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전투해설] 백제의 운명을 가른 황산벌전투 The Battle of Hwangsanbeol that decided the fate of Baekje 계백 / 김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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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21 вер 2024
  • 안녕하세요 사적돌입니다.
    계백과 김유신의 결전이 있었던 논산 황산벌에 다녀왔습니다.
    계백이 가졌던 결사의 의지와
    김유신이 가졌던 대업의 야망이 교차되는
    이 전투가 향후 한반도의 방향을 정하게됩니다.
    사료부족으로 많은 연구자분들의 의견을 고찰하여 제작했습니다.
    따라서 실제와 다를수 있습니다.
    답사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황령산성 : 충남 논산시 연산면 신암리 2-22 에 주차 후 등산
    모촌리산성 : 충남 논산시 양촌면 모촌리 산 39-14 에서 임도로 등산
    산직리산성 : 충남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 311 에 주차 후 산직리 산 12로 도보이동
    청동리산성 : 충남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산 43 에서 임도로 등산
    계백장군 묘소 : 충남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 306-6 에 주차, 백제군사박물관
    시청감사드립니다.
    #황산벌 #계백 #논산
    #전투 #위치 #계백장군묘 #계백장군 #김유신 #백제 #신라 #황산
    #역사 #여행 #사적돌
    #korea #travel #vlog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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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ЕНТАРІ • 161

  • @NASDAQ-HUNTER
    @NASDAQ-HUNTER Рік тому +9

    약간은 코믹 영화로만 봤던 황산벌전투를 이리 자세하게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요즘 너무 무덥고 습한 날씨라 건강관리 하시면서 답사 하시면 좋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따라 나서고 싶습니다. 항상 잘 시청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3

      염려감사드립니다😌 구독자 10만 즈음에서 구독자여러분 모시고 분기별로 답사 계획하고 이있습니다😄

  • @vlogsbykhadija
    @vlogsbykhadija 2 роки тому +4

    amazing and beautiful greenery fully enjoy see you again

    • @사적돌
      @사적돌  2 роки тому +1

      Come back often and take a break ^^

  • @tomandtrip
    @tomandtrip 2 роки тому +6

    구독한지 얼마 안되어
    사적돌님 영상들을 아직 다 보지못했어요
    관심분야라 기대가 되네요
    천천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

    • @사적돌
      @사적돌  2 роки тому +1

      오 반갑습니다. 편하게 들러주세유😄

  • @서라벌-x1d
    @서라벌-x1d Рік тому +2

    흥미로운 컨텐츠 감사합니다

  • @dobyungrhee3577
    @dobyungrhee3577 Рік тому +19

    어떻게 지도와 과거 현재 유적지를 이렇게 정확히 답사하시나요?? 공부를 해도 어려울 것 같은데.. 정말 대단하세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2

      아이고 부끄럽습니다😌 저는 연구자분들의 발자취를 따라갈 뿐입니다😄;

  • @-joshuaTV-
    @-joshuaTV- 2 роки тому +14

    수락산 같은 이름의 산이 엄청 많은데 다 목이 떨어진 산이였군요🥶

    • @사적돌
      @사적돌  2 роки тому +8

      머리수에 떨어질락 쓴 산이면 왕장군 호족등이 죽거나 전투가있었던 산인 경우가 많어유

  • @newplus66
    @newplus66 7 місяців тому +3

    구독을 엊그제 눌렀습니다. 소싯적 백제사를 조금 맛뵈기로 공부했던 사람으로 마음 깊은 곳에 계백장군의 모습을 떠 올리게 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7 місяців тому +1

      오 감사드립니다😌 계백이야기는 처절함이 있지요

  • @이동원-s8h
    @이동원-s8h 6 місяців тому +1

    대단히 감사드리고 안그래도 계백장군묘를 방문하고 싶었는데 유투브 올려주시니 너무 고생많았읍니다 힘들때마다 계백장군 자료를 보고 힘을 얻고 있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6 місяців тому

      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 @강형님-j4k
    @강형님-j4k Місяць тому +1

    호랭이는 주거서 가죽을 남기는 거시고, 사람은 주거서 이름을 남기는거시여!! ... 비장한 박중훈 아니 계백장군의 영화속 대사가 생각 납니다!

    • @사적돌
      @사적돌  Місяць тому

      심지어 계백은 총사령관이 아니었고, 이 전투의 총사령관은 신라로 귀부하여 관직을 받지요, 일신의 권세를 잠깐 누릴수는있겠으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 누구인지 우리 모두알지요🤔

  • @천안둥이
    @천안둥이 Рік тому +3

    요익한 역사 잘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시청 감사드려요😌

    • @한대웅-h6q
      @한대웅-h6q Рік тому +1

      ​@@사적돌선생님 논산 연산에 사는 사람입니다. 천동리 산성이리고 하시는데 위치가 어디죠? 처음들어봐서 가볼려고요.

    • @한대웅-h6q
      @한대웅-h6q Рік тому +1

      그리고 그지역 지명유래나 사료는 어떻게 조사하나요. 동네에 탑산이라는 곳이 있는데 광석 노성 연산 3개면 관제하고, 산정상에 우물과 빙둘러진 산성모양인데 알아보고 싶어서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2

      @@한대웅-h6q 설명란에 기재해놓았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3

      @@한대웅-h6q 고지도, 지자체문화대전, 지방향토사료를 뒤져야합니다 가끔은 지역어르신께 여쭈어야하고요;;

  • @소설가-x3f
    @소설가-x3f 7 місяців тому +8

    5만명이면 저 벌판 다 채울것 같은데 전투할 공간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긴 함

    • @사적돌
      @사적돌  7 місяців тому +3

      공간문제는 전혀없습니다 20제곱키로미터가 넘습니다😌
      과거 해안선은 퇴적이 덜되어 논산인근까지 올라와있었는데, 연산면 근처도 닿지못합니다.
      연산면과 인근 산에 산성이 10개정도 배치되어 있어서 부여를 수비하기위해설치한 군사요충도 확실합니다.
      연산에서 부여방향으로 논산에 산성이 여러개 더있고
      부여로넘어가기전 대규모산성인 청마산성 석성산성,
      도시방어성곽인 나성 청산성, 부소산성까지 있지요.

  • @신재용-u1y
    @신재용-u1y 2 місяці тому +2

    여기가 황산벌이 아닙니다!

  • @WJ_CHOI--
    @WJ_CHOI-- Рік тому +5

    사적돌님 영상 너무 잘보고 잇는 애청자입니다. 이제 코로나도 끝낫는데 애펑자들 모아서 함께 답사 가보는 컨텐츠 어떠실까요 저도 시간만 허락한다면 꼭 함께하고 싶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5

      저도 바라는바입니다만 여러 난처한 상황으로인해 10만명즈음부터 계획하고 있습니다😄
      구독자 10만 속히 달성해서 분기별로 구독자분들 모시고 답사다니고싶네요
      그리고 쉽게 갈수있는곳은 지양하고 평소가기 어렵고 그러나 이야기가 진하게남아있는곳으로 계획하고있습니다🤔

    • @WJ_CHOI--
      @WJ_CHOI-- Рік тому

      @@사적돌 소소하게 적은인원부터 한번 시작해보시면 어떠실까요? 당일치기 또는 1박2일 코스 등으로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그럼 일반 영상 촬영시간이 없...😞

    • @WJ_CHOI--
      @WJ_CHOI-- Рік тому

      @@사적돌 ㅋㅋㅋㅋㅋㅋㅋㅋ

  • @뽕구-e3i
    @뽕구-e3i Рік тому +17

    예식진만 아니었더라도 다시 세력을 응집해서 맞써볼만 했을건데 많이 아쉬운 부분이네요...여기서 백제가 버텼다면 고구려의 멸망도 상황이 바꼈을수도 있으니....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4

      예식진의 배반이 없었다면 부흥군이 이겼을것 같습니다🤔 너무 잘싸웠어요😮

    • @gn.l3762
      @gn.l3762 Рік тому

      당시 고구려는 무얼하고 있었을까요. 라당 연합군의 백제 침공을 모르고 있었을까요.ㅡ

    • @newplus66
      @newplus66 7 місяців тому

      @@gn.l3762 당나라 소정방 방향이 처음엔 고구려인 줄 알았다는 야그가 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당시 항로가 북쪽 장산곳에서 남쪽으로 서천 방향이었으니 가능한 이야기죠.

    • @끼리에엘레이손
      @끼리에엘레이손 6 місяців тому +1

      예식진이 미래를 내다본 것이겠죠 ㅜ

  • @Werner4voss
    @Werner4voss Рік тому +4

    아직도 사가들 사이에선 산성에 의지해 싸웠다 vs 벌판에서 싸웠다로 의견이 분분한대 계백이 일단 진을 산에 두고 벌판에 주병력을 내려보내서 일전을 벌였을 수 도 있을까 같아용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그럴수도 있지요😄
      계백의 목적은 신라군을 차단하여 당군과 합치지 못하도록 하는것이었기 때문에
      상황에 맞게 임무를 수행했으리라봅니다🤔

  • @조철웅-v9b
    @조철웅-v9b 6 місяців тому +1

    구독이 많이 늘어서 사적돌님이 드론을 이용하여
    영상을 제작하시는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6 місяців тому +1

      다음 황산벌 영상을 제작하게되면 드론을 써야지요😄

  • @gn.l3762
    @gn.l3762 Рік тому +2

    계백장군의 묘가 성겁돌(탑정댐) 북쪽 양촌면에 있다고 들어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덧글 감사드립니다😄

  • @현광장-l1c
    @현광장-l1c 4 місяці тому +1

    또다른 답사에서는 언제나 어께에 메고다니시는 가방에 무엇들이 들어있는지도 공개하시지요~^^
    궁금합니다.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4 місяці тому

      순수하게 촬영장비로 가득합니다 10000짜리 예비배터리 예비렌즈, 예비 액션캠, 물 등이 들어있지요😄

    • @현광장-l1c
      @현광장-l1c 4 місяці тому

      어휴 무겁겠습니다~~~ㅎ

  • @kodonamroo_gyeongju
    @kodonamroo_gyeongju Рік тому +8

    지명이 천여년이 지나도 남아있다는 것이 경이롭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3

      시청감사드립니다😌

    • @깃대봉-h7c
      @깃대봉-h7c 5 місяців тому

      계백장군에게 단기필마로 여러번 돌격하다 끝내 목이 잘려 죽은 화랑 관창의 수급이 묻혀있다는 관창골도 황산성 아랫마을 관동리에 실재합니다

  • @arthurkim8660
    @arthurkim8660 Рік тому +4

    영상에 나온 수락산의 북동쪽 기슭에 예사롭지 않은...
    우거진 수풀 사이로 입구가 반듯하고 돌이 정갈하게 쌓여진 제법 규모있는 석실무덤이 있었죠.
    그곳 인근에서 40여년전 제가 유년시절에 몇달을 살고 떠났죠
    당시 그 동네 어른들도 그 유적??의 존재를 아무도 모르고 있는듯 했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럿지만 다시 가도 그 위치를 알수 있을듯 하네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오! 한전리 유물산포지면 고려로 거슬러가겠네요
      멋진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셨군요😄

  • @shkoh4061
    @shkoh4061 2 місяці тому

    발판에 진을 형성한게 아니죠.. 소수병력이 10배나,되는 대군에 맞서 벌판에 진을 치다니요.

    • @사적돌
      @사적돌  2 місяці тому

      백제군도 본인병력이 더 적기 때문에 벌판으로 내려가고 싶지 않았을테지요🤔

  • @인문학여행
    @인문학여행 Рік тому +2

    어쩌면 수몰 전의 탑정저수지 계곡이 황산벌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소견입니다.
    당시에는 수통이 없어 물보급이 가능한 계곡을 통해서만 진군이 가능했을 테니까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강점기 저수지 없을때 보면 군대가 기동하기에도 좋습니다. 당연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dream-rp1op
      @dream-rp1op Рік тому

      무식하기는 ? 수통은 나무로도 얼마든지 물 안 새게 만들어요. 옛날 나무로 만든 똥 장군 분뇨 전혀 안 새게 만들었다. 서양 포도주도 나무통으로 만들고.

    • @인문학여행
      @인문학여행 8 місяців тому +1

      @@dream-rp1op 병사 1인당 하루 16리터 물이 필요했다는데, 군대는 댕겨왔나요?

  • @향원익청
    @향원익청 Рік тому +2

    저도 산직리에 가본 적이 있는데 마도령을 넘어 유성과 계룡쪽으로 길을 잡는다면 천호산 협곡에서 엄청난 저항을 받았으리라 짐작은 했습니다 마도령이 침현이라는 말도 있겠고 금산 백령성이 침현이라고도 하고 운주면 숯고개라고도 하지만 선생님께선 어디로 짐작하시는지 여쭈어도 될까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어서오세요😌
      김유신이 황산벌로 가기전에 경기지역에 올라갔다가 황산벌로 내려오면서 접근했다는 학설을 채용했습니다. 해당 학설에 대해 주력인 의견이 식장산의 자모리고개를 넘었다는것인데 한자로 침현이라 들어 맞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정도의 대규모 군대가 한덩어리로 움직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급부대나 후발부대는 경주에서 직접이동하기도 했을테고 규모의 차이뿐 어느 고개나 신라군이 가득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 @미제드론
      @미제드론 Рік тому

      백령성이나 운주 숯고개는 너무 돌아가는 길이라 속전속결로 가야하는 대군의 통로는 아니었을것 같습니다. 임진왜란때 처럼 진산면 쪽으로 해서 이치고개로 넘어가려는 신라군도 있었을것 같고요 신라군이 대전에서 계룡 거쳐 연산으로 오는 길목은 아마도 선택하지 않은듯 한데 후에 백제부흥운동때 대전 지역에서 여러 전투가 벌어지고 특히나 흑석동산성을 백제측이 장악하고 있던것을 보면 김유신은 추부에서 대둔산 옆으로 해서 벌곡 거쳐 연산으로 간듯 합니다. 이쪽에는 대전에 비해서 성들이 비교적 적습니다.

  • @T.W85
    @T.W85 Рік тому +2

    우리가 왜 지냐... 지금도 줘 터지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고대는 중앙집권의 달성이 모든것을 바꿔놓지 않았나 싶습니다🤔

  • @godfathersjustice4457
    @godfathersjustice4457 Рік тому +2

    예전 논산훈련소 철조망통과 하는 포복훈련시 위로 기관총쏘고 하던 훈련장이 황산벌이라고 교관이 그러던데 아닌가??눈물고갸애서 총구 거꾸로 하고 오라걸음 걸었었눈데..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논산훈련소 바로 옆입니다😄 군생활 수고많으셨습니다😌

  • @검마르-i7o
    @검마르-i7o 4 місяці тому +7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다 믿지않기로 했습니다 합리적추론이 안되는 내용들이 너무 많더군요 ㅋ 저는 그랬어요 수고하세요 저는 이만~

  • @한대웅-h6q
    @한대웅-h6q Рік тому +7

    백제가 5천밖에 동원못한 이유
    1. 백제는 그당시 귀족파와 왕당파로 나뉘어있었음. 귀족들이 사병들을 내놓지 않음.
    2. 백제왕가의 분가인 일왕가에서 5만의 지원병력을 보내었으나, 금강하구에서 전멸
    3. 백제왕의 건강이 않좋았을 가능성이 높음.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5

      오 덧글 감사드립니다😌
      백제가 망하고 귀족들이 우리가 왜 지냐고 개탄했다고하니
      지난후에야 덧없음입니다🤔

    • @한대웅-h6q
      @한대웅-h6q Рік тому +1

      @@사적돌 근시안적인 사람들이였던거죠. 왕당파가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힘은 약해지니, 통수치겠다라는 생각을 하고있었을거같네요

    • @뽕구-e3i
      @뽕구-e3i Рік тому +1

      당군이 백제로 올거라 예상못했기에 미리 병력을 모으지 못하고 사비근처에 있던병력들로 급하게 모은거기에 병력이 많지 않았던거고 그나마도 주력은 당군을 상대하고있었기에 계백의 5천도 결코적은 숫자는 아니라고 봅니다. 왕당파귀족파로 나뉘었다지만 주력이 결코 적은병력이 아닌걸보면 위기상황에서 왕당파귀족파 그런건 크게 작용안했다고 봅니다...전통귀족들은 총력전을 펼쳤을거라봅니다...단지 웅진성처럼 중요한곳을 신흥귀족인 예씨가 성주였던게 패착이죠...진씨나해씨가성주였다면 끝까지 항전하지않았을까 싶네요

    • @dolgum826
      @dolgum826 Рік тому

      않-->안

    • @황석하-q4u
      @황석하-q4u 8 місяців тому

      저는 그당시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이 왕을 죽이고 쿠데타를 해서 의자왕이 계백장군한테 많은 군사를 안 준게 아닌가 생각 합니다@@dolgum826

  • @pijareu7173
    @pijareu7173 7 місяців тому +2

    그시절도 세작이 있었을텐데 백제가 허망하게 망한게 이해가 안감

    • @사적돌
      @사적돌  7 місяців тому +1

      이땅의 거의 대부분 왕조가 내부의 적 때문에 멸망했지요🤔

    • @hawk8873
      @hawk8873 2 місяці тому

      김유신의 첩보전이 백제를 압도했기 때문에 승리한 것입니다. 특히 반간계에 아주 능했는데 당시 신라가 약소국이였던 만큼 기록상으로도 김유신이 첩보전에 심혈을 기울였음을 알수 있죠. 당시 국방부 장관 격인 최고위층인 병부좌평 부여 임자를 포섭한것은 매우 특기할만한 일입니다. 명백한 국가 반역 행위인 상호 신변 보장 조약을 개인적으로 내통해서 체결했으니 백제의 허실을 낱낱히 알고 있었을 것이고 반면 백제측은 아마 첩보전이 막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친 백제 성향의 성골 귀족들이 비담.염종의 난때 대부분 숙청당했고 이후 김춘추의 등극 이후는 신흥 진골 세력의 세상이였기 때문에 신라가 대단히 컴팩트하고 능률적이라서 폐쇄적이라서 세작 침투가 매우 힘들었을 겁니다.

  • @공햇님
    @공햇님 Рік тому +1

    백제나 고구려나 끝내 내분으로... 백제 지방 귀족들 근시안적인 사람들이네요. 나라가 망하면 뭐가 남는다고......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4

      우리 역사는 내분... 쿠데타로 말미암지요
      백제도 귀족의배신, 고구려도 귀족의배신, 신라도 귀족의 할거
      후백제도 아들의배신, 궁예도 왕건의배신, 고려도 이성계의배신
      조선도 귀족들의배신...
      우리나라 현재의 극단화도 두렵습니다😞

  • @이동원-s8h
    @이동원-s8h 6 місяців тому +1

    감개 무량합니다 ❤❤❤❤

    • @사적돌
      @사적돌  6 місяців тому

      시청 감사드립니다😌

  • @폭발의_도끼
    @폭발의_도끼 3 місяці тому +1

    백제는 그최후때도 왕은 멋있는지는 몰라도 병사만큼은 멋지네요

    • @사적돌
      @사적돌  3 місяці тому

      백제는 안 망했으면 좋았을것을..😞

  • @UCdBssCoN33GOGr5lVJSRWHQ
    @UCdBssCoN33GOGr5lVJSRWHQ Рік тому +4

    엄청오래된 일인데도 병력규모가 엄청나네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5

      백제가 운봉고원 공략할때 병력이 4만이니
      위급한경우와 귀족사병까지 합류한다면 더 많은 병력도 가능했을테지요
      백제 부흥군이 여러차례 패배 했어도 병력이 아주 부족하지는 않았고
      예식진의 배반이 아니었다면 보급이 끊어진 당군이 패배할수도 있었습니다🤔

  • @han-tubu384
    @han-tubu384 4 місяці тому +3

    거기 아니에요.

  • @ShapeOfStar
    @ShapeOfStar 3 місяці тому

    백제는 백개의 제후라는 뜻이 아니고
    백개의 가문 사람들이 온조를 따라 황해 바다를 건너
    지금의 서울로 왔다 즉 백가제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기전 소서노가 건국한 신왕국이 있던 곳의 지역 명칭에 백제가 있어,
    국호를 백제로 쓴 것입니다.

    • @사적돌
      @사적돌  3 місяці тому

      시청감사드립니다😌

    • @hawk8873
      @hawk8873 2 місяці тому

      원래 온조 때는 열명의 신하가 건국을 도왔다고 해서 십제 였다가 온조 치세 말기에는 한강 유역을 끼고 국가가 강성해져서 사람의 성씨가 백개를 헤아렸다고 하여 백제가 되었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함 다시 찾아봐야겠네여.

  • @황석하-q4u
    @황석하-q4u 8 місяців тому +2

    저도 이곳에 관심이 많아 여기 저기 다녀 보기도 했는데 비교적 저의 소견과 일치하는 점이 많습니다. 신라군은 상주 금돌성에서 황간 영동을 거쳐 금산 남이 600 고지, 숯고개를 넘어 운주와 양촌을 거쳐 황산벌로 이어졌을거 같습니다. 그리고 한부대는 숯고개를 넘어 진산에서 벌곡으로 넘어와 황령재(벌곡에서 양촌으로 넘어가는 고속도로 고개)로 다다렀을거 같구요.

    • @사적돌
      @사적돌  8 місяців тому +2

      이 중요한 전투의 사서기록이 일천하다는것에 대해 아쉽기가 그지없습니다. 구전, 지명들이 더 구체적인 정황을 보여주니.. 지자체가 나서서 산성발굴에 힘을 기울여줘야 될텐데요🤔

  • @양자리-t7f
    @양자리-t7f Рік тому +1

    의자왕 즉위 후부터 귀족들과의 갈등이 백제 멸망의 단초가 된거 같아 씁쓸하네요...시간 날때 가족들과 한번 다녀와 봐야 겠네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그런듯하지요😞 좋은 답사되세요😄

  • @잡동사니-c5n
    @잡동사니-c5n Рік тому +1

    연산면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연산면 송정리 연산천 주변에 논이 넓게 펼처져 있는데 유신은 송정리쪽에서 계백은 관동리쪽에서 달려가 싸웠다고 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오 덧글 감사드립니다😮

  • @낭만사나이-i6m
    @낭만사나이-i6m Рік тому +1

    흑치상지 아닐까요 (백기)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시청 감사드립니다😌

  • @김종완-e6m
    @김종완-e6m 3 місяці тому +1

    응, 다리 많이 아프겠다. 당신이 가서 이분 다리 안마나 좀 해드려. 그게 격에 맞을 듯

    • @사적돌
      @사적돌  2 місяці тому

      시청 감사드립니다😌

  • @DokdoHanbokKimchiDaemado_Korea
    @DokdoHanbokKimchiDaemado_Korea 4 місяці тому +1

    이번편 맛있군요

    • @사적돌
      @사적돌  4 місяці тому

      산성 밀집도가 높아 답사하기 좋은 지역인듯합니다😄

  • @병상박-t1o
    @병상박-t1o Рік тому +1

    이때 이미 나라가 동과 서 영남과 호남으로 두 쪽 난 거지. 침략한 녀석들이 잘못한 거니, 침략당한 자가 나쁜 녀식인 거니?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시청 감사드립니다😌

  • @pae4451
    @pae4451 Рік тому +42

    황산벌은 중국 산동반도에 있어요, 의미없이 돌아다니느라 다리 많이 이프셨죠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7

      염려감사드립니다. 불행중다행인지 다녀온곳에 모두 산성과 과거 유구가 있었습니다😌

    • @hwangkyookim7395
      @hwangkyookim7395 Рік тому +27

      황산벌이 지금의 일본 도쿄 중심지
      긴자 거리라 주장하지 않으신 것만 해도 너무 감사네요.

    • @미제드론
      @미제드론 Рік тому +7

      @@hwangkyookim7395 🤣🤣🤣🤣🤣

    • @폴라리스-s5s
      @폴라리스-s5s Рік тому +10

      황천길은 중국에. 많아 거기도 가보지 그래

    • @joshuayoon3813
      @joshuayoon3813 10 місяців тому +7

      황산벌이 중국 산동 반도에 왜 있어요? ㅋ 담로국이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황산벌은 저 부근입니다.

  • @성민기억법영어회화
    @성민기억법영어회화 Рік тому +2

    과거의 전쟁에서 패배한쪽의 여자들은 고귀한 왕족이건 귀족이건 모두 승자의 노리게가되는 치욕을 겪었다. 70년전 베를린에서 백만의 독일여자들이 강간당하고 6천이 자살했지. 80-년전 왜적은 조선처녀 수만을 끌고가 위안부로 삼았지. 러시아는 아직도 푸틴처럼 몽고족 얼굴이 많이 남아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시청 감사드립니다😌

  • @ShapeOfStar
    @ShapeOfStar 3 місяці тому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다.
    그런데 계백이 5천명을 이끌고 나온 것은 말씀에 큰 오류가 있습니다.
    중앙군 전체수가 5천이라뇨 이건 황당한 상식에 맞지 않는 말입니다.
    원래 중앙군은 3만 규모였고, 이 중에 계백은 5천을 데리고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황산벌 싸움이 있던 날,
    소정방은 기벌포에 상륙해서 웅진구 전투에서 부여의직의 5천 가령의 병사를 격파하고,
    그 다음날 사비 남쪽 석성리에서 부여태의 중앙군 2만 가량과 소정방이 맟붙어
    백제군 1만 가량의 목에 베어졌다고 기록에 나옵니다.
    남은 1만은 사비성 수성에 들어가죠.
    신라군 당군은 사비성를 포위하고 다음날 항복을 받아내죠.
    그 전날 의자왕은 웅진성으로 비밀리에 탈출하고요.
    원래 백제의 중앙군은 3만 규모에 대장군급이 지휘하게 되어 있는데 의자왕은 그 자리에 자기 아들을 다 앉혀 놔서
    이렇게 무력하게 다 뚫린 것입니다.
    그리고 계백은 영화에서 그리듯 잘 싸운게 아니라
    완전히 김유신이 전술적으로 가지고 논 것입니다.
    60대 흰수염의 신라 상장군 김유신에게는 30대 후반의 계백은 그야말로 애송이였죠.
    물론 계백의 의기만은 김유신도 감탄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3 місяці тому

      오 덧글 감사드립니다😌

    • @HJjang-hs6cq
      @HJjang-hs6cq 3 місяці тому

      전술적으로 가지고 놀았다
      그러면 화랑 관창 죽음은 개죽음이네
      상대를 가지고 놀정도인데 자식을 개죽음 시킨 김유신 미틴 아비아님?

    • @ShapeOfStar
      @ShapeOfStar 3 місяці тому +1

      @@HJjang-hs6cq질문 수준이 낮아 답변을 안 달려 하다가, 다른 분들을 위해 답니다.
      4차례 싸워 4차례 계백이 승리 했다고 사서에 나옵니다.
      하지만 황산벌에서 4번 싸우는동안 계속 서쪽으로 밀리기만 하죠.
      진짜 승리는 아닌 것이었습니다.
      신라는 계속 군사 로테이션을 해가며 힘을 조절했고
      백제는 전력을 다하다 보니 계속 사비 쪽으로 밀리기만 했죠.
      김유신은 몰아 붙이고 물리고를 4번 반복하면서 계백군 힘을 완전히 뻰 것입니다.
      하지만 계백은 김유신도 놀랄만큼 대단히 잘 싸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5번째는 완벽한 승리가 필요해
      김유신은 반굴과 관창의 목을 전술적으로 이용해
      신라군 사기를 최대로 끌어올린뒤 바로 계백군을 몰살 시켜 버리죠.
      반굴 관창의 목을 이용해
      신라군 피해는 줄이면서 마지막 궁지에 몰린 계백군을 한방에 제입한 것입니다.
      애초에 계백은 전술적으로 김유신의 상대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처음 산직리 산성에서 수성전을 하겠다고 계백이 생각했지만
      김유신은 계백군을 무시하고 황산벌로 유유히 진격하죠.
      그러니 계백은 아차~ 싶어 군사들을 데리고 신라군을 가로질러
      황산벌 벌판에서 가로 막으며 첫 결전을 했던 것인데,
      벌써 첫수 부터 김유신의 상대가 못 되었죠.

    • @HJjang-hs6cq
      @HJjang-hs6cq 3 місяці тому

      @@ShapeOfStar ㅎㅎㅎ
      님 5만군을 이끌고 5천 군사랑 싸워서 계속 처 맞다가 아들 관창을 죽여서 승리를 한김유신 자랑스럽겠소이다 관창의 죽음이 없었다면 패하여 줄행랑 쳤을 김유신을 영웅시 하는 님 대단하오

    • @hawk8873
      @hawk8873 2 місяці тому

      @@ShapeOfStar /차라리 산성에서 버티다가 후미를 쳤어도,,,,아, 병력차이가 너무 나서 별 소득이 없었겠군요. 어차피 처자식까지 베어 죽이고 나올 정도로 다급한 상황이였으니,,,,

  • @dream-rp1op
    @dream-rp1op Рік тому

    당나라 소 정방이 와서 백제가 멸망 했지. 뭔 김 유신이 신라 통일을 해. 고구려 그 넓은 영토는 당이 차지하고 티벳이 쳐들어와서 신라에 조금 땅 떼어주고 자진 퇴각 했지. 역사는 객관적으로 가르쳐야지.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영상의 황산벌은 김유신이 당군과 합류하기 전 벌어진 전투입니다😌

    • @수부타이-z3r
      @수부타이-z3r Рік тому +1

      삐딱하게 쓴거보니 니인성 개차반이구나

    • @시라소니-e4l
      @시라소니-e4l 4 місяці тому

      역사적 사실을 애기한거 맞음 ᆢ

  • @감생이-t1k
    @감생이-t1k Рік тому +3

    이해가 안가는 상황임.
    백제가 한번 싸움에 망한다는게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이후로도 몇번의전투
      백제부흥군은 거의 이길뻔하지요🤔

  • @kwangmin7863
    @kwangmin7863 Рік тому +1

    서글픈 역사인가요? 시대적인 역사인가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저도 사람인지라 사람의 시각에서보면 계백에게 감정이입이되고
      역사적 시각에서보면 아주 좋은 기회였는데 백제내부의 문제로 못살린것이지요🤔

  • @호랭이-k6w
    @호랭이-k6w Рік тому +10

    진짜로? 계백과 김유신이 싸운 황산벌이 논산에?
    아직도 거짓역사를 가르치시고 방영하시는분 정신차리세요?
    유적, 성 등 다 어디에? 강단사학자짓 그만하시고 똑바로된 역사 검증후 방영 합시다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는 학자로 남길 바랍니다!

    • @미제드론
      @미제드론 Рік тому +5

      연산 면소재지 근처 수km 안에 산성이 10개도 넘는데 가보지도 않고 방구석에서 지도에 선긋기만 하고 있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5

      연산면과, 관련된 기억나는 산성들이 모촌리산성, 산직리산성, 외성산성, 천왕산성, 황령산성, 청동리산성, 신흥리산성,,
      고분군과, 고대사지, 유물산포지가 천지에 있습니다.
      연산면의 고대이름은 황등야산군, 황산, 연산 으로 변해왔고,
      깃대봉 아래는 황산리라는 지명이 아직도 내려옵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답글을 먼저 주셨네요 😅 감사드립니다😌

    • @미제드론
      @미제드론 Рік тому +3

      @@사적돌 신흥리산성 = 모촌리산성 이더라구요 저는 모촌리 2구 마을회관에 주차하고 답사했었습니다. 그리고 모촌리산성 서쪽 길건너편 갈마산에도 성터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매체에서 본것 같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오 그렇네요
      갈마산은 산성이 있을만한 위치인데다 아랫마을 유물산포지가 워낙에 크니
      토성산보다 교통로통제에는 유리한곳으로보입니다🤔

  • @Just-t7v
    @Just-t7v 3 місяці тому +1

    ㅇ휴.....황산 의 벌 한국에 황산이 ?????

    • @하트호야-d5h
      @하트호야-d5h 2 місяці тому

      뽕쟁이에 대가리 깨진 병ㅅ 웅장하네 이런 멍청한 놈들이 많아 나라가 쪼그라들다 못해 반쪽난 거겠지