를 올바른 역사로 다시 바로잡기위해서는 젊은 학생들이 바른 역사인식을 가져야 할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덕일 소장 같은분이 문화부장관이나 동북아 역사단체장을 맡아야 합니다
1. 힘만들고 알아주는 이도 없는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이런 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세월은 흐르고 계속 친일파들의 거짓역사만 신봉하는 후손들이 민족정기 확립에 관심이 없어진다면 정말 큰 일이고 이런 선생님들이 생존해 있을때 정부가 거국적인 지원을 하고 역사학자들을 배출시켜야 하는데 현실은 친일파들이 정계와 학계 언론계 모두 장악하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2. 친일파 박멸을 단념한 정치권, 투표소수개표가 아닌 전자개표로 국민의 주권을 유린하는 정치권에선 희망이 없음에도 국민들은 이를 전혀 간파하지 못하고 세뇌충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노예로 살면서도 국민의 편에 있는 극소수의 정치인들에겐 저들의 부추김대로 맹목적인 비난을 하는걸 보면 정말 암담합니다. 올바른 대통령 하나 나오면 천명 만명의 민족사학자들이 못하는 일을 단번에 할 수 있습니다. 열쇠는 훌륭한 정치인 입니다... 3. 일본에게 뺐긴 사료라도 회수할 수 있는 비책을 마련해서 꼭 시행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걸 회수하기 전에 일본이 바다로 침몰하거나 한일간 전쟁때 진짜로 사라지지 않을지 걱정이 될 정도네요
고구려원정을 위해 수나라 군사들이 탁군에서 집결했다면 고구려와 수나라의 국경은 탁군근처에 있다고 봄이 타당합니다.군사적 보안이 유지되는 범위안에서 집결지를 상대방국경에 바짝 붙여야 인적,물적 비용이 절약되는게 당연한 이치잖아요.저는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이 만주땅에서 벌어졌다는 것에 대해서도 좀 더 확인해봐야 한다고 봅니다.전쟁도 결국 정치적이익에 의해 발생하고 정치적이익이란게 사실 대부분이 경제적이익인데 수나라가 당시로서는 거의 경제적 이익을 기대할 수 없는 만주를 왜 침공했을까 하는 의심이 들어요.당시 중국과 만주는 기후가 달라 중국인을 이주시키고 개발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당시 중국인구 5000만으로 중국안에도 힘안들이고 개발할 수 있는 땅이 많았어요.중국 화북평야지역에서 벌어졌던 싸움을 누군가가 만주로 옮겨놓은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중국역사에 북방민족이 남방으로 쳐들어온적은 많아도 남방민족이 북방으로 쳐들어간 역사는 거의 없는게 다 이유가 있어요.추운데 사는 사람들은 남쪽 따듯한데 와서 살 수 있어도 남방인들은 북쪽 추운데가서 절대 못 삽니다.당시엔.요즘같은 두꺼운 패딩같은게 있던 시절도 아닌데 겨울을 버틸 수가 없어요.
싑게 생각합시다 수나라가 113만명의 군사를 동원할 정도면 고구려가 어는 정도이기에 그 많은 군사 를 동원했겠습니까? 이정도의 군사로 침략해야 이긴다고 해서 동원했다고 생각 안합니까 고구려가 현 요하동쪽에 있는 소국을 과연 이렇게 많은 군사를 동원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만큼. 고구려는 영토도 크고. 군사력이 만만치가 않으나 그럴수 밖에 없지요 고다부텨 현재까지 한번 보세요
@@절대평형 와 망상이란 망상도 어지간히 해야 귀엽다고 봐주지.... 이럴일도 절대 없겠지만 사료와 역사가 조작되었다고 칩시다. 중국대륙에 산 조선인들이 있었다면 그 후손이있었을것이고 증조할아버지부터 살았다면 그 애기를 들으며 전해졋을것인데 그런 사람들 들어본적 있소? 먼가 단단히 착각한거같은데 고작 백년전에 조선후기엿소
우리나라는 일제의 식민지 경험으로인해.. 친일 부역자들을 너무 많이 양산 했고 그 친일 부역자들을 해방후 제대로 뭐 하나 청산 하지 못해서.. 현재 대한민국까지 그 친일 부역자들의 몸부림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힘을 한 곳에 모으지 못하는 참담함 현실을 겪고 있다.. 아마 일제 강점기만 없었더라면 우리 대한민국은 분단 되비도 않았을 거고 대한민국이 친일 부역자들의 헛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고 좀 더 강력한 나라가 되면 더 큰 영토를 가질 수 있는 기회마저도 기회를 없애고 있는 작금의 현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는 어쩔 수 없이 겪게 되었어라도 해방후 친일 매국노들 만이라도 처벌을 제대로 했었으면 오늘날 이 지경은 아니엿을것..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음.. 친일 부역자들과 그 후손들의 모든 재산을 환수 하는 것이 답이라 생각함..
오늘 말씀듣고 의문을 가지게 되는데 역으로 중국의 삼국시대에 위의 관구검이 사마의의 명령을 받아서 2차에 걸쳐 고구려를 공격할때 지금의 국내성이라면 그 먼길을 원정이 가능한가에 대해 현재까지도 제대로 고찰을 해본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해 많은 연구가 필요한것으로 판단됩니다.(위와 고구려의 중간에 공손씨의 요동지역도 고찰이 가능합니다.)
중국의 학계에서조차 조선(고구려)의 강역은 하북성노룡현이라 옛부터 기록하고 지금도 인정하고 있는것 같은데 정작 우리는 왜 그 경계를 훨씬 오른쪽으로 정하여 영역을 축소하는지.. 일본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게 확실하다면 빨리 바로 잡아야겠지요. 정치외교 분야의 지원하에 한중일 세미나 또는 학계 포럼등이 필요할듯 합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때 국사책에 고구려의 최 전성기라며 5세기 고(구)려의 광개토경 호태왕비 및 지도를 볼때 느낀점이 너무 영토가 보잘것 없다고 의심했었는데요 왜냐면 호태왕의 자식인 장수태왕이 선대 태왕의 업적을 기리기위해 중국은 물론 세계의 어떤 왕조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거석에 한민족인 고구려의 정체성 비문을 세웠고 시호에도 광개토 라 했으면 그 시대에도 국제 관례상 스케일의 기준 같은 것이 암묵적으로 존재했을 것인데 교과서에 나왔던 요하 동쪽의 만주,한반도 북부 중부 영토강역으로는 이런 거석 비문이 합당한지 의문이 갔었고 한편으로는 교과서 내용이 사실이라면 장수태왕이 똘기가 있었던가 의심 ㅋㅋ 여하튼 4세기 후반 5세기 고(구)려 최전성기 란 한국사 (과거 국사책 내용)교과서의 영토강역 지도는 신뢰가 전혀 안갑니다,
실제 고구려 광개토대왕때 백제왕을 죽이고 신라를 왜구의 위협으로 부터 구해주고 내정간섭을 했듯이, 아마도 고구려는 직접 지배가 아닌 영향력을 행사하는 오늘날의 미국과 같은 방식의 실력을 행사했을거라고 보입니다. 당연히 백제,신라에게만 영향력을 미쳤던게 아닐테고 그 외 주변 국가들에게도 간접 지배 방식을 취했을거라고 보입니다
저도 고구려가 만주쪽이 아니고 현재의 베이징근처쪽이 맞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수나라, 당나라 수도가 저기 장안(낙양 근처)인데 동쪽에 강력한 고구려를 치기 위해 만주까지 쳐들어 왔을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만주에 있는 고구려의 존재는 수당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또 한가지 몽고 원나라가 수도를 북경에 세웠다고 하는데, 이것에도 큰 의미가 있는건 아닐까요? 고구려는 현재의 한반도보다는 몽고나 거란, 돌궐 등과 같은 쪽이 더 가까웠던 것이 아닌지? 결국 몽고가 자신들의 수도를 북경에 둠으로써 고구려의 다물을 완성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몽고가 왜 저멀리 유럽까지 쳐들어갔는지? 하는게 지금도 의문인데, 이런 것이 고조선의 옛땅을 찾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닌지?
@@hojinlee3967 그전에 한나라도 주무대가 내륙과 서쪽이고 동쪽인 북경, 만주쪽은 낙양이나 장안에서 그 멀리까지 갔겠는가 하는 것이지요? 삼국의 역사서들이 거의없고, 주로 중국쪽을 참고로 하고있어, 현재의 북경은 그들의 주무대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중국은 여러나라들이 군웅할거식으로 난립하고 한족이라고 규정할수 없는 것이며, 중국은 지역이지 민족이나 국가는 아닙니다.
@@hojinlee3967 팽창기라는 건 어디서 나온얘긴지 모르겠네요? 중국땅이 5호16국 이후에 수나라가 통일하고 그 세력이 커서 인접한 고구려를 공격했는데, 현 강단사학이 주장하는 고구려의 위치까지 수나라가 넘보기에는 너무 멀다는 말이지요. 또한 당도 마찬가지로 보이는데, 결국 고구려의 위치가 만주보다는 북경쪽으로까지 그 영토가 있었기에 수나 당이 대규모전쟁을 일으킨것이 나의 논리입니다.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왜 왜넘들이 쓴 내용으로 国史를 배워야 하는지 참으로 참담합니다. 가장 Facts가 아닌 것으로 역사가 채워졌다면 다시 논의하여 빨리 수정해야 합니다. 기실 가장 고쳐지지 않은 부분이 역사친일이지요. 삼국사기는 정사입니다. 왜넘들은 정사조차도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으면 잘못됐다며 그들의 입맛대로 우리 역사를 기술하였습니다. 정말로 스터디나 공청회 등을 열어서 논의해야 합니다.
서울에서 부산역까지 걸어가면 10~ 15일 걸리는데...... 당시 그 먼 탁군에서 고구려 요동까지 길도 험하고 거리도 멀고..... 개인 장비에 엄청난 보급과 물자까지 끌고 왓다면 얼마나 걸렷을까? 최소 2달~3달 오다가 밥. 야식 후식 다 까먹고 도착하면 시마이......
항상 좋은 강의 감사드립니다.고죽국은 산서성 서남단,현재 영제시입니다.후한 마융"고죽국은 화산의 북쪽 황하가 꺽이는 곳에 있다". 또한 청나라 대청광역도에 보면 산서성 남부에 수양산.백이숙제묘가 표시되어 있습니다.진나라의 진성이 고구려 평양성,부여의 옛도성,신라의 초기 금성임을 알 수 있죠.이런 사실은 중국역사학자 하광악의 동이원류고(1992년판)에 서술되어 있으며, 국내학자로는 강상원박사.성헌식씨등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고구려가 동진.또는 남진했지 서진했던건 아니거 같구요.한반도와 만주는 읍루>동부여>고구려외성>고구려멸망후 신라>고려순으로 역사가 이어져 왔었습니다.우리선조의 역사는 대륙의 역사지 반도역사관이 아닙니다.
하시는 말씀은 충분히 이해 합니다. 그러면서 궁금증 하나 질문해 봅니다. 지금 현재 북한에 있는 평양은 단 한번도 고구려 수도였던 적이 없던건가요? 아니면 건국초기에는 요동쪽에 있던 수도가 결국은 지금의 평양으로 천도는 한 것인지요? 그러니까 고구려의 마지막 수도는 지금의 평양이었다는 것도 확실치 않다는 걸까요?
일부이기는 하나 끼리끼리 챙겨 대학교수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연구나 공부는 잘 하지 않고 개인의 이익이나 출세 등을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보니 그냥 과거로부터 암기하고 배운 것을 토대로 새로운 이견이나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설사 자신이 잘못 알고 있던 것조차도 고집을 부리며 외면하는 것이 아닌지, 이런 자세는 학문을 하는 자의 기본태도나 인식이 아니다 그냥 교수라는 자리는 단순한 밥벌이 수단일 뿐....,
엉터리 지도가 내가 배우던 때와 하나도 달라진게 없네.. 역사 소설을 실제 역사라고 배우는 나라가 과연 우리말고 누가 또 있을까?? 아.. 쭝꿔와 왜섬이 있겠구나.. 우리의 역사가 줄어든 대신 그들은 훨씬 뻥튀기 된 형태로.. 식민사학에 맞서 재야사학자들도 뭉쳐서 견해를 하나로 통일하는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속칭 재야사학의 주장이 개인마다 제각각이라서 어떤 주장은 일반 대중이 보기에 오히려 실소를 짓게하는 주장도 있는데 이런 주장은 결과적으로 식민 제도권 사학 진영에 재야 사학에 대한 공격의 빌미를 제공해 자칫 재야사학 전체에 대한 일반 대중의 불신과 외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는데 이런 일은 막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역사를 연구한다는 학자들이 전부 모여서 가장 타당한 의견 하나로 통일해 한국 통사를 정리해 놓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지금 당장 그럴 일은 별로?? 없겠지만 식민사학에 기반한 역사책이 전부 사라진다면 어느 누구의 주장을 교과서에 실을 것인가?? 의견을 통일하시라.. 책팔아 먹으며 각자 도생할 생각만 하지마시고.. 자신의 의견만 옳다는 아집이 자신의 학문적 성과에 대한 자긍심을 스스로 높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큰 그림에서 보자면 결국은 식민사학의 강화에 일조하는 불쏘시개가 될 수 있음을 아시기를.. 이덕일 선생님이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해 마시길.. ㅋㅋ
서해를 발해만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산동반도와 요동반도 사이의 만을 발해만이라고 부르고, 발해국의 칭호가 자연스럽기 위해서는 발해만에 인접하기만 하면 됩니다. 발해국이 산동까지 점령하지 않아도, 발해국 이름은 자연스럽습니다. 무엇보다 발해 무왕때 산동반도를 선제타격한 기록이 있습니다.
고구려 초기 도읍지, 정말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후한서》에 따르면 "(고구려가) 한에서 천리 밖에 떨어졌다"는 기록은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궁금합니다. 모순되는 기록이니 좀 걸립니다. 그 기록은 고구려가 한번 도읍지를 옮긴 다음에 쓰여진 걸까요? 어떤 가설이 이를 설명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중국 현지에서 고고학 발굴 조사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값진 성과를 이루며 위 사실을 증명할텐데, 그 일을 지금 당장 할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다른 길로 역사학과 고고학 등 여러 학문이 융합되어 다학제간 연구로 뭔가 방법을 찾아낼 길, 없을까 고민됩니다. 원 사료에 기반해 한국사의 '큰 질문(Big Question)'을 적절하고도 과감히 던지신 학문적 열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응원하겠습니다. 힘내세요, 교수님!
그 요동도 당연히 요하라는 강의 동쪽이라는 얘기죠.. 그 요하가 지금의 요하가 아니고 북경 동쪽의 조하를 말하는 겁니다.. 그 이외에 북경 남쪽의 하북성 보정시에 역수라는 강이 있는데 이를 요하로 보기도 합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진 건지 그 당시에도 혼용해서 쓴건지 혹여 다른 게 또 있는건지는 잘 몰라도 지금의 요하가 고구려 당시의 요하가 아닌 것은 확실하죠.. 지금의 요하는 요나라 때나 그 이후에 붙은 이름입니다.. 여기 유튭에 심백강 선생님의 강의가 많이 있는데 한 번 시청해보세요.. 좋은 내용 많습니다..
잘보고갑니다 동의합니다.
교수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최고의 역사학자시네요 너무 논리적이고 이해가 잘됩니다 교수님의 역사관이 진정한 우리나라의 역사관입니다
교수님이 쓰신 책 [이덕일의 한국통사] [우리안의 식민사학] 잘 읽었습니다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은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입니다
학교 다닐때 접하지 못했던 역사에 대해 많은 걸 배우고 느끼고 있습니다 강의도 잘 듣고 있습니다
교수님을 항상 응원합니다
유튜브가 있어서 여러사실을 알수 있어서 좋네요.
말씀하신 대로 하면 상황들이 모두 자연스럽습니다.
꾸뻑 감사합니다 박사님 꾸뻑
응원합니다~
이박사님의 말씀이 고대 중국 문서들과 여러 사료들을 가지고 근거해서 하시니 무척 이해가 되고 합리적이어서 우리 역사 교육이 친일강단사학으로 인해 너무 잘못 되였다고 느껴지네요. 이박사님 우리역사를 다시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덕일 소장님의 참역사강의를 우리의 자라나는 어린 학생들이 많이 듣고 시청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의 잘못된 역사를 올바른 역사로 다시 바로잡기위해서는 젊은 학생들이 바른 역사인식을 가져야 할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덕일 소장 같은분이 문화부장관이나 동북아 역사단체장을 맡아야 합니다
정말 훌륭한 강의 입니다. 감사합니다. 수많은 노고에 감사합니다
1. 힘만들고 알아주는 이도 없는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이런 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세월은 흐르고 계속 친일파들의 거짓역사만 신봉하는 후손들이 민족정기 확립에 관심이 없어진다면 정말 큰 일이고 이런 선생님들이 생존해 있을때 정부가 거국적인 지원을 하고 역사학자들을 배출시켜야 하는데 현실은 친일파들이 정계와 학계 언론계 모두 장악하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2. 친일파 박멸을 단념한 정치권, 투표소수개표가 아닌 전자개표로 국민의 주권을 유린하는 정치권에선 희망이 없음에도 국민들은 이를 전혀 간파하지 못하고 세뇌충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노예로 살면서도 국민의 편에 있는 극소수의 정치인들에겐 저들의 부추김대로 맹목적인 비난을 하는걸 보면 정말 암담합니다. 올바른 대통령 하나 나오면 천명 만명의 민족사학자들이 못하는 일을 단번에 할 수 있습니다. 열쇠는 훌륭한 정치인 입니다...
3. 일본에게 뺐긴 사료라도 회수할 수 있는 비책을 마련해서 꼭 시행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걸 회수하기 전에 일본이 바다로 침몰하거나 한일간 전쟁때 진짜로 사라지지 않을지 걱정이 될 정도네요
북경에 가면 지금도 고구려 촌이 있습니다. 2천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고구려 지명이 남아 있다는 것은 그 당시 고구려의 국력이 강대했다는 증거라고 봅니다.
일본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흔적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중국은 공자부활, 러시아는 정교회부활, 일본은 욱일기부활 등..한반도 주변 강국들은 모두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있는데 한국만 민족주의를 말하면 성토의 대상이 되고 자기검열을 받는다. 이것도 일본이만든 약소국 습관의 발현인가?
역사교과서는 정말 못 믿겠다.
우리나라 모든이는 이렇게 믿고 있는 걸 어떻게 합니까?
강단사학계 이사람들은 정말 우리나라 사람 맞습니까?
이덕일 교수님 최고입니다.식민 부역 사학자들의 사학을 박살내 주십시요.
고구려원정을 위해 수나라 군사들이 탁군에서 집결했다면 고구려와 수나라의 국경은 탁군근처에 있다고 봄이 타당합니다.군사적 보안이 유지되는 범위안에서 집결지를 상대방국경에 바짝 붙여야 인적,물적 비용이 절약되는게 당연한 이치잖아요.저는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이 만주땅에서 벌어졌다는 것에 대해서도 좀 더 확인해봐야 한다고 봅니다.전쟁도 결국 정치적이익에 의해 발생하고 정치적이익이란게 사실 대부분이 경제적이익인데 수나라가 당시로서는 거의 경제적 이익을 기대할 수 없는 만주를 왜 침공했을까 하는 의심이 들어요.당시 중국과 만주는 기후가 달라 중국인을 이주시키고 개발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당시 중국인구 5000만으로 중국안에도 힘안들이고 개발할 수 있는 땅이 많았어요.중국 화북평야지역에서 벌어졌던 싸움을 누군가가 만주로 옮겨놓은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중국역사에 북방민족이 남방으로 쳐들어온적은 많아도 남방민족이 북방으로 쳐들어간 역사는 거의 없는게 다 이유가 있어요.추운데 사는 사람들은 남쪽 따듯한데 와서 살 수 있어도 남방인들은 북쪽 추운데가서 절대 못 삽니다.당시엔.요즘같은 두꺼운 패딩같은게 있던 시절도 아닌데 겨울을 버틸 수가 없어요.
싑게 생각합시다
수나라가 113만명의 군사를 동원할 정도면
고구려가 어는 정도이기에 그 많은 군사
를 동원했겠습니까?
이정도의 군사로 침략해야 이긴다고 해서
동원했다고 생각 안합니까
고구려가 현 요하동쪽에 있는 소국을 과연
이렇게 많은 군사를 동원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만큼. 고구려는 영토도 크고. 군사력이
만만치가 않으나 그럴수 밖에 없지요
고다부텨 현재까지 한번 보세요
@@절대평형 그럼 조선의 한양은 오늘날 만주 정도 되는건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왜요 대동여지도도 조작된건가열?
@@절대평형 와 망상이란 망상도 어지간히 해야 귀엽다고 봐주지.... 이럴일도 절대 없겠지만 사료와 역사가 조작되었다고 칩시다. 중국대륙에 산 조선인들이 있었다면 그 후손이있었을것이고 증조할아버지부터 살았다면 그 애기를 들으며 전해졋을것인데 그런 사람들 들어본적 있소? 먼가 단단히 착각한거같은데 고작 백년전에 조선후기엿소
@@절대평형 ㅋㅋㅋㅋㅋ 그럼 지금 한양에있는 경복궁도 조작되어잇는군욬ㅋㅋㅋㅋ 수 많은 조선임금릉도 그리고 조선시대 유물 전부도 ㅇㅋㅇㅋㅇ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병자호란 때 조선이 청에 벌벌 떨던 경우처럼.
말도 한마리 없고 금속무기도 발전이 늦어서 강한 전투력도 없어서 지나는 항상 고구려 고조선의 속국이었습니다. 사마천이후 필법으로 바꾸었지요.
이에 동북공정은 식민강단사학자 와 그 시녀 고고학자의 책임이라고 봅니다.
대한만국은 정치 의료 법률(사법 세법 등) 교육 역사 경제 등 모든 분야를 뿌리부터 개혁하지 않으면 망한다
역사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은 지금의 대한민국이 기울어져 가고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안타깝다
교수님 동영상 너무 유익하게 잘보고 있습니다. 혹시 살수의 위치에 대해서도 설명하는 강의를 볼 수 있을까요?
구독하면서 쭉~ 보게되는데
계속해서 느끼는건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웠던 우리 역사가
상당수가 식민사학과
그 아류들에 의해서 조작되어온
역사라는게 분노를 느낀다
백제 멸망시기에 당나라가
신라를 도와 당군 15만명을 보냈다는데
북으로는 고구려가 막고있고
서해를 건너 15만 군사를 수송했다는건데..
이는 현시대에서도, 거친 서해를 건넌다는게
쉽지않고, 그시대는 거의 불가능이라 한다..
백제 또한 대륙에 있었다고 봐야한다...
우리나라는 일제의 식민지 경험으로인해..
친일 부역자들을 너무 많이 양산 했고 그 친일 부역자들을
해방후 제대로 뭐 하나 청산 하지 못해서..
현재 대한민국까지 그 친일 부역자들의 몸부림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힘을 한 곳에 모으지 못하는 참담함 현실을 겪고 있다..
아마 일제 강점기만 없었더라면
우리 대한민국은 분단 되비도 않았을 거고 대한민국이 친일 부역자들의 헛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고
좀 더 강력한 나라가 되면 더 큰 영토를 가질 수 있는 기회마저도 기회를 없애고 있는 작금의 현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는 어쩔 수 없이 겪게 되었어라도 해방후 친일 매국노들 만이라도 처벌을 제대로 했었으면 오늘날 이 지경은 아니엿을것..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음..
친일 부역자들과 그 후손들의 모든 재산을 환수 하는 것이 답이라 생각함..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듣고 의문을 가지게 되는데 역으로 중국의 삼국시대에 위의 관구검이 사마의의 명령을 받아서 2차에 걸쳐 고구려를 공격할때 지금의 국내성이라면 그 먼길을 원정이 가능한가에 대해 현재까지도 제대로 고찰을 해본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해 많은 연구가 필요한것으로 판단됩니다.(위와 고구려의 중간에 공손씨의 요동지역도 고찰이 가능합니다.)
고대의 요동은 지금 난하주변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손씨 의 요동군도
이쪽임. 지금현재의 요동에 공손도의
요동군이 있었다면 고구려는 어디에
있나요. 후한서에 고구려는 요동에서
동쪽으로 천리에 있다고 했는데~~
거란의 요나라의 요. 연운16주의 위치를 보면 요동이라는 것이 현재의 요하강 동쪽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것 같습니다
중국의 학계에서조차 조선(고구려)의 강역은 하북성노룡현이라 옛부터 기록하고 지금도 인정하고 있는것 같은데 정작 우리는 왜 그 경계를 훨씬 오른쪽으로 정하여 영역을 축소하는지.. 일본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게 확실하다면 빨리 바로 잡아야겠지요. 정치외교 분야의 지원하에 한중일 세미나 또는 학계 포럼등이 필요할듯 합니다.
존경하는 소장님 고구려의 최대영토는 어디까지입니까?
홀승골은 몽골에 있어요.홉스골이라고 하지요.고구려는 일식기록을 볼때 몽골지역이 분명하고 부여는 부리야트족이 있는 지금의 러시아지역에 있어요.
제가 중,고등학교 때 국사책에 고구려의 최 전성기라며 5세기 고(구)려의 광개토경 호태왕비 및 지도를 볼때 느낀점이 너무 영토가 보잘것 없다고 의심했었는데요 왜냐면 호태왕의 자식인 장수태왕이 선대 태왕의 업적을 기리기위해 중국은 물론 세계의 어떤 왕조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거석에 한민족인 고구려의 정체성 비문을 세웠고 시호에도 광개토 라 했으면 그 시대에도 국제 관례상 스케일의 기준 같은 것이 암묵적으로 존재했을 것인데 교과서에 나왔던 요하 동쪽의 만주,한반도 북부 중부 영토강역으로는 이런 거석 비문이 합당한지 의문이 갔었고 한편으로는 교과서 내용이 사실이라면 장수태왕이 똘기가 있었던가 의심 ㅋㅋ 여하튼 4세기 후반 5세기 고(구)려 최전성기 란 한국사 (과거 국사책 내용)교과서의 영토강역 지도는 신뢰가 전혀 안갑니다,
이거 리얼~~ 광개토라고하면 적어도 이웃나라보다는 훨씬 넓은 지역을 정복했으니 붙인 호칭일텐데, 옆 나라 보다 작은 지역가지고 광개토라고 한다는게 이해가 안가는데 당연한 반응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모르는 고대사의 비밀이 있을게 분명합니다.
Patty Smith : 니정체가 뭐냐?
실제 고구려 광개토대왕때 백제왕을 죽이고 신라를 왜구의 위협으로 부터 구해주고 내정간섭을 했듯이, 아마도 고구려는 직접 지배가 아닌 영향력을 행사하는 오늘날의 미국과 같은 방식의 실력을 행사했을거라고 보입니다. 당연히 백제,신라에게만 영향력을 미쳤던게 아닐테고 그 외 주변 국가들에게도 간접 지배 방식을 취했을거라고 보입니다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 책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 책도 곧 업데이트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녀산성에 대한 부분이 수정이 필요할것 같습니다 소장님. 늘 건강하시고 식민사학 척결 그리고 국사교과서 완전 뜯어고치는 그날까지 항상 기대하겠습니다@!
@patty Smith 고구려가 천자의 제국이 맞죠~~ 고구려 전성기때 최대병력이 백만정도 였는데~~
삼국사기 최치원열전에 있는데~~
@@Michelle_daisuki 고구려 태왕폐하가 화성이랑 목성 침공한 이야기도 해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
제가배운것은 고구려의최초도읍지는 의무려산 서쪽이라고 배웠습니다 현재의 산해관 북쪽 대흥안령동쪽 의무려산 서쪽으로 골짜기처럼생겨서 방어하기에 좋은위치라고 합니다
저희회사가 북경콜마 공장지으러 갈때 북경밑에 고려영이라는 지명이 있는것을 봤어요 교수님말씀들으니 이제 이해가 돼고 그기에 고구려군대가 수나라나 당니라와 대치하면서 생긴지명이네요 ᆢ도로표지판 이름을 봤어요
놀랍네요.
그럼 중국 역사서가 맞다는 얘기네요
그거 태조왕건의 고려임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국경이나 산성이나 장성도 현지 답사하면 바로 알건데도 눈만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탁상에서 자기들에게 유리한 소설을 보고 일제 군부가 지도위에 그냥 그려서 비정한 게 사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ㅜㅜ
선생님감사합니다 고대사 많이 알고싶었습니다 혹시 고구려망하고 거란이나 당나라 당시 영주와 대조영이 나라 선포한 지역이랑 기자조선의 실체 영상 가능하신가요?
이런 얘기가 비주류가 아닌 주류로 자리잡아야합니다.
이덕일이 유사역사 학자로 이름을 떨치는데 이런게 주류 역사가 되명 한국 역사학 발전에 장애가 되지 ㅋㅋㅋㅋ
황당한 놈
@@병철-v5d ㄴㅣ놈이 식민
사학을 배우고 있는 어리석은 중생아
@@김정호-p9o 니놈이 일제가 우리 사서를 불태우고 왜곡날조된
역사를 선호하는 역사의 매국노구나
@@병철-v5d역사연구에 주류.비주류는 니들이 만든 말일뿐이다. 그러나 니들이 무시하는 비주류는 왜곡되고 잃어버린 역사를찿고~ 주류라고 떠드는 니들은 역사를 찾지않고 비주류까기 바쁘지~니들은 역사학자가 아니라 왜놈들 짜놓은 뜰을 팔아먹는 앞잡이 일뿐~ 강의내용도 들어보면 깊이가 없지~ 짜놓은 뜰에서 노니 연구할께 없지~역사와 민족앞에 처벌받는 날이 오리라본다.
대만에 있는 한서, 수서, 당서, 요사, 원사 등의 25사와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춘추전국시대, 진, 한,수,당,요,금,원,명, 청 등의지도를 보면 나와 있지 않나요?
무종?국은
선우 중산국.인듯요.
즉 요주.
태행산맥 중부입니다
미치겠다 야 정말 우리가 배운 고대사가 완전히 잘못된 과거를 배웠네.
그게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왜곡한 역사죠~~
이나라 수구 강단질 하는 애들이 과연 수긍할까요?
절대 언합니다.
왜? 수십년 헛공부한거 자백하는것이고 밥줄 끊어지고 사기친거 인정하는 셈이죠.
중국기록도 아니다 잘못됏다 징징 거리는 애들이지요.
저도 고구려가 만주쪽이 아니고 현재의 베이징근처쪽이 맞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수나라, 당나라 수도가 저기 장안(낙양 근처)인데 동쪽에 강력한 고구려를 치기
위해 만주까지 쳐들어 왔을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만주에 있는 고구려의
존재는 수당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또 한가지 몽고 원나라가 수도를
북경에 세웠다고 하는데, 이것에도 큰 의미가 있는건 아닐까요? 고구려는
현재의 한반도보다는 몽고나 거란, 돌궐 등과 같은 쪽이 더 가까웠던 것이
아닌지? 결국 몽고가 자신들의 수도를 북경에 둠으로써 고구려의 다물을
완성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몽고가 왜 저멀리 유럽까지
쳐들어갔는지? 하는게 지금도 의문인데, 이런 것이 고조선의 옛땅을 찾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닌지?
당시 당나라는 팽창기여서 그전 왕조들이 생각지도 않았던 지역(서역, 몽골, 티벳)까지 지배해서요, 단순히 만주가 장안과 거리가 멀어서 이상하다는건 조금 이상합니다
@@hojinlee3967 그전에 한나라도 주무대가 내륙과 서쪽이고 동쪽인 북경, 만주쪽은 낙양이나 장안에서 그 멀리까지 갔겠는가 하는 것이지요? 삼국의 역사서들이 거의없고, 주로 중국쪽을 참고로 하고있어, 현재의 북경은 그들의 주무대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중국은 여러나라들이 군웅할거식으로 난립하고 한족이라고 규정할수 없는 것이며, 중국은 지역이지 민족이나 국가는 아닙니다.
@@지혁-x2u 좀 벗어난 얘기 같은데...한나라랑 한족 얘기는 왜 하시는거죠...??
제 논지는, 팽창기 당나라는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몽골초원, 티벳산지, 서역까지 팽창했기 때문에, 만주로 진출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특히 그곳이 막대한 자원 생산지라면 더더욱이나 가능합니다.
@@hojinlee3967 팽창기라는 건 어디서 나온얘긴지 모르겠네요? 중국땅이 5호16국 이후에 수나라가 통일하고 그 세력이 커서 인접한 고구려를 공격했는데, 현 강단사학이 주장하는 고구려의 위치까지 수나라가 넘보기에는 너무 멀다는 말이지요. 또한 당도 마찬가지로 보이는데, 결국 고구려의 위치가 만주보다는 북경쪽으로까지 그 영토가 있었기에 수나 당이 대규모전쟁을 일으킨것이 나의 논리입니다.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왜 왜넘들이 쓴 내용으로 国史를 배워야 하는지 참으로 참담합니다. 가장 Facts가 아닌 것으로 역사가 채워졌다면 다시 논의하여 빨리 수정해야 합니다.
기실 가장 고쳐지지 않은 부분이 역사친일이지요.
삼국사기는 정사입니다. 왜넘들은 정사조차도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으면 잘못됐다며 그들의 입맛대로 우리 역사를 기술하였습니다.
정말로 스터디나 공청회 등을 열어서 논의해야 합니다.
조선시대에 만주상실이 지금의 역사를 만들게한 틀이 된것 같아요
기존사학계도 고려강역 정도만 지키고 있었도 이런말도 안되는 역사를 맞다라고 안하겠죠
서울에서 부산역까지 걸어가면 10~ 15일 걸리는데......
당시 그 먼 탁군에서 고구려 요동까지 길도 험하고 거리도 멀고.....
개인 장비에 엄청난 보급과 물자까지 끌고 왓다면 얼마나 걸렷을까?
최소 2달~3달 오다가 밥. 야식 후식 다 까먹고 도착하면 시마이......
시마이 단어는 일본말입니다
고대 강 위치와 이름, 현대의 강 위치와 이름을 비교 교차 검증하여야 합니다. 일제와 중국이 강 위치를 한반도 쪽으로 이동시켜 우리 역사를 한반도로 가두어 버렸습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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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우리나라 역사 알기가 제일 힘드네요.. ㅠ.ㅠ
항상 좋은 강의 감사드립니다.고죽국은 산서성 서남단,현재 영제시입니다.후한 마융"고죽국은 화산의 북쪽 황하가 꺽이는 곳에 있다". 또한 청나라 대청광역도에 보면 산서성 남부에 수양산.백이숙제묘가 표시되어 있습니다.진나라의 진성이 고구려 평양성,부여의 옛도성,신라의 초기 금성임을 알 수 있죠.이런 사실은 중국역사학자 하광악의 동이원류고(1992년판)에 서술되어 있으며, 국내학자로는 강상원박사.성헌식씨등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고구려가 동진.또는 남진했지 서진했던건 아니거 같구요.한반도와 만주는 읍루>동부여>고구려외성>고구려멸망후 신라>고려순으로 역사가 이어져 왔었습니다.우리선조의 역사는 대륙의 역사지 반도역사관이 아닙니다.
하시는 말씀은 충분히 이해 합니다.
그러면서 궁금증 하나 질문해 봅니다.
지금 현재 북한에 있는 평양은 단 한번도 고구려 수도였던 적이 없던건가요?
아니면 건국초기에는 요동쪽에 있던 수도가 결국은
지금의 평양으로 천도는 한 것인지요?
그러니까 고구려의 마지막 수도는 지금의 평양이었다는 것도 확실치 않다는 걸까요?
체고에영😆
일부이기는 하나 끼리끼리 챙겨 대학교수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연구나 공부는 잘 하지 않고 개인의 이익이나 출세 등을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보니 그냥 과거로부터 암기하고 배운 것을 토대로 새로운 이견이나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설사 자신이 잘못 알고 있던 것조차도 고집을 부리며 외면하는 것이 아닌지, 이런 자세는 학문을 하는 자의 기본태도나 인식이 아니다 그냥 교수라는 자리는 단순한 밥벌이 수단일 뿐....,
오호츠크해는 옥저해입니다. 옥저는 연해주에 남옥저 캄차크근처에 북옥저이지요.옥저를 한자상고음 찾아보면 저는 적이더군요.
오호츠크 ㅡ현재의 우리말 옥저 발음과 너무 흡사하네요.
지금의 북경은 손문이 중공을 건국할때만든 신도시이고 고대의 북경은 지금의 주천이다.
교수님의 강의 잘듣고 있습니다.
다만 현중공의 지명은 모두 신지명입니다.
제대로 된 학문의 중요성을 알 수 있네요.
혹시 광개토대왕릉비는 왜 지금의 위치에 있는지 설명하실수있나요.?
만주지역뿐 그정도 큰돌이 있었나보죠
엉터리 지도가 내가 배우던 때와 하나도 달라진게 없네.. 역사 소설을 실제 역사라고 배우는 나라가 과연 우리말고 누가 또 있을까?? 아.. 쭝꿔와 왜섬이 있겠구나.. 우리의 역사가 줄어든 대신 그들은 훨씬 뻥튀기 된 형태로.. 식민사학에 맞서 재야사학자들도 뭉쳐서 견해를 하나로 통일하는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속칭 재야사학의 주장이 개인마다 제각각이라서 어떤 주장은 일반 대중이 보기에 오히려 실소를 짓게하는 주장도 있는데 이런 주장은 결과적으로 식민 제도권 사학 진영에 재야 사학에 대한 공격의 빌미를 제공해 자칫 재야사학 전체에 대한 일반 대중의 불신과 외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는데 이런 일은 막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역사를 연구한다는 학자들이 전부 모여서 가장 타당한 의견 하나로 통일해 한국 통사를 정리해 놓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지금 당장 그럴 일은 별로?? 없겠지만 식민사학에 기반한 역사책이 전부 사라진다면 어느 누구의 주장을 교과서에 실을 것인가?? 의견을 통일하시라.. 책팔아 먹으며 각자 도생할 생각만 하지마시고.. 자신의 의견만 옳다는 아집이 자신의 학문적 성과에 대한 자긍심을 스스로 높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큰 그림에서 보자면 결국은 식민사학의 강화에 일조하는 불쏘시개가 될 수 있음을 아시기를.. 이덕일 선생님이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해 마시길.. ㅋㅋ
일리있는 말씀입니다 ...
지금이라도 이런사실을 깨닫아서 참 다행입니다~ 언젠가는 고토를 찾을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하다고봅니다~~ 지금은 어렵다고 보겠지만
몇백년이 지난후 모르죠? 우리 고토가 회복되었을지도~~
그동안 학교에서 역사 헛 배운거 생각하니 억울하네요
이렇게 평양의 위치가 바뀌면 수당과의 전쟁당시 군대의 이동 경로나 여러가지 달라지는게 많습니다. 그럼 평양이 요동 천히장성 밖에 위치했었게 되는건가요? 설명 부탁드립니다.
서해를 중국에서는 발해만 이라 부르는데, 발해위치가 최소 현재 산동성부터 요동반도와 한반도 북부와 연해주 이지 않을까 싶네요. 이 또한 발해지도도 잘못된 지도 아닐까 싶네요
일본놈들한테 조선을 빼앗기면서 모든 역사 왜곡이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몇십년만 더 식민지배 당했으면 아주 큰일날뻔 했습니다
서해를 발해만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산동반도와 요동반도 사이의 만을 발해만이라고 부르고, 발해국의 칭호가 자연스럽기 위해서는 발해만에 인접하기만 하면 됩니다. 발해국이 산동까지 점령하지 않아도, 발해국 이름은 자연스럽습니다. 무엇보다 발해 무왕때 산동반도를 선제타격한 기록이 있습니다.
선생님 교육부장관 하셔서 역사를 바로잡아 주세요..
전라도 어디 산꼭대기에서 불에탄쌀곡식이 계속나와서 신기했음
몇백년동안 산꼭대기에서 검은쌀이 나옴
전투방식이 산에 식량을 다 옮겨놓구나
사학자 분들도 정기적으로 지식을 나누는 시간이 필요합니다--그래야 고조선과 이전의 배달국-환국을 찾습니다
고구려 초기 도읍지, 정말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후한서》에 따르면 "(고구려가) 한에서 천리 밖에 떨어졌다"는 기록은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궁금합니다. 모순되는 기록이니 좀 걸립니다. 그 기록은 고구려가 한번 도읍지를 옮긴 다음에 쓰여진 걸까요? 어떤 가설이 이를 설명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중국 현지에서 고고학 발굴 조사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값진 성과를 이루며 위 사실을 증명할텐데, 그 일을 지금 당장 할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다른 길로 역사학과 고고학 등 여러 학문이 융합되어 다학제간 연구로 뭔가 방법을 찾아낼 길, 없을까 고민됩니다.
원 사료에 기반해 한국사의 '큰 질문(Big Question)'을 적절하고도 과감히 던지신 학문적 열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응원하겠습니다. 힘내세요, 교수님!
후한서에 '고구려는 요동(군)으로부터
동쪽으로 천리 떨어져 있다' 라는 말은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난하유역(노룡현)입니다 여기서부터 동쪽
천여리 이니까. 요령성 조양 또는 의무려산
쪽의 북진정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홀승골 = 홉스굴.....???
식민사학자들이 꼬리를 말고 진실에 승복하는 날이 오기는 할까요?
결국은 백제의 위례성도 한반도가 아니라 산동성에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남위례성의 하남의 하는 황하를 말한다고 합니다.. 하가 옛날에는 황하의 대명사였다지요..하는 곧 황하라는거죠.. 한반도 한강이 아니고.. 산동반도 어디 쯤이 맞을 겁니다..
하남은 황하의 남이니까 어쩌면 낙양(뤄양)이나 카이펑(개봉)일대 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사관의 현실!
고구려가 우리 민족인가 싶다. 답답혀 ..
이런.
노룡현 현재 진황도 City 조선성이 지금도 있다
즉, 고조선 수도가 노룡현 조선성
고구려 수도 역시 고조선과 동일
그러면 고대 요동을 요동이라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교수님
강을 중심으로 동쪽을 요동이라 일컫는 줄 알았는데 고대 요동은 왜 굳이 요동이라고 일컬었던 것 인가요?
그냥 부른건가요?
그 요동도 당연히 요하라는 강의 동쪽이라는 얘기죠.. 그 요하가 지금의 요하가 아니고 북경 동쪽의 조하를 말하는 겁니다.. 그 이외에 북경 남쪽의 하북성 보정시에 역수라는 강이 있는데 이를 요하로 보기도 합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진 건지 그 당시에도 혼용해서 쓴건지 혹여 다른 게 또 있는건지는 잘 몰라도 지금의 요하가 고구려 당시의 요하가 아닌 것은 확실하죠.. 지금의 요하는 요나라 때나 그 이후에 붙은 이름입니다.. 여기 유튭에 심백강 선생님의 강의가 많이 있는데 한 번 시청해보세요.. 좋은 내용 많습니다..
@@이진규-q2b 친절한 답변 고맙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
반대로 애기하자면 호구란 애기 아닌가?
평화사랑해서 같은 한국인끼리 문재 생기면 죽기살기 싸우고 국내에서라도 상대가 외국인이면 눈치를 보나봅니다
역사학자라는 인간들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오녀산성이 도읍지라 할 수 있을까!
수호지속 아지트도 아니고 한 나라의 개국 도읍지를, 역사상 저런 길도없는 오지,험지에 도읍을 세우는 나라가 있었을까?
넌센스가 아닐수없다.
저 식민사학자들을 빨리
몰아내고 역사광복을
해야
한다 저 대륙의 요동벌을
달리던 고구려의 기상이 대단했다
청나라가 북경을 수도로 한이유가 자기들의 선조 고구려의 수도 근쳐라 하지 않았을까요..여진족의 후손 금,청인데..
우리나라 역사가 진짜 개판이 됐네요.. 너무도 분합니다 다 되찾았으면 좋겠어요ㅠㅠ
홀승골은 몽골에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초기 고구려는 몽골 지역 부여는 바이칼이라고 들었습니다.
발해군 의 위치는 어디쯤 인지 궁금합니다.
광개토대왕비의 위치는 어떻게 봐야 하나요?
계속 듣다보니 가야 위치가 애매해지는듯
1세기 신라와 가야는 한반도에 있어야하나요 지금의 요동부근에 있어야하나요
할수 있습니까?
정사를 여기서 만나네요 감사합니다
만리장성이 고구려 국경입니다
고죽국,!
북부여를 창시한 해모수의 출신지 이지요?
10:40 고구려는 고죽국이다.
자막중 화북성이 아니라 하북성 입니다.
고구려 초기 도읍지가..여기서 말하는 곳이라면..
백제.초기도읍지가..산동반도에..잇엇다는 것이 말이되네요.
박사님 뒤에 책 사기는 어디에서 구입...
일식에는 몽고 샤먼산쪽 관측 기록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역사는 완전히 왜곡된 역사입니다 빨리 바로잡고 가야 합니다
고구려도읍이나 영역을 나타내는것도 식민사관적관념으로 많이 오염되어 있는듯합니다. 최소한으로 축소시키고 소설써서 후대의 즉 현대의 조선민족에게 기를 꺽고 죽인것이죠.
상해가면 당태종이 연개소문을 피해 숨었다는 우물이 있는데 얘기 좀 해주세요
식민사학자빼고진정한역사책을 쓰시죠
기존의 역사학자들은 뭐하는 사람들인지 정말공부들안한거 맞네 한심하다
박사님의 글 조선일보의 이덕일칼럼인가요? 오래전부터 보고있습니다....쓰레기 역사학자들에 배운모든것을 버렸습니다.
누르하치가 명나라 북경 칠때 만주에서 몽골족과함께 하북성을 쓸었다가 후퇴한 기록이 있습니다
전쟁은 생각지 못한 약한곳을 치는것이라 멀다고 공격 못하는게 아니라 강한 요동군을 피해 우회기동하여 하북성을 치고
한나라와 협상한것이라 생각합니다
사고전서 심백강 강릐와 동일
노룡현 진황도 City 조선성이 고조선 고구려 수도
밖에서 왜곡하고 안에서 스스로 있는걸 지우다면 . 그런다고 밖에서 스담해줄가? 먹을놈은 가리는게 없더라
내 생각은 현재의명나라장성 ( 만리장성) 이며 명나라가 이었다고 봅니다
천리장성 = 만리장성
천리장성을 이어서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나옴!!! 맞는 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